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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내 여동생을 사랑했다-123화 (123/155)

123화. 잘못했어요, 아가씨 (1)

나는 가브리엘을 보자마자 다급히 말했다.

“사람들이 이상해요.”

가브리엘은 무슨 말이라도 듣겠다는 듯이 미소했을 뿐이었다.

“그렇잖아요. 말도 없이 저택을 떠났던 것은 나인데요, 왜 아무도 화를 내지 않는 건지. 그리고 왜 자꾸 우는 건지. 왜…….”

죄송해요, 아가씨.

잘못했어요.

저희가 다 잘못했어요.

그렇게 말하는 것이며.

심지어 아빠조차 그렇게 말했다. 미안하다고 하지 말라고.

손에 스치듯 온기가 느껴져 내려다보자, 가브리엘의 손가락이 간지럽히듯 손등을 감싸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웃는다.

아무것도 두려워할 필요 없다는 듯이.

“저는 하나도 이상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네?”

“당연한 것들일 뿐인데 말입니다.”

심드렁한 그의 목소리에 나는 눈만 깜빡였다.

그는 오히려 뭔가 짜증이 나 보이기까지 했는데, 눈이 마주치니 그렇지 않은 척 살며시 웃었다.

그러다가 한숨을 내쉬고 내 아직 마르지 않은 머리카락을 손끝으로 비볐다.

“모두가 당신을 외롭게 했으니.”

물기가 스미는 그의 손가락 끝을 바라보다가 서서히 심장이 간지러워졌다.

“저 정도의 후회와 눈물은 이제 시작일 뿐입니다. 마음껏 화내고, 섭섭한 것들을 토로하세요, 힐. 참지 마시고 하고 싶었던 말들을 모두 하십시오. 특히 마음을 아프게 했던 자들이 있었다면 때리셔도 됩니다.”

“그건…….”

힐링턴의 저택이었기 때문일까.

현실에 대한 자각이 확 스며들어 얼굴이 뜨거워졌다.

우리는 이제 이런 접촉 정도는 당연한 사이가 된 거구나.

예전이었다면 이 장소에서, 이런 식으로 단둘이 서 있는 건 상상도 못 했을 일이었을 텐데.

“그, 가브리엘.”

“예, 힐데아.”

가브리엘이 내게 조금 더 고개를 숙여 거리를 가까이했다.

“아.”

그에게서 나는 향기가 더욱 짙어졌다. 심장이 뛰었다.

움찔하는 날 보며 가브리엘이 눈을 가늘게 떴다.

“왜 그러십니까. 제가 머리카락을 만지는 것이 싫으십니까?”

직접적인 질문이었지만 손은 여전히 머리카락에 닿아 있었다.

“제가 이렇게 당신의 머리카락을…….”

오히려 더욱 깊게 손가락 사이에 머리카락이 엉켜 들었다.

“……하면 싫으십니까?”

발끝까지 오싹해졌다.

이, 이상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좀, 조금.”

“조금?”

“간지러워서요…….”

웅얼거리면서 눈꺼풀을 감자 파르르 떨렸다.

갑자기 훅 거리가 멀어지고 위에서 그의 짙은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뭘까. 지금의 한숨은 무슨 뜻일까. 나처럼 그도 심장이 터질 것 같다는 것일까?

어쩐지 그때 방해를 받아 채 내뱉지 못한 고백이 떠올랐다.

지금 당신을 좋아한다고 말하면, 가브리엘은 어여쁘게 웃어줄까?

“솔직히.”

하지만 가브리엘이 먼저 말을 했다.

굵직한 목소리에는 꼭 나를 찾아 꽃집에 찾아왔던 주정뱅이였던 때의 그를 떠올리게 하는 열기가 있었다.

“질투가 납니다.”

“……네?”

깜짝 놀라 시선을 들었는데, 분명 평소보다도 더욱 뜨거운 시선이 똑바로 나를 눈에 담았다.

아주 뜨겁고, 불같은.

그가 내 쪽으로 고개를 살짝 숙이자, 그에게서 씻고 나온 후의 샤워 코롱 향기가 진하게 풍겼다.

“루다나 마을에 있을 때 하나는 좋았습니다.”

“왜…….”

“당신의 옆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저밖에 없어서.”

아. 커다란 손끝이 내 머리카락을 살며시 움켜쥐다가, 목덜미를 덮을 듯이 다가왔다.

“힐, 당신이 저만 생각하고.”

뜨겁고 간지러웠다.

“온종일 저만 신경 쓰시는 것이.”

귓불 아래를 지그시 누르는 엄지의 끝이 무척이나 거칠었는데도 싫지 않았다.

입술이 달싹였다.

“황홀하도록 좋았으니까.”

나는 멍청히 굳어 있었다.

거리가 가까워지는 것을 보면서 눈을 질끈 감아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그는 내게 입맞춤하진 않았다.

뜨거운 숨결이 귓가에 닿았다. 웃음과 섞인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가족들에게 당신의 시간을 양보해야 하는 때라는 걸 압니다. 그러니…….”

촉, 하고 촉촉하고 부드러운 것이 분명히 귓바퀴에 닿았다 떨어졌다.

“!”

뭐야. 지금 뭐야.

“가, 가브리엘, 지금-”

눈앞이 붉게 물드는 기분이었다.

“용서해주세요, 힐.”

황급히 귓바퀴를 손바닥으로 덮으며 그를 올려다보는데, 아찔하게 웃는 관능적인 남자가 보였다.

“지금은 이것으로 참을 테니.”

“…….”

왜. 왜 그렇게 말하면서 웃는 건데. 왜 그러는 건데요.

나 지금 심장 마비 걸리게 하려는 건가? 그런 거야?

“그리고 가족들 문제는 간단하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방금 누구누구의 행동으로 가족들 걱정도 산뜻하게 증발해버렸다고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그가 너무 다정히 웃고 있어서 그 말도 김빠진 음료수처럼 힘을 잃고 말았다.

아, 정말.

괜히 뜨끈뜨끈한 귓바퀴를 손으로 쓸어내리며 불퉁하게 말했다.

“어떻게 간단하게 생각해요. 이렇게 다 이상한데…….”

“대체 무엇이 말씀입니까?”

가브리엘이 고개를 갸웃했다.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면서.

“저는 그랬습니다.”

“네?”

“저도 당신께 잘못한 것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항상 그랬습니다.”

그는 나긋하게 말했다.

“당신이 그리웠고, 당신이 떠날까 봐 두렵고. 또 제가 했던 모든 행동과 당신이 아팠던 순간들이 절절하게 후회됐습니다.”

가브리엘을 보며 생각했다.

“그건 지금도 그렇습니다, 힐.”

“…….”

“그들도 저와 같을 겁니다.”

“그, 럴까요?”

가족들이, 힐링턴의 사람들이 내게 미안하다고.

잘못했다고…….

이상하게 눈물이 핑 돌았다.

가브리엘이 부드럽게 미소했다.

“네. 그래서 가족들과의 관계도 변할 겁니다. 좋은 쪽으로 말입니다. 지금의 저와 당신이 과거의 저와 당신과 다르듯이.”

정말 그와 내 사이가 변한 것처럼, 사랑했지만 많이 아팠던 가족들과의 시간도 변할 수 있는 것일까.

하지만 이상하다.

나는 내 속상한 마음에 대해 토로한 적이 없었는데.

가브리엘에게 그랬던 것처럼 화분을 남긴 것도 아니었고, 갑자기 돌아왔더니 가족들이 내 숨겨진 마음을 모두 알고 구구절절 눈물을 흘리며 사과한다는 게 말이 되나?

꼭 다들 내 표정과 속마음을 아는 것처럼 굴었다.

이전과는 달리.

그게 너무 이상해서 자꾸 의심이 들어…….

하지만 내 생각이 뚝 끊겼다.

“물론.”

돌연, 나긋나긋하게 말하던 가브리엘이 차갑게 변모했기 때문이다.

“당신을 너무 좋아해서 짜증나게 질척거리는 힐링턴의 인간들이 저는 너무 지긋지긋하지만.”

“아?”

“그래서 가끔 해충 죽이듯 치워버리고 싶기도 하지만.”

“…….”

해충?

황당하다는 듯이 그를 보자, 가브리엘은 정말 힐링턴의 사람들을 떠올리는 것처럼 이를 갈았다.

사이가 나, 나빴나?

나는 가브리엘이 로제와 가까우니 힐링턴의 다른 사람들과도 친한 것이라 생각했는데.

“대신 그 인간들이 당신을 보며 후회의 눈물을 흘리는 꼴은 앞으로도 즐겁게 감상만 하시면 됩니다.”

그 심술 가득한 말을 들으며 생각했다.

응, 아니구나. 사이가 정말 나빴구나. 이것도 나만 몰랐나 봐.

가브리엘은 거기서 더 덧붙였다.

“용서도 웬만하면 안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아, 이대로 저와 벨키우스 영지로 가시는 것도 좋겠군요. 제멋대로 판단하고 좋다고 서로 손뼉 치던 인간들보다 저희 영지의 사람들이 훨씬 더 잘해드릴 겁니다.”

나는 정말 즐거워 보이는 가브리엘을 보며 생각했다.

역시 내가 좋아하는 남자는 성격이 조금 이상한 것 같다고.

그러나 놀랍게도 그의 말을 들으며 복잡했던 생각들이 가벼워져 웃음이 나왔다.

“풋.”

“왜 웃으십니까.”

“당신 말이 너무 재밌어서요…….”

그도 나를 보더니 결국 다시 웃어버렸다.

“어쩌겠습니까. 당장 같이 도망치자고 하고 싶어도, 그래도…… 당신께서는 그들을 소중히 여기시니까요.”

그래.

가볍게 여기자.

과거에 머물지 않기로 마음먹었으니, 가족들의 반응은 긍정적인 신호라고 생각하자.

더는 물러서지 않고 그 반응을 똑바로 마주하자.

그렇게 마음의 응어리가 풀리며 용기를 냈을 때, 갑자기 가브리엘이 폭탄 발언을 했다.

“아. 그리고 말씀드리지 못한 것이 있었습니다.”

“뭔데요?”

“저들이 말하지 않은 힐의 진심을 알고 있는 이유.”

“……네?”

뭔가 불길했다.

초조하게 그를 바라보자, 가브리엘의 눈이 상냥하게 휘었다. 하지만 뒤이은 말은 상냥하지 못했다.

“당신께서 남기고 가신 일기를 모두가 보았습니다.”

발밑이 쿵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뭐라, 고요?

“그래서 아는 것이니 저들의 진심을 의심하진 않으셔도 됩니다.”

“…….”

폭탄 같은 말을 끝으로 테라스에서 훌쩍 뛰어내려, 우아한 신사처럼 멀어지는 그를 보면서도 내 영혼은 반쯤 가출했다.

기절이나 죽음에도 종류가 있다면, 분명 이 순간 내게 찾아왔을 것은 수치사였을 것이다.

그걸, 그걸 다 같이 봤다고.

내 일기를.

내 일기를!

그건 누가 보라고 쓴 게 아니었단 말이야…….

*

다음 날, 눈을 뜨자마자 본 것은 당장 툭 치면 울음이 터질 것 같은 표정의 시엔과 리라였다.

“아가씨, 세숫물 준비를 마쳤어요.”

“씻는 것을 도와드려도 될까요……?”

선명한 그 표정은 누가 봐도 확실한 뜻을 담고 있었다.

눈앞에 있는 내게 품은 죄책감, 그리웠다는 반가움, 그리고 슬픔.

“시엔, 리라.”

“……네, 네!”

“말씀하셔요, 아가씨.”

지금도 내 일기를 봤다는 것을 생각하면 자다가도 이불을 뻥 차고 싶을 만큼 수치스러웠지만.

동시에 심장이 따끔거렸다.

내가 남긴 그 비명 같은 말들이, 내가 차마 전하지 못했던 괴로움이, 저들에게 어떤 영향을 준 것일까?

그런 만큼의 애정은 있었던 것일까?

나만. 나만 보내는 일방통행의 애정이 아니었던 것일까?

하지만 그렇다면 내가 지난 세월 느꼈던 외로움과 괴로움은 다 뭐란 말인가.

그것이 사실과 다르다고, 사실은 당신들이 나를 좋아한 것이라고 하면 그 괴로움은 없던 것이 되는 것일까?

가족들의 벽과 거리, 차가움은 가브리엘이 내게 안겨주었던 절망과는 결을 달리하는 것이었다.

가브리엘은 나를 몰랐고, 나도 그를 몰랐다.

우리는 오랜 시간 떨어져 있었고 서로를 제대로 알기도 전에 서로를 짝사랑했다.

하지만 가족들은.

지르밟았던 희망이 치솟으면서, 꾹꾹 눌렀던 원망과 서글픔도 같이 솟구쳤다.

내가 애써 보지 않았던 것.

나의 상처, 서러움, 억울함.

슬픈 리라와 시엔의 선명한 표정을 보며 손을 꽉 쥐었다.

‘당신들은 내 곁에 있었잖아.’

얼마든지 다가올 수 있었고.

‘한 번이라도.’

얼마든지 손을 뻗을 수 있었고.

‘내게 묻지 않았는데.’

얼마든지 변할 수 있었는데.

그러지 않았잖아요.

나는 입을 열었다.

“왜 날 보며 그런 표정을 하는 거야?”

나는 눈에 힘을 주며 흔들리는 그들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말해줘.

변명이라도, 어떤 것이라도.

그것이 변화의 시작이 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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