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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내 여동생을 사랑했다-124화 (124/155)

124화. 잘못했어요, 아가씨 (2)

시엔과 리라는 아주 악명 높은 용병이었다.

어릴 적 특별한 용병단에 거두어져 뼈를 깎아내는 훈련을 받으며 인간성을 눌러내며 살인 병기로서 길러졌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처럼 고위 귀족에게서 은밀한 의뢰가 들어왔다.

<한 아기를 외부의 모든 접촉으로부터 보호하라>.

장기 의뢰였고 큰돈이 걸려 있었기 때문에 이 건을 마지막으로 은퇴할 수도 있을 의뢰였다.

까다롭다고 생각할 만한 것은 그녀들에게 전혀 익숙하지 않은 시녀 업무도 병행해야 한다는 것.

하지만 나쁘지 않은 의뢰였고, 상대는 몇 번 거래한 적도 있어 신뢰 관계가 높은 힐링턴 공작 가주였다.

이후, 그들 대장 격인 리라 외에도 시엔을 비롯하여 꽤 많은 인원이 힐링턴 공작가에 시녀의 모습으로 스며들었다.

‘우리가 잘 돌볼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어떻게 생각해, 리라?’

시엔의 냉정한 얼굴은 평소와 같았지만, 영 자신 없는 목소리였다.

리라는 흔들림 없이 저택을 응시하며 곧 신전으로부터 돌아오고 있을 아기를 위해 필요한 것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시녀로서의 행동 강령은 며칠 동안 제대로 익혀놓은 상태였다.

음, 먼저 분유를 준비해야곘군.

그들 외의 평범한 시녀에게 아기 침대를 정리하라고 지시하며 리라는 무정하게 말했다.

‘어려울 게 뭐가 있지? 의뢰받은 대로 잘 지키기만 하면 돼.’

‘하지만 이상해. 이번에는 뭔가 다를 것 같아.’

리라에게는 그런 반응을 하는 시엔이 더 신기했다.

하긴, 단원 중에서도 시엔은 특이했다.

표정제거술을 기반으로 감정의 동요를 최대한으로 줄였을 텐데도 간혹 보통 사람들처럼 구는 일이 있었으니까.

어쨌든, 그녀들은 아기를 만났다. 가주의 품에 안겨 쌕쌕 잠든 아주 자그마한 핏덩이였다.

신전에서 잘 보살피지 않았는지 마르고 유독 작은 체구가 너무 두드러져 리라는 인상을 찌푸렸다.

너무 약해 보였기 때문이다.

가주가 아기를 그녀들에게 맡겼고, 리라와 시엔은 이상하게도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은 채 아기를 한참 내려다봤다.

‘…….’

‘…….’

아기답지 않게 어여쁜 이목구비가 선명했지만, 특별할 것은 없었다.

아니. 없었어야 했는데.

‘진짜 작네.’

‘……감시를 두 배로 늘려야겠어.’

‘그러게. 독 한 방울이라도 닿으면 그대로 눈을 못 뜰 것 같잖아.’

심장이 쿡쿡 쑤셨다.

리라는 이해 못 할 감정에 미간을 찌푸렸다.

애정이라는 것은 의뢰에 방해가 될 뿐이라 그들은 쓸데없는 감정의 동요가 일어나지 않도록 표정제거술을 모두 받았다.

쓸모가 없는 사람은 살아갈 자격이 없다.

보는 눈들이 있었으니 다정한 시녀를 연기하며 눈을 뜬 아기를 달래듯 말을 걸며 분유를 먹이기 시작했다.

꼴깍꼴깍 넘어가는 소리를 들으며 기이한 기분이 들었다.

리라도, 시엔도 한참을 그곳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그때는 몰랐다.

이 작은 아기로 인해 그녀들이 어떤 선택을 하고, 또 어떤 것들을 포기하게 될 줄은.

* * *

‘이게 뭔가요, 아가씨?’

‘대하하 쑤 이느 꺼! (대화할 수 있는 것)!’

힐링턴의 둘째 아가씨, 로제리엘은 정말 특별한 인간이었다.

‘이꺼루 어니 지키꺼야(이걸로 언니 지킬거야)!’

대체 그 작은 머리에 무엇이 이리도 많이 들어 있는지, 자신들이 제 언니 힐데아를 지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뿐인가.

리라와 시엔을 따라 들어왔던 마법에 밝은 단원과 함께 무언가를 쑥쑥 만들어내곤 했고, 기어코 신기하고 유용한 것을 가져왔다.

피를 통해 참여한 사람은 어떤 종이에 펜을 가져다대기만 해도 서로 대화할 수 있는 방식의 특별한 마법이었다.

‘잘하셨어요, 로제 아가씨. 힐데아 아가씨를 지키는 데 더 유용하겠어.’

‘히히 쪼아! 언니 지켜!’

그 대화가 단순히 세작들을 잡아내는 것을 넘어, 그들의 힐데아 아가씨에 대한 사랑 주접 떨기로 바뀔 줄은 정말 몰랐지만, 시작은 그러했다.

……그랬었는데.

리라는 현재의 힐데아를 보았다.

어느새 훌쩍 아름다운 아가씨로 성장한 힐데아 폰 힐링턴을.

“왜 날 보며 그런 표정을 하는 거야?”

흔들리지만 더는 피하지 않는 또렷한 붉은 눈 속에는 확신이 담겨 있었다.

“난, 알고 싶어.”

분노도, 억울함도, 슬픔도, 그리고 동시에 강한 의지도, 희망도 같이 섞여 있었다.

“로제에게만 향하던 미소에 이유가 있었다고. 그렇게 믿고 싶어. 당신들이 나를 미워한 것이 아니라고……. 그게 맞다면, 나한테 설명을 해줘야 해. 아무 이유가 없었다면 무척 서글프고, 아프고, 결국 화가 날 테니까.”

리라는 손을 올렸다.

눈가가 화끈하게 달아올랐다.

이런 순간에도 상냥한 그들의 아가씨는 자신들에게 기회를 주고 있었다.

어떤 변명이라도 해 봐.

제발.

그렇게.

“아가씨, 저희는.”

“응.”

제 무표정한 얼굴에 상처받았을 눈앞의 아가씨를 향해 웃어 보이기 위해 노력하며.

이 순간을 위해 극한의 고통을 참으며 표정제거술을 없애지 않았던가.

실제로 시엔은 어느새 옆에서 끄윽 끅 소리를 내며 울고 있었다.

“저희의 이야기를 해드려도 될까요?”

두 달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거대한 정원 같았던 힐링턴을 떠나 많은 것을 보고 왔을 힐데아는 무엇이 얼마나 바뀐 것일까.

더는 거울을 보고 깜짝 놀라거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얼굴을 보며 어깨를 굳히며 긴장하지 않게 된 것일까.

“응.”

“저희가 아가씨 옆에…… 다가가도 될까요?”

“……응. 이리 와. 와서 말해줘. 나한테 설명해 줘. 리라, 시엔.”

마침내 다가간 리라와 시엔이 힐데아의 앞에 무너지듯 무릎을 꿇었다.

그렇지 않은 척했지만 미세하게 떨리고 있는 힐데아의 손을 맞잡으며 입을 열었다.

“저희는요, 아가씨…….”

용서를 바라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후회와 눈물이 힐데아의 상처를 조금이라도 치유할 수 있기를 바라며.

* * *

허탈하기도 했고, 그리고 먹먹하기도 했다.

“진주 귀걸이. 한 번도 착용하지 않아서 나를 싫어하는 줄 알았어요.”

시엔은 그야말로 제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그럴 리가요, 그럴 리가요, 아가씨! 저는 귀걸이가 너무 소중해서…….”

시엔의 커다란 눈에서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아. 저런 성격이었구나.’

나는 그녀가 저렇게 목소리가 크고, 표정이 다채로운 사람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로제에게만 보여주는 것인 줄 알았던 그 미소가 사실은 로제의 축언으로 인해 일어난 작용이라는 것도 지금 알았다.

이 사실을 지금 알았다고 해서 내가 받았던 그때의 외로움과 슬픈 순간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분명 그 순간에 받았던 느낌은 다르게 다가왔다.

“너무 소중해서 착용할 수 없었어요. 아가씨가 사용하시던 물건을 받았는데 저따위가 더럽히면 안 되잖아요……. 어떻게 제 따위가 아가씨의 흔적에 흠집을!”

응? 뭐라고?

나는 눈을 깜빡이며 시엔을 보았다.

하지만 그녀는 내 말이 들리지도 않는다는 듯, 열기에 찬 눈으로 말을 빠르게 이어가고 있었다.

저기, 시엔?

“그것 말고도 다양한, 아가씨에 대한 저의 애정을 보여드릴 수 있다면 언제든 저의 비밀 창고에 초대를…….”

촉촉이 젖은 눈동자에 언뜻 광기가 느껴지는 것 같아서 어깨가 흠칫했다.

지금 뭐지?

“비밀 창고요?”

의심스럽게 바라보아도 여전히 시엔은 가련하고 아련한 표정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한바탕 울어 눈이 붉어진 리라가 떨떠름한 표정을 하더니, 시엔의 손을 찰싹 치는 게 아닌가.

게다가 꼭 더러운 것이 묻었다는 듯 내 손등을 손수건으로 벅벅 닦아주기까지 했다.

저기, 리라?

“시엔의 더럽…… 아니, 시끄러운 말은 가볍게 흘려들으세요, 아가씨.”

리라는 차분하게 나를 바라보며, 함께 울어 축축해졌던 내 뺨을 손가락으로 훔쳤다.

시엔의 말은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지만, 나를 아주 좋아해 주고 있었다는 뜻으로 알아들으면 되는 건가.

한숨을 내쉬니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나는 차분히 마음을 진정시키며 조용히 말했다.

“리라. 시엔. 당신들의 이야기는 잘 들었어요. 하지만…….”

이어지는 내 말에 리라와 시엔이 언제 풀렸느냐는 듯 잔뜩 긴장하는 것이 보였다.

“네, 네, 아가씨.”

“저희 듣고 있을게요. 어떤 말이라도 괜찮으니 편히 해주세요.”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으니 이제는 내 말을 할 차례였다.

어쩌면 상대에게 부정적일 수 있는 말을, 그리고 내가 받았던 상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여전히 심장을 쿵쿵 뛰게 만드는 일이었다.

내 말로 인해 상대가 인상을 찌푸리고, 화를 내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들.

‘하지만 바뀔 거라고 했어.’

가브리엘의 목소리를 떠올리며 용기를 냈다.

“나는…… 외로웠어.”

이제는 차갑지 않은 리라의 슬픈 얼굴을, 죄책감으로 물든 시엔의 얼굴을 응시했다.

“어떤 이유가 있더라도요, 당신들은 말하지 않았고, 설명하지 않았어요.”

표정이 없었더라도 와서 말해줄 수 있었다.

“나는 몰랐잖아요. 모두가 나를 미워하고 싫어하는 줄 알았잖아요. 왜냐하면 내게 다정하게 웃어주고 말을 걸어주는 건 로제밖에 없었으니까…….”

당신을 꺼려하고 어려워하기 때문에 이러는 것이 아니라고.

내가 말을 걸면 깜짝 놀라 흠칫하거나, 접시를 깨고, 넘어지곤 했던 것이 사실은 관심이었다고.

말 한마디만 전해졌어도 달라질 수 있었을 것이다.

내 경직된 얼굴과 표정 때문에 그들이 싫어한다고 여기며, 한 번씩이라도 말을 걸기 위해 했던 노력들을 떠올리면 더욱 그랬다.

그때마다 얼마나 긴장하고, 또 소통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며 뒤돌아설 때 가슴은 몇 갈래로 조각나곤 했었으니까.

그것이 모두 사실은 어긋난 순간이었다고 하더라도.

“그건 정말 다시 생각해도 잘못한 거였어.”

“네, 맞아요. 정말, 맞아요.”

“단순히 착각이었다고, 내가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이라고 넘어갈 순 없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그럼요, 너무 잘 알아요…….”

마구 고개를 끄덕이는 리라와 시엔이 내 손을 꾹 잡았다.

“그래도.”

나는 조용히 웃었다.

“도망은 가지 않을게. 나도 숨거나, 못 본 척하지 않고 바로 물을게요.”

“……아가, 아가씨.”

멍해진 둘의 얼굴을 보며 다짐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이제부터 잘 지내보자, 그렇게 말하기에는 나도 내 성격을 잘 알았다.

하지만 이전과 같이 제자리에 멈춰, 차가운 무표정으로 겁먹은 감정을 숨기는 힐데아 폰 힐링턴이 되기는 싫었다.

내가 먼저 다가가면 변화하는 것이 많지 않을까.

내 옆에는 언제나 당신 편이라고 말해주는 그 사람이 있을 테니까.

“그러니까 앞으로는 오해할 일 없게, 잘 해줘요.”

어째서인지 멍해진 리라가 감격한 것 같은 음성으로 말했다.

“아가씨…….”

“응.”

“미소를 되찾으셨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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