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화. 나는 힐링턴입니다 (1)
가브리엘은 잘생겼다.
정말 잘생겼다.
그것은 그가 남자주인공이거나 내가 그를 좋아해서 콩깍지가 씌었기 때문이 아니라 객관적인 사실이었다.
‘얼굴에서 빛이 나는 것 같아.’
게다가 그런 남자가 그린 듯이 우아한 미소까지 짓고 있으면?
연회에 맞춰 머리부터 발끝까지 작정하고 치장한 상태라면?
‘아, 내 심장.’
내가 그를 보고 있듯 가브리엘의 시선 또한 내게 향했다.
정확히는 목에 착용하고 있는 화려한 목걸이를 뚫어지게 응시했다.
“힐, 그것은…….”
나는 수줍게 웃었다.
그가 단박에 목걸이에 대해 언급할 것이라 예상하긴 했었으니까.
이건 그가 내게 주었던 그 목걸이였다.
그때는 이것을 주변의 재촉에 따라 씁쓸한 마음으로 착용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내 욕심이었다.
이 목걸이는 그가 내게 선물한 것이라고 당당히 표현하고 싶었다.
더는 숨지 않고.
더는 피하지 않고.
“이 목걸이, 제대로 착용하고 싶었어요. 괜찮을까요?”
“그 목걸이가 무슨 뜻인지…….”
“알아요. 아니까…….”
이 목걸이의 중앙에 박힌 붉은 보석이 누구의 눈동자를 뜻하는 것인지 알고 있으니까.
“아니까, 걸고 싶어요.”
연회에는 가브리엘과 나만 참석할 예정이고, 더는 다른 누군가에게 향하는 마음이라 착각할 일이 없었다.
이건 즉 우리의 입장을 지켜볼 귀족들에게 직접 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힐링턴과 벨키우스가 건재함을.
또한 두 가문 사이에 약혼이 예상대로 진행될 것임을.
‘그와 내가.’
내 물음에 가브리엘의 얼굴 위로 더욱 녹을 것 같은 미소가 떠올랐다.
“얼마든지.”
아아, 심장 속에 작은 나비가 날갯짓하는지도.
그렇지 않고서야 가브리엘의 미소를 봤다고 이렇게 가슴 속이 간지러울 수가 없잖아.
“얼마든지 걸어주세요, 힐.”
어쩌면 그의 입술이 떨린 것도 같았다.
“그것이 곧 제 기쁨일 테니.”
손을 내미는 그에게 나는 치맛자락을 움켜쥔 채 다가갔다.
그와 함께 무도회에 오르는 것이 이 생에 처음인 것처럼, 환희와 떨림을 담아 그의 손 위에 내 손가락을 올렸다.
“가실까요, 힐.”
“그래요, 가브리엘.”
웃음은 전염되는 것이다.
그의 미소를 흡수하듯 따라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가브리엘. 우리 함께 싸우러 가요.
당신과 함께라면 적이 누구든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 * *
연회홀에는 은은한 음악과 함께 참여한 사람들의 긴장이 섞여 흘렀다.
과연 벨키우스와 힐링턴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 것인가?
황녀의 주최에 따라 황제파 귀족은 대부분 이 연회에 참석해 있었다.
그들이 해야 할 일은 앞으로 힐링턴과 벨키우스가 어떤 식으로 나아갈지 파악할 것.
또한 황궁이 축언 도둑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으니, 벨키우스와 힐링턴을 비난하고 적극적으로 종용하여 나서도록 만들 것.
힐링턴에서는 첫째인 힐데아가 참석한다고 통보해온 상태이니 그들의 목표는 정확했다.
쇠로 찔러도 멀쩡할 것 같은 영웅, 벨키우스 공작이 아니라 음침하고 우울해 보였던 그 여자, 힐데아 폰 힐링턴.
‘그 여자의 약점을 찔러야 해.’
두 달 만에 복귀한다고 하지만 사람은 크게 변하지 않는 법.
‘그리고 두 가문이 적극적으로 움직이게 만든다. 그게 황제 폐하의 뜻.’
힐데아 폰 힐링턴은 힐링턴 공작가의 딸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도도하고 냉정한 낯짝과는 달리 직접적으로 누군가를 공격한 적은 없었으니까.
‘그런 면에선 그 여자는 충분히 만만하단 말이지. ……은근히 무섭긴 하지만.’
황녀와 황제파를 위해 얼마든지 나설 준비가 되어 있는 영애들은 속으로 의지를 다지고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가브리엘 폰 벨키우스 공작 각하, 힐데아 폰 힐링턴 영애 입장하십니다!”
기다리던 순간이었다.
곧 싸늘한 침묵이 감돌았다.
사냥감을 노리는 매와 같은 시선들이 연회장에 들어선 한 쌍의 남녀를 향해 쏟아졌으니까.
“…….”
“…….”
그리고 모두의 표정이 동시에 미묘해졌다.
‘뭔가.’
‘……다른 것 같은데?’
그들이 가장 먼저 주목한 것은 여자의 목덜미에 걸려 있는 화려한 목걸이였다.
귀족들에게 익숙한 것이기도 했다.
그때 로제리엘과 힐데아가 착용한 저 목걸이 때문에 입방아에 오르내렸으니까.
‘그런데 로제리엘 영애가 없는 자리에서 가브리엘 공작과 함께 입장하며 저 목걸이를 하고 나왔다는 것은?’
몇몇의 얼굴이 불쾌하다는 빛을 숨기지 못하고 창백해졌다.
삐걱거리는 것 같았던 두 가문이 다시 혼담으로 묶이는 것인가?
그러면 힐링턴의 첫째가 동생을 질투해 수도에서 도망쳤다는 소문은 완전한 헛소문이란 말인가?
귀족들은 이 연회의 주최자, 황녀를 힐끗거렸다.
그녀가 움직여야 자신들도 발을 맞출 수 있었기 때문에.
그런데 황녀는 기묘한 웃음을 지을 뿐, 입장한 한 쌍의 남녀를 향해 움직이지 않았다.
기이한 대치가 이어졌다.
바로 그 순간, 제 파트너와 대화를 나누고 있던 벨키우스 공작이 크게 말하는 소리가 똑똑히 들렸다.
“항상 곁에 있겠습니다.”
그건 분명 힐링턴 영애를 향한 말이었다.
동시에 주변에 대한 경고이기도 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상대의 반응이었다.
“아니에요. 그렇게 보호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힐링턴 영애는 그 말에 뺨을 살짝 붉히며 작게 중얼거린 것이다.
뺨을 붉히며!
‘저게 대체?
‘지금…….’
다들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저 분위기는 뭐지?
저 두 사람이 언제 저런 분위기였지?
하지만 둘의 대화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었다.
가브리엘이 힐데아의 손을 잡았다. 그 과정이 무척 익숙해 보였다.
보라색 눈이 오로지 제 파트너만 집중하며 이글거렸다.
“아니요, 힐. 제가 불안해서 그러는 겁니다.”
“……하지만, 가브리엘. 그리 넓지도 않은 연회장에서 이렇게 붙어 있을 필요가 있을까요?”
“제가 당신과 멀리 떨어지면 외로워서 죽을 것 같으니까요.”
이제 모두 보았다.
확연히 붉어지는 힐링턴 영애의 낯선 얼굴을.
“……으, 왜 또 그런 소리를 해요. 놀리는 거예요?”
“아니요, 제가 감히 어떻게 당신을 놀리겠습니까. 그냥, 저를 봐주세요. 힐. 왜 시선을 돌리십니까?”
헉. 저게 뭐야.
저건 꼭 애절한 연인 사이에 나눌 법한 대화이지 않은가?
“다들 보고 있잖아요…….”
“보라고 그러는 겁니다.”
제일 경악스러운 것은 저 녹아내릴 듯한 말을 하는 주체가 바로 그, 가브리엘 폰 벨키우스 공작이라는 것이었다!
누가 다가가도 싸늘하고 무표정한 눈빛이 얼마나 살 떨리는지, 감히 말도 제대로 붙이지 못한 이 제국의 최고 미남자.
그런 남자가 소설 속에 나오는 주인공이 할 법한 대사를 줄줄 읊는다고?
그것도 저 재수 없는 힐데아 폰 힐링턴을 향해서?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야!’
그러나 지켜보던 영애들이 현실 부정을 할 틈도 없이, 가브리엘의 말이 유려하게 이어졌다.
힐데아를 향한 열렬한 시선과 함께.
“혹시라도 당신께 무례하게 구는 것들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면.”
힐끗 주변을 돌아보는 그 보라색 눈동자가 가히 미친 자의 그것 같았다.
그와 시선이 마주친 귀족들이 어깨를 흠칫 떨었을 정도로 살기등등했다.
“제가 돌아버리지 않을까요.”
다시 한번 귀족들이 헉, 하고 숨을 내쉬었다.
그 힐데아 폰 힐링턴이…… 웃었다.
무척이나 수줍은 듯, 제 파트너를 향해 사랑스럽게 느껴질 정도의 미소를 은은하게 머금었다.
그 광경에 다들 돌이 되었다.
‘저 여자가 웃었다고?’
힐링턴의 첫째, <정해진 운명이 없다>라는 기이하고 불길한 축언을 타고난 우울하고 냉정한 여자.
힐데아가 동생인 로제리엘과 비교되었던 가장 큰 이유는 그녀가 시종일관 싸늘한 무표정을 고수했다는 점이었다.
그 시선 앞에 서면 움츠러들고, 열등감이 치솟으며, 이렇게까지 사람을 무시할 수 있느냐는 분노가 샘솟았으니까.
그랬는데…….
“예쁘…….”
저도 모르게 말을 흘렸던 어떤 귀족 영식을 향해, 살벌한 시선이 내리꽂혔다.
“헉.”
“…….”
넓은 등으로 힐데아에게 향하는 시선을 은근히 가린 전쟁 영웅은 얼빠진 감탄을 내뱉었던 영식을 숫제 잡아먹을 듯이 노려봤다.
그리고 바짝 굳어버린 영식을 보며 만족스럽게 입술을 비튼 뒤, 고개를 살짝 숙여 벌겋게 물들어 있는 힐링턴 영애의 귓가에 속삭였다.
작은 소리였지만 무슨 말을 한 것인지 주변에 똑똑히 들렸다.
“당신을 품에 안고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하게 할 수 없으니, 절대 멀리 떨어지지 않을 겁니다. 말리셔도 소용없습니다.”
귀족들의 귀에는 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다들 생각했다.
그 냉랭했던 힐링턴의 첫째와 벨키우스 공작이 풍기는 이 야릇한 분위기라니.
아니, 이게 대체,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 * *
들어서자마자 꽂히는 시선을 느끼면서 나는 귀족들의 얼굴을 살폈다.
밤낮없이 외웠던 신상 정보는 여전히 머리에 박혀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들이 대부분 황제파의 귀족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저 멀리 황녀의 모습도 보였다.
‘하아.’
긴장으로 손에 힘이 들어갔다.
주최자인 황녀에게 인사하기 위해 다가가기 전, 건너야 할 산들이 많아 보였다.
‘축언 도둑 사건 때문에 황제파 귀족들의 몸이 달아 있구나.’
벨키우스와 힐링턴이 제대로 나서지 않는 바람에 머리끝까지 초조해진 상태라는 것은 가브리엘로에게 들었다.
‘저들은 힐링턴과 벨키우스의 약점을 잡기 위해 약해 보이는 날 공격할 테고.’
적의가 가득 서린 시선을 느끼면서 허리에 꼿꼿하게 힘을 주었다.
쉽게 되진 않을 것이다.
아마 평소라면 이 상태 그대로 긴장해서 예전처럼 어떤 표정도 그릴 수 없게 되었었겠지만.
“긴장되십니까?”
내 옆에는 가브리엘이 있었다.
“……조금요.”
“이런, 제가 있는데도 말입니까?”
선명하고 그윽한 미소가 퍼지는 그 얼굴에 내게 꽂혔던 시선이 가브리엘에게 옮겨가는 것이 느껴졌다.
“제가 곁에 있겠습니다.”
아마 대부분 젊은 영애들의 시선일 것이다.
‘그래. 저렇게 반짝거리니까.’
실제로 감탄 어린 소리가 들려와 기분이 조금 나빠졌다.
아닌데. 이 사람은 내게만 이렇게 웃어주는데.
다른 사람도 저 미소를 보는 게 꽤 기분이 나빴…….
‘아.’
나는 입술을 꼭 깨물었다.
이 유치한 독점욕은 대체 뭐람.
어쨌든 그 뒤에도 그와 부끄러울 정도로 살가운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또각거리는 구두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우리 쪽으로 향하는 그 소리에 고개를 들어 올렸다가 적의 가득한 시선과 똑바로 마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