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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내 여동생을 사랑했다-149화 (149/155)

149화. 탐욕의 끝에는 (2)

‘아.’

깜빡 잠이 들었던 모양이었다.

뺨에 닿는 온기에 깜짝 놀라 눈을 떴더니, 부드럽게 바라보고 있는 잘생긴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주무셨습니까?”

“으, 언제 왔어요, 가브리엘?”

습관적으로 그를 따라 웃던 나는 활짝 열려 있는 감옥의 문을 심란하게 바라봤다.

아니, 이래서는 감옥에 갇힌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하고……?

나 지금 수감된 주제에 너무 당당한 상황인 거 아닌가.

따끈따끈하게 열이 올라오는 이불을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잠이 솔솔 오긴 했다.

“가브리엘, 봐봐요. 이 모습이 황후의 귀에 들어가면 곤란해지지 않을까요? 나 지금 너무 호화롭게 있는 것 같아요.”

그러나 자신만만한 내 연인은 코웃음을 쳤다.

“힐링턴도, 그리고 저도 그렇게 일을 허술하게 처리하진 않습니다. 그러니 자신 있게 지금을 즐기세요.”

“그래도요. 자신 있을 만한 상황은 아닌 것 같은데…….”

“당신은 죄가 없습니다.”

나는 피식하고 웃었다.

분명 그렇겠지.

아마 이곳에서 크게 노래를 부르고 깔깔 웃음을 터뜨려도 황후의 귀에는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내가 고생하고 있고 공포에 질려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식의 이야기만 전달이 되고 있지 않을까.

“아빠와 로제가 많이 속상해하더라고요.”

나는 두툼하게 쌓여 있는 이불 위에서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걱정이 되는지 이걸 다 주고 갔더라고요. 어휴, 더 집어넣으려는 것을 겨우 말렸어요.”

전생의 전기장판을 떠올리게 하는 것의 열기 덕분에 꾸벅거리다가 제대로 잠들어버렸잖아.

나는 힐끗 주변을 살폈다. 역시 쓸데없는 물건들이 너무 많았다.

가브리엘이 다가와 내 손을 꼭 잡으며 안심하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툴툴거리기까지 했다.

“당신의 동생분이 어찌나 행동이 재빠른지, 제가 챙기려고 한 것을 선수 쳤습니다. 더 챙겨드릴 수 있었는데 분하군요.”

아, 정말. 이 남자가…….

나는 괜히 빨개지는 얼굴을 숨기려 마른세수를 했다.

그리고 은근슬쩍 말을 돌렸다.

“저기, 간수들도 우리 쪽 사람이에요? 아니면 바꿔치기를 한 건가요?”

“네, 후자. 황후는 모를 테지만 그렇습니다.”

그러니 이곳에서 하는 이야기 모두 흘러나갈 걱정이 없다는 뜻이리라.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를 보니 그냥 좋아서 웃음이 나오는데, 문득 가브리엘의 얼굴이 문뜩 차가워졌다.

“아, 그리고 알려드릴 일이 있습니다.”

“응? 뭐예요?”

목소리만 들어도 기분이 좋아지는데 어쩌지.

들뜬 내 마음을 모르는 그는 당장 누굴 물어버리고 싶다는 듯 사납게 눈을 번뜩였다.

“황후가 정녕 미친 모양입니다. 재판을 사형장에서 하겠다더군요. 날짜는 이틀 뒤.”

아, 이런.

나는 내 죽을 날짜가 나온 상황에도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날 죽이겠다는 거군요.”

“절대, 그렇게 되지 않을 겁니다.”

냉혹한 목소리에는 황후에 대한 살기마저 섞여 있는 기분이라 나는 맞잡은 손에 힘을 꽉 주었다.

“알아요. 시간을 벌려고 내가 여기에 순순히 들어왔잖아요.”

괜찮아요, 그렇게 달래듯이 바라보자 다시 가브리엘의 눈은 평소의 잘 알고 있는 온화한 빛으로 되돌아왔다.

“그래도……. 다 제 뜻대로 되고 있다는 오만한 눈빛을 보면, 사흘 전에 먹은 음식까지 체할 것 같은 기분입니다.”

나는 그의 찡그린 미간이 마음에 들지 않아 살짝 손가락 끝으로 문질러주었다.

부드럽고 뜨거운 시선이 맞닿았다.

음, 아무리 그래도 여기서 입맞춤하는 건 좀 그렇겠지.

나는 괜스레 심란하게 만드는 그의 붉은 입술에서 시선을 떼었다. 손가락이 꼼지락거렸다.

다음에는 꼭 내가 먼저 키스해봐야지. 그렇게 생각하며.

“황후가 여러모로 급한 모양이에요. 바로 처형장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니 제대로 된 재판이 이루어질 것 같지도 않고요.”

“네, 불쾌한 일입니다.”

“힐링턴과 벨키우스를 완전히 내리누르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니, 다행인 것이겠지만요.”

“흥.”

아무리 급해도 공작가의 영애를 그런 식으로 처리하면 두고두고 오점으로 남을 텐데, 그런 것도 보이지 않을 만큼 권력에 눈이 멀어버린 것일까?

아니지. 황후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지.

나는 원작에서의 가브리엘의 운명을 떠올리며 괜스레 입이 씁쓸해져 왔다.

벨키우스 참변의 범인.

그것은 바로 황후였으니까.

이틀 뒤엔 많은 것이 바뀌게 될 것이다. 가브리엘의 마음속에 남은 응어리까지도.

“그런데, 힐.”

“네?”

가브리엘이 갑자기 엄청나게 정색했기 때문에 나도 같이 심각해졌다.

그런데 내뱉는 내용이라는 것이.

“지금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제대로 식사하지 않으셨다고 들었는데.”

“아…….”

고작 내 식사였어?

하지만 가브리엘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언제 챙겨왔는지 모를 나무 바구니를 열었다.

그리고.

“자, 아 하세요.”

그가 손에 든 것은 두툼한 샌드위치 한 조각이었다.

“가, 가브리엘?”

“어서요.”

“그…….”

“아.”

입가에 대어주는 손길이 상냥했고, 슬쩍 짓는 수줍은 미소가 다정해서 나도 모르게 입을 벌려 받아먹었다.

가슴 속이 몽글몽글 따뜻한 것으로 가득 차는 것 같아.

으으, 간지럽고.

자꾸 웃음이 나와서 샌드위치 맛이 어떤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입에 맞으십니까?”

“응, 맛, 맛있어요.”

“…….”

“…….”

우리 둘은 얼굴이 빨개진 것을 서로 의식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가브리엘은 헛기침하며 다시 황후에 대한 설명을 이었다.

“억지로 차지한 권력입니다. 오래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본인도 알 터이니,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무슨 짓이라도 할 겁니다.”

“로제가 전해준 이야기 중에 황태자가 실종되었다는 것도 있던데, 황후의 반응은 어떻던가요?”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그렇게 우리를 함정에 빠뜨리고 도망쳤던 황태자와 크라이스 아니었던가.

그런데 한 사람은 돌아오고, 한사람은 돌아오지 못했다니.

‘어쩐지 미심쩍어. 이상하잖아.’

이번에는 가브리엘이 내 구겨진 미간을 손가락으로 살살 문질렀다. 간지러워서 웃음이 나왔다.

원래라면 굉장히 무서워 떨고 있을 상황이었는데, 하나도 두렵지 않은 것이 이상하고 기묘했다.

다 이 사람 덕분이야.

가브리엘. 나의 리엘.

그의 손끝이 간지럽히듯 내 뺨을 스쳐 내려갔다.

이제 그가 내 얼굴을 덧그리거나, 내가 손을 뻗어 그를 매만지는 것 정도는 우리에게 아무렇지 않은 접촉이 되었다.

“힐, 황후는…….”

그 친근함을 자각할 때마다 숨이 떨린다는 걸 그는 알까?

“처음에는 충격을 받은 듯했으나.”

가브리엘이 픽 조소했다.

“그것도 잠시였습니다.”

“그럼요?”

“슬픔의 흔적도 없었습니다. 지금 상황을 보니 본인이 황제의 자리를 노리는 것 같습니다.”

나는 잠시 눈을 크게 떴다.

“그건 좀……. 황태자가 불쌍하네요.”

그래도 황후가 자기 아들에게는 크게 집착하며 품에 끼고 놓지 않으려 든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일까.

어쩐지 집착으로 일그러져 비틀린 말만 내뱉었던 황태자 벤자민의 얼굴이 떠올랐다.

하지만 가브리엘은 그런 내 반응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혀를 찼다.

그리고 내 뺨을 살짝 꼬집었다.

“그자를 동정하지 마세요, 힐. 마음 쓰지도 마시고. 황태자가 당신에게 무슨 짓을 하려 했는지 잊으셨습니까? 아무 일 없이 무사히 넘어가서 아무렇지 않게 여기시는 듯하지만, 황태자는 잔인합니다. 오만하고. 독선적인 작자입니다.”

“마음 쓰지 않았어요. 그냥.”

“그냥은 없습니다. 담지도, 떠올리지도 마세요. 감히 그 입으로 사랑이라고 지껄일 때 얼마나 찢어 죽이고 싶었는지……. 모르실 겁니다.”

나는 하염없이 눈앞의 가브리엘을 봤다.

“리엘.”

그는 꼭 불안한 사람처럼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 모습에 손끝이 저릿했다.

이제 내 마음은 오로지 당신을 위해 대부분 쓰이고 있다는 것을 아직도 모르는 것 같아서.

‘사랑한다고 했는데.’

이미 고백했는데.

“나요, 요즘 대부분은 당신 생각을 해요.”

“…….”

“사랑하면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여기 감옥에 있는 것도 아무렇지 않았는데도, 당신을 보니까 너무 좋았어요.”

“……진짜, 힐. 절 죽이시려고.”

바보 아닌가.

그런데 왜 이렇게 귀엽지.

아무래도 안 되겠다. 슬금슬금 손이 뻗어나갔다.

“그러니까 리엘, 우리…….”

한번 닿고 나니 그와 얽히는 온기가 얼마나 좋은지, 얼마나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는지 알아버려서.

아주 살짝 뽀뽀만.

방긋 웃으면서 다가가려고 하는데 갑자기 가브리엘이 탄식에 가까운 숨을 내쉬었다.

뭐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바라보는데, 그는 정말 죽을 것 같은 표정으로 양 손을 뻗어 내 어깨를 부드럽게 감쌌다.

그리고 이마와 이마를 맞대었다.

“애타는 건 접니다. 하지만 힐. 지금은…… 당장 만나볼 사람이 있습니다.”

만나볼 사람이라니?

“가브리엘,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상황이 급히 돌아가다 보니 제대로 설명할 수가 없었습니다.”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아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나는 그때야 이곳으로 다가오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누구?’

뚜벅, 뚜벅.

기척을 숨기지 않는 발걸음 소리가 무척이나 고요하고, 또한 단정했다.

그때였다. 아주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아. 그래, 나는 저렇게 걷는 사람을 안다.

‘설마…….’

떨리는 시선으로 바라보는데, 깊게 후드를 쓰고 있던 자가 어느새 내 앞에 다가왔다.

그리고 그 인영은 천천히 후드를 벗으며 나와 시선을 마주쳤다.

일순간 숨을 쉬는 것을 잊어버렸다. 생각하지 못했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오랜만입니다, 힐데아.”

다정하고 부드러운 목소리. 조심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나 이제는 되돌릴 수 없는 사이였다.

‘당신이 왜 여기에?’

나는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아 가브리엘을 한 번, 그리고 그 사람을 한 번 바라보며 손을 떨었다.

그리고 그가 말했다.

“잠시……. 제게 시간을 내주실 수 있겠습니까?”

하. 한숨이 흘렀다.

나는 언제나 슬퍼 보이는 그 물기 어린 시선을 너무 잘 알았다.

너무나 잘.

* * *

그리고 이틀의 시간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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