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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내 여동생을 사랑했다-151화 (151/155)

151화. 사형대에 오르다 (2)

“뭐라?”

황후의 번뜩이는 시선이 그리 말하는 것 같았다.

내가 당장 네 가족을 죽이면 어찌하려고 그딴 소리를 해?

나는 조용히 미소했다.

그러자 황후의 표정이 더욱 비틀리는 것이 똑똑히 보였다.

“왜냐하면 황후께선 저의 죄를 이야기하시면서도 어떤 증거도 내밀지 않으셨으니까요. 그건 부당합니다.”

“하, 부당?”

“네, 옳지 않습니다.”

멈칫했던 황후가 짐짓 웃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미소를 찾았다.

“그래요, 어디……. 발언할 기회를 주도록 하지요. 뭐든 말해봐요. 설마 당신이 이 모든 것과 관계가 없다고 말할 생각이라면 생각을 잘…….”

“네. 저는 결백을 주장합니다.”

황후는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을 했다. 네가 지금 가족의 목숨을 두고 그런 말을 한다고? 딱 그런 표정이었다.

못 믿겠다면 다시 말해주면 그만이지.

“저는 결백합니다, 황후 폐하.”

침을 삼키는 소리조차 투명하게 들릴 듯 재판장에는 고요한 침묵이 가득했다.

황후의 눈에는 이제 살기까지 넘실거렸다.

당장 저 위에서 내려와 내 목을 조를 것 같은 시선이다.

나는 제자리에서 침묵하고 있는 귀족 모두를 눈에 담았다.

그들은 양심에 찔린 듯 대부분 내 시선을 피했다.

난 싱긋 웃으며 다시 황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황후 폐하께서 언급하신 죄목 중 저는 그 어떤 것에도 해당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결백하지요.”

어느 한순간도 위축될 순 없었다.

“제 손에는 누구의 피도 묻은 적이 없으니까요. 저는 범인이 아닙니다. 이를 증명할 수도 있습니다. 황후 폐하께서 제게 그럴 기회만 주신다면 말이에요. 겁나지 않으신다면 그 기회를 주실 거라 믿습니다.”

황후가 테이블을 쾅 쳤다.

“하! 겁? 내가 겁이 난다고 하였나요? 힐데아 폰 힐링턴! 그대는 자신의 위치를 기억하고, 말을 내뱉기 전에 생각이라는 것을…….”

내 가족의 목숨을 쥐고 협박할 생각이면 틀렸어, 황후.

내 가족들도, 내 주변 사람들도 모두 그렇게 약한 사람들이 아니거든.

‘축언과 이능이 사라진다고? 겁나지 않아!’

로제는 그렇게 말했다.

‘언니가 살려줄 거잖아. 살아 있기만 하면 되지! 히히.’

그렇게 말해준 로제와 지지해준 가족들, 그리고 내 사람을 위해서라도.

나는 눈에 힘을 주었다.

“황후 폐하께서 두려운 것이 없다면 제가 제 결백을 증명해 보일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실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은가요?”

황후, 당신은 지금 벨키우스와 힐링턴 둘 중 누구도 죽으라고 할 수 없어.

귀족들 모두를 다 죽이고 황제의 자리를 차지해봐야 시체들의 왕밖에 더 되겠어?

조롱의 뜻을 담으며 노려보자 짐짓 자비로운 척하고 있던 황후의 가면이 홀딱 벗겨졌다.

“감히 뚫린 입으로 그딴 소리를!”

“왜 못하죠? 저는 축언 도둑 사건의 범인이 아니고, 황태자를 시해하지도 않았습니다.”

나는 당당해.

“가만히 죽어드릴 순 없으니.”

나는 힐링턴이고 앞으로는 벨키우스의 이름도 나눠가질 사람이니.

“황후 폐하께서는 이런 무례하고 모욕적인 방법으로 저를 처형하실 수 없습니다.”

나는 가브리엘에게 눈짓을 던졌다. 그는 속이 시커멓게 상한 사람처럼 속상한 표정을 했지만, 곧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준비했던 대로.

감옥에 갇힌 죄인답지 않게 촘촘히 장식되어 있던 헤어핀을 하나 빼어들었다.

눈이 마주친 황후가 억, 소리를 내며 구를 듯 내려오려는 것이 보였다.

그러나 내 행동이 빨랐다.

푸욱!

“꺄악, 지금!”

“피가!”

지켜보던 이들이 비명을 질렀고, 황후의 명령에 따라 나를 에워싸고 있던 황궁 기사들이 검을 뽑으며 경계했다.

하지만 뭐 어쩌라고.

헤어핀의 날카로운 끝은 이미 내 손바닥을 그었는데.

피가 뚝뚝 떨어졌다.

“……지금 이게 무슨 수작이지, 힐데아 폰 힐링턴.”

황후의 가라앉은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최대한 해사하게 웃으려 노력했다.

입꼬리를 끌어당기고 활짝.

“증명입니다, 황후 폐하.”

그리고 눈앞을 희게 물들이는 빛무리. 내 이능이었다.

빠르게 회복되어가는 상처로 인해 웅성거리던 사람들의 입이 조개처럼 딱 다물렸다.

침묵 속에서 나는 멀끔해진 내 손을 흔들며 치켜들었다.

“축언 도둑 사건의 범인이라고 하셨지요. 그 이능은 이능과 축언을 없애고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인데, 제 이능은 오히려 치유의 이능입니다.”

천천히, 느리게 내 시선이 황후에게서 벗어나 차가운 얼굴로 내 쪽을 내려다보고 있는 최고 신관 크라이스에게 향했다.

아니, 차가운 얼굴이 아니라 무서운 순간을 마주한 사람처럼 얼어붙은 얼굴을.

“상반된 이능은 한 몸에 있을 수 없지요, 이것은 이능과 축언에 대해 가장 잘 알고 계신 저기 최고 신관님께 물어볼 수 있겠네요.”

“…….”

“그렇지 않은가요, 크라이스님? 치유와 죽음이 같은 사람의 몸에 있을 수 있을까요?”

“…….”

황후가 코웃음을 쳤다.

“하!”

크라이스가 자신의 사람인 것을 확신하기 때문에.

그래서 나를 두고 꼭 벼랑 끝에 내몰려서 살겠다고 썩은 지푸라기라도 잡은 자를 비웃듯 바라봤다.

그때였다.

“확실히.”

침묵하던 최고 신관이 입을 열었다.

“영애의 말이 맞습니다.”

황후의 얼굴이 돌처럼 굳었다.

“……뭐?”

그러나 크라이스는 그녀가 보이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

“상반된 이능은 한 사람의 몸에 자리할 수 없습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황후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재판장 위치에 있는 크라이스를 응시했다.

지금 최고 신관은 두 가지의 말을 했다.

하나는 내가 말한 발언이 맞다고 증명해준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나를 영애라고 부른 것이다.

죄인이나, 힐데아 폰 힐링턴이라 부르는 것이 아니라.

믿을 수 없다는 듯 흔들리는 황후의 표정을 보면서 나는 다시 손을 들어 올렸고 이번에는 힐링턴의 사람들이 나섰다.

“최고 신관께서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제 딸이 그 특별한 이능의 소유자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야겠군요. 오로지 치유의 이능만 가지고 그것을 행해왔던 것을 증명하면 간단한 일. 그렇지 않습니까?”

특히, 우리 아빠가.

황후가 분노에 찬 듯 주먹을 꽉 쥐며 부들부들 떨었다.

그리고 보란 듯이 품속에서 어떤 약병을 꺼내 손에 꽉 쥔 채 아빠를 노려봤다.

저 약병은 내가 벤자민을 놓치면서 얻지 못한 것이다.

황후는 이제 형식적인 재판 따위는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식이었다.

그런데도 아빠는, 웃었다.

“황후 폐하. 그것이 무엇이든 힐링턴 공작가의 입조차 막으실 순 없으실 겁니다. 지금 그것으로 절 공격하려 하십니까? 하십시오. 자랑할 만한 것은 아니나 제가 축언과 이능에만 매달려 살아오진 않았습니다.”

“공작, 감히!”

핏발 선 황후를 보며 아빠는 픽 비웃었다.

와아, 나는 귀족 사교계에서 모욕하러 다가온 상대를 쳐낼 때의 내 차가운 표정이 누구에게서 온 것인지 그때야 알 수 있었다.

음, 우리 아빠와 내 표정이 판박이구나.

“제 목숨은 그리 가볍지 않으며, 여태까지 양심의 가책을 느낄 만한 행동은 추호도 하지 않았습니다. 제 딸도 마찬가지입니다.”

“……공작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입니까?”

“이 자리에서 축언 도둑 사건의 범인이 누구인지 모르는 이가 있습니까? 황후께서 지금 손에 든 그 약병이 무엇인지 모르는 자가 있습니까?”

“…….”

아빠의 날카로운 시선이 귀족들에게 향했고, 그들은 더더욱 고개를 푹 숙였다.

“저는 축언과 이능을 없앤다는 협박에 두려워 입 다물고 딸아이를 눈에서 잃을 만큼 무능하지도 나약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니 그만 참도록 하지요. 제게 그것을 먹이려 하신다면 하십시오.”

“나는 이 제국의 황후……!”

“입. 그 입!”

아빠는 당장 그 입을 썰어버리고 싶은 것을 참고 있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은은한 기세를 내보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입 다물고 가만히 보십시오. 당신을 가만히 놔두는 이유가 그 빌어먹을 황후라는 자리에 대한 마지막 예의이니까!”

“……!”

그 가공할 무례에 말을 잃은 황후를 쏘아보며 선언했다.

“정당한 재판이라면 그것을 증명하기 위한 증인들도 있어야 하는 법. 데리고 와라.”

황후는 다급히 소리쳤다.

“웃기지 마라, 이곳에는 아무도 들어올 수 없어! 지금 그대가 감히 내 명을…….”

“예, 거부합니다. 준비한 증인을 데리고 오라! 당장 내 검에 목이 잘리고 싶다면, 황궁의 기사들 누구도 증인의 걸음을 막지 말아야 할 것이다.”

“허!”

황후는 지금 일어나고 있는 과정이 믿기지 않는 모양이었다.

잠시 휘청하는 모습이 보였지만, 누구도 그녀를 부축하지는 않았다.

황궁 기사들의 무력으로 누구도 들어오지 못하던 문이 활짝 열렸다.

감히 갇힌 적도 없다는 듯.

그리고 아빠의 손짓과 함께 아까부터 보이지 않았던 리라와 시엔이 당당한 모습으로 걸어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황궁의 기사들도 막지 못했다.

그리고 그들의 뒤에 있는 사람.

그와 눈이 마주쳤다.

‘……조세페.’

* * *

‘어휴, 무시무시하구만.’

조세페는 재판장의 끔찍한 분위기에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다 굳건히 허리를 펴고 서있는 은발의 여인, 힐데아와 눈이 마주쳤다.

미안하다는 듯한 시선에 조세페는 씨익 잇몸을 보이며 웃었다.

손까지 흔드는 여유를 선보였다.

‘그림자 경매 길드의 길드장이라고 들었네. 그대, 내 딸을 위해 증언을 해줄 수 있겠나?’

그 말을 무려 힐링턴 공작에게서 들었을 때, 끄악 하고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비천한 평민에 뒷골목에서 구르던 자신이 힐링턴 공작을 대면하게 된 것도 놀라운데.

힐링턴 공작의 부탁을 받다니!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제 은인이 힐링턴 공작의 딸이라는 게 그제야 머리부터 발끝까지 쫙 들어오는 기분이었다.

<길가의 잡초처럼 질기게 살아가리라>.

‘두려울 게 뭐가 있다고.’

조세페는 자신의 축언과 이능에 기대어 평생을 살아왔다.

그러다 식물에 기적 같은 이능을 부리는 치료사 힐을 만나 두둑한 돈도 만져봤다.

가뭄처럼 말라버렸던 의리가 생겨난 것도 그 치료사 힐 덕분이었다.

그래,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지. 그는 알겠다고 소리쳤고 그래서 지금 이 자리에 있다.

‘그렇게 돈을 벌었으면! 내 목숨 하나 걸고 저 아가씨의 명분은 되어주어야지.’

무려 황후의 앞에서 증언하기 위해서.

그는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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