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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내 여동생을 사랑했다-152화 (152/155)

152화. 사형대에 오르다 (3)

“제가 누구인지 이곳에 계신 귀족 여러분들은 대다수 알고 계실 겁니다요.”

조세페는 긴장한 적 없다는 듯 유들유들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그 음성을 들으며 새삼스럽게 신기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언제나 외로우리라 생각했던 나였는데, 이제는 나를 위해 목숨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나서주는 이가 있다는 생각에.

그것도 서로 거래 관계일 뿐이라 생각했던 조세페가.

“저는 그림자 경매 길드의 길드장입니다, 고귀하신 나으리들. 그리고 제가 주요하게 판매하고 있던 것이 하나 있는데, 다들 아실 것이라 생각됩니다요.”

치료사 힐의 식물.

그들이 어떻게든 쓸어 담으려 했던 그것이 그림자 길드장에 의해 판매되고 있었다는 것을 이제 모르는 자가 없다.

황후의 얼굴이 하얗게 경직되고, 귀족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으며, 가브리엘은 조용히 웃었다.

“예이, 저는 치료사 힐의 식물을 전담해서 판매했습니다. 다들 아실 테지요. 치료사 힐의 식물이 축언 도둑 사건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요! 그런데.”

조세페는 나를 가리켰다.

“저기 저분, 힐데아 폰 힐링턴 영애는 저와 잘 아는 사이입니다. 몇 년이나 같이 거래한 사람이기 때문이지요. 제 둔한 머리로는 도통 왜 축언 도둑 사건의 범인으로  저분을 끌어다 놓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지만.”

귀족들의 믿을 수 없다는 듯한 시선이 내게 꽂혔다.

“축언 도둑에서 벗어나 살아날 수 있는 유일한 축언과 이능의 소유자를 사지로 내몰 생각이십니까요?”

“…….”

여기서 그가 왜 등장했는지, 그리고 내 능력이 왜 치유의 이능인지, 그것들을 머리 빠르게 계산했을 것이다.

그리고 조세페가 꼭 연설이라도 하는 것처럼, 극적으로 나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예, 힐데아 폰 힐링턴 영애께선 치료사 힐이십니다! 증거로 장부까지 내걸 수 있습니다요!”

황후가 드디어 크게 휘청거렸다.

“웃기지 마라. 천한 놈이 어디서 입을 함부로 놀리는 것이냐!”

그녀는 분노로 덜덜 떨고 있었다.

“천한 평민이면 내뱉는 말이 거짓이거나 증인으로서의 효력이 없는 것입니까요? 제 목을 걸고 장담합니다, 황후 폐하.”

조세페는 유들유들하게 웃었다.

사실 그는 매번 빌빌거리는 태도를 하고 있지만, 담력이 무척 셌다.

그렇지 않고서야 온갖 이들이 다 찾아오는 그림자 경매 길드를 그렇게 운영할 순 없었을 것이다.

“힐데아 영애는 바로 치료사 힐입지요. 그리고 축언 도둑 사건은 치료사 힐이 이곳에 거주하고 있지 않았을 때에도 꾸준히 나타났었습니다요. 그게 힐데아 영애와 축언 도둑 사건의 관련이 없다는 정확한 증거일 것입니다요!”

황후는 내가 치료사 힐이라는 것, 그걸 적어도 이 재판장에서 까발릴 생각은 없었을 것이다.

황후가 보기에 축언과 이능을 잃을 수 있다는 사실 하나에 위축되는 귀족들은 너무 이용하기 쉬운 패였고.

그러니 이 자리에서 당장 축언 도둑에게 당해도 목숨을 잃지 않을 방법이 생긴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을 발언하고 싶진 않았겠지.

역시나 내가 치료사 힐이라는 이야기를 하자마자, 귀족들의 분위기가 변했다.

황후는 내가 말할 기회조차 주지 않으려 했을 것이다.

원래대로라면.

그리고 난 황후에게 여유를 줄 생각이 없었다.

“아까 보신 치유의 이능. 볼품없고 저주 받았다고 소문이 났었던 힐링턴의 첫째의 이능은 치유랍니다.”

귀족들에게 들으라는 듯 입을 열었다.

“제가 치료사 힐입니다. 그러니 황후께서 어떤 방식을 쓰시든지, 저는 이곳에 있는 단 한 명의 사람도 죽게 하지 않을 겁니다.”

귀족들이 탄식하는 소리가 들렸다.

죽을 수 있다. 그것도 비참하게.

축언과 이능을 잃는 것은 무섭겠지. 그래도 살 수 있는 방책이 생긴 것이다.

그 이유 하나만으로 목줄 매인 개처럼 지켜보던 이들의 사이에 변화가 일어났다.

특히, 황후의 명령으로 꼼짝없이 나를 경계하며 검을 겨누어야 했던 황궁의 기사들이 가장 먼저.

그들은 기사도를 아는 이들이었고, 내가 무고하다는 것도 알았다.

“진실로, 영애께서 치료사 힐이십니까?”

기사들 중 누군가 물었다.

멍한 표정을 보니 자기도 모르게 내뱉은 질문인 듯했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아무도 죽지 않게, 해주신다고요?”

“네. 그럴 거예요.”

기사들은 칼에 찔린 듯 괴로운 눈빛을 무표정에 감추고 있었고, 때문에 가장 먼저 흔들렸다.

나는 그들에게 부드럽게 웃어주었다.

“아무도 죽지 않게 할게요.”

기사들이 다시금 움찔했다.

분위기를 보던 황후가 이를 갈며 소리쳤다.

“웃기지 마라! 한 놈이라도 살려둘 것 같으냐? 힐데아 폰 힐링턴! 가증스러운 계집, 네가 방해가 될 줄 알았지, 그래, 내가 네 목을 가장 먼저 쳤어야 했는데…….”

이제 대놓고 그런 발언을 하는 황후를 보며 나는 당황하지 않고 품에 넣어두었던 동그란 구슬을 꺼냈다.

“저야말로 묻고 싶습니다, 황후 폐하. 과연 이 자리에서 사람들에게 재판 받아야 할 사람이 과연 저인지, 아니면.”

구슬에 손가락을 얹자, 우웅하는 소리와 함께 희미하게 빛이 비추기 시작했다.

“황후 폐하이실지.”

그리고 그것이 확- 빛과 함께 뻗어나가 허공에 영상을 띄우기 시작했다.

“저, 저건?”

사람들의 눈이 커졌고, 로제는 뿌듯하게 코웃음을 쳤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이것은 마법 잡화 상점의 놀라운 발명품 중의 하나랍니다. 상점에서 허가받은 이들은 이것을 통해 상황과 소리를 눈에 보이는 것처럼 생생히 모두 담을 수 있지요.”

그리고 그 안에 황태자가 있었다.

정확히는 황태자에게 납치당한 나와 그런 내게 이죽거리는 황태자 벤자민, 그리고 병풍처럼 굳어있는 최고 신관 크라이스까지 있었다.

그들의 대화가 생생히 들렸다.

영상구에서 나온 영상은 이제 대놓고 격렬한 증언까지 내뱉고 있었다.

축언 도둑 사건의 범인이 누구인지. 황후가 무엇을 원하는지. 그리고 황태자와 크라이스가 무슨 짓을 한 것인지.

“저, 저게, 저게 대체…….”

“황후 폐하! 무슨 말씀이라도 해보십시오! 저게 사실이라면 황후 폐하께서는…….”

귀족들의 떨리는 시선이 황후에게, 그리고 재판장 위치에 서서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는 미청년에게 향했다.

그래, 최고 신관.

그까지 모두 범인이다.

“죄는 또 있지요, 황후 폐하.”

당황하고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여유만만하게 일어나 팔짱을 끼고, 부드럽게 말을 내뱉은 자에게 향했다.

가브리엘.

가브리엘 폰 벨키우스.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다들 알 겁니다. 벨키우스 사변이라고 불리는 참변이 언제 일어났는지. 혈족 모두가 죽어 이후 공작가를 찢어 먹고 싶어하는 자들의 온갖 반대와 반발을 이겨내고 12살의 어린 나이에 공작 작위에 올랐던 소년 같은 것 말입니다. 그래요, 내 이야기입니다.”

가브리엘이 걸었다.

뚜벅, 뚜벅 걷는 구두 소리가 유쾌하게 울렸다.

그 소리가 한 번씩 들릴 때마다 황후는 졸도하고 싶은 얼굴을 했지만.

나는 고요히 그만 눈에 담았다.

벼르고 벼르고 있었을 그의 복수의 시간을 조용히 응원했다.

마음껏 풀어버려요, 리엘. 하고 싶은 말 모두 해요.

“그리고 제게 증거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저기 당당히 서서 애먼 사람을 범인으로 잡고자 하는 고귀한 분이, 사실은 내 혈족을 모두 죽인 참담한 범인이라는 사실을 입증할 증거 말입니다.”

헉, 하고 누군가가 헛숨을 들이켰다.

그만큼 놀라운 사실이었을 것이다.

황후는 이제 숨 쉬는 방법조차 잊어버린 사람인 듯했다.

그러다 가브리엘이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떨리는 손으로 그 약병을 꽉 쥐었다.

그 병에 시선이 닿은 가브리엘의 눈이 어여쁘게도 환히 접혔다.

고작 그것으로 나를 죽이게?

그런 조롱으로.

“아직도 이해가 안 간단 말이지. 대체 왜, 왜 죽였을까? 고귀하신 황후 폐하께서 왜 벨키우스의 직계들을 모조리 죽였을까.”

“오, 오지 마라.”

“황제께서 벨키우스의 검을 얻는 것이 그리 무서우셨습니까? 왜요.”

“내게, 내게 가까이 오지 마!”

“아하. 당신의 아들이나, 당신과는 달리 내가 그렇게 뛰어난 이능과 축언을 타고나서? 그래서 나를 황제 폐하께서 욕심내셨기 때문에? 훗날 당신 아들이 가질 권력을 내가 나눠 가질까 봐? 그 줘도 안 먹을 권력을?”

“이 찢어 죽일 놈이 감히 내게, 이리로 오지 마! 네까짓 것, 그 축언과 이능이 없으면 사람 구실이나 할 것 같으냐?”

“그러면 어디 당당하신 황후 폐하께서 말해보시지요. 왜 죽였습니까. 내 가족들을, 혈족들을. 그리고 죄 없는 힐링턴 공작부인을!”

“뭐, 라고?”

“죄 없는 힐링턴 공작부인을 해치셨지 않습니까. 당신께서 사주한 자의 증언까지 있습니다. 사랑으로 완벽하리라는 힐링턴 공작의 이능을 해치려 하였다지요? 자, 황후 폐하. 이 자리에서 재판 받아야 하는 것이 누구일 것 같습니까? 저 처형대가 누굴 위해 준비된 것 같습니까?”

힐링턴 공작부인.

내 어머니.

나는 아빠를 살폈다. 로제 역시 걱정스럽다는 듯 아빠의 팔을 잡고 있었다.

하지만 아빠는 흔들리지 않았다. 무정하고 차가운 시선으로 황후를 응시했다.

내가 이 자리에 서기까지 이틀의 시간이 있었고, 우리는 그 이틀 동안 놀고먹은 것이 아니었다.

이 상황을 위해 모두가 터놓고 이야기를 할 때, 가브리엘은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벨키우스 사변을 일으킨 범인에 대해서.

그리고 조사해왔던 것들에 대해서.

마지막으로 힐링턴 공작부인을 죽인 자가 누구인지까지도.

‘역시, 그랬군.’

‘아, 아빠!’

아빠는 크게 충격을 받았다.

그간 황후의 행태를 보며 희미하게 짐작하였고, 황제와의 대화를 통해 확신하였으나, 그런데도 직접 들이밀어진 증거를 보는 것은 다른 마음이셨나 보다.

사용한 것은 독이라고 했다.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한 내 엄마, 대화 한 번 제대로 나누어보지 못한 그 사람은 그렇게 죽었다고.

내 축언과 이능 때문이 아니라, 권력에 눈먼 이의 질투 때문에.

황제의 가장 큰 힘이 되는 힐링턴을 해치려면 사랑으로 완벽하리라는 아빠의 이능을 건드려야 하니까.

고작 그것 때문에.

그때였다.

가만히 듣고만 있던 황후가 부들부들 떨더니, 발작적인 웃음을 터뜨리기 시작한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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