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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내 여동생을 사랑했다-153화 (153/155)

153화. 사형대에 오르다 (4)

“웃기는구나! 그래, 잘도 떠들었다만 그게 다 무슨 상관이지? 너희는 내 아들을 죽였고, 그러니 내가 이 제국을 가지기로 하였는데. 너희가 무어라 지껄이던 내 아들을 죽인 범인으로 만들 생각이다. 내가 누구를 죽였건, 무슨 짓을 했건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뜻이다!”

황후의 눈이 광기로 번들거렸다.

미친 사람처럼 웃으며 나를 노려보며 소리쳤다.

“이 자리에서 아무도 죽지 않게 하겠다고?”

황후의 시선이 귀족들에게로 옮겨갔다. 그 눈이 귀족들에게 선택을 종용하는 것 같았다.

“다들 잘 생각하는 게 좋을 거예요. 저 계집의 말대로 목숨은 구한다 치더라도, 축언과 이능을 잃고 그대들이 잘살 수 있을 것 같은가요?”

자신을 믿을 것인지, 아니면 목숨을 살려주겠다고 한 나를 믿을 것인지.

하지만 귀족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하!”

황후는 말 없는 귀족들을 향해 이를 갈다가 고개를 휙 돌려 나를 다시 노려봤다.

“잘난 척도 적당히 하거라, 힐데아 폰 힐링턴. 축언과 이능에도 등급이 있기 마련이고, 이 모든 것을 빼앗는 이능은 누구도 따라잡을 수 없는 가장 상위의 등급이다! 왜냐하면…….”

황후의 손끝이 누군가에게로 향했다.

의기양양한 목소리와 함께.

“잘났다는 너희들의 이능을 빼앗고 죽인 것이 바로 가장 고귀한 자라는 최고 신관의 축언과 이능이기 때문이지!”

모두의 시선이 가장 높은 곳에 서 있었던 최고 신관, 크라이스에게로 향했다.

그는 꼭 죽은 사람처럼 창백한 낯빛을 하고 있었는데, 동시에 나와 눈이 마주쳤다.

처음부터 나만 바라보고 있었던 것처럼.

크라이스가 손을 들어 올린 것은 그 순간이었다. 천천히, 느릿하게 뻗어 오르는 손을 따라 황후의 얼굴 위로 잔인한 희열이 떠올랐다.

그래. 다 죽여버려. 그렇게 말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도 아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

잔뜩 웅크렸던 귀족들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최고 신관을, 굳어버린 것 같은 황후를 번갈아 바라봤다.

“지금 아무 일도.”

“다친 사람 아무도 없지요?”

“뭐지, 황후의 말이 틀린 건가?”

모욕감에 부들부들 떨던 황후가 발작적으로 바닥을 발로 찼다. 그녀는 아직도 모르고 있었다.

내 주변에 있던 기사들이 완전히 의욕을 상실하고 검을 내려놨다는 것을. 주변의 귀족들의 눈빛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황후의 가까이에 서 있는 가브리엘의 차가운 시선 같은 것도.

오로지 황후의 관심은 한 사람에게만 향해 있었다.

“크라이스! 어찌하여!”

자신을 배신한 자에게.

“내 너에게 어떤 기회를 주었는데!”

황후의 그 말에 조각처럼 굳어있던 크라이스의 입이 열렸다.

“기회라 하셨습니까?”

그는 빙긋 웃었는데, 웃고 있는데도 웃는 것 같지 않았다.

얼음이 박힌 것 같은 음성이었다. 황후가 움찔 굳었고, 크라이스의 시선이 드디어 황후에게로 향했다.

“황후 폐하, 지금 그 입으로 제게 기회를 주셨다 했습니까. 사람이 뻔뻔한 것도 정도가 있어야 할 텐데, 황후께선 그런 것이 없으시더군요.”

“지, 지금 네가 감히……. 복수를 위해 손을 잡았던 것은 그대였어! 황족들을, 저 귀족들을 모조리 죽이고 제국을 망가뜨리겠다고 한 것이 누구였나! 축언과 이능을 빼앗는 힘을 가르쳐준 것이 누구였어!”

“네, 저였습니다.”

지켜보던 이들이 싸늘하게 굳는 것이 보였다.

“제가 그리하였지요. <너의 것처럼 다룰 수 있으리라>. 그것이 저의 축언이고 그를 통해 저는 모든 이들의 축언과 이능을 읽어내고 빼앗고 지우는 것이 가능했으니까요. 제국을 망가뜨리고 싶었습니다. 당신들이 내 소중한 모든 것을 빼앗았으니까.”

신전과 신관들이 황후의 권력 앞에 어쩔 수 없이 협력하는 것과, 최고 신관이 황태자의 말들처럼 정말 황후를 도와 사람들을 죽이고 축언 도둑 사건의 이능을 제공한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였으니까.

제국에서 최고 신관의 위상이라는 것이 그러했다.

“마, 말도 안 돼!”

“정말, 정말 최고 신관께서?”

그 믿음이 쩍 갈라진 순간이었으니 다들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그리고 나 또한.

처음 알게 되었을 때 그랬었다.

“그리고 많은 것들을 잊으셨던 모양입니다, 황후 폐하. 제 부모를, 가족들을 비명횡사하게 만든 것은 황제만 포함되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안쓰러운 마음으로 휘청거리지도 않고 꼿꼿하게 서 있는 크라이스를 보았다.

그가 황후를 향해 차갑게 속삭였다.

“제 복수의 대상에는 당신도 포함입니다, 황후 폐하. 당신도, 당신의 아들도, 모두.”

내가 감옥에 갇혔던 날.

가브리엘이 내게 찾아왔던 날.

그를 따라 들어왔던 후드를 쓴 인영은 바로 크라이스였다.

그는 죄책감에 찌든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며 고백했다.

‘저였습니다, 힐.’

‘크라이스?’

‘저는 오랫동안 복수를 위해 살아왔습니다. 손에 참 많은 피를 묻혔습니다.’

그는 조곤조곤 속삭였다.

그가 여태까지 해왔던 것.

황후를 위해 썼던 자신의 축언과 이능이 무엇인지.

그리고 끝의 끝에서 자신은 황후를 배신하기로 했다는 것도.

도대체 왜. 왜 이런 말들을 하느냐는 내 물음에 그는 물기어린 시선으로 나를 한참이나 바라봤다.

그리고 웃었다.

당신이 믿는다고 했으니까.

‘처음부터 황후도 버릴 생각이었습니다. 이런다고 해서 제 죄가 없어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더는 당신을 배신하고 싶지 않았어요, 힐. 더는, 당신을 속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크라이스의 눈은 지독하게 공허했다.

‘솔직해지고 싶었습니다. 당신에게 받았던 신뢰와 호의만큼.’

‘나는…….’

원작에 없는 인물이라 그의 동기와 과거를 전혀 짐작하지 못했다.

처음부터 고귀한 최고 신관은 없었다. 그는 귀족가의 아이였다고 했다.

그러나 어느 날, 황제와 황후의 권력 싸움으로 인해 벌어진 사건이 있었고 크라이스의 부모는 그 사건으로 인해 휘말려 역적이 되었다.

너무 손쉽게 가족들이 모두 죽었다.

그러나 책임지는 자도 없었다.

그래서 개처럼 살아남았다.

거지처럼 기어가 자신의 축언과 이능을 믿고 신전에 투신했다.

이름을 바꾸고, 과거를 버리고, 고작 십대 초반의 나이에 최고 신관이 되었다.

복수만을 생각하며 제국의 모든 것을 망치겠다고 다짐했다.

고위 귀족들도, 황제와 황후도, 그리고 황족들 모두를 자신의 이능으로 죽일 것이라 다짐했다.

‘저는 죄인입니다. 하지만.’

그는 울고 있었다.

‘이런 저도 다시 믿어주실 수 있겠습니까, 힐데아.’

그렇게 다정하게 속삭이던 목소리를 떠올리며 이를 악물었다.

그렇게 현재.

“처음부터, 처음부터 나를 배신할 생각이었단 뜻인가? 네가, 네가 나를? 내 개나 다름없었던 주제에 네가 감히 나를 배신한단 말이냐!”

“축언 도둑 사건. 그건 제 이능이지요. 당신의 이능이 아니라. 그런 제가 없다면 당신께서 저들을 제압할 수단이 있으시겠습니까? 검을 들고 싸우실 수 있으십니까? 아무것도 하실 수 없습니다. 당신의 위세는 모두 끝났습니다.”

황후는 정말 크라이스를 믿었던 모양이었다.

아니면, 그가 그런 행동을 할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만큼 크라이스를 무시했거나.

기르는 동물처럼 그의 인격과 생각을 고려하지도 않았던 것 같아 쓴물이 올라왔다.

크라이스의 말은 여전히 이어졌다.

“황후께선 항상 그 손에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다른 이들을 움직이셨습니다. 그러니 마지막 순간만큼은 스스로 책임도 의무도 지시는 게 좋겠군요.”

크라이스가 서늘하게 비웃었다.

“……네놈! 네놈은 나와 다를 것 같으냐? 네가 이능을 주었다. 내가 사용하게 하였어. 이대로 모든 것을 포기하면, 네놈도 최고 신관이라는 작위도 잃게 될 것이다!”

마지막 협박인 것 같았다.

나는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크라이스를 보았으나, 보이는 것은 이제 그의 뒷모습뿐이었다.

“두렵지 않습니다.”

“네가 정말 미쳤구나!”

“황후 폐하. 당신이 했던 것과는 달리 이곳에 있는 자들은 적어도 예의를 갖추고, 증언까지 내밀며 죄를 조목조목 읊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얌전히 모든 것을 인정하고 정당한 죗값을 받으시지요, 황후 폐하.”

황후가 까득 이를 갈았다.

나는 미친 사람처럼 보이는 그녀를 주시했다. 저런 성격에 궁지에 몰리면 어디로 튈지 모르니까. 게다가 그녀의 손에는 아직 크라이스의 이능이 담긴 독약 병이 들려 있었다.

언제든 치유의 이능으로 저 독약 병을 덮어버릴 준비를 하며 숨을 죽였다.

그때였다.

조세페의 등장과 함께 굳게 닫혔던 문이 다시금 활짝 열렸다.

“드디어 당신의 죗값이 낱낱이 까발려진 모양이네요, 황후 폐하.”

우아하면서도 느릿한 목소리.

자신감에 가득 찬 어투.

모두의 시선이 쏠리고, 황후의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다랗게 뜨여지는 것이 보였다.

나는 한숨을 쉬며 픽 웃었다.

음, 너무 늦었잖아요.

들어온 상대가 손에 쥐고 있던 부채를 나긋하게 흔들었다.

“오랜만이로군요, 황후 폐하.”

“너, 너는…….”

쓰러질 것 같은 황후의 모습이 가련하다는 듯이 바라보던 사람은 곱게 틀어 올린 제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픽 비웃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오만해 보이던지. 정말…….

누가 보면 저 사람이 주인공인 줄 알 것 같았다.

그 사람은 후, 하고 손톱 끝에 바람을 불며 심드렁하게 말했다.

“제가 없는 동안 황궁에서 난장을 부리셨던데, 황후 폐하. 늦었다고 너무 뭐라 하지는 마세요. 저도 다 사정이 있었답니다.”

그녀의 뒤로 무장한 기사들이 줄줄이 들어와 어느새 재판장을 꽉 채울 정도가 되었다.

“당신을 잡아넣을 군권을 모두 장악하고 빼돌리느라.”

그 날카로운 검 끝이 바로 챙- 소리를 내며 황후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당신께서 제 아버지를 꽁꽁 숨겨놓으시는 바람에 구출하느라 늦었답니다. 걱정 마세요, 황후 폐하. 이렇게…….”

여자, 황녀 라피이아가 붉게 칠한 입술을 오만하게 비틀었다.

그리고 황녀의 옆에는 익숙한 자가 서 있었다.

“제가 저의 아버지를 구출해왔으니까요.”

그 사람은 바로 피폐해진 얼굴의 황제, 디트로이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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