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화 (3/154)

정치동아리

'무시무시하구만.'

자리에 앉자마자 목을 옥죄는 듯 살벌한 공기에 내심 혀를 찼다.

흔히들 이런 높으신 분들이 모이는 자리에 처음 참여했을 때 제 감상을 말하기를 공기에 날이 서있다고들 한다.

허나 그건 어디까지나 그만큼 긴장했다는 비유고 과장이지 정말로 높으신 분들에게 공기에 날이 서게 하는 이능 같은게 있는건 아니다.

대혁명기 와중 프랑스 국민의회는 달랐다.

문외한인 내가 봐도 의원들 모가지 뒤로 단두대가 희미하게 보일 지경이거든.

'일단 저 상석에 앉은 양반을 기준으로 좌측이 공화파, 우측이 왕당파라고 보면 되려나?'

확신은 없다.

허나 누가 봐도 기세등등한 좌익 의원들과는 정반대로 애써 시선을 피하거나 천장을 올려다보거나 아랫입술을 깨물고 있는 우익 의원들의 면면만 봐도 대강의 당파를 짐작해볼 수는 있었다.

현직 국왕이 제 왕궁과 백성을 등지고 적국으로 도망치려 했으나 고작 하루 만에 실패한 역사적인 사건 와중이다.

현 체제를 긍정하거나 최소한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 온건파에겐 낭패일 거고, 반대로 어떻게든 현 체제를 무너트리려 드는 급진파엔 수구반동을 깡그리 쓸어버릴 절호의 기회일 거라는 것쯤은 쉬이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저 희미하게 보이는 단두대는 지금 내가 속한 좌익진영이 우익의원들을 단두대로 보내기 위하여 뿜어내는 살기일 거라는 이야기다.

'그럼 오늘은 좌익 시늉만 잘 내도 단두대로 끌려갈 일은 없겠네.'

기립하시오!

···아니 이게 아닌가?

앞서서 나가니-도 아닌 것 같고.

괜히 혓바닥 놀리다가 미운털 박힐 바에야 당분간은 얌전히 입다물고 관전하는게 나을 거 같다.

음.

"···우선 라파예트 경께서 보내오신 보고서를 낭독하겠습니다."

상석에 선 사내가 이쪽 눈치를 흘끗흘끗 보면서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렇다는 건, 적어도 아직까진 이 국민의회의 다수파는 우익이라는 소리겠지.

만약 좌익이 다수파였으면 저 자린 좌익인사의 차지였을 테니까.

사내가 먼저 당통을 바라보고, 다시 당통이 몇 사람을 차례로 응시하더니 마지막으로 내 눈치를 살폈다.

지금 이 순번이 현 서열순위라고 생각하면 내 착각일까?

어젯밤 한창 작당 모의할 때 자리에 없었던 게 치명적이긴 했던 모양이다.

끄덕.

마지막으로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야 당통은 득의양양한 미소를 띠며 상석의 사내에게 고개를 까닥거렸다.

"시작해주십시오."

"우선 국왕 폐하께서는 안전하십니다."

그래, 그러시겠지.

심드렁한 심경을 애써 숨기며 보고서를 듣고 있자니 내용을 세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았다.

1.부이예 후작 프랑수아 클로드 아무르 장군이라는 양반이 반역자였다.

2.같이 도망친 국왕의 동생 부부는 행방이 묘연하다.

3. 현재 라파예트 후작은 국왕 부부를 무사히 '구출'해 파리로 상경하는 중이다.

"···이상입니다."

정적.

당연히 있어야 할 상투적인 감사나 박수조차 없는 숨 막히는 침묵과 고요가 이 보고서가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하고 있음을 극명히 보여주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게 라파예트 후작은 '구출'이라고 말했다.

국왕 부부는 파리에서 도망친게 아니라 부이예 후작과 그가 이끄는 반란군에게 납치된 거였다고 말이다.

왜?

물론 부이예 후작이 적국 오스트리아에 매수된 매국노이자 자유의 ㅈ자도 용납하지 않는 골수 왕당파이기 때문이겠지.

그러니까 지금 라파예트 후작은 이 보고서를 통해 부이예 후작, 나아가 적국 오스트리아에 모든 책임과 과오를 넘기고 끝내자, 라고 제의하고 있다.

그럼 왕정과 국왕 부부는 적국과 내통한 반역자 장군에게 납치당한 무능아라는 손가락질은 받아도 매국노라는 소리는 듣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그 순간 내 이목을 사로잡은 건 라파예트 후작의 의중이 아니었다.

'국왕 부부뿐만이 아니라 동생 부부까지 도망쳤다고···?'

그럼 사실상 왕가가 통째로 한패였다는 소리잖아.

물론 그 둘 말고도 왕족은 많을 테니 통째로 한패였다는 건 과장이겠지만, 국왕과 함께 도망친 왕자님을 포함해서 왕위계승권자 1, 2위가 적국 오스트리아로 도망쳐 자국민들을 학살하려 했는데 그들이 과연 무고하다 할 수 있을까?

동생 한 사람만이 아니라 일가족이 함께 도망칠 정도면 전부는 아니라도 연통이 닿는 선에선 국왕이 적어도 한번은 권유해봤을 텐데.

꼴깍.

새삼스레 괜히 단두대가 튀어나온게 아니었다는 생각에 저절로 침이 넘어갔다.

"말 같지도 않은 말장난 마십시오."

쿵.

누가 봐도 열받은 당통이 돌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설마 이렇게 치졸하게 굴 줄은 몰랐다고 말하는 듯 배신감으로 가득한 얼굴이었다.

"천상의 주 예수 그리스도와 파리의 시민들이 지금 이 자릴 지켜보고 있습니다. 도대체 어디서 거짓부렁입니까?"

"당통 의원, 지금은 당신의 발언 시간이 아닙니다."

"빌어먹을, 엿이나 먹어.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돼?"

당통 옆에 앉아있던 사내가 연달아 일어서며 상석에 선 사내를 향해 으르릉거렸다.

구석구석에 물집이 잡힌 더러운 피부와 그에 걸맞은 신경질적인 목소리의 소유자였다.

상석에 선 사내기 기에서 눌렸는지 답하지 못하고 움찔 뒤로 물러나자 추남은 콧방귀를 끼며 발언을 이어 나갔다.

"루이, 그 멍청한 작자가 제 애첩의 알랑방귀에 혹해서 오스트리아군을 이끌고 우리 모두를 죽이려고 했단 말입니다. 하지만 실패했고, 그가 우리를 죽이지 못했으니 우리가 그를 죽여야지요. 이게 당신네한테는 그렇게 이해하기 어렵습니까?"

"마라! 지금 그게 대체 국왕 폐하께 무슨 망발인가!"

"이 나라의 국모께 감히 애첩이라니···!"

"마라 의원, 지금 흥분하셨습니다. 이만 착석해주십시오!"

땅땅땅!

단숨에 아수라장이 된 회장. 

그제야 나는 당통의 발언권을 가로챈 추남이 누구였는가 눈치챌 수 있었다.

장폴 마라.

「인민의 적에게 줄 것은 죽음밖에 없다」라는 격언과 그에 걸맞은 생애, 비참한 최후로 잘 알려진 혁명투사.

이렇게 그 유명한 마라를 직접 보고 있자니-.

'괜히 과격파가 아니었네.'

자고로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고 했다.

애써 감춘 티가 나는데도 온몸에 우둘투둘 물집이 돋아난 사람을 어떻게 건강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분명 저놈의 피부병 때문에 성질머리까지 망가진 거겠지.

나처럼 여자와 손 한번 잡아본 적 없을 테고.

혹시 마라가 날 탄핵할 일이 생기거든 한 번쯤은 용서해주기로 했다.

그럴 일도 없겠지만.

"도대체 당신네는 누구의 의원입니까?"

그 순간 당통이 한 손으로 슬쩍 마라를 뒤로 밀어내며 도로 발언권을 가로챘다.

이만 진정하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마라가 제 손을 쳐내려는데도 굳게 버티는 것 보면 그냥 주도권 다툼 같기도 했다.

생각보다 사이가 안 좋나?

"그야···!" 

"지금 이 자리는 국민의 의회입니다. 우리 모두는 국민이 선출한 의원들이고요. 헌데 왜 당신들은 죽임당할 뻔한 우리 국민이 아니라 적군의 손을 빌려 국민을 죽이려 한 국왕을 편들고 계신 겁니까?"

당통이 으르렁거렸다.

"분명하게 말씀해주십시오. 지금 이 순간 당신들의 충성은 도대체 누구를 향하고 있습니까? 국왕입니까? 우리 국민입니까. 우리의 주 예수 그리스도와 자비로운 성모의 이름 앞에서 어디 한번 답해보시라, 이 말입니다!"

날카로운 사자후.

누가 봐도 모범적인 혁명투사라고밖에 표현할 길이 없는 정론에 그제야 마라는 애써 불만스러운 기색을 숨기면서 제자리에 앉았다.

아마 저게 본래 마라가 하고 싶었던 발언이었던 거겠지.

동시에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급진 공화파 의원들이라면 누구나 고대하고 있었을 멋진 부분이고 말이다.

쩝.

그게 아니고서야 제 당파의 영수가 멋들어진 정론을 늘어놓았는데 당원들이 멋지다고 호응해주는 게 아니라 입맛이나 다시고 있을 리가 있나.

'과연.'

그리고 그제야 나도 확신할 수 있었다.

'이 자식들 완전히 콩가루잖아.'

서로 증오하고 다투는 정적이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냥 옆에서 봐도 권위는커녕 위계질서 자체가 보이질 않는다.

당통이 실질적인 영수라고 하지만 그 당통도 툭하면 마라나 그 밖에 다른 의원들이 제 발언을 가로채려는 걸 결사적으로 막아내면서 겨우 한마디, 두 마디씩 멋있는 부분을 뺏어가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명성을 유지하고 있는 게 고작이다.

그러니까 틈만 나면 어떻게든 주변에서 얌체 같은 당통을 끌어내리려고 달려드는 거고, 또 당통은 당통대로 얌체 같은 수를 써서라도 일 대 다 상황에서 우위를 유지하려고 발버둥 치고 있다.

쉽게 말해서 대가리가 수십 개 달린 히드라 중에서 그나마 잘난게 당통이라는 대가리인 거지, 다들 제가 언제건 당통을 대신할 수 있는 지도자감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고 있다.

'대학 정치동아리가 따로 없네.'

불현듯 우리의 최루탄 교수님이 떠오른다.

교수님, 이 불초 제자에게 가르침을 내려주십시오.

동아리에서 내로라하는 반골들이 저마다 개똥철학을 늘어놓으실 때 우리 최 교수님께서 뭐라 말씀하셨더라?

[너희 그거 아니? 닭 모가지를 비틀면 새벽이 안 온다. 그거 다 으쌰으쌰하려고 지어낸 말이야.]

···그래, 기대한 내가 잘못이지.

그 양반 암만 생각해도 최루탄 뿌리고 다녔을 놈이 맞다니까?

"물론 국민이고 말고요."

그리고 내가 눈치챈 사실 그 두 번째.

"하지만 그게 국왕 폐하께 무도한 발언을 일삼아도 될 이유가 되지는 않을 것 같군요."

"···무슨 뜻입니까?"

"솔직하게 말하겠습니다. 당통 의원님, 당신과 국왕 폐하 중 누가 더 많은 국민께 사랑받고 있을 것 같습니까?"

이 녀석들, 콩가루인 것도 모자라서 생각했던 것보다도 더 소수파다.

"국왕 폐하께서 실수를 저지른 걸 부정하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가장 신뢰할 수 있는 단서는 여기 이 국민위병 총사령관 라파예트 후작께서 보내주신 이 보고서고, 적어도 이 보고서엔 국왕 폐하께서 납치되었다고 나와 있지 말씀하신 내용과 같은 무도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군요."

"그런 억지가-."

"그렇지 않다면 라파예트 후작의 증언을 부정할 수 있는 보다 명확한 증거를 제시해주십시오. 만일 입증하실 수 없다면 조금 전 폭언들은 군권에 대한 도전이고 왕권을 향한 모독입니다. 알고 계시잖습니까?"

홀연히 우익진영에서 일어선 고풍스러운 차림새의 중년 남성이 당통과 마라를 향해 협박하듯 미소 지어 보였다.

물론 허세다.

부외자인 내가 봐도 지금 파리 민심에 당통과 마라를 죄인이랍시고 끌고 갔다간 더 큰 사달이 터질 거라는 건 뻔히 보인다.

"···쯧."

하지만 당통과 마라는 서로 눈치만 살필 뿐 사내의 허세에 차마 반박하지 못했다.

국민위병 총사령관 라파예트 후작의 이름이 거론되어서?

물론 그것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머릿수가 모자란 게 컸다.

"오, 옳소! 일단 국왕 폐하께서 돌아오신 다음에 차분히 이야기해도 늦지 않잖습니까?"

"설령 혐의가 옳다고 한들 이래서야 당신들도 똑같은 죄인이요. 국법의 지엄함을 모르시는 것도 아니잖소?"

"자자, 다들 우선 진정하고 차분히 이야기합시다. 조금 전 오를레앙공께서도 국왕 폐하께서 실수를 저지르신 게 맞다고 분명히 지적하셨잖습니까? 이번 일은 양측 모두 실수한 거로 치고 이제부터라도 조금 더 견실한 사태 해결을 위한 대책을 논의해보는게 어떻습니까?"

지금만 봐도 그렇다.

나름 좌익진영에서도 저마다 한두 마디씩 반박하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목소리에서 눌려 밀리고 있다.

결국 머릿수에서 눌리니 목소리에서 눌리고, 그것도 모자라 서로 저만 잘난 줄 아는 콩가루이기까지 하니까 저 오를레앙공이라는 남성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 반격하는 우익진영에 상대가 되지 않는다.

이대로 가면 꼼짝없이 기껏 선수 쳐 빼앗아 온 주도권을 내줄 게 뻔한 상황.

'오를레앙공이라.'

허나 나는 홀로 이 열세 와중에도 여유로웠다.

왜냐?

내 나라, 내 국왕 아니거든.

그리고 설령 오늘 주도권을 빼앗기더라도 민중이라는 든든한 뒷배가 남아있는 이상 오늘의 패배는 내일의 이보전진을 위한 일보후퇴일 뿐이다.

'일단 공작 소리까지 들을 정도면 엄청난 거물 귀족이라는 소리인데.'

잘은 모르지만 지금 이 나라 프랑스는 왕국이다.

그렇다면 공작이라는 건 국왕 바로 다음가는 서열이라는 것.

왜 우익진영이 그가 나서자마자 기가 살아서 반격에 나선 건지 이해가 될만한 거물이었다.

'···그런데 왜 저 자식은 국왕 옆이 아니라 의회에 있는 거지?'

당장 국왕의 동생 부부까지 적국 오스트리아로 도망치는 와중이다.

그럼 국왕 다음간다는 공작에게 연통 하나 안 갔을 리도 없고, 그렇다면 같이 도망치거나 아니면 최소한 묵인했어야 정상인데 아무도 그에게 책임을 묻는 사람이 없다.

'설마 저 양반이 의회에 밀고했나?'

합리적인 추론이었으나, 정답은 아닌 듯했다.

만약 본인이 밀고했다면 일등 공신이라고 진작에 언급이 나왔을 것이고 왕당파에서도 약간 꺼리는 기색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기색은 전혀 없거든.

그렇다면 애초에 사이가 좋지 않아서 권유받지 못했거나 처음부터 의회파여서 권유 자체가 불가능했을 가능성.

모로 봐도 이게 정답일 듯했다.

"정말 광대들이 따로 없으시군요."

그렇게 생각을 대강 정리하고 나니 또 한 사람의 좌익의원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자 순식간에 잦아드는 소음.

그것이 호적수를 향한 두려움과 존중이라는 걸 눈치챈 나는 그가 당통이 말했던 바보 에베르라는걸 쉬이 눈치챌 수 있었다.

"···에베르 의원, 지금 국민의회를 모욕하시려는 겁니까?"

"아뇨, 저는 이 나라를 욕보이려고 일어난 겁니다. 도대체 이 나라의 국법이 언제부터 그렇게 지엄했다는 겁니까?"

침묵.

"예? 어디 답해보십시오. 고작 말 한번 잘못한 잡범은 절 변호할 한마디도 해보지도 못하고 바스티유로 끌려갔는데 이 나라를 오스트리아에 팔아치우려 한 대역죄인은 지금 이 자리에서 보이는 것만 수십 명의 존경받는 나으리들께서 앞다투어 변호하지 못해 안달이군요."

잠시 숨을 고른 바보 에베르가 의원들의 면면을 핥듯이 훑어보았다.

그가 좌익에 앉아있는지, 우익에 앉아있는지는 조금도 중요하지 않았다.

나를 포함하여 모든 의원을 한 사람씩 훑어본 에베르가 허리를 곧게 세우며 득의양양하게 되물었다.

"도대체 이 나라에 언제부터 법치가 있었다고 이 소란인지 원. 그 허풍선이 목수와 내연녀가 당신들한테 이리 가르치덥니까?"

···네? 뭐요?

지금 예수랑 성모 마리아 말한 거 맞지?

경악해서 입도 다물지 못하고 있는데 주변의 반응은 더했다.

하기야 그렇겠지. 

21세기 한국 청년인 나도 이게 의회에서 나와도 되는 말이 맞나 싶은데 이 시대야 오죽할까.

"자크 르네 에베르!!!"

당장에 사제 차림새의 남성이 벌떡 일어나 에베르를 향해 삿대질했다.

허나 막상 당통이나 마라, 하다못해 오를레앙공처럼 지금 이 자리에서 나름의 권위와 세를 거느리고 있는 인물 중에선 아무도 나서려 하지 않았다.

또 시작이네, 라고 말하듯이 머리를 부여잡고 한숨을 내쉬었을 뿐.

"아하."

그제야 난 저 양반이 왜 바보라 불리는지 깨달았다.

덤으로 저 양반이 날 주목했다는 게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도.

"지금 제정신이요!"

"물론 제정신이고 말고. 내가 미쳤으면 허풍선이 목수와 내연녀를 칭송하고 있지 않았겠소? 저 덜떨어진 놈들처럼 말이오."

그 증거로 에베르는 사제의 삿대질에도 코웃음만 칠 따름이었다.

마침내는 눈이 까뒤집혀 에베르에게 달려 들으려 하는 사제를 장정 서넛이 붙들고 있자니, 바보 에베르가 슬쩍 내 쪽을 돌아보았다.

···설마 이 타이밍에 내게 바통을 넘기겠다고?

"오늘따라 조용하시구려."

왜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를 않는지 원.

이 새끼가 날 단두대로 보내려고 점찍어뒀구나.

"안 그래도 슬슬 한마디 보태려고 했소."

오냐, 내가 넌 무조건 기억한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꼭 너만큼은 단두대로 보내주마. 

속으로 온갖 저주를 퍼부으며 나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죽하실까."

"친애하는 의원 여러분."

에베르의 비아냥을 한 귀로 듣고 흘리며 나는 천천히 의원들의 면면을 살폈다.

살피다가, 팔짱을 낀 채 여유롭게 미소 짓고 있는 오를레앙공을 발견하고 웃었다.

너 마침 잘 걸렸다.

"우리 더 다투지 말고 이만 사태 해결에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해봅시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루이 공의 빈자리 말입니다."

정적.

모두가 얼이 빠져서 이쪽을 바라보는 와중 나는 입가에서 미소를 싹 지운 채 되물었다.

"그가 파리에서 도망쳤건, 적군에게 납치되었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파리를 버리고 떠난 비겁한 반역자도, 적군에게 납치된 무능한 사령관도 이 나라의 국왕으로선 자격 미달이니까요."

안 그렇습니까?

나는 불꽃이 튀기고 있는 오를레앙공의 시선을 정면으로 맞받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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