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급배반
내가 아직 최 교수님께 가르침을 받을 시절의 이야기다.
[민혁아.]
[예, 교수님.]
[왜 돈 많은 계급배반자가 나오는지 아냐?]
[배때지에 기름이 껴서요?]
딱.
내 이마에 딱밤을 날리신 최 교수가 말했다.
[그것도 멋모르는 햇병아리 시절 이야기지, 인간 세상 배울 만큼 배운 노괴가 계급 배반하는 경우는 딱 한 가지다. 출세하려고.]
[출세요?]
[그래. 난 소위 민중의 편이지만 동시에 당신네 기득권 편이기도 하다, 이거지. 물론 거꾸로 난 부자지만 너희 가난뱅이들도 신경 써주는 착한 놈이라는 가면도 될 테고.]
결국 중간에서 간이나 보다가 둘 중 유리한 쪽에 붙겠다.
최 교수가 진저리가 난다는 듯이 뿌연 담배 연기를 내뱉으며 덧붙였다.
[이 바닥에선 그런 놈들이 가장 무서운 거야. 까딱하면 제 목도 날아갈 판인데 양쪽에 알랑방귀 뀌면서 단꿀만 빨고 또 배신자 소리를 들으면 안 되니까 아주 본인도 죽을 맛이거든. 굳이 목숨까지 걸지 않아도 남부럽지않게 살 놈이 오직 출세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저와 제 사람들 목숨까지 판돈으로 걸어버렸으니 보통 미친놈이 아닌 거지.]
[어디서 많이 본 것처럼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보단 오래 살았다 이놈아.]
어쩌다가 이 이야기가 나왔더라?
거기까진 기억나지 않는다.
구태여 기억하고 싶지도 않다.
지금 여기서 중요한 건 우리 최루탄 교수님의 신세 한탄이 아니니까.
지금 여기서 중요한 건 최루탄 교수님이 아니라.
"안 그렇습니까?"
그래서 저 공작이라는 놈이 왜 도망친 국왕 옆이 아니라 의회에 있냐. 거든.
왜 배울 만큼 배우고 가질 만큼 가진 공작씩이나 되는 양반이 제 타고난 귀족 계급을 배신하고 국민에게 붙었을까?
최 교수의 가르침에 따르자면 출세하기 위해서다.
헌데 국왕 다음가는 서열의 공작이 출세를 위해서 제 계급을 배신했다?
그럼 저 양반이 생각하는 출세가 뭐겠는가.
당연히 이 나라 프랑스의 국왕이 되는 거겠지.
이런 되지도 않는 소꿉장난이 아니라.
"저기, 그건···."
그 증거로 우익진영에서 일제히 이쪽과 오를레앙공의 눈치를 번갈아 가며 살피고 있다.
내심 짐작이 가는 게 있다, 이거겠지.
그게 아니라면 당장에 국왕을 음해하려 드는 역적이라고 언성을 키우고 봤을 테니까.
앞서 마라와 당통에게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내 도발을 맞받아칠지, 아니면 모른척할지.
결국 모든 건 지금 저 오를레앙공 한 사람의 의중에 달려있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말씀인 즉, 로베스피에르 의원님께서는 새 왕을 추대하자는 말씀이십니까?"
한참을 침묵하던 오를레앙공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너그러운 미소를 만면 가득히 떠올리며 답했다.
"예."
즉답.
예기치 못했다는 듯이 두 눈을 부릅뜨는 오를레앙공을 향해 조소했다.
"만인지상의 옥좌를 그리 오래도록 비워둘 수는 없잖습니까?"
"···놀랍군요. 미루어 짐작건대 이미 후보까지 점찍어두신 것 같습니다만."
"그야 이를 말이겠습니까?"
일부러 과장하여 연극조로 덧붙였다.
"우리의 오직 한 분 뿐이신 주, 천년왕국의 대왕(Rex)이시자 우리 모두를 위하여 못 박히신 대속의 상징, 성부이자 성령이시며 성자이신 그분."
"···허."
"주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 달리 어떤 왕이 있겠습니까."
앞서 교회와 신성을 모독한 에베르와는 대비되는 예찬.
속이 뻔히 보이는 연극조임에도 떠받들어주는게 썩 기분이 나쁘진 않았는지 몇몇 사제복 차림의 의원들이 한결 풀어진 시선으로 이쪽을 바라봤지만, 그게 우익진영의 총의는 아니었다.
왜냐?
결국 이건 왕정을 폐지하자는 말이거든.
애당초 왕권신수설에서 국왕은 신에게 통치권을 위임받은 대리인이지 왕권이 스스로 신성한게 아니다.
그러니까 프랑스를 신에게 봉헌하겠다는 건 신정을 실시하자는 게 아니라 이 나라는 원래 신의 소유였으니 국왕 같은 대리인은 이만 치워버리자는 소리가 되는 거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제 개인의 소견입니다."
자, 여기까진 저 양반들보단 우리 편에게 '나 공화파다'를 어필하기 위한 연극이었고, 여기서부터가 본제.
"새로운 왕은 저 같은 필부가 아니라 우리 프랑스 국민의 뜻을 충분히 반영하여 자유롭고, 민주적이며, 정의롭게 선출되어야만 하겠지요. 벌써 주제넘게 입후보 절차나 그 후의 예식에 대해 떠들지는 않겠습니다."
"이미 충분히 주제넘으셨소만."
"글쎄요, 주제넘은 건 루이 공이겠지요. 공화파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프랑스인으로서 단언컨대 이번 사건은 도저히 프랑스의 국왕이라는 신분에 걸맞은 일이 아니었습니다."
나를 향해 비아냥거리는 귀하신 옷차림의 사내를 쪼듯이 노려보았다.
"태양왕 루이 14세께서 치세 중에 몇 차례에 걸쳐서 친정에 나서셨는지 기억하십니까?"
"···어험."
"앙리 대왕께서는 어땠습니까? 우리 기사도의 나라 프랑스에서 국왕이란 언제나 제일가는 기사였습니다. 전장에 나서서는 언제나 용감무쌍했고, 치세에 있어서는 단호했으며, 무엇보다 명예로움을 잃지 않았습니다."
헌데.
"이번 사건에서 보여준 루이 공의 어디에 국왕이기 이전에 기사로서의 용맹과 명예가 있는지 이 필부에게 답해주십시오."
침묵.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다.
우익은 하나같이 오를레앙공의 눈치를 살피기 바쁘고, 좌익은 내가 갑자기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는 듯이 멍하니 눈만 껌뻑거리거나 필사적으로 당통 등 거두들의 눈치만 살피고 있다.
그 당통은 무표정한 얼굴로 턱만 쓰다듬고 있고.
그래서 가장 중요한 나는 어땠느냐, 하면.
'크, 이거지.'
최 교수의 마수로부터 벗어난지 장장 몇 달 만에 쏟아지는 청중의 관심에 덜덜 떨고 있었다.
이 짜릿함.
아무튼 내가 옳고 너흰 모두 바보 병신이야라고 당당히 쏘아붙여 줄 때의 쾌감!
관심받고 싶어서 반골하는 21세기 대한민국의 효웅 박민혁에겐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정신적 마약!
'···어. 잠깐, 이럼 어영부영 버티다가 망명하기가 안 되는데.'
뒤늦게 돌아온 사고회로의 급격한 브레이크에 잠시 겁에 질리기도 했지만, 지금은 넘어가기로 했다.
일단 바보 에베르가 깔아놓은 신성모독이라는 지뢰를 피했으면 됐지 뭘 더 바라는가.
어차피 그 미친놈이 신성모독을 저지른 이상 곧장 바통을 넘겨받은 내가 살아남으려면 신성을 예찬하면서도 왕당파 소리가 나오지 않을 어중간한 중도를 걸어야 했고, 거기서 뒷말이 나오지 않으려면 한 발짝 더 나아가서 더 큰 폭탄을 터트려야만 했다.
그래서 현시점에서 가장 위협적인 적장을 조준해 저격했는데 여기서 나보고 뭘 더 어쩌란 말인가.
당파를 향한 충성을 논하건, 내 개인의 보신을 논한 건 지금은 이게 최선이었다.
아니면 말고.
"크흠."
그 증거로 오를레앙공이 애써 사람 좋은 미소를 지우며 슬쩍 자리에 앉았다.
너무 갑작스러운 전개다 보니 여기서 뭘 더 말해봤자 손해만 볼 거라는 판단이 선거겠지.
잘 풀리면 물론 좋지만, 지금 너무 노골적으로 제 야심을 드러냈다가는 왕당파 사이에서 반역자 소리가 나올 거고 그렇다고 너무 사렸다간 후일에라도 국왕이 될 기회가 돌아오지 않을 위험이 있다.
그럴 바에야 오늘은 여기서 꽁지를 말기로 한 거다.
'빙고.'
역시나.
제 타고난 계급을 배신하면서까지 국왕 즉위를 꿈꾸는 야심가라면 여기선 잃을 게 많으니 물러나거라 짐작했다.
애당초 여기서 들이박을 막가파면 굳이 의회파 시늉할게 아니라 진작에 쿠데타를 갈겼겠지.
폭도를 무찌르고 국왕을 구하건, 폭군을 무찌르고 국민을 구하건 간에 말이다.
"루이 카페의 공식적인 탄핵을 선언합시다."
따라서, 내 주장을 아예 못 박아두려면 지금뿐이다.
저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해야 하는 계급배반자 너구리가 고작 한마디 더 하겠다고 천금 같은 신의와 체면을 포기하지는 못할 테니까.
나는 두 눈을 부릅뜬 오를레앙공에게서 시선을 돌려 의원들의 면면을 돌아보았다.
"새 왕을 선출할 건지, 혁명을 계속할 것인지는 둘째 문제입니다. 자격 미달의 국왕이 계속 이 위대한 프랑스의 국왕 행세를 하도록 두는 것이야말로 존경받아 마땅했던 선왕들께 죄를 짓는 격이고 통치를 위임하신 그리스도에 대한 모독이며 사회계약에 약조한 국민을 능멸하고 헌정질서를 파괴한 반역자에게 관용을 베푸는 나쁜 선례를 남기는 격입니다.
먼저 저 한심한 루이 카페부터 치워버리고 이야기합시다. 우리 모두 테니스 코트에서 한날한시에 맹세한 동지잖습니까. 이 필부가 감히 자신하건대 좌우를 막론하고 프랑스와 혁명을 위하여 이번 사안만큼은 우리가 충분히 입을 모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꾸벅.
됐다.
이만하면 됐다.
의원들을 향해 짧게 목례하고 자리에 앉은 내 머릿속은 온통 만족감과 희열로 가득차 있었다.
단 한 번도 말을 더듬지 않았다.
일찌감치 원고를 미리 써둔 것도 아닌데도 웅변은 매끄럽게 이어졌고, 비록 썩 알맹이가 튼실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면전에서 조롱받을 만큼 형편없지도 않았다.
대학 시절 내내 의욕만 앞서는 놈이라고 손가락질받았던 박민혁치고는 아주 멋들어진 데뷔무대였던 셈이다.
'···그런데 잠깐.'
이게 내 실력이 맞나?
곰곰이 생각해봐도 최근에 내 실력이 일취월장할만한 사건은 없었다.
오히려 대학 졸업하고선 푹 쉬고 있었으니 웅변 실력도 줄었으면 줄었지 나아질 리가 없다.
하물며 앙리 대왕? 루이 카페?
그래서 걔네가 누군데?
"···으음."
뭐, 고민할 게 있나.
내 실력과 지식이 아니라면 로베스피에르의 것이겠지.
결국 남의 몸을 빌려다가 우쭐거린거라는 자각에 잠시 기분이 처지긴 했지만 그렇다고 마음에 담아두진 않기로 했다.
어차피 내가 미안하다고 궁상떨어봤자 이 양반이 기뻐할 것 같지도 않거든.
이 양반을 기쁘게 만들려면 미안해할 게 아니라 내 알량한 목숨 따윈 내다 버리고 혁명에 집중하는게 맞다.
물론 난 그럴 생각 따윈 추호도 없지만 말이야.
***
그날의 국민의회가 내 탄핵 연설로 끝난 후.
퍼억!
"컥···!"
나는 미처 의회에서 나오기도 전에 좌익 의원들에게 붙들려 자코뱅 수도원으로 끌려가 마라에게 배를 걷어차이고 있었다.
그게 무슨 웃기지도 않는 농담이냐고?
나도 농담이었으면 좋겠다.
이 미친 새끼들. 정치동아리 같은게 아니라 진짜 대학가 정치동아리잖아.
그래도 나름 국회의원씩이나 되는 놈들이 무슨 시정잡배도 아니고 진짜로 이게 맞냐?
털썩.
"이제 좀 제정신이 드나?"
"글쎄, 제정신은 마라 자네가 차려야 할 것 같은데···."
"아직 정신이 덜 들었군. 내가 왜 아직 자네를 살려두고 있는지 아나?"
장미처럼 붉게 물든 마라가 씩씩대며 쏘아붙였다.
"왜지?"
"도대체 오를레앙 그 새끼한테 얼마나 받아 처먹었는지 아직 못 들었거든."
"흠, 역시 진정해야 할 건 내가 아니라 그대-컥!"
뻑.
다시 한번 일격.
이번엔 배도 아니고 턱이다.
···이 미친 새끼, 지금 누굴 죽이려는 것도 아니고.
오늘 일은 기억해두마.
혁명투사 마라고 뭐고 에베르 그놈보다 먼저 너부터 단두대로 보내주겠어.
"그만."
그제야 곁에서 우리 둘을 빤히 지켜보고 있던 당통이 나섰다.
일부러 두 대는 처맞게 둔 거라고 생각하면 과연 과한 의심일까?
성큼성큼 내게 다가온 당통이 마라를 한 손으로 밀어내며 물었다.
"왜 그랬지?"
"···뭘 말인가?"
"그래, 물론 국왕 탄핵 좋지. 나쁘지 않아. 우리 모두 누구나 꿈꿔왔던 일이지. 하지만."
덥석.
당통이 내 머리채, 아니 가발을 붙잡았다.
"그럼 당연히 공화정 실시를 밀어붙였어야지, 왜 여지를 남겼는가? 그 여우 같은 오를레앙공과 무능하고 비겁한 루이 카페, 둘 중 누가 더 상대하기 편할지 자네가 정녕 몰랐단 말인가?"
몰랐을 리가 있냐.
그런데 그 너구리가 정말로 교활하면 여기서 배팅할 리가 없다니까?
급진공화파의 추대를 받아서 된 국왕이 어디 제대로 된 국왕이겠냐?
그리고 왕이 제 할 일 똑바로 못하면 의회가 탄핵해서 새 왕 선출할 수 있다는 선례라도 남기면 혁명 성공 아닌가?
일단 영국 수준까진 따라온 거잖아?
"라파예트 후작."
물론 그렇게 답할 수는 없기에 내 입은 다른 말을 내뱉고 있었다.
"지금 오를레앙공이 왕이 되겠다고 하면 그가 가만히 있겠나?"
"허, 이제는 말을 돌리시겠다?"
"라파예트 후작은 보고서를 조작하면서까지 국왕 부부를 옹호하려 했네. 만일 의회에서 그의 보고서를 수리했다면 이번 사태의 책임을 져야 할 건 오스트리아와 내통한 반란군의 파리 침투를 끝내 막아내지 못한 패장 라파예트 후작이지. 하지만 오를레앙공이 이번 일을 빌미로 삼아 국왕이 된다면?"
퇫.
당통의 발치를 향해 피가래를 뱉었다.
"무려 국왕 탄핵일세. 무소불위의 권세를 누리던 루이 카페가 작위를 박탈당할 정도의 대죄를 뒤집어 쓰게 되면 그까짓 후작 나부랭이가 무슨 수로 버티겠는가? 분명 만만치 않은 처벌이 뒤따를 테고, 설령 오를레앙공이 자비를 베풀더라도 그는 제 군인으로서의 역사를 걸고서라도 루이 카페를 옹호하려 한 제 명예가 더럽혀졌다고 여기겠지.
기사의 나라 프랑스에서 나고 자란 그대가 군인의 명예가 얼마나 귀한지를 모르진 않을 텐데."
"···말은 번드르르하게 잘하는군."
"우린 지금 소수파일세. 체계적인 조직도 없이 의기 하나로 뭉쳐있는 애송이들이지. 그럼 우리가 정권을 잡으려면 어떻게 해야겠나?"
먼저 저 다수파를 사분오열시켜야지.
그렇게 기득권끼리 서로 헐뜯고 다툴 때 혁명진영은 한 발짝 뒤에서 계속 싸움을 부추기며 일사불란한 조직을 완성한 뒤 단칼에 수구반동을 쓸어버리고 오직 혁명진영만으로 구성된 과도정부를 구성한다.
이런 가장 기초적인 방법론까지 내가 하나하나 가르쳐줘야 하나?
"혁명이 수단을 정당화하는 법일세."
이를 악물고 마라, 당통과 차례로 눈을 마주쳤다.
"난 저 머저리들이 서로 헐뜯고 다투는 꼴을 보고 싶었을 뿐이야."
"인민의 적 주제에 혓바닥 하나는 잘 돌아가는군."
낄낄낄.
노골적인 조소.
굳이 얼굴까지 볼 필요도 없이 알겠다.
에베르 놈, 아직도 기분이 덜 풀렸구나.
마라는 몰라도 저놈에게 한대 얻어맞긴 싫은데 말이지.
"그래서 어젯밤 동지들한테는 한마디도 없이 내뺐나? 오를레앙 그 여우를 찾아가려고 말이야."
"···내가 어젯밤 뭘 했는지 그리 궁금하다면 셋집에 직접 확인해보면 될 것 아닌가."
"어련하겠나. 그 아가씨야 당연히 이렇게 말하겠지."
에베르는 나를 향해 샐쭉 웃으며 보란 듯이 저속한 손짓을 과시했다.
···개새끼. 역시 마라보단 너부터 단두대로 보내주마.
"형편없는 놈."
퉤.
이번엔 에베르를 향해 가래침을 뱉었다.
설마하니 심문받는 와중에 절 모욕할 거라곤 생각 못했는지 에베르가 눈을 깜빡거리며 날 바라봤다.
"···지금 뭐라고 했나?"
"남자구실도 못 하는 놈이라고 했네. 매번 말만 번드르르하지, 실속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놈. 독설이나 할 줄 알지 도대체 자네가 우릴 위해 한 일이 뭐가 있나?"
"막시밀리앙!!!"
"신성모독으로 적들을 동요시켰지. 하지만 그래서? 기사가 적들을 동요시켰으면 그 다음 적진에 위풍당당하게 돌격해서 군공을 탐해야 할 것 아닌가? 독설만 쏟아내고 물러서면 그게 무슨 전사인가? 그냥 입만 산 겁쟁이지! 이-."
짜악!
뭐라 더 말을 이어가기도 전에 내게 다가온 당통이 따귀를 후려갈겼다.
아팠다.
무척이나.
"내 그만하라고 했을 터인데!"
당통이 씩씩거리며 나를 빤히 내려다보았다.
하지만 이성을 잃어버린 것 같진 않았다.
"···다들 오늘은 이만 돌아가 주게."
뒤이어진 말만 봐도 나를 옹호해주려고 일부러 화난 척을 했다고 봐야겠지.
우두둑.
그제야 시정잡배들의 손아귀에서 풀려난 나는 스트레칭을 하며 몸을 풀었다.
"그렇게 자신 있는가?"
당통의 질문.
"자신 있다고 답하면 내게 독박 씌우려고 그러나?"
퉁명스러운 대꾸.
예상했다는 듯이 껄껄대며 웃음을 터트린 당통이 덧붙였다.
"그래. 성공만 한다면 이번 공은 자네 독차지야.“
아닌데. 난 실각해서 망명하고 싶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