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화 (8/154)

인민전선

'···저기, 여보세요? 또 하나의 나?'

대답이 없다.

아무래도 단순한 시체인 것 같다.

'파트너? 막시밀리앙 로베스피에르 씨? 집주인님? 자기야?'

벌써 몇 번씩 호칭을 바꿔봐도 요지부동이다.

이미 어젯밤부터 계속 내면에 말을 걸고 있는데 흔적도 잡히질 않는다.

암만 기를 써봐야 우리 둘이 불편한 동거 중인 거 다 눈치챘는데 말이야.

그냥 상대할 가치도 없다고 이 악물고 모른 척하고 있는 건가?

'그러면서 내가 가져온 지식은 뻔뻔하게 다 받아먹었단 말이지.'

내가 원해서 한 일은 아니었지만 이 악물고 혁명을 위해 몇 날 며칠간 용써준 거 뻔히 다 봤을 거면서 후안무치한 게 아주 천성 도련님일세 그려.

하기사 이리 뻔뻔하니까 역사상 최초의 민주공화국 같은 낯간지러운 소리가 태연하게 나왔던 거겠지만-.

[지금 공화국을 모욕하는겐가?]

빙고.

역시 이게 역린이었군.

[아뿔싸.]

뒤늦게 낭패라는 듯이 후회해봐야 이미 늦었다.

그러게, 제삼자로서 충고하는건데 당신과 당신 친구들 정치하기엔 너무 기분파라니까?

그저 제 생각에 정답인 것처럼 보이면 앞뒤 분간 안하고 냅다 들이박고 보는게 어떻게 사람이냐.

멧돼지지.

[그렇게 말하는 자네는 이리가 따로 없군.]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 혐오감이 뚝뚝 묻어나온다.

아마 요 며칠 사이 내가 보여준 행적이 로베스피에르라는 인간에겐 영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거겠지.

···흠, 그런 것치고는 역사의 선형적 발전 소리 나오는 것도 그렇고 이미 내가 가져온 지식이란 지식은 죄다 씹고 뜯고 맛보고 즐겨보신 것 같은데.

난 이 양반 머릿속에 뭐가 들어있는지 아직 절반도 다 구경 못했단 말이야.

[험.]

그래도 양심은 있었나?

[시끄럽네.]

쫌생이 같으니라고.

느닷없이 휘말려 든 무고한 양민을 단물만 쪽 빨고 버리려 드는 게 아주 독재자 꿈나무다워.

[시끄럽다고 했을 텐데!]

어이쿠, 화나셨네.

아무튼 살살 긁는 건 여기까지로 하고, 슬슬 또 로베스피에르의 의식이 숨어버리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생긴 나는 비로소 집주인과의 솔직담백한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었다.

우선 가장 먼저 인류 역사상 최초의 민주공화국 운운.

저기 신대륙에 미국이 있지 않냐고 물었더니 우리의 위대한 로베스피에르 동지 왈.

[공화국이라는 건 인정하겠네. 한데 민주? 노예제와 법적 차별이 존재하는 나라가 도대체 어떻게 민주공화국이란 말인가? 부자와 지주만을 위한 금권과두정이겠지. 고작 그 정도 체제라면 이미 이 유럽에도 가장 고귀한 베네치아 공화국과 저지대 공화국이 있네.]

···흠, 뭐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솔직히 지금 시대의 미국은 땅덩어리만 큰 신생국가 이상도 이하도 아니니까.

노예제가 기준이라면 미국보단 프랑스 제1공화국이 인류 역사상 최초의 민주공화국인 건 맞다.

내 긍정에 기가 살았는지 머릿속의 로베스피에르가 득의양양해져 덧붙였다.

[아무튼 자네 기억 속에 있는 링컨이라는 사내가 나오기 전까진 저 아메리카 합중국이라는 나라가 민주공화국이라는 건 난 결코 인정할 수 없네. 너무 오만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어떠한 이유에서건 노예제를 긍정하는 순간 그들은 공화국일지언정 민중이 주인이 되는 나라라고 자칭할 자격이 없어.]

'그래서 아이티 혁명은?'

[···나는 진압에 반대했을걸세.]

아마도.

눈에 띄게 풀이 죽는걸 보니 수치스럽긴 한 모양이다.

아직 아이티 혁명이 시작되기도 전일 테니 미래의 로베스피에르면 몰라도 지금의 로베스피에르는 책임자도 아닌데 말이지.

[아니야, 아닐세. 그토록 많은 동지의 피를 흘려가며 겨우 일으켜 세운 공화국을 카이사르에게 내줬으니 내게 어찌 죄가 없을 수 있겠는가? 아아, 키케로여! 브루투스여! 킨키나투스시여!]

카이사르?

아, 나폴레옹을 말하는 건가?

거참 벌써 많이도 들여다보셨네.

누구누군 진짜 가끔 툭툭 새어 나오는 지식을 어떻게든 꿰맞춰 가며 죽을 둥 살 둥 버텼는데 말이지.

[커흠.]

그래도 염치는 있으시구만.

아무튼 각설하고서.

[무엇을 원하는가?]

대강의 입장표명이나 정치관에 관한 이야기가 끝나기가 무섭게 머릿속의 로베스피에르가 선수를 쳤다.

무엇을 원하냐, 라.

그야 당연히 무사히 21세기 대한민국으로 돌아가고 싶지.

물론 이 양반이 무슨 요술쟁이도 아니고 방법을 알고 있을 리도 만무하지만 말이다.

[흠, 사실 짐작 가는 구석이 한 가지 있기는 하네만.]

···뭐요?

[간단하네. 나의 육신이 죽으면 자연스레 자네의 영혼도 풀려나지 않겠는가? 몇몇 신학자들은 육신을 정신을 가두는 감옥에 빗대고는 하지. 그렇다면 막시밀리앙 드 로베스피에르라는 감옥이 사라지면 자연히 자네의 영혼도 해방되지 않겠나.]

오-는 무슨 개뿔이.

그걸 지금 해결책이랍시고 늘어놓는 건가?

그렇게 해방되어봤자 내 영혼이 내 시대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이 시대의 사후세계에 붙들리면 말짱 꽝이잖아.

[아뿔싸.]

아뿔싸 좋아하시네.

그리고 예상은 했지만 이 인간, 제정신이 아니다.

주로 목적을 위해서라면 제 한 사람의 희생쯤이야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는 점에서 말이다.

생존본능이 망가지기라도 한 건가?

[무슨 사람을 고장 난 기계 취급하고 있군.]

로베스피에르가 불쾌하다는 듯 쏘아붙였다.

[자네가 진정 3세기 뒤의 미래에서 온 미래인이라면 우리의 혁명은 성공했네. 지구 반대편 꼬레까지 나와 우리 동지들의 혁명정신이 전해졌으니 내가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참으로 눈부신 미래더군. 지금 내게 그럴 자유만 주어진다면 죽을 때까지 펑펑 울다가 절명한다고 하여도 아무런 후회도 남기지 않을 자신이 있네.

자네는 내가, 우리가 끝내 승리했고 저 압제자들이 패망했다는 산 증거 그 자체야. 혁명정신이 옳았음이 이미 증명되었는데 내가 이까짓 비루한 목숨에 연연해봐야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설령 지금 내가 쓰러져도 내 뒤로 민중의 붉은기를 하늘 높이 치켜들 용감한 후배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으니 내겐 더는 여한 따윈 없네.]

저기요. 아직 그 대혁명 다 안 끝났는데요.

[아뿔싸.]

아뿔싸 진짜 좋아하시네.

아무튼 요점은 제 한 사람의 목숨보단 혁명의 성패가 더 중요하다, 이거겠지.

이건 이것대로 광인의 사고방식이긴 한데, 일단 생존 회로가 고장이 난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으니 이만하면 됐다.

요컨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서 혁명을 성공시키면 되는 거 아닙니까?'

[···이것저것 많은 게 빠지긴 했는데. 일단 그런 거로 치지.]

투정 부려봐야 소용없다.

만약 로베스피에르가 죽어서 내가 21세기 대한민국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확신만 있다면 나도 조금 더 매정하게 굴었겠지만, 이 시대의 사후세계로 끌려갈 가능성이 남아있는데 내 아까운 목숨으로 도박할 순 없다.

최악의 경우엔 이 인간 세상이 영혼은 있는데 사후세계는 없는 모 연금술사 세계관일 수도 있는 거거든.

[연금술사?]

아, 여기까진 못 봤구나.

아니면 구태여 안본건가?

아무튼 지금 로베스피에르가 죽는다고 내가 21세기로 돌아갈 수 있다는 보장이 없는 이상 로베스피에르가 죽게 둘 순 없다.

하지만 지금 이 몸은 나 혼자만이 아니라 혁명하는 기계 로베스피에르와 공유하는 공공재.

그럼 설령 내가 바라지 않더라도 이 혁명하는 기계는 원 역사처럼 목숨 아까운 줄 모르고 마구 폭주하려 들 거고, 그러다가 이 양반이 운명처럼 단두대로 끌려가면 나 박민혁도 같이 끝장나겠지.

그럴 바에야 내가 가진 재주와 지식을 이용해 혁명을 성공시켜서 이 양반이 단 하루라도 더 연명할 수 있도록 돕는 게 상부상조하는 길이겠지.

운이 좋으면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21세기로 돌아갈 수도 있고, 설령 돌아가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요절은 피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 잘 통해서 좋군.]

이래 봬도 21세기 대한민국에 불평불만 한가득한 반골청년이었걸랑.

내 나라도 아니고 남의 나라를 위해 죽을 둥 살 둥 발악해야 한다는 건 좀 마음에 안 들긴 하는데, 뭐 어쩌겠나.

이건 원래 이 양반의 몸이고 난 지금 남의 집에 세 들어사는 처지니까 집주인한테 맞춰줘야지.

철컥.

"···어머나, 안에 계셨네."

그렇게 한창 또 하나의 나와 티키타카를 주고받는데 느닷없이 문이 열려서 돌아보니 엘레오노르 아가씨가 이쪽을 바라보며 놀란 듯 입을 가리고 있었다.

아마 눈치로 때려 맞춰보자면 몇 번 노크했는데 내가 집중하느라 아무 반응이 없다 보니 잠깐 외출한 줄 알고 방에 들어온 모양이었다.

손에 들고 있는 청소도구들까지 고려해보면 내가 없는 사이 방 청소를 해주려던 거 아니었을까?

[커흠!]

헌데, 이 양반의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

[처녀가 외간 남자의 방에 허락도 없이 들어오다니, 지금 이게 뭐 하시는 짓입니까! 뒤플레, 그대도 한창때의 여인이라면 몸을 소중히 해야···!]

"청소라면 제게 맡겨주십시오."

싱긋.

머릿속에 고래고래 울려 퍼지는 로베스피에르의 횡설수설을 뒤로한 채 엘레오노르 아가씨한테 먼저 손을 내밀었다.

뒤플레, 라는 건 아마 저 아가씨의 성이겠지.

대단한 귀족 집 규수로 보이진 않으니 다른 존칭 다 빼고 엘레오노르 뒤플레가 저 아가씨의 이름인가?

예쁜 이름이긴 하네.

"네···."

엘레오노르 아가씨, 아니 로베스피에르처럼 뒤플레 아가씨라고 불러줘야 하나?

아무튼 어느 쪽이건 간에 아가씨는 당황했는지 얼굴을 홍당무처럼 붉히며 내게 청소도구를 건넨 채 자리를 떴다.

사랑과 정열의 나라 프랑스라길래 이때부터 자유분방할 줄 알았더니 그건 아닌 모양이지?

아니 그보다도.

"이봐요, 아저씨."

[···.]

"저 아가씨 올해로 몇 살이십니까."

[···스물셋. 나와는 10년 차이로 알고 있네.]

거의 띠동갑이잖아.

도둑놈일세?

혁명가라는 게 원래 나라 도둑이긴 한데 이건 좀 너무한 거 아니냐고 10할.

[시끄럽네, 나도 사나이야! 한창 혈기 왕성한 시절을 지긋지긋한 사내놈들과 나라의 앞날을 근심하느라 칙칙하게 보냈으면 이 정도는 괜찮지 않은가! 애당초···!]

오, 샤랍.

나라도 모자라 10년 연하의 아가씨까지 훔치려 드는 희대의 괴도 막시밀리앙 드 로베스피에르를 도로 의식 한편에 밀어 넣고서 땅이 꺼지라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내 팔자야.

누군 태어나서 엄마 이외에 여자 손 한번 못 잡아봤는데 도대체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집주인 썸까지 챙겨줘야 하나.

***

이날 우리 둘이 한 몸을 공유하면서 협의한 사항을 정리하자면 크게 다음과 같았다.

하나, 주도권은 지금처럼 내가 가지되 로베스피에르의 의견을 충분히 경청하고 또 실제 운영에 적절히 반영한다.

둘, 비밀 같은 건 절대로 없음. 정말로 프라이버시적인 정보만 빼고 전부 공유한다.

셋, 순발력이나 임기응변이 필요할 때는 그때그때 영감이 떠오르는 사람이 알아서 선수 치기.

하나같이 엉망진창이지만 또 달리 보면 현 프랑스 의회의 축소판이나 다름없다.

아니, 우린 적어도 누가 대장인지 정도는 정했으니까 차라리 낫나?

그냥 이 몸을 로베스피에르가 도로 가져가면 되는 거 아니냐고 했더니 우리의 혁명하는 기계 왈.

[카이사르의 맞수는 브루투스가 아닐세.]

그저 올곧기만 했던 혁명하는 기계로는 나폴레옹에 맞설 수 없다, 이거겠지.

뭐,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 타협 없는 외골수였기 때문에 후세에 두고두고 기억된 거기도 하지만 그래봐야 로베스피에르는 본인 생전에 혁명을 완성하지 못하고 죽은 실패자거든.

가끔은 타협하고 때로는 신념을 굽혀서라도 혁명을 이뤄낸 승리한 혁명가들의 평가가 이념별로 갈리는 반면 로베스피에르는 대체로 부정적인 평가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후대에 두고두고 기억될만한 위대한 저술 활동을 남긴 사상가도, 그렇다고 혁명의 광기를 훌륭히 다스린 지도자감도 아니라는 거지.

[···그렇게까지 말할 건 없었잖은가?]

네, 다음 나폴레옹 깔개.

자코뱅 동지들 숙청할 시간에 전위당부터 만들었어야지 시끄러운 소수파 주제에 제 살 깎아 먹기에 집중했으니 반동 안 당하고 배기냐.

솔직히 내가 보기에 나폴레옹이 두고두고 제삿밥 먹여줘야 할 1등 공신은 암만 생각해도 이 양반인데 황제가 된 다음 나폴레옹이 제삿밥 챙겨줬다는 소리는 끝내 못 들었다.

하다못해 이 양반 형제자매들한테 귀족작위나 봉토라도 하나씩 다 챙겨줬어야 나폴레옹이 황제 즉위할 때 로베스피에르한테 입은 은혜를 조금이나마 갚을 텐데 말이지.

배은망덕한 나보 놈 같으니라고.

[크흠.]

그래도 내 머릿속을 들여다보더니 뭔가 깨달음이 있기는 한 모양이구나.

아득바득 아니라고 덤벼드는 게 아니라 머쓱해 하는걸 보니까.

그래, 이 양반 목이 잘리고도 장장 200년을 목숨 걸고 머리채 끄들고 싸워댄 투쟁사의 편린이라도 들여다봤으면 당연히 그래야지.

"그럼 개회, 를 선언해도 괜찮겠습니까?"

상석에 앉은 아저씨가 모처럼의 상념을 깼다.

한눈에 봐도 내 눈치를 살살 보고 있는 게 새삼스레 내 위상이 달라졌다는 실감이 든다.

저 사람은 자기 자리에 그대로 있는데 날 대하는 태도만 달라졌다면 결국 저 상석에 앉은 양반들도 내 눈치를 봐야 할 만큼 내가 커졌다는 소리일 테니까.

싱긋.

"예, 시작해주십시오."

물론 그런다고 쫄릴 이유는 없다.

우리의 최루탄 교수님이 말년에 노망이 나서 다 말아먹긴 했지만 이 박민혁도 나름 여의도행을 꿈꾸던 야심가고 최 교수님이 총애하던 기린아다 이거야.

저만 잘난 줄 아는 정치동아리 꼴통들과 부대낀 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저 꼴통들 쪽에서 먼저 우리가 밀린다고 숙여준 이상 후퇴는 없다.

기세.

결국 기세밖에 없다.

대가리에 총구를 겨눠도 끄떡 않을 허세와 깡따구 없이는 저 꼴통들을 길들일 수 없다.

"다들 절 보고 싶어서 이렇게 금방 초대해주신 거잖습니까? 어디 좋을 대로 시작해주십시오."

그러니 뻔뻔해지자.

내 낯짝은 나의 방패요, 세 치 혀는 나의 검일지니.

오늘만큼은 저 마라나 에베르보다도 더욱 맹렬하게, 최선두에서 위풍당당하게 적과 맞서 싸워야만 한다.

그래야 앞으로 저것들이 날 상전으로 모시진 않아도 눈치라도 볼 테니까.

우리의 존경하는 최루탄 교수님과 지난 2세기에 걸쳐서 제 목숨 던져가며 불의에 맞선 반골 선배님들의 명예를 위하여 나는 오늘 미친개가 된다.

털보씨 지켜봐 줘.

아, 물론 링컨형 말이다.

[미친놈.]

입닥쳐, 막시밀리앙.

너도 혁명가 나부랭이가 지금처럼 중요한 순간에 초치고 싶어?

벌떡

개회가 선언됨과 동시에 떡두꺼비처럼 독기를 품고 이쪽을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는 오를레앙공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선수를 가져가시겠다?

이렇게는 못 보내지.

"존경하는 의원님들."

"루이 카페와 그 반역도당을 토벌합시다."

어머나 세상에.

공교롭게 나와 오를레앙공이 한마음 한뜻으로 입을 맞춘 것처럼 됐네.

물론 저 두 눈 부릅뜬 오를레앙공이 루이 카페 토벌을 주장하기 위해 선수를 쳤을 리는 없지만. 

중요하지 않다.

"이어서 제안합니다."

곧 그렇게 될 테니까.

"여기 계신 오를레앙공-루이필리프 의원을 우리 의회군의 총사령관이자 전시수상으로 추대하고 싶습니다."

"···로베스피에르 의원, 그 말씀은."

"폐주는 우리 의회의 퇴위 권고를 무시했습니다. 국민위병 총사령관 라파예트 후작과 함께 트루아로 도망쳤으니 머지않아 폐주가 이끄는 근왕군이 파리로 쳐들어오겠군요."

고로.

"전쟁입니다."

혼란에 빠진 좌중의 면면을 하나하나 살피며 덧붙였다.

"다들 대체 이제 와서 무엇을 망설이고 계신 겁니까? 자. 어서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국민의 왕국을 지키기 위하여 전시수상을 도와 반역자 루이 카페에 맞서 싸웁시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감히 대답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거면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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