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화 (11/154)

주일미사

다행히도 일요일 아침부터 숙취로 해롱해롱하는 불상사는 없었다.

[뭘 마신 게 있어야 숙취가 생기지. 동지들 무안하게 혼자 홀짝거리고 있었으면서 무슨.]

입닥쳐, 막시밀리앙.

나 박민혁은 평소 음주를 즐기지 않았다.

아니, 알코올 그 자체를 혐오했다.

괜히 의식이 몽롱해지면 평소엔 안 할 실수를 하게 되고 마시다 보면 뇌세포가 망가지니까 두뇌활동에 악영향이 가거든.

고로 커피 만세다.

길잃은 현대인의 구세주, 철야의 인도자.

(주) 카페인 만세.

[수다 떨기 좋아하는 아낙네들이나 할 소리를 하고 있군.]

호, 꼴에 18세기인이다 이거지?

21세기식 정치적 올바름 맛 좀 볼텨?

[됐고. 슬슬 나갈 채비나 하게.]

응? 일요일 아침부터 어딜 가려고?

[성당 안 갈 텐가? 그래도 프랑스인이 주일미사에는 참례해야지.]

···오, 멀더. 지금 내가 뭘 들은 거죠?

콘서트 하다가 하트 날리는 갱스터 래퍼를 목격한 것 같은 기분이다.

주일미사 나가자는 로베스피에르라니.

주여, 이 죄 많은 현대인을 용서하소서.

[누굴 에베르 같은 불한당으로 착각하는 모양인데.]

또 하나의 내가 불쾌하다는 듯이 쏘아붙였다.

[나는 이신론자일세. 보다 합리적인 시야로 신을 섬기는 거지 신의 존재를 부정한 적은 단언컨대 한 번도 없어. 내가 파렴치한 무신론자였다면 루이 카페가 보는 앞에서 학생대표로 축사를 낭독할 수 있었을 것 같은가?

내가 혐오하는 건 기적이라는 사기극으로 민중을 현혹하는 사제들과 맹목적인 신앙으로 이성과 합리를 길들이려 드는 봉건 질서일세. 자네가 존재함으로써 영혼의 실재가 증명된 이상 전지전능한 창조주의 존재 여부는 더는 논쟁 대상이 아니야.]

오, 18세기인이란.

하기야 이 시대에는 이것도 엄청나게 진취적인 종교관이겠지.

하도 냉담자가 많아서 종교단체들이 전전긍긍한다는 21세기와 교회에 안 나가면 사람 취급도 해주지 않는 18세기 말을 비교할 수는 없을 거다.

프랑스 제1공화국만 해도 기독교를 대체할 다른 관제 교단을 만들려고 했을지언정 신앙 그 자체를 민중으로부터 박탈하진 못했을 정도니까.

[그리고 뒤플레 아가씨도 슬슬 외출하실 테고.]

···이보쇼.

이거 암만 봐도 잿밥이 목적이잖아.

[아뿔싸.]

아뿔싸 좋아하시네.

여하간 집주인님이 그렇다니 투덜거리면서도 나갈 채비를 마치고 셋방을 나서니까 한껏 차려입은 엘레오노르 아가씨가 깜짝 놀란 듯이 이쪽을 본다.

"주일미사에 가려 하십니까?"

일단 뻔뻔스레 웃고 보자.

"네···."

"마침 잘됐군요. 저도 막 나갈 채비가 끝난 참이었으니 괜찮으시다면 이 필부에게 아가씨를 섬길 영광을 허락해주시겠습니까?"

"네, 넷!"

제안하자 마자 덥석 받아들이는 것도 그렇고, 우물거리고 있었던 것도 그렇고 아무리 봐도 같이 나가려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그냥 눈치껏 모른척해 주기로 하자.

아직 18세기 말이고 여성이 먼저 동행을 제안할 만큼 사회적 분위기가 널널한 것 같진 않으니까.

집주인님 썸에 보탬이 되지는 못할망정 방해가 되지는 말아야지.

[자네, 혹시나 하는 이야기지만-.]

남의 여자에 눈독 들이진 않을 테니까 괜한 오해마쇼.

이래 봬도 순애물만 챙겨보던 건전한 놈이다, 이거야.

괜히 오해 살 일 피할 겸, 지루한 주말 미사도 피할 겸 집주인님께 잠시 몸을 돌려드리고 혼자서 18세기 말 파리 구경이나 하고 있기로 했다.

흠.

'···왜들 이렇게 지지리 궁상이야?'

저번에는 다들 누굴 죽여라, 살려라 떠들어대고 있다 보니 미처 몰랐는데.

또 하나의 내가 엘레오노르 아가씨와 재잘거리는 틈에 찬찬히 살펴보니 이 박민혁의 눈에 비친 18세기 말 파리는 온통 침울함과 빈곤함만이 가득했다.

다들 아침잠이 덜 깨서 비몽사몽 할 이른 아침이라 더 그런 것도 있겠지만, 당장 우리 둘처럼 성당으로 향하는 성실한 사람들조차 다들 세상 모든 고뇌와 고통을 짊어진 양 어깨는 축 처지고 젊은 사람들조차 허리가 굽어있다.

21세기 현대인의 친구가 비만과 성인병이라면 여긴 저체중과 영양결핍이라는 게 한눈에 보일 정도.

'하기야 이러니까 혁명이 터진 거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단 한 사람도 빠짐없이 우거지상이야.

나름 사람들 만나는 공적인 자리랍시고 다들 용쓰고 좋은 옷 차려입고 가꿨을 텐데도 구질구질함과 쿰쿰한 냄새를 가릴 길이 없다.

어제 밤새도록 술 마시고 승리를 자축하던 우리 동아리 친구들과 비교하면 이게 정말로 같은 나라에서 사는 사람들이 맞나 싶어질 정도.

전자는 그래도 21세기인의 관점에서도 복장이나 가발이 좀 후져서 그렇지 1세계 사람으로 보였는데, 지금 어기적어기적 미사 드리러 가는 파리 시민들은 인종만 백인이지 영락없는 3세계 난민들이다.

괜히 어젯밤 에베르가 팔자 좋은 부르주아지라고 비꼰 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는 국면이었다.

'이거 반동 터질 만했네.'

새삼스레 눈이 뜨이는 기분이다.

아직 혁명적 방법론은커녕 산업화라는 개념 자체가 없을 시대다.

물론 원시적인 증기기관이나 수력 공장들은 진작에 보급되었지만, 우리가 흔히들 말하는 산업혁명은 그 대영제국에서조차 간신히 싹이 피어난 정도.

당연히 그 유럽이라고 한들 동시기 조선 같은 동아시아와 비교하여 보유한 부의 총량이 그렇게까지 압도적일 리 없다.

그러니까 여기도 아직까진 보릿고개 걱정하는 전근대 농본사회라는 거다.

이러니 독재자가 된 로베스피에르가 기껏 높으신 양반들의 배를 째봐야 절대다수의 프랑스인들에겐 입가심조차 되지 않았겠지.

부의 총량 자체가 귀족 개개인이 사치하기엔 충분해도 사회 전체가 더욱 높은 삶의 질을 향유하기엔 턱없이 부족했으니까.

'지금 이 프랑스에 필요한 건 이런 정치적인 혁명이 아니야.'

산업혁명이지.

일단 산업혁명만 제대로 터지고 나면 부의 총량이 늘어나면서 그만큼 부를 재분배할 때 개개인에게 돌아갈 몫도 늘어나고, 무엇보다 도시 부르주아가 봉건지주를 압도하게 되면서 정치적인 혁명도 자연스레 이뤄질 거다.

지금 한창 자본주의가 꽃피우고 있을 영국처럼 말이지.

그에 반하여 로베스피에르 정권은 부의 재분배라는 당근으로 민생을 개선하지도 못하고, 산업화라는 방향성을 제시하지도 못한 채 그저 공포정치만 앞세웠으니 끝내 패망하고 말았을 거다.

'털보 씨, 당신은 도덕책.'

크흑, 오늘따라 밴댕이 소갈딱지 같던 당신이 유독 그립읍니다.

아무튼 이제야 비로소 저 오를레앙공이나 루이 카페를 눈앞에서 치워버리고 나면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가 대강 보이는 느낌이다.

문제는 경제야, 이 바보들아.

여기가 무슨 어디 시골 마을도 아니고 무려 프랑스의 천년 도읍 파리인데 주일미사 보러온 사람들이 3세계 난민 꼬락서니고만 혁명이고 뭐고 사람들 머리에 들어오겠냐.

무조건 잘 살아 보세부터 달려야지.

경제 성장 없이는 혁명의 내일은 없다.

문제는 그 방법론인데-흠.

'···나폴레옹이랑 구태여 척져야 하나?'

암만 생각해도 그냥 혁명 수출하는 겸사겸사 이웃에 위성국들 설치해서 경제블록 확장하고 약탈품과 전쟁배상금으로 산업화하는 게 가장 쉽고 빠를 것 같은데.

무엇보다 프랑스 국민들도 좋아할 테고.

우리의 혁명적 부르주아지들이 제아무리 날고 기어봐야 프랑스 하나로 산업혁명은 무리일 것 같단 말이야.

어차피 유럽 놈들 산업혁명 제대로 터지고 나면 세계 곳곳에 식민지 설치하면서 놀 텐데 그 전에 제국주의 불주사인 셈 치고 죄다 산업혁명을 위한 경제 식민지로 굴려버리면 안 되나?

내가 유럽인도 아닌데 우리 집주인님을 위해 프랑스만 챙기면 됐지 왜 전 세계적인 범죄행위에 동참해줘야 하지?

'어, 생각보다 솔깃하네.'

그냥 나폴레옹이랑 협력할까?

걔가 야심이 있어서 그렇지 군재만 따지면 프랑스는커녕 세계사를 통틀어도 비견될 놈이 다섯 손가락에 꼽을 텐데.

주위의 수구반동 봉건 왕조들 싹 인민무력으로 조져버리고 파리 조약기구 함 달려?

레볼루숑의 붉은 기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와 혁명의 붉은 태양 막시밀리앙 드 로베스피에르.

크-.

'뭐, 지금은 일단 이런 방안도 있다로 넘어갈까.'

이미 집주인님이 나보 놈을 프랑스의 카이사르라고 이를 바득바득 갈고 있는데 내가 옆에서 설득할 자신은 없단 말이지.

하지만 파리 조약기구라는 발상 자체가 틀린 것 같지는 않다.

나라가 되었건 사회가 되었건 기업이 되었건 일단 거대해지는 순간 굼떠지기 마련이다.

괜히 중화제국들이 만성 비만에 시달리고 다른 유럽 나라들 다 산업화할 때 러시아 혼자서만 멀뚱멀뚱 있다가 혁명 당한 게 아니란 말이지.

그럼 프랑스가 일단 유럽을 제패하고 나면 당장 입에 들어간 덩어리들을 소화하느라 최소 백 년은 꿈쩍도 못 할게 뻔하다.

설령 100년 뒤에도 그걸 소화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고, 바로 옆에 위성국들 신경 쓰느라 대륙이나 대양 너머에 식민지 펴는 건 꿈도 못 꿀 가능성이 크다.

이미 유럽 전체가 식민지나 다름없는데 뭣 하러 남들 밥그릇까지 탐내겠어.

내가 구상한 대로만 된다면 이 세계선의 유럽 근대사는 폭발적인 식민지 확장이 아니라 어떻게든 유럽을 길들이려는 프랑스와 폭군을 끌어내리려는 위성국들의 대결로 기록되겠지.

날렵하고 근육질의 사자가 아니라 살이 뒤룩뒤룩 찐 공룡이 될 테니까.

'···그러다가 혹시나 전 유럽이 기적적으로 의기투합하면 이제 문제가 심각해지긴 하는데.'

그거야 자연재해 같은 상황이고 애초에 얘네가 의기투합할 때까지 아무것도 안 한 다른 대륙들의 잘못이라고밖에는.

그리고 내가 앞으로 최선을 다해서 혁명 수출하며 산업화 츄라이츄라이하고 다닐 예정인데 그동안 하라는 산업화도 안 하고 인구며 자원이며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는 덩치로 유럽 하나 당해내지 못한 놈들이 잘못? 아닐까!

천에 하나 만에 하나라도 유럽대륙이 의기투합에 성공한다면 내셔널리즘이 아니라 코스모폴리탄이나 인터내셔널적인 관점이 승리했다는 이야기일 테니까 딱히 세계인들에게도 나쁠 건 없을 테고.

그때야말로 최 교수님이 노래하던 세계단일체제, 진정한 만민의 공화국이 태동하는 순간이겠지.

집주인님이 썸녀와 모처럼의 데이트에 헬렐레하는 틈을 타 나는 남몰래 머릿속으로 앞으로의 방법론을 가다듬었다.

***

그렇게 길고 지루한 주일미사가 끝나고 난 뒤.

"그럼 은혜로운 주일 되십시오, 뒤플레 아가씨."

"네, 의원님도요."

우리의 집주인님은 헤실헤실 웃으며 셋방으로 돌아가는 뒤플레 아가씨를 배웅했다.

보나 마나 오늘 주일미사에서 신부가 뭐라고 떠들어댔는지 하나도 기억 못하겠지.

마음 같아서는 이대로 애프터까지 신청하고 싶었겠지만, 그나마 혁명가의 마지막 양심이 제아무리 주일이라지만 핵폭탄을 터트려놓고서 종일 이래저래 놀 수는 없다고 제동을건게 분명하다.

[시끄럽네.]

오, 샤랍.

썸녀랑 좋은 시간 보내시도록 입 다물고 얌전히 있었으면 칭찬을 해줘야지 구박이나 주다니.

아, 프랑스의 앞날이 참으로 어둡도다.

[멋대로 남의 몸을 가로챈 주제에 뻔뻔하기는.]

그래서 내가 언제 가로채고 싶었냐고.

나도 기왕 몸을 같이 쓸 거면 로베스피에르 같은 실패한 혁명가보단 성공한 혁명가께 수학 받고 싶었다.

[···정말인가?]

물론 농담이다.

내가 왜 구태여 사내놈의 몸을 탐하겠어.

한 번쯤 대화하는 정도면 모를까 한 몸을 같이 쓴다니 딱 질색이다.

그러니까 말 한마디에 그리 의기소침해지지 마쇼.

괜히 나까지 신경 쓰이잖아.

[크흠. 그래서 이제 어디부터 갈 생각인가?]

···글쎄?

딱히 거기까지 생각해본 적은 없다.

기왕 어젯밤 말을 꺼낸 김에 당군이나 모집하러 다닐까, 도 생각해봤는데 지금 내가 군권까지 손을 뻗으면 다들 날더러 호감 간다고 흠씬 두들겨줄 거란 말이지.

솔직히 말하자면 워낙에 비상시국이니 당연히 오늘도 의회에 출근할 거라 생각했지 주일이랍시고 한평생 근처에도 안 가본 성당에 가게 될 줄은 몰랐다.

아직 혁명의 광기를 덜 봐서 그런 건지 아니면 비교적 온난한 나라에 살다 보니 마음에 여유가 넘쳐서 그런 건지 18세기 프랑스인의 머릿속은 알다가도 모르겠단 말이지.

[흠, 그렇다면 자네 말대로 지금부터 일찌감치 정당을 꾸려보는 거 어떤가?]

전위당이라.

"나쁘지 않네."

[그렇지?]

물론 이미 자코뱅 클럽이니 코르들리에 클럽이니 나름 당파들은 있긴 한데, 옆에서 쭉 지켜본바 얘네들은 근대적인 정당조직이라기보다는 그냥 정치 동아리에 가깝다.

구성원 간의 위계서열이 없다는 게 그만큼 자유롭고 평등하다는 이야기이긴 한데, 아무리 그래도 간부진과 일반당원 정도는 구분해야지.

당장 마라만 봐도 나나 당통이 옆에서 말리지 않으면 아무 때나 불쑥불쑥 치고 나오려 들잖아.

이렇게 정말로 최소한의 권위나 위계 서열조차 없어서야 정당은커녕 정치적인 파벌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일단 당수가 누군지, 또 이 부분은 누구 담당인지 역할이나 책임 소지가 딱딱 나뉘어있지 않으면 결국 각자 두각을 드러내기 위해서 서로 경쟁하듯이 폭주하다가 자멸하기 마련이거든.

내가 각 잡고 이 시대를 공부해본 건 아니지만 자코뱅 정권의 패망에 이 위계질서의 부재가 크게 한몫했으리라고 장담할 수 있다.

[그럼 카미유를 찾아가 보게.]

카미유라.

선인장에 꽃이 피었군.

[···카미유와 선인장이 대체 무슨 상관이 있는지 나로선 짐작도 안 가네만. 내 말은 카미유 데물랭 말일세. 나와는 근 이십년지기고 함께 변호사 공부를 했던 동창이기도 하니 모질게 굴지는 않을 거야. 오히려 우리가 놓치고 있는 조언을 해줄지도 모르지.]

흠, 왠지 이 사람도 로베스피에르 때문에 단두대로 끌려갔을 것 같은데.

[자네 지금 나와 카미유의 우정을 모욕하는 건가!]

설마.

독재자 막시밀리앙 드 로베스피에르를 모욕하는 거지.

하지만 내 기억을 되짚어봐도 카미유 데물랭이라는 이름은 없다.

나름 로베스피에르가 정당을 만들려고 할 때 가장 먼저 언급할 정도면 이 시대엔 꽤나 잘나가는 정치인일 텐데 말이지.

그동안 의회에서 불쑥불쑥 치고 나가던 거물급 중에서 카미유라는 이름은 없었던 것 같고.

[···수줍음이 많은 친구일세. 공적인 자리에선 말을 좀 심하게 더듬거리든. 그래서 변호사 시험을 제법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했는데도 끝내 변호사로서의 길을 포기해야만 했지.]

아항.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내가 봐도 거긴 본인이 알아서 발언권을 챙기지 않으면 입도 뻥긋 못하는 야생 사파리 그 자체였으니까.

사적으로 만나면 아무리 훌륭하고 고매한 의견을 가진 위인이라도 성격이 소심해서 발언권을 쟁취하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 없는 거다.

[그라면 분명 우리에게 큰 힘이 되어줄 거야.]

아무튼 집주인님께서 이렇게까지 말씀하시니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일단 그 카미유라는 사람을 찾아가자고 마음먹고 나니 찾기는 쉬웠다.

주변 길도 널찍널찍하고 벽돌에 윤기가 좔좔 흐르는 게 로베스피에르의 셋방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훌륭한 집에서 살고 있었거든.

방도 제법 많은 게 이미 진작에 결혼해서 가정을 꾸린 것 같고.

학창 시절 학연 소리 아니었으면 이런 성공한 사람과 가난뱅이 노총각 로베스피에르가 절친이라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싶어질 지경이었다.

[농담이라 듣겠네.]

예이, 예이.

마음대로 생각하십셔.

똑똑.

"카미유, 있는가? 자네의 친우가 왔네!"

아무튼 시치미 뚝 떼고 다가가 문을 두드렸다.

본인이 20년 지기라고 할 정도이니 설마 내쫓기야 하겠어?

덜컥.

"···자네 지금 같은 시국에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리 한가히 쏘다니는 건가?"

하지만 노크하기가 무섭게 현관문을 열고 튀어나온 카미유는 내가 보기에도 썩 환영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어처구니가 없다고 해야 하나, 다급하다고 해야 하나.

덥석.

"일단 안으로 들어오게."

다짜고짜 내 손목부터 잡고 보는 카미유를 향해 외쳤다.

"이봐, 이보게! 무슨 일인지 말 정도는 해줘야 할 것 아닌가!"

"무슨 일이고 자시고 막시밀리앙, 자네가 가장 잘 알 것 아닌가! 지금 온 파리에 자네가 오를레앙이 우리 공화파에 심어놓은 첩자라는 낭설이 쫙 퍼졌단 말일세!"

···네?

뭐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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