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방위
"귀하신 손님이 왔는데 차린 게 없어서 어쩌죠."
"저야 커피 한잔이면 충분하니 신경 쓰실 것 없습니다."
멈칫.
마담 데물랭의 사과를 적당히 받아치고 자리에 앉아 무심코 식탁 위에 각설탕에 손을 뻗다가 말았다.
생각해보니까 이 양반 평소에 설탕조차 입에 안 대는 양반이었지.
정성껏 찻상을 준비했을 시종들과 아내분을 위해서라도 한 모금 홀짝 해봤지만 웩.
설탕을 안 넣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이 시대의 커피 품종이 아직 충분히 개량되지 않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내가 기대했던 그런 맛은 절대 아니다.
그래도 국회의원씩이나 됐으면 돈이 없을 만한 자리도 아닌데 21세기 날백수보다도 빈곤한 생활을 고집한다니 부르주아지란 대체?
[이래도 말로만 민중을 대변한다는 에베르가 나보다 민중에 가까워 보이는가?]
어, 그런 말은 한적 없는 것 같은데.
[뭣이.]
아무튼 이번만큼은 솔직히 인정한다.
우유나 시럽은커녕 설탕 하나 없는 커피라니 이게 콩 끓인 물이지 무슨 커피냐.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까 식사 때도 소금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단 말이지.
지금처럼 남의 집에 초대받았을 때나 회식 때야 그래도 사양 안 하고 이것저것 주워 먹기는 했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니 벌써 일주일 가까이 소금에 빵, 그리고 양파 수프만으로 끼니를 때우고 있었다.
그러다 가끔 목마르면 우유 한잔 마시고.
21세기 대한민국의 무료 급식이 이것보단 영양가 넘치겠다.
이게 무슨 국회의원이야?
기초생활수급자지.
[그렇다면 공화국에서 극빈자들을 위해 매일 고기죽을 나눠준다고?!]
어이쿠, 또 시작일세.
혼자 충격에 빠져서 망연자실한 집주인을 대신해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카미유 씨에게 먼저 안부 인사를 건넸다.
"이제 좀 진정이 되는가?"
"···도대체 왜 나보다 자네가 세상 편해하고 있는지 이해가 안 가는군. 지금 이게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모르는 건가?"
"천하의 막시밀리앙이 그것도 모르는 정치 초짜로 보이나?"
일부러 우쭐대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파리 시민들은 바보가 아니야. 그냥 심심할 때마다 꺼내서 씹을 거리가 필요할 뿐이지. 이번에는 운 나쁘게도 그게 나였다, 그것뿐일세."
"허."
"이미 눈치 빠른 이들은 누군가 의도적으로 퍼트린 소문이라는 것쯤은 짐작했겠지. 아무리 그래도 너무 갑작스러우니까. 만일 자네의 말이 사실이라면 나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을 생각일세."
왜냐?
그게 가장 유리하거든.
강한 부정은 곧 강한 긍정이라는 말이 있다.
자기는 사기꾼이 아니라고 말하다가 전 미국에 사기꾼으로 기억된 모 미국 대통령처럼 이런 이슈에선 괜히 나서서 아니라고 아득바득 우기는 게 더 위험하다.
어차피 새로운 가십거리가 생기면 대중은 오늘 뭐라고 떠들어댔는지 금방 잊어버릴 거다.
하지만 내가 혐의를 부정하면 그 자체만으로 새로운 가십거리가 되고, 계속 낭설이 확대재생산 되면서 점점 없는 호랑이도 만들어내게 되겠지.
지금은 그냥 옆에서 뭐라고 구시렁거리건 구렁이 담 넘는 듯이 시치미 뚝 떼고 내 할 일이나 하고 있는 게 맞다.
무엇보다.
"카미유, 자네가 있잖은가."
당통처럼 넉살 좋은 미소와 함께 뻔한 소리를 꺼냈다.
"그거면 됐네. 고작 이런 낭설로 날 모함할 놈이라면 처음부터 나와는 동지도 뭣도 아니었다는 소리겠지. 오히려 이번 일로 누가 나의 친구이고 적인지가 분명히 밝혀질 테니 차라리 잘된 일인지도 모르겠군."
"···이 친구가 안 보는 사이에 낭만 소설이라도 읽고 왔나."
하아-.
식탁 너머의 카미유가 피곤하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며 의자에 주저앉았다.
"그래, 내가 졌네. 졌어. 요즈음 자네가 갑작스레 두각을 보이니 시샘 많은 누군가가 일을 키운 거겠지."
"아니면 오를레앙 본인이 소문을 퍼트렸을 수도 있고."
"그 여우가? 그래서 본인에게 무슨 득이 있다고?"
득이야 많겠지.
우리 공화파의 내분을 획책하던가, 아니면 트루아의 루이 카페에게 의회가 제 손아귀에 들어왔다고 과시하던가.
카미유는 같은 공화파 동지들을 의심하고 있는 모양이지만 내가 보기엔 오를레앙공이다.
아직 증거는 없지만 아무튼 내 감이 그렇다.
"아마 브리소, 그놈이 획책한 일이겠지."
그게 누군데요.
[자크 피에르 브리소. 우리와 같은 공화파이지만 조금 더 기회주의적인 놈이지. 뭐, 누군가는 온건파라고 하겠지만 말이야.]
아아, 혁명적 부르주아지 말고 진또배기 부르주아지라는 소리구만?
그렇다면 그놈도 유력후보고 말고.
급진공화파의 영수격으로 급성장한 내가 사실 오를레앙공과 뜻을 함께하는 동지라는 인식이 퍼지면 그만큼 민의도 온건해질 테니까.
구태여 민주공화국일 필요도 없이 입헌군주정만 되어도 감지덕지하는 부르주아지라면 더할 나위 없는 전개일 거다.
그놈들한텐 그까짓 혁명보단 이 아작난 경제를 재건하는 게 무엇보다 우선일 테니까.
돈 벌기도 바쁜데 민주주의고 민권이고 다 무슨 소용이냐 이거겠지.
흠.
"화염병이라도 던지고 와야 하나."
"···농담이라고 믿겠네."
아뇨 진담인데요.
이래 봬도 칵테일 하나는 기깔나게 만들 줄 아는데.
[칵테일?]
알면 다쳐.
우리 착한 혁명적 부르주아지 어린이는 그런 거 궁금해하면 안 돼요.
여하튼 없을 리가 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여기도 전형적인 부르주아지가 따로 있다는 걸 알았으니 됐다.
최소한 지금껏 만난 사람들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동지라는 소리거든.
솔직히 시대가 시대라 없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18세기 말 프랑스도 있을 건 다 있었구나.
이때 조선은 뭐 하고 있었더라?
"아무튼 당분간 몸을 사리는 게 좋아."
카미유씨가 벅벅 머리를 긁었다.
"하늘 높이 날아오르던 이카로스가 왜 추락했겠나? 인간 지성의 한계 때문에? 천만에. 보잘것없는 신들의 시기를 샀기 때문일세."
"그건 또 색다른 해석이군."
"칭찬으로 듣지. 여하간, 자네는 이카로스가 되어서는 안 되네. 태양을 정복해야 할 사람이 그런 형편없는 놈들에게 발목 잡혀서야 어쩌란 말인가. 어제 마라가 자네를 스파르타쿠스라고 부르는 걸 들었네. 하지만 난 자네가 스파르타쿠스를 넘어서기를 바라네."
결국 스파르타쿠스는 실패했으니까.
그라쿠스 형제도 마찬가지다.
지금껏 같은 하늘, 같은 꿈을 바라본 선지자야 수도 없이 많았으나 그들 중 목표한 지점에 도달하는 데 성공한 이는 단 한 사람도 없었다.
모두가 위대한 도전자였고, 실패자였다.
나는, 우리는 그렇게 끝나지 말라는 소리겠지.
"고맙긴 한데, 지금 내게 너무 과한 짐을 지우려 하는 거 아닌가?"
···좋아, 이거면 일단 면접은 만점이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건 영입뿐.
"자네도 아직 앞날이 창창한 청년인데 같이 헤쳐 나가야지. 스파르타쿠스가 두 사람이라면 능히 한 사람으로는 상상조차 못 할 기적적인 일들을 벌일 수 있지 않겠나?"
내심 으쓱하면서도 카미유 씨를 떠보기 위해 뻔한 내숭을 떨어보았다.
그러자 카미유씨가 곤란해하며 손사래를 치길.
"미라보 백작께서 그런 불상사를 당했는데 대체 내가 무슨 재주로 자네와 어깨를 나란히 한단 말인가? 나는 이만하면 됐네. 막시밀리앙이라는 기사를 졸졸 따라다닐 산초, 딱 그 정도면 충분해."
그래서 미라보 백작이 누군데 이 씹덕아.
[혁명 이래로 줄곧 국민의회의 수상이었던 자네. 카미유에겐 재능을 알아봐 준 은인이자 후원자지. 귀족치고는 혁명적인 인물이었지만, 불과 두 달 전에 방탕한 파티를 벌이다가 복상사하는 바람에 그만···.]
오우, 프랑스에는 그런 문화가 있나 보죠?
동방예의지국에서 온 숫총각에겐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일국의 수상쯤 되는 양반이 방탕하게 놀다가 급사라니.
이쯤 되면 당통 정도면 평균적인 프랑스 정치인인 거? 아닐까!
여하튼 대강 어떻게 된 일인지는 알겠다.
분명 미라보 백작이라는 사람이 살아있을 때만 해도 카미유 씨는 금줄을 타고 승승장구하는 기린아였을 거다.
공적인 자리에선 말을 더듬는 버릇이 있어서 야생 사파리에선 기를 못 편다고?
정치 스승께서 무려 백작에 일국의 수상인데 문제라도?
여차하면 미라보 백작이 나서줬을 테니 본인이 회의를 주도하진 못해도 한두 마디 거드는 정도야 일도 아니었을 거다.
하지만 그 미라보 백작이 급사해버렸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이 곱상한 아저씨가 혁명 때 얼마나 대단한 공훈을 쌓았는지야 몰라도 남 물어뜯는데 이골이 난 정치가라는 놈들이 긴장해서 말 더듬고 있는 우리 친구를 배려해주지는 않았을 거거든.
로베스피에르야 당통한테 한 수 물려주는 정치 새내기니 제아무리 이십년지기 절친이라도 도저히 챙겨줄 짬이 안 났을 것이고.
그렇다면.
"내가 제2의 미라보 백작이 되어주겠네."
지금은 어떨까.
아직 공식적으로 급진공화파의 영수라 추대받은 건 아니지만 이미 알 사람들은 다들 알 거다.
앞으로의 대권 경쟁은 오를레앙과 로베스피에르 두 사람의 독주체제라고 말이지.
괜히 탐욕스러운 부르주아지가 나랑 싸잡아서 오를레앙공까지 호감작하려는게 아니라고 해야 하나.
카미유씨가 생각지도 못했다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럼 자네도 복상사하겠다고?"
"···내가 그럴 사람으로 보이나?"
가끔 그게 남자의 로망이라는 놈들도 있던데 일단 난 아니다.
"농담일세 농담."
카미유씨가 장난스레 킥킥대며 덧붙였다.
"그 가난뱅이 노총각 막시밀리앙이 요 며칠 사이 출세하긴 했군. 이 천하의 카미유 데물랭을 수하로 거두겠다니 말이야."
"그럼 자네가 날 거두어줄 텐가?"
"내가? 주제를 알아야지."
절레절레.
"하지만 자네가 날 거두기에는 아직 이른 것 같은데."
"먼저 지반을 확실히 공사하고 난 다음에 권유하라는 소리인가?"
"그런 소리가 아니라, 자네 빈털터리잖은가. 내 한 달 인세라도 지급할 자신 있는가?"
[커흠.]
부르주아지란 대체.
분명 같은 계급일 텐데 이 까마득한 격차는 대체 뭐지.
새삼 이 시대에 푹신푹신한 쿠션까지 붙어있는 카미유댁 의자와 평평하고 딱딱했던 뒤플레 댁 의자가 대비된다.
기운을 내시오, 막시밀리앙 동지.
그대는 의심할 여지 없이 우리 혁명진영의 일원이오.
[칭찬 고맙네.]
뭘요.
칭찬으로 들었다면 나야말로 고맙지.
"그렇다면 동업은 어떤가."
아무튼 카미유 씨를 수하로 들인다는 제1안은 미련 없이 포기하고 플랜 B를 꺼내 들었다.
"동업? 자네 창업을 생각하고 있는 건가?"
"뭐 비슷하다고 해두겠네. 조만간 날 중심으로 하는 정당을 만들어볼 생각이야."
"그거라면 이미 코르들리에 클럽이 있을 텐데."
[덧붙여서 그 코르들리에라는 이름을 붙인 건 여기 있는 카미유일세.]
고오래?
그렇다면 진작 말을 해줬어야지.
괜히 권유하다가 서로 뻘쭘해지면 어쩌려고.
"내가 말했잖은가. 동업이라고."
정치 동아리 운운하면서 깎아내리려고 했던 건 취소다, 취소.
여기서는 차별화 전략으로 가자.
"내가 원하는 건 산하에 선전지를 거느리고 당규에 기초한 법치로 운영되며 의회정치와는 동떨어진 시민들조차 소정의 당비를 내고 권리당원으로서 의견을 표출할 수 있는 정당조직일세."
"···이야기만 들어서는 정부 속에 작은 정부를 만들겠다고 들리네만."
"뭐, 부정하지는 않겠네."
방법론적인 측면에선 크게 다를 것도 없으니까.
결국 선거의 본질은 권력투쟁이고 피 한 방울 흘리지 않는 내전이다.
특정한 이해집단의 목소리만 대변한다는 점을 빼면 독자적인 법규를 가지며 소속원들에게 세금까지 거두는 근대적인 정당은 이 시대의 관점에선 이미 그 자체로서 정부나 다름없겠지.
"하지만 우리 모두를 위하여 꼭 필요한 일일세."
"자네, 반란이라도 획책하고 있는 건가?"
[풋, 무장봉기를 위해 시민들에게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하자고 선동했던 놈이 내숭은.]
···아니 이보셔.
그거야말로 이 양반 찾아오기 전에 가장 먼저 알려줬어야 할 사실이잖아.
[아뿔싸.]
"지금 그게 바스티유의 사나이가 할 말인가?"
집주인 놈의 건망증을 애써 모른체하면서 자신만만하게 미소 지었다.
이럴 땐 원래 기세에서 밀리면 끝이니까.
괜히 당황한 기색을 내비쳐봐야 좋을 것 하나 없다.
내 바스티유의 사나이라는 별칭이 마음에 들었던 걸까?
"우선 첫 번째."
탁.
웃는 듯 마는 듯 오묘한 표정의 카미유가 손끝으로 커피잔을 치우며 입을 열었다.
"그 힘은 공격이 아닌 방어를 위하여 쓰겠다고 약속해주게."
"나를 무슨 술라로 생각하나 보군."
"아. 물론 막시밀리앙 자네는 술라가 아니지. 자네 같은 난쟁이가 무슨 수로 행운아 술라를 넘보겠는가."
다만.
"벌써 바스티유를 거론한 것만 봐도 알겠네. 자네, 내게 또 무장봉기를 선동하게 만들려는 거 아닌가?"
아닌데요.
굳이 선동 안 하고 당군 앞장 세울건데.
[이봐.]
물론 우리 집주인 탓에 그렇게 답할 수는 없었기에 둘러대기로 했다.
"모든 반란에는 이유가 있는 법일세."
프랑스 대혁명이 그러하듯이 말이지.
"물론 어떤 사회건 부조리가 없을 수는 없네. 사람들의 인내심이란 건 마치 스프링과도 같아서 말이야, 평소엔 그런 부조리를 꾹꾹 담아서 저장해두지. 반란이라는 건 그만큼 평범한 사람들에겐 무시무시하고 꺼림직한 것이거든.
결국 사람들이 버티고 버티다가 더는 버틸 수가 없어서 스프링이 부러질 때 비로소 반란이 시작되지. 고로 반란을 일으킨 민중에겐 아무런 죄도 없네. 애초에 민중이 더는 견딜 수 없을 때까지 나라를 망친 위정자들이야말로 진짜 반역자들이니까."
"흠, 그게 바스티유 이래로 지난 2년간 정립한 자네의 지론인가?"
"그렇다네. 따라서 모든 형태의 반란은 더는 무엇도 참을 수 없게 된 이 대지에 저주받은 자들의 정당방위고 방어전쟁이지."
왜냐하면.
"무엇 하나 가지지 못한 이들이 부유하고 힘센 자들을 핍박할 수는 없는 법이거든."
고로 혁명무죄 조반유리(革命無罪 造反有理)다.
개인적으로는 능력도 없는 주제에 욕심만 많았던 독재자의 전형이라고 생각하긴 하는데, 이 구호만큼은 마음에 쏙 들었다.
막상 본인이 반란 당했을 땐 딴소리한 양반이라는 점만 빼고 말이야.
"그러니까 내가 생각하는 방어와 자네가 생각하는 방어가 과연 같은 방어일지 잘 모르겠네. 물론 노력은 해보겠지만 말이야."
"예나 지금이나 궤변 하나는 여전하군."
"그럼 내가 변호사 활동을 어떻게 했겠나?"
막상 실제 활동한 건 우리 집주인님이지만 말이지.
"좋아. 그렇다면 두 번째."
샐쭉 웃으니 카미유가 기가 막힌다는 듯이 혀를 차며 검지와 중지를 펼쳐 보였다.
"재정만큼은 내가 직접 관리하겠네. 사실 여기까지 할 생각은 없었네만, 지금 자네가 하는 소리를 듣고 있자니 뭐라도 목줄을 쥐어야겠어. 듣자 하니 에베르, 그자가 하던 소리랑 똑같잖은가.
선전지도 마찬가지일세. 이제 와 자네한테 혁명사상으로 설교할 생각은 없었지만 선전지에 어떤 기사를 실을지 내가 직접 정하겠어. 이게 세 번째 조건이겠군."
···뎃?
[역시 카미유. 자네만 믿고 있었네!]
아니아니 사장님 이러시면 곤란하죠.
돈줄이랑 펜촉을 다 가져가 버리면 나보고 어쩌라고!
내심 고래고래 항소하는데 카미유가 냉소하며 대꾸하길.
"자네가 나보다 축재에 능한가?"
"···윽."
"아니면 언론인으로서 나보다 나은가? 미리 말해두지만, 난 자네가 한창 변호사 활동할 때부터 우리 프랑스 시민들에게 자유주의 담론을 선전하고 있었네.
으음, 모로봐도 정론이군.
허나 분하다!
덥석.
"좋아, 이번엔 자네가 이겼네."
내가 뭐라고 반박하기도 전에 몸을 가로챈 집주인이 카미유의 손을 마주 잡았다.
그걸로 모든 게 끝났다.
더럽다! 비겁하다!
이 인민의 적, 부르주아지 반동 놈들!
같은 계급이랍시고 가재는 게 편이다, 이거냐!
'큭, 어디 두고보자!'
집주인의 날치기 폭력에 당한 내가 할 수 있는 건 삼류 악당처럼 더러운 수구반동의 야합을 욕하는 것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