샹 드 마르스의 행진
막 동이 트던 이른 새벽.
"거 죽기 딱 좋은 날이군."
말끔한 사제복을 입고 나타난 자크 루 동지가 하늘을 우러러보며 중얼거렸다.
"그거 지금 신부님이 해도 되는 말 맞습니까?"
"그래, 그렇지. 경건함이 다소 부족했구만. 주님, 여기 한 놈 더 올라갑니다."
···설마 알고서 하는 말들은 아니겠지?
문득 자크 루 동지와는 밤새도록 만담 콤비 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 빨갱이 놈들이 또.]
입 닥쳐, 막시밀리앙.
까딱하면 죽게 생겼는데 현실도피 안 하게 생겼냐.
원래 괜히 실없는 소리 하면서 현실 도피하는 건 대표적인 PTSD 증상이라고.
"그래서, 이길 자신은 있소?"
자크 루 동지가 흘끗 샹 드 마르스 연병장에 모인 자칭 의회군을 둘러보며 내게 속닥거렸다.
문외한이 보아도 영 못미더운 오합지졸이다, 이거겠지.
하기야 당연한 소리다.
대강 어림잡아서 만명은 되려나?
정확히 세어보진 않았지만 하여튼 대충 파리를 지키자는 호소 한번에 이만한 숫자가 모였으니 하다못해 다들 죽을 각오로 비장하게 입 꾹 다물고 있었으면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고-로 시작되는 유명한 연설이라도 해보겠는데.
"아흐, 알딸딸하니 좋-다!"
"쪽. 쪽. 쪽."
"이 새끼가 갚으라는 돈도 안 갚고 어딜 얼쩡거리는 거야!"
"아니 지금 내가 이 목숨 바쳐 나라 구하겠다는데 그놈의 돈 이야기가 왜 나와!"
···이것들 암만 봐도 그냥 놀러 온 거잖아.
여기가 연병장이야, 클럽이야.
예비군 훈련소도 이것보단 낫겠다.
프랑스의 민주주의를 위하여 싸우겠다고 나선 용기 있는 민주시민들한테 이런 소리 하고 싶진 않았는데, 이 사람들 진짜로 사태의 심각성을 조금도 못 느끼고 있다.
한쪽에서 병나발 불고 있는 놈에 남들 보는 앞에서 물고 빠는 커플에 아직 뭐 해보기도 전에 아군끼리 쌈박질 중인 건달패거리에.
아주 개판도 이런 개판이 없다.
그래도 궁금해서라도 내가 나타나면 다들 연단을 주목해주지 않을까-기대한 내가 바보처럼 느껴질 정도로 이 파리 시민들은 끄떡도 없다.
내 낭만 돌려다오, 이 얼빠진 개구리 놈들아.
나의 시민군은 이렇지 않아.
[뭘. 언제나대로구만.]
아니다 이 반동아.
이럴 리가 없어!
나의 혁명군은 이렇지 않아!!!
"솔직히 이길 자신은 있는데-."
"있는데?"
"···살아서 돌아올 자신이 없습니다."
이런데 자크 루 동지 앞에서 혼자 허세를 부려봐야 뭐하나.
저 사람도 눈이 있고 귀가 있는데 고작 이걸로는 어림도 없다는 거 알겠지.
잘 무장하고 훌륭하게 조련된 전쟁영웅이 이끄는 정규군.
그에 반해 이쪽은 진짜로 급조한 오합지졸 민병대.
설령 모든 게 내가 생각한 대로 술술 잘 풀리더라도 저것들이 일단 제멋대로 폭주하는 순간 다 같이 죽는 거다.
뭐, 그럼 나야 어쨌건 라파예트도 파리 시민들을 학살한 학살자가 되는 거니까 엥간하면 저쪽에서 사려주기를 기도하는 수밖에.
"그럼 충분하잖소."
한데 자크 루 동지는 기분 좋게 껄껄대며 웃음을 터트렸다.
"가이우스 그라쿠스는 패배자였소. 아니, 사실 지금까지 나타난 모든 이들이 그러했지. 그들 모두 저 압제자들에게 목숨을 잃고 깃대마저 빼앗겼소."
하지만.
"지금 당신은 저 무시무시한 카이사르 군단에 맞서서 민중의 깃대만큼은 남길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구려."
툭.
자크 루 동지가 내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주었다.
"그럼 이놈은 이만 자리로 돌아가 보리다. 내 비록 군문에 나선 경험은 없으나 꼴에 주님의 목자이니 겁에 질린 어린양들을 훌륭히 다독여보겠소. 어디 의원님께서는 뜻하신 대로 가이우스가 되시구려."
"감사합니다, 신부님."
[···빨갱이 주제에 제법 강단이 있는 사람이군.]
그럼그럼.
원래도 사람들 선동해서 민간주도 부의 재분배하고 다닌 분이니 오죽하실까.
후우-.
잠시 숨을 고르고.
쨍그랑!
"친애하는 시민 동지들이여!"
텅 빈 와인병을 연단에 냅다 내리쳐 깨트려서 좌중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어젯밤부터 연단에 서기 직전까지 나 혼자 홀짝이던 싸구려 술이었다.
원래 내가 알코올을 싫어하긴 하는데, 오늘만큼은 진짜로 용기의 물약이라도 빌리지 않으면 토할 것 같아서 도저히 못 하겠더라.
[자네도 사람인 게지.]
그럼 볼셰비키 라이칸슬로프겠냐?
"우선 우리 국민의회와 전시수상 오를레앙공을 대신하여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용기 있는 민주 시민 동지들께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소!"
···아니, 싶습니다가 맞나?
이제부터 내게 목숨을 믿고 의지할 사람들에게 너무 고압조였나?
모르겠다.
이번만큼은 진짜로 모르겠다.
용기의 물약을 그렇게 빨아댔는데도 아직도 속이 뒤집힐 듯 어지럽다.
아니, 이건 오히려 알코올을 너무 빨아서 그런 건가?
"···자, 그럼 딱딱한 소리는 이쯤으로 하고."
모르겠으니까, 일단 웃자.
웃으면 복이 온다고 했다.
조금 전까지 웃고 떠들며 즐기던 사람들이니 갑자기 나 혼자 분위기 잡아봤자 비웃기밖에 더 하겠나.
"아유, 여기까지 술 냄새가 진동하는군요. 샹 드 마르스 연병장이 아니라 샹 드 마르스 선술집이었나요?"
내 판단에 동의했는지, 집주인 놈은 군소리 없이 내가 의도한 대로 혓바닥을 굴려주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저도 술이나 한 병 챙겨올 걸 그랬습니다."
슬쩍 조금 전 깨트린 와인병을 들어 올려 보였다.
"아이고야, 나도 모르게 이 귀한 술을 깨트려버렸네!"
유치하기까지 한 광대행세.
도저히 일국의 국회의원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경박함.
킥킥킥.
하지만 샹 드 마르스 연병장에 모인 민주시민들은 그조차 좋다며 저마다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도 국회의원씩이나 되는 놈이 광대 흉내나 내는 게 우스꽝스러웠던 걸까?
아니면 조금 전까지 웃고 떠들며 즐기던 와중이었으니 분위기를 탄 건가.
"저는 언제나 맛 좋은 술과 흥이 넘쳐나는 이 도시, 파리를 사랑해왔습니다."
중요하지 않다.
"아마 여기 계신 누구나 그렇겠지요. 사실 혁명이니 의회니, 헌법이니. 그게 대체 다 무슨 소용이랍니까? 맛 좋은 술, 유쾌한 음악, 그리고 사랑하는 연인만 있다면야 아름다운 인생이지요. 이 축복받은 파리에서 우리 모두 그런 축복받은 인생을 살아갈 수만 있다면 무엇을 더 바라겠습니까?"
옳소!!!
"저, 저기 로베스피에르 의원···!"
날 위해 국민의회에서 붙여준 우익 측 연사들이 곤혹스럽게 이쪽을 바라보는 걸 뻔히 즐기면서도 나는 술기운을 빌려 유쾌한 웅변을 이어 나갔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이와 같은 행복을 누릴 권리를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휙.
손에 쥐고 있던 깨진 와인병을 아무도 없는 곳을 향해 던져버렸다.
쨍그랑.
시원한 파열음.
"그리고 지금 이곳 파리로 행복을 누리기 위하여 우리 형제들이 오고 있다더군요."
그래, 형제다.
'적'이 아니다.
이 표현에 주의해야 한다.
안 그래도 군기고 뭐고 없이 분위기 타서 왔다 갔다 하는 군중에게 공연히 적대감을 부추겼다간 내 계획은 시작부터 끝장이다.
지금 우리가 맞서 싸워야 할 건 병사들이 아니다.
자유의 적이다.
"라파예트 후작은 우리의 용맹한 국민위병 병사들에게 포상을 내려주었다고 했습니다. 어디까지나 우연히 길이 겹친 것뿐이지, 라파예트는 우리 의회의 초청을 받아 청문회로 향하는 것이고 우리 병사들은 고향 집으로 향하고 있다고 말이지요."
이걸 놓치게 되는 순간 그다음 수순은 최소 학살이고, 최악의 경우엔 내전이다.
"그러니까 여러분."
나는 그와 같은 유혈극을 바라지 않는다.
피를 흘리게 될 건 앞으로의 혁명전쟁으로 족하다.
혁명이 민중을 섬겨야지, 민중이 혁명을 섬기게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런 염원을 담겨 있는 힘껏 숨을 들이마시고, 다시 내뱉었다.
"우리 형제들을 환영하러 갑시다!!!"
쿵.
발을 구른다.
덜컹.
그러자 정해진 신호에 맞추어 당통이 보내준 사람들이 연단 아래에 숨겨져 있던 술통을 하나씩 꺼내기 시작했다.
아니, 그걸로 끝이 아니다.
연병장 바깥에서 대기하고 있던 짐마차들까지 일제히 몰려들어서 샹 드 마르스 연병장에 모인 민주시민들에게 한 사람씩 와인병을 돌리기 시작했다.
한눈에 봐도 지금 이 자리에 모인 모두가 한꺼번에 마시기 시작한다고 하여도 온종일 마실 수 있을 엄청난 양의 술.
두말할 것도 없지만, 어차피 가는 거 마지막 소원 하나만 더 들어달라고 전시수상 오를레앙공을 달달 볶아서 받아낸 하나같이 귀하신 몸들이다.
텅 빈 와인 저장고를 보고 그 집에서 대성통곡을 했다고 하는데, 그거야 내 알 바 아니고.
"마음껏 먹고 마시고 즐기십시오!"
지금은 우선 하던 일이나 마저 하자.
"우리 프랑스의 위대한 국민영웅 라파예트 후작이 파리로 돌아왔는데 술과 노래가 빠져서야 되겠습니까! 왜 갑자기 우리 병사들까지 휴가를 받았는지야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콰득.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되어서 어버버하고 있는 사람들을 대표하여 연단 아래에서 굴러나온 술병에 주머니칼을 꽂아 넣었다.
한눈에 봐도 색감부터가 남다른 영롱한 색채.
그리고 슬며시 번지는 진하고 알싸한 와인향.
꼴깍.
선두에 선 시민들의 목울대가 꿈틀거리는 걸 확인하고서 샐쭉 웃으며 더욱 언성을 드높였다.
"아무렴 어떻습니까! 저도 잘 모르지만 뭔가 좋은 일이 있었던 거겠지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은 와인은 신께서 우리 인간에게 내리신 최고의 선물이라고 말하였습니다! 하물며 우리 프랑스의 맛 좋고 질 좋은 와인이라면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옳소!!!
"자, 이 막시밀리앙 드 로베스피에르가 앞장서겠습니다! 모두 마음껏 노래하십시오! 마음껏 마시십시오!"
멍하니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의회군(?) 군악대를 향해 거칠게 손을 휘저었다.
뭐해?
어서 뭐라도 신나는 음악을 연주해보라고!
다들 기다리고 있잖아!
∼♬
그래, 이거지.
뭔 노래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신나긴 하네.
의회에서 내준 권위의 상징, 말조차 사양한 채 흰 바탕에 부르봉 왕가의 상징인 백합이 빼곡히 아로새겨진 프랑스 왕국의 깃발을 오른손에 높이 들고 외쳤다.
"모두 나를 따르라!!!"
만세!!!
크, 분위기 좋고.
삼색기였으면 더 분위기가 살았을 텐데 지금 당장은 이게 더 나을 테니 일단 넘어가야겠지.
피리 부는 소년이 된 기분으로 나는 브레멘 음악대-가 아니라 의회군이라는 이름의 오합지졸과 함께 파리를 나섰다.
***
"···저게 대체 뭐 하는 짓거리지?"
"그, 글쎄요. 저로서는 도통."
그리고 이게 모처럼의 도성마저 내다 버린 채 그들을 향해 다가오는 의회군을 목격한 라파예트와 그 참모진들의 솔직한 소감이었다.
아니, 저걸 과연 의회군이라고 불러줄 수 있을지나 의심스럽다.
화약은커녕 술통이나 가득 실은 짐마차.
총 대신 술병과 악기 따위를 들고 있는 주정뱅이들.
이미 전투가 벌어지기 전부터 이런 판이니 열과 오 같은 게 구분될 리도 없고, 발을 맞추어 걸어야 한다는 관념 자체가 없는 것 같아 보인다.
만일 저것이 그들과 진짜로 싸우기 위하여 온 군대라면 둘 중 하나였다.
의회에서 이 사회의 쓰레기들을 대신 숙청하고 손을 더럽혀달라고 부추기고 있거나, 아니면 그들이 모르는 사이 이 유럽의 전쟁이 몇 세기 정도 진일보했거나.
고금을 통틀어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저 주정뱅이들의 행진이 퇴보라고 말하는 건 어떻게든 보다 완벽한 병단을 완성하기 위하여 평생 힘써온 선현들에 대한 모욕이었다.
"아무래도 싸움을 포기한 거 아니겠습니까?"
부관이 조심스레 상식적인 조언을 건넸다.
그 또한 확신은 없었다.
분명 그나마 있는 도성마저 포기하고 저런 오합지졸로 회전을 걸어왔다면 이미 전쟁을 포기했다, 고 밖에는 생각되지 않는다.
하지만 저들도 딴에는 의회군 아닌가.
그가 없는 사이 갑자기 파리 의회가 원숭이 우리가 된 게 아니라면 지금 싸움을 포기해서 좋을 게 없다는 것도, 또 저런 오합지졸로 회전에 나서봐야 좋을 게 없다는 것도 모를 리가 없을 텐데?
'···설마 투항하러 온 건가?'
그럴지도 모른다.
멀리서 봤을 때는 잘 몰랐지만 지금 망원경으로 보아하니 선두에 선 자가 하늘 높이 치켜든 깃발은 부르봉 왕조의 어기.
어쩌면 파리 내부에서 왕당파와 공화파 간의 갈등이 심화한 나머지 왕당파를 지지하는 신민들이 그들에게 투항하고자 나섰을지도 모르는 것.
"우선 저들을 멈춰 세우게."
대강의 상황 파악이 끝난 라파예트가 곧장 지시를 내렸다.
"정지!!!"
곧장 말을 탄 전령들이 달려가 한 손을 들며 주정뱅이들의 행진을 저지했다.
하지만 이미 술에 거하게 취한 저 주정뱅이들은 들은 체도 하지 않는다.
아니면, 들리지 않는 건가?
주정뱅이들은 변함없이 조금씩, 하지만 위협적으로 거리를 좁혀오고 있었다.
"내 말 안 들리나? 당장 정지하라고 했다!!!"
보다못해 장교들이 직접 나서서 고래고래 소리를 높여봐도 저들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저놈의 흥겨운 노랫소리 때문인가?
어느덧 총검 돌격을 걱정해야 할 만큼 거리가 좁혀지자 조급해진 라파예트가 외쳤다.
"그냥 포병대를 시켜서 공포탄을 쏴버리게!"
"예? 하, 하지만-."
"그럼 이대로 접근하게 둘 건가? 어서 쏘라면 쏴!"
펑! 펑! 펑!
천지가 쩌렁쩌렁 울리는 대포 소리.
그제야 술기운이 가셨는지 눈을 동그랗게 뜬 주정뱅이들이 제자리에 멈추어 섰다.
몇몇은 아예 털썩 주저앉아 오줌을 지려버리기까지 했다.
'이제야 저들을 심문할 수 있겠군.'
라파예트와 참모들이 만족스럽게 고개를 주억거리던 찰나.
"폐하!!!"
털썩.
돌연 선두에 서 있던 땅딸막한 사내가 손에 쥐고 있던 어기를 옆 사람에게 건네더니 그들을 향해 엎드려 절을 올렸다.
"""폐하!!!"""
그러자 다른 주정뱅이들 또한 그를 따라 절을 올렸다.
설마 저놈이 그 로베스피에르인가?
놀라움 이전에 수치스러움과 분노가 앞섰다.
하필이면 각하도 아니고 폐하라니.
뻔히 국왕은 트루아에 두고 오겠다고 한 걸 봤을 거면서 지금 누굴 병사들 앞에서 망신 주는 건가?
'이 맹랑한 꼬맹이가···!'
빠드득.
"국왕 폐하께서는 지금 이곳에 안 계시오!"
주군의 심기가 불편해졌음을 눈치챈 부관이 먼저 고래고래 소리쳤다.
때마침 느닷없는 폐하 소리에 병사들마저 얼어붙은바.
"국왕 폐하께서 여기 안 계신다고요?"
그들은 가감 없이 천연덕스럽게 능청을 떨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사내의 모습을 똑똑히 목격할 수 있었다.
이 애송이 놈.
참모들은 당장 저 땅딸막한 노총각을 갈가리 찢어 죽이고 싶은 충동을 애써 참으며 입을 열었다.
"그렇소. 분명 사전에 트루아에 계신다고 전하지 않았소!"
"그것참 이상하군요."
하지만 애송이는 긴장한 기색조차 보이지 않는다.
뒤따라 폭도들이 얼떨떨한 얼굴로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나는 와중에도 저 혼자 능청을 떨며 개새끼 마냥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다.
뭐 믿는 구석이라도 있는 건가?
하기야 심문해보면 어련히 알게 될 일이지.
척.
명령을 내리기 위하여 라파예트가 오른손을 드는 찰나.
"그렇다면 도대체 왜 비무장한 시민들에게 예포를 쏘신 겁니까?"
"···뭐라?"
"그 일행분들은 다 뭐고요? 하도 날이 서 있길래 전 당연히 국왕 폐하께서 파리로 돌아오신 줄 알았죠."
"그거야 당연히-."
우리가 반역자이기 때문이지.
차마 그렇게는 답할 수 없다.
하지만 달리 변명거리가 없었다.
현직 의원이 이끄는 행렬을 겨냥해 예포를 쏘는 것도, 완전무장한 병사들을 대동한채 파리로 향하는 것도.
평시엔 오직 국왕을 호위할 때나 용서받을 수 있는 만행이다.
"···주군."
부관이 새파랗게 겁에 질려 라파예트 후작을 돌아보았다.
라파예트는 다만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씹을 뿐 아무런 답도 해줄 수 없었다.
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