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애(Fraternité)
흐.
[낚였군.]
그래, 아주 월척이 걸렸다.
급진공화파라는 놈이 설마하니 국왕 방패를 쓸 줄은 몰랐지?
자고로 혁명이 수단을 정당화하는 법.
왕당파 거물 한 명 낚으려고 내가 국왕 폐하 만세를 해야 한다면 도대체 못 할 이유가 뭐냐.
하물며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건 그 파리의 자랑스러운 민주시민들이다.
바스티유 감옥 기억하지?
난 보지도 못했는데 듣자하니 아주 대단했다며?
국왕도 없이 절대정 시절 감성으로 사고친 심경은 어떠신가?
"라파예트 후작이시잖습니까."
반면 지금 이 순간 나는 골수 왕당파다.
근데 넌 대체 뭘 망설이고 있는 거야?
날 지나치고 싶다면 어서 나 같은 가짜 왕당파 말고 진짜배기 왕당파로서의 근성을 보여주셔야지.
"이를 모를 리도 없으신 분께서 왜 그러셨습니까?"
봐봐, 병사들이 다들 널 보고 있잖아.
국왕 폐하의 충용무쌍한 근왕군이 불안해하고 있다고.
어서 뭐라도 변명할 말을 쥐어짜지 않으면 당장 이 친구들부터 이쪽 편에 붙으려고 들걸?
시간은 금이라고 친구.
물론 넌 둘 다 없겠지만 말이야.
"···그러는 그쪽이야말로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건가?"
어이쿠, 말을 돌리시겠다?
그럼 뭐 기다려드려야지
모처럼 낚시하는데 난생처음 보는 월척이 꿈틀 정도는 해줘야 손맛이 살지 않겠나?
일부러 열받으라고 이죽거리면서 어떤 개논리를 늘어놓나 기다렸더니 뻔한 수가 날아왔다.
"자네 말로는 비무장 시민이라는데, 글쎄. 지금 자네 옆에 서 있는 친구들이 들고 있는 그것, 군용 장총 아닌가. 다른 사람은 속일 수 있을지 몰라도 이 라파예트의 눈은 못 속이지."
흠, 그러니까 무장한 폭도들이 다가오니까 경고차 공포탄을 한번 쏜 거지 예포는 아니다?
어떻게 해서건 정당방위라고 주장하고 싶으신 모양인데.
"아, 이 총 말입니까?"
철컥.
"어-."
내 옆에 선 처음 보는 아저씨가 뭐라고 만류하기도 전에 장총을 뺏어다가 하늘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시원한 총성.
동시에 모처럼 주도권을 되찾았다고 여겼는지 의기양양하던 라파예트 후작의 넋이 나갔다.
그야 이 시대에 총을 장전하는 수고를 생각하면 아무렇지도 않게 총알을 낭비하는 게 이해가 되지를 않겠지.
내가 라파예트를 저격할 거라고 여겼는지 필사적으로 몸을 날리던 참모들도 얼이 빠져있기는 매한가지.
"보다시피 악기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더더욱 뻔뻔하게 굴어야지.
내가 얼마나 미친 짓을 했건 간에 넌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겨야 했다.
하지만 넋이 나갔네?
어서 와, 여의도는 처음이지?
"이 파리에서도 최신 유행하는 악기지요. 마침 맛 좋은 술이 있겠다, 노래도 있겠다. 기분 좋게 연주 좀 할 수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 말대로요."
탕!
대열에 섞여 있던 자크 루 동지가 뒤이어서 하늘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메르시, 신부님.
사전에 아무 말도 안 해줬는데도 눈치껏 잘 맞춰주시네.
"자, 다들 뭐 하고 있소? 모처럼 귀하신 손님이 오셨는데 즐거운 음악이 빠져서야 되는가! 다 함께합시다!"
탕! 타탕!
"옳지, 옳지!"
타타탕!
마침내는 자크 루 동지와 내 선창에 따라 모든 시민이 일제히 아무것도 없는 곳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기 시작했다.
요란한 총성, 지독한 흑색 매연, 그리고-남녀의 웃음소리.
마침 대낮부터 술도 여러잔 들어갔겠다 다들 완전히 이걸 놀이로 여기고 있다.
이미 한발 시원하게 쏴버리고도 만족 못 해서 옆에 사람 총 뺏어다가 쏘는 사람들까지 나오는 판이니 말 다 했지.
뭐, 군대 끌려가서 사격 훈련할 때 생각하면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지만.
"···허."
"맙소사."
이 상상을 초월하는 아수라장 앞에서 라파예트와 그 패거리는 완전히 넋이 나가버렸다.
차라리 문외한이면 모를까, 직업군인이었으니 오히려 저 귀한 화약을 아무렇게나 빵빵 쏴대는 게 도저히 이해가 안 가겠지.
무엇보다 이 촌극으로 우리 의회군(?)은 완전히 무장해제 되어버렸다.
뭐 다시 장전하면 그만이라고 하는데, 이렇게 서로 다소의 불편함은 있어도 대화가 가능한 거리까지 접근한 마당에 저쪽에서 과연 장전할 때까지 기다려줄까?
아마 아닐걸.
지금 이 상황을 무슨 놀이쯤으로 인지하고 있는 파리 시민들이 과연 저쪽에서 갑자기 달려드는 와중에 장전이라는 노련한 대응을 보여줄 수 있을지도 의문이고.
그런데 가장 근본적인 문제인데 말이야.
"각하의 편지라면 저도 읽었습니다."
당신 병사들이 이 꼴을 보고서 과연 우리랑 싸우고 싶을까?
솔직히 다들 웃고 떠들고 즐기는데 혼자 정색하고 죽고 죽일 각오 다지는 게 더 바보같이 느껴질걸?
마침 슬슬 7월 중순.
한국만큼은 아니지만 프랑스도 무더위가 엄습해올 계절이다.
이 햇볕이 쨍쨍한 무더운 날씨에, 에어컨은커녕 선풍기도 없는 시대에 십몇 킬로미터씩 행군하고서 한다는 게 고작 이런 일이다?
그것도 외박 휴가까지 받고서?
다 때려치우고 얼렁 집으로 들어가서 퍼질러 눕고 싶을걸?
"보아하니 그곳에 계시는 동행분들은 우리 프랑스의 애국시민이 휴가장병들이 틀림없겠지요?"
마침 우리를 등지고 바람이 살살 불기 시작했다.
괜히 맞바람이 불기 전에 저 휴가장병들에게도 오를레앙공에게서 뜯어온 고급 와인 냄새를 맡게 해주자.
손가락을 까딱까딱해서 오를레앙 저택 시종들에게 술통을 가져오라 시켰다.
반쯤 울상이긴 해도 고분고분한 게 슬슬 본인들 입장이 이해가 가기 시작했나 보지?
콰직.
조금 전 샹 드 마르스 연병장에서 술통 여는데 썼던 주머니칼로 또 한 번 술통을 깠다.
하나로는 거리상 좀 부족할 듯해서 대여섯 개 정도를 더 까고 나니 고급 와인 특유의 알싸한 향기가 코끝을 찌르며 번져나갔다.
작렬하는 햇빛, 십수킬로미터를 행군하며 탈수직전까지 몰렸을 젊은 몸뚱어리.
그리고 시원한 산들바람을 타고 번지는 알싸한 술 냄새와 눈앞에서 웃고 떠들며 놀고 있는 청춘남녀들.
꼴깍.
이 거리에서 침이 넘어가는 소리가 들릴 리도 없는데도 그런 환청이 들리는 듯했다.
빙고.
"이거 완전히 사병 인권 유린 아닙니까?"
뻔한 너스레를 떨며 라파예트를 흘겨보았다.
아마 머릿속으로는 내 사지를 갈기갈기 찢거나 내가 풍둔 주둥아리 술을 시전하기도 전에 저격해버리거나 온갖 생각들이 태풍처럼 휘몰아치고 있겠지.
하지만 이미 늦었다.
"도대체 모처럼 귀가하는 휴가장병들에게 완전군장을 시키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일부러 가급적 많은 병사가 들을 수 있도록 배에 힘을 주고 소리쳤다.
"하물며 이 무더운 날씨에 행군이라니요! 부끄러운 줄 아십시오! 완전군장만으로도 끔찍한데 외박 휴가까지 받아놓고서 땡볕을 쬐며 행군이라니! 오, 주여! 저들은 제가 무슨 잘못을 범했는지도 알지 못하나이다!"
얼굴이 벌게지는 거 보면 부끄러운 줄은 아나 보지?
아니면 그냥 갈수록 궁지에 몰려가는 걸 느꼈을 수도 있겠다.
여기서 봐도 하나둘 어깨가 축 늘어져서 총을 거의 집어던지려고 하는 게 맥이 딱, 풀린 게 뻔히 보일 지경이거든.
하지만 이걸로는 부족하다.
"도대체 원하는 게 뭐요!"
저쪽에서 반쯤 자포자기해서 운을 떼줬으니 이참에 쐐기를 박자.
"무엇을 원하냐니. 모르는 사람들이 들으면 제가 무슨 여러분께 해라도 끼치려는 줄 알겠습니다."
후웁-.
있는 힘껏 숨을 들이쉬었다.
조금 전까지 저마다 총 쏘며 웃고 떠들며 즐기던 파리 시민들도 모처럼 일제히 이쪽을 초롱초롱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총알도 다 떨어졌겠다, 슬슬 우리가 떠드는 게 더 재미있겠다 이거겠지.
"자, 시민 동지 여러분!"
시민을 섬기는 광대로서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가급적 익살스러운 미소를 떠올리며 외쳤다.
"우리의 영웅들이 파리로 돌아왔습니다! 휴가까지 받았다는데 이 좋은 날에 괜히 무게들 잡고 있으려니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어서 우리의 술과 노래로 프랑스의 애국자들을 위로해줍시다!"
만세!!!
우렁찬 함성.
"아니, 저-."
말 등에 올라탄 권위적인 장교들이 뭐라고 말려보기도 전에 한 손에 술병을 든 시민들이 깔깔대며 대열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저들이 내심 바랬을 피와 살이 튀기는 살육전은 끝내 벌어지지 않았다.
누군가는 시민들 사이에서 연인을 발견했는지 총을 집어던지고 남녀가 서로 달려가 얼싸안았고, 누군가는 자포자기하여 그냥 제자리에 주저앉아 고개를 떨궜으며, 대다수는 시민들에게 건네받은 와인으로 병나발을 불며 하늘을 향해 총을 쏴댔다.
탕! 타타탕!
그걸로 모든 게 끝났다.
이제와서 장교들이 장전하라고 제아무리 윽박질러봤자 더는 아무도 명령에 따르지 않을 거다.
서로 어깨동무를 한 채 음정 박자도 없이 소리높여 함께 노래를 부르는 청춘남녀들에게 서로 죽이라고 명령해봐야 거꾸로 그 방해꾼부터 죽이려 들겠지.
마침내는 장교들마저 말에서 내려 와인을 건네받거나, 아니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시민들을 어떻게든 밟지 않으려고 기마술을 뽐내든가 하면서 이 아수라장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장관이군.]
동감이다.
결국 누구 한 사람도 죽지 않았고, 다친 사람도 없이 끝났다.
뭐, 혹시 내가 모르는 곳에서 죽거나 다친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도 신이 아니니까 거기까진 어떻게 할 수 없다.
그리고 지금 꼬락서니로 봐선 그것도 딱히 본인들에게 악의가 있어서라기보다는 그냥 술 취해서 저도 모르게 사고 쳐서일 것 같은데.
만약 사실이라면 내 책임 맞으니까 욕먹어도 달게 받아들이기로 하자.
보자, 이 시대에 유가족 찾아가서 직접 사죄하면 오히려 먹인다고 생각하려나?
[그야 당연하지.]
···흠, 18세기 프랑스는 아직 이 21세기인에겐 이해하기 어렵군.
아무튼 그 미묘한 차이야 앞으로 집주인 놈에게 차차 배우기로 하고 일단 하던 일이나 마저 끝내자.
까먹기 전에 저 얼빠진 라파예트 후작과 담판을 지어야지.
철컥.
한걸음 두 걸음 다가가는데 말 등에 올라탄 라파예트가 내게 권총을 겨눴다.
최후의 발악이라.
"그만두시지요."
루이 같은 놈도 안 할 바보짓이다.
"여기서 제가 죽거든 순교자로 기록되겠지만 각하께서는 반역자도 모자라 기사로서의 명예도 모르는 비겁자로 기록되실 겁니다. 진정 육신의 죽음만으로는 모자라십니까?"
"각하라."
허.
라파예트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나를 흘겨보았다.
"그리 잘 아는 사람이 조금 전엔 왜 그랬나?"
"말했잖습니까. 국왕 폐하께서 계시는 줄 알았다고요."
"또 말을 돌리려 하는군."
"각하께서 제 충심을 의심할 만큼 절 아십니까?"
라파예트는 답하지 못했다.
서로 얼굴이야 몇 번 본 적 있었겠지만 그래봤자겠지.
로베스피에르는 국민영웅 라파예트를 알지만, 라파예트는 무명의 노총각 로베스피에르를 알지 못했다.
그러니까 내가 어기를 들고 선두에서 행렬을 이끌고 있는데도 그냥 주정뱅이 폭도들이라고 얕봤을 터.
"날 이제 어떻게 할 셈인가."
결국 그게 패인이 되었다, 고 지금쯤 느꼈겠지.
최후의 발악이었을 권총도 툭, 놓아버리고 고개를 떨군 것만 봐도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가 뻔히 보인다.
총살, 단두대, 교수형.
"자꾸 절 무슨 악당으로 모시는데."
이 아저씨가 아직도 분위기 파악이 덜 되셨네.
"저야 당연히 각하를 청문회까지 모셔가야지요. 뻔히 알고 계실 분이 왜 자꾸 이러십니까."
"···뭐라고?"
"라파예트 후작께서는 청문회에 참가하기 위하여 상경하신 거고, 휴가장병들은 우연히 길이 겹쳤을 뿐이잖습니까. 아닙니까?"
아니면 이제부터 진짜로 단두대로 끌고 가면 되는 거고.
가만, 혹시 지금 이 자리에서 즉결 처형도 가능한가?
[···도대체 내 조국을 뭐라고 생각하고 있는 건가.]
글쎄다.
국회의원이라면 누구나 즉결처분권 정도는 들고 있는 인세의 지옥?
[이봐!!!]
아니면 말고.
쯧, 쫄보들 같으니.
"물론 서로 간의 사소한 오해가 있어서 도중에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지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죽거나 다치는 사람 없이 평화로이 해결되었잖습니까."
"허."
"그럼 그걸로 끝난 일이지요. 각하께서는 의회의 요청을 받아들여 파리로 상경하셨으니 이대로 자택에서 며칠 쉬다가 준비되는 대로 청문회에 나가시면 되는 거고, 휴가장병들은 각자 자택으로 돌아가면 되는 겁니다."
자, 아무튼 이게 최후의 자비다.
이조차 싫다고 걷어차면 이제 국민위병은 몰라도 라파예트 후작은 여기서 끝.
설령 날 인질로 잡아서 이 자리를 빠져나가건, 아니면 나랑 같이 죽자고 덤비건 더는 프랑스의 국민영웅 소리는 꿈도 못 꾸겠지.
평생을 해외를 전전하며 비겁자이자 배신자로서 살 테냐.
아니면 승산은 희박하더라도 얌전히 청문회에 출석해서 마지막까지 제 명예를 변호해 불 테냐.
"그래, 그렇게 하지."
결국 라파예트 후작이 실없는 웃음을 터트리며 내게 말 등을 양보하려 했다.
패장이 차마 말을 타고 파리 시내에 들어설 수는 없다는 거겠지.
하지만 나는 마지막까지 기마를 사양했다.
나는 처음 파리를 나섰을 때와 마찬가지로 걸어서 라파예트 후작과 돌아왔다.
***
만세!!!
쩌렁쩌렁 울리는 우렁찬 만세 소리.
사방에서 울려 퍼지는 흥겨운 노랫가락과 총소리, 그리고 진동하는 와인 냄새.
"···저 미친놈."
이번만큼은 자코뱅 중 누구도 에베르가 과하다고 지적하지 않았다.
있는 허풍 없는 허풍 혼자서 다 치더니 기어이 개선장군이 되어서 라파예트와 함께 돌아온 로베스피에르의 모습에는 충분히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정말이지 보통 미친놈이 아니다.
단순히 용기가 있다,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차원의 이야기가 아니다.
혁명 이래로 그까짓 목숨 한번 안 걸어본 놈이 지금 이 국민의회에 있던가?
하지만 그들 중 이렇게까지 과감하게, 그리고 기똥차게 해낼 자신이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야 누구나 목숨은 아까운 게 당연하잖은가.
단순히 공포에 눌려서건, 아니면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부담감 때문이건 시야가 좁아지는 게 보통이다.
한데 기껏 의회군-이라는 이름의 폭도들까지 소집해놓고서 제대로 싸우지도 않고 그것도 저 라파예트와 함께 개선했다고?
"진짜 카이사르는 여기 있었군."
"이봐, 지금 그게 목숨 걸고 자유의 적과 싸운 동지에게 할 말인가?"
에베르의 비아냥에 발끈한 마라가 즉각 반박했으나, 아무도 이들을 말리지 않았다.
당장 사방에서 만세를 부르짖으며 열렬히 로베스피에르와 라파예트를 환영하는 파리 시민들을 보라.
만일 피 한 방울이라도 흘렀다면, 저들이 끝내 총을 겨누고 다른 한쪽을 끝장냈다면 결코 불가능했을 아름다운 광경이고-또 위험한 광경이었다.
유사 이래로 자유란 언제나 우레와 같은 갈채와 함께 숨통이 끊어져 왔으니.
오늘 저 로베스피에르가 이룩한 기적을 아름답게 느낄지, 아니면 위협으로 느낄지에 대한 대답이야 개개인의 정치적 신념에 따라 갈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들은 누구보다 이러한 난제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무리였고.
"···오늘은 솔직하게 우리의 영웅, 막시밀리앙을 환영해주는 것 어떻겠나."
당통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에베르는 답하지 않았다.
다만 마라 혼자서 불만스럽게 뒤돌아섰을 뿐이다.
그들 모두 머리로는 조금 뒤 있을 개선식에서는 위대한 영웅 로베스피에르를 예찬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다음은 어떨까.
천에 하나, 만에 하나라도 오늘의 기적이 끝이 아니라 시작에 불과하다면?
그때는 그들의 오랜 친우를 어떤 얼굴로 대하면 좋을까.
"쯧."
이 침묵의 의미를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는 당통이 혀를 찼다.
시민들은 변함없이 영웅을 향해 환호하고 있었다.
누구 한 사람 구김 없이 순수하게 프랑스의 자유 민주주의를 지켜낸 영웅들을 사랑하고 아끼고 있다.
반면 그들은 어떠한가.
'도대체 어쩌다가 친우의 생환에 함께 기뻐해 줄 수조차 없는 구질구질한 인간이 된 건지.'
국왕이 파리를 등졌을 때부터?
아니면 혁명 당시부터인가?
결국 아무도 답해주지 않았다.
오늘따라 구김 없는 파리 시민들의 웃음소리가 멀게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