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4화 (24/154)

기도

임시로 급진당 당사를 겸하고 있는 자크 루 동지의 생 니꼴라 교회.

"그렇게 된 거였군."

"이래저래 곤란하게 됐습니다."

나, 카미유, 자크 루 세 사람은 오늘 낮에 있었던 회기를 두고 골머리를 싸매고 있었다.

사실 회기에서 결정된 내용이라고 해봐야 별 알맹이는 없었다.

대충 추려보자면 청문회 무기한 연기, 국왕 부부의 파리 압송, 의회군 해산과 국민위병 통폐합 정도?

이게 영양가가 없으면 도대체 뭘 해야 영양가 있는 거냐고 할 수도 있겠는데, 내가 기대했던 기 싸움은 영 아니었단 말이야.

다들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져서 그런지 웬일로 좌우 구분 없이 협치가 순조롭게 이어져서 처음을 제하면 우리가 나설 자리가 전혀 없었다.

뭐 반대로 오를레앙공도 그냥 가만히 무게만 잡고 있긴 했는데, 그래서 더더욱 원내서열에 유의미한 변화가 없었으니 내겐 영양가 없는 회기였다.

마 개회를 했으면 번개처럼 달려 나가서 투견처럼 마구 물고 뜯고 싸워야지, 이것들이 그렇게 이 박민혁이가 몸소 모범을 보여줬는데 국난이라고 다들 기강이 해이해졌어.

에잉.

[정말이지 남의 나라 일이라고 막말하고 있군.]

입 닥쳐, 막시밀리앙.

"민중은 전쟁을 감당할 수 없소."

자크 루 동지가 먼저 입을 열었다.

"바스티유 이래로 3년씩이나 참아줬으니 오히려 저쪽에서도 오래 기다려줬다고 해야겠지만, 3년 전이나 지금이나 민중의 삶은 달라진 게 없소. 당장 전쟁이 시작되면 신성로마제국과의 교역이 끊어지고 수많은 생필품을 자급자족해야 할 텐데-."

"그게 가능했으면 혁명이 터지지도 않았겠지요."

"그렇지. 당장 저 해적 놈들도 우릴 괴롭히면 괴롭혔지, 돕지는 않을 테니까. 우방 스페인이 이번에도 우릴 도와준다면 그나마 숨통은 트이겠지만, 저쪽도 부르봉이니 왕국을 도울지언정 우리 같은 폭도들을 예뻐해 주진 않을 거요."

한마디로 사면초가라 이건가.

로베스피에르가 말했던 그대로다.

카미유도 딱히 반박은 하지 않고 있고.

그렇다면 어느 정도 식견이 있는 공화파 인사들은 대부분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고 봐도 되겠지.

민생은 변함없이 최악이고, 유사시 우릴 도와줄 만한 우방도 없으며, 무엇보다 유럽 최강 프랑스 왕국군은 더는 이 나라에 없다.

지금 우리에게 남아있는 거라곤 본디 라파예트가 이끌던 민병대였던 국민위병과 이를 모방한 지방의 연맹병 뿐.

그나마 양질의 훈련을 받고 잘 무장되었다지만 본질적으로 민병대에 불과하다.

나보가 절실하게 생각나는 밤이군.

[미리 말해두지만,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지는 그 카이사르 놈은 어림도 없네.]

뭐, 그렇다면야 진짜 카이사르 노릇 하려고 들었던 라파예트나 믿고 가야지.

현재의 카이사르냐, 미래의 카이사르냐.

어째 전쟁영웅이란 게 어느 놈이고 의회권 우습게 아는 놈들 뿐인 거 실화냐?

프랑스 군부 꼬라지에 가슴이 저절로 웅장해진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전쟁을 회피한다는게 과연 가능하겠습니까?"

이번엔 카미유가 입을 열었다.

"만일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가 동맹을 체결할 예정이라는 게 사실이라면 지금 우리에겐 더는 여유가 없습니다. 제아무리 우리 프랑스가 군사 대국이라지만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 두 나라가 동맹을 체결했는데 우스갯소리로 신성하지도 않고 로마도 아닌 제국이라지만 제후국들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설령 직접 전쟁을 벌이진 않더라도 교역을 제한하는 식으로 어떻게든 굴종을 강요해올 거고, 결국 시간이 지날수록 불리해지는 건 우리 프랑스 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대를 위해 소가 희생하는 수밖에 없으니 힘없는 민중이 전쟁과 가난이라는 이중고를 감내해야 한다는 말이오?"

자크 루 동지가 으르렁거렸다.

"아뇨, 애초에 저 두 나라가 동맹을 체결하는 걸 막지 못한 시점에서 우리의 완패라는 겁니다."

허나 카미유도 호락호락하지는 않다.

참 이렇게 사석에서 말하는 것만 보면 이만한 달변가도 없는데 말이야.

"이미 프랑스는 전쟁에서 졌습니다. 혈맹 오스만 튀르크가 피와 살로 적들을 붙잡아주고 있을 때 어떻게 해서건 혁명을 완성했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실패했지요. 이제 우리에게 남은 건 어떻게 패하느냐는 선택지뿐이고, 설령 전투에서 이겨봐야 먼저 힘이 다해 전쟁에서 패하게 되겠지요.

민중이 이 전쟁을, 패배를 감당할 수 있는가 없는가는 여기서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걸 결정할 권리는 우리가 아니라 적들에게 있고, 우린 다만 저들이 더 자비로운 종전조약을 제시해주길 신께 기도할 수 있을 뿐입니다."

···어우, 21세기 한국인인 박민혁이 들어도 거북해질 정도로 끔찍한 비관론이다.

근데 혈맹 오스만 튀르크는 뭔소리래.

걔넨 무슬림이잖아?

[말 그대로일세. 87년부터 세어서 벌써 5년 가까이 오스만 튀르크와 오스트리아-러시아 동맹군이 전쟁을 치르고 있거든. 오스트리아의 카이저가 작년에 말라리아에 걸려 회군하다 죽었을 정도로 치열한 전쟁이었지. 

지금 한창 휴전협상이 진행 중이긴 해도 그래서 다들 한동안은 대국 오스트리아라도 조용히 있을 거라고 예상했던 건데···. 설마하니 여기서 프로이센이 나설 줄이야.]

아항, 그런 이야기였군.

보자, 89년에 바스티유 습격이었으니 거의 3년 동안 오스트리아를 붙잡아줬으면 프랑스에겐 진짜로 오스만 튀르크가 은인이었네.

프로이센과 동맹했다는 소리가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막상 다들 루이 16세가 도움을 청했던 오스트리아는 신경 끄고 있을 만도 했고.

···아니 잠깐, 그보다도 지금 카이저는 오스만튀르크와 사생결단 내느라 작년에 전임 황제가 전장에서 말라리아 걸려 죽었는데 여동생 때문에 곧장 프랑스랑 2차전 준비하는 거야?

이걸 지극한 가족 사랑이라고 해야 하나, 백성들 생각은 진짜 1도 안 한다고 해야 하나.

새삼 유럽의 봉건 군주들이 진짜로 전쟁 알기를 우습게 알고 있다는 실감이 든다.

"그건 혁명의 죽음이오."

카미유의 비관론에 흥분한 자크 루 동지가 언성을 키웠다.

"저들이 우리 같은 폭도들을 과연 살려두겠소? 저 잉글랜드야 섬나라니까 왕 목을 잘라도 무사했었지. 그마저도 한세대도 버티지 못했지만 말이야! 하지만 우리 프랑스가 섬나라는 아니잖소? 저 섬나라 잉글랜드의 크롬웰 정권도 어떻게든 무너트리려고 기를 쓰던 놈들이 유럽 대륙에 붙은 우리가 순순히 항복한다고 눈감아주겠소!"

"눈감아줄 리가 없지요."

카미유가 쓰게 웃으며 답했다.

"그러니까 힘없는 민중들에겐 미안하지만, 힘을 합쳐 맞서 싸우는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거잖습니까. 지금 당장은 아니라도, 언젠가는요."

···그, 보통 주전론은 우린 이러저러한 이유로 이길 수 있다를 전제로 깔고 들어갈걸요?

이미 프랑스는 패했다는 전제로 결사 항전이라니 카미유도 급진파답게 제정신은 아니다.

하지만 냉혹한 현실이기도 하지.

당장 직전까지만 해도 민생을 근거로 전쟁 반대를 외치던 자크 루 동지가 입 꾹 다물고 있는 걸 봐라.

애초에 싸우느냐 마냐는 저쪽에서 정할 일이지 결정권은 이미 우리 손을 떠났다는 걸 마지못해 인정한 거다.

"뭐, 이것도 결국 오를레앙공의 말을 전적으로 신뢰한다는 전제지요."

그럼 슬슬 우리가 끼어들어도 되겠지.

"신부님께서는 앞으로 시민들에게 가능한 많은 식료품 등의 생필품을 비축해둘 것을 권고해주십시오. 다들 합스부르크라면 학을 떼니 그치들이 누구랑 동맹했는지만 말해줘도 어련히 준비할 겁니다."

"···그걸 벌써 발설해도 되겠소? 듣자 하니 아직 의회에서나 알고 있는 극비인 것 같던데."

"어차피 다들 알게 될 일입니다. 그때 가서 대책도 안 세운 정부를 원망하는 것보다야 낫겠죠. 혹시 못 믿겠다는 사람들이 있다면 아낌없이 제 이름을 팔으셔도 좋습니다."

자크 루 동지야 아직 무명이니까 의심할 수 있어도 일약 파리의 영웅으로 떠오른 내 이름이 나오면 다들 듣는 시늉 정도는 할 테니까.

뭐, 대신에 나중에 의회에서 책잡힐 위험도 그만큼 커지겠지만 이 세상에 리스크 없는 장사가 어디 있냐.

차라리 의회에 좀 두들겨 맞더라도 지금은 민중의 영웅으로서 이름값을 보다 드높이는 게 맞다.

"···그래, 그렇게 하리다."

봐봐, 이 신부님 눈동자가 아주 촉촉해졌잖아.

물론 괜히 설친다고 시기할 놈들도 있겠지만 그런 놈들까지 신경 써서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우린 앞으로도 우리 할 일 하면서 우리 사람들이나 열심히 챙기면 된다.

행동하지 않는 선보단 행동하는 위선이 더 나을 테니까.

아 참.

"그러고 보니 당원 중에선 좀 쓸만한 친구들이 있나?"

"쓸만한 친구들이라니?"

"전쟁 말일세. 뭐 군인이라던가, 전쟁 상인이라던가. 이번 일에 지혜를 빌려볼 만한 친구가 있었느냐는 말이야."

이런 건 행정 담당인 카미유가 어련히 정리해놨겠지.

뭐 엄밀히 따지자면 재무 담당이긴 한데, 당장 이 급진당에 간부급이라고 해봐야 우리 셋이 끝인데 그런 게 어디 있어.

물론 우리도 있긴 한데 화제의 사나이 로베스피에르가 하라는 정치는 안하고 친위세력 키우기에만 골몰하고 있다는 식으로 낭설이 돌면 곤란해진다.

절대로 힘들고 귀찮아서가 아니다.

[음, 음.]

그렇고말고.

"그야 뭐, 몇몇 눈여겨 봐둔 사람이 있긴 했네만."

오 역시 카미유.

쓰알 나보 떴냐?

제발 나보 가즈아아!

이 형이 이렇게 널 간절하게 원한다, 응?!

[나 참, 도대체 그 카이사르 놈이 어디가 좋다고.]

야심뿐만이 아니라 군재까지 카이사르급이니까 그렇지!

구국의 결단 하겠다고 설치는 놈치고 진짜 나라 구할 재주까지 타고 태어난 놈이 어디 그리 흔한 줄 알아?

제발 나보 가즈아!

"혹시 토마알렉상드르 뒤마라고 들어봤나?"

그게 누구신데요.

[나도 모르겠군.]

봐봐, 우리 로ㄹ-커흠.

로시리도 모르겠다는데.

설명을 요구하는 얼굴로 카미유를 빤히 바라보고 있자니 수줍은 대답이 돌아왔다.

"아버지는 귀족에 어머니는 노예인 흑백혼혈 사생아라더군. 지금은 제6 용기병 연대 연대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친구라던데, 재주가 얼마나 대단한지는 잘 몰라도 노예의 아들이 연대장까지 할 정도면 엄청난 친구 아니겠나. 아무튼 굉장히 특이한 친구가 급진당에 가입했길래 한번 언급해봤네."

···가만있자, 흑백 혼혈? 

아아, 혹시 그 뒤마인가?

[오, 아는 이름인가?]

삼총사랑 몽테크리스토 백작을 쓴 프랑스의 대문호 알렉상드르 뒤마가 아마 흑백 혼혈이었을 걸?

나도 거기까지밖에 몰라서 이름만 듣고서는 연상이 안 되긴 했는데, 아버지가 아마 군인이라서 몽테크리스토 백작을 쓸 때 어머니에게 들었던 아버지의 일대기가 많은 영감을 줬다고 서두에 나와 있었던 기억이 난다.

구체적으로는 주인공 에드몽 당테스가 재판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감옥에 갇혔던 일이라던가.

그래도 연대장까지 올라간 사람이 설마 재판도 받지 못하고 감옥에 갇혔을 줄은 몰랐지만.

유 뻐킹 레이시스트.

[자네의 미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반드시 오래 살아야겠다는 열의가 솟구치는구만.]

네, 네. 제발 부탁이니까 오래 좀 사셔요.

아무튼.

"혹시 그 친구와 만날 수 있겠나?"

혼혈 출신으로 연대장까지 올라왔으면 그 친구의 실력은 보장된 거나 다름없지.

내가 이런 편견 가지고 싶진 않은데, 18세기 프랑스가 혼혈은 출세해선 안 된다는 법까지는 따로 없어도 사적인 편견이나 인종차별이 없을 것 같지는 않거든.

흑인은 멍청하다, 게으르다는 편견을 뚫고 올라왔을 정도면 분명 엄청난 사람이겠지.

나보 놈과 견줄만한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말이야.

한데 카미유가 설마 생각지도 못했다는 듯이 눈을 부릅떴다.

"으, 응? 자네 설마 지금 물라토와 독대하겠다는 말인가?"

[···험.]

···이보셔요.

만민평등이라면서.

나와 자크 루 동지가 아무 말 없이 한참을 빤히 쳐다보고 있자 그제야 카미유가 어색하게 웃으며 덧붙였다.

"아니, 난 그저 자네가 이렇게 좋아해 줄 줄은 몰라서···."

그만.

대충 알겠다, 18세기 말 프랑스의 레벨.

너무 뻔해져서 죽고 싶어졌다.

이 뻐킹 레이시스트들아.

***

흔히 어른들의 잘못된 기대와는 달리 사춘기를 맞이한 소녀를 속인다는 건 불가능하다.

그들의 이러한 초감각을 단순하게 눈치가 빠르다고 단락적으로 설명하는 것이야말로 소녀들에게 이와 같은 초능력을 선물한 대자연을 향한 모욕이오, 전지전능한 창조주에 대한 도전이라고까지 단언할 수 있다.

저 하늘 위에서 내리쬐는 무더운 태양이, 서늘한 바람이, 부드러운 대지가 속삭여온다.

누가 누구를 좋아하고 또 누구를 싫어하는지.

나이 든 어른들은 갈수록 무감각해져 가는 이 단순한 감정의 주고받음이 그녀들에겐 마치 마법처럼 언제나 신비롭게 다가오는 까닭이었다.

'어떡해.'

프랑스 왕국의 공주 마리 테레즈 샤를로트는 이러한 사춘기의 마법이 때로는 저주가 될 수 있음을 여실히 느끼고 있었다.

처음 무장한 군인들이 찾아와 그들 일가를 파리로 모셔가겠다고 했을 때부터 뼈가 저릿저릿하게 느낄 수 있었다.

저들 중 누구도 그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전부는 아니라지만 분명 적지 않은 군인들이 그들을-보다 구체적으로는 그녀의 아버지를 미워하고 있다.

불과 몇 주 전 이곳 트루아에 처음 도착했을 때만 해도 상상조차 못 할 일이었다.

그때만 해도 그녀와 그녀의 절친한 남동생 루이가 다소 짓궂은 장난을 쳐도 좋아해 주고 또 웃어주는 정 많은 사람들이었는데.

혹시 그날의 장난이 화가 되었던 걸까?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척했지만 역시 다들 물에 흠뻑 젖어서 화가 잔뜩 났던 걸까?

'미안해요미안해요미안해요···.'

두 눈을 질끈 감고 기도하듯 되뇌어도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저 사람들은 더는 그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마 앞으로도 영영 그렇겠지.

"아무 일 없을 거야."

그런 그녀가 안쓰러워 보였는지 어머니 마리가 부드럽게 마리 테레즈의 등을 쓰다듬어주었다.

"네가 태어난 파리로 돌아가는 거잖아. 길고 긴 여행이 끝나고 우리의 정겨운 집으로 돌아가는 거야. 여행의 끝이라는 게 이번이 처음 있는 일도 아니잖니?"

거짓말.

상냥한 어머니를 의심하고 싶진 않았지만 마리 테레즈는 자신할 수 있었다.

이건 거짓말이다.

지금 그들이 가는 파리는 절대로 마리 테레즈가 알던 파리가 아닐 거다.

구체적으로 무엇이 달라져 있을지는 아직 어린 그녀로선 알 수 없었지만, 그것만큼은 분명하게 자신할 수 있었다.

"제법 긴 여행이었네, 그치?"

하지만 어머니는 끝내 아무것도 답해주지 않았다.

그녀가 몇 번이고 보채도 다만 여름 휴양이었다고 말할 뿐이다.

언제나 울상이신 아버지께는 차마 물어보지 못했지만 아마 별다른 바는 없겠지.

그녀는 아직 어리고, 저들은 어른이니까.

사춘기 소녀에 불과한 마리 테레즈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귀를 쫑긋 세우고 마차를 모는 병사들의 이야기를 엿듣는 것뿐이었다.

덜컹덜컹.

[이봐, 그거 들었어?]

[뭘?]

[라파예트 사령관이 파리에서 아주 호되게 당했다던데.]

[엥? 파리에 그런 대단한 놈이 남아있었나?]

새로운 정보.

마리 테레즈는 새로운 소문에 가슴 설레며 귀를 기울였다.

그녀 같은 사춘기 소녀에게 이와 같은 소문은 소녀가 숨을 쉬기에 필요한 달콤한 디저트와도 같은 영양소였다. 

[몰라. 로베스피에르라는 놈이 상대였다던데, 다들 싸워보지도 않고 항복했다더라고.]

[싸워보지도 않고서 사령관님을 배신했다는 말이야?]

[글쎄 그렇다니까? 소문으로는 뭐 노래로 사람을 홀리는 세이렌이라느니 눈만 마주쳐도 사람을 조종할 수 있는 집시 주술사라느니 별소리가 다 나오고 있던데.]

[뭐야 그거 무서워.]

'멋지다.'

왜 무섭지?

마리 테레즈 같은 사춘기 소녀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감성이었다.

누구 한 사람도 다치지 않고, 누구 한 사람도 죽지 않게 해주는 마법을 거는 집시 주술사라니.

아아, 만일 당신이 정말로 지금 파리에 계신다면.

'제발 우리 가족 중 누구도 다치지 않게 해주세요.'

그 밖에 당신이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건 드릴 테니까.

덜컹거리는 불편한 마차 안에서 마리 테레즈 샤를로트는 홀로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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