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8화 (28/154)

수어사이드 스쿼드

할렐루야.

척.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대위, 동지께서 찾으셨다고 하여 대령하였습니다."

아니 형이 왜 거기서 나와.

[···쯧.]

집주인 놈이야 아주 짜증이 한 바가지인 모양이지만 나로서는 군례를 올리는 나보로부터 찬란한 후광이 비치는 환상이 다 보일 지경이었다.

실로 하늘은 우릴 버리지 않으셨구나.

역시 하늘이야말로 세상에서 제일가는 후원자이자 혁명진영의 은인 아니었을까?

하다못해 당원평가가 나쁜 것도 아니고 찬조연설이 되었건 소소한 길거리 봉사가 되었건 바쁜 와중에도 빠짐없이 활동에 참여한 열성당원이라고 나와 있었다.

뭐, 저놈이 이념에 물들었을 인간은 아니고 그냥 출세를 위해 이용한 거겠지만-알 게 뭐야.

중요한 건 저놈이 급진당 열성당원 소리를 들을 만큼 이쪽 세계에 깊숙이 들어왔고, 이미 주위에서도 빨갱이 딱지가 붙었을 거라는 점이다.

본인의 의향과는 별개로 고상한 왕당파 친구들이 학을 떼는 재투성이 신데렐라가 되어버린 거다.

아유,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아주 그냥 생각지도 않았던 복덩이가 넝쿨째 굴러들어와 있었네.

[복덩이는 무슨. 액덩이겠지.]

입 닥쳐, 막시밀리앙.

그보다 대위?

"당원명부엔 중위라고 나와 있던데?"

"예. 어제 저녁 동지께 부름을 받아 외출을 허가받기 위하여 사유서를 작성한 뒤 오늘 아침 옛 상관께 대위 계급장을 보급받았습니다."

···아하.

[군대 꼬락서니 한번 잘 돌아가는군.]

누가 아니래.

이름만 그럴싸하지, 본질은 민병대라더니 윗선에 연줄이 생기면 묻지도 따지도 않고서 진급시키고 보는 거냐.

하기야 그러니까 물라토 사생아인 뒤마 대령도 젊은 나이에 연대장까지 올라온 거겠지만.

여하간 이번에는 소 뒷걸음질 치다가 옥새를 발견했지만, 이것만 봐도 대충 지금 프랑스군의 준비 상태가 어떤 꼬락서니일지가 보인다.

뭐 본인들 딴에는 하도 장교들이 많이 도망쳐서 어쩔 수 없이 팍팍 진급시켜주고 있는 것뿐 조금만 여유가 있었어도 이렇게까지 하지는 않았겠지만 말이야.

군수체계 점검이나 산업혁명은커녕 이 고질적인 장교 부족과 혁명 이후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진 군 기강만 파고들어도 A4용지 꽉 채워서 보고서 100장은 가뿐하게 채울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든다.

새삼스레 가슴이 웅장해지는군.

"그래, 무슨 사정인지 대충 짐작이 가는군. 막시밀리앙 드 로베스피에르일세. 길다면 긴 인연이 될 텐데, 앞으로 잘 부탁하네."

슥.

아무튼 이번에도 앞서 뒤마 대령 때처럼 군례 대신에 오른손을 내밀었다.

덥석.

"예! 동지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여 지혜와 열정을 전하겠습니다!"

···호오.

역시 햇병아리라도 천하의 나보라는 건가?

내가 재촉할 때까지 혼자 어버버하고 있던 뒤마 대령과는 달리 나폴레옹은 무안해하거나 망설이는 기색도 없이 성큼성큼 다가와 내 오른손을 공손히 쥐었다.

우릴 만나러 오겠다고 사전에 부대에 밝히고 온 것도 그렇고, 아예 로베스피에르의 사나이로서 눈도장을 찍을 각오로 찾아온 건가?

마음에 들었어.

[하, 공화국을 무너트릴 꿍꿍이만 하고 있을 카이사르 놈이 이 로베스피에르의 사람이 되겠다고?]

라파예트는 뭐 얘보다 나았냐?

내가 보기에 지금 프랑스에서 군인 노릇을 하는 놈치고 야망 없는 놈은 단 한 사람도 없더구만 뭘.

어차피 군인들 인성은 다 거기서 거기고, 다만 대권에 가까운가 아직 멀리 떨어져있는가만 다를 뿐이다.

구국의 결단이 무서워서 제 할 일도 못할 거면 그냥 군대라는 조직을 해체해버리는 게 맞지.

저놈은 출세를 위해 로베스피에르라는 인간을 이용하려고 들고 있는 거고, 우린 우리대로 혁명을 위해 저 이리 같은 놈을 이용하려 들고 있다.

그거면 된 거지 뭐.

"우선 자리에 앉지. 내가 이번에 무슨 일로 자네를 부른 것 같은가?"

"아무래도 생도맹그 반란 때문이 아닐까, 하고 짐작하고 왔습니다만."

···그런데 이놈이 시작부터 세게 나오네.

[내 말했잖은가. 이런 카이사르 같은 놈이랑 가까이 지내서 좋을 게 하나도 없다고!]

뭐 어때, 충분히 시기상 그럴만했지.

요 며칠 사이 저 자칭 섭정의 도발만큼이나 파리를 어수선하게 만들고 있는 게 프랑스령 서인도제도의 흑인 노예반란이니까.

다시 말해서 아이티 혁명이다.

그게 프랑스 대혁명 와중이라는 건 알고 있었어도 정확히 언제였는지는 몰랐는데 딱 이맘때쯤이더라고.

파리에 소식이 도착한 게 지금이니 실제로는 훨씬 전에 시작된 사건이겠지만 여하간 오스트리아와 전쟁을 하느니 마느니 하는 와중에 해외식민지까지 상실하니 파리 민심은 바닥을 넘어서 지하실을 뚫고 맨틀로 향하고 있다.

이 생도맹그, 훗날의 아이티가 지금껏 프랑스에 사치재 공급을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었는데 혁명군이 백인 농장주들을 죽인 것도 모자라 플랜테이션 농장을 파괴하고 항구에 쌓여있던 농작물들까지 모조리 불살라 버렸거든.

덕분에 그동안 생도맹그에서 공급하던 모든 종류의 플랜테이션 작물들은 그야말로 부르는 것이 값이 되어버렸다.

나도 지금 벌써 며칠째 커피는 구경도 못 하고 있고.

크르르, 못 참겠다.

"감히 소관의 지론을 말씀드리자면, 이번 사태에선 속도야말로 생명입니다. 앞으로 1년 안에 반란을 진압하지 못하면 저 폭도들은 번듯한 군대로 완성될 거고, 그럼 장거리 원정이라는 약점을 지닌 아군으로선 너무나 큰 피해를 감수해야만 합니다. 그러니 저 천박한 해적들이 개입하기 전에 신속하게 저 시건방진 반동들의 콧대를 납작하게 만들어 본보기로 삼아야 합니다!"

"···으음."

그러니까 지금 나보가 언성을 높이는 것도 이해 못할 건 아니다.

파리의 민심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자면 커피 한 잔, 담배 한개피, 럼주 한병에 비하면 그까짓 검둥이들의 목숨 쯔음이야 지극히 사소하니까.

민중의 영웅 급진당이 시민들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는게 맞긴한데.

"틀렸네."

"···예?"

그래서 사정이 이해가 간다고 악업에 동조해주면 혁명가를 왜 하냐.

개혁가를 해야지.

어쩔 수 없다, 현실이 그렇다에 무너지는 시점에서 그놈은 이미 혁명가로서 낙제점이다.

현실이 그렇다면 하나를 내주고 다른 하나를 받아 갈 궁리를 할 게 아니라 더더욱 그 좆같은 현실을 뜯어고치려 악을 써야지 비로소 반골이고 혁명가인 거지.

술? 원래도 싫어했으니 럼주 좀 안 마신다고 탈도 안 난다.

담배? 금연 좀 합시다.

커피? 설탕? ···쓰읍.

참자.

참는 이에게 복이 있나니.

얼마 전에 집주인 놈에게 좀 사람답게 살자고 했던 주제에 이게 뭔 개고생이냐 싶기는 한데, 그렇다고 제 손으로 사슬을 끊은 형제자매들을 배신할 순 없다.

뭐, 보나 마나 출세하려고 가입했을 나보 놈에게 이런 식의 설교를 해봐야 귓등으로도 안 듣겠지만 말이야.

"지금 전시 수상은 오를레앙공일세. 우리와는 반대파라는 소리지. 그 친구들이 우리에게 그런 중요한 임무를 맡길 것 같은가?"

"아···소관의 견해가 짧았습니다. 지레짐작한 점 사죄드립니다."

"됐네. 그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거지. 우리가 이번에 떠맡게 된 건 국민의회 산하의 군무감찰위원회로서 조국의 준비상황을 꼼꼼히 점검하는걸세."

점검.

그 한 단어에 햇병아리가 눈동자를 빛냈다.

"···그렇다는 건 조만간 사용할 일이 생길 거라는 말씀이시군요."

"이봐, 너무 앞서나갔다고 한지 얼마나 되었다고 또 이러는 건가?"

"아, 죄송합니다. 제가 좀 마음이 급해서."

내가 먼저 너스레를 떠니 나보도 넉살 좋게 웃으며 뒷덜미를 긁적거렸다.

별로 알려준 것도 없는데 자꾸 툭툭 치고 들어오려고 드는 게 보통이 아니구만.

"의회는 지금 전쟁 위기를 면피용으로 소모하려고 하고 있네."

여기선 살짝 내가 권력에 얼마나 가까이 접근해 있는지 과시하는 게 낫겠다.

어차피 저놈이 우리한테 진심으로 충성할 리도 없고, 서로 이용하는 관계니까.

"너무 위험한 불장난이지. 난 저치들이 여론통제에 실패할 거라고 보고 있네."

"그렇겠지요."

"물론 지금 내 추측이 빗나갈지도 모르고, 사실 그편이 조국을 위해서건 민중을 위해서건 이상적일걸세."

톡톡.

가볍게 찬물이 담긴 물컵을 두드리며 햇병아리 나보와 눈을 마주쳤다.

긴장감보다는 기대가, 섭섭함보다는 기쁨으로 가득한 눈동자였다.

모처럼 손님이 찾아왔는데 왜 차려주는 것 하나 없냐고 물어보지도 않는 거 보면, 집에서도 설탕 하나 안 먹고 사는 청렴결백의 사나이 로베스피에르가 사치재난 와중 모범을 보이고 있는 거라고 일찌감치 꿰뚫어 본 건가?

아니면 단순히 이쪽에서 먼저 말을 꺼내길 기대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저쪽에서 먼저 말을 꺼내면 내 청렴결백함이, 내 쪽에서 먼저 말을 꺼내면 모처럼 찾아온 손님에 대한 홀대가 부각될테니까.

"하지만 말일세."

그럼 그냥 이 주제는 과감하게 묻어버려야지.

고작 이런 사소한 기 싸움으로 낭비하기엔 내 시간과 노력이 너무 아깝다.

"기왕에 감찰위원회씩이나 떠맡았는데 혹여 진짜로 전쟁이 시작되고 난 다음 망신을 당하기보다야 우리의 공훈이 널리 부각되는게 즐겁지 않겠나?"

"물론입니다, 동지."

"좋아, 말이 잘 통하는 동무군. 다시 한번 급진당에 온 것을 환영하네."

덥석.

자리에서 일어나 반갑게 손을 마주 잡았다.

집주인 놈은 단단히 삐졌는지 조금 전부터 아무 말도 없지만 그렇다고 날 막으려 들지도 않는 걸 보면 내심 나보 영입이 호재라는 걸 가슴으로는 아직이라도 머리로는 받아들인 거겠지.

소련의 혁명영웅 투하쳅스키의 이명이 「붉은 나폴레옹」이라고 했던가.

자, 이제 우리 급진당엔 진짜 나폴레옹이 있다.

그러니까 어서 내 이름 팍팍 팔아서 출세하려무나.

나중에 이 청구서는 몇 배로 뜯어갈 테니까.

뻔하고 의례적인 잡담을 주고받으며 이날 우리는 한참을 웃고 또 웃었다.

***

다음날.

"조제프 푸셰라고 합니다. 위원장님께서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구면이지요? 이번에 위원장님을 도와서 군무감찰위원회에서 잠시 신세를 지게 되었습니다."

"앙투안 라부아지에입니다. 화약생산이라면 맡겨만 주십시오. 애초에 이 프랑스의 화약생산설비들은 전부 제가 설계한 자식 같은 존재들이니까요."

···맙소사.

여기가 무슨 수어사이드 스쿼드도 아니고 푸셰에 라부아지에에 나폴레옹에 로베스피에르까지 한 팀이라니.

아, 감찰위원회의 앞날이 참으로 어둡구나!

[라부아지에야 나도 익히 악명을 알고 있네만, 푸셰 저 성실한 친구는 왜?]

훗날의 FBI 초대 국장 에드가 후버가 롤모델로 삼았던 근현대 비밀경찰들의 아버지여.

다른 놈은 몰라도 푸셰는 혁명정부 밑에서 정치경찰 만들어 혁명 투사들 조지고 다닌 전적이 워낙에 화려해서 알고 있다.

나폴레옹을 황제 만들어준 1등 공신인 주제에 나중에 나폴레옹 몰락의 1등 공신까지 먹은 전적도 인상 깊고.

[···참, 나라가 혼란스러워서 그런가. 평소에는 찍소리도 못할 별 개 같은 놈들이 다 튀어나오고 있군.]

글쎄, 이 친구도 독재자 로베스피에르가 발탁해서 출세시켜준 대표적인 인사인데 당신이 그런 소리 할 자격은 없지.

[내가?!]

아, 물론 나폴레옹 뒤통수쳤듯이 로베스피에르 뒤통수도 맛깔나게 후려쳤던 친구다.

라부아지에야 뭐, 워낙에 악명 높은 혹리고 위대한 과학자이기 이전에 탐관오리의 대명사니까 구태여 언급할 필요도 없겠고.

아무튼 저 쪽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할 수도 없는 이야기니까 우선 만면에 미소를 띠고 반겨주기로 하자.

"저도 다시 만나뵙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푸셰 의원님. 그리고 프랑스의 영웅을 만나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라부아지에 박사님. 이번에 위원장에 취임하게 된 막시밀리앙 드 로베스피에르라고 합니다. 길다면 긴 인연이 될 것 같으니, 복되신 우리 주의 이름으로 한번 잘 지내봅시다."

"그런데 거기 그 친구는···?"

어이쿠, 푸셰 이 친구 시작부터 만만한 나폴레옹부터 걸고 넘어가는 것 좀 보게.

뭐 이 친구가 여기서 이름값이며 지위며 가장 낮고 보잘것없다 보니까 한쪽 구석에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처박혀있긴 했는데.

"아, 제가 아시다시피 군인이 아니잖습니까? 군문에는 완전히 문외한인 사람이 괜히 설친다는 소리가 나오지 않도록 이참에 이것저것 배우고 자문을 구해볼 요량으로 데려온 친구입니다."

괜히 또 쫓겨나면 곤란하니까 여기선 한번 구해주자.

이렇게 나폴레옹을 내 아랫사람으로 상류사회에 데뷔시키면 나중에 은사랍시고 거들먹거릴 명분이 생기니까.

주인도 몰라보는 사냥개에게 물어뜯길 바에야 다소 거추장스럽게 느껴지더라도 목줄을 여러 겹 채워두는 게 맞다.

"제 부관이나 비서관이라고 생각하고 다들 편히 대해주시길. 코르시카에서 온 친구라 좀 어눌해 보이겠지만 싹싹하고 성실한 친구입니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대위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척.

때마침 나폴레옹이 푸셰와 라부아지에를 향해 군례를 올렸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아예 내 부하로나마 저 구름 위를 거니는 사람들에게 제 이름을 각인시키고야 말겠다는 야심이 느껴지는 군례였다.

"흠, 그렇습니까."

하지만 그걸로 끝.

푸셰는 나폴레옹의 군례를 뻔히 보고도 못 본 척 고개를 돌려버렸고, 라부아지에는 처음부터 별 관심도 없는 듯했다.

결국 내가 눈짓으로나마 받아준 다음에야 혼자 뻘쭘하게 손을 내리는데-오오.

훗날 프랑스의 황제가 되었을 사나이가 지금은 참으로 처량하구나.

[풋.]

너도 남 말할 처지는 아닌 거 알지?

알면 이 정신기생체님께 앞으로 감사하다고 매일 절하셔.

[웃기고 있군.]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뭘 먼저 감찰하고 또 손봐야 할지 모를 정도로 엉망입니다."

라부아지에가 땅이 꺼지라고 한숨을 내쉬며 선수를 가져갔다.

"고질적인 장교부족 문제야 제가 관여할 문제도 아니니 넘어간다고 치더라도, 일단 화약이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당장 해군이 유명무실해진 이상 전쟁이 시작되면 인도산 초석이 귀해질 텐데, 파리 시민들에게 매일 용변량을 두 배로 늘리라고 할 수도 없고 도대체 어디에서 재료를 구해야 할지 원."

"소총도 마찬가지입니다."

뒤이어 푸셰가 받아쳤다.

"아시다시피 혁명 이래로 아직도 지방에는 혁명정부에 순종하는 이들보다 반항하는 이들이 더욱 많습니다. 그리고 파리 조병창을 제외한 우리 프랑스 왕국의 모든 조병창이 이 군벌 놈들의 관할지역에 있고요. 만약 지금 전쟁이 시작된다면 파리 조병창만으로 전쟁을 치러야 할 판입니다."

···상상 이상으로 개막장인데.

그러니까 지금 파리 하나로 나머지 프랑스 전역+열강군과 싸워야 한다는 소리지?

아니 바스티유 습격 사건 끝나고 벌써 3년이나 지났다면서.

그럼 진작에 국토 정도는 장악해놨어야지 의회는 대체 뭐 하고 있었던 거야?

멘셰비키도 1차대전 없이 3년이라는 여유가 주어졌으면 볼셰비키가 들고 일어날 엄두도 못 내게 국토장악 성공했겠다.

자기들끼리 정치질이나 하면서 국민이 바친 혈세로 흥청망청 놀았나?

[놀았지.]

이렇게까지 속 시원하게 의문이 해결될 줄이야.

고맙소, 로베스피에르 동지.

역시 민중혁명만이 유일한 답이라는 확신이 또다시 무럭무럭 샘솟는구려.

"그럼 그 파리 조병창은 무사합니까?"

"아뇨."

각오를 다지고 푸셰에게 질문을 던지자 기다렸다는 듯이 부정문이 돌아왔다.

"장인들을 고용하고 안전을 보장할 국왕과 가장 큰 손이었던 왕국군이 와해 된지가 근 3년째인데 파리 조병창이 무사하다면 그게 더 기적이지요. 뭐 국민위병이 있으니 아직 남아있긴 하지만, 차라리 이 기회에 의회에서 예산을 타내 재건하겠다는 각오로 접근하셔야 할 겁니다."

"마침 잘됐군요. 파리 조병창부터 가봅시다."

"···예?"

푸셰가 의아하다는 듯이 이쪽을 쳐다봤다.

라부아지에도 어리둥절하긴 매한가지.

파리 조병창이 얼마나 거대할지는 몰라도 그걸 재건해야한다는데 좋은 소식일 리가 없다.

애초에 구닥다리 장인들을 내쫓고 공장 노동자들로 채울 작정이었던 나 같은 예외만 빼고서.

"새로운 조국의 강인한 군대에 신뢰할 수 있는 무기를 쥐여줄 신성한 노동시설이잖습니까. 당연히 가장 먼저 방문해야 하지 않을까요?"

물론 벌써 그런 이야기를 해줄 필요는 없겠지.

앞으로도 시간은 많다.

이 기회주의자들을 모더니즘의 광기에 흠뻑 적시려면 앞으로도 갈 길이 구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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