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1화 (31/154)

정의집행

감찰에 앞서 회의 와중 푸셰가 발언하기를.

"이따위 아시냐(Assignat) 같은 휴지 조각을 축재수단으로 쓰는 놈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을 겁니다."

덧붙여 이 아시냐라는 건 혁명 이후 토지개혁을 위해 의회에서 발행한 채권이다.

난 이놈들이 토지개혁엔 손도 안 댄 줄 알았더니 그냥 나름 시도는 했는데 무능했던 것뿐이더라고.

뭐, 귀족이나 부르주아지 소유는 쏙 빼고 교회 재산만 강제 압류한 거긴한데.

아무튼 본디 유상몰수 유상분배의 수단이 되어야 했을 토지채권 아시냐는 국민의회의 경제관념 부재, 고질적인 재정난, 그리고 이자 지급 포기-다시 말해 채무불이행 선언과 겹치면서 작금에 와서는 경제 실패의 상징과도 같은 흉물이 되어버렸다.

그럼 하다못해 이 아시냐를 폐기하거나 원금이라도 갚아야 했건만 의욕만 앞서던 혁명정부는 한술 더 떠서 올해 초엽에 아시냐를 법정화폐로 공인.

혁명 이전 통용되던 금속화폐 리브르(livre)를 대체할 사실상의 고액지폐권으로서 시장에 대량유통 하기 시작했다.

제 아무리 이 아시냐가 토지재산에 의해 최소한의 가치가 보장된다지만 원래 국채였음을 떠올리면 국민에게 국채를 강매한 거지.

당연히 이런 식의 강제유통은 안 그래도 애물단지였던 아시냐를 더욱 꺼리게 할 뿐이었으니, 본래라면 100 리브르의 가치를 가져야 할 지폐가 실제로는 7할 남짓한 가치를 지니는 등 대혼란을 초래했다.

한마디로 조선에 비유하자면 당백전 보다 더한 놈이 되어버린 거다.

덕분에 돈 많은 부르주아지에서 돈 없는 상퀼로트에 이르기까지 원성과 불만이 끊이질 않건만 고질적인 재정난과 부정부패에 찌든 국민의회는 오늘도 아시냐만 고집 중.

예산이 부족해? 아시냐 추가 발행하면 되겠네.

국고에 금괴가 모자라? 아시냐 추가 유통하고 리브르는 녹여다가 금괴로 만들자.

교회에서 우리 재산으로 아시냐 같은 흉물 찍어내지 말라고 항의한다고? 응, 이제 정부 재산이야. 너희 재산 아니야∼.

이러니까 불순물이 좀 섞였건 어쨌건 금으로 만들었던 리브르와 은으로 만든 에큐(Écu)에 비하면 진짜로 휴지 조각이나 다름없을 수밖에.

모르긴 몰라도 혁명기 와중 교권주의 반란이나 왕당파 반란에 이 아시냐 발행 지분이 8할은 된다고 본다.

[험.]

그런데 이 집 주인 놈도 거들었더라고?

이런 휴지 조각을 강매하고 다녔으니까 단두대로 끌려갔지.

알면 알수록 참 이 정신기생체 박민혁에게 감사하다고 절해야 할 양반이다.

"우리야 명색이 정부 기관이니까 아시냐를 부정할 순 없지만, 하다못해 고발자들에겐 리브르와 에큐로 포상해야 합니다. 채권 말고, 무조건 실제 통화로요. 현장에서 현물 지급원칙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이번 감찰은 백이면 백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고로 푸셰가 제안한 건 상호감시, 상호고발제도였다.

만약 우리가 지금 치안총감이고 파리의 치안 병력을 마음 먹는 대로 아무 때나 동원할 수 있다면 그냥 감찰 한번 싹 돌리면 끝이었겠지만 저쪽에서 그런 권한을 줄 리가 있나.

결국 조사도 알아서, 고발도 알아서, 체포도 알아서 해야 할 거고 이럴 때도 의지할 수 있는 게 의로운 시민과 내부고발자라는 민간협력자이며 이들의 참여 의지를 북돋아 주는 것이 바로 리브르, 에큐라는 현물인 거다.

자, 이로써 대강의 방향성은 정했고 문제는 구체적인 수단이었는데-.

"그럼 상퀼로트들의 참여를 독려합시다."

"···그 떠돌이들 말씀이십니까?"

"예. 저 가난하고 힘없는 민중 말입니다."

여기서부턴 내 독무대다.

아무렴 이 세상에 개방(丐幇)만큼 뜬소문에 밝은 놈들이 어디 있을까.

뭐 창작물들에 등장하는 개방이야 저럴 거면 왜 구걸하면서 사냐 싶은 놈들이지만 좌우지간 뒷골목만큼 남의 험담, 그것도 높으신 분들의 험담에 밝은 동네도 드물다.

우리는 그 상퀼로트들의 영웅이고, 1주일간의 인민재판으로 슬슬 분위기도 올라왔겠지.

그렇다면 남은 건 실행뿐이다.

"먼저 알아서 제 죄를 자백하는 이들에겐 벌금의 3분지 1을 깎아줍시다. 그리고 타인의 부패를 고발하는 이에겐 벌금의 절반을 포상으로 주는 거지요."

"그럼 중간에 빠져나가는 이들이 너무 많은 거 아닌가?"

이건 라자르의 지적.

뭐어, 아마도 큰 건수를 숨기고 작은 건수만 자백해서 벌금까지 탕감받고 빠져나가는 경우를 걱정한 거겠지만.

"그래. 그래서 무조건 사건마다 다르게 집계할걸세."

한번 처벌 당한 놈이 또 고발당하지 않게 해줄 거라는 말은 단 한 번도 한 적 없다.

일사부재리도 죄목이 같더라도 사건별로지 부패사례 하나 자백했다고 면죄부를 주는 법이 어디 있어?

설령 있더라도 민중이 용서치 않는다.

다 똑같은 비리라도 전부 다른 사건으로 100번 고발당하고 유죄까지 입증되었으면 당연히 그거 하나하나 다 다르게 배상해야지.

"물론 혐의는 고발자가 직접 입증하도록 할걸세. 고발당한 쪽이 그 모든 사건에 대하여 하나하나 변론하게 만들면 마녀재판이 되어버릴 테니까. 사람도 시간도 부족하니 그리 공정한 재판이 되기는 쉽지 않겠지만, 노력은 해봐야지."

"그럼 고발자가 너무 불리해지는 거 아닙니까? 자칫 보복당할 수도 있는 거 아닙니까."

이번에는 라부아지에의 지적.

이 자식 은근히 표정이 밝아진 것 같은데 기분 탓인가?

[아니, 내가 보기에도 자네가 제대로 본 것 같군.]

역시 가재는 게 편 아니랄까 봐 저 탐관오리 마인드 보소.

"예. 그래서 고발자가 여럿일 경우 포상금을 n분의 1로 나누도록 할 겁니다."

하지만 어림도 없지.

딱 여기까지만 이야기했는데도 전문 탐관오리 아니랄까 봐 바로 무슨 이야기인지 알아들은 라부아지에의 얼굴이 도로 새파랗게 질렸다.

고발자가 여럿일 경우 포상금을 n분의 1로 나누겠다는 말이 결국 무슨 소리겠어?

고발 측에서 팀 먹고 덤벼드는 걸 사실상 권장하겠다는 소리지.

힘없고 돈 없는 상퀼로트가 돈 많은 부패 관료와 부르주아지에 맞설 방법은 오직 단결과 연대뿐이니까.

혹시 모를 사적인 보복에 대비하여 고발 측에서도 일찌감치 조직을 꾸리도록 부추기는 거다.

"무엇보다 이렇게 민간협력자들이 조직을 이루게 되면 감찰위원회에 제시될 증거나 증언도 더 세밀하고 체계적으로 마련되겠지요. 우린 이 증거와 증언이 조작된 것은 아닌지, 잘못된 전제에서 나오진 않았는지만 파악하면 되니 훨씬 일 처리가 빨라질 겁니다."

"그, 그렇군요."

고개를 떨구는 라부아지에도 이미 짐작하고 있겠지만 조직화의 장점은 그것뿐만이 아니다.

아무렴 두당이 아니라 건당으로 계산하게 되면 그 인간이 중간에서 챙긴 액수가 제아무리 어마어마해도 개별 포상금은 그렇게까지 많은 액수가 나오기 힘들다.

하물며 포상금을 n분의 1로 나눠야 하니까 개개인이 챙길 액수는 그보다 더 적어지겠지. 

대다수의 견실한 시민들은 이런 푼돈이나 받으려고 높으신 양반들의 원한을 사면서까지 뒤를 캐려고 하지 않겠지만 파리 뒷골목의 상퀼로트는 이미 고정된 일자리도, 본인 소유의 자택도 없이 떠도는 무산대중.

구걸 따위가 아니라 나라에서 주는 포상금으로 한 끼니라도 넉넉히 해결할 수 있다면 목숨을 걸 사람들이다.

겸사겸사 평소 아니꼽게 보고 있던 높으신 양반들을 끌어내리고 엿먹일 귀중한 기회이니 더더욱 목숨 걸고 덤벼들겠지.

결국 이 포상금만을 위하여 전문적으로 캐고 다니는 사설 감찰조직들이 등장할 거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급진당을 통하여 이 사설감찰조직의 활동을 돕고 수면 위로 끌어올려 최종적으로는 국가의 통제를 받는 진짜배기 감찰조직으로 완성하는 것.

단기적으로는 부족한 국고를 채우고 장기적으로는 이 프랑스에서 부정부패를 뿌리 뽑을 대계인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나파르트 동무, 다시 한번 잘 부탁하네."

"영광입니다, 위원장 동지."

척.

그 첫걸음으로서 1주일간의 인민재판 기간이 끝나는 즉시 나폴레옹에게 노농적위대-가 아니라 사설 감찰조직을 맡겼다.

그동안은 군인이라기보다는 내 비서나 시다바리였으니 모처럼 군인으로서 실력 발휘 좀 해보셔야지.

진짜 전쟁이 아니라 길거리 싸움이다 보니 좀 불안하긴 한데, 대신에 당원명부를 뒤져서 좀 덩치 크고 힘 잘 쓰는 친구들로 골랐으니 괜찮을 거다.

그리고 우리 노총각 로베스피에르에 비하면 별로 키도 작지도 않더만 뭘.

[이봐!!!]

이번엔 진짜로 농담 아님.

여하튼 나폴레옹이 파리 뒷골목에서 열심히 날뛰다 보면 슬슬 하나둘 따라 하는 친구들이 나오게 될 거다.

안 그래도 전쟁 위기다, 식민지 반란이다로 민심이 뒤숭숭한 상황이니 정의 집행이라는 핑계로 돈까지 벌 수 있다는 풍문이 돌기 시작하면 정말로 순식간에 레드오션이 되겠지.

그럼 그때 나폴레옹은 다시 내 곁으로 불러들이고, 대신에 나폴레옹이 천거하는 친구에게 뒷골목 관리를 맡기면서 급진당을 중심으로 조직화시키는 거다.

미리 라파예트 후작한테 부탁해서 혹시 이걸로 신고하는 놈이 나오면 뒤마 대령이 달려오도록 설계해놨으니까 어지간하면 별일 없겠지.

라부아지에가 불었던 부정부패 메뉴얼이라던가 탐관오리로서의 노하우 같은 것들도 싹 다 인쇄해서 파리 뒷골목에 덕지덕지 붙여놓으면 거의 수백 수천 명의 불특정 다수가 덤벼들 텐데 그걸 저놈들이 하나하나 다 보복할 수도 없을 테고.

우익 측에서 썩 좋아하진 않겠지만 당장 전쟁을 하느니 마느니 떠들어대느라 정신없는 마당에 정의 집행하겠다는데 말리진 못할 거다.

이런 소소한 오락으로라도 민심을 달래놓지 않으면 진짜로 전쟁하게 될 판이라는 거 다들 알 테니까.

다들 한동안 사회정의만 찾을 텐데 혐오팔이 좋아하는 에베르 그 친구가 울상이 되겠구만.

[역시 자네가 사라진 건 자네 조국의 홍복-.]

입 닥쳐, 막시밀리앙.

***

정의.

"염병하고 있네."

딸꾹.

일자 무학의 여관집 아들내미, 조아생 사병은 오늘도 헌법수비대의 임무를 내팽개친 채 뒷골목에서 술을 마시며 혼자 낄낄 조소를 터트리고 있었다. 

그가 지금껏 태어나서 지켜봐 온 바. 정의니, 선이니 하는 건 그냥 높으신 양반들이 제 얼굴에 금칠하려고 제멋대로 지껄여대는 헛소리에 불과했다.

그래, 혁명이 터지고 거들먹거리던 돼지들이 대거 내쫓기거나 죽임을 당할 때는 조아생 사병도 정의를 잠시나마 믿었다.

어쩌면 정말로 선한 자는 보상받고 악한 자는 단죄받는 무형의 질서가 이 세상에 존재할지도 모른다고, 얼굴 반반하고 힘 잘 쓰는 재주밖에 없는 일자무학도 성공할 수 있는 세상이 올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글렀다.

벌써 바스티유 습격 이후 3년째 아무것도 변한 게 없는데 아직도 정의라는걸 믿는 게 더 미친놈이었다.

의회란 놈들은 저 무능하다는 국왕보다 더한 얼뜨기들 뿐이다.

아니지, 차라리 국왕이 더 나았다.

최소한 국왕 부부는 사람이라도 좋았으니까.

인성도 글러 먹은 주제에 무능하기까지 한 놈들보다야 백배, 천배는 나았다.

"니미. 안 그래도 쪼들려 죽겠는데 봉급을 아시냐 같은 휴지로 지급하겠다는 게 말이야, 방귀야."

딸꾹.

저절로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참으로 일할 보람도 없는 세상이었다.

죽자 살자 힘써봐야 말빨 좋고, 머리 좋은 놈들이나 승승장구하지 그 같은 멀대는 별 볼 일 없는 계집들이나 좋아해 줄 뿐.

재수 없는 귀부인들은 그의 겉모습에 반하여 다가오다가도 또 금세 포악하고 무식한 성정에 질색하며 멀어져갔다.

아니 무식함은 기사의 미덕 아니었던가?

기사가 용맹하고 힘 잘 쓰면 됐지 도대체 언제부터 기사의 나라 프랑스가 저 허약한 이탈리아 샌님들도 아니고 그렇게 책을 봤다고.

"에이씹."

쨍그랑-.

한참을 마시던 포도주마저 바닥을 보이자 이를 냅다 집어던진 조아생 사병은 거칠게 뒷덜미를 벅벅 긁어대며 혼자 생각에 잠겼다.

자아, 이를 어쩐다.

땡땡이 치는 거야 아무튼, 저 의회란 머저리들이 아시냐 같은 휴지쪼까리만 죽자 살자 고집하는 이상 이대로 근속해봤자 내일이 없다.

결국 저 휴지 조각에 그려진 동그라미가 몇 개냐만 달라지는 거니까.

차라리 이제라도 다른 직업을 찾아볼까?

또 그러기엔 힘쓰고 싸우는 재주 말곤 아무것도 배운 게 없는 그가 이제와서 이직해봐야 반겨주는 곳은 뒷골목 갱단뿐.

그도 사나이로서 긍지가 있지 뒷골목 양아치 취급이나 받으며 살고 싶진 않았다.

그래도 어떻게든 잘 돌아가지도 않는 짱돌을 열심히 굴러가며 혼자 생각에 잠겨있는데.

빠각!

"···응?"

때마침 가까운 곳에서 너무나도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살 때리는 소리였다.

일자무학으로 나고 자란 그에겐 반갑다 못해 정겹기까지 한 소리였다.

"도대체 대낮부터 언놈이야?"

한참을 꿀꿀하던 기분이 갑작스레 좋아졌다.

건들건들 몸을 풀며 패싸움이 벌어진 장소로 향하는 뒷모습은 영락없는 뒷골목 양아치 그 자체였으나, 이미 그에겐 그런 자각도 없었다.

그저 모처럼 사람을 팰 일이 생겼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즐거웠기에.

"뭐, 뭐야 넌?!"

"못 본 척 지나가라. 그게 네 신상에도 좋을 거다!"

"···잠깐, 왜 군인이 이 시간에 뒷골목을 떠돌고 있는 거야?"

그렇게 현장에 들어서자 눈에 들어오는 건 네 명의 사나이.

개중 한 명은 구석에서 있는 힘껏 급소를 가린 채 쭈그려 앉아있고, 나머지 셋은 그 한 명을 두들겨 패고 있었다.

인원수가 좀 부족한게 아쉽긴 한데-.

"나쁘지 않네."

"아니 이놈이 모른 척 지나가래도-."

뻐억!

상황 파악은 불필요했다.

집단폭력 사건에 휘말려 든 무고한 시민을 구하려 했다는 적당한 핑계를 생각해낸 즉시 조아생 사병은 번개처럼 달려들어 그를 향해 다가오던 사나이의 낯짝을 오른 주먹으로 후려쳤다.

철퍼덕!

"히익···!"

그걸로 끝이었다.

주먹이 명중하는 즉시 제자리에서 30cm가량 붕 떠오른 사내는 목뼈에서 우두둑, 소리를 내더니 그대로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뒤로 널브러졌다.

뭐, 죽었다면 쥐가 알아서 파먹어주겠지.

조아생 사병은 뒤이어 다른 두 명에게 달려들어 각각 옆구리, 명치에 한방씩 정권을 꽂아 넣었다.

부웅!

뽀각!

그러자 옆구리에 정권이 꽂힌 사내는 망치 따위의 둔기로 얻어맞은 것처럼 옆으로 발사되어 벽에 부딪혀 쓰러졌고, 명치에 꽂힌 사내는 얻어맞은 형상 그대로 갈비뼈가 무너져서 두 번 다시 복구되지 않았다.

절명.

순식간에 세 명을 맨주먹으로 살해한 조아생 사병이 좀 지나쳤나, 하고 혼자 뒷덜미를 긁적거릴 즈음.

"사, 살려주십시오!"

털썩.

"···엉?"

이번엔 혼자 두들겨 맞던 사내가 조아생 사병을 향해 벌벌 떨며 목숨을 구걸하기 시작했다.

무슨 사람이 아니라 곰이나 사자 같은 맹수를 목격한 듯한 반응이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두 번 다시 눈에 띄지 않겠습니다! 정말입니다!"

"이봐, 그게 지금 목숨을 구해준 은인에게 할 말이야?"

졸지에 불쾌해진 조아생 사병이 눈살을 찌푸렸다.

"으, 은인?"

사내는 도저히 머릿속에서 일치가 안 되는 듯 마른침을 삼켰으나.

우두둑.

"옛! 은인이시고 말고요! 네! 전부 말씀드리겠습니다! 원하시는 거라면 뭐든 드리겠습니다! 제발 목숨만은!!!"

그것도 잠시, 조아생 사병이 손마디를 풀자 넙죽 엎드려 묻지도 않은 사실들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사내의 증언에 따르자면 그는 지금껏 제법 높으신 양반의 비리를 캐내고 있었다고 했다.

그것도 남들처럼 팀을 짰다가는 포상금을 나누게 될까 봐 단독으로 말이다.

물론 결과적으로는 이 만용이 독이 되어서 돌아왔고, 끝내 발각되어서 그 높은 놈이 부리던 사람들에게 흠씬 두들겨 맞고 있었다는 이야기였는데-.

"그래서 그 포상금이 얼마나 된다고?"

"네, 넷! 그게, 징수액의 딱 절반이니까 아마 1만 리브르 쯔음···."

1만 리브르.

아시냐가 아니라 리브르.

그렇다면 이야기가 다르지.

안그래도 때려치우려던 참에 잘됐다.

"히익?!"

조아생 사병은 여전히 겁에 질려 덜덜 떠는 사내와 어깨동무하며 속삭였다.

"이봐, 친구."

"치, 친구라니요. 제가 어찌 나리를 그리···."

"그럼 뭐 좋을 대로 형님이라고 부르던가. 아무튼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한탕 거하게 놀아보지 않겠어? 물론 내가 8, 네가 2로 나누자고."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조아생 사병, 아니 불꽃 사나이 조아생 뮈라는 제멋대로 이를 긍정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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