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2화 (32/154)

의기투합

"자네 정말로 달라졌군."

또 이 소리야.

파리조병창 시찰 와중 라자르가 다시 봤다는 듯이 말했다.

"예전에는 뭐라고 할까, 정말로 책이나 논문에서 본 그대로 낭독하는 것 같은 친구였는데 말이야. 어떻게 현실과 이론 사이에서 나름의 타협점을 찾아낸 건가?"

그렇다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부정은 하지 않겠네.]

양심은 있군.

뭐 당통부터 시작해서 다들 똑같은 소리 중이니까 그럴 만도 하지.

아니, 따지고 보면 나와 내 미래지식부터 시작이었나?

"뭐, 그런 거로 쳐두지."

어차피 오컬트적인 요소를 빼고서 잘 설명할 자신도 없고, 무엇보다 요즈음 우리 집주인님이 한동안 화술을 뽐낼 자리가 없다 보니 좀 의기소침해지셨다.

지난주 주일미사-를 빙자한 데이트 와중 뒤플레 아가씨가 기운을 내라고 말씀해주셨을 정도니 말 다 했지.

여기선 적당히 끊고 가는 게 맞겠다.

"그보다 우리의 혁명적인 분업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나. 어디 잘 굴러갈 것 같은가?"

"그거야 일단 조병창을 굴려볼 일이 생겨야지 않겠나."

라자르가 쓰게 웃었다.

"계획안이 반려된 게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겠군. 오히려 왜 쓸데없이 와인이나 축낼 인부를 그렇게 늘렸냐고 하던데, 말을 말아야지. 정성껏 적어올린 보고서도 안읽고 댁댁거리기만 하니 난 저놈들이 정말로 전쟁할 생각이 있기나 한지가 의문일세."

아, 안심하시오.

동지의 생각대로 지금 의회에선 전쟁할 생각 따윈 추호도 안 하고 있을 테니까.

전쟁할 생각도 없으면서 자꾸 전쟁 타령하면서 위기 고조 시키는 게 더욱더 악질이지만 말이야.

나도 저 의회에서 열심히 입씨름이나 할 때는 아무 생각 없었는데, 이 군무감찰위원회 활동을 시작하고 아시냐를 비롯해서 이놈들이 벌여둔 온갖 무능과 삽질을 발견할 때마다 지금 의회는 제정신이냐는 생각 밖에 안 든다.

아니 뭐 실수야 할 수 있다고 치는데, 실정을 했으면 시인을 하건 개선안을 내놓건 해야지 아무튼 우린 아무 잘못도 없다고 아득바득 우기면 뭐 어쩌자고.

혁명무죄 조반유리라지만 점점 반동들 반란도 사실 조반유리 아니었을까 하는 의심이 다 들 지경이다.

혁명정부가 국민에게 부실채권 강매시키고 고액권 윤전기를 무제한으로 돌리면서 하이퍼 인플레이션 대폭발하는데 자유시장경제랍시고 보이지 않는 손만 믿고 완전 자유 가격제 달리면 그게 무슨 혁명정부냐.

구체제보다 더한 압제자지.

사이버펑크에서 등장하는 기업국가도 지금 프랑스 국민의회보단 민생을 신경 써줄 거다.

최소한 그 친구들은 소비재와 화폐가치라도 신경 써주니까.

반면에 우리의 프랑스 국민의회는 완전 자유시장이랍시고 중간 유통 상인들이 무조건 부자 동네에 웃돈 받고 팔고 가난한 동네엔 소비재 공급 자체를 안 하고 있는데 그조차 어쩔 수 없는 시장 논리란다.

그러니까 웃돈 주고 빵 살 돈 없는 놈들은 굶어 죽건 훔쳐먹건 간에 알아서 하라는 거지.

아니 이러고도 경제부터 살리는 게 아니라 전쟁 타령이나 하면서 대충 뭉개고 싶냐?

진짜로?

[어차피 이 나라는 망했으니까 이래죽으나 저래죽으나 라는 거 아니겠는가?]

공자님 맙소사.

다른 건 몰라도 먹는 문제만큼은 정부에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해결해줘야 한다고 믿었던 상식이 무너지는 기분이다.

그래서 한번은 이 동네는 무슨 구휼미조차 안 푸냐고 했더니 집주인 놈이 그 구휼을 교회에서 했단다.

그런데 이 국민의회가 교회 재산 압류했으니까 전근대적인 사회안전망마저 싹 날아가 버린 거지.

물론 이 빈 부분을 채울 작정으로 나름 복지제도를 구상하긴 했는데, 그 예산 마련을 위하여 또 아시냐 추가 발행 엔딩.

예수님 맙소사.

이쯤 되면 반동반란도 조반유리가 확실하다.

내가 이런 소리까지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이런 상황에서 일어나는 왕당파 반란이라면 사실 농민혁명인게 분명하다.

"준비라면 완벽하네."

후우-.

라자르가 답답하다는 듯이 한숨을 내뱉었다.

"하지만 전시도 아닌데 우선 의회에서 인가를 내줘야 이 조병창을 제대로 돌려볼 것 아닌가. 그렇다고 군부에 납품할 것도 아닌데 마구 찍어내다가 암시장에 흘러 들어가게 할 수도 없으니 원."

으음.

요컨대 수요는 없지만 시험 운행은 해보고 싶다는 건데.

"그럼 완성품을 군부에 납품하는 게 아니라 다시 분해하면 되는 것 아닌가?"

"으, 응?"

"그러니까 부품만 잔뜩 생산해서 언제건 조립만 하면 완성할 수 있도록 비축해두고, 또 조립만 하는 조와 분해만 하는 조를 나누어서 시험 운행하자는 말이네. 말하자면 교육 기간인 셈이지."

원래 당에서 수요와 공급량을 정하던 냉전기 동구권에서 하던 짓이라고 하는데, 우리야 아직 그 단계는 아니고 노동자들 교육 차원에서 운영해보는 거니까 별문제는 없을 거다.

나중에 실제상황 터지고 급하게 조병창 돌리려다가 숙련 부족 때문에 오만가지 문제가 터지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어?

"그러니까 한번 분해한 걸 다시 조립하겠다고? 으음···."

별로 대단한 발상도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라자르 이 친구는 뭐가 탐탁잖은지 인상을 찌푸렸다.

···뭐야, 또 뭐가 문제지?

[도중에 조금이라도 부품이 섞이면 귀한 소총이 고장 날 테니까.]

부품이 조금 섞였다고 고장이나?

아니 무슨 개복치야?

[당연하지. 자네 시대에는 아니지만, 우리 시대의 이런 정교한 장비들은 보통 장인들이 손대중으로 만들거든. 파리 조병창이야 같은 시설에서 같은 규격의 장비를 쓰는 친구들이 대량 생산하니까 비교적 이런 문제가 덜하겠지만 일반적으로는 같은 총이라도 만드는 사람이나 조병창이 다르면 부품이 호환이 안되는 게 보통일세.

그나마 파리 조병창이니까 저 친구도 생각 정도는 해보는 거지, 아니라면 단칼에 말도 안 되는 소리 말라고 했을걸세.]

오, 모더니즘이여.

당연히 같은 제품, 같은 조병창에서 나온 부품이면 완벽하게 호환되어야 정상이 아니었단 말인가.

이런 식으로 산업혁명 전과 후의 차이점을 느끼게 될 줄은 몰랐는데.

"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해내야만 하네."

그러면 여기선 그냥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게 낫겠다.

중장기적으로는 프랑스 전역의 도량형과 생산체계를 통일해야 할 판에 파리 조병창 하나도 딱딱 호환이 안 되면 대체 뭔 수로 산업화를 하나.

"장차 전쟁이 시작되면 우리가 적군에 맞서서 내세울 수 있는 게 뭐가 있겠는가? 전술 전략? 장교들이 도망쳤는데 어림도 없는 소리지. 규율? 사관들이 도망쳤는데 무슨 수로 부대를 유지할 텐가."

"···결국 화력밖에 없다는 소리군."

"그래, 내가 하고 싶은 말이 그거네. 저들이 다섯 명이 열 발을 쏠 시간에 우린 스무 명이 스무 발을 쏴야지. 한데 화약이야 초석이 없으니 어쩔 수 없다고 쳐도 시민들을 무장시킬 소총마저 부족하다면 어쩔 텐가."

고로 우린 규격화에 목숨을 걸어야만 한다.

포병은 전장의 신이다, 압도적인 양은 곧 압도적인 질과 다름없다는 선배님들의 귀중한 가르침에 따라 화력과 공장식 생산법으로 승부를 봐야만 한다.

아예 적백내전 때처럼 혁명정부를 등진 귀족 출신 장교들까지 회유할 수 있으면 최선이겠지만, 그거야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니까 일단 라파예트 후작을 믿어보자.

꼴에 국민 영웅이고 전쟁영웅이니까 진짜로 열강군이 쳐들어올 판이 되면 뭔가 보여줄지도 모르지.

"우린 장차 모든 파리 시민의 손에 소총 한 자루씩을 쥐여준다는 각오로 나서야만 하네."

"모처럼 우리 친구와 생각이 일치했구만 그래."

라자르 카르노가 샐쭉 웃었다.

오, 역시 군인 출신이라 나름의 식견이 있다 이건가?

"자, 그럼 이제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맞춰보게."

"음, 어떻게 하면 고집 센 장인들을 설득해서 생산공정을 규격화 시킬 수 있을까 아닌가?"

"···자네 머릿속엔 그것밖에 없나 보군. 틀렸네. 혹시 국민개병제라고 하면 무슨 소리인지 알아듣겠나?"

모를 리가 있나요.

아니 그런데 왜 그게 당신 입에서 튀어나와?

"내 생각은 이렇네."

척.

라자르가 오른 검지로 파리 조병창을 가리키며 말했다.

"국민위병이니 뭐니 이름만 거창하지, 본질은 민병대일세. 야전에 나서면 당장에 이리 도망치고 저리 도망치고 할 게 뻔할 뻔 자지. 그놈의 화약이 모자란답시고 사격훈련 한번 제대로 안 시킨 마당에 오죽하겠나?"

음, 음.

그래서?

"내가 만약 사령관이라면 저 국민위병이라는 놈들을 모조리 요새에 처박아 버릴 거야. 일단 요새에 처박혀있으면 최소한 도망은 못 칠 테니까. 물론 이 거북이들로 프랑스를 지키려면 어마어마한 병력이 필요할 테지만, 바로 그걸 위한 국민개병제일세."

"그러니까 옛 로마 군단처럼 참전시민권을 부여하겠다?"

"그 반대일세. 전쟁에 참전하니까 시민권을 부여받는 게 아니라, 시민권이 있다면 누구나 전쟁에 참전하는 거지. 만약 자네가 구상한 대로만 굴러간다면 파리 조병창에서는 매일 수백 수천 자루의 소총이 쏟아져 나올 테고, 난 그 소총으로 우리 시민들을 무장시킬 거야!"

쿵.

라자르가 잔뜩 흥분하여 주먹으로 벽을 후려치며 소리쳤다.

"규율이니 전술이니 엿이나 먹으라지! 그래서 그 잘난 귀족 나리들이 백날천날 발악해봐야 무슨 수로 수백만 시민군과 싸워 이길 텐가? 만일 내가 이 전쟁을 지휘하게 된다면 앞으로 5년 동안은 무조건 요새 공사와 진지공사만 돌릴 거야! 장교와 사관이 부족하면 좀 어떤가? 실전만큼 귀한 교육이 또 어디에 있다고!"

"그렇지!!!"

"난 절대로 먼저 공격하라고 하지 않을걸세. 저 의회의 머저리들이야 속전속결을 원하겠지만, 바보 같은 짓일세.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건 스키피오가 아니라 파비우스야. 우리에게 필요한 건 단 하루라도 종전을 앞당기는 게 아니라, 단 한 사람이라도 많은 병사를 살려 그들을 번듯한 군인으로 성장시키는걸세!"

"바로 그거야!!!"

콱.

여기까지면 족했다.

우리는 구차한 말 대신에 뜨거운 눈빛으로 수십수백마디를 주고받으며 사나이의 악수를 나눴다.

"자네가 이런 아름다운 생각을 하고 있었을 줄은 내 미처 몰랐네."

"뭘. 지금껏 이 프랑스에서 내 진심을 알아준 건 자네뿐일세."

껄껄껄.

오오, 동지여.

그러고 보니 국민개병제의 스타트 라인을 찍은 게 혁명기 프랑스였지.

그렇다면 라자르 카르노 이 친구가 혹시 국민개병제의 선구자였던 건가?

이 친구도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일각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는 빌런이었군.

[미친놈들.]

입 닥쳐, 막시밀리앙.

여하튼 사실 서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걸 확인하게 되고 나니 모든 게 일사천리였다.

내 설명의 당위성을 설명하는 데에는 그저 생산성 하나면 족했다.

거꾸로 내가 라자르의 설명을 이해하는 데에는 국민군 하나면 족했다.

압도적인 양은 곧 압도적인 질과 다름없다.

이를 우리 군무감찰위원회의 새로운 경구로 받든 우리 두 사람은 감찰로 충당한 예산에 기초하여 더욱 혁명적인 총력전 태세를 설계해나갔다.

***

으슥한 심야.

"기발하긴 한데."

톡톡.

조제프 푸셰 자신을 제외한 누구도 출입을 허락받지 못한 그만의 낙원에서 푸셰는 한 손에 편지를 쥔 채 고민에 잠겨있었다.

그가 받아야 할 편지가 아니었다.

보내야 할 편지지.

내용이라면 이미 적어뒀고, 발신인도 적었고, 우표도 붙였다.

남은 건 그저 밀랍으로 된 인장을 찍어서 봉하는 것뿐.

하지만 이 사소한 절차를 마무리 짓지 못하여 푸셰는 긴 밤을 홀로 지새우고 있었다.

"너무 위험한 사람이란 말이야."

누가, 라는 지칭은 필요 없었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막시밀리앙 드 로베스피에르, 그 사람이다.

곧 그를 군무감찰위원회에 추천한 자크 피에르 브리소가 적극적으로 감시하라고 주문한 요즈음의 슈퍼스타였다.

브리소 본인은 주전파의 수장이자 대표적인 주전론자로서 반전론을 내세운 로베스피에르를 견제하는 건 당연하다고 변명했었지만-글쎄.

그게 과연 이 문제의 본질일까?

그럴 리 없고말고.

결국 이는 가난뱅이 상퀼로트와 부르주아지의 정면충돌이다.

또 한차례의 혁명을 원하는 이들과 이 이상의 혁명을 원하지 않는 이들의 정면충돌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브리소를 비롯한 주전파는 안정을 상징한다.

로베스피에르를 비롯한 반전파는 파괴를 상징한다.

그리고···이들 모두 국왕 일가의 파멸을 원한다.

주전파는 이번 전쟁을 통해 부르봉조의 내통혐의를 만천하에 폭로함으로서.

반전파는 또 한차례 민중의 힘으로 현 국민의회의 무능을 단죄함으로서.

전자가 루이 16세에게 가시면류관을 씌워 십자가에 못박으려 한다면, 후자는 주전파까지 십자가에 못박으려 한다는 차이점만 있을 뿐이다.

"그래서 누가 이길 것인가, 가 문제인데."

이것이 푸셰가 이미 다 완성한 편지를 보내지 못하고 망설이는 이유였다.

점차 가을이 다가오고 금년도 수확도 시원찮을거라는게 명확해지자 상식적이고 양심적인 이들조차 강경론을 외쳐야 간신히 이 뒤틀린 체제를 유지할 수 있을 만큼 국민의회는 모든 면에서 무능과 모순을 노출하고 있었다.

인권선언에는 분명 모든 국민의 참정권이 명시 되어 있었으나, 막상 헌법이 제정되자 이 헌법에 규정된 액수 이상의 세금을 바칠 수 없었던 대다수 소작농과 상퀼로트는 참정권을 박탈당했다.

혁명 이전 곡물 시장은 관세에 의하여, 봉건 질서에 의하여 지역별로 분리되어 있었으나 이를 시장 왜곡이라 여긴 부르주아지는 이러한 보호장벽을 해체했고 결과 갑작스레 값싼 외래 농작물과 경쟁하게 된 자영농들이 대거 빈농으로 전락했다.

절대정 이래로 난잡해진 세제를 혁파하겠다며 인지세와 관세를 제외한 모든 간접세를 철폐시키고 직접세 또한 3가지만 남겼지만, 이 또한 구체적인 기준도 정하기 전에 기존의 세금만 철폐하면서 금년도 국가재정이 아시냐 등의 채권수입에 전적으로 의존하게 만들었다.

결과 지방 도시와 농촌에서는 경제붕괴로 인한 소비재 고갈과 생도맹그 반란에 의한 사치재 대란, 그리고 흉작이 겹치면서 불온한 움직임이 보이는데 국민의회는 파리를 달래는데에도 급급해 반란을 진압할 준비도 안되어있고, 빵과 서커스를 풀어 지방을 달랠 계획도 세우지 않았다.

이러니 대다수는 주전파가 '상식적으로' 전쟁위기를 면피용으로 소모하고 있다고 여기지만-글쎄.

주전파 지도자들이 은밀하게 파리에 망명해 있던 합스부르크조의 압제에 신음하는 소수민족 지도자들을 만나고 다니고 있는데 저게 과연 면피용일까.

주전파에 동참하는 대다수 의원들이야 면피용이라고 생각하고 있겠지만, 브리소 등의 주전파 지도자들은 어디까지나 진심이라고 봐야했다.

"나라 꼬라지 참."

결국 어느쪽이건 피를 보는 건 상수가 되어버렸다.

푸셰도 이를 모르지는 않았다.

이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해야겠다는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지금은 피를 볼 각오를 다지는 게 맞다.

하지만 국익이고 뭐고 저 한 사람만 잘 먹고 잘살면 그만인 푸셰로서는 이대로 국민의회가 실패하여 프랑스가 패망하건 2차 혁명이 터지건 저만 무사하다면 나쁠 것 하나 없었다.

그 본인의 신변이 위태로울 판이니까 문제지.

나라야 망했다고 치고, 그와 그의 재산을 무사하게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대로 주전파 친구들이 원하는 대로 국민의회에게 한번만 더 기회를 주면 이 침몰선의 광기도 함께 가라앉을까?

만약 그가 반전파에 진심으로 동참한다면 훗날에 일이 터지더라도 푸셰만큼은 눈감아줄까?

"···흠."

알 수 없었다.

결국 이대로 더 고민해봤자 답보상태일 거라는 확신이 든 푸셰는 한번 질문을 고쳐보기로 했다.

주전파와 반전파.

이 둘 중 누가 그를 더 높은 곳까지 끌어올려 줄까?

"그야 물론 로베스피에르 씨지."

당연한 소리다.

일단 혁명이 터지면 윗사람들이 우수수 날아간다는 게 경험적으로 증명되지 않았던가.

만약 저 프랑스의 카이사르가 끝내 의회를 무력화 시킨다면 당연히 대대적인 권력 개편이 뒤따를 터.

어차피 그가 군인도 아닌데 전쟁이 터져봐야 무슨 출세길이 열리겠는가.

찍.

결국 푸셰는 밀서를 제 손으로 찢어버렸다.

물론 그렇다고 이참에 아예 연을 끊으려는 건 아니었다.

아무렴 만일을 대비한 보험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법.

"아무래도 내가 너무 정직하게 썼던 것 같아."

그냥 저쪽에서 듣기 좋아할 소리만 써주면 되는 거였는데.

하여, 푸셰는 새로운 밀서에 이렇게 적어 밀랍으로 봉했다.

[현재 군무감찰위원회는 다방면에 걸쳐 인기영합적인 정책을 선보임으로서 성공적으로 시민들의 관심을 돌리고 정부 신뢰도를 부분적으로 회복하여 찬전론을 제어하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면피용으로 소모하고 끝내고 싶으신 분들은 어서 그 침몰선에서 탈출하십시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