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4화 (34/154)

독주

세상 참 오래살고 볼 일이야.

"도대체 저자가 무슨 자격으로 신성한 의결에 개입한다는 말입니까!"

내가 일방적으로 호구 잡거나 의도한 게 아니라 원내에서 진짜로 임시로나마 저 오를레앙공과 뜻을 함께할 날이 오게 될 줄이야.

상석에 서서 목에 핏줄을 세워가며 고래고래 언성을 드높이고 있는 거 보면 확실히 칼을 갈고 나왔구나 싶기는 한데, 솔직히 믿기지를 않는다.

저 인간도 참 지가 왕이 될 수만 있다면 진짜로 뭐든지 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

나 같으면 아무리 급해도 공적인 자리에서 몇 번이고 망신살을 준 나랑 손잡을 생각은 절대로 안 할 것 같은데.

[정말로?]

물론 농담이다.

나도 저만큼 절실해 본 적이 없어서 그렇지 비슷한 상황이라면 똑같이 행동하겠지.

그 줏대 없음이 정치꾼의 본질이니까.

오히려 필요하다면 사적인 감정 따윈 아랑곳없이 그 시점에서 가장 유력한 협력자와 얼마든지 손잡을 수 있다는 점에서 저 인물의 재능이라고 해야 할 거다.

"애초에 누가 저 프로방스 백작을 탈출시켜줬습니까? 누가 저 작자가 우리 프랑스의 애국자들을 겁박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줬습니까? 프로방스 백작과 함께 카이저의 곁으로 가려다가 우리 병사들에게 붙잡혀 돌아온 사람이 누구입니까!"

쿵!

오를레앙공이 연단을 있는 힘껏 내리쳤다.

"이제 와서 제가 새삼스레 그 이름을 말해야 합니까? 우리 모두가 한목소리로 퇴위를 요구했던 그 인물이 누구인지, 이 나라를 파탄 낸 장본인이 누구인지 제가 직접 말해야 아시겠습니까!"

와우.

[···설마 진짜로 이참에 단두대에 세울 작정인가?]

몰?루.

아직 오를레앙공의 진의를 모르니까 확답하기엔 어렵지만, 그냥은 안 끝내겠다는 각오가 여기까지 팍팍 전해져오고 있다.

본인이 직접 루이 16세를 호명한 것도 아니고 알아서 상상하도록 주어를 공란으로 만들어둔 것만 봐도 그렇다.

그게 누구인지야 다들 알고 있고 문제가 되는 건 그래서 존칭을 뭐로 할 것 인가인데, 나름 왕당파라던 사람이 「국왕 폐하」를 넣어야 했을 자리에 숭숭 구멍을 뚫어버렸다.

그러니까 우리 공화파들이 흔히 부르는 것처럼 폐주, 루이 카페, 루이 공으로 지레짐작해도 아무런 해석에 지장이 없도록 말이다.

만일 저쪽에서 존칭하려고 했다면 좀 귀찮더라도 예의를 갖춰서 꼬박꼬박 폐하 소리를 붙여줬을 테니, 사실상 빈자리에 폐주나 루이 카페를 집어넣는 게 올바른 해석이라고 봐야겠지.

"우리는 아직 그날의 사죄를 듣지 못하였습니다! 그날 의회의 권고에 대한 대답도, 변명도 듣지 못하였습니다! 도대체 언제까지 몇 안 되는 충신들의 그늘에 숨어서 책임을 회피할 작정입니까? 도대체 언제쯤이 되어야 말뿐이 아니라 행동으로서 이 프랑스 왕국의 헌법과 의회를 존중할 것입니까!"

오를레앙공이 잠시 숨을 고르며 좌중의 면면을 하나하나 살피고선 연설을 마무리 지었다.

"당신이 진정 이 프랑스의 헌법을 존중하겠다면 행동으로서 보여주십시오! 의회를 존중하고 전지전능한 창조주와 유권자들의 앞에서 책임을 지겠다면 더는 도망치지 말고 당당하게 해명하십시오! 만일 어느 것도 고를 수 없다면, 하다못해 입 다물고 우리의 신성한 의결을 지켜보고나 있으십시오!!!"

자, 여기서 이제 새로운 파벌이 갈리겠군.

그렇다면 잡념은 잠시 지워두자.

짝짝짝!

자리에서 일어나 오를레앙공을 향해 의례적인 박수갈채를 보내며 연단이 아니라 의석을 샅샅이 살폈다.

"···쯧."

우선 당통, 그리고 요즈음 원내에서 자주 다투었던 브리소는 짐작했다시피 얼굴이 썩어들어가고 있다.

그야 거의 다 왔는데 갑자기 국왕이 나서면서 전세가 뒤집혔으니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겠지.

에베르도 갈수록 감찰위원회에 지지세를 잡아먹히고 있어서 그런지 썩 표정이 좋지는 않고.

대강 어림짐작으로 전체 의석의 7할 정도가 오를레앙공에게 기립박수를 쳐주고 있는데 8할 가까이가 얼굴이 썩어들어가고 있다.

···잠깐, 뭐지?

내가 모르는 사이에 이렇게 오를레앙공이 인망을 잃었었나?

아니면 그렇게나 전쟁하고 싶었던건가?

[그보다는 우리 감찰위원회 때문 아니겠는가.]

아하.

그러니까 우리가 승승장구하는 꼴을 보니까 배알이 꼴린다?

[아니, 정치개혁에 대한 반감이겠지. 우리 반전파는 이미 사회정의 실현이라는 의제를 제시한 바 있잖은가. 한데 이제 와서 국왕의 절차개입으로 반전파에 힘이 실린다면 당연히 강도 높은 개혁이 뒤따를 테지.]

···차라리 배알이 꼴리는 게 더 나을 뻔했군.

한마디로 저놈들이 죄다 부패 정치인이거나 아니면 직간접적으로 연을 맺고 있는 부류라는 거잖아.

감찰 활동하면서 대강 감을 잡긴 했지만 저런 놈들이 혁명정부를 자칭한다니 기가 찰 따름이다.

아니 보통 이쪽에서 혁명 타령하면 저쪽에선 개혁 타령하면서 정반합을 이뤄야 정상 아니야?

뭐 죄다 목매달아버리자고 한 것도 아니고 좀 빡세게 부패 단속하면서 우리도 나름 자정작용은 하고 있습니다-하자니까 그것도 싫다고 이 난리니 원.

"아직도 대세를 가늠하지 못하는 저 미련한 사내에게 우리의 하나 된 힘을 보여줍시다!"

박수갈채가 어느 정도 잦아들자 오를레앙공이 재차 언성을 드높였다.

"우리는 결코 외압에 굴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이 국외가 되었건, 국내가 되었건 상관없습니다. 우리의 애국시민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의회가 한치에 흐트러짐 없이 국익을 관철하고, 민의를 충실히 반영할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한데 우리가 그 기대를 배신해서야 되겠습니까?

지금 이 자리에서 우리가 어떤 결정을 내리건, 이는 저 추레한 사내가 관여할 바는 아닐 것입니다!"

"질문 있습니다."

벌떡.

오를레앙공의 연설을 도중에 끊고 주전파 지도자 브리소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상 각하의 아름다운 연설에 딱히 이의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지금 말씀하시는 내용을 가만히 듣고 있자니 찬전이라는 기존의 견해를 번복하신 것 같은데, 맞습니까?"

"그렇소."

흐미.

저 한차례의 공방에서 버섯구름이 보인다면 아마 기분 탓이 아닐 거다.

그래도 명색이 공작에 전시 수상씩이나 되는 사람의 연설을 도중에 끊고 [너 우리 뒤통수친 거냐?]하는 브리소도 그렇고, 그걸 또 [맞다]고 받아치는 오를레앙공도 그렇고.

싸늘하다.

진짜로 눈앞에서 단두대가 왔다 갔다 하고 있다.

"동의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단두대에 누구보다 가까운 건 브리소 저 친구일 테지.

"저들의 도발을 무시한다고 이 거짓된 평화가 몇 년이나 더 계속되리라 생각하십니까? 이미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습니다. 여기서 3년이 더 지나봤자 우리 프랑스가 얼마나 달라질까요? 반면 오스트리아는 3년 뒤면 오스만 튀르크와의 전쟁에 의한 피로를 말끔히 씻고 만전의 상태에서 우리 프랑스를 침략하려고 하겠지요."

"그, 브리소 의원님. 조금만 진정하시고-."

"저와 제 동료들은 지난 수 주간 이번 전쟁이 왜 필요한지, 저 합스부르크조의 압제가 얼마나 많은 소수민족의 눈에서 피눈물을 쏟게 하고 있는지를 설명해 드렸습니다. 저 흑인 노예무역이 우리 백인종의 수치이자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갚아줘야 할 과오이듯이, 저들은 유럽대륙의 수치이고 백인 노예들을 해방하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업이라고요.

저는 만민의 해방과 모든 자유인의 동등한 권리를 수호하기 위하여 이 자리에 서 있습니다. 그것만이 저를 선출해주신 유권자들의 기대와 은혜에 보답하는 길이기에! 전 지금껏 이번 전쟁을 옹호하고, 또 주장해왔던 것입니다!"

쿵.

자크 피에르 브리소가 제자리에서 발을 굴렀다.

"한데! 폐주 루이가 대체 이번 전쟁에서 무슨 상관이란 말입니까! 고작 루이의 한마디에 전쟁을 포기한다니, 그거야말로 외압 아닙니까! 이런 식으로, 이 대륙해방을 위한 성전을 눈앞에 두고서 혁명을 배신한다니요!"

"자크 피에르 브리소! 내 적당히 하라고 했소!!!"

"입닥쳐!!! 이 더러운 위선자 놈들 같으니라고! 그래, 이제 보니 다 겉치레였어! 다들 입으로만 혁명 타령이지, 제 호주머니 채울 궁리 밖에 안 하는 더럽고 치졸한 놈들!!!"

···어, 음.

[저 친구 진짜로 이성을 잃어버린 건가?]

그럴지도.

나 같아도 저런 상황이면 억울해서 눈이 뒤집힐 것 같기는 한데, 그게 전부는 아닌 것 같다.

오를레앙공의 연설로 적당히 만장일치로 끝날 것 같았던 분위기가 저 친구의 온 힘을 다한 폭주에 또 술렁거리고 있거든.

오히려 내가 보기엔 본인 파벌이 입도 뻥끗 못 하게 되기 전에 나름 주전파 지도자로서 본인의 정치생명을 걸고 배신자, 정치 탄압 프레임으로 어떻게든 이탈자들을 최소화하려는 최후의 발악이지 싶다.

"노예해방 만세! 계몽혁명 만세! 프랑스 만세!!!"

쿵.

결국 브리소를 보다 못한 동료 의원들이 사지를 붙들고 회장에서 끌어내 버렸다.

저 친구들도 다 브리소 파벌이니까 주전파 지도자 노릇 하던 친구가 동료 의원들의 노골적인 배신에 울화를 못 참아 사고를 친 걸 주전파 친구들이 수습한 격이 되었으니 뭐.

"···험."

"커흠."

"흠흠."

역시나 이렇게 되는군.

애초에 우리 반전파였던 친구들이야 그냥 이게 무슨 일이래, 하고 있지만 오를레앙공을 따라서 반전파로 환승하려고 밑밥을 깔던 친구들은 일제히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아무튼 브리소 저 친구는 그까짓 면피나 국왕의 외압 때문이 아니라 진짜로 본인의 신념에 따라서 주전론을 펼치고 있었다는 걸 회장에서 퇴장당하면서 입증해버렸으니 그야 이럴 수밖에.

솔직히 인정한다.

그동안 반혁명 부르주아지라고만 생각했는데 여기까지 진심이었으면 이야기가 다르지.

[흠, 저 친구는 보편적 대중의 정치참여를 반대하는 입장인데도?]

정치적 성향 빼고 정치에 임하는 자세 말이다.

구태의연한 엘리트주의자라도 저 정도쯤 되면 신념 있는 숙적으로 인정해줘야지.

벌떡.

"친애하는 의원 동지 여러분."

아무튼 지금 내가 입 꾹 다물고 있다 보면 저 친구가 원하는 대로 흘러갈 테니 이만 일어나자.

여기서 오를레앙 파가 원맨쇼 하면 정치 탄압 프레임이 먹혀들어 갈 테고, 반대로 주전파 출신이 나서면 배신자 프레임이 먹혀들어 갈 테니까.

결국 내가 나서서 지금 이 자리의 승리자는 로베스피에르라고 시인하는 수밖에 없다.

저 친구가 과연 여기까지 설계한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야.

"우리는 지금 국내외의 적들에게 포위되어있습니다."

다들 의외라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기야 주전파 지도자가 좀 전에 끌려 나간 마당에 반전파 지도자가 저쪽을 인정해주는 말을 하고 있으니 당연한 소리겠지만.

"하지만 이럴수록 더더욱 조급해져서는 안 될 것입니다."

애초에 난 한 번도 전쟁하면 안 된다고 한 적 없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냅다 꼬라박아서야 죽도 밥도 안 된다고 했지.

"조금 전 브리소 의원님께서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우리는 만민의 해방과 모든 자유인의 동등한 권리를 수호하기 위하여 이 자리에 서 있습니다. 지난날 테니스 코트에서 함께 맹세했듯이 우리는 어떠한 외압에도 절대 굴하지 않을 것입니다. 설령 그 누가 되었건 우리의 신성한 의결에 개입하려 한다면 응당 단호히 맞서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전에 우리 자신을 먼저 돌아봅시다."

진심으로 걱정이 되어서 하는 소리인데.

"정말로 자신 있으십니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제멋대로 의자 위에 올라서서 좌중을 찬찬히 돌아보며 조금씩 언성을 키워나갔다.

"마지막까지 함께 맞서 싸울 것이라는 맹세로는 부족합니다. 우리는 외압에 맞서서 당당히 승리해야만 합니다. 지난날 샹 드 마르스에서 그러했듯이 우리 모두 건강하게 살아서 이 자리에 모여 술과 노래로 승리를 자축할 수 있도록. 우리의 승리가 잘 꾸며진 피로스의 추모곡이 되지 않도록.

지난 3년간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았다면, 하다못해 앞으로의 3년간은 달라져야만 합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뻔한 연설이었다.

속 알맹이라고 해봤자 조금 전 브리소가 꼬집은 내용을 그대로 돌려준 것에 불과하고, 그럼 넌 지난 3년간 뭐 했냐고 반박당할 여지까지 남겨놨으니 완전히 빈틈투성이지.

"제가 여러분의 촉매가 되겠습니다."

하지만 그 뻔한 내용이 군무감찰위원장의 발언이라면.

"그러니 만일 제가 타락하고 영락하여 프랑스의 진취를 촉진 시킬 수 없다면 얼마든지 꾸짖어주십시오."

이미 무수한 변화를 일으켜온 당사자의 발언이라면 그 무게가 달라진다.

"우리는 지금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려 하고 있습니다. 아무도 걸어가 본 적 없는 미답의 경지지요."

거짓말이다. 

나는 이 길이 어디로 이어져가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변화란 것이 언제나 달갑지는 않을 것입니다. 지난 3년간 우리가 제자리에 정체되어있었듯이 어쩌면 돌고 돌아 원래 있었던 자리로 되돌아오게 될지도 모르지요."

이 또한 거짓말이다.

나는, 우리는 이 나라의 실권을 거머쥐는 즉시 두 번 다신 원래 있었던 자리로 돌아올 수 없도록 만들 거다.

내겐 산업혁명이라는 비전과 세계혁명이라는 이상이 있으니까.

"하지만 여러분, 절대 후회하지 않게 해드리겠습니다."

다만 이것만큼은 진심이다.

누구도 후회하지 않게 해주겠다.

몇몇은 후회할 기회도 없을지도 모르겠다만, 최소한 지금 이 꼬락서니보다는 더 나은 나라를 만들어줄 자신이 있다.

왕당파에게, 교권주의자에게 정당한 명분이 돌아가지 않도록.

이 혁명이란 놈이 확실하게 새로운 시대와 비전을 제시했다는 소리를 듣게 해주겠다.

"제게 3년의 임기를 허락해주십시오. 군무감찰위원장으로서 관료조직의 기강을 바로잡고, 전시태세를 정비하며, 시민들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귀하디귀한 3년간의 임기를 허락해주십시오."

그러니 내게 공식적인 감찰권을 다오.

그 뻔한 속내를 눈치챈 몇몇이 눈살을 찌푸렸지만, 그렇다고 전면에서 반박하려 드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아마 저 3년이라는 기한이 주요했을 거다.

뭔가를 이루기에는 짧고, 트집을 잡아서 내쫓기에는 너무나 기나긴 시간이니까.

아무튼 반전파와 주전파의 기나긴 충돌이 형식상 반전파의 승리로 마무리되었으니 무언가 하나쯤은 내줘야 한다는 계산도 있었을 거다.

내가 뭔가를 더 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이미 임시로나마 설치된 군무 감찰위원회를 앞으로 3년간만 더 존속시켜 달라고 부탁한 거니까 더더욱 얕잡아 보였을 테고.

"그 이상의 임기를 요구하진 않겠습니다. 다만, 저와 저희 위원회에 3년간의 임기를 보장해주십시오. 허투루 지나간 지난 3년간과는 확연히 달라진 프랑스로 보답해 드리겠습니다."

"이의 있습니다."

콩도르세 후작이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보고서에 따르자면 위원장님께서는 이미 1년도 되지 않은 짧은 임기 와중 사법재판 대신 사적인 제재들로 아국의 헌정질서를 모독하고 사법 질서를 위협하고 계십니다만. 그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바스티유 습격은 당시 국법상 합법적인 집회였던 모양입니다?"

아, 덧붙여 지금 이건 내가 아니라 집주인의 발언이다.

"사적 제재는 위원회가 아닌 민간협력자들의 일탈이었습니다. 그 부분은 시정하도록 하지요. 다만 저희가 지금껏 혐의를 조작한 적은 없습니다. 그리고 이 나라의 사법부가 지난 3년간 처리한 부패사건보다 우리 감찰위원회가 1달간 절차에 따라 처리한 사건들이 더 많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아닙니까?

샐죽 웃으니 콩도르세 후작은 더는 반박하지 못하고 착석했다.

프랑스 사법부의 타락상이야 이미 혁명 전부터 유명했으니 차마 더 지적하지 못했던 거겠지.

아니면 처음부터 규탄보단 무법자라는 프레임에 초점을 맞춘 공격이었는지도 모르고.

"먼저 우리 사회의 정의가, 신뢰가 회복되지 않는다면 국내의 적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오를레앙공을 돌아보며 연설을 마무리 지었다.

"국외의 적은 그다음에 근심해도 늦지 않을 테지요. 모쪼록, 제게 범죄와의 전쟁을 허락해주십시오."

그걸로 끝이었다.

앞서 브리소의 절규를 전쟁 준비를 위한 3년간의 유예기간이라는 핑계로 덮어씌운 국민의회는 국왕의 부당한 절차개입을 규탄하는 성명과 함께 나와 군무감찰위원회에게 공식적인 감찰권을 부여했다.

의회가 부여한 감찰위원장으로서의 첫번째 공식임무는, 국왕 부부 감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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