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타전
한가지 「절대왕정」이라는 단어로부터 오는 대표적인 오해를 한가지 정정하자면, 이미 혁명 전부터 프랑스의 사법권은 왕권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한 지 오래였다.
물론 명목상으로 프랑스의 모든 사법재판은 국왕의 이름으로 집행되었으며, 국왕은 행정, 입법, 사법을 아우르는 가히 지상의 현인신과 다를 바 없는 권력을 휘두를 수 있었다.
그래, 어디까지나 명목상으로는 말이다.
현실은 시궁창이어서 이미 무능한 루이 16세가 보위에 오르기 전부터 늘상 고질적인 재정난에 시달리던 국왕들은 매관매직을 제도화시켜버렸고, 나아가 각 가문이 관직을 세습하는 건 너무도 당연한 봉건적 특권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니까 판사가 되려면 열심히 공부해서 시험을 치르는 게 아니라 돈 주고 사거나 세습 받거나 중 1택이었다는 말이다.
물론 그렇다고 프랑스에서도 아예 문제의식이 없었던 건 아니라 만 25세 이상의 법학 학사, 혹은 법학박사 학위를 가지고 있는 사람만 판사가 될 수 있다는 자격 제한을 걸어두긴 했지만-생각해보자.
그런 자격 제한이 제대로 지켜졌으면 과연 대혁명이 터졌을까?
위의 자격요건 중 실제 현장에서 문제시된 건 학위 부분이 아니라 「만 25세 이상」이라는 부분이었고, 이마저도 예외사례로 인정 받으면 얼마든지 구렁이 담 넘듯이 통과할 수 있었다.
여기에 국왕조차 판사가 관직을 살 때 지불한 액수를 고대로 환불해주지 않으면 아무리 잘못했어도 파직조차 못한다는 철밥통은 보너스.
그마저도 법제가 그렇다는 거지 일상적인 사치와 재정낭비로 늘상 마이너스 재정으로 여기저기 돈을 꾸거나 착취하고 다녔던 프랑스 절대왕정의 실상을 생각해보면 그냥 파직 불가라는 소리나 다름없었다.
이러니 시간이 흐를수록 프랑스에서 판사란 돈도 많고 집안에 판사 어르신도 계시는 집안만 두고두고 돌려먹는 적폐가 되어버렸고, 이게 수백 년을 이어져 오자 완전히 고일대로 고여서 신이 내렸다는 왕권조차 감히 건드릴 수 없는 에이션트 드래곤이 되어버렸다.
열심히 공부해서 판사 되고 싶다고? 응, 공부할 게 아니라 새빠지게 돈을 벌어오거나 판사 집안에서 다시 태어나렴^^.
정말로 그 돈을 벌어왔다고? 응, 억만금을 불러도 느그 천것들한테는 절대 안 팔 거야. 새 자리 나면 당빠 우리 셋째부터 챙겨줘야지?
뇌물? 엥 고거 판사로서 너무나 당연한 특권 아닌가? 돈 많이 챙겨주는 쪽이 정의로운 건 「상식」이잖아?
아, 물론 변호사 선임 비용은 당연히 챙겨줘야 하는 거고 판사 선임 비용은 또 따로 챙겨주셔야 합니다, 고객님.
재판 뭐같이 했다고 위에 꼰지르거나 공론화시키겠다고? 응, 국왕 폐하도 우린 파직 못해:) 그 양반 관직 환불해줄 돈 없어ㅎㅎ.
글고 사실 국왕도 우리가 수금한 뇌물 열심히 또 뒷주머니로 받아 챙긴 공범이야;;. 가끔 요즘 수금이 시원치 않다고 독촉도 한다?
"유대인보다 더한 판관 놈들!"
"감찰, 그건 꼭 필요한 걸까? 그놈들 해 처먹은 거 하늘이 알고 땅이 아는데 그냥 이참에 가로등에 몽땅 다 목매달아 버리면 훨씬 빠른 거? 아닐까!"
"옳소, 옳소! 어차피 죄다 사형이구만 우리가 괜히 시간 낭비할 거 뭐 있나?"
"""찢어! 죽여! 태워!!!"""
그 결과가 바로 이 꼬라지.
사법 불신 1타강사 로베스피에르 선생님에게 맨투맨 속성 강의받았던 나도 들으면서 정신이 혼미해졌는데 불과 2년 전에 의회에서 고등법원 폐지하기 전까지 이 에이션트 드래곤들에게 착취당하던 프랑스 국민이야 오죽할까.
혁명은 역시 이유 없이 시작되지 않는다는 교훈을 되새길 수 있었던 참으로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이 매관매직과 관직 세습은 제대로 조져놨다는 점에서 우리 국민의회도 혁명정부 소리 들을 자격은 충분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놈의 고액권 윤전기와 하이퍼 인플레이션으로 다 말아먹어서 그렇지.
[험.]
여하튼 우리 군무감찰위원회의 공격지침은 지극히 간단했다.
법대로 하자.
바스티유 습격 터진 지가 어느덧 4년째를 바라보고 있고, 국민의회에서 거의 만장일치로 사법개혁을 밀어붙인 게 1790년인데 막상 지금껏 바뀐 게 없다, 이거지.
21세기 한국인으로서 앞으로 판사를 선거로 뽑겠다는 국민의회의 사법 개혁안도 사실 좀 할 말이 많긴 한데, 판사 자격을 돈 주고 산 놈이랑 아빠한테 물려받은 놈들이 아직도 세상 바뀐 줄 모르고 뇌물 받아 처먹는 꼴은 더 못 봐주겠다.
아니 내가 억울한 게 있으니 나라에 정의를 호소하겠다는데 이 억울한 사람들 등쳐먹은 뇌물이 국왕의 주요 수입원 중 하나라는 게 지금 말이야?
아무리 국민의회가 부패했다지만 세금 모자란다고 사법부에 얼른 수금하라는 절대왕정 수준은 아니잖아.
뭐, 개인적인 인맥으로 열심히 뒷돈 받아 챙길 놈들이야 있겠지만 적어도 의회 차원에선 신분, 재산에 상관없이 공정한 재판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믿고 싶다.
[갑자기 또 왜 약한 모습인가?]
그럼 그동안 보여준 게 있는데 믿음 주게 생겼어?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고액권 윤전기 돌리고 있는 게 저 적폐들 재산 휴지 조각으로 만들기 위한 대계라면 인정해주마.
"우리 법대로 합시다!"
"시민 여러분, 우리가 직접 프랑스의 정의를 다시 세웁시다! 법을 수호한다면서 법을 우습게 아는 저놈들에게 국법의 지엄함을 일깨워줍시다!"
"저놈들 잘하던 짓거리 다들 알잖아요? 우리가 그대로 돌려줍시다! 아주 사소해 보이는 거라도 좋습니다. 뭐든 제보해주십시오! 기소도, 뒷감당도 저희가 합니다!"
"언제가 되었건 시민 여러분이 두드리면 문은 열릴 것입니다! 모두 망설이지 말고 군무감찰위원회를 찾아와주십시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지금 우리는 한창 급진당과 공화파 거두들의 인맥을 총동원해서 이러한 사법 불신과 바스티유 이래로 한껏 물이 오른 파리 시민들의 정치참여 의지를 감찰 활동에 힘을 실어주는 방향으로 흐르도록 조정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괜히 인민재판이나 사적제재로 흐르지 말라고 일찌감치 선을 그은 거다.
뭐 진짜로 멸사봉공할 생각이야 없다지만 그래도 명색이 법통파를 자칭하고 있는데 우리가 괜히 사고치고 다니면 왕세자를 향한 동정론 위로 혐오나 멸시가 덧씌워질지도 모르잖아.
만약 인민재판이나 사적제재가 필요한 상황이 온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하겠지만 적어도 당분간은 아니다.
급진공화파가 아닌 법통파는 어디까지나 정의롭지만 타락하고 부패한 적폐들을 넘어서지 못하는 미약하고 늘상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한 가련한 존재로 각인 되어야만 했다.
"우리 감찰위원들은 시민 여러분의 소총이오, 시민 여러분의 제보는 우리의 탄환입니다! 사회정의를 갈망하는 힘없는 약자들의 분노는 우리의 화약이며, 스스로는 바뀌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 나태함이야말로 우리의 표적입니다!
그러니 어서 이 뇌관에 불을 댕깁시다! 역사가 이날을 새로운 바스티유로 기억할 수 있도록! 여러분의 대전사들에게 아낌없는 성원과 지원을 부탁드리겠습니다!"
특히 이런 와중 가장 눈부신 활약을 보여주고 있는 건 다름 아닌 카미유.
원래도 언론인이라서 그런지 괜히 바스티유 습격을 주도한 게 아니라는 걸 톡톡히 보여주고 있다.
저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잘만 떠드는 친구가 왜 막상 공적인 자리에선 입꾹 다물고 있는지 의문이란 말이야.
[뭐, 그거야 일방적으로 쏟아내는 연설과 대화를 주고받아야 토의의 차이 아니겠는가.]
그럴지도.
뭐, 나야 I 그 자체인 사람이니 E 성향에 대해선 그냥 그런 걸로 대충 넘기자.
나름 본인도 답답해하고 있을 테니까.
"이게 다 처맞아보지를 않았으니까 그런 겁니다! 우리가 왜 혁명 전까지만 해도 귀족들만 보면 설설 기고 봤습니까? 왜 우리가 아직도 회초리만 보면 저절로 식은땀이 줄줄 흐릅니까? 다 처맞아봤으니까 그런 거 아닙니까!
저들도 똑같습니다! 아직 처맞아보지를 않았으니까 무서운 줄 모르는 겁니다! 그러니 우리가 저들을 위해 교육을 베풀어줍시다! 시민들이여, 모두 채찍과 몽둥이로 무장하십시오!"
아, 덧붙여서 에베르도 다른 의미에서 활약해주고 있긴 하다.
인민재판과 사적제재를 적극적으로 부추기는 방향성이라서 그렇지.
어차피 막는다고 안 할 놈도 아니고, 일단 저쪽을 악으로 군무감찰위원회를 명백한 선으로 인지시키는 데 도움이 되고 있긴 하니까 내버려 두고 있긴 한데.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나 보군.]
···솔직히 그렇지.
저 친구는 첫 만남에서 정점을 찍었던 내 호감도가 나날이 마이너스를 갱신하는 걸 알는지 모르겠다.
뭐, 필요악이라면 필요악이라지만.
"공화파 놈들이 무슨 왕세자 전하를 돕는다는 말이냐!"
"이게 다 감찰위원장이 로베스피에르가 왕이 되려고 꾸민 일이라더라!"
"갈리아 순수론자 눈에 게르만 그 자체인 왕세자 전하가 퍽이나 눈에 차겠다!"
"「군무」감찰위원회잖소? 그럼 군사 관련 업계나 감찰할 것이지 대체 무슨 자격으로 사법에까지 관여하려 들고 있는 거요!"
물론 저쪽에서도 당하고 있는 것만은 아니라 이래저래 반격 중.
두말할 필요도 없이 민심이야 이 기회에 사법부 적폐들에게 제대로 칼을 들이대 보겠다는 우리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지만 실제로 요직을 차지한 건 저쪽이다 보니 영 맥을 못 추고 있다.
오히려 우리가 꺼내든 사회정의 실현이라는 명분을 그대로 뒤집어서 법통파와 공화파 인사들에게 돌려주기까지.
덕분에 근 보름째 당통의 소식조차 못 듣고 있다.
저 판사님들이 가장 먼저 당통부터 잡아다가 기소해버렸거든.
그동안 열심히 가교 노릇해 준 공은 공이고, 부정부패 까발리려면 가장 만만한 건 역시 당통이라는 거지.
[···뭐, 죽지는 않았을걸세. 좀 고생이야 하고 있겠지만.]
그거만 해도 어디야.
아유, 고소해.
여하튼 저쪽에선 어떻게든 우리도 저치들이랑 별다른 바 없이 더러운 놈들이다, 로베스피에르는 6살 먹은 왕세자를 이용하려 드는 냉혈한이다-라고 프레임을 씌우려고 드는 것 같기는 한데.
솔직히 헛수고다.
왜냐?
이 로베스피에르가 어떤 사람이야.
남들 다 먹는 설탕 한 스푼 안 넣고 콩 끓인 물을 원샷하는 청렴에 미친놈 아니야.
우리야 아직 증거나 권력이 부족해서 오를레앙공까지는 못 건드리는 거지만 저쪽은 암만 사회정의 들먹이면서 로베스피에르를 기소하고 싶어 해도 기소할 건덕지가 없다.
물론 뭐, 저쪽에서 아예 죄목이나 증거를 날조해서 덤벼들면 장사가 없긴 한데 그럼 이쪽에서도 똑같이 인민재판 갈기면서 뒤마 대령과 함께 신나는 적색 쿠데타 달려야지.
이렇게 아랫것들이 암만 부패하고 더러워 봐야 우두머리인 로베스피에르가 암만 털어도 먼지 하나 나오지 않는 사람이니 피장파장 전략이 통할 리가 없다.
갈리아주의자 타령은 정말로 순수한 충심으로 왕세자를 지지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꽤 동요를 일으키고 있는 것 같긴 한데-그래서 그게 우리에게 마이너스냐 하면 잘 모르겠다.
어차피 공화혁명 지지자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현 프랑스 왕국을 게르만 침략자들에 의한 식민통치체제라고 인지하는 사람들이거든.
오히려 잠깐 법통파 시늉은 내고 있지만 로베스피에르는 누가 뭐래도 공화파요-라고 저쪽에서 인증마크를 제대로 꽂아준 셈이지.
고로 공화파 내부에서 동요가 일어나는 것보다야 임시동맹한 법통파 내부에서 동요가 낫다는 판단하에 그냥 대응도 안 하고 방관하고 있다.
솔직히 입헌정 세울 것도 아닌데 지금 나한테 충성파 이미지 붙어서 좋을게 뭐가 있다고.
"이게 다 저 적폐들 때문이다!"
"여러분, 또다시 정의가 패배했습니다! 사법 질서를 수호한다면서 법전 한 줄 읽어본 적 없는 저 더러운 도련님들이 또다시 민중의 고함을 묵살했습니다!"
"이러고도 우리가 내는 혈세 꼬박꼬박 받아 처먹고 싶지?!"
"사퇴하시오! 아니면 또 루이 카페처럼 만들어드릴까?"
차라리 구질구질하게 해명할 시간에 아이고, 우린 아무 잘못 없어요-작전으로 가는 게 맞지.
솔직히 저쪽에서 기각한 것 중 진짜로 기각당할만해서 당한 것도 많고, 이것까지 걸고 넘어가면 쌍방 캐삭빵 될까 봐 적당히 뭉개고 넘어간 것도 있지만 알 게 뭐야.
지금 이건 전쟁이다.
여러분들이 열심히 도와주신 건 좋은데 이번 건 좀 과했어요-보다는 아무튼 우린 여러분들이 하라는 대로 하고 있는데 저쪽에서 말귀를 안 들어 처먹네요-가 훨씬 자극적이잖아?
이것도 또 너무 과해지면 에베르 같은 놈에게 힘이 실리겠지만 적당한 면피는 언제나 옳다.
무엇보다 이렇게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길 땔감이 있어야 사람들이 흥이 나서 이것저것 집어넣어 주지.
그러니 마음껏 기소하고 또 기각시키라고 해라.
마침내 위원회를 식물인간으로 만들었다며 좋아할 때쯤 분노한 민중이라는 이름의 철퇴가 너희를 파묻어버릴 테니까.
***
자그마한 시골 마을.
"물론 우리 모두 죽게 될지도 모르네."
자신을 행상인 출신 자크 카텔리노라고 소개한 사내가 그와 함께하겠다고 한 동지들을 둘러보며 무겁게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문제가 해결되던가? 그놈의 혁명 이후로 자랑스러운 우리 조국 프랑스는 산산조각이 났고, 의회는 벌써 5년째 기근이 계속되고 있는데 지금 여기서 몇이나 굶어 죽었는지 관심도 없네."
하물며 선하신 국왕 폐하마저 내쫓기다니.
"제아무리 자비로우신 성모께서 자비를 베푼다고 하나 이래서야 왕세자 전하께서 장차 어떻게 되겠는가?"
구태여 되물을 것도 없었다.
보나 마나 루이 17세는 랭스 근처에도 가보지 못하고서 죽게 될 거다.
지금껏 이 유럽 대륙에 존재해왔던 무수한 소년왕들과 별다른 바 없이.
"나는 이만하면 충분히 두고 봤다고 보고 있네. 이제는 무작정 참는다고 될 일이 아니야. 가엾은 왕세자 전하를 위해서라도 행동에 나서야 할 때지."
"그래서 우리가 대체 뭘 할 수 있다는 말인가?"
한 사내가 퉁명스럽게 반박했다.
"뭐 무기를 들고 프로방스 백작이나 찾아가자고?"
"자네 미쳤나?"
하다 하다 믿을 게 없어서 소년왕의 섭정역을 자칭한 삼촌을 믿는다고?
물론 그래도 혈육이니 그나마 다른 후보에 비하면 믿을 만하다고 할 사람들도 분명히 있기야 하겠지만, 적어도 이들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그 프로방스 백작이라는 놈은 국내사안에 가증스러운 오스트리아와 잉글랜드 해적을 끌어들인 매국노잖은가.
그들이 왕정만 존속된다면 외세의 간섭쯤 받아도 상관없다는 저 망명귀족도 아니고 뭐 나라에 덕본 것고 없는 제3신분인데 그런 되먹지 않은 선택지를 고를 수는 없었다.
"안 그래도 이미 신부님께 이야기를 드리고 온 참이네."
카텔리노가 의기양양하게 선언했다.
"우리가 왕세자 전하를 위해 의용군을 소집하자고 말이야."
"그러니까 오직 왕세자 전하를 위한 군대가 되자는 소리인가?"
"그렇지. 솔직히 저 의회나 그 딸랑이들을 도대체 어떻게 믿는단 말인가? 신부님께서도 그리하자고 동의하셨네."
그럼 그들로서는 더는 할 말이 없었다.
당장 저 의회란 놈들이 온 나라의 교회 재산을 모조리 압류한 이래로 곡소리만 계속되던 마을이었다.
그동안 마을재산을 교회에서 공동으로 관리하고 있었던 걸 졸지에 통째로 도둑맞은 꼴이 되었기 때문이다.
말로는 그들을 교회의 착취로부터 해방해준 거라고 하는데, 그게 지금 계주 노릇하시던 신부님을 반병신으로 만든 것도 모자라 곗돈 들고 나른 놈들이 할 말인가?
보아하니 파리에서 말하는 해방이라는 게 이 저주스러운 인세로부터 어서 해방되어 에덴동산으로 떠나라는 이야기인 모양이라고 마을 사람들이 모이면 곧잘 떠들곤 했다.
"저 파리 놈들에게 이 프랑스에 아직도 왕세자 전하를 위하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고 보여주세나."
고로, 이는 왕세자를 돕기 위한 충심이자 선의인 동시에 파리를 향한 무력 시위이기도 했다.
우리에 대해서 알지도 못하면서 멋대로 우릴 불행하다 재단하고 무릎 꿇리려 하지 말라고.
교회도, 귀족도, 농민도 서로 구분 없이 평등하게 상부상조하며 부족한 부분은 더해주고 과한 부분은 나눠주던 지난날이야말로 진정 행복했노라고.
방데의 농민들은 선하신 루이 샤를 왕세자를 위하여 법통파의 기치를 하늘 높이 들어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