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 축제
한국인들에게 있어서 민족 최대 명절이 설날과 추석이듯이, 기독교 문명권의 최대 명절은 단연 부활절과 성탄절이다.
그중 부활절에 대해서 잠깐 이야기하자면, 무려 준비기간만 40일에 목요일서부터 시작되어 일요일까지 총 나흘간의 축제 기간으로 이루어져 한 달 하고도 보름을 꼬박 지새우는 대축제다.
그래봐야 21세기 한국인들에겐 집 근처 교회나 성당에서 공짜 달걀 받아먹는 날이겠지만 18세기 말 프랑스는 엄연히 국교로 로마 가톨릭을 지정한 나라.
혁명 이래로 절대왕권과 결탁하였던 이 가톨릭 교회도 덩달아 쇠하였다고 하나 이는 세속의 이야기일 뿐 영적인 영역에선 변함없이 국교의 지위를 굳건히 유지하고 있다.
뭐, 부연설명이 길었지만 한마디로 줄이자면-.
[무언가 일을 꾸미기에는 더할 나위 없는 시기란 소리 아닌가.]
그러게 말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종교윤리에 세뇌된 전근대인들이 이런 종교적인 축제일에 일을 꾸밀 것 같지 않은데 오히려 역사적인 사례를 돌아보면 의표를 찌른답시고 꼭 이런 기간을 고르더란 말이지.
무엇보다 지금 파리엔 분노한 시민들이 있다.
지금까지야 우리에게 크나큰 힘이자 든든한 뒷배가 되어줘 왔지만, 민의라는 건 기본적으로 즉흥적이고 가치중립적인 존재다.
사소한 계기로 지금까지의 지지세가 한순간에 뒤집힐 수도 있다는 소리지.
그러니 만약 오를레앙공이 기어이 왕이 되고자 했다면 여느 때보다 거리에 사람들이 붐비면서 낭설을 퍼트리기 딱 좋은 부활절 연휴 도중일 거다.
그 사람도 바스티유 습격 이래로 왕권은 전지전능한 신께서 내려주시길 기도할 게 아니라 국민에게 직접 위임받아야 하는 존재가 되어버렸다는 걸 알 테니까.
아마 본인이 직접 참고한 건 아니라도 나폴레옹 황제 즉위랑 비슷한 전개로 수렴하지 않을까, 하고 제멋대로 짐작하고 있다.
[나 참, 그렇게 피를 보지 않으려 안간힘을 써도 왜들이리 피를 보지 못해 안달들인지.]
뭐 어때.
내가 프랑스 혁명기에 대해서 잘 알진 못하지만 원래 대강 이 무렵 즈음에는 이미 한창 혁명전쟁 중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
결국 이 대전쟁 와중 나폴레옹이 등장해 공화국이 무너지고 전 유럽을 제패하게 되지만, 지금까지 목격한 프랑스 국내 상황만 봐도 개전 초기엔 연전연패했을게 뻔히 보인다.
반대로 말하자면 이 개막장 상황을 다들 뻔히 알면서도 억지로 전쟁에 나서야 했을 만큼 국내 상황이 어지러웠다는 소리도 될 테고.
우린 최선을 다했다.
샹 드 마르스 행진 때부터 조금씩이나마 사람들의 피가, 광기가 덜해지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거면 된 거잖아.
[···이 빨갱이 놈이 위로라는 걸 할 줄 알았다니.]
입 닥쳐, 막시밀리앙.
이게 좀 쳐져 있는 거 같길래 위로해줘도 난리야.
"좋은 저녁입니다, 의원님."
"당신은 언제나 아름다우시군요, 엘레오노르."
웩.
처음 볼 땐 숙맥이 따로 없더니 갈수록 혓바닥에 버터가 느네.
주일미사 갈 때마다 우연히 만난 척, 운명적인 척 온갖 내숭은 다 떨더니 갈수록 대담하게 약속도 잡고 아부성 멘트도 날려주는 게 도저히 못 봐줄 지경이다.
하여튼 우리 집주인 놈이 성목요일 주님만찬-이라는 이름의 데이트를 즐기러 떠난 김에 잠시 파리 구경이나 하고 있자니 우중충한 기색은 온데간데없이 활기만 가득했다.
물론 축제 기간이라서 그렇겠지만 다들 죽어가고 있던 첫 주일미사 때와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다 들 지경.
뭐, 그래봐야 피골이 상접한 모습이나 꾀죄죄한 복장은 그대로긴 했는데.
'그게 어디야.'
최소한 누굴 죽여라, 다 때려 부숴라! 하는 고함은 언젠가부터 거의 들리지 않게 되었다.
뭐 누구누구가 아주 죽일 놈이다, 나라 꼬라지가 엉망이라는 소리야 계속 여기저기서 들리고 있기는 한데.
'그거야 안 들리는 게 오히려 망조가 들었다는 소리지.'
다들 지금보단 나은 내일을 꿈꾸고 있다는 소리니까.
처음 집주인의 눈을 빌려 파리를 둘러볼 때는 그런 상승 욕구가 전혀 보이질 않았다.
그저 죽지 못해서 살아가는 저주받은 인생, 그리고 남들도 똑같이 나락까지 추락하기를 기도하는 패배자들만 가득했다.
하지만 지금은 거기에 사회정의라는 알기 쉬운 이상을, 더 나은 내일을 강하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더해졌다.
'이렇게 자연스레 하나둘씩 바뀌기 시작한다면 더 바랄 게 없을 텐데 말이야.'
과연 잘 될까.
주님만찬이 진행되는 내내 내겐 불안만이 가득했다.
어쩌면 이것도 영감일지도 모르지.
집주인 놈이야 아가씨랑 밀담을 주고받느라 미사 내내 신부님이 뭐라고 하는지 들리지도 않는 모양이었지만-아니 생각해보니까 진짜 억울하네.
분명 사고를 치려면 부활절 기간 도중일 거라고 본인도 동의하지 않았나?
왜 정신 기생체는 이렇게 전전긍긍하고 있는데 진짜 목이 간당간당한 놈은 옆에서 고통받는 사람은 신경도 안 쓰고 혼자 꽁냥꽁냥 대고 있는거야?
'야, 진짜 이 시국에 그게 넘어가냐? 왜 다들 자꾸 피를 못 봐서 안달이냐고 한탄하던 놈 어디 갔어?'
[입 닥쳐, 민혁.]
햐, 이 배은망덕한 놈 보소.
그동안 내 덕 본 생각은 안하고 완전히 여편네한테 푹 빠졌냬.
이래서 검은 머리 짐승은 들이는 게 아니라더니.
아니, 이 경우엔 노란머리 짐승인가?
"십자가와 부활로 저희를 구원하신 주님, 길이 영광 받으소서."
그렇게 내게는 고통과 치욕의 시간이, 집주인 놈에겐 행복과 낭만의 시간이 지나고 마침내 경건한 기도와 함께 다들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
벌컥.
"크, 큰일났어요!"
웬 꼬맹이가 문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더니 소리쳤다.
"그 오스트리아 갈보년이 또! 또 제 오라비한테 편지를 보냈데요!"
···잠깐, 뭐?
"뭐, 뭐야?"
"아니 그년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얘, 그게 정말이니? 또 그 배은망덕한 년이 사고를 쳤단 말이야?"
"글쎄 진짜라니까요! 지금 온 파리가 난리예요! 빈에서 합스부르크 섭정이 오고 있데요!"
"미친년! 죽일년! 그래도 이 프랑스의 국모일 거라고 믿었는데!"
거룩한 퇴장행렬이 광기와 분노에 사로잡힌 폭도 무리가 되는 데까지는 불과 1분도 필요하지 않았다.
그야 이미 전적이 있었으니까.
당장 파리를 버리고 오스트리아로 도망치려다가 붙잡히기도 했었고, 무엇보다 내가 총대 메고 퇴위 시킬 때도 외가와 주고받은 편지를 증거로 제시했으니 파리 시민들로선 오히려 올 게 왔다는 반응인 게 당연했다.
하지만 지금 이 흐름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
그 마리 앙투아네트의 오라비는 올해 3월 1일에 급사했다고!
대놓고 암살이라는 소문이 돌 정도로 갑자기 죽어버리는 바람에 불과 1년 반 사이 2명의 황제를 연달아 떠나보낸 신성로마제국이 파리에 섭정을 보낼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역시 처음부터 그년놈 둘 다 퇴위가 아니라 단두대로 끌고 갔어야 했어!"
"그러게 원래 나쁜 짓도 한번이 어렵지 두 번, 세 번은 쉽다니까?"
"나라도 팔아본 놈이 잘 파는 거지! 암! 아아암!"
"그냥 손모가지를 잘라버려요! 아니면 모가지를 날리던가!"
그러나 시민들은 이미 분노로 눈이 까뒤집힌 지 오래.
내가 이제 와 옆에서 진정하라고 소리쳐봐야 너도 한패라고 공격당하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그렇지만-왜지?
아무리 국왕 부부의 전적이 화려해도 이미 죽은 카이저에게 편지를 보냈다는 헛소리가 먹힌다고?
[왜 저들이 그 정보를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요즈음 신문들이 어땠는지 잘 생각해보게. 다들 국내 사안과 사회정의만 떠들고 있었잖은가. 올해 초부터 시민들은 온통 법통파와 오를레앙 파의 난타전 구경에 정신이 팔려있었고, 또 우리도 의도적으로 해외 소식은 쏙 빼놓고 급진당 선전에만 집중하고 있었지.
당장 국내도 왕세자에 프로방스 백작에 오를레앙 공작까지 뒤섞여서 소란스러운 와중에 이웃나라 카이저가 죽었는지 살았는지가 그리 인상에 남았을 것 같은가?]
···하기야, 진짜로 국제정세에 관심 많은 사람이나 주목했겠군.
당장 나만 해도 카이저가 급사했다는 소식을 듣고도 아, 그럼 당분간 침공은 없겠네-정도로 넘어갔으니까 정치인조차 아닌 일반인들은 소식조차 못 들었거나 아니면 듣고서도 금방 국내 소식 때문에 잊어버렸을 개연성이 높다.
여긴 인터넷과 매스미디어가 발달한 21세기 대한민국이 아니라 18세기 말 프랑스니까.
"""왕후를 죽여라! 국왕을 죽여라!!!"""
하지만 그걸 고려해도 이 흐름은 뭔가 이상하다.
경건한 부활절 연휴 아니던가.
직전까지만 해도 가족이나 친구들과 훈훈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사람들이 갑자기 합스부르크 왕후가 또 사고를 쳤다는 소식 한마디에 발작해서 단숨에 공개처형식으로 여론이 흐른다고?
[선동꾼들이 숨어들었나 보군.]
그래, 내 생각도 그렇다.
기어이 오를레앙공이 행동에 나선 거다.
부활절 축제로 여느 때보다 인파가 들끓으면서 어수선한 틈을 타 단숨에 여론을 극단화 시킨 다음 기세를 몰아서 법통파를 숙청하려 들 작정인 거겠지.
아마 죄목은 루이 오귀스트 부부와 작당하여 오스트리아와 내통한 국가의 적 즈음일 테고.
흥분이 가라앉고 사람들이 어느 정도 냉철한 판단을 할 수 있게 되면 함부로 손대기 어려워지게 될 테니 무조건 부활절 연휴가 끝나기 전에 재판과 사형집행까지 끝내려 들 거다.
"엘레오노르."
"예···!"
"아무 곳도 가지 말고 꼭 집안에 계십시오. 아무래도 전 오늘 귀가가 늦어질 것 같으니, 아무 걱정하지 마시고 일찍 잠드시고요."
"···네, 기다리고 있을게요."
쪽.
···하이고, 그런데 이 집주인놈은 이 와중에 로맨스까지 챙기시네.
이래서야 진짜 정신기생체 어디 서러워서 살겠나.
필요한 조치라는 건 알겠고 괜히 따라오겠다고 고집 안 부리고 얌전히 귀가하시는 엘레오노르 아가씨가 참 기특하긴 한데, 눈꼴신 건 어쩔 수 없다.
[커흠.]
뭐 됐고, 그래서 어쩔텨?
[무슨 말인가?]
일단 일이 터졌으니 어디로 갈까, 라는 이야기다.
왕세자와 국왕 부부가 기다리고 있을 별궁?
푸셰가 기다리고 있을 군무감찰위원회?
아니면 뒤마 대령이 기다리고 있을 연병장?
급진당 당사를 겸하는 성 니꼴라 교회나 자코뱅 수도원?
[으음, 광장으로 나가서 시민들을 설득해 본다는 선택지는 없나?]
우리가 그냥 급진공화파였다면 그것도 한 가지 방법이었겠지.
그렇지만 지금은 일단 법통파라는 간판이잖아.
괜히 사람들 앞에 나서서 설득해봐야 변명한다고 생각할 거고 이미 사방에 선동꾼들이 쫙 깔렸을 걸 고려하면 자칫 분노한 폭도들에게 해를 당할지도 모른다.
그쪽 혼자 쓰는 몸이면 몰라도 나는 반대일세.
[···난제로군.]
그래, 어느 쪽이건 일장일단은 있다.
저쪽에서도 속도전으로 단번에 몰아칠 테니 행선지를 고를 기회는 오직 한 번뿐.
실패한다면 국가의 적으로 낙인찍혀 단두대로 끌려갈 거고, 성공한다면 거꾸로 저쪽을 국가의 적으로서 단두대에 끌고 갈 수 있다.
죽느냐, 사느냐.
지금 국왕 일가의 죽음을 연호하고 있는 분노한 군중들이 내일 아침 누구의 죽음을 연호할지가 이 한 번의 선택에 걸렸다.
***
성 니꼴라 교회.
"···이상하군."
한참을 시계를 노려보던 뒤무리에 장군이 눈살을 찌푸렸다.
"아직 어디에도 로베스피에르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말인가?"
"예. 지금껏 어디에서도 목격 소식이 들어오지 않고 있습니다."
"그게 말이 되나?"
그렇게 평소 기똥차게 머리를 굴리던 친구가 지금 오를레앙파가 선수를 쳤다는 것조차 모를 리가 없는데.
그럼 당연히 제 사람들을 모아서 반격을 준비하건 피신하건 해야 할 것 아닌가?
한데, 벌써 선동꾼들이 낭설을 퍼트리고 온 파리가 광기에 뒤덮인지 반나절 가까이가 되어가는데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혹시 저쪽에서도 군사력을 동원하지 않을까 우려하여 가장 먼저 뒤마 연대장을 임시로 막사에 구금했다.
급진당 당사에는 뒤무리에 장군이 와있고, 국왕일가가 있을 별궁에는 오를레앙 공작이 직접 행차했다.
국가헌병대와 같은 건물을 쓰고 있는 군무감찰위원회야 어차피 하룻밤 사이 점령할 수 있을거란 기대도 안했고, 다른 곳에 지원 병력을 보내지 못하도록 대치상태를 유지하는 정도로 충분하다.
자코뱅 수도원은-.
타타탕!
쾅!
···저 멀리서 총성과 폭음이 들려오는 걸 보아하니 일이 잘 풀리진 않은 것 같지만, 아직 쿠데타의 향방이 갈릴만한 치명적인 실패는 아니다.
지금 이 순간 파리 시민들의 관심은 온통 또다시 호의를 배신한 국왕 부부에게 쏠려있으니까.
오를레앙 파에겐 저 발작버튼이 눌린 폭도들이 마구 날뛰는 사이 오늘 밤에서 새벽까지는 어떤 일이 벌어지건 쉬쉬 묻어버릴 자신이 있었다.
당장 치안병력도 싹 빠졌겠다 저 무법자들에겐 때 아닌 성탄절 선물이 따로 없을터.
그렇게 새벽까지 상황을 정리하고 나면 치안을 파괴한 무법자, 매국노 국왕 부부와 협력하여 합스부르크에 나라를 팔아치우려고 한 매국노들이라는 핑계로 깡그리 숙청하면 완성.
자고로 망자는 말이 없는 법이었으니, 이번에도 별반 다르지 않을 터였다.
"아무리 그래도 지금쯤이면 슬슬 어딘가에는 모습을 드러내야 정상일 텐데."
그렇기에 뒤무리에 장군은 더더욱 현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현 상황은 누가 봐도 오를레앙 파의 완전한 통제 아래에 놓여있었다.
파리의 치안유지라는 임무조차 내팽개치고 치안 병력을 총동원해 유사시 법통파에게 힘을 실어줄 기관들을 선점했고, 온갖 잡범들을 사법 거래를 빌미로 선동꾼으로 동원했다.
물론 기밀 유지를 위해 충분한 인력을 동원하지 못해서 저쪽도 작정하고 숨으려면 얼마든지 추적을 피해 숨어들 수 있겠지만-그래서 지금 시간을 끌면 유리한 게 누구인가?
당연히 오를레앙파일 수밖에 없다.
당장 내일이면 오를레앙 공작이 수상으로서의 직권을 남용해 이번 사태를 표결에 부칠 거고, 그에게 반대하는 법통파-공화파 의원들이 구금되거나 제거된 와중 열린 회의는 당연히 만장일치로 그에게 힘을 실어주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이 쿠데타를 막아볼 의지가 있다면 최소한 지금쯤 어딘가 한곳에는 모습을 드러내야 정상일 텐데.
"보나 마나 겁에 질려 내뺀 것 아니겠습니까?"
그의 부관이 이죽거렸다.
"이미 파리를 빠져나갔거나 아니면 시궁쥐처럼 숨어있는지도 모르지요. 이만큼 찾아봤는데 어디에도 없었으면 그냥 본인이 사라지길 택한 겁니다. 이 이상 찾아봐야 시간 낭비라고요."
"그런 겁쟁이가 라파예트를 물 먹였다고?"
뒤무리에가 기가 찬다는 듯이 부관을 노려보았다.
"괜히 허튼 소리하지 말고 밤샐 각오나 하게. 오늘 안에 그 친구를 찾지 못한다면 다 같이 밤이라도 새야지. 이 의거의 성패가 그놈에게 달려있다는 전하의 엄명일세."
"쳇-. 뭐, 알겠습니다요."
시원찮은 대답이었다.
다른 이들의 생각도 별반 다를 바 없는지, 뒤무리에 장군은 눈에 띄게 지루해하는 병사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그야 부활절 와중에 불려와서 날밤을 새워야 할 판이니 사기가 바닥을 치는 것도 당연하기야 했지만.
'···곤란한데.'
안 그래도 뒤무리에보다는 라파예트에게 충성하던 병사들이다.
벌써 이래서야 라파예트가 파리로 상경하려 들 때 과연 몇이나 뒤무리에의 명령에 고분고분히 따라줄까?
'전하께 무슨 수를 써서라도 왕세자를 죽이지 말고 인질로 잡아야 한다고 간언을 드려야겠군. 언젠가 처리하기야 해야겠지만 최소한 라파예트는 무장해제 시켜야 한다.'
결국 뒤무리에가 아랫입술을 깨물며 무력감을 곱씹던 찰나.
"각하! 로베스피에르가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오오, 드디어!"
마침내 그토록 기다리던 낭보가 들어왔다는 소식에 뒤무리에는 말에서 폴짝 뛰어내려 이 기특한 전령에게 달려가 안겼다.
"그래, 그놈이 대체 어디 있었다고 하는가? 어디로 갔기에 이렇게 우리 모두를 애태웠다고 하는가!!!"
"그게···."
한데 전령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말하기 곤란하다는 듯이 말꼬리를 흐리며 서신을 건넸을 뿐.
그놈의 행방 탓에 애가 타던 이들로선 짜증이 앞설 수밖에 없는 때아닌 소심함이었다.
"아니, 이 친구가 왜 이리 답답하게-."
「노트르담 대성당」
이 신성한 부활절 축제 와중 신실한 교인이 응당 있어야 할 곳.
뒤무리에는 그 순간 하늘이 노래진다는 게 어떤 건지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