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7화 (47/154)

성금요일

쿵쿵쿵!

「로베스피에르 씨! 안에 계신 거 알고 있소!」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내뺀 우리를 추격대가 재발견한 건 어느덧 어스름히 동이 트는 이른 새벽이었다.

「모른 척하셔도 소용없소. 이만 포기하시고-.」

"그렇게 소리치지 않아도 나갈 테니 그쯤 하십시오."

수괴인 오를레앙공도 성치 않을 텐데 끈질기기도 하시군.

아직 소식을 듣지 못한 건가, 아니면 오히려 수괴까지 저 모양이 났으니까 더더욱 저러는 건가.

혹시 오를레앙공이 무사히 빠져나왔나?

[파리의 시민들을 우습게 보지 말게.]

하이고, 어련하시겠어요.

하다 하다 폭동 부심이라니 할 말이 없네.

끼익.

"정말로 나갈 텐가?"

찌뿌둥한 몸을 펴며 자리에서 일어서니 시에예스 주교가 걱정스럽다는 듯이 되물었다.

"이곳 생 피레르 교회는 이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 중 하나일세. 화려함이야 부족해도 영적으로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만일 자네가 버티려고만 한다면 저 왕당파들이야 천벌이 두려워서라도 손 하나 까딱 못할걸세."

"뭐, 그럴지도 모르지요."

내 목적이 라파예트가 파리로 도착할 때까지 죽자 살자 버티는 거라면 그것도 한 가지 방법이겠지.

하지만 그래서야 너무 늦다.

의회에서도 이미 상경을 거부했고, 또 나도 방데로 가달라고 부탁했으니 파리의 쿠데타 소식이 라파예트에게 닿고 다시 라파예트가 상경하려면 아무리 빨라도 보름은 걸릴 거다.

그럼 그동안 저 오를레앙파가 새로운 음모를 꾸미지 않을 거라는 보장이 어디 있지?

내가 숨어있는 동안 근거 없는 낭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부풀어 올라서 내가 뭐라고 반박해도 다들 듣는 시늉도 안 하게 된다면? 

이 세상에 쿠데타 세력에게 한 나라의 도읍을 며칠씩 양보하는 것보다 위험한 게 어디 있던가.

이미 오를레앙공이 신성모독을 각오하고서라도 보위에 오르겠다는 결의를 다졌음을 내 두 눈으로 확인한 이상 장기전은 논외가 되어버렸다.

그러니까.

"오늘이 무슨 요일이죠?"

뻔한 질문에 시에예스 주교는 답하지 않았다.

"자정 종소리도 들었겠다, 슬슬 새벽 동이 터오고 있으니 이제 금요일 맞죠?"

"···이런 불경한 놈을 봤나."

시에예스 주교가 기가 막힌다는 듯이 혀를 찼다.

주님만찬, 다시 말해 최후의 만찬이 있었던 어제는 목요일.

그리고 최후의 만찬이 끝나고 금요일. 

동이 막 터오는 새벽.

"전 이만 자수하러 가보겠습니다."

밤새도록 쫓아다니다 보니 판단이 흐려졌나?

아니면 수괴인 오를레앙공까지 고초를 당하고 나니 지휘계통이 망가진건가.

나 같으면 절대로 이 시간대에 추격대를 보내지 않았을 거다.

하물며 누명을 뒤집어쓴 죄인이 자진하여 죄를 자백하도록 두지도 않았을 것이고.

"일요일, 부활절 대축일까지는 무사히 돌아올 테니 너무 걱정하시지 마십시오."

"자네, 천벌 받을걸세."

시에예스 주교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도 아니면 축복이 내리거나. 훗날에 유대의 왕이 되더라도 내게 성유를 부어달라고 청하지는 말게."

"보나 마나 적그리스도일테니까요?"

침묵.

저쪽에서 묵비권을 행사하겠다면야 나도 더 할 말은 없다.

끼익.

"죄인 막시밀리앙 드 로베스피에르, 대령했나이다!"

문이 열리고 병사들이 내게 달려들기에 앞서 있는 힘껏 소리쳤다.

"최후의 만찬도 든든히 먹었겠다, 제가 이제 와 기를 써봐야 달리 어디로 도망칠 수 있겠나이까? 자, 어서 이 죄인을 포박하소서!"

최후의 만찬.

그 소리를 듣고 나서야 비로소 오늘이 주님 수난 성금요일이라는 걸 떠올렸는지 병사들의 얼굴이 한순간 새하얗게 질렸다.

이 병사들을 뒤쫓아온 폭도들, 아니 구경꾼들의 눈동자가 초롱초롱하게 빛나기 시작한 건 그와 동시였다.

밤새도록 헛소문에 낚여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폭주해서 그런가.

다들 눈이 반쯤 감기고 약간의 탈수증상까지 보이는 게 또다시 폭도로 돌변할 것 같지는 않았다.

차라리 갑자기 졸도해서 아무 데나 누워 퍼질러잔다면 모를까.

"자, 어서!"

철컥.

암튼 다들 이대로 두면 멍때리고 있을 것 같길래 병사가 들고 있던 수갑을 얼른 내 손에 채웠다.

"어, 어···?!"

"우리 중 누가 죄인입니까? 이 성스러운 금요일에 죄를 심문받아 마땅한 건 누구입니까? 이 막시밀리앙 드 로베스피에르입니까? 아니면 저 유다의 군병입니까!"

자.

"모두 대답하십시오! 누가 죄인입니까!!!"

여기까지 했으면 충분하겠지.

털썩.

나를 붙잡으러 왔을 병사가 제자리에 주저앉아버렸다.

다리에 힘이 풀린 모양이었다.

밤새도록 나를 추격하고 다닌 피로 때문인가?

그도 아니면 「유다의 군병」이라는 소리에 저도 모르게 부끄러움을 느낀 것일까.

상관없었다.

"여러분, 저는 이제 이 신성한 언덕을 내려갈 것입니다."

몽마르트르 언덕.

제정 로마 시절에 이 언덕에서 순교한 성자와 그의 제자들을 기리는 이 신성한 언덕을.

"만일 혹시 이 자리에 아직도 저를 위해 싸워주실 분이 계신다면, 불의에 맞서 정의를 호소할 동지들이 남아계신다면! 모쪼록 제가 주님을 모독하지 않을 수 있도록 일요일 전까지는 꺼내주십시오."

그거면 족했다.

터벅.

"막시밀리앙 드 로베스피에르 만세!"

입이 떡, 하니 벌어져서 어버버하고 있는 병사들을 지나 몇 걸음 내디디기가 무섭게 구경꾼들 사이에서 외마디 함성이 터져 나왔다.

"이 신성한 금요일 새벽에 이게 대체 뭐 하는 짓거리야!"

"옳소, 옳소! 이래서야 순 배신자 유다의 군병 아닌가!"

"당장 내일이면 미사도 드려서는 안되는 판에 체포라니!"

"정부는 거룩한 순교자의 언덕을 모독하지 마라!"

"""신성모독이다!!!"""

그건 그 자리에서 죽여라, 가 튀어나오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해야 할 열기였다.

아마 밤새도록 여기 약탈하고 저기 조리돌리면서 폭주하지 않았다면 틀림없이 죽이라고 소리가 나오고도 남았겠지.

나야 무사했을지 몰라도 최소한 날 잡으러 온 병사들은 이 자리에서 맞아 죽었을 거다.

"자, 병사들이여! 어서 날 본티오 빌라도에게로 데려가시오!"

그럼 저쪽에서 정신 차리기 전에 쉴 새 없이 몰아쳐야지.

"이 거룩한 부활절을 모독하려는 무뢰배들의 곁으로! 성금요일을 맞이하여 그리스도를 위하여 슬피 울고자 한 어린양을 잡아 가두려 하는 유다의 곁으로! 어서 우리 모두를 안내하란 말이오!"

""""안내하라! 인도하라!"""

천지가 쩌렁쩌렁 울리는 민중의 함성.

그 일개 개인이 감당하기엔 너무나 거대한 위압감 앞에서 병사들은 더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고개를 숙인 채 눈물을 흘리며 다만 명령에 따랐을 뿐인 이 가엾은 영혼을 해하지 않도록 기도하고 또 기도할 뿐.

"시민 동지들이여, 우리의 병사들을 너무 미워하지 마시오!"

그럼 이제 슬쩍 구해줘야지.

아 원래 냅다 벼랑까지 밀어버렸다가 구해주는 게 가스라이팅의 정석이라니까?

[미친놈.]

지도 신나서 열심히 혓바닥 돌리고 있으면서 뭐라는 겨.

"이들이라고 이 신성한 금요일에 어찌 가족들의 곁에 있고 싶지 않았겠소? 이 모든 것은 본티오 빌라도와 랍비들이 감당할 죄악이오, 이들은 다만 명령에 순종하였을 뿐인 롱기누스일지니!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로! 이 거룩한 날에 주님의 신성한 경구를 잊어서는 안 될 것이외다!"

""""오오, 아멘!!!"""

한껏 끓어오른 분위기는 이로써 마침내 집단광기의 반열에 올랐다.

하다못해 직전까지만 해도 울기 직전이었던 병사들까지 어깨동무하고 아멘을 외치기 시작했으니 말 다했지.

터벅.

사방에서 나는 잘 알지도 못하는 성가가 울려 퍼지고, 기도 소리와 아멘 소리만 가득한 가운데 내가 앞장서서 걸음을 재촉하기 시작했다.

목적지는 국민의회.

이 오를레앙파 최후의 쿠데타에 종지부를 찍고 완전한 승리를 선언하기에 더할 나위 없을 곳.

"어서 길을 비켜라, 이 유다의 군병들아! 본티오 빌라도와 랍비들에게로 이 죄인이 가고 있지않느냐!"

도중에 몇 차례인가 군인들이 나서서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아도 소용없는 짓이었다.

수갑을 찬 죄인이 앞장서서 걸었고, 그 뒤로 경건하게 양손을 모은 민중이 따라 걸었으며, 우리가 가는 길마다 거룩한 성가가 가득했다.

부활절 축제.

그리스도의 수난을 기념하는 성금요일 아침.

우리는 우리의 앞길을 막아서려는 모든 벽을 무너트리며 위풍당당이 빛의 도시를 가로질렀다.

***

평일에 의회에 출근하는 건 국민의 혈세로 생활하는 의원으로선 너무나 당연한 의무다.

하지만 그 평일이 부활절 연휴 와중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매주 돌아오는 주일에도 꼬박꼬박 휴정했던 의회다.

하물며 구세주께서 배신자 유다에게 붙잡혀간 성금요일이야 두말할 필요가 있을까.

비록 미사조차 없이 조용히 지내는게 원칙인 성토요일에 비하면 자유롭다지만 이런 날이라면 전시나 그에 준하는 비상사태가 아니라면 아무도 모이지 않는게 원칙이어야만 했다.

아멘!!!

"···망했군."

고로, 텅 빈 좌익의석들과는 달리 우익만 빼곡하게 출석한 오늘의 의회는 누가 봐도 비정상적이었다.

그리고 그들 스스로도 이게 비정상적인 상황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야 이들 모두 오를레앙의 쿠데타에 동참했거나 최소한 묵인한 공범이었으니까.

본래라면 당당히 이 자리를 주도했을 오를레앙공이 수상으로서의 직권을 남용하여 날치기 표결에 나서야 했으나.

"진정 수상 각하께서 아직도 의회에 출석하시지 않았다는 말인가?"

"그게···."

콩도르세 후작이 짜증스레 되물었으나 시종은 또다시 곤란하다는 듯이 고개를 떨굴 따름이었다.

콩도르세로서는 참으로 기가 찬 일이었다. 

그렇게 하지 말라고 옆에서 뜯어말렸는데도 기어이 이 사달을 내놓고서 본인은 행방불명이라니.

설마 일을 그르쳤음을 직감하고 파리에서 혼자 내뺀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도 했으나, 이내 콩도르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인간이면 차라리 최전선에서 병사들을 독려하다가 눈먼 총알에 맞아 죽었지 혼자 내뺄 인간은 아니다.

다른 건 몰라도 권좌를 위해서라면 물불 안 가리고 덤벼드는 황소니까.

제 정치생명과 가문의 안위를 건 도박에 나선 시점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온갖 가지 말아야 할 위험한 장소에는 다 나타났을 거다.

""" 주여, 우리는 주의 십자가를 경배하며, 거룩하신 부활을 찬양하오니, 십자 나무를 통해 온 세상에 기쁨이 왔나이다!!!"""

"으흐흑···."

마침내 바로 지근거리에서 들려오는 폭도들의 노랫소리에 한 의원이 흐느껴 울며 고개를 떨구고야 말았다.

그리고 콩도르세 또한 그의 기분을 익히 짐작할 수 있었다.

끼어들어서는 안 되는 데 함부로 동참하고 말았다는 절망감.

지금 당장 이 자리에서 도망치고 싶다는 공포감.

마지막으로 이 신성한 부활절 축일 와중 그리스도를 모독했다는 죄책감.

충분히 이해하고말고.

콩도르세 또한 정확히 똑같은 기분이었으니까.

"그 멍청한 오를레앙 놈이 적그리스도를 완성 시켜줬어."

뭐, 그의 경우엔 분노가 더 앞서긴 했지만.

이제 와서 누구를 탓하랴.

하필이면 부활절 기간을 노려서 일을 터트린 놈은 생사불명이고, 신성모독을 각오하고서라도 처단해야 했던 놈은 저기서 폭도들을 이끌고 진을 쳤는데.

만세!!!

"···이제라도 도망쳐야지 않겠습니까?"

쩌렁쩌렁한 만세 소리가 울리자 마침내 한 의원이 총대를 멨다.

어째 가랑이 사이가 축축하게 젖어있는 게 눈에 띄었지만, 콩도르세는 애써 모른체해 주기로 했다.

비단 그 한 사람뿐만이 아니라 이 자리에 모인 대부분이 저 폭도들에게 어떤 해를 당할까 두려워 반쯤 정신이 나간 상황이었으니까.

"이대로 가다간 저 폭도들에게 깔려 죽을 겁니다. 아니면 십자가에 매달릴지도 모르지요. 괜한 고집 부리기보단 후일을 기약해야지 않겠습니까?"

"그럼 무사할 수 있을 것 같은가?"

콩도르세가 냉소했다.

"이봐, 여기서 우리가 도망치면 그거야말로 죄를 자백하는 격일세. 우리야 떳떳해도 도대체 누가 재판장에서 도망친 죄수의 결백을 믿어주겠나?"

"그렇다면 도대체 어쩌자는 겁니까!!!"

죽기 싫어.

그런 환청이 들리는 듯한 처절한 외침이었다.

"죽어야지."

이 혁명을 맞이한 프랑스의 민선의원이 되기엔 참으로 강단이 부족한 사내였다.

"우리가 여기서 폭도들 손에 죽으면 순교자가 될 수 있네. 그렇다면 누군가 우리의 뜻을 이어받는 이가 나오겠지. 폭도들이 아니라 로베스피에르 놈에게 죽으면 쿠데타에 맞선 헌정질서의 굳건함을 보이는 사례로 남을 테고."

"하, 하지만-."

"바스티유 이래로 도대체 몇 명이 죽거나 다쳤다고 생각하는 건가? 분노한 시민들이 들고 일어난 게 어디 하루 이틀이야?"

무엇 하나 제대로 바꾸지 못하였다고 하지만, 혁명은 최소한 목숨은 평등하게 만들어줬다.

누구보다 빈곤하고 힘없는 이도.

누구보다 부유하고 힘 있는 이도.

죽을 때는 똑같이 죽는다.

목이 매달려서건, 목이 베여서건.

죽어야만 할 합당한 이유가 있건, 부조리한 이유로 죽게 되건.

"죽을 각오로 이 나라를 바꾸겠다는 의기도 없으면서 도대체 자네들은 왜 이 자리에 있는 건가?"

그게 싫다면 도망치면 된다.

괜히 전쟁 위기를 부추기는 망명귀족만 눈에 띄어서 그렇지, 그냥 유럽이 되었건 신대륙이 되었건 멀쩡히 정착해서 조용히 살아가는 이들도 얼마든지 있다.

그들도 그렇게 하면 된다.

그렇게 비겁해지긴 싫으니까, 설령 제 이름을 더럽히게 되더라도 이 망가진 나라를 고치고 싶으니까 지금 이 자리에 남아있는 거 아닌가.

"스스로 죄인임을 알고 있다면 더더욱 떳떳하게 단죄를 기다려야지."

"말씀 한번 잘하셨습니다."

덜컹.

마침내 문이 열렸다.

기어이 저 폭도들이 원내까지 쳐들어온 건가-하고 다들 고개를 떨구었으나.

"다들 모여있으니 따로 개회를 선언할 것도 없겠군요."

아니었다.

그 자리에 서 있는 건 장교복 차림의 이름 모를 사내였다.

파리 사투리조차 서툴러서 말하는 내내 독특한 어조가 귀에 박히는 쾌남.

"폭도들을 몰고 오더니 마무리는 판에 박힌 군사정변인가?"

하.

콩도르세가 냉소했다.

"아뇨, 전 호위역입니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라고 혹시 기억해주신다면 영광이겠습니다.

고개를 가로저으며 사내가 덧붙였다.

"호위?"

"예. 주제넘게도 의원님들의 신변을 위임받았습니다."

"그게 군사정변이라는 소리 아닌가!"

격노한 콩도르세가 자리에서 기립하는 순간.

"지금 그쪽에서 하실 말인가?"

익숙한 목소리가 사내의 어깨 너머에서 들려왔다.

마라였다.

어깻죽지에 피가 새어 나온 붕대를 질끈 매고 언제나처럼 적진을 향해 돌격하여 개회를 알리는 미친개.

"뭐, 나쁜 시도는 아니었네만. 우리가 군인들에게 쫓긴 게 어디 한두 번이어야 말이지."

그 뒤로 에베르가.

"모처럼 바스티유 때가 생각나는군. 기왕에 다들 모인 거 시민들까지 초대해보는 건 어떻겠나?"

카미유가.

"그만두게. 이제부터 표결을 해야 할 텐데 그 많은 표를 대체 어떻게 세려고."

마지막으로 당통이 나섰다.

심문실에서 조금 전 막 탈출한 참인지, 몸에 맞지도 않는 누더기를 기워입은 모습이었다.

밤새도록 군인들에게 시달렸는지 누구 하나 성한 구석이 없는 면면들이었다.

"···맙소사."

콩도르세 후작이 쓰게 웃었다.

"오늘이 부활 대축일이었던가? 시체들이 타르타로스에서 살아 돌아오셨군."

"이 개놈이 지금 누구보고 시체라는 거야?"

퉷.

마라가 신경질적으로 피가래를 뱉었다.

물론 콩도르세는 개의치 않고 되물었다.

"로베스피에르, 그 자는 어디 갔나?"

"지금 저 앞에서 시민들을 달래고 있습니다."

카미유가 대꾸했다.

"자, 그럼 모두 모였으니 시작할까요?"

무엇을.

구태여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저 뒤로 만신창이의 좌익의원들이 하나둘 원내로 들어와 제 자리에 앉고 있었다.

누구도 그들을 막아서지 못하였으며, 말릴 수도 없었다.

곧 그들의 정당한 권리였기에.

"수상께서 자리에 안 계시니 임시로 후작께서 의장이 되어주십시오."

당통이 말했다.

"아니면, 이 역적 놈이 대신 할까요?"

"오, 엿이나 드시게."

에베르의 도발에 콩도르세가 코웃음을 쳤다.

"좋아, 어디 민주주의 한번 해보자고."

아멘.

사방에서 울려 퍼지는 거룩한 성가와 함께 의회는 쿠데타 진영의 패배를 결의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