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가지 구호
튈르리 궁.
"먼저,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어머니의 치맛자락 뒤에 숨어서 벌벌 떨고 있는 루이 17세를 대신하여 마리 앙투아네트가 내게 고개를 조아렸다.
"설령 어떤 이유가 있었더라도 만일 그날 경께서 파리에 남아 분전해주시지 않았다면 저와 폐하, 두 사람 중 하나는 변고를 당하고야 말았겠지요. 이 자리를 빌려 폐하를 대신하여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제게는 너무도 과분한 말씀이십니다. 다만 이 프랑스 왕국의 일원으로서 충정을 다한 것 뿐일진대 어찌 태후께서 절 이리 낯부끄럽게 하시나이까."
[우웩.]
혓바닥은 네가 돌리고 있잖아 이놈아.
뭐, 그래도 심경은 충분히 이해한다.
애초에 부활절 축제 도중에 낭설 한번 돌았다고 바로 시민들이 폭도로 돌변한 이유가 뭐였더라?
바로 이 사람과 루이 카페의 악명 때문이었잖아.
이번 소동이 오를레앙공이 퍼트린 헛소문이었던 걸로 수습되었으니 앞으로 똑같은 일이 일어나더라도 이번처럼 막강한 파장이야 없겠지만 결국 이건 이 일가의 악명을 우리가 대신 수습해준 격이다.
저쪽에서도 그걸 알고 있으니까 평소답지 않게 이렇게 저 자세인 거겠지만.
"그럼 폐하의 심기가 편치 않은 듯하니 전 일찌감치 볼일을 마치고 가보려 합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별로 오래도록 보고 싶은 상대는 아니다.
사적인 관계였으면 정치적인 무능보단 인간적인 매력이 더 눈에 띄었겠지만 지금 우리는 창살 없는 감옥에 갇힌 인질과 이들을 잡아 가둔 역적.
짝짝.
미리 정해둔 대로 손뼉을 두 번 쳐서 나폴레옹 소령-아니 이번에 승진하여 나폴레옹 중령에게 전날 의회에서 최종적으로 가결된 개헌안을 들고 올 것을 지시했다.
전체 745석 중 반대가 243표, 찬성이 498표, 기권 4표로 개헌선을 아슬아슬한 턱걸이로 넘긴 회기였다.
쿠데타가 진압된 지 아직 보름 남짓한 시점에서 개헌투표를 부쳤는데도 개헌선 496.666표보다 간신히 1.333표가 많은 수준이었으니 평시였다면 어림도 없었겠지.
[반대로 이런 시국이니까 다들 자신감이 붙어서 더욱 도전적인 개헌안이 나올 수 있었던 거 아니겠나.]
뭐, 그것도 그렇지만.
"이게 뭐죠?"
자꾸만 치맛자락에 숨으려 하는 루이 17세를 진정시켜 왕좌에 앉힌 마리 앙투아네트가 되물었다.
거 뻔히 알고 있을 거면서 모른 척하기는.
"앞으로의 섭정 기간에 대비하여 섭정 의회에서 결의한 새 법을 모쪼록 폐하께서 살펴주십사, 하고 제 부관을 시켜 대령하였나이다."
"그렇다면 그 자리에서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낭독해주세요."
···그렇게 나오시겠다?
뭐, 내 신뢰도야 두말할 것도 없고 저쪽에서 아예 처음 보는 나폴레옹을 저 겁많은 꼬마 곁에 둘 수는 없다는 계산이겠지만.
"좋습니다, 그렇다면 낭독하겠습니다."
구태여 사양할 필요는 없다.
아니, 저쪽에서 괜히 잘 읽히지 않는다는 둥 질질 시간을 끄는 것보다야 내가 직접 읽어주는 게 낫겠지.
허리를 곧게 세운 나폴레옹에게서 붉은 비단 위에 돌돌 말린 양피지를 건네받아 펼치고, 읽기 시작했다.
"우선 첫째로, 장차 섭정 의회는 일찍이 인권선언에 명시된바. 유권자의 자격요건을 대폭 완화하여 만 21세 이상의 모든 성인 남성에게 동등한 1표를 행사할 수 있도록 정하겠사옵니다."
"···맙소사."
마리 앙투아네트에게서 땅이 꺼지라고 한숨이 터져 나온 건 그와 동시였다.
그래도 나름 어떻게든 평정심을 유지하거나 유지한 척하고 싶었겠지만 어림도 없지.
어느 정도 예상은 했겠지만, 이 소리를 듣고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는 반동이 어디 있겠어?
당장 어제 회기에서 가장 치열한 공방이 일어난 것도 바로 이 조항이었다.
왕당파야 두말할 것도 없고 공화파 내에서도 반동 부르주아지들이 뭐라도 한 가지만 더 자격요건을 더해보려고 안간힘을 썼거든.
애당초 혁명 이후 완성된 첫 번째 프랑스 헌법은 국민의 정치적 평등을 보장하지 않았다.
당장 인권선언을 작성한 시에예스 주교도 헌법 작성할 때는 5리브르에서 10 리브르의 세금을 지불하는 사람은 「선거인」, 1.5리브르에서 3리브르 사이의 세금을 내는 사람은 「능동적 시민」, 1.5 리브르의 세금조차 내지 못하는 사람은 「수동적 시민」으로 구분했으니 말 다 했지.
덧붙여 이 위로 52리브르 이상의 세금을 지불하는 「입법의원」이라는 상위계급이 그 위로 또 군림하고 있다.
당연히 이들은 재산에 따라서 각기 다른 수준의 참정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수동적 시민이 투표권조차 행사할 수 없는 반면 능동적 시민은 선거에 출마할 수 없고, 선거인은 지방에서 선거인단 회의에 참여할 순 있어도 파리로 상경하여 입법의원이 될 순 없다.
사실상 용어만 달라졌을 뿐 기존 프랑스의 신분 구분을 대체한 새로운 선거 신분제도를 만들려고 한 거다.
아니 그보다 이런 판국에 대체 댁은 뭔 수로 의원 자리 유지한 거야?
나야 급진당 창당하고 선전지 팔아서 돈벌었지만 그 전에는 안정적인 수입이랄게 없었을텐데?
[나야 의원봉급으로 해결했지. 모자라면 길거리 연설을 하고 기부받기도 했고. 가끔 신문에 투고하거나 변호사 활동도 틈틈이 했네.]
그러니까 의원 활동하면서 부업까지 동시에 했다고?
[부업이라도 안 하면 내가 무슨 수로 52리브르의 세금을 감당하겠나?]
···미치겠네.
우리 집주인 놈 나중에 훼까닥한게 과로와 스트레스로 몸과 정신이 망가져서 그런 거 아닌가 싶어질 지경이다.
"계속해도 괜찮겠습니까?"
"네, 물론이죠. 신경 써주셔서 고마워요."
아무튼 식은땀을 줄줄 흘리고 있길래 예의상 한마디 던졌더니 귀신같이 마리 앙투아네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퇴위 이래로 루이 오귀스트는 더욱 의기소침해졌고, 아직 어린 국왕은 이게 무슨 소리인지도 모르고 멀뚱멀뚱하고 있으며 자칭 섭정은 파리에 없으니 한 아이의 어머니로서 필사적인 거겠지.
어차피 여기서 어깃장을 놔봐야 루이 17세의 입지만 더욱 위태로워질 거라는걸 알고 있을 테니 하다못해 왕실을 대표하여 본인이 의연하게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두 번째로, 기존의 의회를 국민공회(Convention nationale)로 재명명하며, 16개의 위원회와 16명의 위원장으로 구성된 내각을 수립하겠습니다."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네요."
하아-.
그제야 마리 앙투아네트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그럭저럭 입헌군주정의 형식을 차렸다고 생각한거겠지.
또 내각을 통해 보통선거제를 계기로 흘러넘치기 시작할 천박한 민의를 견제할 수 있을거라 기대했을 테고.
[전형적인 필부의 발상 아니겠나.]
뭐, 부정하지는 않겠다.
저쪽이야 보통선거제가 절대왕권을 망칠 것만 생각해서 질색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이건 원래 우리 공화파에게 더 위험한 한 수였다.
왜냐?
결국 이 프랑스의 인구 중 절대다수는 농민이니까.
파리의 상퀼로트가 아무리 많아 봐야 보수적인 농민들이 동등한 한 표를 행사하기 시작하면 다음 선거부터 원내가 온통 보수적인 당파와 인사로 가득 차게 될 거다.
고로, 상임위원회다.
프랑스 각지의 전문가들을 한자리에 모아 다양한 의견을 듣겠다-는 솔직히 개소리고.
실제로는 파리와 도시의 발언권을 지키기 위한 수단이다.
인구야 농촌이 압도적이라도 전문가 집단을 줄세우기 시작하면 당연히 도시, 개중에서도 으뜸인 파리가 주도권을 독차지할 수 밖에 없으니까.
[그리고 보수적인 농민들이니 어쩌니 해봐야 그들이 제대로 된 참정권을 행사하려면 먼저 우리가 프랑스 전역을 온전히 장악해야지 않겠나.]
뭐, 그것도 사실이고.
솔직히 지금 의회의 행정력이 닿는 권역 내에서 남성 보통선거제 도입하면 백이면 백 공화파 과반수로 끝날 테니 저쪽에서 기를 쓰고 막으려 했던 거니까.
"그리고 세 번째."
기대 어린 시선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마리 앙투아네트를 향해 분명히 선고했다.
"이 프랑스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으며, 국왕의 지위는 주권을 가진 프랑스 국민의 지지로부터 비롯된다."
다시 말하여, 국민이 더는 왕정을 지지하지 않는다면 존속될 이유가 없다.
의도적으로 존대마저 때려치웠다는 걸 눈치챘는지 마리 앙투아네트는 반박도, 감탄도, 분노도 하지 않았다.
다만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다음 선고를 기다릴 뿐.
"넷째, 앞으로 왕실에서 1년간 사용할 예산 또한 의회에서 별도의 위원회를 설치하여 궁정과 충분한 협의를 통해 결정하겠습니다. 물론 최종적인 결제는 폐하 혹은 섭정께서 하실테니 안심하시길."
"···듣고 있으니 계속하세요."
"다섯째, 국적법을 개정하여 신청자에 한해 여권을 배부하여 출입국시 인적 사항과 방문목적을 의무적으로 기록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모쪼록, 폐하께서 그 첫 번째 주인공이 되시는 영광을 허락해주셨으면 하옵니다만."
"나, 나?"
어린 루이 17세는 무슨 소리인지 이해하지 못하고서 눈동자를 동그랗게 떴다.
반면 마리 앙투아네트는 달랐다.
21세기야 너무나 당연한 게 여권이지만 지금은 선원수첩이 사실상의 여권 역할을 대신하던 시대.
하물며 타국에 양해만 구했다면 누구에게도 구속받지 않고 자유롭게 전 유럽을 돌아다닐 수 있어야 하는 국왕에게 여권이라는 이름의 신분증을 발급하겠다?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결국 국왕 또한 어디로 갔는지,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공문서에 하나하나 기록되어야 하는 일개 국민이라는 소리다.
그동안 본인에겐 온갖 말도 안 되는 결의가 나와도 입 꾹 다물고 있던 마리 앙투아네트의 입이 비로소 열린 이유였다.
"국적법을 정비하건, 여권을 배부하건 그거야 섭정 의회의 자율이지요. 거기까지 왈가왈부할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이 나라의 주인께-."
"이 나라의 주인은 국민입니다."
소용없다는 거 뻔히 아실만 한 분이 왜 이러실까.
"조금 전 분명히 동의하셨잖습니까?"
"그건···!"
마리 앙투아네트가 언성을 높이려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뭐, 본인 입에서 동의하겠다는 말이 나온 건 아니지만 아무튼 침묵했잖아.
나는 그걸 암묵적 동의로 해석했고, 이 국적법 이전에 4개의 조항 모두 같은 방식으로 처리했다.
한데 여기서 그 침묵이 사실 암묵적 동의가 아니었다고 반박한다면?
당연히 번거로워도 다시 처음부터 하나하나 제 입으로 동의한다고 답해줘야지.
그것도 왕태후가 아니라 저 갓난아이 루이 17세가 직접.
"그러게 누가 무턱대고 도망치라고 했습니까?"
천천히 뒷짐을 지며 코웃음을 쳤다.
"합스부르크에게 원병을 청하라고 누가 협박이라도 했습니까?"
"···지금 그게 이것과 무슨 상관이죠?"
"당연히 관련 있고 말고요. 당장 지난 부활절날 어떤 일이 있었는지 벌써 잊어버리시진 않으셨을 텐데요."
마리 앙투아네트는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도저히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그냥 분하고 억울해서 그런 건지야 나도 신이 아니었으니 짐작할 수 없었지만.
"예상하셨겠지만 여섯 번째 결의안은 우편법입니다. 앞으로 모든 우편 업무를 해당 공공기관 혹은 공기업에서 관리하고 기록하며 국민의 보편적 편의를 도모하고자 합니다."
상관없었다.
여기까지 분명히 경고해뒀는데도 또 사고를 친다면 그때야말로 자연사겠지.
루이 17세야 아직 쓸모가 있고 본인은 어디까지나 무고하니 살려둬야겠지만 이미 전적이 화려한 저 부부는 풀카운트를 가득 채운 지 오래다.
"그리고 이 서류엔 빠졌지만, 가까운 시일 내에 왕정 존폐를 국민투표에 부치자는 제안이 있었습니다."
가령 마라라던가, 에베르라던가, 브리소라던가.
솔직히 나도 오를레앙파 쿠데타까지 진압한 참에 그냥 법통파고 뭐고 당장 공화정으로 넘어갈까, 도 생각해봤지만 그것까지 집어넣으면 합법적인 방법으로는 통과가 안 될 것 같아서 마지막에 그냥 빼버렸다.
실제로도 겨우 두 표 차이로 간신히 통과되었으니 잘한 선택이었지.
국왕에게 개인적인 충성을 바칠 충신은 더는 이 프랑스에 없으나, 입헌군주정을 향한 미련은 아직도 짙고도 강렬했던 것이다.
"모쪼록, 이 이상 의회의 인내심을 시험하진 말아주십시오."
루이 17세에게 성큼성큼 다가가 개헌안을 가져다 바친 다음 미련 없이 물러났다.
곧 서명 날인을 권한 것이었고, 루이 17세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고개를 숙인 어머니와 함께 절차를 마쳤다.
쿵.
그렇게 조물주의 지상 대리인이라던 프랑스 국왕은 한낱 국민이 되었다.
***
급진당.
그 이름 그대로 더욱 급진적으로 가겠다는 결의를 담았던 로베스피에르의 친위단체.
로베스피에르 개인의 인망과 빵 한 조각이나 살까 말까 한 푼돈만 내면 당원명부에 이름을 올릴 수 있다는 이유로 뭇 출세를 꿈꾸는 인재들을 스펀지처럼 흡수하고 있는 상퀼로트들의 신흥종교.
하지만 그들 중 막상 정당의 이념이, 이상이 무엇인가에 관해서 묻는다면 선뜻 이거라고 딱 잘라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게 이를 이끄는 로베스피에르의 행적부터가 종잡을 수 없었다.
공화파이면서 법통파를 자칭하지를 않나, 언제는 오를레앙공과 내통한 거 아니냐는 소리까지 나오더니 끝내는 그를 단두대로 보내버렸고 교회와 다투는 듯하더니 다시 화해하고 있다.
그나마 이 모든 행보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공약은 만민평등과 보통선거제 두 가지뿐.
이 중 보통선거제가 이번 개헌을 통하여 해결된 이상 제한선거제 철폐에 가장 앞장서던 급진당도 덩달아 지지세를 잃어가지 않을까.
이 무렵 파리의 호사가들은 누구나 그렇게 짐작했다.
"아담이 밭 갈고 이브가 베 짤 적에 우리 나으리들께서는 대체 어디 계셨다는 말인가!!!"
오산이었다.
연단에 선 자크 루 신부가 고래고래 외쳤다.
"사도행전 4장 32절에 나와 있기를, 초기 교회 공동체는 그 많은 신도들이 다 한마음 한뜻이 되어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고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사용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시작점이었습니다!
한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우리 중 누가 조물주의 창조물을 공동으로 사용하며 공동으로 소유하고 있습니까? 하물며 교회조차 소유를 주장하며 사익을 추구하는데 도대체 누가 이 초기 교회의 거룩한 뜻을 이어받겠습니까!"
뒤이어 카미유가 외쳤다.
"사유를 금지하자는 말이 아닙니다. 사익을 추구하는 게 죄악이라는 주장은 더더욱 아닙니다! 불필요한 사유, 불필요한 사익 추구를 제한하자는 말입니다! 되묻건대, 당신들이 사용할 것도 아니면서 왜 그토록 많은 토지와 저택이 필요하다는 말입니까?
진정으로 그 집이 필요한 사람들, 그 토지가 필요한 사람들은 죽어서 제가 묻힐 한 뼘의 공간조차 오롯이 소유하지 못하는데 왜 당신들은 그토록 많은 땅과 집이 필요합니까! 결국 투기를 위해서가 아닙니까!"
"""옳소!!!"""
청중들이 일제히 탄성을 터트렸다.
증오와 열망, 반가움과 간절함이 공존하는 함성이었다.
"일하지 않는 자여, 먹지도 말라는 경구가 있습니다! 데살로니가후서 3장 10절에 나온 말로, 사도 바울로께서 우리 신도들을 꾸짖으시며 남기신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일하지 않는 자는 대체 누구겠습니까!"
"""물론 저 개나으리들이시오!!!"""
"그렇습니다! 저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으면서 남을 착취하여 사치스러운 생활을 영위하는 지주들! 힘없고 무고한 서민들을 등쳐먹는 금융가들! 이미 평생을 써도 모자란 돈을 벌고서도 만족하지 못하는 탐욕스러운 부르주아지들!"
자크 루가 두 눈을 부릅뜨며 더욱 크게 부르짖었다.
"우리가 그들을 단죄할 것입니다! 그까짓 돈으로 우리의 정당한 참정권마저 도둑질하려고 했던 저 더러운 강도들에게! 새로운 계급사회의 자본 귀족이 되기를 꿈꿨던 과두체제에게! 마침내 우리 손아귀에 돌아온 이 쇠망치로 있는 힘껏 국민의 분노를 보여줍시다!"
"""급진당 만세! 상퀼로트 만세! 참정권 만세!"""
"모든 텃밭은 게으른 지주가 아닌 근면한 농민들에게 돌아가야할 것입니다! 텅 빈 저택은 응당 그 집을 필요로하는 서민들에게 돌아가게 될 것이며, 노동의 가치가 존중 받고 성실히 근속하고, 저축하다보면 부족함이 없는 생활을 누릴 수 있어야만 합니다!"
"""자유(Liberté)! 평등(Égalité)! 연대(Fraternité)!!!"""
광기 어린 지지집회였다.
곧 급진당의 가면이 벗겨지는 순간이오, 구체제를 향한 선전포고 의식이었다.
자유, 평등, 연대.
이날 파리에서는 밤새도록 이 세 가지 구호만이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