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1화 (51/154)

고르디우스의 매듭

우두둑.

"아이고, 삭신아."

하여간 이놈의 정치동아리는 적당히 하는 게 없어요.

무슨 회식 한번 거하게 끝내고 난 이후이면 침대가 아니라 무덤에서 기어 나오는 느낌이다.

뭐, 이번엔 내가 모처럼 당통 지갑으로 뽕을 뽑는다고 오버페이스로 달린 것도 있긴 한데.

[그러게 좀 적당히 하지 그랬나.]

내가 '적당히'를 아는 놈이었으면 빨갱이 소리나 들으면서 살겠냐?

어차피 다 지난 이야기는 됐고, 좀 건설적인 이야기를 해보자고.

[건설적인 이야기?]

수상 말이야.

이젠 진짜 남이 아젠다 꺼내줄 때까지 기다릴 게 아니라 주도해가야 하는 입장이잖아.

[흠, 그냥 무작정 적기 휘둘리면서 내달리려는 거 아니었나?]

하이고, 내가 그러려고 마음먹어봤자 협력해줄 생각도 없으면서 퍽이나.

일단 현재 이 프랑스 왕국이 당면한 문제는 앞서 여러 차례 설명했듯이 크게 다섯가지다.

하나, 혁명 이래로 파탄 난 외교와 루이 17세의 정통성과 직결된 전쟁 위기.

둘, 아시냐로 대표되는 화폐가치 왜곡과 가톨릭 교회와의 대립으로 인한 행정 붕괴.

셋, 무분별한 자유시장경제 도입으로 인한 소비재 대란.

넷, 변함없이 반혁명적인 지방 농민들의 민심과 기세등등한 지주들.

다섯, 아이티 혁명으로 대표되는 해외식민지 상실과 소비재 대란.

[첩첩산중이구만.]

오우, 유식한 말쓰네?

뭐, 여하튼 이 중 전쟁 위기는 따로 더 관여할 필요는 없다.

저번에 나와 방법론으로 의기투합했던 라자르 카르노, 그 친구가 이번에 전쟁위원장으로 올라왔거든.

군부 인사 문제야 내가 괜히 개입하면 또 뒷말이 나올 테니 넘어가더라도 대량생산 대량 소모라는 관념은 우리 카르노 전쟁위원장님께 분명히 전해놨으니 중간중간 경과만 확인하면서 열심히 힘을 실어주기만 해도 충분할 거다.

문제는 이제 그 다음인데···.

[암만 봐도 고르디우스의 매듭으로 보이는데 그냥 알렉산더식 해결책 어떤가?]

시꺼.

그런데 뭐, 솔직히 내심 저 말에 동의하고 있긴 하다.

그냥 폭도들 선동하면서 나폴레옹에게 적색 쿠데타 한방 사주해 독재정권 꾸리고 나면 훨씬 일이 간단할 테니까.

기독교 사회주의라는 이 시대에도 그럭저럭 먹혀들 당론도 정했겠다, 내 의견에 반대할 놈들 싹 치워버리고 나면 쉽잖아?

하지만 그래서야 나도 오를레앙공과 별 다를 바 없다.

그러니까 가능하다면 합법적인 선에서 아젠다를 주도하면서 저놈들이 내가 생각하는 문제해결책에 동의하는 방향을 생각해내야 하는데-.

[이 세상에 남들을 위해 제 철밥통을 내려놓을 놈이 어디 있겠나.]

···아니 이 양반이 오늘따라 하라는 협력은 안 하고 자꾸 뼈를 때리네.

거 아저씨 자꾸 이럴겨?

[자네가 조금만 더 푸른빛이 도는 해결책을 고려하기 시작하면 생각해보겠네.]

그럼 뭐 나 혼자 알아서 생각해봐야지.

[이봐!!!]

아니 혼자 알아서 하라며!

[그게 지금 어딜 봐서 알아서 하라는 걸로 들린단 거야?! 제발 그놈의 빨간 맛 좀 덜어보라는 소리지!]

차라리 호랑이가 고기를 끊지, 그건 못하겠소이다.

[허 참.]

뭐, 괜히 말싸움해봐야 득 볼 것도 없으니 이 이야기는 이쯤 해두자.

당장 숙취로 엉망진창인 몰골에 이중인격끼리 전쟁이라니, 뒤플레 집안에서 기어이 미쳤나 보라고 질겁하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일단 대충 씻고 출근이나 하고 보자.

혹시 또 알아?

일단 원내에 들어서고 나면 뭔가 좋은 생각이 날지.

***

"생도맹그의 노예들이 협상을 요청했다고요?"

···아니 그런데 무슨 출근하자마자 첫빠따가 이거야.

주여, 제가 도대체 무슨 죄를 저질렀다고 첫판부터 대마왕을 띄우시나이까?

[아마 빨갱이인 죄?]

입 닥쳐, 막시밀리앙.

"글쎄, 이게 지금 우리가 토의할만한 주제가 맞습니까?"

"스페인과 내통한 매국노 나부랭이들이 주제를 알아야지."

"매국노라니요. 나라도 사람이 팔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애초에 국적을 가져본 적이 없는 짐승이 무슨 매국노입니까?"

"아하, 그랬었지. 미안하오. 내 요즘 동물권 보호에 매달리다 보니 유인원들을 어찌 불러야 하는지 깜빡 잊었구려."

낄낄낄.

그리고 모로 봐도 다들 이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눈치가 아니다.

그냥 상대를 대등한 교섭 상대로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느낌.

"저 반란군은 우리의 시민들을 학살했고, 우리의 재산을 파괴하였으며, 적국 스페인과 협력하여 우리의 주권 영토에 괴뢰정권을 수립하고자 시도하고 있습니다. 한데 도대체 왜 우리가 저들에게 기회를 제공해야 한단 말입니까?"

그나마 왕당파들 사이에서 가장 호의적이었던 반응이 이정도.

최소한 상대를 유인원이나 그 비스무리로 비하하지 않고 반란군이라는 인격체로 존중하는 대신 그 죄목을 조목조목 지적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사람은 아이티의 물라토들에게 동정적인 축에 속했다.

사정이 이러니 오를레앙파까지 건재하던 시절에는 아예 회기에 부쳐지지도 않고서 묵살되었을거라는걸 익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야 저들로선 반란군이라는 것만으로도 혐오스러울 텐데 물라토들이 일으킨 반란이라니 더더욱 혐오스럽지 않겠나.]

하기야, 21세기에도 툭하면 인종 문제가 튀어나오는데 이 시대엔 두말할 것도 없지.

[아니, 인종 문제가 아니고 이종 간 교접이라네. 한마디로 수간이지. 저들은 사람이 짐승과 교잡해서 낳은 키메라라고 생각하는 거야. 우리 유럽인들이 범한 죄악의 살아있는 증거물 취급인걸세.]

오, 18세기여.

21세기인 감성으론 갈수록 상상 초월일세.

벌떡.

"그렇게 치면 지금껏 우리가 한 일은 당시 국법상 반란이 아니었다는 말입니까?"

다만 모두가 이 대열에 동참한 건 아니었다.

가령 지난날 주전파를 이끌며 나와 대립했던 자크 피에르 브리소처럼 말이다.

"저들은 다만 너무도 자유를 갈망하였다는 죄가 있을 뿐입니다. 노예제라는 우리 인류문명 최악의 오점이자 사라져야 마땅한 해악을 칼로써 벌준 죄. 만일 생도맹그의 혁명이 죄라면 응당 우리가 그동안 걸어온 이 길도 죄로서 단죄받아야 마땅합니다."

"아니 브리소 의원님, 지금 무국적자들이 우리 프랑스 시민권자를 무참히 도살했다는데도 그런 소리가 나오십니까?"

"당신이 말하는 국적이란 무엇입니까? 이 프랑스 땅에서 태어난 것? 만일 그렇다면 생도맹그의 백인들 또한 프랑스 시민권자로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프랑스말을 할 줄 안다는 것? 그렇다면 저들이 프랑스인이라 불리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브리소가 상석에 선 나를 흘겨보며 덧붙였다.

"우리도 그와 같이 시작했잖습니까. 참정권은커녕 정치에 대하여 감히 왈가왈부하는 것조차 바스티유로 끌려가야만 했던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 모여서 이 프랑스를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한데 왜 저들이라고 달리 대우해야만 합니까? 진정 우리의 혁명이 의로웠다면, 같은 이유로 이 부당한 구체제에 맞선 저들 또한 인정해줘야지 않겠습니까!"

오우야.

살벌하긴 한데 아무리 옳은 소리라지만 사람들이 썩 좋아할 만한 소리는 아니다.

저번에도 이러더니 저 친구의 정치적 신념은 소수민족과 노예해방인가?

[흑인친구협회(Société des amis des noirs)라고 혹시 들어봤나?]

그게 뭔데?

[브리소 저 친구가 혁명 직전에 사비를 들여서 창설했던 노예제 폐지단체일세. 아직 왕성하게 활동 중인데, 자네가 알지 못하는 거 보니 끝내 실패했나 보군. 아니면 다른 친구들이 더 크게 성공했거나.]

···생각했던 것보다도 더한 신념범이셨네.

혁명적 부르주아지 인정합니다.

"거 아무리 그래도 말씀이 지나치시오!"

"그래서 저 노예혁명도 혁명이라면요? 뭐 혁명동지들끼리 얼싸안고 하하호호해야합니까? 저놈들 손에 몇이나 되는 시민들이 죽었는지 알기나 해요?"

"생도맹그와 타협하게 되면 장차 우리는 모든 식민지와 똑같은 협상하게 될거요! 그리고 그들 모두 똑같은 요구를 해오겠지!"

"사람이 괴물과 한자리에서 협상을 한다는 게 어디 말이나 되는 소리입니까!"

다만 이 투철한 신념에도 불구하고 브리소의 강경한 발언은 되려 원내의 반발만 더욱 거세게 만들 뿐이었다.

그야 뭐, 애초에 물라토랑 우리랑 같은 호모 사피엔스다-라는 인식 자체가 없는 사람들한테 저런 소리 해봐야 소귀에 경 읽기인 게 당연하겠지만.

어쩌면 그래서 연설 도중에 저 친구가 한번 흘겨봤었는지도 모르겠다.

만민평등 주장하는 급진당이면 당연히 한마디 거들어야 하는 거 아니냐, 이거였겠지.

[그래서 어쩔 텐가?]

물론 거들어야지.

저 친구만큼 굳건한 신념은 없어도 여기서 침묵해서야 반골의 이름이 운다.

문제는 우리 급진파 친구들은 대부분 이 화두 자체가 좀 지루한 눈치고, 그나마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친구들도 브리소를 돕기보다는 공격하고 있다는 건데···.

[그럼 접근법을 바꿔야지.]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왜 자네가 잘하는 거 있잖은가. 상대에게 선택지를 하나둘 줄여버리는거.]

선택지를 줄여?

아하···!

땅·땅·땅.

"모두 정숙해 주십시오."

유레카.

있는 힘껏 나무망치를 두드려 좌중에 시선을 사로잡았다.

"괴물이라니. 지금 그게 이 이성과 합리의 성전에서 나올 말입니까? 브리소 의원, 당신도 도가 지나쳤습니다. 생도맹그의 자유만 소중하고 유가족들의 기분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십니까?"

그제야 의례적인 사죄가 오갔다.

그거면 족했다.

어차피 지금은 아젠다를 선점하기 위해 잠깐 연극을 했을 뿐이니까.

"자, 그럼 이번 생도맹그와의 협상은 오늘 회기에서 다뤄질 만큼 충분히 중요하지 않다는 귀중한 의견을 받아들여. 곧장 다음 안건으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그게 대체 무슨···!"

워워.

열불이 터지는 거야 충분히 이해하지만 잠깐만 기다려보라고, 브리소 아저씨.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할 줄 알고?

그래, 가령-.

"다음 안건은 이번 소비재 대란을 해결하기 위한 가격상한제 도입입니다."

이런 거라던가.

"그 무슨 개같은···?!"

벌떡.

이번에는 거꾸로 우익진영에서 우르르 자리에서 일어났다.

온건파, 왕당파 가리지 않고 다들 일어난 게 어지간히 급했나 보지?

"발언에 주의해주십시오. 아직 회의 도중입니다. 그렇게도 이 신성한 회의장을 모욕하고 싶으십니까?"

"모욕이고 자시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그렇습니다! 갑자기 가격상한제라니요!"

"이제 막 수상에 취임했으면서 너무 막무가내시잖소!"

뭐, 예상했던 그대로의 과격한 반응이다.

내가 반대 관점이라도 당연히 반대하긴 할 텐데.

"다들 제가 이럴 거 뻔히 알고 계셨으면서 왜들 이러십니까?"

극좌가 괜히 극좌일까.

그동안 지독한 놈이라고 혀를 내두를 때는 언제고 고작 이정도로 난리들이야.

"정 마음에 드시지 않는다면 차선으로서 모든 생산수단의 국유화라는 안건도 준비되어있습니다."

사실 나로선 더 좋지.

[···이봐.]

왜, 농담같이 들려?

"애초에 의회가 무엇을 위하여 존재하는 기관입니까?"

상석에서 청중들의 면면을 둘러보았다.

"유권자들의 편의를 도모하고 민의를 국정에 반영하기 위함이잖습니까. 그동안이야 무산자들은 유권자가 아니었으니까 소외되는 것도 어쩔 수 없다 쳐도, 이제 개헌을 했잖습니까. 저 거리를 떠도는 무산대중 모두가 우리의 유권자라고요."

"아니, 아무리 그렇다지만···!"

"다들 냉정하게 생각해보십시오. 이 파리에서 소비재와 사치재가 부족하다는 원성이 들린 지가 어느덧 1년이 훌쩍 넘어가고 있습니다. 모든 재화가 모여야 정상인 파리조차 이 모양이니 저 지방이야 두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그렇다면.

"다음 선거 때 저 무산자들이 당신들을 뽑아줄 것 같습니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이제서야 이 무시무시한 사실을 눈치채게 되어서-는 아닐 거다.

오히려 권력에 한해서만큼은 비상하게 머리가 돌아가는 사람들이니 개헌안이 끝내 통과되고야 말았을 때부터 참정권을 회복한 무산자들을 회유하기 위해서라면 이 소비재. 사치재 둘 중 하나는 잡아야 한다는 걸 눈치챘겠지.

이걸 제대로 잡으려면 결국 제 기득권이나 사유재산에 칼질을 해야 하니까 그냥 애써서 모른척한 것뿐.

"미리 말씀드리지만, 전 수상으로서의 임기 내내 이 문제를 물고 늘어질 작정입니다."

그래야 표몰이 하기 쉬우니까.

우린 이렇게나 사태 해결을 위해 애쓰고 있는데 저치들은 기득권에 눈이 돌아가서 이것도 안 된다, 저것도 안된다 한다!

이렇게 선전하면 참정권을 회복한 상퀼로트들이 압도적인 몰표를 때려 박아줄 테니까.

"그리고 제게는 감찰위원장으로서의 감찰권이 있고요."

3년 임기 아직 안 끝났단다?

뭐 수상으로 취임한 이상 대놓고 남 뒤를 캐고 다니긴 힘들겠지만 이게 있고 없고는 무게감부터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때마침 혁명재판소에 판결이 좀 밀려있었지요?"

구체적으로는 우리 판사님들이라던가 세리들이라던가 그치들이랑 붙어먹은 부르주아들이라던가 군납 비리한 군인들이라던가 등등.

오를레앙파가 건재하던 시절이야 죄다 기각해버리면 그만이었겠지만 이제 그 오를레앙파는 더는 없다.

앞으로는 군무 감찰위원회에서 기소하는 족족 다이렉트로 혁명재판소로 넘어갈 거고, 그럼 유무죄와 상관없이 상당히 골치 아파지겠지.

그나마 오를레앙공이야 나름 공작 가문이니까 함부로 기소하기 어려워서 주변 사람들부터 때리고 봤지만, 이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영수급도 기소해버릴 수 있다.

그럴 마음만 먹는다면, 말이야.

"다들 머리가 좋으신 분들이니 여기까지 말씀드렸으면 충분히 이해할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도대체 우리에게 뭘 원하는 거요."

콩도르세 후작이 눈살을 찌푸렸다.

아무래도 내가 협박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풀어보자는 겁니다."

전혀 아니다.

뭐, 겁을 좀 주긴 했지만 애초에 이러지 않았으면 내가 뭔 소리를 하건 듣는 시늉도 안 해줬을 거잖아.

"매듭을 풀어?"

"네. 가장 쉬운 사치재 대란부터 풀어볼까요?"

"···맙소사."

그제야 내 의도를 짐작한 콩도르세가 이마를 부여잡았다.

그를 중심으로 양옆에 사열하고 있던 우익진영들의 반응도 별다른 바 없었다.

요컨대.

"타협하시죠."

이번엔 내가 브리소를 흘겨보았다.

브리소는 다만 쓰게 웃을 뿐 답하지 않았다.

"사치재 대란을 해결하기 위한 가장 쉽고 빠른 방법이잖습니까. 다릅니까?"

"그러니까 저 물라토들에게 플랜테이션 농장을 넘기자?"

"예."

즉답.

한 우익의원이 기가 찬다는 듯이 반박했다.

"그럼 다른 식민지들은 어떻게 할 겁니까? 그들 모두 똑같은 요구를 하게 된다면, 도대체 그 모두를 어떻게 배상할 것이며 경제적 여파는 어떻게 감당하실 생각입니까?"

"뭐, 지금 우리 프랑스의 경제가 망가진 게 그것 때문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이번엔 다른 관점을 짚어보지요."

한마디로 줄여보자면.

"어차피 저 해적들이 우리가 식민지를 계속 거느리도록 둘 것 같습니까?"

솔직히 전쟁 터지고 나면 다 뺏기거나 아니면 연락선이 끊어질걸.

그냥 장식용이면 몰라도 수익이나 경제적 효과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말도 안되는 소리다.

무엇보다 런던이 밀어준 프로방스 백작은 일단 포로로 잡혔지만 저 쪽에겐 아직 아르투아 백작이라는 서브가 남아있다.

이런데 수천수만 명씩 죽어 나가는 전면전은 아니라도 그 흔한 식민지 전쟁이나 해상봉쇄조차 없을 거라 기대하는 게 바보지.

"저의 감찰관으로서 3년간의 임기가 왜 3년이었는지 떠올려주십시오. 우리는 장차 3년간 전쟁을 준비하기 위한 유예기간을 가진 겁니다. 한데 근 1년을 오를레앙, 그 반역자 탓에 허무하게 탕진하고야 말았으니 앞으로 더욱 전위적인 전시 태세에 나서야지 않겠습니까?"

차마 이에 반박할 수 없었는지 그 우익의원이 뻘쭘하게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털썩.

훌륭한 판단이었다.

이래도 물고 늘어지면 너 오를레앙파지!로 관심법하려고 했거든.

"우리 차라리 반대로 생각합시다."

애초에 식민지 같은 부도덕한 건 필요 없다고.

"우리는 장차 다가올 전쟁에 대비하던 중 우리와 같은 기치 아래에서 함께 싸우고자 하는 든든한 우방을 만난 것입니다. 어찌 기쁘지 않습니까?"

"글쎄, 고기 방패를 잘못 말한 건 아니오?"

콩도르세가 비아냥거렸고, 나는 정색하며 대꾸했다.

"아뇨, 십자군입니다.“

저 물라토들도 기독교인이라지?

그렇다면 무려 기독교인 노예해방을 위한 십자군이잖아.

신앙의 이름으로 기독교인을 노예로 부리는 사이비 이단들 조지자고 하면 구국의 성녀 잔 다르크께서도 기립박수 쳐주시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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