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재적소
"···이걸 진정 제가 받아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내 손에 쥐어진 장군 견장을 발견한 뒤마 대령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덜덜 떨면서도 한시도 시선을 떼지 못하는 것만 봐도 이것이 저 뒤마 대령에게 얼마나 절실하고 간절한지 알 수 있었다.
그야 장성이니까.
뭇 군인들의 꿈과 희망이자 모든 것이니까 당연하다면 당연한 반응이겠지만.
"지난 쿠데타 때도 말만 번드르르했지, 아무런 도움도 드리자 못했잖습니까. 그런데 제가 어찌-."
"예비장인께서 별을 달고 와야 혼인을 허락해주겠다고 하셨다 들었습니다."
아유, 진작에 이 이야기부터 하셨어야지.
하마터면 삼총사도 못 읽을 뻔했네.
난 그냥 출세욕인 줄 알았더니 그보다 더 급한 문제가 있었더라고.
이미 혼기가 꽉 찬 사람이 벌써 약혼을 올린 지가 만 3년째인데 이것 때문에 혼사도 못 치르고 있었으니 원.
"고작 연대장 나부랭이에겐 귀하신 딸을 맡길 수 없다고 했던가요?"
"···그건 어떻게 아셨습니까?"
"감찰위원장이잖습니까. 국가헌병대부터 민감 탐정들까지 이래저래 듣게 되는 귀동냥이 많거든요."
뭐, 사실은 쿠데타 끝난 다음에 푸셰 그놈이 알려준 거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오를레앙 공작이 쿠데타 꾸민 거 푸셰 그놈이 몰랐을 리가 없는데 지금은 일단 눈감아주자.
그 박쥐도 찔리는 게 있으니 당분간은 내가 뭘 물어보건 술술 답해줄 테니까.
협잡질이 가꾸어 나가는 음모의 박쥐 푸셰위키!
"그리고 공이라면 이제부터 세우시면 되잖습니까. 당장 뒤무리에 장군이 날아가고 윗자리에 빈틈이 숭숭 뚫린 지금이 아니면 언제 또 당신들에게 이런 절호의 기회가 돌아올까요? 괜히 사양 말고 받기나 하십시오."
"각하···."
그제야 뒤마 대령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장군 견장을 건네받았다.
양손으로 꼬옥 쥐고 한참을 기도하듯 서 있는 게 어지간히도 간절했던 모양이었다.
[그야 예비장인이 이 친구에게 고작 연대장이라고 했겠나?]
뭐 그렇지.
까놓고 말해서 연대장이 만만한 직위도 아니고 평범한 프랑스계 백인 연대장이 혼인을 허락해달라고 했으면 냉큼 받아들였을 거다.
지금 이 친구가 만 나이로 간신히 서른을 채웠으니 이 시대면 상당한 노총각인 거고, 심지어 그 나이에 사생아가 연대장을 달았으면 그야 예비장인도 헤벌쭉했겠지.
뭐 상대가 대단히 귀한 집안도 아니고 혁명 와중에 만났던 여관집 주인 딸이라고 했으니까.
하지만 이 친구는 물라토다.
갓 서른을 채운 나이에 연대장을 단 능력자라는 타이틀과 평범한 여관집 주인 딸이라는 쌍방의 사회적 지위를 단숨에 역전 시키고도 남을 패널티지.
애초에 이 시대에 혼기를 가득 채운 남녀가 약혼식을 치른 지 3년이나 지났는데도 아직 정식으로 혼례를 올리지 못했다는 점에서 예비장인이 트집 잡은 게 고작 군사 계급이 아님을 익히 짐작할 수 있다.
보나 마나 주제도 모르는 유인원이니 색욕에 미친 괴물이니 처가로부터 온갖 구박이란 구박은 다 들었겠지.
그나마 나름 귀족 집안 사생아라 약혼까지나마 할 수 있었던 거라고 봐야 할 거다.
[뭐, 그렇게 해서라도 혼약을 허락해준 게 어디인가. 다른 집안이었으면 아예 절연할지언정 절대로 혼인을 허락해주지 않았을 텐데.]
···흠,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나도 더 할 말은 없다만.
"이 은혜는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털썩.
뒤마 대령이 제자리에서 무릎 꿇었다.
"모쪼록, 각하께서 제게 이 견장을 달아주실 수 있겠습니까?"
"···괜찮으시겠습니까?"
국민군이 완성된 근대면 몰라도 아직 장교는 봉건적 기사 계급의 연장선이다.
나도 나름대로 수상에 취임했으니 장군 견장을 달아주지 못할 이유는 없겠지만, 나중에 라파예트한테 얼굴 들기가 곤란해질 텐데.
"부탁드립니다."
뭐, 그렇다면야.
뭐든지 삼세번이라는 말이 있는 한국도 아니고, 이대로 세 번씩 권하게 뒀다간 또 괜히 무시했다고 생각할 것 같아 성큼 다가가 예식 견장을 달아줬다.
참 향상하는 생각이지만 이 시대의 견장들은 하나같이 요란법석 하단 말이야.
귀족문화의 잔재라고 하면 나도 할 말은 없긴 한데, 금색 실도 아니고 진짜 금실로 견장 만들어주는 건 이해가 잘 안 간다.
이렇게 펑펑 쓰니까 매년 국가재정이 만성적자지.
"···흐."
하지만 오히려 그런 사치스러움의 절정이라 당사자는 만족, 또 만족 중.
제 어깨에 달린 예식 견장을 고개를 휙휙 돌려가며 살펴도 보고 거울 앞에 서서 관찰도 해보고 하는 게 꼭 원하던 어린이날 선물을 손에 넣은 꼬마를 보는 것 같다.
나도 어렸을 때 닌○도 스내치를 처음 받았을 때 딱 저랬지.
그립구만.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척.
뒤늦게 내가 보고 있었다는 걸 눈치챘는지 얼굴이 시뻘게진 뒤마 대령, 아니 장군이 절도있게 경례를 올렸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생도맹그인들을 설득하여 각하의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라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진솔하게 대해주십시오.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건 식민지 재건이 아니라 전쟁에 앞서 믿을 수 있는 우방을 확보하는 거니까요."
같은 물라토가 교섭을 위해 찾아왔다는 소식에 기뻐했을 아이티인들이 괜히 고압적인 모습에 실망했다간 역효과니까.
기대하지 않으면 실망도 없다는 말이 있듯이, 오히려 잘못하면 백인종 교섭단을 보내는 게 더 나은 결과가 될 수도 있다.
"모쪼록 권위적이라기보다는 대등하게, 그리고 무작정 선의를 가장하기보단 우리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상기시켜주십시오."
"명심하겠습니다, 각하."
척.
그걸로 끝이었다.
우리는 각자의 경례를 주고받았고, 마침내 꿈에도 그리던 별을 단 뒤마 장군은 멀리서도 어깨춤을 들썩거리는 게 보일 만큼 기뻐하며 방을 떠났다.
자, 그럼 오늘의 첫 번째 손님은 떠났고.
덜컥.
"정말로 뒤마 동지를 생도맹그에 보내실 겁니까?"
기다렸다는 듯이 다음 손님이 입장하시는군.
역시나 나폴레옹이라고 할까, 일부러 잠깐 나가 있으라고 했는데도 엿듣고 있었다는 걸 굳이 숨기려 하지 않는다.
로베스피에르가 저 천상으로 용솟음치는 금줄이라는 걸 알았으니 이참에 아예 격의 없는 군신 관계로 뿌리박아두려는 거다.
[간사한 놈.]
뭐, 뻔히 다 알면서 곁에 둔 거잖아?
오히려 타산적인 이유가 있다지만 저 친구가 우리한테 확실히 빌붙으려 든다면 나쁠 건 없지.
"이대로 저 생도맹그 혁명에 동참하려 들지도 모릅니다."
"그건 뒤마 동무가 물라토이기 때문인가?"
나폴레옹은 답하지 않았다.
정곡이로군.
"괜한 걱정하지 말고 이만 마음 놓게. 약혼자가 이 프랑스에서 기다리고 있는 친구가 설마 그러겠나?"
또 저쪽에서 우릴 배신하고 생도맹그에 붙는다고 썩 나쁠 건 없다.
기껏해야 식민지군 수준에서 놀던 땅에 유럽 본령에서 물라토라는 약점을 극복하고 연대장까지 올라간 사람이 합류해버린 거니까.
마이너리그도 아니고 동네 야구동호회 수준에서 놀던 동네에 갑자기 메이저리그 주전급 투수가 떨어진 거지.
살짝 분탕질이나 하면서 프랑스 식민지군 치워버리고 생도맹그 합병할 기회만 틈틈이 노리던 영국이나 스페인이나 아주 뜨거운 맛을 보게 될걸?
"그러니까 보나파르트 동무, 아니 우리 나폴레옹 동지는 괜히 마음 쓰지 말고 어서 파리 방위군을 손에 넣어주시게."
"물론입니다, 위원장 동지."
척.
그제야 나폴레옹은 만족한 듯 내게 경례를 올렸다.
어째 파리보다 보나파르트 동무에서 나폴레옹 동지로 승격한 걸 더 기뻐하는 것 같은데 기분 탓인가?
[착각일 리가 있나. 군인 주제에 전쟁보다 정치를 더 좋아하는 여우 같은 놈인데.]
뭐, 너무 그렇게 질색하지만 말라고.
나름 오를레앙 쿠데타 때도 마지막까지 같이 싸워준 친구잖아?
그럼 이제 진짜로 한배를 탄 거지.
때마침 뒤무리에도 혁명재판소로 치워버렸겠다, 아직 라파예트도 상경하지 않았겠다 파리를 손에 넣으려면 지금이 딱 적기다.
우리가 당장 적색 쿠데타를 벌일 의향이 없는 거랑 쿠데타를 벌일 실력도 없는 거랑은 명백하게 다르지.
그러니 뒤마 장군에게는 미안한 소리지만 잠깐 멀리 생도맹그까지 출장을 가줘야겠다.
라파예트도 제 입으로 마음대로 부려 먹으라고 했으니까 이제 와서 딴소리는 안 하겠지.
켈켈켈.
[역시 자네가 사라진 건 자네 조국의-더 말해야겠는가?]
입 닥쳐, 막시밀리앙.
***
방데.
"토지개혁이라."
하암-.
포로 아닌 포로 생활을 보내던 섭정 프로방스 백작이 무료하게 하품을 늘어놓았다.
"내가 알기로 자네들 의회가 이 소리를 꺼낸 게 벌써 2번째로 기억하고 있는데, 맞나?"
"···아마 맞을 겁니다."
"5년도 안 되어서 벌써 두 번씩 토지소유권을 갈아엎겠다니. 우리 농민들이 퍽이나 좋아하겠군."
정곡을 찔린 라파예트는 다만 쓴웃음을 지을 뿐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
그야 그 첫 번째 토지개혁의 결과물인 아시냐를 주도한 게 바로 그와 그의 동료들이었으니까.
이럴 거면 그냥 처음부터 잘하지 그랬냐고 꼬집는 프로방스 백작의 비아냥에 반박할 수도, 반박해서도 안 되었다.
'하여간 오를레앙 그 멍청한 놈은 일을 치를 거면 똑바로나 하던가. 왜 단두대로 끌려가서는 이 난리야.'
아무렴 저 토지개혁법을 입안하겠다고 지금 설치고 있는 놈이 누구인지야 불 보듯 뻔하잖은가?
막시밀리앙 드 로베스피에르.
틀림없이 그 역적 놈이다.
그리고 이 점이 프로방스 백작이 파리로 상경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없어졌음에도 계속 라파예트와 함께 지방을 떠도는 이유였다.
차라리 오를레앙 파가 아직 파리에 남아있던 시절이라면 모를까, 결국 쿠데타에 실패하고 목이 잘려버린 이상 지금 프로방스 백작이 파리로 상경해봐야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솔직히 저 루이 17세야 어차피 살아있는 인간 옥새나 다름없으니 저쪽에게도 나름대로 쓸모가 있겠지만 오를레앙공마저 목이 잘린 마당에 이제 와 프로방스 백작을 살려둘 필요는 없잖은가?
오히려 합법적이고 유일무이한 섭정인 프로방스 백작까지 치워버리고 나면 더욱 거리낌 없이 루이 17세를 이용할 수 있을 테니 더더욱 벼르고 있을 터.
'그리고 내가 파리로 상경하면 저 역도들이 나보고 도장 찍으라고 할 게 뻔하잖아. 차라리 왕당파인 라파예트를 살살 꼬드겨 보는 게 가능성이 높지 왜 내가 저 파렴치한 역도들 하라는 대로 도장이나 찍으면서 내 이름까지 더럽혀야 하지?'
물론 뭐, 프로방스 백작이 이렇게 한가하게 라파예트와 함께 지방 유람이나 하는 동안 파리에 붙잡힌 어린 조카나 형님 부부는 아주 피가 말라가고 있겠지만.
그거야 알바인가.
차라리 오를레앙처럼 독한 마음먹고 제 모가지를 자르던가, 이도 저도 못 하고 목숨만 부지하여 비굴하게 사는 길을 택하라고 누가 협박한 것도 아니잖은가.
지들이 선택한 길이니 그 책임도 알아서 지겠지.
그렇게 프로방스 백작이 따사로운 햇살을 맞으면서 오늘은 또 어떤 헛소리로 저 라파예트를 꼬셔볼까, 혼자 고민하고 있던 찰나.
똑똑.
"전하."
"···응?"
그의 임시 시종장이 상념을 깨웠다.
"한 무리의 농민들이 전하를 뵙고자 청하였나이다."
"설마 혁명이라는 소리인가?!"
"아니옵니다. 그저 궁금한 것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놀래라.
프로방스 백작은 남몰래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래, 혁명이면 뭐 어떻다는 말인가?
지금 그의 곁엔 라파예트도 있고 무엇보다 이 지방의 백성들은 누가 시키지 않았음에도 순진하게 어린 루이 17세를 위하여 의용군을 꾸렸다는 순박한 이들.
이들이 마침내 피를 보고자 다짐한다면 저 파리의 폭도들에 맞서 싸우려는 거지 프로방스 백작을 해치려고 들 리가 없었다.
"어서 들라 하시오."
하여, 프로방스 백작은 언제나처럼 가식적인 미소를 떠올렸다.
아무튼 그는 루이 17세를 지키기 위한 섭정이고, 저들은 갓난아이 국왕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겠다고 결의한 충성스러운 신민이니까.
저들이 무엇을 궁금해하건 잘 꼬드겨서 무력한 조카가 아니라 그에게 충성을 바치도록 유도한다면-.
"실례하옵니다만 전하, 정말로 토지를 균등하게 나눠주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런데 이건 또 뭔 개소리지.
"쉿, 이 친구야! 아무리 급해도 그렇지, 섭정께 무례하게 뭐 하는 짓거리인가!"
"아니 그럼 당연히 이것부터 여쭤야지! 이것보다 급한 게 어디 있다고!"
"떽! 이놈들아, 모든 건 다 순서가 정해져 있는 거다! 저 귀하신 분께서 노하시기라도 한다면 대체 어쩌려고!"
"아, 과인은 괜찮으니 너무 신경 쓸 것 없느니라."
그러니 그것보다도.
"조금만 더 자세히 설명해줄 수 있겠느냐?"
진짜로 이게 무슨 소리인지 전혀 짐작이 안 가는데.
도대체 왜, 누가, 어째서, 어떻게 소문을 퍼트린 건지 짐작 좀 하게 해줄 수 있겠니?
"그게, 다름이 아니라···."
"옳지, 옳지. 계속해보거라."
프로방스 백작이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하여 어떻게든 개략적인 맥락을 파악해 본 결과물은 이러했다.
1. 무려 이 나라의 섭정이신 프로방스 백작과 국민적인 영웅인 라파예트 후작께서 방데의 의용군을 몸소 지휘하겠다고 하니 다들 기쁘고 들뜬 마음에 밤잠도 이루지 못했다.
2.한데 아무리 기다려도 상경하거나 궐기하실 기미도 안 보이고, 주둔 기간만 길어지면서 주민들이 감당해야 할 부담만 커지니 다들 원망이 생겼다.
3. 그래서 마을 사람들끼리 도대체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하나, 하고 눈치만 살살 보고 있는데 신부님께서 이르시길 마침내 선하신 국왕께서 프랑스의 농민들을 위해 농지를 균등하게 선물해주시고자 한다고 하시지 않는가?
4. 저 탐욕스러운 파리의 부르주아지들이 토지균전법에 동의하였을 리가 없으니, 이는 필히 복되신 섭정 프로방스 백작께서 주도하신 일이다!
5. 섭정께서는 저 파리에서 보낸 탐관오리들을 제압하고 우리에게 토지를 나눠주기 위하여 군대를 이끌고 이 땅에 오셨던 것임이 틀림없다!!!
"그게 뭔 개-."
같은 소리야.
또다시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하여 그 한마디만큼은 참아낸 프로방스 백작이었다.
이게 대충 어떻게 된 오해인지야 슬슬 짐작이 가는데, 어찌 둘러대야 할지가 감도 잡히질 않았다.
법통파 의용군이고 뭐고 결국 저들도 군벌이잖은가.
지금 그가 말 한마디를 잘못해서 저들의 기대를 배신했다간 당장에 총구를 거꾸로 겨누려 들지도 모른다.
그럼 라파예트는 당연히 이들을 진압해버릴 것이고, 제 세력도 잃고 법통파에마저 버려진 프로방스 백작은 이번에야말로 언제 죽을지만 기다리는 처지가 될 터.
'어쩌지?'
프로방스 백작은 곁눈질로 라파예트의 눈치를 살폈다.
이래저래 입지가 불안정한 프로방스 백작을 대신해 라파예트가 적당히 둘러대서 저들을 돌려보내 주길 기대한 것이다.
끄덕.
그러자 라파예트는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유감스럽지만, 자네들의 말에는 한가지 오해가 있다네."
"오, 오해라고요?"
"그래. 국왕 폐하께서는 우리 프랑스의 농민들에게 균등하게 토지를 나눠주시려는 게 아니네. 자네들처럼 충용무쌍한 폐하의 군인들에게 둔전을 나눠주시려는 거지."
야!!!
프로방스 백작의 소리 없는 아우성에는 아랑곳없이 라파예트가 신이 나서 설명해나갔다.
"물론 이 또한 공짜는 아니네. 자네들의 복무기간 중 군인봉급에서 매달 이자가 차감될 거고, 또 5년간 3할의 소작을 바쳐야 온전히 자네들의 것이 될걸세."
"아이고, 그런 조건이라면야 거저 아니겠습니까?"
"암암. 원래 세율이 6할이었는데 뭘."
덧붙여 이는 왕실에 내는 세금만 계산한 거고 교회에 내야 하는 수확이 7∼8%, 영주에게 내야 하는 세금이 다시 지역에 따라 2∼20%로 최소 7할에서 최대 9할이다.
그러니까 앞서 아시냐처럼 부르주아지만 득을 보는 토지경매가 아닌 둔전이라는 전제가 붙었을지라도 토지균전법에 저런 조건이라면 혹하는 게 당연하긴 한데.
"자네들은 이 프랑스에서 누구보다 먼저 선하신 국왕 폐하를 위하여 궐기한 의로운 군인들이잖은가."
난 동의한 적 없어!
뭘 멋대로 이야기를 진행 중인지는 모르겠는데 난 진짜로 모르는 일이라고!!!
프로방스 백작의 절규에는 아랑곳없이 짐짓 근엄한 얼굴을 한 라파예트가 선언했다.
"이 라파예트와 여기 계신 섭정 전하의 명예를 걸고 약속하겠네. 이 방데의 충성스러운 농민들은 누구보다 먼저 이 하사품을 받게 될 것이며, 또 의용군으로서의 복무기간 또한 마땅히 인정받게 되리라고!"
"크흑, 폐하!"
"이렇게나 저희의 충정을 생각해주실 줄이야···!"
"그것도 모르고 저흰, 따흐흑!"
털썩.
마침내 군중을 이끌고 프로방스 백작을 찾아온 농민이 펑펑 눈물을 쏟으며 제자리에 무릎 꿇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섭정 전하 만세! 토지균전법 만세! 국왕 폐하 만만세!!!"""
"···하핫!"
이젠 진짜 모르겠다.
프로방스 백작은 자포자기하여 온몸으로 칭송을 받아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