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시장경제
파리조병창.
"이번엔 자네가 좀 과했던 것 같네."
쿠데타 직후 전쟁위원장에 취임한 라자르 카르노 동지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무엇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건 지야 알겠네. 자네가 둔전제라는 대안을 제시한 이상 이미 실패한 아시냐에 연연할 이유가 없지. 오히려 구정권의 실패를 단죄하여 바로잡는다는 상징성까지 챙길 수 있으니 어찌 좋지 아니한가? 다만-."
"···충분한 인내심을 가지고 저들을 설득했어야 한다는 이야기겠지. 나도 알고 있네."
하아-.
억지로나마 참으려고 했는데도 저절로 한숨이 새어 나왔다.
또, 또 이 소리인가.
머리로는 이 친구의 말이 맞다는걸 알면서도 마음이 영 따라주질 않는다.
아니 진짜로 내가 옳고 쟤네들이 틀렸는 걸 어쩌라고.
이게 정답이 정해지지 않은 논술형이라면 나도 그러겠는데 지금 이건 내 관점에선 정답이 정해진 주관식이다.
하다못해 내 지식이 전공자 수준이면 21세기식 경제학을 가르쳐보기라도 하겠는데 그것도 아니니 저쪽이 알기 쉽게 풀어서 설명해봐야 조목조목 반박이나 당할 테고.
정말이지 돌아버릴 것 같군.
차라리 오를레앙공이랑 원내에서 아무 생각 없이 말꼬리 잡으면서 치고받던 시절이 그리울 지경이다.
[뭐, 아무래도 자네의 천직은 철학자보단 소피스트니까.]
그거 칭찬해주는 거 맞지?
거참 진심이 묻어나오는 격려에 정말 고마워서 눈물이 다 나네.
"알고 있다면 당분간 그 이야기는 입에 담지도 말게."
라자르가 다시 한번 어렵게 입을 열었다.
우릴 걱정스러워하는 눈치였다.
"고작 그날 한 번의 언쟁으로 끝나면 그저 사소한 언쟁일 뿐일세. 하지만 자네는 지금 이 나라의 수상이고, 한 당파를 이끄는 몸이지. 그럼 이런 언쟁이 몇 번씩 반복되면 어찌 되겠는가?"
"···다들 날 독선에 찌든 독재자라고 하겠지."
"그래. 지금 자네 곁에 있는 사람들도 하나둘 자네를 떠나거나 달리 보게 될걸세. 그럼 자네가 아무리 옳은 생각, 옳은 말을 한다고 해도 무슨 소용이겠는가."
라자르가 잠시 망설이다가 덧붙였다.
"내 시에예스에게 사과하라고 하지는 않겠네. 그저 한동안 시에예스와 만날 일을 만들지 말게. 지금 내 말 무슨 소리인지 알 거라고 믿겠네."
브루투스 너마저도?!
···라고 놀랄 것도 없나.
당장 로베스피에르도 내 미래지식이 없었다면 반대파에 섰을 거라고 했으니 오히려 이게 이 시대 공화파들의 당연한 반응이라고 봐야겠지.
저놈들 입장에선 모든 종류의 통제는 절대군주나 할 압제인 거고, 심지어는 통화정책조차 어떠한 규제도 제어도 없는 완전한 무근본 자유화가 이루어져야 비로소 자유시장경제인 거다.
그 탁상공론 때문에 지금 프랑스 경제가 망했다고 백날 말해봐야 응, 독재자 꿈나무 색휘 소리나 할거고.
[그럼 차라리 중앙은행 역할을 하는 민간은행을 만들어버리는 건 어떤가?]
이열, 양키나 할 발상.
일개 민간금융단체에게 이 나라의 금융정책을 제멋대로 쥐락펴락할 특권을 부여하라고?
그럼 그놈이 바로 자본 귀족을 넘어선 자본 황제인 거고 민주주의라는 허물을 뒤집어쓴 금권 전제정이지 그게 별거냐.
차라리 무화폐 경제를 달리고 말지 그 꼴은 차마 못 봐주겠다.
"잘 알겠으니까 그 이야기는 이쯤에서 끝내지."
"···좋아, 알겠네."
뭐, 여하튼 당장은 저 공화주의 꼴통들 설득할 논리도 없고, 자신도 없으니 일단 물러나자.
이제 100 리브르 지폐 실제 가치가 10 리브르 이하로 꼬라박기 시작하면 슬슬 죽는 소리 내면서 제발 정부에서 개입해달라고 질질 짜겠지.
아닌가? 오히려 보이지 않는 손이 알아서 해결해줄 텐데 정부가 괜히 개입해서 아작난 거라고 더 아득바득 우기려나?
하, 이놈의 18세기 진짜.
"그래서 규격화는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가?"
"물론, 두말할 것도 없이 순조롭네."
라자르가 으스대며 답했다.
"아직 사업장별로 사용하는 도량형들이 저마다 조금씩 달라서 총체적인 규격화는 어렵겠지만, 우리 파리 조병창은 이미 완성단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 저 완벽한 직선과 직각을 그리고 있는 아름다운 작업장들을 보게. 그야말로 오로지 대량생산을 위해서만 만들어진 것 같지 않은가?"
확실히, 그 말대로였다.
물론 이제 막 이것저것 실험해보는 단계다 보니 중간중간 공정이 끊겨서 부품들을 옮겨주는 잡일꾼들이 있다던가 아직도 장인 개개인의 숙련도에 의존해야 하는 부품이 있다든가 하는 소소한 단점들이 눈에 띄긴 했는데, 그거야 첫술에 배부를 수가 있나.
일단 우리가 처음에 이야기했던 그대로 오직 볼트 하나, 너트 하나만 만드는 공장 노동자들이 있다는 점과 다시 이 완성품을 몇 번이고 해체하였다가 재조립할 수 있다는 걸 두 눈으로 확인한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공장식 생산을 위한 최소한의 분업화와 규격화가 어느 정도 진전되었다는 이야기였으니까.
뭐, 이것도 당장은 절대왕정 시절부터 최신식 설비와 최고의 인재들만 모여있었다는 파리 조병창이니까 가능한 거겠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파리조병창의 성공을 목격한 다른 조병창들도 따라 시키지 않아도 하나둘 따라 할 테니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자고로 어느 업계건 선두 주자를 완벽히 따라 하진 못해도 조금씩 흉내 내고 그 영향을 받아들이기 마련이니까.
"그래서 하루에 몇 정이나 생산할 수 있겠는가?"
"현 체제하에서는 일일 600정 정도일세. 교대 인원을 조금 더 늘리고 품질관리를 어느 정도 포기한다면 750, 800정까지는 아슬아슬하게 가능할 수도 있겠군."
600정이라.
그럼 휴일에도 계속 교대를 돌리면서 1년 내내 쉬지 않고 생산한다고 치면 이 파리 조병창 하나로 대략 20만 명 정도는 무장 시킬 수 있겠군.
물론 사시사철 언제나 일정한 페이스로 생산할 수 있는 증기기관이 아니라 수력과 인력으로 돌아가는 공장이니까 실제로는 한 반토막 정도로 계산해야겠지만.
"···충분하고도 넘치겠는데?"
"그렇지?"
당장 국민개병제를 도입하고 일차적으로 징병 될 예정인 병력이 30만 명인데 20만 정이라.
그때 우리가 전쟁 준비 기간으로 전제한 게 3년이었고, 지금이 벌써 1년이 지나가고 있으니 최대로 잡는다면 대략 60만 정에서 최소로 깎아도 30만 정가량.
물론 중간에 적국의 선제공격 같은 우발적인 위기가 벌어진다면 이보다 훨씬 적은 숫자로 적과 맞설 각오를 다져야겠지만 기존 병력이야 기존 총기로 해결한다고 치면 어마어마한 숫자임이 분명하다.
무엇보다 이쪽은 어차피 처음부터 장기전을 각오하고 있으니까 저쪽에서 요새나 참호에 꼬라박는 동안 열심히 부족한 만큼 소총을 생산해서 시민들을 무장시키면 될 테고.
뭐, 그 전에 먼저 이 60만명의 소총수를 운용하기 위한 화약부터 준비해야겠지만 말이야.
"그럼 이제 슬슬 재조립 공정은 품질관리 정도로 생략해도 될 것 같군."
어차피 이제부터는 슬슬 전시체제니까.
대충 올해 말에서 내년 초면 우리 감찰위원회가 기소할만한 탐관오리도 슬슬 동이 날 테니 그때부터는 꼼짝없이 국민에게도 국내 개혁안이나 전쟁 준비를 선전하는 수밖에 없다.
슬슬 작정하고 대량생산 체제로 각을 잡아야겠지.
그 대량생산을 위한 대금이 그놈의 아시냐라는건 좀 천불이 타오르지만 말이야.
"이러면 우리 노동자들의 사기도 조금은 오르겠지?"
"왜 아니겠나? 안 그래도 다들 왜 멀쩡한 소총을 다시 분해하고 재조립해야 하냐고 매일 같이 불평이 쏟아지던 참이었네. 교육용이라고 그렇게 설득해도 우리가 이제 와서 누구한테 교육이나 받을 짬이라고 아득바득 대드는데-어휴."
라자르가 진저리를 쳤다.
"그 망할 영감탱이, 결국 아무리 설득해도 듣는 체도 않더니 그냥 제 패거리들과 함께 이 조병창을 떠나버렸네. 그래서 한동안 온 작업체계가 먹통이 되고 하루에 100정도 생산이 안 되고 그랬지. 뭐, 결과적으로는 더 싸고 젊은 친구들이 빈자리를 메워줬으니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었지만 말이야."
"오호라, 그런 일이 있었단 말이지."
[그 재조립이라는 게 노익장의 장인정신을 건드렸나 보군.]
뭐, 그야 그렇겠지.
너튜브에서 가끔 본 인간문화재들의 깐깐함을 생각하면 오히려 중간에 이런 식의 반발이 없었던 게 더 이상하다.
그런 장인들 입장에선 제아무리 대량생산을 우선해야 하는 조병창이라지만 나름 모든 힘을 다해서 완성한 작품을 분해하고 남들이 아무렇게나 만들어낸 부품들과 뒤섞어버린다는 게 제 인생과 장인혼에 대한 모독으로 느껴진 거겠지.
하지만 그들이 떠나고 라자르가 제발 돌아와달라며 애걸해주기를 기대했을 장인들의 자존심과는 달리 늙고 비싼 장인들이 떠나고 값싸고 젊은 노동자들이 빈자리를 채워버렸다는 라자르의 설명대로, 그런 장인혼이 대접받을 시대는 이미 저물어가고 있다.
바야흐로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본래라면 아직은 가깝고도 먼 이야기였을 테지만 지금 이 자리엔 내가 있고, 그럼 머지않아 이 프랑스 전역에서 늙고 비싼 장인들은 차차 젊고 값싼 노동자들로 대체되게 되겠지.
"그럼 이참에 이 이야기를 널리 퍼트려서 교훈으로 삼는 것 어떤가."
그리고 그들의 한탄과 눈물 위에서 새로운 시대의 주인공들이 태어날 것이다.
바로 프롤레타리아트라는 대지의 저주받은 영혼들이.
"우리의 대량생산공정이 마음에 안 든다고 괜히 공장에서 고집 부려봐야 더 젊고 값싼 이들에게 손쉽게 대체될 뿐이라고 말이야."
"···어, 그랬다간 파리의 장인들이 우릴 죽이러 올 거라는 생각은 안 해봤나?"
"상관없네. 지금 우린 장인들에게 경고하려고 하는 게 아니야. 산업 부르주아지들에게 우리의 방식을 받아들이면 늙고 비싼 장인 따위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는 걸 알려주려는 거지."
어차피 현시점에서 정부 주도 산업화는 불가능하다.
고작 중앙은행도 압제라고 시장 왜곡이라고 염병을 하는데 내가 어서 공장 세우라고 악을악을 써봐야 어디서 개가 짖나-하겠지.
하지만 부르주아지가 알아서 사업장을 고치도록 유도한다면?
그 결과 장인들이 피눈물을 쏟건 말건 자유시장경제에 의한 자연적인 도태고 보이지 않는 손의 개입이니 아무도 문제 삼지 않을 거다.
아니, 오히려 늙고 병든 시대 부적응자들이 괜히 인류의 혁신을 훼방 놓고 있다고 비웃기나 하겠지.
나로서는 나쁠 이유가 없다.
돈에 미친 부르주아지와 일자리를 갈망하는 상퀼로트의 지지를 등에 업고서 장인들의 반발을 박살 내줄 테니까.
"이제부터 우리가 강조해야 할 건 기계화, 분업화, 규격화 이 세 가지의 삼위일체가 얼마나 혁신적인 생산력 증대를 야기하는지 과시하는걸세. 또 이를 추구하는 데에 얼마나 늙고 병든 장인들이 방해되는지도 말이야. 그래, 늙은이들이 젊은이들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다는 식으로 세대 갈등을 부추기면 더욱더 효과적이겠군."
"그러니까 저 폭도들이 우리의 발견을 보급하는데 앞장서도록 부추기자?"
"그야 물론이지. 지금 거리에 나와서 시끄럽게 떠드는 폭도 중 대다수는 젊고 집도 일자리도 없는 친구들일세. 저 늙은이들이 그들 몫의 일자리를 독차지하고 경제침체에 이바지하고 있다는 식으로 선전하면 단숨에 폭발적인 호응이 뒤따를 거야. 그러고 나면 우린 더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충분하네."
"쓰읍, 그럴싸한 이야기이긴 한데···."
당장 라자르 카르노, 이 친구도 너무 과격하다고 싫어하면서도 은근히 솔깃해하고 있는게 내 제안이 무엇보다 친 부르주아지적이라는 산증거다.
까놓고 산업 부르주아지들도 이 하이퍼 인플레이션 와중에 인건비도 아끼면서 경영권에 사사건건 간섭하려 드는 장인들 내치고 사업장을 유지할 대안이 있다는데 반대할 이유가 없잖아?
보나 마나 나라를 말아먹는 매국노니, 귀족들과 별다른 바 없는 적폐니, 장인들을 향해 별의별 소리가 다 튀어나올 거다.
우리 급진당은 그때 가서 슬며시 장인들 손을 들어주면 된다.
그리고 경제가 박살 난 건 장인들의 탐욕 때문이 아니라 새로운 토지개혁안이 입법된 뒤에도 아시냐 같은 말도 안 되는 토지채권을 아직도 물고 늘어지고 있는 무능한 우파 의원들과 자유시장경제만 맹신하는 부르주아지의 멍청함 탓이라고 선동해야지.
그럼 제 목숨과 일자리가 걸린 장인들은 열렬히 옳소옳소해줄거다.
안 그래도 씹창난 경제에 세대 갈등에 계급 갈등, 좌우 갈등까지 다 스까버렸으니 아주 화끈하게 핵융합 반응이 일어나겠군.
[···그, 결국 자네가 폭동을 유도하겠다는 소리 아닌가?]
그렇지만 내가 시장을 통제하겠다고 한 건 아니잖아?
오히려 자유시장경제하에서의 건전한 상호경쟁과 보다 효율적인 생산공정 보급을 촉진하자고 제안했을 뿐이다.
그럼 다들 이번 중앙은행 사건으로 내가 경제문제에 관심이 많다는걸 알게 되었을테니 마침내 통제라는 제 아집을 꺾고 둔전 때처럼 별도의 방안을 제시한거라고 생각하겠지.
노동법도 근로안전법도 없는 이 시대에 비싸고 고집센 장인들 대신 값싸고 자존감도 낮은 노동자들을 대량고용하기 시작하면 단기간에 엄청난 폭리를 취하는게 가능할거고.
그 와중에 저쪽에서 고작 갈라치기도 감당 못하고 폭도들에게 맞아 뒈지면 자연사일 뿐이다.
자유시장경제를 그렇게들 좋아하시니 하이퍼인플레이션 상황에서의 정리해고와 일자리 대란이라는 시장 논리로 골로가도 설마 불평하진 않으시겠지.
"이보게, 대체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가. 우린 그저 이 전대미문의 경제난을 극복하기 위하여 도시의 상대우위를 지탱할 혁신적인 미래산업과 번영을 계도하였을 뿐이네. 아닌가?"
라자르는 답하지 않았다.
그의 어지러이 흔들리는 동공에는 배덕감과 기대감만이 가득했다.
***
나폴레옹 보나파트르 관저.
"참 오래도 걸렸군."
그 금박에 아로새겨진 이름을 소중히 쓰다듬으며 나폴레옹은 상념에 잠겼다.
생각했던 것보다는 짧았고, 또 생각했던 것보다는 길었다.
그가 가족들과 사실상의 절연을 선언하고 무작정 파리로 상경했던 것이 불과 1년.
파리의 상퀼로트들에게 거렁뱅이 촌놈이나 당하던 시절에서 자타공인 저 로베스피에르의 오른팔로 우뚝 서기까지 고작 1년이었다.
하지만 그의 지난 24년 간 인생을 돌이켜보면 어찌 이 인고의 세월이 짧았다고 하겠는가?
프랑스 사회에서 철저히 비주류 일 수밖에 없는 코르시카 계로 태어나, 그 코르시카에서도 고국 코르시카의 독립을 포기하고 프랑스에 전향한 매국노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썩 좋은 시선을 받지는 못했다.
사관학교에 합격한 뒤의 학창 생활이야 온통 괴롭힘과 고독함만이 가득했고, 학교에 다니는 와중 갑작스레 아버지가 거액의 빚을 진채 암으로 돌아가시면서 하숙비도 제때 내지 못했었다.
그 인고의 24년을 넘어 마침내 번듯하게 제 관저에 이름을 내걸 수 있는 자리에 올랐다.
새삼 전율이 일 수밖에 없었다.
"내게 파리를 손에 넣으라고 하셨던가."
그럼 당연히 기대에 부응해야 하고말고.
이미 나폴레옹의 머릿속에서 막시밀리앙 드 로베스피에르란 성공과 출세를 보장해주는 황금줄, 아니 빛이나 다름없었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라는 사내에게 약속된 젖과 꿀이 흐르는 양지바른 가나안 땅으로 인도할 빛.
무슨 수를 써서라도 놓아서도, 멀어져서도 안 되는 생명줄.
한데 어찌 이 소중한 금덩이를 놓칠 수 있으랴?
나폴레옹이 무슨 수를 써서라도 파리 치안 병력을 손에 넣고야 말겠다며 새삼스레 각오를 다지던 찰나.
똑똑.
"각하."
때마침 그의 부관이 가벼운 노크를 한 뒤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와 사관학교 시절부터 면식이 있던 브리엔이라는 친우였다.
"뮈라는 어디 갔나?"
"시가지에 순찰을 나가겠다고 했습니다."
"순찰은 무슨, 농땡이겠지."
믿을 사람을 믿어야지 뮈라를 어떻게 믿으라는 말인가.
브리엔 또한 차마 반박하지 못하고 쓴웃음을 지으며 그에게 서류를 건넸다.
"다 읽고 소각하시면 됩니다."
"그래."
설명이라면 그걸로 족했다.
아무렴 소각하라는 게 무슨 소리겠는가?
결국 증거를 남겨서는 안 된다는 소리고, 정식 명령계통이 아닌 밀명이라는 소리다.
'막시밀리앙 동지께서도 참 열심히 부려 먹으려 하신단 말이야.'
뭐, 그렇게 성실하니까 그도 덩달아 덕을 본 거니 불평할 일도 아니지만.
나폴레옹은 개봉 흔적이 없다는 점, 그리고 그의 부관이 자리를 비웠음을 확인한 즉시 내용물을 확인했고.
「조속히 현 파리 치안 병력 내 유산계급, 시민계급, 무산계급 인사를 각기 분류할 것.」
"할렐루야."
한눈에 보아도 또 한차례의 고속 승진이 예고된 내용물에 탄성을 금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