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봉기
쨍그랑!
"내 일자리 돌려놔라, 이 무능한 놈들아!"
···음, 새벽 모닝콜이라고 하기엔 좀 그런데.
요즘 들어 자꾸 돌이 날아드는 게 뒤플레 일가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슬슬 하숙집을 옮겨야 할지도 모르겠다.
"아니 내가 돈을 줬으면 물건은 팔아줘야지! 그게 사회적인 약속이잖아!"
"저 거들먹거리는 장인들은 꼬박꼬박 구권 리브르 챙겨주면서 왜 우리만 아시냐로 퉁치려는건데?!"
"사장 놈은 동일노동 동일대우를 보장하라!"
"우리가 월급을 똑같이 달라고 한 것도 아니잖아? 하다못해 아시냐로 통일하건 리브르로 통일하건 하자고!"
새벽같이 눈을 뜨자마자 창 너머로 일정한 구호도 없이 고래고래 소리만 지르고 있는 폭도들과 안녕이라니.
환상적이군.
내가 이렇게 되기를 바랬던 것도 사실이지만 오를레앙 쿠데타가 끝나고 또다시 적기가 휘날리기까지 불과 반년도 필요하지 않았다는 점에는 감탄을 금할 수 없다.
그야말로 자낳괴들의 승리라고 해야 하나.
저 노동자들이 원망해야 할 건 아무리 생각해도 쓰레기 아시냐나 주고 퉁치려고 했던 부르주아지일 텐데 끝내 사방에서 적기가 휘날리는 와중에도 다들 전혀 엉뚱하게 장인들만 원망하고 있다.
그것도 무려 다들 휴지 조각이나 다름없는 아시냐나 받고 허드렛일하는 와중에 꼬박꼬박 매달 구권 리브르를 받아 간 죄였다.
내가 기껏해야 세대 갈등, 일자리 갈등 정도나 생각하고 있을 때 우리의 자낳괴들은 그 사이에 아시냐를 끼워 넣어다가 「구권 리브르를 받아 갈 수 있는 양질의 일자리를 독점한 늙다리 장인들」이라는 혐오 프레임을 만들어낸 것이다.
한마디로 저 깐깐한 늙은이들이 모든 기술과 요직을 독점하고 있으니까 어쩔 수 없이 우리 사장님들도 남아도는 아시냐를 젊은 노동자들에게 지급할 수밖에 없었다는 책임회피인데-기가 막히군.
실제로 사사건건 경영권에 개입하는 꼬장꼬장한 장인들 등살에 한 푼이 아쉬운 구권 리브르는 장인들에게 몰아준 사업장들도 없지는 않을 것 같아서 더 감탄스럽다.
보나 마나 일부러 서로 쉽게 비교할 수 있게 아시냐 지급은 각기 따로, 리브르는 공개적으로 지급하거나 했겠지.
평소 장인들만 싸고돌면서 우리 회사의 기둥이니, -저 일용직들과는 달리-결코 대체될 수 없는 존재니 뭐니 하면서 차별의식을 부추겼을 테고.
역시 자낳괴들이야.
하나를 가르쳐주면 열을 창조해내지.
[그러니까 저 많은 폭도가 죄다 차별대우에 분노한 노동자들이란 말인가? ···무시무시하군.]
그건 또 아닐걸?
아무리 아시냐를 악용하여 노동자들을 1달간 공짜나 다름없는 방법으로 굴릴 수 있게 되었다지만 여전히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장인들이 더 많을 거다.
아직 정밀작업일수록 기계보단 사람의 손놀림에 의존하는 만큼 장인 한 사람과 그 주변 사람들만 이직해도 대형사업장이 마비될 수 있는 시대니까.
장인들을 노동자로 대체했다고 해봐야 굉장히 사용처가 제한적일 거고, 새로 노동자들을 고용한 게 아니라 그냥 정리해고만 하고 끝나거나 아예 하이퍼 인플레이션을 감당하지 못해서 폐업해버린 사업장들도 흔하겠지.
한마디로, 지금 저 폭도들은 노동자+실업자+건달+그 외 기타 등등이 다 합쳐진 반체제 분자의 무리일 뿐이다.
아마 아시냐라던가 이것저것 현 정부의 경제정책에 항의하려고 거리로 뛰쳐나온 사람들이 더 많을걸.
""""국왕을 죽여라! 로베스피에르를 죽여라!!!"""
···어이쿠, 시작됐나.
뭐, 현 정부에 유감이 많다면 당연히 그 정점에 우뚝 선 우리에게도 유감이 많은 게 당연하겠지만.
오늘만큼은 출근길에 맞아 죽지 않도록 염치없지만, 마차를 빌려 타도록 하자.
그나마 다행인 건 아직까진 폭도들이 수상관저보단 장인 거주지구에 몰려가고 있다는 점.
그리고 장인들 또한 자체적으로 자경대를 꾸리고 있는 듯 보인다는 점이다.
그럼 당장은 치안대가 어떻게든 막아줄 수 있겠지.
이미 수차례 폭도들에게 패배한 치안대지만 이번엔 장인 자경대가 있다.
만일 저들을 나폴레옹이 지휘한다면 이번에야말로 저 치안 병력이 폭동을 성공적으로 진압하고 파리의 질서를 바로 세울 수 있을지도 모르지.
[어차피 진압할 생각도 없으면서 내숭은.]
오우, 프랑스말 너무 어려워효.
그리고 내가 저 폭동을 진압할 생각은 없다지만 그렇다고 저 폭도들을 돕겠다는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야 당연하지.
지금 여기서 내가 폭도들을 도와 현 정부를 전복시키면 그게 바로 친위쿠데타니까.
내가 원하는 건 어디까지나 정반합이고, 이를 위한 무대는 비로소 완성되었다.
자, 그러니까 언제나처럼 목숨을 걸고 토의를 해보자.
이번에도 우리의 정과 반이 합명제를 완성하지 못한다면 그때야말로 다 같이 단두대로 끌려가면 되겠지.
***
타타탕!
"그럼, 개회를 선언하겠습니다."
망치 소리 대신에 저 멀리에서 들려오는 총소리와 함께 개회라니.
환상적이다.
그나마 자경대들과 치안대가 협력하면서 바리케이드가 설치되고 적기를 휘두르는 폭도들이 의회나 왕궁까지 밀고 들어오는 건 성공적으로 저지해냈지만-딱 거기까지.
벌써 몇 시간째 총성은 잦아들 생각이 없고, 가끔은 대포 소리나 건물이 무너지는 소리도 심심치 않게 들려오고 있다.
파리에 한정해서라지만 사실상 내전 상태라고 봐야겠지.
열심히 적기 휘둘러야 할 친구들은 다들 여기 모여있는데 적기를 휘두르는 폭도들이 의회까지 쳐들어올 판이라니.
벌떡.
"막시밀리앙 드 로베스피에르 수상 이하 내각의 총사퇴를 요구하겠습니다."
역시 시작부터 아주 독기를 품고 덤벼드는군.
"이유를 물어도 되겠습니까?"
"이유? 지금 이유가 필요합니까? 이번 두 번째 토지개혁을 처음 제안하고 주도한 건 바로 당신이었습니다. 그 결과 아시냐가 어떻게 되었는지 제가 이제 와서 더 설명해야 합니까?"
저 친구 이름이-뭐였더라.
[나도 잘 모르겠군.]
그렇다면 무명의 의원이라는 소리인가?
혹시 이 친구 혼자서 급발진한 건가, 싶어서 재빠르게 주변을 살펴보았지만 그런 기미는 전혀 없다.
오히려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눈치들이지.
[···이거 위험하겠는데.]
"총체적인 경제 실패, 여야협치를 거부하는 독선, 무모하고 급진적인 토지개혁으로 인한 정부 신뢰도 붕괴. 오히려 물러나야 할 이유라면 우리보다 당신이 더 잘 알지 않을까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벌떡.
또 한 사람 무명의 의원이 기다렸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역시나, 이 친구들 처음부터 짜고 왔군.
"설령 당신의 주장대로 아시냐가 설계상에 결함을 끌어안고 있다고 한들 그게 토지 본위를 무너트려도 되는 변명이 될 수는 없잖습니까."
"차라리 화폐개혁이 우선되었어야만 합니다. 이 간단한 순서 하나 맞추지 못했으면서 무슨 수상 노릇을 하겠다는 겁니까!"
"당신이 그놈의 토지개혁 타령만 안 했어도 이 난리는 안 났을 거야!"
"지금 파리를 피바다로 만들어놓고서 뻔뻔하기도 하시지!"
그리고 그 다음, 또 그 다음.
"""막시밀리앙 드 로베스피에르는 지금 당장 사퇴하시오!"""
마침내는 온 야권이 한목소리로 내게 퇴진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인민재판이었다.
뭐, 그 주체가 우리 급진당이 아니라 저 고상한 양반들이라는 게 참 웃기긴 했는데.
또 막상 아주 틀린 말도 아니란 말이야.
내가 지금 수상이니까 이번 사태의 책임을 져야 하는 것도 맞지.
맞긴 한데.
"지금 이게 무슨-!"
타앙!
평소답지 않게 얼굴이 시뻘개진 카미유가 뭐라고 반박하기에 앞서서 마라가 천장을 향해 권총을 갈겨버렸다.
저마다 경쟁하듯이 사퇴를 부르짖고 있던 원내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진 건 그와 동시였다.
"아, 웬 반동 놈들이 원내로 침투하려 들길래 그만."
미안하게 됐수다.
뻔한 너스레와 함께 마라는 그에게 다가온 경비들에게 아직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고 있는 권총을 건네고 원내에서 퇴장했다.
이번엔 꽤나 오랫동안 유치장에 갇혀있겠군.
그런다고 눈 하나 까딱할 친구도 아니지만 말이야.
"좋아요, 사퇴하겠습니다."
우선 분위기가 다시 달아오르기 전에 마라가 벌어준 귀중한 정적을 틈타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다.
양손바닥이 보이도록 양팔을 눈썹 위까지 슬며시 들어올리는 알기 쉬운 제스쳐였다.
"하지만 사퇴하기에 앞서서 한 가지만 듣고 떠나겠습니다."
"···무엇이오?"
콩도르세 후작이 눈살을 찌푸렸다.
"뻔하잖습니까. 대책입니다. 그래서 이번 위기를 어떻게 해결할 예정인지, 또 누가 책임을 지고 지휘할 예정인지 정도는 저도 전임 수상으로서 귀띔을 들을 자격이 있지 않을까요?"
"하! 내쫓기는 사람이 별게 다 궁금하시군."
한 무명 의원이 혀를 빼죽 내밀어가며 조롱했다.
흠, 벌써 의기양양하신 게 참 보기 좋긴 한데.
"다음 달 9월에 의원선거가 있다는걸 잊으신 건 아니겠지요."
무려 보통선거제 개헌 이후 최초의 선거다.
"다음 달 선거가 끝난 다음 혹시 이 자리에 누가 있을지 궁금하시지는 않습니까?"
과연 내가 있을까, 너희들 중 한 사람이 있을까.
솔직히 전자일걸?
설령 모든 책임을 내게 떠넘기고 이번 폭동을 무마시킨다고 해봐야 자유시장경제를 극단적으로 신봉하는 이 친구들이 할 수 있는 대책은 극히 한정되어있다.
뭐 나름대로는 자유주의에 입각한 이런저런 개혁안이나 대책을 내놓기는 하겠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 과연 더욱 시장을 굳게 믿으면 된다는 게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그럴 리가 없지.]
장담하건대 지금부터 저놈들하고 싶은 대로 하게 두면 다음 달 선거에서 우리 급진당은 가볍게 개헌선을 넘길 수 있을 거다.
원래 뭐든지 고치는 건 참 어려운데, 박살 내는 건 참 쉽거든.
"설마 이번 폭동이 끝나고 나면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 순진하게 믿고 계신 건 아니겠지요. 이번 경제난이 끝나기 전까지 폭동은 몇 차례고 반복될 것이며, 우리 급진당은 민중의 대전사로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태 종식을 위하여 최선을 다할 작정입니다."
"···로베스피에르, 당신 지금 현직 수상으로서 친위쿠데타를 도모하겠다는 걸 너무 당당하게 말하고 있다는 점 자각하고 있습니까?"
"현직 수상이라니요. 지금 제게 사퇴하라고 권하셨잖습니까. 저는 그 권유를 받아들였고요. 제가 임기 도중 벌어진 경제난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듯이 혹시 여러분께서도 같은 상황에 부닥치게 될 경우."
잠시 숨을 고르고.
"저도 똑.같.이 여러분께 사임을 권유하고, 책임감 있게 물러나 주실 것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오늘처럼 여러분의 실각을 강력하게 요구할 민의에 부응할 수 있도록, 말이지요."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물론 저쪽이야 자유시장경제만으로 능히 이번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거라고 아직도 굳게 믿고 있겠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다음 선거까지 1달 만에 이 경제난을 극복할 자신은 없을 거다.
그놈의 제한선거권이라는 업보 때문에 나라 팔아도 급진당 찍을 기세인 무산대중을 상대로 인기몰이해서 다음 선거에서 이겨볼 자신은 더더욱 없을 것이고.
하다못해 쿠데타가 끝나고 1, 2년 이상 지난 시점이라면 모르겠지만 아직 로베스피에르 신화가 대중의 머리에서 잊히려면 좀 유효기간이 남았다.
당장 지금 밖에서 로베스피에르의 죽음을 연호하고 있는 폭도들에 맞서 치안대와 협력하고 있는 자경단 중에 생쥐스트 같은 케이스가 단 한 사람도 없을까?
"···다들 그쯤 하게."
결국 보다 못한 콩도르세 후작이 천천히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사격 중지 신호였다.
"좋아, 그럼 이번엔 반대로 묻겠네. 자네들은 대안이 있나? 이번 경제난을 극복할 대책 말이야."
"그야 물론입니다."
자신감 있게 고개를 끄덕이자마자 야권의 면면이 썩어들어가기 시작했다.
보나 마나 빨갱이답게 또 자유시장을 통제하겠다는 이야기일 거라 짐작한 거겠지.
뭐, 아주 틀린 말은 아니긴 한데.
"다들 동인도 주식회사가 어떻게 운영되는지 즈음은 알고 계실 겁니다."
이번에는 좀 다르다.
저쪽에 괜한 선입견을 주지 않기 위해 우리의 반드시 부패하는 자, 당통에게 바통을 넘겼다.
그동안 좌우 양극단을 잇는 가교역으로 활동해왔으니 이 친구가 메신저 노릇을 하면 그나마 열심히 들어주긴 하겠지.
그만큼 좌우에 번갈아 가며 이것저것 받아 처먹기도 했으니까.
[커흠!]
"갑자기 동인도회사가 왜 나오는가?"
"그 체제를 일부 차용해서 은행들의 은행을 만들 계획이니까요."
"은행들의 은행?"
당초 내가 계획한 건 한국은행처럼 은행법으로 만들어진 무자본 특수법인이었다.
말만 좋아서 독립기관이지 심심하면 정부에게 견제당하고 관리당하는 기재부 남대문 출장소.
원래는 어차피 엉망진창인 거 싹 다 국유화하고 무화폐경제 달릴까도 생각했으니 이것도 많이 양보한 거지.
그런데 우리 집주인 놈이 아무리 혀를 잘 털어도 합법적인 방법으로는 도저히 저 친구들을 설득할 수가 없겠더라고.
일단 우리 집주인 놈도 협력해주지 않을 것이고.
[그야 당연하지. 내가 행정독재 따위를 옹호할 사람으로 보이나?]
하이고, 어련하시겠어요.
"대체적인 방법론은 앞서 아시냐와 다르지 않습니다. 이 프랑스 각지의 농장, 공장, 토지를 담보로 신권을 발행합니다. 단, 앞선 아시냐와는 달리 신설된 은행이 발권량을 엄격히 통제하며 유통량을 파악하여 위조 여부를 늘상 감독합니다.
물론 국채인수 또한 일정액 이상이 될 수 없도록 엄격히 제한하며, 이를 통해 시장에서 신권의 가치가 늘상 일정한 수준으로 유지될 수 있도록 합니다."
그래서 내가 마지못해 내놓은 타협안이 렌텐마르크와 양키식 연방준비제도를 적절히 뒤섞은 키메라.
저 자유시장주의자들도 마지못해서 고려 정도는 해볼 수 있는 선을 찾느라고 도중에 내 속이 몇 번이 뒤집혔는지도 모르겠다.
뭐, 어차피 렌텐마르크야 원래 계획대로 진행되었어도 그대로 도입할 예정이었으니 상관없지만 말이야.
왜 스파르타쿠스단이 실패했을까, 를 공부하다가 알게 된 이 렌텐마르크는 바이마르 공화국의 화폐로, 패전 후 금태환이 불가능해진 독일이 하이퍼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도입한 토지 본위 화폐다.
여기까지만 보면 아시냐와 별다른 바 없으나, 아시냐와 차별화된 점은 다름 아닌 발권량이 정해져 있다는 희소성.
즉, 최소한 마구잡이로 윤전기를 돌려서 화폐가치가 폭락하지는 않을 거라는 믿음이었다.
아무나 위조하고 또 정부 기관에서조차 아무 때나 찍어내는 아시냐는 절대로 흉내 낼 수 없는 차별점이지.
물론 임시조치고 조만간 금태환이건 은태환이건 해야겠지만, 그건 전략 나폴레옹이 해결해줄 일이지 의회에서 입턴다고 될 일은 아니다.
"실질적인 운영은 출자금을 제공한 민간은행과 파리를 포함하여 전 프랑스의 자치 코뮌들이 공조하는 방식이 될 겁니다. 물론 너무나 의결 과정이 복잡해지는 걸 막기 위해 이사회와 의장을 선출하고 정해진 임기에 따라 계속하여 교체되도록 해야겠지요. 그렇지 않으면 자칫 독재로 흐를 위험이 있으니까요."
"···설명만 들어서는 어느 정도 민간 주도로 운영하겠다는 것처럼 들리는데."
"정확합니다. 장차 이 은행들의 은행은 어떠한 외압에도 굴하지 않는 오롯이 자유시장경제를 수호하고 개별 주주와 코뮌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금융기관으로서 운영되게 될 것입니다."
···아, 뭐 같다.
설명을 들으면 들을수록 저게 내 머리에서 나왔다는 게 울화가 치민다.
그래도 어떻게든 코뮌들까지 끼워 넣은 걸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이걸 진짜.
[그렇지만 이렇게 하지 않았으면 다들 절대로 들어주지 않았겠지.]
그래서 어쩔 수 없었다는 걸 아니까 더 짜증이 나는 거라고!
아아악!!!
"다 좋은데, 두 가지만 더 묻지."
콩도르세 후작이 당통이 아니라 내 쪽을 슬며시 돌아보았다.
"출자금을 받겠다는 건 알겠네. 아시냐를 어느 정도 계승하겠다는 것도 알겠고. 그런데 아시냐로 발생한 채무는 어떻게 할 작정인가?"
그야 당연히.
"최초 발행한 12억 리브르 어치. 딱 그것만 남기겠습니다."
사방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생각했던 것만큼은 심각하지 않았다.
다들 개나 소나 위조하고 있다는걸 알고 있으니 여기까진 과격하긴 해도 어쩔 수 없는 조치라는 걸 인정한 것이다.
"···좋아, 그렇다면 두 번째."
콩도르세 후작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래서 그 담보로 쓸 토지와 농장은 어디에서 구할 생각인가? 토지개혁까지 예정된 참에 무슨 국유지가 남았다고-."
"왜 국유지를 담보로 씁니까?"
애초에 얜 정부 부처가 아닌데.
"뭐?"
"말했잖습니까. 민간은행과 자치 코뮌들로부터 출자금을 받아 이사회를 운영할 거라고."
그렇다면 당연히.
"주주님들께서 어련히 준비하셔야지요."
척.
프랑스의 금융가, 공장주, 사업가, 관료, 지주들을 향해 당당히 삿대질을 날렸다.
직후 원내에서 한창 폭동 와중인 파리보다 더 큰 소음이 터져 나온 건 물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