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서 있는 폭동
여긴 대체 뭐 하는 지옥이지.
"아시냐, 너 저주받을 이름이여! 인민의 이름으로 너에게 화형을 선고하노라!"
"투표합시다, 여러분! 모두 투표합시다! 저 금권귀족들로부터 되찾은 우리의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러 갑시다!"
"독재자 로베스피에르를 끌어내리자!"
"국왕에 죽음 있으라! 왕국에 저주 있으라!"
"주여, 선하신 소년왕께 자비를 베풀어주소서!"
혹시 파리는 유럽 최악의 정신병자들을 모아둔 정신병동이 아니었을까.
그만의 낙원에서 시가지를 내려다보던 푸셰로서는 상상했던 것과는 억만 광년 쯤 동떨어진 이 아수라장에 경악과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차라리 또 다른 쿠데타의 막이 오르면서 사방천지에 피와 살이 튀기고 있다면 또 모르겠다.
지난 일주일간 산발적으로 쿠데타를 모의했다가 또 발각되기를 거듭해온 야권이 되었건, 아니면 슬슬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고 있을 급진당이 되었건 이미 승패가 갈린 시시한 선거 대신 총칼로서 결판을 내겠다고 달려든다면 뭐, 그리 놀랍지도 않다.
하지만 이 광란의 도가니는 또 이야기가 달랐다.
"···이럴 거면 그냥 깔끔하게 총격전으로 승부를 보는 게 낫지 않나?"
누군가에게는 질겁할 이야기겠지만, 푸셰로서는 진심이었다.
아니, 사실 지금 파리에 있는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저 적기를 휘둘러대는 폭도들이 바리케이드 뒤에 숨거나 치안대를 향해 달려드는 게 아니라 미숙하게나마 오와 열을 이루어서 패싸움이 벌어지지 않도록 치안대를 돕는 광경을 누가 상상이나 해봤을까?
질서의 파괴자, 약탈자, 무뢰배, 거렁뱅이들이 투표소로 향하는 길목들을 완전히 통제하고 있는 풍경을 말이다.
아마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을뿐더러, 직접 보고서도 믿지 못했을 것이다.
그냥 저 병력을 이끌고 시청이나 의회 같은 관공서로 돌격했으면 무조건 항복 소리가 나왔을 테니 더더욱 더.
하물며 저들이 그렇게 혐오하는 반동들과 몸싸움이 아니라 말싸움을 하는 광경을 보고 있자면, 푸셰로서는 마치 튀르크의 술탄이 교회에서 그리스도를 위하여 경건히 기도를 올리며 그리스어로 콘스탄티노플이라 말하는 광경을 보는 듯한 인지부조화가 느껴졌다.
똑똑똑.
"각하, 투표소에서 지원요청이 들어왔습니다."
"그래?"
그렇기에 오히려 이 순간, 푸셰가 생각한 건 혹시 문제가 터진 건 아닐까, 만일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책임을 회피할 수 있을까-하는 평소 같은 협잡질이 아니었다.
그럼 그렇지, 하는 안도감이었지.
비로소 그가 아는 파리가 돌아왔다는 기쁨에 젖고 만 것이다.
"유감스럽지만 우리 국가헌병대에겐 이번 폭동을 감당할 병력이 없다고 전해주게. 우리 방위사령부 친구들도 눈이 있으니 이렇게 말하면 어련히 알겠지."
"아닙니다. 그쪽이 아니라, 시위지도부로부터 지원요청이 들어왔습니다."
"···뭐?"
그런데 지금 이게 무슨 개풀 뜯어먹는 소리지.
"보다 정확하게는 로베스피에르 씨로부터의 요청입니다. 지금 예정보다 선거유세에 참여한 인원이 너무 늘어나서 도저히 급진당으로서도 감당이 안 된다고···."
푸셰는 선뜻 답할 수 없었다.
그에게 로베스피에르의 요청, 아니 명령을 전달한 부관 또한 심경을 모르지 않는 만큼 어색하게 웃을 뿐 차마 대답을 독촉하진 못했다.
그러니까, 파리 방위사령부가 아니라 저 폭도들이 공공질서와 치안유지를 위해 국가헌병대에 도움을 요청했다?
이게 지금 상식적으로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아니 그보다도, 뭐?
선거유세?
그러니까 저게 선거유세라고???
어림잡아 수만 명이 훌쩍 넘는 폭도들이 관공서로 향하는 길목들을 일제히 점거하고 적기를 마구 휘둘러대고 있는데 선거유세???
"···혹시 지금 관사에 브랜디나 럼주 있나? 꼭 브랜디나 럼주일 필요도 없으니 뭐라도 독한 술 하나만 가져오게."
"예, 각하."
부관은 그 즉시 브랜디 1병을 대령했다.
어째 몇 모금 비어있는 게 근무 시간 중 제가 마시려고 몰래 숨겨둔 브랜디인듯했으나, 이미 푸셰에겐 이를 트집 잡거나 질타할 여력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지금 그에겐 다만 이 미쳐 돌아가는 파리에 적응하기 위한 지독한 알코올이 절실했을 뿐이었다.
털썩.
"로베스피에르 씨가 보내달라는 대로 모조리 내보내."
그렇게 브랜디 1병을 비우고 자리에 주저앉고 나서야 푸셰의 입에서 평소다운 명령이 흘러나왔다.
"···모조리, 말씀이십니까?"
"그래. 자네도 눈이 있으면 알잖는가? 이번 판은 저쪽이 이겼어. 그럼 이기는 쪽에 붙어야지 지는 쪽에 줄을 대야겠나?"
신경질적이고, 고압적인 대꾸였다.
하지만 누구보다 합리적이고 자기보신적인 설명이기도 했다.
곧 푸셰의 부하들이 아무런 의심 없이 그를 섬기는 이유였다.
거창한 사명감을 불어넣어 주진 못해도 왜 그 일을 해야 하는지, 그 일을 하면 어떤 이득이 있는지 언제나 알기 쉽게 설명해주니까.
"알겠습니다, 각하."
척.
고로, 이번에도 부관은 누구보다 사리사욕에 솔직한 상관의 명령에 순응했다.
그렇게 부관마저 자리를 비우고 나자 푸셰의 방에는 온통 창 너머에서 외치는 누군가의 고함만이 가득 차게 되건 물론이었다.
"모처럼 되찾은 권리를 쓰지 않고 아껴둘 거면 그냥 제한선거제로 돌아가야죠!"
"우리 저 비겁한 개나으리들처럼 되지는 맙시다! 정직하게! 정의롭게! 저 기사님들보다 기사답게 이겨봅시다!"
"자, 이제 누가 폭도입니까? 툭하면 쿠데타나 꾸미는 기사님들이랑 우리 중 대체 누가 폭도입니까!"
"파리의 시민들이여, 단결하시오! 오늘, 이 투표로서 우리가 잃을 것은 사슬뿐일지니!"
여기가 바로 지옥인가.
어느덧 반대편의 목소리는 쇠하고 적기를 휘두르는 폭도들의 목소리만 가득 찬 거리를 내려다보며 푸셰는 생각했다.
그렇다고 반대파들이 살해당하거나 감금당한 것인가,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그냥 다들 목이 마르고 배가 고파서, 숫자에 밀려서 사라진 것뿐.
곳곳에 바구니를 들고 다니는 여인들이 꾸준히 물과 빵을 보급해주고 있는 폭도들과는 달리 조직화하지 못했다 보니 결국 지구력 싸움에서 패하고 만 것이다.
심지어 3교대제로 번갈아 가며 구호를 외치거나 노래를 부르는 여유까지 부리고 있으니 왕당파가 뭔 수로 당해내겠는가.
어느덧 파리의 골목길에는 온통 적기를 휘두르는 급진당과 그 지지자들의 선거유세(?)만이 계속되고 있었다.
"···저런 건 대체 어떻게 짚어내는 거지?"
얼마나 동원해야 파리를 가득 채운 것처럼 연출할 수 있겠다는 계산이나 선거 당일 대규모 집회로 반대파를 압도하겠다는 발상 자체야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집회 도중에 사람들이 지칠지도 모른다, 충분한 식료품이 보급되지 못한다면 제아무리 사람이 많아도 오래 유지할 수 없다, 같은 건 진짜 경험으로 습득해야 하는 지식 아닌가.
이번이 뭐 한 10번째 집회도 아니고, 심지어 무분별한 폭동이 아닌 질서정연한 집회는 처음일 텐데 저걸 다 짚어냈다고?
'그게 가능한가?'
푸셰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
비록 그가 직접 현장에 나서거나 보고서까지 받아본 건 아니니 실제로 얼마나 완벽하게 이뤄지고 있는지야 모르겠지만, 설령 미비한 점이 있더라도 그건 현장 요원들의 경험 부족 탓이지 준비 부족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다음 집회에는 분명 그보다 훨씬 조직화하고 질서정연한 모습으로 등장하겠지.
문득 오금이 저렸다.
혹시 그때 저들이 푸셰를 표적 삼는다면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저 질서정연한 폭동에 맞서서 질서를, 그의 목숨을 구할 수 있을까.
한참을 고민해봤지만, 결론은 언제나 한결같았다.
"애초에 대응할 생각을 하는 게 바보짓이야."
어떻게 해야 그때 저 폭도들 틈바구니에 섞여 있을 수 있을까, 를 궁리해야지.
자기 보신의 달인 푸셰다운 현명한 판단이었다.
그날 해가 저물도록 파리에서는 온통 적기를 휘두르는 폭도들의 구호만이 반복해서 들려왔다.
그 절대로 지치지 않는 연대에 힘입어, 이날 보통선거는 파리에 한정하여 전체 유권자 중 80% 이상이 참여했다는 역사적인 투표율을 기록했다.
***
어느덧 해가 저물고, 평소라면 다들 진작에 귀가하여 각자 가족들과 오붓한 시간을 보냈을 늦은 시간.
"막시밀리앙 드 로베스피에르, 당선 확정. 축하드립니다."
짝짝짝.
나를 포함하여 이 프랑스의 민선의원들은 각자 자리에서 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속속 들어오는 당선 소식에 맞추어 의례적인 박수갈채를 보내주고 있었다.
원래 이런 건 원내가 아니라 괜히 서로 얼굴 붉힐 일 없게 각자 당사에서 기다리고 있는 게 맞는 거 아니냐-싶긴 했는데.
[그럼 다들 개표 결과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각자 막사를 찾아가지 않겠는가? 그게 당선확률은 훨씬 더 높을 텐데.]
···아, 아직 18세기였지.
구국의 결단 선거제라니 고작해야 투표함 바꿔치기 같은 부정선거만 생각하고 있던 순진한 21세기인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었다.
새삼스러운 이야기지만, 낙선자들까지 누구나 선거 결과에 승복하게 만든 건 진짜 엄청난 위업인 거구나.
"루이 앙투안 드 생쥐스트, 당선 확정. 축하드립니다."
짝짝짝.
여하튼 역사상 최초의 보통선거제로 유권자가 폭등한 것에 비하여 오늘 당선 확정 선언은 생각보다 빠르게 튀어나오고 있었다.
널찍한 연회장 바닥에 투표함이랑 탁상, 각자 앉을 의자와 주판만 가지고 모든 걸 수작업으로 개표하고 있는데 자정도 되기 전에 거의 절반 가까이가 당선 확정이 나왔으니 정말로 엄청난 속도인 거지.
아마 그만큼 몰표가 나온 선거구가 많다는 증거일 것이다.
저기 지방이라면 모를까, 파리 쪽 선거구는 그간의 대중여론에 더하여 오늘 선거유세로 급진당 표만 무더기로 나오고 있을 테니까.
역사상 최초의 보통선거라고 해봐야 아직 실질적으로 선거에 참여할 수 있는 건 파리와 그 주변을 포함한 극소수 지역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떠올려보면 그야말로 선거 혁명이라는 말이 아쉽지 않은 압승인 셈이다.
어쩌면 진짜로 개헌선은커녕 70, 80% 넘길지도 모르겠는데.
"장폴 마라. 당선 확정."
"우라질, 관둡시다."
벌떡.
침통함을 넘어서 침몰 와중이던 야권 측 좌석에서 한 사내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기립했다.
나와 다른 급진당원들이야 아무튼, 폭동을 선동해 조폐소를 습격한 혐의로 유치장에 갇혀있는 마라까지 당선되었다는 선언이 나오니 울화가 치민 모양이었다.
"어차피 다 알잖소? 이 엿 같은 연극이 어떻게 끝날지야 불 보듯 뻔하지! 자, 뭣들하고 계시오? 우리 프랑스의 새로운 독재관을 위하여 손뼉이나 쳐줍시다! 임페라토르(Imperātor) 로베스피에르 폐하 만세!"
만세!!!
허나 목청이 터지라고 함성을 내지르는 사내와 달리 그에 호응해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야 당연했다.
야권 인사들은 이미 선거 결과를 대강 짐작하고 대부분 아예 참석도 안 했으니까.
그나마 시에예스, 브리소나 콩도르세를 비롯하여 강단과 의기도 있는 이들만 몇몇 얼굴을 비췄을 뿐.
반대로 우리 급진당으로선 노골적으로 이쪽을 비꼬고 있는 저 사내와 함께 만세를 외쳐줘야 할 이유가 단 하나도 없었다.
설령 내가 진짜로 프랑스인의 황제가 될 작정이었어도 여기서 본색을 드러냈으면 그건 천치보다 더한 놈이지.
"하! 아직도 내숭이나 떨 작정이신가?"
"그쪽에서 본색을 드러냈다고 저희까지 천박하게 굴어야 합니까?"
하지만 그게 내가 이대로 저 멋모르는 무뢰배의 비아냥을 가만히 듣고 있어야 할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혓바닥은 언제나처럼 집주인에게 양보하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솔직히 실망했습니다. 언제나 고결하시고 고매하시던 공화주의자들이니 당연히 공화적인 절차에 따라 집행된 선거 결과에도 승복해주실 거라 믿었건만. 설마하니 다른 것도 아니고 개표에 다들 불참하실 줄이야."
"웃기고 있군."
사내가 기가 막힌다는 듯이 혀를 찼다.
"공화적인 절차라니, 폭동과 파괴가 대체 어딜 봐서 공화적이라는 거야?"
"반역자 오를레앙처럼 쿠데타 같은 잔재주에 의지하는 건 공화적이라는 말씀이십니까?"
침묵.
그거면 족했다.
"지금 이 작태가 대체 실패한 술라와 다를 게 뭡니까? 유권자들을 설득하지도 못하고, 선거에 승복하지도 않으며, 단지 당신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체제와 제 고집을 지키기 위하여 폭력과 비겁함으로 도피한 여러분이 최종권고만 남발하던 말기의 로마 공화정과 다를게 뭡니까?
만일 제가 폭력으로서 여러분을 무릎 꿇리고자 했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비단 오늘이 아니라도 오를레앙이 쿠데타에 실패한 그날."
잠시 숨을 고른 다음 우리 급진당 당원들의 면면을 돌아보았다.
"저와 함께 찬탈자 오를레앙과 그의 추종자들에게 목숨을 위협받았던 동지들을 제외한 모두를 동조자로 몰아세울 수도 있었습니다. 그렇잖습니까."
"""옳소!"""
열광적인 합창이었다.
끝내 패배를 인정하지 못하고 대다수가 자리를 비운 야권은 결코 따라 할 수 없을 우렁찬 함성이었다.
"전 술라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팔짱을 낀 채 이쪽을 불만스레 쳐다보고 있던 시에예스와 눈이 마주쳤다.
살며시 눈웃음을 지으며 한마디 더 덧붙였다.
"물론, 카이사르야 두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하, 어련하실까."
시에예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헛소리 그만하고 지금 자네를 돌아보게. 이게 대체 어딜 봐서 카이사르가 할 일이 아니라는 말인가? 그나마 피를 덜 보고 절차를 덜 어겼다 뿐이지, 결국 똑같은 지점에 도착했잖은가."
"그럴지도 모르지요."
지금까지 당선 확정 선언이 나온 의원들만 모아도 개헌선은 충분히 채우고도 남을 테니까.
이만하면 입법 독재나 다름없다.
하지만.
"반환점이 같다고 하여 도착점이 같으리라는 법이 어디 있겠습니까."
"독재자들은 언제나 본인은 예외일 거라고 말하지."
"그럼 독재관으로서 제 정책들을 말씀드리지요."
그제야 시에예스가 내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급진당 당원들은 물론이오, 그 밖의 야권 인사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럴 줄 알았지.
모두 그렇게 말하는 듯했다.
"첫째로, 토의를 강제하겠습니다."
하지만 이건 예상 못했을걸.
"누구도 회기 중 절차와 규범을 파괴할 수 없습니다. 앞으로는 누가 되었건 발언권을 정당하게 획득한 뒤에야 입을 열 수 있을 것이며, 여론을 선동하여 누군가를 몰아세우거나 야유하는 등 발언권을 빼앗는 행위 또한 용납될 수 없습니다."
"···으, 응?"
"둘째로, 협치를 강제하겠습니다. 각기 모순된 의견을 가진 두 당파가 한자리에 모여 토의하고, 각기 양보하여 협의안이 나왔다면 설령 그것이 그 누구의 마음에 차지 않더라도 무조건 입안시키겠습니다. 반대로, 무조건 본인만 옳다고 하여 결코 양보하려 하지 않는다면 그 또한 제재하겠습니다."
"이봐, 잠깐."
이번에는 시에예스가 아닌 당통이 내 어깨를 두드렸다.
영락없이 어리둥절해하는 눈치였다.
"···자네 지금 독재관으로서의 요구사항을 말하겠다고 하지 않았나?"
"그래."
"그게 독재라고?"
"그야 독재지."
토의도, 양보도, 협력도 싫다는 똥고집들에게 협치를 강요하고 있잖아.
나는 누군가 그렇게 하겠다고 하면 싫다고 질색할 거면서 말이지.
그게 바로 독재지 별거인가.
"그리고 내 말 아직 안 끝났네. 셋째로, 재분배를 강제하겠습니다. 혁명이란 민중을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면에서 민의를 우선해야만 합니다. 당신들의 학파가 어떠한 간섭도 받지 않을 자유시장을 역설한다면, 전 독재관으로서 민중을 섬길 학파를 창조하겠습니다."
"···허."
"넷째로, 법치를 강제하겠습니다. 이제 무질서는 끝났습니다. 민중이 선출한 민선 의회가 입법한 그 무엇보다 신성한 민중의 법이 태어나려 하고 있습니다. 민중을 옥죄기 위한 법이 아닌, 섬기기 위한 법이. 우리는 민중의 종복으로서 그 법을 섬기게 될 것입니다."
적막함이 감도는 연회장.
그 자리에 모인 누구나 들을 수 있도록, 분명하게 선언했다.
"다섯째로, 저 막시밀리앙 드 로베스피에르는 독재관에 취임하지 않을 것이며 그 누구도 독재관에 취임하도록 두지 않겠습니다. 이상의 다섯 가지 원칙이 제 이번 임기를 정의하게 될 것입니다."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그리 어렵지 않게 지금 이 자리에서 우리의 정책을 제대로 이해한 건 우리 두 사람뿐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오히려 기쁘기까지 했다.
이날, 급진당은 전체 의석의 8할에 육박하는 원내 제1정당의 지위를 공고히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