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6화 (66/154)

전쟁위원회

일단 원내에서 찬전론이 부활하기 시작한 뒤부터는 속전속결이었다.

가장 먼저 벨기에 망명정부가 혁명 전까지 오스트리아에서 쓰던 외교공관에 정착했고, 이로써 프랑스는 단 1년간 존속했던 벨기에 합중국과 공식적으로 수교하며 벨기에 독립운동을 후원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당연히 이에 대한 오스트리아의 반응은 격분 그 자체.

혁명 이후 이례적으로 전권대사까지 참여한 공식 사절단을 파견하며 프랑스가 오스트리아의 저지대 영토주권을 침해하고 있음을 항의했으나, 이에 대하여 프랑스 정부는 폴란드에 전권대사를 포함한 동맹사절단을 파견함으로써 화답했다.

두말할 필요도 없지만, 이 동맹사절단은 폴란드까지 도착하지도 못하고 프로이센-오스트리아의 봉쇄에 가로막혀서 회군.

그나마 폴란드 국경까지 접근했던 베르니오는 러시아군의 신경질적인 위협 사격까지 받으며 돌아왔다.

그러자 이번에는 위대한 프랑스의 외교사절단이 폴란드까지 가보지도 못하고 돌아왔다는 소식에 아시냐 폭동 이후 간신히 가라앉았던 파리 민심이 폭발.

애초에 폴란드가 어디 있던 나라인지, 왜 동맹을 해야 하는지도 몰랐던 사람들까지 오스트리아, 러시아, 프로이센을 싸잡아 힐난하고 다시 의회는 이러한 민중의 기대에 부응하여 온갖 도발적인 언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벨기에와 폴란드는 시작에 불과하다는 둥.

장차 이 유럽의 제국들을 모조리 해체하고 봉건 군주들의 압제에 신음하는 소수민족들을 남김없이 해방 시키겠다는 둥.

우리 프랑스의 혁명군이 성문화되지 못한 폭군들만의 관습을 국제법이라고 존중해줄 거라 믿었다면 오산이라는 둥.

혁명의 심장 파리에서 손수 선출한 민선 의회답게 그동안 국내문제에 집중하면서 잠시 얌전히 있었던 몫까지 벌충하겠다는 듯이 연일 주변국들이 발작할만한 이야기들만 늘어놓았다.

자, 여기까지만 보면 내년도 개전이라는 로드맵에 따라서 모든 것이 이 로베스피에르의 계획대로 차근차근 진행된 것처럼 보이지만-.

"···그, 진도가 너무 빠른 거 아닌가?"

"누가 아니랍니까."

놀라운 건 내가 주도한 일이라고는 벨기에와 폴란드, 딱 거기까지뿐이라는 사실.

그러니까 의회의 긴급소집령을 받고 부랴부랴 상경한 라파예트에겐 미안하지만, 이번에는 진짜 해줄 말이 없다.

저 도발 중에서 내가 주도한 건 단 하나도 없으니까.

오히려 그나마 원내에 흘러넘치는 욕지거리 중에서 정제해낸 게 저거다.

때마침 루이 17세가 합스부르크의 혈맥을 이었으니 저 소년왕으로 인질극 하자, 벨기에 망명정부를 수용할 게 아니라 지금 당장 점령군을 보내주자, 이참에 국제법을 우리가 직접 정하고 전 유럽이 지키도록 강요하자, 어차피 런던과도 한판 붙어야 할 텐데 그냥 이참에 아일랜드나 웨일즈(?) 망명정부까지 받아주는 거 어떻겠냐 등등.

진짜로 지금 당장 전쟁 터질 수위의 발언들이나 계획들 거르고 거른 결과가 지금 이거다.

아니 이게 독재관이야, 오웅영 선생님이야.

[그건 또 누군가?]

있어, 사람 같지 않은 놈들 사람 만들어주는 분.

"···일단 망명정부들과 수교했다는 건 알겠네. "

푸르륵.

라파예트가 지근거려오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말에서 내려왔다.

"어차피 한번은 결판을 내야 했으니까 그 사전 준비라고 하면 대수로운 일도 아니지. 그런데 그다음은 대체 뭔가? 우리가 프랑스 전역을 순회하는 동안 대체 파리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게야?"

"이미 들으셨겠지만, 보통선거제로 민선의원들을 선출했습니다."

"역시나 우민들이 원흉이었군."

아니 이 양반이-라고 하고 싶지만 이번엔 솔직히 부정 못하겠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요즈음에는 이따금 이 지옥 같은 프랑스에서 보통선거제 도입은 너무 시기상조 아니었을까 후회가 될 지경이었으니까.

모욕하거나 비하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진짜배기 우민정치라는 느낌.

나도 어지간히 여야에 시달리면서 어떻게든 하루라도 더 벌려고 아등바등하면서 느낀 게, 어떻게 된 게 기존 의원들 말고 새로 뽑힌 의원들은 온통 생쥐스트 아니면 에베르다.

처음에는 그래도 내 명성과 성공에 눌려서 얌전한척하더니 그것도 잠시.

진짜로 젊은 혈기를 주체못해서 무조건 과격하게, 쇠뿔도 단김에 빼는 식으로 가야지만 성이 차는 혁명광들이랑 혐오팔이와 선전·선동으로 당선된 놈들이 하나둘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하니 머리가 깨질 것 같다.

사람 살려.

아니 이게 대체 의회야 동물농장이야.

[당연히 동물농장이지 뭘 궁금해하고 있는 건가?]

오냐, 너 잘났다.

아무튼 지는 재깍재깍 혓바닥만 털어주면 된다 이거지?

내 진짜 정신기생체 서러워서 살 수가 있나.

역시 이래서 보편선거권과 보편교육이 한 세트인가 봅니다, 여러분.

"우선 전쟁위원회로 모시겠습니다."

"변명은 그게 다인가?"

"지금 한가하게 저와 정치 이야기나 하실 시간이 아닐 텐데요."

하지만 그렇다고 이제 와서 제한선거제로 돌아가자고 할 생각은 없다.

제아무리 성급했다지만 결국 언젠가는 해야 할 일이었고, 시기상조라고 미루려면 백 년도 너끈히 미룰 수 있었던 주제다.

아직 국민의 민도가 모자라서 민주주의 할 때가 아니다, 라니.

이보다 21세기 한국인 트라우마 발작하게 할 논리가 또 어디 있을까.

아무렴 첫술에 배부르랴?

저 친구들도 초선의원이라 폭주하고 있는 거니까 차차 나이를 먹고, 또 국내가 어느 정도 안정되면서 보편교육체계가 본궤도에 오르면 나아질 거라고 믿고 기다려야지.

"···그래. 내가 말을 말아야지 진짜."

여하튼 내가 시치미 뚝 떼고 성큼성큼 앞서가니, 라파예트도 날 설득할 자신은 없었는지 얌전히 뒤따라왔다.

뭐, 의회에서 이렇게 라파예트를 급하게 상경시킬 이유라면 육군 사령관 취임밖에 없다는 것쯤이야 알 테니 그런 것도 있을 테지만-아 참.

"그러고 보니 프로방스 백작은 어디 계십니까?"

우리 귀한 혁명의 나팔수가 안 보이시네?

설마 분위기 파악 못하고 설치다가 농민들에게 조리돌림당했나?

이미 귀족사회에서 이름도 충분히 더럽혔겠다, 지금 루이 17세에게 무슨 일 터지면 자동으로 왕위계승 받을 양반이 이제 와서 파리 상경을 마다하진 않을 텐데?

"아, 섭정 전하라면 사르데냐 왕국으로 가셨네."

"사르데냐?"

아니 그 양반은 또 왜?

"뭐야, 자네 설마 모르는 건가?"

그런데 오히려 라파예트는 내가 이해를 못하는 게 의아하다는 눈치였다.

아니 진짜 무슨 일인데?

[현 사르데냐 국왕 비토리오 아메데오 3세는 프로방스 백작의 장인어른이니까. 덧붙여서 아르투아 백작의 장인어른이기도 하네. 한마디로 겹사돈이지.]

아, 그런 거였어?

그럼 진작 말을 하던가!

[지금껏 프로방스 백작이 내가 따로 설명해줄 만큼 중요한 사람이었나?]

···씁, 할 말이 없네.

나도 솔직히 라파예트 보고 난 다음에나 생각났으니 진짜 설명해줄 이유가 없기도 했구나.

미안해요, 섭정님.

앞으로는 내가 관심 많이 가져줄게.

"그야 모르지요. 저는 제3신분이잖습니까."

"아니, 이건 사교계가 아니라 상식의 문제 같은데···."

끄응.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는 듯이 눈살을 찌푸리던 라파예트였으나, 이내 포기했는지 나지막한 한숨과 함께 설명을 덧붙였다.

"아무튼, 섭정 전하께서는 사르데냐 왕국을 설득하러 가셨네. 물론 비토리오 아메데오 3세도 왕권신수설을 신봉하는 절대군주이니 우리와 함께 싸워주진 않겠지만, 하다못해 중립을 지켜달라고 부탁해볼 수는 있지 않겠나. 그것만 해도 전선을 하나 줄일 수 있을 테니까 말이야."

···와.

"존경합니다, 후작님."

"으, 응? 자네 갑자기 왜 그러는가?"

"아뇨. 새삼스레 진짜 애국자가 이렇게 가까이 있었는데도 몰라보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에 그만."

이건 진짜 진심이다.

저 의회라는 놈들은 어떻게든 적국을 하나라도 더 늘리지 못해서 안달인데 이 사람이랑 섭정은 그래도 안 보이는 곳에서 전선 하나라도 줄여보려고 발로 뛰고 있었다고?

내가 참 이런 거에 감동하고 그러는 사람이 아닌데 눈물이 다 나오려고 그러네?

[자네, 저번엔 라파예트에게 카이사르 지망생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햐, 역시 카이사르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야 진짜.

이 정도 판단력은 되니까 군대로 나라를 먹어보겠다는 야심까지 품는 거구나.

···아니, 오히려 이게 상식이고 내가 너무 요즈음 리틀 생쥐스트와 리틀 에베르들에게 시달리느라 눈이 낮아진 건가?

뭐 아무튼.

"좋은 소식이 있으면 좋겠네요."

"기대해봐도 좋을걸세. 원래부터 사르데냐는 우리 프랑스와 오스트리아 사이를 오가며 실리를 우선하는 친구들이었으니 카이저가 위협한다고 해서 덜컥 저들에게 합류하지는 않을 거야."

"···그거 나쁘게 말하면 박쥐 같은 친구들이라는 소리 아닙니까?"

라파예트는 쓴웃음을 지을 뿐 더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정곡이로군.

척.

"파리 방위사령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입니다. 프랑스의 위대한 영웅을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그렇게 라파예트와 함께 전쟁위원회로 들어서자 문 앞에서부터 우리를 기다리던 나폴레옹이 절도 있게 군례를 올렸다.

"라파예트일세. 나야말로 장차 우리 프랑스군을 이끌어갈 미래의 영웅을 만나게 되어서 반갑군. 그런데, 뒤마 대령은 어디 갔나?"

"뒤마 장군이라면 생도맹그에서 물라토 혁명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그으래?"

오우야, 눈초리 봐라.

뭐 무슨 말 하고 싶은지는 알겠는데, 그쪽에서 먼저 마음대로 부리라고 했잖아.

나름 나도 수상까지 달았는데도 나는 평민이고 지는 후작이랍시고 사석에서 하대하고 계신 것도 그냥 눈감아주고 있는데 적당히 넘어가시죠.

"뭐, 그렇다면 그토록 염원하던 장군이 되었으니 그 친구에게는 잘된 일이군."

라파예트도 그걸 알고 있는지 속이 쓰려하긴 해도 더는 트집 잡지 않았다.

나폴레옹은 슬쩍 웃는 게 승리감을 애써 감추는 모습이고.

···아니, 한 방 먹이긴 내가 먹였는데 왜 그쪽이 그러세요.

[그야 자네의 측근이니까 그런 거지.]

아하, 로베스피에르파가 라파예트파를 군내 파벌경쟁에서 우위를 점했다?

하여간 카이사르 지망생들 아니랄까 봐 숨 쉬는 듯이 정치질이시구만.

덜컥.

그렇게 이 두 카이사르 지망생과 함께 마침내 회의실로 들어서니.

"···칫."

얼마 전까지 백의종군했다가 얼마 전에 급히 원내에서 복귀시킨 뒤무리에가 방안에 들어서는 라파예트를 보자마자 얼굴이 썩어들어가기 시작했다.

반대로 라파예트는 뒤무리에를 보고 비로소 얼굴이 피었고.

아무튼 지가 나폴레옹에게는 한 수 물러줘도 뒤무리에는 호구 잡고 부려 먹을 수 있겠다, 뭐 그런 계산이겠지.

의회 상대로 무력 시위한 놈, 쿠데타에 동참해서 실형까지 선고받은 놈, 원 역사에서 프랑스 황제 먹었던 놈까지.

여기가 정녕 지옥인가.

햐, 진짜 이렇게 카이사르 지망생들만 골라서 한자리에 모으기도 힘들겠다.

이러다가 나중에 카이사르-카이사르-카이사르 삼두정치 하는 거 아니야?

[···무슨 전국 쿠데타 자랑이라도 열 생각인가?]

오우, 전국노래자랑을 아네?

이 친구가 나 모르는 사이에 많이 주워먹었구만.

[커흠.]

"만나 뵙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라파예트 후작님. 라자르 카르노 전쟁위원장이라고 합니다. 제 마음 같아서는 참 그동안 여쭤보고 싶은 것도 부탁 드리고 싶은 것도 참 많았습니다만···."

한걸음 우리에게 다가오며 라자르가 말꼬리를 흐렸다.

"아시다시피, 상황이 상황인지라 환영식보다도 곧장 토의로 넘어가야 하는 점 양해 바랍니다."

"그거야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소. 자, 그럼 시작합시다."

덥석.

살가운 악수 한번.

환영식은 사실상 그걸로 끝이었다.

전쟁위원장인 라자르가 상석에, 내가 그 왼쪽에 앉고 육군 사령관에 재취임한 라파예트가 오른쪽에, 그 밖에 25명이 직위에 따라 차례로 앉으며 이 회의장의 발언권이 알기 쉽게 서열화되었다.

수상이고 나발이고, 이 자리의 수장은 전쟁위원장인 라자르고 나는 심지어 비전문가이니까.

오히려 이번 회의에선 원내대표 겸 고문역으로 참가했다고 봐야겠지.

[풋, 내숭은.]

입 닥쳐, 막시밀리앙.

"우선 사령관께 한가지 질문을 드리자면···."

상석에 앉은 라자르가 포문을 열었다.

"우군에서 개전과 동시에 저지대, 혹은 라인란트를 선제공격한다고 가정했을 때 초전의 승률은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십니까?"

"저지대라면 40%, 라인란트라면 30% 이하."

라파예트의 대답이었다.

생각보다는 높군.

"물론, 이건 내가 몸소 전장에 나서서 내 부대를 이끌 경우의 가정이오. 저 연맹병들이라면 승률 같은 건 그냥 없다고 봐야겠지."

"그럼 반대로 수세를 취한다면 어떻겠습니까?"

"그렇다면 연맹병 같은 오합지졸이라도 머릿수 정도는 채워줄 수 있겠지. 하지만 그 경우···."

라파예트가 내 쪽을 흘겨보았다.

전쟁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그만큼 군비 지출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될 거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은 거겠지.

뭐, 저 사람도 요즈음 지방에만 머물고 있었다지만 아시냐라던가 이것저것 들은 게 있을 테니 그야 걱정이 앞서는 것도 당연하겠지만.

"그거라면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아무튼 아시냐도 폐지하고 중앙은행까지 설치하면서 그래도 가상경제에서 망한 경제까지는 격상했거든.

"뭐, 그렇다고 몇 년씩 거뜬히 버틸 수 있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만. 그래도 반년은 아슬아슬하게 버틸 수 있을 겁니다."

"오, 그렇다면-."

"단, 원내에서 공세를 독촉하지 않는다는 전제로요."

솔직히 저 리틀 에베르와 생쥐스트들이 반년씩이나 참아줄지 잘 모르겠다.

한 1달씩이나 기다려주면 다행이고, 도중에 왜 공세 안 하냐고 폭동 일으켜도 이상할 게 없어 보이는데.

"물론 제 개인으로서는 반격 전략을 지지하고 있고, 만일 여러분들께서 그리 해주길 원하신다면 최선을 다해서 시간을 끌어볼 의향도 있습니다. 다만, 그렇다고 한들 제 재량으로 반년이라는 시간을 벌어드리는 건 어렵다는 점을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맙소사."

라자르가 땅이 꺼지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저 친구야 저번에 나랑 양질 전환 논의했던 친구니까 당연히 준비도 되기 전에 반격해야 한다고 하면 싫겠지.

하지만 어쩌겠어.

지금 원내는 사이다패스들 소굴인데.

아무튼 지금 저게 민의고 또 저것들이야말로 유권자들이 선출한 민선의원이니 의사결정 과정에서 아예 배제할 순 없다.

"그럼 이렇게 하지요."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나폴레옹이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 전에, 우리가 지금 고려해야 할 전선이 저지대와 라인란트. 딱 여기까지인 건 맞습니까? 스페인과 사르데냐, 영국이 도중에 참전할 가능성은요?"

"당장은 신경 쓰지 않아도 괜찮을겁니다."

이건 오늘 회의에서 외교 자문을 맡은 뭐시기 위원의 발언.

우리가 벨기에 망명정부와 수교한 뒤부터 런던의 태도가 좀 유해졌다.

지금 우릴 거들어서 추후 신생 벨기에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게 나을지, 아니면 그냥 지금처럼 오스트리아가 계속 통제하게 두는 게 나을지 주판을 튕겨보는 모양새인데-뭐 이런 식으로라도 당분간 중립을 지켜준다면 우리로선 나쁠 게 없지.

스페인은 뒤마와 투생이 열심히 괴롭혀주고 있고, 사르데냐는 우리의 섭정님이 책임지고 설득하겠다 했다.

그러니까 당분간은 신성로마제국만 신경 쓰면 되긴 한데-.

"그렇다면 그냥 공세와 수세를 동시에 진행합시다."

···하여간 나보 놈 아니랄까 봐 미친 듯이 모험적이군.

하지만 나폴레옹이 말하니까 그럴싸하게 들린다.

"라파예트 사령관께서 총지휘를 맡아주시고, 뒤무리에 장군께서 수비군을 이끌어주십시오. 제가 한번 책임지고 별동대를 이끌어 보겠습니다."

"···자네 전선에서 부대를 이끌어 본 적 있나?"

"시가전이라면 이골이 났습니다."

"그러니까 야전 경험도 없는, 서른도 안 된 코흘리개 장군에게 내 부대를 맡겨달라?"

허.

라파예트가 기가 막힌다는 듯이 웃었다.

"그걸 지금 제안이라고 하는 소리인가?"

보나 마나 저 애송이가 내 뒷배로 승승장구하더니 헛바람이 들었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다른 참가자들의 반응도 크게 다를 바는 없-지만.

"그럼 주력은 수세로 잡되, 소수의 소방수 부대를 둬보는 것 어떻습니까?"

나는 나보 코인을 탄다.

뭐, 이러다가 아직 각성을 못 해서 호로록 말아먹었다-가 되어버리면 나도 덩달아 물먹는 거긴 한데.

천하의 나보잖아?

얘가 지금 내 사람이 아니라도 한번은 밀어줬을걸.

"전쟁 와중 이따금 원내 여론을 달래려면 소소한 전과는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뭐 우리 나폴레옹 동지도 혼자서 전황을 뒤집겠다는 건 아니었을 테니, 모쪼록 이번 한 번만 눈감아주십시오."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라파예트와 나폴레옹은 한창 눈싸움 중이고, 라자르는 날 원망하고 있으며 뒤무리에는 팔짱 끼고 흥미진진하게 구경하고만 있었다.

결국, 이날 전쟁위원회는 라파예트에게 원수(Maréchal) 칭호를, 나폴레옹을 위해 사단(division)이라는 편제를 신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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