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장
"만나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수상 각하. 유제프 안토니 포니아토프스키 공작이라고 합니다."
쾅!
"저야말로 전 유럽에서 명성이 자자한 폴란드의 바야르(Le Bayard polonais)를 만나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파리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포니아토프스키공."
"""부르주아지는 노동자의 생존권을 보장하라!!!"""
음, 환상적이야.
귀한 손님을 맞이하기엔 더할 나위 없는 환영 인사로군.
역시 우리 파리시민들이 정이 참 많아.
우리 외지인 친구들이 처음 파리에 와서 낯설어하지 않도록 바로 지금 파리 꼬락서니를 말이 아닌 행동으로서 보여주잖아.
그보다 지금 암만 들어도 총소리가 아니라 대포 소리였는데 어느 미친놈이 파업 현장에 대포 끌고 온 거야?
[보나 마나 또 뮈라 아니겠나.]
아, 뮈라라면 그럴 수 있지.
저번에 우리 프랑스 동맹사절단이 바르샤바까지 가보지도 못하고 돌아와서 폭동 났을 때 그거 진압하겠답시고 사람이 혼자서 청동 대포를 짊어지고 3층 건물 옥상까지 뛰어 올라갔다는 소리를 듣고서는 내가 뭐 잘못 들은 줄 알았다.
그거 진짜 짐말들이나 거중기로 옮기는 중장비인데 사람이, 그것도 등에 짊어지고 계단으로 뛰어 올라갔다니 무슨 진기명기도 아니고.
하지만 목격자가 워낙에 많았고, 또 실제로 그렇게 옥상까지 옮긴 대포로 포도탄 사격을 퍼부어가며 폭동 진압의 일등 공신이 된 것도 사실이라 이 사건을 계기로 뮈라는 초고속 진급 중.
나폴레옹과 마찬가지로 오를레앙 쿠데타 때부터 함께한 로베스피에르 계열 인사라는 점도 있어서 늦어도 내년이면 기병 장군 계급을 달 것이 확실시되어가고 있다.
마중적토 인중여포가 마침내 제 자리를 찾아가고 있다고 봐야겠지.
그런데 뭐 그건 그거고, 오늘 정도면 큰 폭동도 아니고 이 정도면 늘 있는 폭동 수준인데 대포는 좀 선 넘은 거 아닐까.
우리 인중여포 오래오래 봐야 하는데 좀 자중하자, 응?
타타탕!
옳지, 총성이면 그나마 양호하네.
그냥 총도 대포도 없이 평화롭게 시위하면 안 되냐고?
그렇게 시시하게 놀았으면 파리가 혁명의 심장이 아니지.
솔직히 오늘 정도면 그냥 소소한 민속놀이다.
"···그, 각하. 초면에 이런 말씀 드리기 좀 죄송스럽습니다만. 혹시 지금 뭔가 파리에서 사달이 난 건 아닙니까?"
"아, 신경 쓰지 마십시오. 이정도야 일상다반사지요. 포니아토프스키공께서도 지내시다 보면 차차 적응되실 겁니다."
"그, 그렇습니까?"
어차피 매일매일 보게 될 텐데 적응 안 되면 뭐 어쩔 거야.
그 저주받을 아시냐는 우리 급진당 정권과 프랑스 가톨릭 교회가 손잡고 모조리 불살라버리고 있지만 실상 파리의 민생은 크게 달라진 게 없다.
오히려 아시냐 사태를 계기로 부르주아지들이 하나둘 공장 노동자의 쓸모를 깨우치면서 평균적인 노동환경은 하루가 다르게 추락하는 중.
그나마 전면적인 시장개입으로 기초적인 생필품이나 소비재 공급은 어느 정도 안정되긴 했는데, 그것도 유통망이 잡혔다는 소리지 가격이 완전히 잡히려면 멀었고 이마저도 시간이 흐를수록 저임금 노동착취를 위한 수단이 되어가고 있다는 게 어렴풋이 보인다.
그럼 이런 판에 시민들이 들고일어난다면 당연히 조반유리 혁명무죄지 뭐.
[···그, 자네. 소감은 그것뿐인가?]
뭐가?
[자네라면 당연히 노동권 투쟁부터 시작해서 반부르주아지 혁명으로 마무리 지을 줄 알았는데.]
그야 나도 그러고 싶지.
그런데 그럼 저 원내 사이다패스들은 어떻게 감당하려고.
저번 의회랑은 다르게 내가 모든 생산수단의 국유화와 무화폐경제를 주장하면 기립박수 쳐줄 인원들이야 많은데, 그 인원들이 바로 벨기에 합병 주장하는 쇼비니스트이자 포퓰리스트이기도 하다는 게 문제다.
이럼 인터내쇼날이나 일국사회주의는커녕 국가사회주의잖아.
[허, 참.]
그리고 어차피 지금 근본적으로 나라에 돈이 될만한 게 없어서 이 모양이 난 건데 저 악덕 부르주아지들 좀 조진다고 문제가 해결되진 않는다.
오히려 당분간은 저 자낳괴들에게 열심히 돈 될만한 사업을 찾아보라고 후원해줘야지.
그래서 반동 소리 듣고 미움받는 건 우리가 알아서 감당해야 할 문제고.
차라리 내가 반동 부르주아지 소리 들으면서 혁명당하고 말지 국가사회주의자들이 정통사회주의 소리 듣는 꼴은 못 봐준다.
"그럼 포니아토프스키공께선 폴란드 정부와 국왕 폐하를 대표하여 찾아와주셨다, 고 생각하면 되겠습니까?"
"아뇨, 당장은 제 개인 자격이라고 생각해주십시오. 적어도 삼촌 폐하와 셰임의 공식적인 입장은 폴란드는 프랑스와의 동맹을 원하지 않는다, 이니까요."
"흠, 다시 말해 객장이라는 말씀이시군요."
"그것도 조금은 사정이 다릅니다."
여하튼, 연회장으로 옮겨와 우리 유제프 장군과 대화를 나누고 있자니 저쪽도 사정이 복잡하게 돌아가는 모양이었다.
요약하자면.
1. 현재 폴란드의 실권을 장악한 건 러시아 제국을 등에 업은 셰임이라는 귀족 의회다.
2. 하지만 이들은 뭇 폴란드인들의 증오와 혐오를 한 몸에 받고 있으며, 지금은 허수아비로 전락한 유제프의 삼촌인 스타니스와프 2세는 러시아군이 총칼을 들고 원내까지 쳐들어오는 가운데 어쩔 수 없이 늑약에 서명했다.
3. 그럼에도 국왕과 폴란드인들은 아직 항전 의지를 저버리지 않았으며, 유제프와 그의 부하들은 공식적으로는 개인 단위 의용군 자격으로 파리에 찾아온 것이지만 국왕이 보낸 밀사이기도 하다.
···음, 어딘가 많이 낯이 익은 이야기인데.
[뭔가 수상한 낌새라도 느낀 건가?]
아니,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가 조금.
[아···.]
그나마 우리네 황제님은 절대권력 추구하다가 말아먹었지, 이 사람 삼촌은 위로부터의 민주화하려다가 반동들이랑 결탁한 러시아에 침략당해서 망국의 군주가 될 판이라니 참.
내가 눈물이 헤픈 사람이 아닌데 눈물이 다 나오려고 그러네.
"그렇다면 오히려 제가 포니아토프스키공을 필요 이상으로 융숭하게 대접해드리는 게 더욱 큰 실례가 되겠군요."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카테리나, 그 마귀할멈이 고작 이정도로 속아줄 거라고는 기대도 하지 않습니다만. 그래도 그 마귀가 삼촌 폐하의 신변에 해를 가할만한 핑곗거리를 제 손으로 만들어주고 싶진 않습니다."
말하면서도 울화가 치밀었는지, 유제프는 스테이크를 썰다가 말고 나이프를 붙잡고 부들부들 떨었다.
···그런데 잠깐, 예카테리나면 그 예카테리나 대제야?
[루스의 차리나 예카테리나 2세를 말하는 거라면 아마 맞을걸세.]
뭐야, 그 아줌마 아직도 살아있었어?
아니 그보다도 그 아줌마 러시아 제국의 중흥을 이끈 계몽 군주라고 하지 않았나?
그 아줌마는 또 왜 우릴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야?
[계몽 군주라니···그 폭군이 말인가? 그 바르바로이 놈들이 후대에 역사 왜곡을 엄청나게 했나 보군. 아니면 자네 나라에 뭔가 잘못 전달되었거나.]
뭐야, 그럼 아니야?
[당연히 아니지. 그년은 젊은 시절에는 아닌 척 온갖 내숭은 다 떨더니 결국 농노제를 강화하고 전제권력을 추구하면서 민중을 억압한 두 얼굴의 마귀일세. 차라리 합스부르크야 혈맥과 전통적인 대결 구도 때문에 다투는 거지, 그 여자는 혁명을 혐오하다 못해 증오하고 있을걸.]
···어, 뭔가 굉장히 편향된 정보인 것 같은 느낌인데.
아무튼 계몽주의자들 사이에서 예카테리나 2세의 인상이 최악이라는 건 알겠다.
젊은 시절과 늙은 모습 사이에 괴리가 있다는 것도 알겠고.
일단 이 아줌마도 혁명의 적 리스트에 넣어둬야겠구만.
"객장 처지에 주제넘게 많은 권한을 요구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제 부하들과 떨어지지만 않을 수 있게 해주십시오. 제 요구, 아니 부탁은 그게 전부입니다."
"그렇다면 귀군의 의용군 지위와는 별개로 포니아토프스키공을 제 개인적인 외교 자문역으로 고용하겠습니다."
어차피 실권자야 나라는 걸 다들 알겠지만, 명색이 왕국인데 국왕 곁에 가까이 두겠다는 것도 아니고 내 개인적인 자문역으로 두는 것 가지고 크게 문제 삼지는 않겠지.
내심 사절단 추방부터 해서 이래저래 찔리는 구석이 있을 테니 말이야.
"다만 일단 전시상황이 오면 저보단 라파예트 사령관과 전쟁위원회의 지휘권을 우선하게 될 수밖에 없다는 점 양해해주십시오."
"충분합니다. 배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꾸벅.
유제프가 고개를 조아렸다.
나름 공작씩이나 되는 사람이 평민 수상에게 고개 숙이다니.
라파예트도 안 하던 모범을 보여주시는군.
흠, 일단 사양해야겠지?
"아니, 포니아토프스키공! 갑자기 이 무슨-."
"아뇨, 각하께서는 제 체면을 받을 자격이 충분하십니다. 이 은혜는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갚아드리겠습니다. 이는 그에 앞선 선불금이라고 생각해주십시오."
"허 참."
깍듯하기도 하셔라.
이걸 그만큼 탈권위적인 사람이라는 증거로 봐야 하나, 아니면 그만큼 절실하다고 해야 하나.
하여튼 그렇게 유제프공과의 인사를 마치고 앞서 벨기에 망명정부가 그러했듯이 혁명 이후 텅 빈 외교공관에 그와 그의 부하들이 지낼 공간을 마련하면서 폭동과 함께하는 환영식은 그럭저럭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인원은 그렇게 많지 않았어도 다들 우리 프랑스 혁명정부에 가장 부족했던 장교진이었으니 그야말로 땡잡은 격.
덕분에 우리 원내의 사이다패스들에게 뭐라도 한마디라도 더 해줄 건덕지가 생겨서 어깨춤이 절로 나올 판이긴 한데···.
이보쇼.
[또 왜 그러는가?]
···뭔가 수상하지 않아?
왜 프랑스인도 아닌 친구들이 저렇게 프랑스어를 잘하는 거야?
유제프까지야 그렇다 쳐도 통역사도 아니고 일개 장교진이 프랑스말에 능통하다는 건 좀 수상한데.
[수상할 이유가 있나? 프랑스어는 국제공용어인데.]
엥?
국제공용어?
[저 루스 바르바로이들조차 프랑스어 회화는 지식인의 기본소양인데 무슨. 더군다나 저 친구들은 귀족이잖은가. 저 런던에서 바르샤바까지 유럽의 사교회는 모조리 프랑스어로 진행하도록 통일되어있네. 오히려 귀족이 되어서는 프랑스어 한마디도 못 한다면 그거야말로 사교회 한번 참가해본 적 없는 수상쩍은 놈인 거지.]
흠, 그 정도였나?
[이봐!!!]
아니, 이번엔 놀리려는 게 아니라 진짜로 몰랐다.
참 위상이 대단하긴 했구나.
혁명 터지고 나서 국제 왕따가 되어서 그렇지.
[···커흠.]
아무튼 기왕에 이렇게 된 거 유제프를 시작으로 폴란드군 망명장교들의 프랑스군 임관을 적극적으로 후원해야겠다.
다른 건 몰라도 말이 안 통할까 봐 걱정이었는데 다들 프랑스어 회화는 기본으로 할 줄 안다면야 사양할 이유가 없지.
솔직히 수구반동 사상으로 똘똘 뭉친 우리 프랑스 귀족 장교들보다야 조국 해방의 사명을 띠고 망명해올 폴란드군 장교들이 더 믿음직할 텐데 뭘.
잠깐, 아예 폴란드를 시작으로 전 유럽의 소수민족 출신 장교들을 다 끌어모아 봐?
[자네, 도대체 내 조국에서 뭘 만들 생각인 건가···?]
150년 빠른 국제여단 창군?
아니, 이 경우엔 국제 장교단인가?
프로이센과 러시아가 폴란드의 허락도 구하지 않고 영토 분할에 협의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건 유제프 일행이 파리에 도착하고서 고작 며칠 후였다.
***
빈.
"···박쥐 같은 놈들 같으니."
신성로마제국 황제 프란츠 요제프 카를이 나지막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또다시 그의 기대를 배신한 사르데냐 왕국의 뻔한 외교 서한 때문만은 아니었다.
물론 벌써 몇 번씩이나 거듭된 회유와 위협에도 불구하고 끝내 중립을 지키겠다는 사르데냐의 박쥐짓이 눈에 거슬리는 것도 사실이었지만, 어차피 이탈리아인들이 저런 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나름의 국익을 추구한 결과라고 하면 못 넘어가 줄 이유도 없었다.
그보다도 울화가 치미는 이유는 다름 아닌 프랑스.
보다 정확하게는 저 혁명정부를 자칭하는 폭도들의 외교정책 변화였다.
그간 외교랄 것도 없이 좌충우돌 폭주만 하더니 시간이 흐르면서 나름대로 뭔가 배웠는지 점차 그들 합스부르크만을 예리하게 저격하려 들고 있었다.
"정녕 아직도 런던을 설득하지 못했다는 말인가?"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그것이···."
말꼬리를 흐리는 외무장관의 모습만 봐도 대충 어떤 대답이 돌아왔을지 알 것만 같았다.
프란츠 2세는 더는 아무 말도 말라는 의미에서 오른손을 들어 제지했고, 외무장관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공손히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또 그놈의 저지대가 문제로군."
뿌득.
저절로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차라리 선왕 폐하께서 아직 살아계실 적에, 프로방스 백작과 아르투아 백작이 합스부르크에 원병을 청할 적에 그들의 소원대로 원병을 보내줬다면 이럴 일도 없었으련만.
우유부단한 아버지께서는 끝내 망설이기만 하다가 작년에 무책임하게 급사해버리셨고, 프로방스 백작은 아예 전 공화파가 아니라 법통파라는 뻔한 핑계를 대면서 저 폭도들에게 합류해버렸다.
아르투아 백작마저 프랑스와의 전쟁을 꺼리던 선왕께서 지나치게 도발적인 언사를 일삼는다는 이유로 추방하셨음을 떠올려보면 그들 합스부르크가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우위를 점할 모든 수단을 급사한 아버지께서 망쳐놓은 셈이었다.
곧 프란츠로서는 울화가 치밀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지금 당장 저지대 주둔군을 두 배로, 아니 네 배로 증강하게."
하지만 어쩌겠는가?
선왕께서는 급사하셨고, 지금 신성로마제국의 카이저는 프란츠였는데.
장장 4개월에 걸친 황제선거를 뚫고 툭하면 합스부르크를 무릎 꿇리려 드는 선제후들의 공세를 극복하며 겨우 이 신성로마제국의 카이저에 당선되었는데 이제 와서 못하겠다고, 왜 아버지가 시작한 일을 내가 해야 하냐고 투정이나 부릴 수는 없었다.
신임 카이저의 명령에 기다렸다는 듯이 재상이 한 발짝 앞으로 내디디며 고개를 조아렸다.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폐하, 그리하면 암스테르담과 런던이 필히 아조에 위협을 느낄 것이옵니다."
"하지만 지금 증강하지 않는다면 또다시 1790년의 고되디고되었던 토벌전을 반복하게 되겠지. 정녕 그때처럼 아군이 패퇴한 뒤에야 조치에 나설 셈인가?"
"어찌 폐하의 충신들을 이리도 신임하지 못하시는지요. 저 배은망덕한 저지대인들이 아조의 인내심을 시험하고, 그 응당한 업보를 받게 된 지 5년도 지나지 않았사옵니다. 이미 패퇴한 패잔병들이 무슨 수로 아조의 용맹한 병사들을 욕보인다는 말씀이십니까."
웃기고 있군.
프란츠는 차마 재상의 말을 반박하지 못하고 이를 갈았다.
재상의 논리가 흠잡을 데 없어서, 가 아니었다.
카이저로 당선된 지 고작해야 1년도 지나지 않은 프란츠로서는 저 기세등등한 귀족들을 압도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다못해 선왕께서 프랑스와의 전쟁을 결심하셨다면 전시지휘권을 핑계 삼아 저들을 쉬이 압도할 수 있었으련만.
'···혹시 아바마마께서 내게 무슨 원한이라도 가지고 계셨던 건가?'
물론 그럴 리는 없었다.
다만 일부러 골탕 먹인 것 아닐까, 고심될 정도로 이래저래 득 본 것보다 뒤집어쓴 게 많아서 그렇지.
"좋아, 그럼 이렇게 하지."
결국 프란츠가 양손을 들어 올렸다.
무조건 항복선언이었다.
"다가올 3월 1일, 선왕 폐하의 1주기를 맞이하여 고모님과 친애하는 사촌 루이를 기일미사에 초청하도록 하겠네."
"루이라고 하심은-."
"물론 프랑스 왕국의 루이 말일세."
프란츠가 빙그레 미소 지었다.
"그래도 사촌 형제가 외삼촌의 장례식에 함께하지도, 짐의 즉위식 날 그 흔한 축하사절단 한번 보내주지도 않았으니 하다못해 기일미사에는 함께해야 하지 않겠나?"
이번만큼은 재상이나 신료들도 반대하지 않았다.
함부로 반대하면 프란츠만이 아니라 합스부르크 왕조의 가족사를 건드렸다며 낭패당할 위험이 너무 컸을뿐더러, 결말이 너무도 뻔했기 때문이다.
아무렴 파리에서 저 꼭두각시 소년왕이 손쉽게 도망칠 수 있도록 도와줄 리가 없잖은가?
그렇다고 대리인을 보내겠다고 하면 마리아 고모님께서 와야지만 인정하겠다고 하면 그만이고.
결국 이번 일은 루이 17세의 국왕 신분은 거짓이오, 그는 단지 저 폭도공화국의 인질 신세에 불과하다는 걸 전 유럽에 상기시켜줄 것이다.
그들 합스부르크는 루이를 구출하겠다는 핑계를 내세울 수 있게 될 것이고.
"내 마지막으로 고모님을 뵌 적이 언제였던지."
프란츠의 뻔한 너스레였다.
신료들이라고 그걸 모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저지대에서 반란이 일어날 때까지 기다리는 것보단 일찌감치 원흉을 제거하는게 최선이라는건 그들 모두 동의하던 바.
빈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루이 17세를 초청하고, 다시 당연하다는 듯이 파리에게 거절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