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9화 (69/154)

속전속결

오스트리아-프로이센 연합군 막사.

"···내가 늙은 건가?"

오스트리아-프로이센 연합군 총사령관 카를 빌헬름 페르디난트 원수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의 눈앞에는 정보원들이 가져온 적군의 배치도가 탁자 위로 펼쳐져 있었다.

스트라스부르의 알자스 방면군 3개 군단, 라임스의 저지대 방면군이 2개 군단.

도합 5개 군단으로 전선군만 13만.

트루아에 진을 친 중앙사령부에 배치된 예비대가 다시 3개 군단으로 약 8만.

마르세유의 북이탈리아 방면군 9천, 낭시의 별동대 8천에 기타 잡다한 부대를 합하여 약 2만.

도합 25만, 9-10개 군단으로 오스트리아-프로이센 양국을 합하여 15만을 동원한 연합군을 웃도는 무시무시한 동원력이긴 하나···.

"로스탕은 어디 갔나? 하다못해 데마레는? 바옌스야 늙어 죽었다 쳐도, 내가 이름을 아는 장수가 라파예트와 로샹보 이 두 사람밖에 없다고?"

"로스탕 장군은 포병학교에, 데마레 장군은 쿠데타를 모의하다 퇴역하여 예비역으로 물러났다고 합니다."

"기가 막히군. 말세야, 말세."

그들 모두 7년 전쟁 당시 젊다 못해 새파랗게 어렸던 그와 맞섰던 프랑스의 이름난 명장들이었건만.

특히 로스탕의 경우에는 전쟁 뒤에도 몸소 고안한 대포를 도입하고 왕국군을 위하여 포병대를 개혁하는 등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제아무리 원수가 배치도를 뚫어지게 노려봐도 그 위대한 프랑스의 명장들이 어디에도 보이질 않았다.

다들 30년 전에 비하면 늙고 병들었다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더더욱 후방이나 요충지를 우둑하니 지키고 있을 거라고 짐작했건만.

신대륙에서나 좀 이름을 날렸던 라파예트 후작이 총사령관에 로샹보 백작이 부사령관이라니.

기가 찼다.

그 라파예트가 제아무리 프랑스가 자랑하는 명장이라지만 아직 쉰도 안된 서른 줄 애송이고, 그나마 연로한 로샹보도 예순도 안된 팔팔한 장년이잖은가.

제아무리 프랑스가 혁명 이래로 인재가 없어졌다지만 이런 대군을 이끌어본 적도 없는 애송이들에게 수십만 대군을 맡겼다니, 도저히 보고도 믿어지지를 않았다.

"애초에 이 뒤무리에라는 친구는 누군가?"

척.

페르디난트 원수가 무명의 알자스 방면 사령관을 지목했다.

"아, 샤를프랑수아 뒤무리에는 프랑스 육군의 전임 사령관으로-."

"혁명 이후 말고, 혁명 이전에 무엇을 하던 친구였는지만 말하게."

"혁명 이전에는 25년 전 코르시카에서 군수참모부장으로 일했던 것이 군인으로서 가장 높은 명예였습니다."

"그러니까 일개 군수참모부장 따위에게 8만이라는 대군을 맡겼다는 말인가."

허.

"미안하지만 잠깐 막사 바깥에서 좀 웃고 돌아오겠네."

"뜻대로 하십시오, 전하."

도대체 누가 감히 프리드리히 대왕 생전부터 총애를 한 몸에 받았던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을 말릴 수 있을까.

그리고 설령 페르디난트가 프로이센의 원수이자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아니었더라도 아무도 그를 말리진 않았을 것이다.

물론 그들 또한 전쟁에서 적들을 함부로 얕잡아보는 것보다 위험한 짓이 없다는 걸 모르지는 않았지만-.

지금 적들을 보라.

얕잡아보지 않게 생겼는가?

당장 그들조차 이름을 알던 명장들은 온데간데없고, 총사령관이라는 건 그나마 명장이라 이름을 떨쳤다지만 쉰도 안 먹은 애송이이며, 방면 사령관이란 놈은 혁명 전까지 군수참모부장이었단다.

그 예하 장군들은 더욱 기가 찼다.

기병대장이라는 놈은 혁명 전까지 사병계급을 전전하던 여관집 주인 아들.

북이탈리아 방면은 아예 생각도 안 하고 있는 거지 그냥 현지 의용대 대령에게 방면 사령관을 맡겼다는데, 이 마세나라는 친구는 혁명 전까지 준위로 복무한 게 마지막인 일개 부사관이었다.

그나마 저지대 방면 사령관은 7년 전쟁 때 그들 프로이센과 겨룬 적이 있으며 혁명 이전에 사령관이라는 지위에 오른 정통파 군인 프랑수아 켈레르만이 나섰으나···첩보가 맞다면 그는 공세가 아니라 진지와 참호 구축에 집중하고 있다고 했다.

경험 많은 군인조차-아니 오히려 경험 많은 군인이기에 더더욱 민병대나 다름없는 병사들을 믿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 이 켈레르만을 제하자면 하나같이 역량미달이오, 혁명 이후 평민 출신이라는 이유로 말도 안 되는 출세를 거듭한 뻥장성들 뿐인데 숫자에 기죽을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오와 열을 맞추어 나란히 걷는 것조차 못할 오합지졸들을 이끄는 뻥장성들이 그들의 적이라니.

상무 정신 투철한 프로이센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착실하게 공부하고 단련하며 차근차근 공훈을 쌓아 원수라는 영예를 거머쥔 페르디난트로서는 비웃음을 참을수가 없었다.

"좋아, 속전속결로 가지."

짝.

막사 바깥에서 한바탕 호탕하게 웃고 돌아온 페르디난트 원수가 가볍게 손뼉을 치며 좌중의 이목을 환기했다.

"괜히 시간을 끌면 끌수록 저지대의 폭도들에게 근거 없는 자신감을 불어넣게 될걸세. 내가 몸소 중군을 이끌고 알자스에서 뒤무리에를 밀어내겠네. 자네들은 켈레르만이 함부로 저지대를 넘볼 수 없도록 견제하면서 마르세유의 의용군을 가볍게 주물러주세나."

"하오나 전하, 사르데냐는 중립을 선언했사옵니다. 피에몬테를 지나려 한다면 자칫 저들에게 안 좋은 신호를 줄지도 모릅니다."

"대신에 우리에겐 제노바가 있잖은가? 카이저께서 내게 미리 공화국에 양해를 구해두시겠다 언질을 주셨으니 자네들은 걱정할 필요 없네."

물론 그게 언질이라는 이름의 협박일 거라는 건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졸지에 정불가도를 강요당하게 된 제노바 공화국으로서는 억울해 미칠 테지만-어쩌겠는가.

이웃 토스카나가 카이저 프란츠의 영지인데.

하필이면 카이저와 이웃사촌이면서 사르데냐만큼 강성하지도 않다는 게 그들의 죄라면 죄였다.

"그리고 어차피 고작해야 의용군이잖은가. 우리 프로이센군이 숫자만 많은 오합지졸을 겁낸다면 천상의 프리드리히 대왕께서 노하실 테지. 그 마세나라는 친구에게 4개 여단이 있다던가? 자네들이 알아서 딱 2개 여단만 차출해서 박살을 내주게. 단, 너무 깊이 추격하지는 말고."

"명 받들겠습니다, 전하."

척.

이 앙드레 마세나라는 놈이 패퇴한다면 그제야 발등의 불이 떨어진 개구리들도 마르세유 방위를 위해 좀 더 제대로 된 군대와 사령관을 배치하게 될 터.

그럼 저들이 병력을 차출하는 만큼 알자스나 저지대 방면이 취약해질 것이라는 타당한 전략이었다.

어차피 저지대야 함부로 병력을 빼기 부담스러운 합스부르크의 아킬레스건이니 지금처럼 켈레르만이 참호 구축을 우선한다면 이대로 대치 상태로 내버려 두면 그만이고.

현 오스트리아-프로이센 연합군 15만 대군 중 페르디난트 원수가 몸소 이끄는 7만의 주공이 뒤무리에가 이끄는 알자스 방위군을 짓이기고 단번에 파리로 진격한다면-.

"···응?"

잠깐.

"이 적 3개 여단은 왜 방면군과 떨어져 있는 건가?"

"아, 그것이···."

페르디난트의 참모들이 한참을 주저하다 입을 열었다.

"소관들도 잘 모르옵니다."

"모른다고?"

"예. 듣자 하니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라는 적장이 이끄는 별동대라고 하온데-."

"혁명 전 이력만 말하게."

"포병 소위였사옵니다."

풋.

"푸훗···!"

이번에야말로 페르디난트 원수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막사에서 웃음을 터트린다는 게 얼마나 금기시되는지.

자칫 군의 기강을 무너트릴지 모르는 사령관으로서의 결점이라는 걸 알면서도 조소를 참으려야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일개 소위한테 3개 여단을 맡겼다? 심지어 방면 사령관의 지휘를 받지 않는 단독편제라고?"

"소관들이 전해 들은 바로는 그렇사옵니다."

"저놈들이 기어이 미쳤나 보군. 아니면 어지간히 대단한 후원자를 등에 업었거나."

"예. 소문에 의하면 저 나폴레옹이라는 사내는 로베스피에르의 오른팔이라고 하였사옵니다."

"···차라리 듣지 않는 편이 나을 뻔했나."

천하의 프랑스군이 여기까지 추락하다니.

7년 전쟁 당시 그들을 패망 직전으로 몰고 갔던 유럽 제일의 육군대국은 어디 가고 일개 폭도의 오른팔이 거의 1만에 육박하는 대군을 자유롭게 다루게 되었다는 말인가.

이제와서는 오랜 숙적을 향한 비웃음보다도 안타까움과 서글픔이 앞서는 듯했다.

"제군들."

어느덧 냉정을 되찾은 페르디난트 원수가 찬찬히 참모들의 면면을 둘러보았다.

조금 전까지 적들을 비웃고 마음껏 깔보던 노장의 오만은 더는 온데간데없었다.

불과 수년 전 압도적인 교환비로 네덜란드 민주애국당의 반란을 진압하고 오라녜공이 권좌를 되찾을 수 있도록 도왔던 프로이센 왕국 제일의 야전 지휘관만이 있을 뿐.

지난날 민주주의를 부르짖던 네덜란드 공화국의 폭도들이 그의 손에 모조리 재로 돌아갔듯이, 이제부터 파리의 폭도들 또한 그리되리라.

"우리가 이만 저 프랑스를 장사 보내주세나."

오롯이 전성기의 영광만이 두고두고 기억될 수 있도록.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연합군은 일제히 폭도들을 향하여 진격하기 시작했다.

***

낭시.

"시작되었군."

꾸깃.

파발이 급히 전해온 서신을 구기며 나폴레옹은 잠시 한창 전장을 수습하는 와중일 동쪽을 바라보았다.

페르디난트 원수가 이끄는 적 주공이 스트라스부르에서 뒤무리에가 이끄는 알자스 방면군과 초전을 치렀다는 내용의 보고였다.

그의 시선에서 결과를 평가해보자면 초전은 알자스 방면군의 전술적인 패배, 그리고 전략적인 승리.

고질적인 왕당파 장교들의 태업과 민병대 특유의 훈련 부족을 노출하면서 2 대 1에 달하는 교환비를 기록했으나, 한편으로는 적들의 스트라스부르 점령을 성공적으로 저지하면서 시간을 벌었다.

만일 이 서신대로 스트라스부르 전투 한 번에 이미 쌍방을 합하여 1만에 근접하는 사상자가 발생했다면 제아무리 7만 대군을 이끌고 온 페르디난트라도 한동안은 전열을 정비해야 할 터.

아니면 반대로 더욱 큰 피해를 각오하고서라도 2차 공세에 나설 수도 있겠지만, 그 경우에도 페르디난트의 주공은 스트라스부르에 한동안 묶여있게 될 것이다.

좌우지간 나폴레옹의 별동대가 적의 견제를 신경 쓰지 않고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귀하디귀한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이제 어찌하면 좋겠나?"

나폴레옹이 그의 참모장, 루이알렉상드르 베르티에를 흘겨보았다.

이례적으로 로베스피에르 수상이 직접 군내 인사에 개입해가며 추천한 사내였다.

어차피 이 별동대 자체가 그가 주도한 거나 다름없으니 참모장까지 직접 고르겠다는 핑계이긴 했는데···과연 이게 그로 인한 정치적 반발을 감안할만한 모험이었는지는 나폴레옹으로서도 아직 잘 알 수 없었다.

나폴레옹으로서도 이 베르티에라는 친구를 신뢰할 수 있느냐와는 별개로 거의 아버지뻘 되는 참모를 부리는 게 처음엔 영 불편하기만 했고.

그래서 이번에도 괜히 눈치나 주려고 한마디 툭 던진 거였으나.

"어차피 뒤무리에 장군을 구하러 가실 생각은 없으시잖습니까?"

"···뭐, 그렇긴 하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날카로운 답변에 나폴레옹은 내심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그래, 지금은 뒤무리에를 구하러 갈 때가 아니다.

구하러 가봤자 왜 구하러 왔냐는 소리부터 돌아올 게 뻔하고.

아무렴 쿠데타에 동참할 만큼 출세욕이 지극한 양반이 끔찍한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초전을 잘 이겨낸 다음 나폴레옹 같은 코흘리개가 도와주겠다며 달려오면 기뻐할까?

그럴 리가 없다.

보나 마나 절 모욕했다고 여기거나, 아니면 공훈을 도둑질하러 왔다고 여길 것이다.

고로 저쪽에서 먼저 도와달라 숙이지 않는다면 그냥 모르는척하는 게 맞다.

뒤무리에도 차라리 후방의 라파예트에게 원병을 청했으면 청했지, 나폴레옹의 도움 따윈 바라지도 않고 있을 테니까.

"그럼 지금 내가 어디로 갈 작정인지도 알겠나?"

나폴레옹이 히죽 웃었다.

이번에야말로 이 아버지뻘의 참모장을 골탕 먹일 작정이었다.

"흠, 잠시만 생각할 시간을 주시겠습니까?"

한데 베르티에는 잠시 턱을 쓰다듬으며 홀로 골똘히 생각하더니.

"곧장 메스로 북상하여 라인란트로 진입해 적 영내를 엉망진창으로 헤집어놓으려는 것 아닙니까?"

"···자네 혹시 내 머릿속에 들어갔다 왔나?"

"설마요. 이 세상에 그런 오컬트 따위는 없습니다."

아니, 아무리 봐도 넌 초능력자가 맞는 것 같은데.

나폴레옹은 한참 동안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베르티에를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혹시 무슨 마술을 부리는 건 아닌가.

일전에 로베스피에르의 정적들이 그를 집시 주술사라고 불렀듯이 이번에야말로 그에게 진짜 집시 주술사를 소개해준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어서였다.

"각하?"

"···아니, 아무것도 아닐세."

하지만 아무리 관찰해도 그런 낌새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렇다면 정말로 우연히 생각이 맞아떨어졌을 뿐이라는 것.

'도대체 막시밀리앙 동지는 어디에서 이런 친구를 발탁해온 거지?'

새삼 제가 만만치 않은 줄을 잡았다는 실감에 나폴레옹은 공포 반, 전율 반으로 몸을 떨었다.

"지금 우리 군이 저지대로 북상한다면 저지대 반란에 대비하여 합스부르크가 진주시킨 2군과 맞부딪히게 될 것입니다."

베르티에가 입을 열었다.

"그럼 다 합하여 8천에 지나지 않는 우군으로서는 적군의 바다에 빠져 익사하고 말겠지요. 물론 그만큼 현지 협력자들을 마음껏 충원할 수 있겠지만, 그 경우 일개 별동대에게 허락된 자율권을 넘어가게 되니 뒷감당이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그래, 거기까진 나와 생각이 일치하는군. 그래서 왜 하필이면 라인란트인지도 알겠나?"

그야 당연히.

"8천 명이면 하루 안에 함락시킬 수 있는 소국들이 사방에 즐비하면서도 고작 별동대 8천 명을 먹여 살리기엔 과하리만큼 풍족한 지역이기 때문이지요."

"완벽해."

짝짝짝.

이번에야말로 나폴레옹은 베르티에를 향해 박수갈채를 보냈다.

초능력이건 단순히 머리가 좋아서건 여기까지 마음이 맞는다면 이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베르티에는 그를 섬기기에 부족함이 없는 최고의 참모장이었다.

펄럭.

"앞으로 우리 군은 단 하루도 지체해서는 안 되네."

나폴레옹이 품에서 작전지도를 펼쳤다.

"늦어도 다음 달까지는 라인란트의 모든 도시를 약탈한다고 생각하면 될 거야. 저 스트라스부르의 페르디난트가 보다못해 뛰쳐나올 때까지 우리는 약탈하고, 징발하고, 불사를걸세."

"흠, 너무 깊숙이까지 진입하는 것 아닙니까? 자칫 파리와의 보급선이 끊어질지도 모릅니다만."

"왜 보급선이 필요한가?"

나폴레옹이 코웃음을 쳤다.

"말했잖은가. 모조리 약탈할 거라고. 먹는 것도, 자는 것도, 입는 것도 전부일세. 우리가 앞으로 신경 써야 할 건 화약과 탄약 이 두 가지뿐이야. 우리 군은 앞으로 한시도 쉬지 않고 이동할 거고, 이동하는 길에 보이는 모든 것을 파괴하고 불사를걸세."

그제야 베르티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적군은 전리품과 급여를 목적으로 모여든 용병.

함부로 약탈과 현지 징발을 허용하기 시작하면 그 즉시 군기가 무너질 수밖에 없다.

그야 어차피 평생 군인으로 복무하면서 벌 돈을 고작 하루 만에 벌어들였는데 누가 더 이 고생을 계속하고 싶겠는가?

반면 그들 프랑스군은 조국을 위해 싸우겠다는 애국심으로 모여든 국민군.

전리품을 챙긴 건 챙긴 거고, 약탈이 끝나면 다시 부대로 돌아오게 되어있다.

하물며 라인란트는 별동대를 먹여 살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부유한 지역이라는 걸 그들 모두 알고 있는바.

보급이라는 제약마저 사라진 나폴레옹 부대는 정말로 적들의 혼을 빼놓는 기동전을 보여줄 수 있으리라.

"한 가지만 덧붙여도 되겠습니까?"

베르티에가 입을 열었다.

"물론이지. 무슨 일인가?"

"민가보다는 귀족이나 상회들을 우선하여 약탈합시다."

"글쎄, 그럼 저항이-아."

뒤늦게 베르티에의 의도를 파악한 나폴레옹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들은 혁명군.

기왕이면 힘없는 민중을 괴롭히는 것보다는 사병들이나 용병과 교전하게 되더라도 부유하고 힘 있는 자들을 약탈하는 게 이래저래 명분이 산다.

지금 나폴레옹이 수만 대군을 이끌고 있으면 모를까, 경무장한 8천 명의 별동대 정도면 부자들만 약탈하고 다녀도 능히 부양할 수 있을 테니까.

"베르티에, 자네는 천재야."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베르티에가 수줍게 머리를 긁적거렸다.

하지만 그의 머리에서 나온 작전은 조금도 수줍지 않았다.

나폴레옹 사단은 개전과 동시에 라인란트 전역을 유린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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