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2화 (72/154)

괴물

빈.

"그래, 다들 어디 한번 속 시원하게 변명들 좀 해보시게."

카이저 프란츠 2세가 망연자실하여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니까, 지금 일개 포병 소위 하나 당해내지 못하여 라인란트가 무너지고 있다는 말인가? 고작 준위 하나를 당해내지 못하여 토스카나가 위태롭고?"

"폐, 폐하. 그것이-."

"다들 입이 있으면 어디 설명을 해보란 말이야! 그래, 저지대야 그럴 수도 있다고 이해해주겠네! 반역향에! 하필이면 라파예트가 적수였으니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도대체 라인란트와 토스카나는 뭔가? 페르디난트 그놈은 도대체 어디서 뭣하고 있는 게야!"

쾅!

노골적인 분노였다.

재위 10년 차를 훌쩍 넘겼으면 모를까, 아직 보위에 오른 지 1년밖에 지나지 않은 신임 카이저가 공적인 자리에서 보여도 될 감정 기복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 경우엔 오히려 그가 보위에 오른 지 1년도 안 된 군주였기에 신료들은 차마 그에게 뭐라고 따져 물을 생각도 못 하고 고개를 조아릴 수밖에 없었다.

그야 친정에 나선 것도 아닌 고작 재위 1년 차의 군주에게 무슨 졸전의 책임을 묻겠는가?

군제가 되었건 장성들이 되었건 죄다 신료들과 선왕이 의논하여 정한 것들 뿐이었는데.

차라리 너희 아버지께서도 동의하신 일들이었다고 물고 늘어진다면 모를까, 현재로선 프란츠를 제외한 모든 신료가 이번 졸전의 책임자 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선왕을 물고 늘어지는 순간 갑작스러운 의문사부터 시작해서 이번 전쟁의 직접적인 명분이 된 기일미사까지 다양한 역공을 뒤집어쓰게 될 테고.

"고정하시옵소서."

결국 이를 보다 못한 재상이 한 발짝 앞으로 내디뎠다.

그제야 프란츠 또한 고함을 멈추고 가만히 그를 노려보았다.

어디 계속해보라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나흘 전, 폐하의 충성스러운 함대가 성공적으로 튀니스를 타격하여 제국의 위엄을 온 지중해에 떨쳤다고 하옵니다."

함락이 아닌 타격.

허나 이것만 해도 토스카나를 괴롭히던 바르바리 해적단에겐 충분한 경고가 되리라.

어차피 저들은 이번 전쟁의 직접적인 관계자도 아니고, 프랑스를 위하여 합스부르크 함대와 싸울 의리도 없으니 이제 주저 없이 알제로 물러나려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바르바리 해적들에게 신세를 지고 있는 앙드레 마세나와 프랑스군 또한 별수 없이 후퇴하거나 아니면 제노바와 사르데냐에 아쉬운 소리를 하게 될 터.

어느 쪽이건 토스카나가 조만간 안전해지리라는 예감에 그제야 프란츠도 조금이나마 표정을 고쳤다.

"그래, 그럼 내 친애하는 남동생 페르디난도도 겨우 안심할 수 있겠군. 그래서, 라인란트는 어떻게 대처할 계획인가?"

"···그건."

침묵.

재상은 물론이오, 전쟁 장관을 비롯해 이 자리에 참여한 내로라하는 장성 중 누구 한 사람 나서려 하지 않았다.

그야 지금 저 나폴레옹이라는 놈이 써 내려가고 있는 신화를 보고 있자면 도저히 나설 엄두가 안 날 수밖에 없었다.

그간 저 나폴레옹 사단과 그에게 협력하는 반란군을 무찌르겠다며 용기 있게 나선 합스부르크의 용사가 단 한 사람도 없었던 건 아니었다.

애초에 무명의 장군이라고 얕잡아보았던 걸 호되게 꾸짖으면서 몸소 독일 전역에서 끌어모은 의용군과 용병대를 이끌고 라인란트로 향한 의로운 제후들도 수도 없이 많았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구 한 사람도 뜻을 이루지 못했다.

나폴레옹 사단을 무찌르겠다며 나선 작자들은 거꾸로 무찔러졌고, 나폴레옹을 얕잡아본 게 문제라며 훈계하던 이들은 그들조차 나폴레옹을 얕잡아봤다는 사실만 만천하에 폭로했다.

도대체 어떻게 사람이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수배에 달하는 적을 연달아 무찌르고 다닐 수 있다는 말인가?

저건 그야말로 인간의 인지를 벗어난 존재요, 그동안 그들이 경험해보지 못했던 사람의 형상을 한 재앙임이 분명했다.

폭풍우나 해일처럼 맞서려고 할 게 아니라 도망치거나 피해를 줄일 준비를 해야 하는 자연재해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 자연재해가 사람의 의지를 가지고 연합군의 전쟁 수행 능력을 파괴하는 한편 혁명정신을 퍼트리겠다며 날뛰고 있었으니.

그들로서는 그저 멍하니 저 나폴레옹 신화의 탄생을 목도하는 것밖에 달리 아무것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차라리 라인란트를 포기하세나."

뿌득.

또다시 눈치만 살피기 바쁜 신료들을 목격한 프란츠가 이를 악물었다.

어차피 누군가는 해야 할 말이라면 카이저인 그가 말을 꺼내기로 한 것이다.

"저 나폴레옹이라는 놈이 아무리 날뛰어봐야 별동대고 사병이나 용병이 당한 거지 짐의 제국군이 상한 건 아니잖은가. 이만 저놈이 날뛰고 싶은 대로 날뛰도록 두세나."

"하오나 폐하, 이대로 라인란트를 포기한다면 뭇 제후들이-."

"실망하겠지. 그래, 그래서 이번엔 누가 라인란트를 구하러 가볼 텐가? 내 저 나폴레옹이라는 놈을 무찌를 수 있는 용사가 있다면 기꺼이 우리 합스부르크는 다음 황제선거에서 보헤미아 국왕으로서의 한 표를 양보하겠네."

자그마치 차기 카이저에 도전할 권리를 주겠다는 실로 파격적인 조건.

하지만 그럼에도 아무도 나서려 하지 않았다.

프란츠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조소하며 덧붙였다.

"아직 우리에겐 15만 대군이 있잖은가."

전황이 이 지경이 되기까지 아직도 15만 대군이 고스란히 남아있다는 게 사실 더욱 수치스럽기는 했으나.

좌우지간에 15만 대군은 아직 건재했다.

비록 동맹 프로이센의 뚱보 식충은 내 이럴 줄 알았다면서 어떻게든 도망치려고 악을 쓰고 있고, 잇단 난타전에 적잖은 정예병이 소모되어서 급히 숫자를 채우기도 했지만.

아무튼 연합군 총사령관 페르디난트 원수에겐 15만 대군이 남아있었다.

7년 전쟁을 비롯하여 그간의 전쟁사를 돌이켜볼 때 단 한 번이라도 대등한 대군이 맞붙는 대회전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둘 수 있다면 능히 전세를 뒤집고도 남을 대군이었다.

"페르디난트 대공에게 지금 당장 총공세를 주문하게."

고로, 프란츠는 주저하지 않았다.

아마 지금쯤 전선에서도 비슷한 판단이 섰을 테니까.

어차피 이대로 시간을 더 끌었다간 저 나폴레옹이라는 놈에게 라인란트의 모든 소국이 멸망할 판이다.

저 나보 놈을 잡을 묘수도 없으면서 그때까지 질질 시간을 끌면서 버틸 바에야 죽이 되건 밥이 되건 최후의 도박이라도 걸어보는 게 낫다.

아무튼 저 나폴레옹이 제아무리 빨라봤자 라인란트 너무 깊숙이까지 침투한 업보로 전장에 때맞춰 등장하지는 못할 테니까.

그래서 저 라파예트와 뒤무리에 중에 누가 더 만만한지야 페르디난트가 어련히 현장에서 보고 골라주겠지.

좌우지간 어떻게든 저 나보 놈이 없는 사이에 방면군 단 하나만이라도 무너트릴 수 있다면 곧장 파리로 향하는 길이 열릴 것이다.

그럼 마리 앙투아네트와 루이 17세 구출이라는 당초의 목표야 물 건너갔더라도 하다못해 조금이라도 더 유리한 조건에서 휴전조약에 나설 수 있을 터.

"내 직권으로 원수에게 벨기에 주둔군을 포함하여 총독부의 모든 것을 징발할 특권을 부여하겠네. 헌병까지 포함하여 남김없이 징발하라고 전하게. 대신에, 무슨 일이 있어도 저 폭도들을 무찌르고 돌아와야 하네."

"···명 받들겠사옵니다, 폐하."

꾸벅.

신료들은 아무런 반대 없이 얌전히 고개를 조아렸다.

엄연히 프로이센군 소속인 페르디난트에게 벨기에 총독부를 좌지우지할 권한을 부여하겠다는 엄청난 선언이었음에도 말이다.

그것이 전세가 이미 기운 뒤에도 최선을 다해 발버둥 치고 있는 프란츠를 향한 일말의 존경이자 전시 총사령관 향한 경애였다면 다행이겠으나-.

'졸렬한 놈들.'

···글쎄, 그렇게 기특한 충신이 과연 이 자리에서 몇이나 될까.

저들 중 대부분은 패전의 책임을 지고 싶지 않아서, 그리고 훗날에라도 이번 일이 프로이센이 벨기에 문제에 간섭하는 등의 소란이 되었을 때 프란츠를 탓하기 위함이라는 걸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군주란 모름지기 책임지는 자리일진대.

결국 제아무리 부조리하고 불리한 책임이라고 할지라도 군주가 짊어지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는다.

고로, 언제나 그래왔듯이 인내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그가 합스부르크의 왕자로 태어나 지금껏 교육받고 또한 보아온 카이저라는 자리의 책임이오, 무게였기에.

'제발 한 번만, 단 한 번만 보란 듯이 이겨다오.'

그럼 저 귀여운 사촌 루이와 화친하여 또 예전처럼 합스부르크-부르봉 두 가문이 유럽의 항구적인 평화를 도모할 수 있지 않겠는가?

왜 피를 나눈 한 가족들이 저 무례한 농노들 탓에 이리도 다투어야 한다는 말인가.

그들 중 피를 갈망하고, 전쟁을 선망하는 악인은 단 한 사람도 없을진대.

모쪼록 이 땅에 다시 한번 평화와 안녕을 약속해달라며, 프란츠는 그에게 신성한 황권을 내리셨다는 전지전능한 조물주께 간절히 기도를 올렸다.

***

트루아.

"아으, 뻐근하다."

우두둑.

늘어지게 기지개를 켜며 프랑스군 기병대장, 조아생 뮈라가 하품을 늘어놓았다.

그만큼 전날 전투가 거칠고 힘들어서-가 아니었다.

애당초 그가 떠맡게 된 기병 군단은 지금껏 전장에 나서기는커녕 트루아에 진을 친 중앙사령부에서 훈련에 훈련만을 거듭하고 있었으니까.

이런 말도 제대로 탈 줄 모르는 오합지졸들로 나서봤자 아까운 군마만 잃을 뿐이라나, 뭐라나.

처음에는 누굴 얕잡아보는 거냐고 라파예트에게 아득바득 대들었던 뮈라였으나, 기병대장인 뮈라야 아무튼 부하란 놈들이 말은커녕 나귀나 몰 줄 아는 어중이떠중이투성이라는 걸 목격한 뒤로는 군말 없이 훈련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렴 최소한 말 위에서 총과 칼 정도는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어야 기병대로 써먹을 것 아닌가?

제아무리 망나니 같은 뮈라라고 해도 훈련의 중요성을 모르지는 않던바, 몸소 신병들이 보는 앞에서 그의 기마술을 마음껏 뽐내며 연일 고된 훈련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역시 어제 간만에 뭐 받았다고 좀 너무 달렸나? 에이, 그 마지막 한 병만 참을걸···."

우웁.

···뭐, 그가 훈련에 진심인 것과는 별개로 지금 컨디션이 별로였던 건 전적으로 어젯밤 숙취 탓이었지만.

뮈라야 술에 만취하고서도 말 등에 올라타 거꾸로 설 수도 있는 용자인데 누가 그를 탓하랴.

지금껏 로베스피에르와 급진당 줄타기로 출세한 망나니라고 굳게 믿고 덤벼든 귀족 출신 기사님들 중 숙취에 절은 뮈라를 상대로 마상에서 단 5분이라도 버텨낸 이는 단 한 사람도 없었는데.

"대장!"

"···엉?"

순간 저 멀리에서 파발이 말을 타고 달려와 막사에서 막 걸어 나온 뮈라가 보는 앞에서 무릎 꿇었다.

"라파예트 총사령관께서 마침내 출진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그래?"

시큰둥한 반응.

긴장하거나, 기뻐하는 등의 반응을 기대했던 전령이 되려 놀라서 되물었다.

"···그, 그게 끝입니까?"

"그럼 내가 뭐 어떤 반응을 보여줬으면 좋겠는데?"

"기필코 이기겠다는 다짐이라던가, 아니면 적들을 모욕한다거나 이것저것 있잖습니까! 대장이 먼저 사기를 끌어올려 주셔야지, 벌써 맥이 빠지시게 하면 어찌합니까!"

"늬들이 맥이 빠지면 어쩔 건데?"

그러자 뮈라가 오히려 기가 막힌다는 듯이 쏘아붙였다.

그야말로 적반하장이었다.

"느그들 100명이 기가 살아서 열심히 싸우는 것보다 얼큰하게 취한 나 한 사람이 더 나을 텐데 무슨."

"아니, 아무리 그렇다지만."

"에이씨, 귀찮게 구네. 작전이고 사기고 뭐고 너흰 그냥 내가 가만히 있으라고 하면 가만히 있고, 내가 뛰라고 하면 내 등만 보고 따라오면 된다니까? 내가 앞장서서 다 쳐 죽이고 맛있게 요리하면 너희는 우걱우걱 받아먹고 잔반 정리 싹 하면-어머나 세상에."

뮈라가 슬쩍 손끝으로 목을 그었다.

"적 전멸, 우린 승리. 끝. 알겠냐? 이게 내 필승전략이라니까?"

전령은 더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어차피 반박해봐야 듣지도 않을 거라는 게 너무나도 뻔했을뿐더러, 저 망나니가 말하는 필승전략이 너무도 선하게 머릿속에서 그려졌기 때문이었다.

그야 훈련 와중에 달리는 말 위에서 뛰어내려 다른 말로 갈아타거나, 안장째로 사람을 뜯어내서 집어던지는 등 도저히 같은 사람이라고 믿어지지 않는 차력쇼를 보여준 뮈라 아닌가.

운 나쁘게 낙마하다가도 한쪽 팔로 땅을 딛고 폴짝 뛰어오르는 묘기까지 목격한 마당에 당신도 한낱 사람이고, 고작 일개 개인이 전황을 뒤집을 순 없다는 등의 지적은 무의미했다.

뮈라는 사람이 아니라 괴물이었으니까.

"그래서, 라파예트가 어디로 오라디?"

"옛! 지금 당장 메스로 동진하라고 하였습니다!"

"메스?"

잠시 골똘히 생각하던 뮈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거긴 라파예트가 지금 있는 곳에서 좀 먼데?"

"예. 총사령관께서는 이대로 예하 군단들과 함께 곧장 브뤼셀로 가실 예정이라고···."

"라파예트는 또 브뤼셀로 가?"

그럼 지금부터 뒤무리에와 합류하라는 소리인가?

확실히 적군이 뒤무리에를 표적으로 삼았다면 어쩔 수 없긴 하지만, 그래서 과연 이게 최선일까 하는 의문표가 내심 사라지질 않았다.

아무렴 라파예트가 마지막까지 트루아에 남겨두었던 뮈라 휘하의 기병 군단까지 동원했다는 게 과연 무슨 의미겠는가?

곧 이쪽이 가진 모든 걸 쏟아붓겠다는 소리이니 적들도 그만큼 모든 걸 건 최후의 도박을 걸어오고 있다는 소리 아닌가.

고작 개전한 지 반년도 안되어서 여기까지 전황이 진전된 건 좀 예상 밖이긴 하지만, 시기를 제하고 단순히 전개만 따지고 보면 현 상황에선 오히려 전형적이기까지 한 정공법이었다.

어차피 저들에겐 슬슬 이만 패배를 인정하고 항복하느냐, 아니면 최후의 모험이라도 걸어볼 테냐 두 가지 선택지밖에는 남아있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뒤무리에는 좀 부족한데···."

"대, 대장! 그러다 다른 놈들이 들으면 어쩌시려고!"

"에이, 그냥 들으라고 해. 솔직히 뒤무리에도 알걸. 그 양반도 한가락 하긴 하는데, 국운을 건 싸움에서 꺼낼 카드는 아니야."

뒤무리에에 추가로 라파예트까지는 조만간 달려올 예정이어야 그럭저럭 천칭이 맞아떨어지는 거지.

한데 그 라파예트는 또 저지대로 곧장 달려갈 예정이라잖은가.

아마 저쪽에서 저지대 주둔군까지 동원하고 있다는 첩보라도 습득했거나 아니면 지레짐작한 거겠지만, 뮈라로서는 너무 섣부른 판단 아닌가 하는 의혹을 지울 수가 없었다.

제아무리 뮈라가 말과 함께 태어났다고 자부하는 인마일체의 경지라지만, 국운을 건 대전투가 되면 뮈라 혼자서 필승을 보장할 자신은 없는데···.

"뭐, 어련히 라파예트가 준비했겠지."

괜히 돌머리 굴려봤자 어디에 쓰랴?

그가 머리 써봐야 아무 쓸모 없다는 걸 너도 알고 나도 알고 뮈라도 아는데 괜히 시간 끌어봐야 아무 소용 없었다.

5초간의 마라톤 회의를 끝마친 뮈라와 기병대는 곧장 기마하여 메스로 동진했고-.

"오, 한 석 달만인가? 난 반쪽이 되었는데 이 친구는 토실토실 술살이 올랐구만."

"···뭐야?"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그들보다 먼저 메스에 진을 친 뜻밖의 사내와 마주쳤다.

나폴레옹이었다.

"너 라인란트에 있었다면서? 갑자기 네가 왜 여기 있는 거야? 아, 그 적을 속이려면 아군부터-뭐 그런 거냐?"

"설마, 그냥 라인란트에서 여기까지 행군한 거지."

"그 거리를 행군했다고???"

사람이 말처럼 달리거나 새처럼 날개가 돋아 날아오기라도 했다는 말인가?

기가 막혀서 뮈라가 쏘아붙이려는데.

"다들 밤을 새워가면서 행군했네."

빈말이 아님을 증명하듯 난민이나 다름 없는 몰골의 나폴레옹이었다.

"식사도 그냥 비스킷 같은 거로, 아니면 근처 민가에서 대충 그때그때 징발한 거로 때우면서 말이야. 솔직히 나도 두 번 하라면 못할걸세. 어쩔 수 없이 해야 한다면 또 하겠지만."

"···미친놈."

이게 정녕 사람인가.

기진맥진하여 탈진 직전의 나폴레옹 사단의 면면까지 확인하니 더욱 기가 찼다.

구체적으로는 이렇게나 말도 안 되는 행군을 강요당하고서도 지치고 피폐해졌을지언정 전체 부대의 절반도 채 낙오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말이다.

새삼 로베스피에르가 왜 그리도 이놈을 곁에 두고 싸고돌았는지, 또 왜 파리에서 저놈을 두고 신화 속 주인공이라는 소리까지 나도는지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아무튼, 내가 우리 중 1등 맞나?"

"그래."

때마침 저 너머에서 보이기 시작한 뒤무리에의 군기를 흘겨보며 뮈라가 대꾸했다.

"네가 다 해 먹어라, 이 괴물아."

"고맙네."

괴물은 당연하다는 듯이 빙그레 웃었다.

작가의 말

나폴레옹의 행군속도는 고증입니다.

혁명전쟁 당시 프랑스군의 행군속도는 하루 평균 24km, 나폴레옹 개인의 최고 기록은 하루 80km로 엘바섬에서 탈출한 뒤 20일간 하루 평균 48km를 행군했습니다.

이는 동시기 연합군측 기록인 하루 평균 16km의 3배에 달하는 속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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