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0화 (80/154)

거래

라파예트를 통해서 탈레랑이 전해온 미국 측의 요청사항은 크게 세 가지였다.

하나, 혁명 이후 단절되었던 정규항로 재건과 입항절차 간략화, 목화 등 특정품목에서의 관세인하를 비롯한 종합적인 경제협력 확대.

둘, 미 해군 건군 지원.

셋, 통상동맹조약 완화.

이중 첫 번째는 우리 쪽에서도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현 18세기 말 미국은 국제금융자본과 혼자서 추축국을 압도했던 20세기의 초강대국이 아니라 담배와 목화가 대표적인 효자수출품을 차지하고 있는 목가적인 농업국가.

물론 나름대로 수력공장도 있고 은행들도 많다지만 유럽의 내로라하는 경제 대국들과 경쟁할 수준은 아니다.

그렇다고 못사는 나라라는 인상은 아니고 이래저래 가진 건 많은데 덩칫값을 아직 제대로 못 하고 있다고 해야 하나?

구태여 21세기로 비유하자면 대충 뉴질랜드쯤 되는 위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 뉴질랜드가 150년 뒤면 세계 경제의 절반을 차지할 예정이라서 그렇지.

"이정도야 뭐, 우리가 런던 몫까지 더 사주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한동안 설탕이고 커피고 공급이 모자라서 난리였었는데 목화와 담배라도 넉넉하게 들여올 수 있다면야 감지덕지하지요."

"그런데 사 오는 건 그렇다 치고 배는?"

"그거야 암스테르담이 있잖아요. 그리고 이번에 받아온 전쟁배상금은 아껴둬서 뭐할 겁니까? 이 돈으로 어서 해군부터 재건해야지요."

"하기야 그렇지요. 진짜로 선체가 썩어 문드러지기 전에 슬슬 따개비 정도는 벗겨줘야 하긴 했습니다."

결과 첫 번째 안건은 사실상 만장일치로 외무위원회를 통과.

두 번째 안건도 사실상 첫 번째와 한세트이기도 하고, 슬슬 원내에서 혁명 이후 해체되다시피 했던 대양해군을 재건할 필요성이 논의되던 참이라 이렇다 할 반대 없이 과반수를 넘겼다.

동맹 미국이 해군력을 증강하면 증강할수록 덩달아 우리가 부담해야 할 몫이 줄어들 거라는 합리적인 계산도 있었고.

"이건 날강도나 다름없습니다."

다만, 세 번째부터는 이야기가 갈리기 시작했다.

"지난날 우리 프랑스 왕정이 미국인들의 자주독립을 위하여 얼마나 많은 예산을 쏟아부었는지 기억하십니까? 자그마치 20억 리브르입니다. 이번 전쟁으로 신성로마제국으로부터 받아낸 5억 리브르의 4배를 저 대서양 건너에 쏟아부었단 말입니다."

한데 이제 와서 동맹을 완화하자니요.

마라가 눈살을 찌푸렸다.

"지금 사정이 여의찮다는 이유로 20억 리브르를 모르쇠 하겠다, 이거 아닙니까. 인간적으로 이전에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입니까?"

"그렇지만 마라 의원님, 저들도 아직 건국 초기라는 걸 고려해야지 않을까요? 제가 알기로 지금 미국엔 상비군조차 없이 민병대가 군대를 겸하고 있는 거로 알고 있습니다."

"실례합니다만, 수상 각하. 민병대가 군대를 겸하고 있던 건 우리나라도 피차 마찬가지 아니었는지요?"

···음, 듣고 보니 팩트라서 할 말이 없군.

나폴레옹이 이끄는 민병대를 민병대라 불러줘도 되는가, 하는 문제는 차치하고서 실제로도 지난 전쟁에서 우리 프랑스의 주력군이었던 국민위병은 정규 편성된 민병대에 불과했으니까.

뭐, 이제 슬슬 파리 조병창도 쌩쌩 돌아가고 있겠다 국민개병제도 도입되었겠다 어엿한 국민군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기야 하지만.

"우리가 저들에게 뭐 대서양 건너 유럽까지 대군을 파병해달라고 부탁한 것도 아니잖습니까!"

결국 마라의 말대로였다.

첫째야 미국이 영국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필요한 조치고, 둘째까지도 통상동맹조약에 근거하여 충분히 고려할만한 요청이었지만 셋째부터는 오히려 저쪽에서 도움을 받는 대신에 이런 걸 해드리겠습니다-가 들어와야 하는거 아닌가?

아니 뭐 우리도 혁명 이래로 바빠서 동맹으로서 신경 못써준 건 맞고, 당장 민병대밖에 없는 미국에 대단한 활약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긴 하지만 그래서 우리도 대단한 요구를 한 적은 없잖아.

누군 단돈 1억 프랑이 없어서 파산 선언할 뻔했는데 이 양키 놈들은 20억 리브르를 날름해놓고서 염치도 없네.

[한데, 왜지?]

뭐가?

[결국 모든 행동에는 원인이 있을 것 아닌가. 만일 우리 프랑스가 외교적으로 고립되고 전쟁에서도 완패하며 패망을 앞두고 있었다면 그야 당연히 동맹파기를 염두에 두어야겠지.]

하지만 우린 거꾸로 전쟁에서도 이겼고 외교적으로도 하나둘 정통정부로 인정받아 수교를 재개하고 있는데 거리를 두려 하는 건 말이 안 된다?

[말이 안 될 것까지는 없지만, 합리적인 행동은 아니지. 뭔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이유가 있는 것 같네. 다른 건 몰라도 시기가 너무 공교로워.]

흠-.

확실히, 머리를 식히고 생각해보니 집주인 놈의 말대로 어딘가 이상하다.

만약 루이 16세 모가지 자르고 전 유럽과 전쟁 중이라면 미국에서 이러는 것도 말이 되지만 지금은 오히려 더 친한 척을해야 정상 아닌가?

무엇보다 천하의 탈레랑이 이걸 파리에 고스란히 전해줬다는 것도 어딘가 묘하다.

분명 우리가 무언가 놓친 게 있을 텐데, 그게 도대체 뭘까.

보자, 우선 첫 번째 요청사항이 목화-.

[···잠깐, 목화?]

아하.

"이건 제 사적인 추측입니다만."

혼란에 빠져있는 원내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슬쩍 브리소를 돌아보았다.

"아마 흑인 노예 문제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흑인 노예 말씀이십니까?"

"예. 제가 알기로 목화 산업은 막대한 노예노동이 필요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아닙니까?"

"···맙소사."

그제야 대강의 사정을 짐작한 브리소 또한 골머리를 싸맸다.

그랬다.

처음부터 이건 미국 연방정부라기보다는 남부의 목화 농가들로부터 들어온 요구사항이었다.

차라리 우리 프랑스가 전쟁에서 졌으면 모를까, 전쟁에서 크게 이기고 해군을 재건하며 덩달아 뒤마 장군과 투생의 노예해방운동이 폭발적인 호응을 얻을 것 같으니까 미리 겁을 집어먹고 연방정부를 압박한 것이다.

이미 통상동맹조약으로 안보면에서 협력하고 있는 양국이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협력을 확대해나가면 그만큼 파리를 등에 업은 북부주의 노예해방운동도 힘을 얻을 수 밖에 없으니까.

경제적으로 더욱 밀접해지는 대신 통상동맹조약 완화로 거리를 둠으로서 워싱턴은 남부주와 북부주 사이의 균형을 맞추려 한 것이다.

"이 백인종의 수치들 같으니라고."

뿌드득.

브리소가 이를 갈았다.

"결국 저들 노예장사에 방해되니까 괜히 허튼 수작 말고 목화나 더 사달라, 이거잖습니까?"

"세상에, 사람들이 어찌 저렇게 파렴치할 수 있는지!"

"제 말이 그 말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신실한 기독교인이 노예제 같은 부도덕한 제도를 옹호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주여, 저 천박한 양키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은 그들이 범한 죄를 알지 못하나이다!"

그야말로 광란의 성토장이었다.

하하호호하며 만장일치로 나만의 작고 귀여운 미국을 애호해주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아예 깡그리 갈아엎을 기세들이다.

그런데 얘네들 내가 아이티 혁명 인정해주자고 했을 때 게거품 물었던 프랑스 국회의원들 맞나?

지금 이 자리에서 같이 욕해도 되는 건 브리소 포함해서 한 줌일 텐데.

[어차피 지들은 그때 이 자리에 없었다, 뭐 그런 거 아니겠나.]

아, 대다수는 초선의원이니까?

그것참 편리한 변명이군.

땅·땅·땅.

"정숙하십시오."

아무튼 대강 이게 어떤 사정에서 나온 이야기인지는 알겠다.

그럼 대응하기도 쉽지.

"친애하는 의원 여러분께 한가지 제안할 것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어차피 신성로마제국, 영국, 네덜란드와 차례로 수교한 이상 스페인과도 머지않아 수교해야 할 시점이잖습니까."

사실대로 말하자면 오히려 저쪽에서 수교해달라고 애걸하고 있지.

그나마 나폴레옹을 장기휴가 보내고 난 다음에는 좀 조용해지긴 했는데, 다음 차례는 보나 마나 자기들일 거로 생각했는지 종전조약이 채 마르기도 전부터 발바닥에 땀 나게 스페인 사절단이 파리와 마드리드를 오가고 있었다.

생도맹그 반란군 지원했던 것도 싹 철회하고, 아예 생도맹그 동쪽 산토도밍고까지 할양 할 테니까 제발 옛정을 봐달라나, 뭐라나.

공식적인 전쟁은 아니었더라도 비공식적인 식민지 전쟁 와중이었으니 할양까지야 그럴 법도 했지만, 솔직히 부르봉 왕조 시절 왕정 동맹까지 부활시키자고 설치는 건 좀 너무 과한 거 아닌가 싶었다.

[저기, 부르봉 왕조 시절이고 나발이고 아직 부르봉 왕정이네만.]

고래?

까마득히 잊고 있었네.

"우선 저 노예주들의 시건방진 요구를 받아들이는 대신, 스페인과의 수교 조건으로 루이지애나 반환을 끼워 넣도록 합시다."

"···그, 제아무리 스페인이 쇠약해졌다지만 총알 한 발 쏴보지 않고 루이지애나를 반환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그야 당연하지요."

왜냐하면.

"이건 노예주들의 선택을 까다롭게 만들기 위한 술책이니까요."

그제야 다들 이게 무슨 소리인지 눈치챈 듯 하나둘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그렇다.

오늘날 루이지애나는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7년 전쟁에서 패하여 상실한 프랑스의 식민 고토.

무엇보다 당시 프랑스와 스페인은 동맹국이었고, 루이지애나를 할양했던 건 영국이 패전한 프랑스에 북미 식민지를 모조리 포기하라고 했기에 차선으로서 동맹이었던 스페인에 양도했기 때문이었다.

그럼 한창 궁핍하고 국운도 저물어가던 그때와는 달리 프랑스가 신성로마제국을 대표하는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연합군을 상대로 완승했으니 동맹관계를 재건하는 대가로 루이지애나를 돌려달라고 요구할 법도 한 것이다.

[한데, 이럼 투생과 물라토들을 배신하게 되는 거 아닌가?]

말했잖아.

제아무리 스페인이 한물갔어도 총 한번 안 쏴보고 루이지애나를 돌려주진 않을 거라고.

결국 외교적인 위기가 고조될 거고, 루이지애나와 바로 이웃한 미국은 협상 타결이라는 낭보에 한숨 돌리기도 전에 까다로운 선택을 강요받게 될 거다.

그럼 우리에게 이것저것 양보받아놓고서 바로 모른 척 한 발 빼긴 쉽지 않을걸.

[반대로 스페인이 순순히 루이지애나를 반환한다면-.]

우리한테 호구 잡히는 거지 뭐.

대놓고 프랑스군에게 쫄았다는걸 만 천하에 자백하는 격인데 그럼 우리도 감 내놔라 대추 내놓으라 하면 된다.

아니 지들이 먼저 세게 나왔다가 쫄았는데 어쩔 거야.

정말로 스페인이 설설 기기 시작하면 물라토 처우개선 하라, 노예무역 폐지하라 등등 마음 가는 대로 갈구면 된다.

그래서 자국 노예주들에게 미움받는 거야 마드리드에서 알아서 감당할 문제고.

"이제부터 우린 저 신대륙의 형제들과 혁명의 적들을 엄밀히 분간해야만 합니다."

천천히 원내를 돌아보며 배에 힘을 불어넣었다.

"농민들이 도시인보다 보수적인 거야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노예제와 같은 비윤리적인 제도를 옹호하는 걸 보수적이기 때문이라고 묵인하기 시작한다면 그 누가 우리의 혁명이 도덕적이라고 믿어주겠습니까? 그건 보수적인 게 아니라 바로잡아야 할 수구반동입니다!"

"옳소!"

"감히 위대한 프랑스를 등쳐먹으려고 한 저 백인의 수치들에게 본때를 보여줍시다!"

"20억 리브르 돌려내라, 이 망할 놈들아!"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 저 신대륙의 도시인들에게 힘을 실어줍시다! 지금 우리 프랑스가 그러하듯이, 장차 뉴욕이 미합중국의 파리가 될 수 있도록 도웁시다!"

"""혁명 만세! 프랑스 만세! 중앙집권 만만세!!!"""

곧 사방에서 기립박수와 환호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날 의회는 모처럼 이렇다 할 의견대립 없이 대서양 너머로 혁명을 수출하기 위한 온갖 결의안들을 연달아 통과시켰다.

그게 정말로 혁명 수출이 목적이었는지, 감히 신대륙 촌놈 따위가 위대한 프랑스를 등쳐먹으려 한 대가였는지야 전지전능하신 조물주만이 알고 계시리라.

***

미합중국 찰스턴.

"아, 저기 오는구만."

"햐. 이게 도대체 얼마 만에 상선이냐."

사우스캐롤라이나의 항만노동자 올리버는 저 수평선 너머에서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상선의 등장에 나지막이 웃음을 터트렸다.

물론 그동안 이 찰스턴항에 단 한 척도 상선이 드나들지 않았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 선박들은 온통 지긋지긋한 성조기를 내건 미국 국적의 상선들이었으며, 개중 대다수는 저 멀리 대서양을 건너는 게 아니라 근해나 심하게는 강이나 오가고 마는 소형선들이었다.

그럼 경제가 활성화될 리가 없었다.

올리버가 비록 남들에게 경제란 이런 것이라고 설교할 수 있는 유식한 놈은 아니었지만, 최소한 큼지막한 상선이 항구를 자주 오가면 활황, 뜸해지면 불황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독립 이래로 10년 넘게 미국은 지긋지긋한 불황에 시달리고 있었다는 것도 말이다.

"진짜 귀하디귀한 손님이 오셨네."

"큭큭큭. 손님 맞아? 어쩌다 잠깐 들렀다 떠나는 집시 아니고?"

"어휴, 누가 아니래냐. 어지간히 애를 태웠어야지 몇 년을 목이 빠지게 만들었으니 원."

그렇기에 이날 찰스턴항에는 온통 요사이 보지 못했던 외국 국적의 상선을 보기 위하여 모여든 구경꾼들이 가득했다.

다들 독립 이전처럼 찰스턴에 다시 한번 활기가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사람들이오, 곧 사우스캐롤라이나 토박이들이었다.

점차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삼색기와 위풍당당한 선체에 누구나 탄성을 내지르던 찰나.

"어?"

외눈망원경으로 상선을 살피던 막내가 의아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검둥이들인데요?"

"에이, 넌 노예선 하루 이틀 보냐? 당연히 검둥이들로 빼곡하겠지."

"그게 아니라 선원들까지 온통 검둥이라고요."

그건 또 무슨 소리지.

"이리 줘봐."

결국 보다 못한 올리버가 막내에게서 망원경을 빼앗아 상선을 구석구석 살피기 시작했다.

막내의 설명대로였다.

상선은 온통 검둥이들로 가득 차 있었다.

가끔 상선 사관이나 장교로 보이는 이만 백인이었을 뿐.

그렇다면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불 보듯 뻔했다.

"해적선이다!"

곧이어 구경꾼들 사이에서 비명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해적이다! 해적이 나타났다!"

"젠장! 대륙해군은 대체 뭐 하고 있는 거야?!"

"그거 돈 없어서 가라앉힌 지가 언제인데 무슨!"

"모두 도망쳐! 조금이라도 높은 곳으로 피해라!"

땡땡땡-.

곧 종이 울리고 사방에서 비명이 터져 나오며 환영인파가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몇몇은 용감하게 저마다 총을 챙겨서 요격하자고 언성을 높이기도 했으나, 그다지 호응은 없었다.

아무렴 대포로 무장한 해적선을 이 거리까지 접근시켰으면 차라리 고지대로 물러나 방어선을 꾸릴 생각을 해야지 무슨 얼어 죽을 요격이란 말인가.

올리버와 항만노동자들 또한 얼른 각자 총을 챙겨서 고지대로 물러나려던 순간.

"···? 두목. 저것들 대포를 안 쏘는데요."

"뭐?"

이를 발견한 건 또다시 막내였다.

과연 막내의 말대로 해적선(?)은 근해까지 접근하여 멀뚱멀뚱하게 떠 있을 뿐 대포를 쏘거나 그 밖에 위협적인 행동을 일절 벌이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위협적인 행동을 벌이고 있는 거 닿지도 않을 게 뻔한 거리에서 해적선을 향해 마구 총알을 낭비하고 있는 찰스턴의 자경대였다.

"어떻게 하죠, 두목?"

올리버는 선뜻 대꾸할 수 없었다.

이 자리의 책임자였을 놈은 벌써 저 멀리 도망쳐버렸고, 주민들은 각자 무장하여 응전할 태세를 갖추고 있었으며 애당초 그는 항만에서 오래 일했을 뿐인 일개 노동자에 불과했다.

당연히 막내가 보채봐야 무언가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지만.

"이, 일단 배를 대보자고."

"···괜찮을까요?"

"어차피 지금 이 거리에선 도망도 못 쳐."

하다못해 저놈들이 상선이길 기도하는 수밖에.

결국 월권을 행사한 올리버와 함께 찰스턴의 항만노동자들은 해적선을 부둣가에 댔고.

"그래서, 덜 검은 양반! 찰스턴엔 어쩐 일로 오셨소!"

"? 그야 물건을 사고팔러 왔습지요. 사전에 그리 연락을 드렸잖습니까."

"그래? 그럼 저 검둥이들은 상품인가?"

"이 사람들은 제 선원이고, 우리가 팔러온 건 설탕입니다."

그것 참 듣도 보도 못한 상품이군.

상품이 상품을 팔러왔다는 초현실적인 전개에 올리버와 그 일당은 더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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