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대전략
"저의 주군, 해가 저물지 않는 스페인 왕국의 경애하는 카를로스 4세 폐하께서는 몇 가지 사소한 조건을 파리에서 받아들인다면 기쁜 마음으로 협상에 응하리라고 화답하셨습니다."
"어···."
이게 뭐지.
아니, 진짜로 총알 한 방 안 쏘고 받아들인다고?
그래도 명색이 식민열강이라는 놈들이???
[이건···나도 솔직히 어떻게 된 일인지 짐작하기 어렵군.]
그렇지?
내가 이상한 게 아니라 이 시대의 관점에서 봐도 이상한 거 맞지?
"좋습니다."
햐, 진짜 표정 관리가 안 되네.
어떻게든 영업 미소를 만들어보려고 기를 쓰고 있기는 한데 자꾸 볼 근육이 땅기는 게 저 스페인 공사님에게 실례되는 표정이 되어가고 있는 게 뻔히 보인다.
그나마 저쪽에서도 표정 관리가 안 되는 건 피차 마찬가지라는 게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그만큼 이 경우엔 마드리드에서 이례적인 결단을 내렸다고 봐야겠지.
"그럼 하루빨리 외무위원회에 이 기쁜 소식을 전해야겠군요. 마드리드의 호의를 배신하지 않는 긍정적인 결과로 보답해드리겠습니다."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그럼 이만."
의례적인 고별사를 끝으로 공사는 도망치듯이 자리를 피했다.
비겁한 놈이라고, 겁쟁이라고 비웃을까 두려웠던 거겠지.
솔직히 전권대사쯤이면 모를까 저 사람은 그냥 본국에서 시키는 대로 전달한 전령에 불과하니까 불쌍하긴 한데.
[그래서 왜 마드리드가 이렇게 비굴하게 나오는지 모르겠다는 거군.]
그야 당연하지.
물론 전략 나폴레옹이 그만큼 무서웠던 거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진짜로 그것만은 아닐 거 아니야.
분명 뭔가 딴에는 합리적인 이유가 있을 텐데, 그게 과연 뭘까.
그래도 나름대로 한 나라의 정부라면 합리적인 근거에 기초하여-.
"그거라면 아마 나폴레옹 때문이 맞을걸세."
하지만 프로방스 백작의 답변은 이런 내 기대를 정면으로 깨부숴버리기에 충분했다.
오, 주여.
"···그러니까 진짜로 우리 프랑스군의 위용에 겁을 집어먹은 거다?"
"뭐, 나쁘게 말한다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군."
호록.
프로방스 백작이 커피를 한 모금 입에 머금으며 대꾸했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오늘날 스페인이라는 나라의 근본적인 운영전략이 유럽에서의 전면전에 부적합하다고 보는 게 맞을걸세."
"전면전에 부적합하다?"
"뭐, 설명하자면 길어지네만."
어차피 설명하지 말라고 해도 할 거면서 유세 떨기는.
탁.
"로베스피에르 경, 스페인이 마지막으로 유럽에서 전쟁을 치른 게 언제인지 기억하고 있나?"
잠자코 기다리고 있자니 프로방스 백작이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포문을 열었다.
"7년 전쟁 아닙니까? 대략 30년 전쯤이겠네요."
"그래, 그랬었지. 그래서 스페인군이 유럽에서 어떤 활약을 펼쳤었나?"
"어···."
잘 모르겠는디요.
애초에 난 역사는 전공이 아니라서.
댁은 알지?
[모르겠는데.]
아니 나는 몰라도 이 시대 사람인 당신까지 모르면 어쩌라고!
"경이 모르는 것도 당연하지."
한데 프로방스 백작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키득거렸다.
"저 친구들, 7년 전쟁 때도 유럽 전역에서는 포르투칼이랑 잠깐 투덕거리고 말았거든."
"그러니까 식민지 전역이 주력이었다?
"이제 좀 말이 통하는군. 그래, 지금 스페인은 말하자면 대륙의 섬일세. 대서양, 지중해, 프랑스, 포르투칼이라는 바다들과 4면을 접한 거대한 섬이지."
척.
프로방스 백작이 품 안에서 유럽 지도를 꺼내어 펼쳤다.
"지난 스페인 왕위계승 전쟁 이래로 스페인 보르본 왕조는 프랑스를 우방 삼아 막대한 안보적 이익을 취해왔네. 그야 이웃 나라라고 해봐야 우리와 약소국 포르투칼 뿐이고, 동군연합인 나폴리에도 교황령이라는 천혜의 완충지대가 있잖은가.
이럼 구태여 육군에 아까운 국력을 낭비할 이유가 없지. 당장 대서양과 지중해 너머에 저 광활한 식민영토와 알짜배기 항로들이 있는데 뭣 하러 유럽에서 모험을 추구하겠는가?"
"그러니까 육군은 사실상 프랑스에 넘기고 본인들은 모든 역량을 해군과 식민지에 투자했다, 이런 말씀이십니까?"
"그래, 바로 그거일세. 아마 압스부르고조 시절의 육군 대국만 생각해서 이해가 잘 안 가는가 본데, 보르본조가 다스리는 현 스페인은 차라리 영국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거야."
호록.
설명을 마친 프로방스 백작이 커피를 또 한 모금 입에 머금었다.
"···비굴해질 만도 하군요."
그러니까 영국으로 치면 어느 날 갑자기 도버해협이 적대적인 육군 대국으로 변신한 건데.
그럼 당연히 비굴해질 수밖에.
하다못해 그 도버해협이 보통 미친놈도 아니고 전략 나폴레옹 보유국이라는데 천하의 대영제국이라도 결사항전은커녕 진지하게 템즈강 다이빙 마려울 거다.
프랑스 혁명은 스페인으로서는 100년간 쌓아 올려온 국가 대전략을 처음부터 리셋해야 하는 대재앙이었구나.
진작에 왕정 시절에 일하던 외교자문역 아무나 만나고 올걸.
하기야 이 사람도 외교무대에서 뛰던 전문인력은 아니긴 한데.
"귀하디귀한 조언 감사드립니다, 전하."
"뭘. 나야말로 감지덕지지. 로베스피에르 경, 그대 말고 이 퇴물을 찾아오는 놈이 어디 있겠나."
프로방스 백작이 낄낄대며 웃었다.
국민투표일이 다가오고 있음을.
이 프랑스에서 공식적으로 부르봉 왕조가 임종을 맞이하는 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암시하는 쓰디쓴 웃음이었다.
"후회하십니까?"
"아쉽지 않을 리가 없지."
다만.
"후회하지는 않네."
어차피 후회해봐야 못 이길 거 뻔히 알거든.
프로방스 백작이 너스레를 떨었다.
"그럼 하다못해 긍정적인 측면을 바라봐야 하지 않겠나. 우리가 궁상떨어봤자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네. 아무튼 목숨은 건졌고, 경의 호의에 빌어서 조금이라도 정치생명을 이어갈 수 있게 되었으니 그 사실에 감지덕지해야지."
"너무 설치시면 그마저도 거둬가야 할지도 모릅니다만."
"아, 그거라면 걱정하지 말게. 요는 그대를 중도파로 부각시켜달라는거잖은가?"
그거야 특기 중의 특기고 말고.
프로방스 백작이 덧붙였다.
"나의 법통파가 우익을 가져가고, 에베르나 그 근처 패거리 중에서 좌익이 나오고 그대가 그 중간에서 이견을 조율하며 실리와 중용을 지킨다. 뭐 그런 계산이겠지. 안심해도 좋네. 다른 건 몰라도 난 내 목숨으로 도박하는 놈은 아니거든."
흠-.
[오를레앙 공작의 최후를 빗댄 건가.]
아무래도 그래 보이지?
좌우지간에 이 양반이 내 구상을 생각보다도 훨씬 날카롭게 꿰뚫고 있었다는 건 조금 놀라웠다.
뭐, 저기에 그냥 우익이 아니라 공상적 사회주의라는 단서가 붙기는 할 텐데.
아무튼 본인에게 주어진 역할과 책임을 정확히 알고 있는 게 거래 상대라면 나도 편해지지.
물론 그만큼 아주 잡아먹히진 않게 앞으로도 주의해야 해야겠지만.
"다 알고 계신 것 같으니, 뒷일은 알아서 잘 처신하시리라 믿고 전 이만 물러나 보겠습니다. 맛있는 커피 감사합니다."
"그래, 그래. 말만으로도 고맙구만. 별 기대는 하지 않고 있겠네."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혼자 껄껄거리는 프로방스 백작과 가볍게 악수하고 헤어졌다.
고급 원두를 써서 그런가.
모처럼 현대인 입맛에 맞는 커피라서 몇잔 정도는 더 마시고 일어나고 싶었는데 생각보다 저 양반이 너무 두뇌 회전이 빨라서리.
괜히 사적으로 친분이 있다는 식으로 소문이 나돌았다간 어떤 식으로 이용당할지 감도 안 잡힌다.
그러니까 그러기 전에 그냥 내가 알아서 조심해야지.
[그래도 소득은 있었군.]
그래.
나를 포함해서 현 혁명정부에서 일하는 친구 중 무식한 놈은 단 한 사람도 없지만 다들 책만 파던 샌님이라서 그런가.
지금 프로방스 백작처럼 단순히 역사적 지식이 아니라 스페인의 국가 대전략을 읊어줄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 보니까 그냥 스페인이 우리에게 겁을 집어먹은 거라고 얕잡아볼 뻔했다.
설마하니 저 덩치로 영국식 국력 배분이었을 줄이야.
전혀 짐작도 못 하고 있었다.
하기야 남북 아메리카를 통틀어서 과반수를 점유한 대제국이니 이걸 운영함으로써 벌어들이는 수익이나 국가적 이익만큼이나 유지비용도 어마어마한 게 당연하긴 했지만.
결국 나도 설명을 듣고 난 다음에나 눈치챘으니 별 소용없다는 말이지.
[그럼 이제 스페인과의 동맹 재건을 추진할 작정인 건가?]
국익이라는 측면에서 생각하면 그게 맞겠지?
반대로 혁명 수출이라는 측면에서 생각하면 아리까리하긴 한데.
프로방스 백작의 설명대로 현 스페인이 처음부터 프랑스와 한 덩어리로 굴러가는 합체 부품이라면 차라리 스페인과 화친하되, 혁명파 인사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식으로 돌리는 게 맞다.
무작정 침략하고 괴뢰정권 세우는 게 능사는 아니잖아.
당장 미국만 해도 동맹을 핑계 삼아서 남부 주들을 찍어누르고 북부 주들을 밀어줄 계획을 세우고 있는 마당에 스페인만 예외일 필요는 없다.
그러니까 우선.
"혹시 우리의 역사적인 우방 스페인에 혁명정신을 수출하기 위한 범 라틴적인 혁명 과업에 자원할 분들 없으십니까?"
기왕 사절단을 보내는 김에 아예 작정하고 심장부에 쁘락치들을 심어놔야지.
척척척.
그리 놀랍지 않게도 사절단은 금세 마드리드에 기필코 혁명정신을 퍼트리고 돌아오겠다는 테러리스트-가 아니라 혁명 투사로 만석이 되었다.
참으로 혁명의 심장 파리다운 열정이 아닐 수 없었다.
***
스페인 마드리드.
"말씀드리기 대단히 죄송스럽습니다만."
마누엘 데 고도이가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신임 프랑스 공사에게 대꾸했다.
"바야돌리드 논쟁은 인디오들을 위한 것이었지 저 영혼이 없는 아프리카인들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이후의 교황청의 칙령 또한 무력에 의한 강제적인 노예납치와 인신매매를 금지한 것이지, 일상적으로 행해지는 노예무역에 대해선-."
"영혼이란 실체가 없는 한낱 오컬트에 불과합니다, 각하."
마드리드 주재 프랑스 공사 에드몽 주네가 단언했다.
"한데 어찌 영혼의 존재 여부가 누군가의 인권을 박탈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는 말입니까. 하물며 노예제 같은 비도덕적인 제도를 옹호하기 위하여 오컬트 따위에 의지하다니, 그걸 어찌 계몽된 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아니 그게."
너도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알잖아!!!
일부러 모른 척하고 있는 거야, 아니면 진짜로 눈치코치도 없는 거야?
사람이 아니라 벽을 보고 있는 듯한 이 갑갑함에 고도이는 차마 뭐라 더 대꾸하지도 못하고 뒷덜미를 힘차게 주물럭거렸다.
자꾸만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던 것이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노예제는 용납될 수 없습니다."
한데, 이 주네라는 친구는 조금도 지치지 않는 것 같았다.
외려 그는 고도이가 성가셔할수록 더욱 큰 힘을 얻기라도 하는 듯 언성을 드높였다.
"총리 각하, 저 궁궐 너머의 마드리드 시민들이 다들 뭐라고 말하고 있는지 들으셨습니까?"
"그야-."
"다들 각하께서 우리 프랑스의 제일가는 친구라고, 각하께서 이 모든 굴욕외교를 주도하였노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니 기다려주지도 않을 거면서 왜 물어봤는데!!!
고도이가 또다시 영혼의 절규를 토해내고 있는 것조차 알지 못하고 있는건지, 아니면 여전히 개의치 않는 건지.
에드몽 주네는 더욱 꼿꼿하게 허리를 세우며 언성을 드높였다.
"한데 그 각하께서 이리 소극적으로 구신다면 다들 뭐라고 생각하겠습니까? 친불파라는 명성조차 허명이요, 계몽주의자는 더더욱 아니며 그저 외압에 눌려 굴욕외교를 펼친 것뿐이라고 생각할 것 아닙니까! 그 어느 때보다 더욱 입장을 분명히 하셔야 할 때 이렇게 이도 저도 못 하고 계시면 어떻게 합니까!"
"어···."
이놈이 갑자기 왜 아픈 구석을 때리지.
도저히 부정할 수 없는 정론에 고도이는 이번에야말로 할 말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확실히 저 프랑스 공사 에드몽 주네가 지적한 대로였다.
물론 현실적으로 스페인에 프랑스의 요구를 거부할 힘이 없는 것도 사실이었고, 카를로스 4세가 허락을 내주기도 했지만 현 마드리드 시민 중 국왕을 욕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렇다고 전혀 없는 건 아니었지만 다들 불경죄에 걸릴까 봐, 그리고 이러니저러니 해도 이 스페인의 국왕이니 카를로스 4세에게 갈 욕까지 모조리 왕비와 고도이에게 옮겨가고 있었다.
그래서 마드리드 시민들이 경멸 반, 조롱 반으로 붙여준 칭호가 평화대공(Príncipe de la Paz)이었는데···.
'···아니 솔직히 외압에 굴한 거 맞는데.'
물론 각료들에게는 프랑스에 받아낼 건 받아내고 국내 개혁을 우선하겠다고 핑계를 댔고, 그 자신도 그렇게 정당화하긴 했지만.
내심 고도이도 사실 그게 정신 승리에 불과하다는 걸 모르진 않았다.
그야 개혁이고 자시고 지금 스페인엔 뭔가를 시도할 돈이 없었으니까.
마음껏 사치하고 부패할 돈은 있었는데 나라를 뜯어고치거나 뭔가 건설적인 사업을 시도하기 위한 공금은 단 1푼도 없었으니까.
개혁계몽군주였던 선왕 카를로스 3세가 보거든 대성통곡을 하시겠지만, 유감스럽게도 지금 이게 나태왕 카를로스 4세가 이끄는 스페인 왕국의 현실이었다.
"이제 그만 입장을 분명히 밝혀주십시오, 각하. 각하께서는 정녕 친불파이십니까? 파리와 이 역사적인 혁명 과업을 함께하기 위하여 이번 협상에 응하신 게 맞습니까?"
한데, 지금 저 에드몽 주네는 그런 스페인의 사정도 모르는 건지 알 생각도 없는 건지 계속 그를 다그치고만 있었다.
그럼 프랑스와의 수교를 주도했으며 또 매국노라 욕을 집어먹고 있던 고도이로선 차마 이제 와서 아니라고 내뺄 수도 없었다.
그야 제 입으로 프랑스의 요구에 응하는 대신에 이것저것 받아내겠다고 한 이상 아무튼 지금은 저 프랑스의 헛소리에 어울려줘야 협상을 해볼 것 아닌가.
'···아니 그런데 이놈은 일개 공사란 놈이 일국의 총리를 이렇게 다그쳐도 되는 거야?'
뒤늦게 울컥하고 분노가 차올랐으나, 이 또한 제 업보라며 고도이는 애써 흥분을 가라앉혔다.
애초에 저 에드몽 주네는 고도이의 업보와는 무관하게 올바른 역사에서도 혁명의 적 늙다리 워싱턴을 교수형 시켜야 한다고 주장한 매파 외교관이라는 걸 알았다면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라는걸 알았을텐데.
"알겠소."
고도이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에 공사께서도 아국의 사정을 헤아려주셨으면 하오만."
"흠, 어떤 사정입니까?"
"보다시피 우리 스페인은 전체 인구의 3분지 2가 농사 일에 종사하는 농업국가요. 마드리드가 왕국의 도읍이라고 하나 파리와 비할 바는 못 되고, 카탈루냐처럼 국왕 폐하의 직접 통치를 거부하는 지역들도 많소."
한마디로 지금 당장 혁명 타령해봤자 쥐뿔도 먹히지 않는다는 해명이었다.
아무렴 프랑스야 수도권 하나로 다른 모든 지역을 압도하는 덩치와 경제력을 자랑하지만 마드리드에 그런 활약상을 기대했다가는 그냥 스페인이라는 나라째로 공중분해 될 뿐이다.
다시 말해서 고도이가 제아무리 국왕과 왕비의 총애를 등에 업은 친불파로서 설쳐봐야 한계가 있다는 해명이었으나···.
"문제없습니다."
정말로 아무 문제 아니라는 듯이 에드몽 주네는 자신만만하게 대꾸했다.
"총리 각하께는 우리 프랑스 30만 대군이 있지 않습니까? 한데 저까짓 봉건귀족들의 반발 따위가 무슨 대수란 말씀이신지요. 어디 마드리드에 맞서 들고 일어나보라고 하십시오. 저 신성로마제국처럼 흠씬 두들겨 맞고 나면 저 인민의 적들도 정신을 차릴 겁니다."
그럼 그게 속국이지 주권국가냐!!!
뒤늦게 고도이는 이만 국왕에게 차례를 넘기고 자리를 피하려 했으나, 유감스럽게도 국왕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언제나 그래왔듯이 모든 책임과 해야 할 일을 고도이에게 떠넘긴 채 전 홀연히 사냥을 떠난 것이다.
"이런 개···."
그제야 뒤늦게 국왕을 닦달해서라도 국정을 돌보도록 해야 했다는 후회가 든 고도이였으나-이제 와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결국 고도이는 팔자에도 없던 친불파 개혁총리로서의 무거운 책임을 홀로 떠안아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