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의 본질
파리.
"혁명가! 개척자! 노예해방자!"
"""로베스피에르 만세! 프랑스 만세! 급진당 만만세!!!"""
크, 이거지.
저번 전쟁은 전략 나폴레옹이 모든 관심을 쓸어갔고, 스페인이 대뜸 루이지애나를 돌려주겠다고 했을 때는 다들 너무 급작스러워서 기쁘다, 보다는 「쟤네 왜 저래?」라는 반응이더니.
아예 정상회담까지 성공시키고 당당히 개선하니까 그제야 사방에서 만세 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시민동지들이여, 모두 밖으로 나와 내 손에 쥐어진 런던의 서약서를 보시오.
여기 우리 시대의 평화가 있소!
[염병하고 있군.]
어허, 원래 이런 종이 쪼가리에는 우리 시대의 평화가 국룰인거 몰라?
열심히 바야돌리드 조약서(※모형)을 흔들면서 카퍼레이드, 아니 마차퍼레이드를 벌이고 있자니 또 우리 체임벌린 아저씨 생각이 각별하구만.
크, 그 아저씨도 아마 이런 기분이었겠지?
결국 몇 년 안 가서 휴지 조각이 될 수밖에 없는 시간 벌이라는 걸 뻔히 알고 있었다고 하니까.
뭐, 나야 몇 년 뒤에 전쟁이 터지더라도 노예무역 폐지라는 업적은 남을 테니 그렇게 아쉬운 것도 없지만.
[웬일로 총성이 안 들리는데.]
어허, 이 친구가 요즘 갈수록 내 농담 따먹기도 그냥 무시해버리고 자기 할 말만 하네.
하지만 확실히 집주인 놈의 말대로다.
평소라면 지금쯤 총성 한두 방은 들렸을 법도 한데, 제아무리 개선식 행사를 위해 푸셰가 이를 악물었다지만 오늘따라 파리는 그 흔한 총성이나 포성 한번 들리지 않았다.
그 대신에 들려오는 것이라고는 온통 휘파람 소리와 함성소리, 그리고 나와 급진당을 연호하는 시민들의 웃음소리뿐.
혁명의 생존을 위해선 혁명의 적을 한 사람도 남김없이 죽이는 수밖에 없다.
우리 중에 혁명을 등진 배신자가 있을지도 모른다.
혁명 이래로 늘 똑같은 피해망상에 시달리던 시민들이 조금은 이에서 벗어났음을, 마침내 혁명정부가 안정기에 접어들었음을 짐작게 하는 변화상이었다.
[다들 이제 자신감이 생긴 거 아니겠나.]
그래, 그 말대로다.
이걸 전적으로 내 공이라고 주장하는 건 되지도 않는 자아도취겠지.
일단 나폴레옹이 있으니 여차하면 때려눕히면 된다는 자신감이 붙었을 것이고, 프로방스 백작의 활약으로 그간 파리와 원수졌던 지방과 하나둘 화해하게 된 덕분도 있을 것이고, 민중의 힘으로 구체제를 하나둘 타도해나가면서 자신감이 붙은 것도 크겠지.
그렇지만 이 사람들이 무작정 혁명의 적을 타도해야 하는 게 아니라 교섭하거나 거래하는 길이 있다는 걸 알게 된 건 오롯이 내 공로가 아닐까, 감히 자신해본다.
솔직히 원내 여론대로 따라갔으면 지금쯤 원 역사에서 그랬던 것처럼 전 유럽에 맞선 전쟁 중이었을 테니까.
[그럼 이제 조금은 이성적으로-.]
글쎄, 기대할 걸 기대해야지.
물론 조금은 소아적 열병이 덜해지긴 하겠지만 아, 어지간한 건 말로 해도 되는구나! 가 아니라 우리가 힘이 세니까 말로 해도 다들 쫄아서 양보해주는구나! 가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
당장 스페인이 안 좋은 선례를 보여주고 말았으니 이런 소아적 열병에 빠져드는 국수주의 여론도 그만큼 늘어나게 되겠지.
결국 배불리 먹이는 수밖에 없다.
자고로 곳간에서 인심이 나오는 법.
파리에서 어느 순간 총성이 사라진 것도 타르타로스 입구에서 간신히 턱걸이하던 경제가 슬슬 안정기에 접어든 덕분도 클 거다.
그럼 이제 영국과 일시적으로나마 화해하면서부터는 지금보다도 훨씬 온건해지기를 기대해봐야지.
[···쯧, 하여간 무엇 하나 쉬운 게 없구만.]
에이, 이만하면 지금까지에 비해선 이지모드지 뭘.
대서양 무역도 열렸겠다, 알자스-라인란트-저지대도 있겠다, 라부아지에와 과학 아카데미도 있겠다.
무엇보다 당분간은 시티 오브 런던도 협력자잖아?
슬슬 왕정 폐지하고 나면 산업화나 시동 걸어보자고.
"친애하는 시민 동지 여러분."
때마침 마차가 멈추고, 한 손에 바야돌리드 선언서를 든 채 연단에 올랐다.
"여기 우리 시대의 평화가 있습니다."
[이봐!!!]
아니 이런 자리에서는 진짜 이 말 해주는 게 국룰이라니까?
봐봐, 다들 이거 원출처 모르니까 너무 낭만적이고 뭉클하다고 좋아해 주고 있잖아.
[아니, 그게···어휴, 됐다.]
흑흑, 또 개무시라니 이 정신기생체는 슬프구나.
애비야, 난 널 그렇게 키우지 않았다!
물론 집주인은 끝까지 대꾸하지 않고 혓바닥을 가로채 갔다.
"그리고 우리 시대의 자유가 여기 있습니다. 지난 250년 전 인디오의 수호자 바르톨로메 데 라스 카사스가 미처 다 이루지 못했던 오랜 꿈의 결실이 여기 있습니다. 문명의 진보가, 아가페의 증거가 여기 있습니다."
천천히 환영인파를 돌아보았다.
"물론 우리가 아니었더라도 언젠가 머지않은 미래에 누군가는 이 자리에 도달했을 테지요. 역사의 수레바퀴는 언제나 뒤가 아닌 앞으로 힘차게 굴러나가는 법이기에 누군가는 오늘 우리와 같은 자리에서, 같은 꿈을 바라보며 당당히 승리를 선언하였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건 낡아빠진 콜럼버스의 달걀 이야기에 불과합니다."
그 작자의 인간성은 차치하고서 말이지.
"만일 우리의 혁명이 없었다면 그 누가 만민평등이 이리도 절박한 문제라고 생각했겠습니까? 국왕이 있고, 귀족이 있으며, 그 아래로 무수한 계급이 존재하는 답답하고 숨 막히는 사회에서 노예 하나쯤 무슨 대수였겠습니까? 지난날 시에예스 주교가 말하였듯이."
잠시 숨을 고르며 종이를 내려놓았다.
"제3신분은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무언가가 되기를 강렬히 원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는 마침내 우리의 자유를 널리 세계에 퍼트리는 해방자이자 이의제기자로서 역사라는 무대 앞에 당당히 나섰습니다."
적막이 감돌았다.
누군가는 눈물을 흘리며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고, 누군가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으며, 누군가는 낯간지럽다는 듯이 딴청을 피우거나 심지어는 비웃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 모두 연단에 선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파리는 앞으로도 우리 앞에 산재한 모순에 끊임없이 이의를 제기할 것입니다."
그거면 족했다.
"오늘 우리는 노예제라는 모순에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천부인권의 이름으로 모순을 논파하고, 이를 바로잡았습니다! 한데, 이것이 우리의 국익을 도모하기 위함이었습니까? 우리의 영토를 드넓히고 막대한 폭리를 취하기 위함이었습니까? 그렇지 않았습니다!
전 유럽이 노예제가 부도덕한 제도라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누구나 알고 있었으면서도, 누구도 나서지 않았기에 우리가 나선 것입니다! 앞서 우리의 혁명이 앙시엥 레짐의 모순을 지적하기 전엔 누구도 나서지 않았듯이!"
쿵.
가볍게 발을 굴러 이목을 집중시켰다.
"우리는 누구나 알고 있으나, 누구도 지적하지 않는 부조리와 모순을 바로잡기 위하여 당당히 정면에 나섰던 것입니다! 그것이 혁명의 본질입니다! 우리의 적들이 말하는 것처럼 파괴가 아니라, 혼돈이 아니라! 누구도 감히 손대려 하지 않는 인류문명의 공공연한 사악을 정면으로 폭로하고 바로잡는 것이야말로 혁명인 것입니다!!!"
"""혁명 만세!"""
"우리는 오늘 혁명의 역사적인 의의를 되새겼습니다. 우리가 올바른 길을 나아가고 있음을 전 유럽이 보는 앞에서 인정받고, 한때 우리의 혁명을 오해하고 곡해하여 멀리하고자 하였던 이웃나라들에게 그 당위성을 긍정 받았습니다."
따라서.
"파리는 결코 멈춰서는 안 됩니다."
파리야말로 혁명의 심장이기에.
"파리는 의심해야만 합니다. 파리는 반박해야만 합니다. 파리는 전진해야만 합니다! 보편적 다수의 복리를 위하여! 박해받는 이들의 자유를 위하여! 봉건전제정의 종말과 주권재민을 위하여! 우리는 우리 앞에 산재해있는 모순과 부조리들을 거듭하여 의심하고, 폭로하고, 바로잡아야만 합니다!"
"""파리 만세! 자유 만세! 민주주의 만세!!!"""
"파리의 시민들이여, 단결하시오! 파리가 잃을 것이라곤 모순뿐이오, 얻게 될 것은 역사일지라!!!"
곧 사방에서 열화와 같은 환호성과 박수갈채가 그 밖에 모든 소음을 파묻어버렸다.
우리의 적들은 이를 광증이라고 부르리라.
어리석은 자들은 이를 우민정치라고 부르리라.
허나, 진정 지혜로운 이들이라면 이를 내일이라고 부르리라.
***
폴란드-리투아니아 크라쿠프.
"친애하는 크라쿠프의 시민들이여!"
푸르륵.
미국 독립전쟁의 영웅, 안제이 타데우시 보나벤투라 코시치우슈코 준장이 그의 애마 위에서 위풍당당이 외쳤다.
"나를 기억하는가!"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나를 그리워했는가!"
그리워하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미국 독립의 영웅으로서 무엇 하나 부족함 없는 인생이 약속되어있었음에도 조국 폴란드를 위하여 홀연히 귀국하여 또다시 전장에 나선 젊은 영웅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어찌 그리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는 오늘 반역을 위하여 이 자리에 왔다!"
그렇기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미 두 차례에 걸친 분할을 경험한 조국 폴란드의 자주독립을 위하여 오랜 영웅이 개선한다니.
이 무슨 신화나 전설에서나 나올법한 영웅 설화란 말인가?
"떠날 자는 떠날 것이고, 남을 자만 남을지어다! 이 나라의 귀족들조차 조국을 저버렸건만, 조국으로부터 무엇 하나 받지 못한 그대들이 어찌 귀하고 아까운 목숨을 버려야겠는가!"
챙.
코시시우슈코가 기병도를 뽑아 들었다.
저 멀리에서 매국노 귀족 의회와 작당한 러시아군이 몰려오고 있었다.
거기에 폴란드군은 어디에도 없었다.
"자유를 갈망하는 투사들이여! 조국과 동포를 위하여 의롭게 일어난 전사들이여!"
조국을 지키고 시민을 구해야 할 폴란드군이라면 응당 그들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있었으니.
"감히 청컨대, 나의 반역에 함께해주시게!"
탓.
코시시우슈코가 있는 힘껏 기병도를 휘두르며 그의 애마와 함께 선두에서 달려 나갔다.
전 폴란드군 총사령관의 취임사의 마지막을 장식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는 연설이었고, 다시 그의 병사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한 발짝 더 앞으로 나아가게 하기에 충분한 개전사였다.
이날, 코시시우슈코의 폴란드군은 크라쿠프 주둔 러시아군이 안토니 마다린스키( Antoni Madaliński)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하여 도시를 비운 틈을 타 손쉽게 시가지를 해방하는 데에 성공했다.
곧 코시치우슈코 봉기의 서막이오, 폴란드 패망에 맞선 최후의 항전이 막을 올리는 순간이었다.
타타탕!
"스키타이 놈들이 물러간다!"
"""승리 만세! 폴란드 만세! 코시시우슈코 사령관 만세!"""
"···으음."
하지만 막상 그의 병사들이 패주하는 러시아군을 보며 열광하는 와중 코시시우슈코는 조금도 기뻐할 수 없었다.
이는 결국 선전포고 의식이오, 전초전조차 못 되는 빈집 털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렴 만일 러시아군이 계속 크라쿠프에 주둔하고 있었다면 제아무리 미국 독립전쟁 시절부터 맹활약한 전쟁영웅이라도 무슨 수로 한 줌의 병사로 이 거대한 도시를 해방할 수 있었겠는가.
그들은 고작해야 러시아군이라는 표현조차 아까운 치안 병력을 기습적인 궐기로 밀어낸 것에 불과했다.
"지금 당장 시청을 해방하고 최후의 항전이 막을 올렸음을 시민들에게 알리게. 저 루스인들이 알아차리기 전에 단 한 사람이라도 많은 시민군을 소집해야만 하네!"
"명 받들겠습니다, 각하! 바르샤바의 국왕 폐하는 언제 크라쿠프로 모실까요?"
"빠르면 빠를수록 좋겠지. 지금부터라도 맞이할 준비를 해두게. 다들 서둘러!"
""옛!"""
척.
코시시우슈코의 참모들 또한 이를 모를 리 없던바.
집마다 문을 두드리고 찾아가 해방 소식을 전하고 감사의 포옹을 받는 병사들과는 달리 장교들은 숨 쉴 틈 없이 시청을 비롯한 온갖 행정청사들을 찾아가 협력을 약조 받거나 벼락치기로 인수인계에 나서야만 했다.
그리고 이는 망국을 눈앞에 둔 조국을 향한 마지막 사명감도, 조국과 함께 죽겠다는 군인의 명예욕도 아니었다.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이었다.
아무렴 프로이센도, 오스트리아도 위대한 나폴레옹에게 주력군을 상실한 지 고작해야 1년도 지나지 않았다.
그뿐이랴?
로베스피에르 수상이 종전조건으로 2차 분할 당시 프로이센령으로 넘어간 그단스크와 포즈난 등의 영토를 폴란드에 반환할 것을 명시함으로써 쪼그라들었던 조국이 조금이나마 재건되었다.
그렇다는 건 지금 이 순간 코시시우슈코의 폴란드군이 무찔러야 할 상대는 오직 저 러시아군 하나뿐이라는 것.
할 수 있다.
이번에야말로 이길 수 있다.
프로이센도, 오스트리아도 나설 수 없다면 위대한 폴란드가 고작해야 러시아 하나를 당해내지 못하여 패망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이번 기회에 러시아와 작당한 저 추잡한 매국노들을 무찌르고 지난 1세기에 걸쳐서 연방을 좀먹어온 기생충들과 온갖 적폐를 혁파하는 것 또한 헛된 희망만은 아닐 터.
그야말로 꿈만 같은 장밋빛 미래에 부풀어 장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휴식을 마다하고 스스로를 혹사하고 있었다.
"혹시 파리로부터는 아무런 응답이 없는가?"
아무렴 당장 코시시우슈코부터가 이 일말의 가능성을 믿고 대서양 너머 폴란드까지 달려온 장본인이었는데 두말해 무엇하겠는가?
하지만 연락 담당이었을 참모는 참담한 얼굴로 고개를 조아렸다.
"파리에서는 물론 자유를 갈망하는 폴란드 국민의 결사 항전을 열렬히 지지하는 바이지만, 현 폴란드의 정통정부는 오직 바르샤바뿐이라고 답하였습니다."
"즉, 듣기 좋은 이야기 정도는 해줄 수 있어도 실질적인 지원은 힘들다는 거군."
"면목 없습니다."
"아닐세. 그것만 해도 어디인가."
따지고 보면 프랑스는 오스트리아, 프로이센을 무찌른 거로 폴란드에 이미 감당하기 어려운 빚을 만들어줬다.
아무렴 삼면이 적국으로 둘러싸였던 조국 폴란드의 절망적인 입지를 일시적으로나마 러시아 하나만 바라보면 되는 기적적인 입지로 탈바꿈시켜줬는데 여기서 더 무엇을 바란단 말인가?
무엇보다 고작 돈 몇 푼, 병사 몇사람 보내주는 것보다도 승전 이래로 한창 유럽대륙의 패자로서 이름을 날리고 있는 프랑스가 공식적으로 폴란드의 저항운동을 지지한다고 답해준 것이 오히려 더욱 큰 힘이 되어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혹시 실패하지는 않을까, 적들에게 더욱 큰 보복을 당하지는 않을까 두려워서 참전을 망설이는 뭇 애국자들에게 파리가 그들과 함께하고 있다는 용기를 북돋아 줄 수 있을 테니까.
"다들 긍정적인 방향으로 생각하세나. 달리 생각해보면 우리가 이제부터 바르샤바를 탈환하여 국왕 폐하께서 공식적으로 러시아에 선전포고하신다면 기꺼이 동맹을 체결할 의향이 있다고 해석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동맹···!"
꿀꺽.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코시시우슈코의 참모진이 일제히 침을 삼켰다.
상상만 해도 꿈만 같은 가정이 아닐 수 없었다.
당장 망국을 눈앞에 두고 있었던 조국 폴란드가 신성로마제국을 무릎 꿇리고 신대륙에 재진출하며 한창 혁명의 심장으로서 이름을 떨치고 있는 파리와 함께하게 된다니.
심지어는 그들이 먼저 도움을 애걸한 것도 아니고 저 붉은 리슐리외가 먼저 바르샤바와의 동맹을 원했다는 게 도저히 현실 같지를 않았다.
"그러니 동지들, 어서 우리는 우리의 혁명을 시작하세나."
코시시우슈코가 등을 맡긴 전우들을 둘러보며 위풍당당이 외쳤다.
"파리의 동지들이 우리의 오랜 근심을 해결해주었네. 한데 저 야만스러운 스키타이 하나 당해내지 못하여 패망한다면 도대체 무슨 낯으로 순국선열들을 뵐 셈인가!"
"맞습니다!"
"저 멍청한 루스 놈들에게 모스크바 함락의 치욕을 되새겨줍시다!"
"예끼, 치욕이라니! 저 바르바로이 놈들이 창세 이래 처음으로 문명 세계의 일부로 편입되었던 시절이었는데!"
하하하!
사방에서 웃음꽃이 피어나 왔다.
누구나 고되고, 힘들고, 궁핍했으나 누구 한 사람 절망에 젖은 이는 없었다.
혁명의 붉은 깃발이 크라쿠프와 함께하고 있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