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
하핫, 돌겠네 증말.
"그러니까, 또 런던에서 벌인 음모라는 말인가?"
"아직까진 심증에 불과합니다."
푸셰가 덧붙였다.
"다만, 정황상 외세의 개입이 있었던 건 거의 확실하다고 보는 게 맞지 않을는지요. 꼭 런던이 아니라 합스부르크나 다른 지중해 국가일 수도 있겠지만 코르시카 독립이라는 소동으로 파리와 군신 나폴레옹의 불화를 연출할 수 있다면 남는 장사 아니겠습니까."
···저 지중해 국가라는 건 스페인이나 나폴리까지 계산에 넣어야 할 거라는 이야기겠지.
현 고도이 내각이야 친불파(강제)지만 지금 스페인 국내에는 무능한 국왕과 굴욕외교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적잖을 테니까.
물론 나폴레옹 하나가 사라진다고 프랑스가 패망하지야 않겠지만 그동안 국제외교에서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존재감을 자랑했던 무게추를 하나 빼놓을 수만 있다면 누구나 한 번쯤 시도해봄 직한 음모다.
외세가 개입한 건 확실한데, 짐작 가는 후보자가 너무 많아서 도저히 특정이 안 간다고 해야 하나.
정말이지 골치 아프게 만드네.
안 그래도 신경 써야 할 일들 뿐이라서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인데.
"어떻게 할까요?"
푸셰가 슬쩍 내게 서류를 밀었다.
추가조사를 할지, 무작정 심증 가는 용의자들에게 비난부터 쏟아낼지, 이대로 덮어버릴지 정하라는 건데-.
"덮어버리게."
추가조사를 해서 배후를 밝힌다고 해봐야 또 너희야? 라는 반응 밖에 나오지 않을 거고 밝히는데 실패한다면 안 그래도 부족한 방첩 방면 재화와 시간을 낭비하게 된다.
그전에 이번 사건을 공론화하면 파올리가 이끄는 코르시카 독립파가 아직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는 걸 대내외적으로 공인하는 격이고.
그럼 탄압하건 타협을 하건 해야 할 텐데 전자라면 나폴레옹을 코르시카의 매국노로 몰아세우는 격이고 후자라면 그가 원내에 진입하기 위한 정치적 업적을 만들어주는 격이다.
언젠가 이 문제도 손보긴 해야겠지만 당장 역사적인 투표를 연달아 치러야 하는 지금은 너무 시기가 안 좋아.
그리고 어차피 저 코르시카 독립운동가들이 가장 믿고 있었을게 전략 나폴레옹 회유 혹은 납치였을 테니 그게 실패로 돌아간 이상 저쪽도 당분간은 조용히 있을 거다.
일단 묻어두는 수밖에.
"대신 호위 인력을 2배, 3배, 아니 우리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여유 인력을 나폴레옹에게 돌리게. 가급적 빨리 파리로 데려와 눈에 잘 띄는 곳에 두고. 그 녀석이 사양한다고 해도 이번엔 어쩔 수 없네. 어차피 사양하지도 않겠지만 말이야."
"명 받들겠습니다, 각하."
꾸벅.
푸셰는 어떠한 이의도 제기하지 않은 채 고분고분히 자리를 떠났다.
하지만 그건 생쥐스트 같은 맹신이나 광신과는 거리가 멀었다.
모든 지시사항이 내 입에서 나왔으니 훗날에 일이 잘못된다면 모든 책임을 내게 떠넘길 작정이어서였지.
하, 진짜 이 박쥐 같은 놈.
어떻게 대체할 수 있는 인력만 있으면 진작에 대체했을 텐데 그냥 방첩만 맡기기엔 이만한 놈이 없으니 원.
베리야도 그렇고 후버도 그렇고 이쪽 방면에서 일하는 놈들은 다 이게 패시브인가?
[그래서 코르시카는 어쩔 텐가?]
어쩌긴 뭘 어째.
나폴레옹 출생지라는 것 말고는 코르시카에 대해 아는 게 없는데.
그쪽에서 아는 것부터 읊어보셔.
[흠, 25년 전까지는 제노바 공화국령이었네. 그러다 저 파스콸레 파올리라는 사내가 공화국을 세우며 독립을 선언했고, 이를 진압할 자신이 없었던 제노바가 우리 프랑스에 매각했지.]
그리고 프랑스가 파올리의 반란을 진압했고?
[글쎄. 나로서는 반란보다는 혁명이라고 불러주고 싶군. 만 25세 이상 모든 남성의 보통 선거권을 보장한 통령제 공화국이었거든. 장장 15년을 존속하면서 반쯤 독립에 성공하기도 했었고, 제노바가 선왕 루이 15세를 끌어들이지 않았다면 코르시카 혁명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을걸세.]
···뭐야? 보통선거제에 무려 15년을 존속했었다고?
가상국가 벨기에보다 훨씬 번듯한 나라였네?
[그래. 벨기에 지방에서처럼 접근했다가는 큰코다칠걸세. 최소한 코르시카는 그들만의 조국을 건국하고 또 한세대에 걸쳐 경영해본 경험이 있고, 외세의 침략에 짓이겨진 거지 따로 내분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으니까.
심지어 저 파올리는 독립 영웅인 동시에 장장 10년 넘게 통령으로서 군림한 노련한 국가지도자야. 그래서 반대파에겐 이게 국왕과 다를 게 뭐냐는 비아냥을 듣기도 했지만-자네도 알다시피 지지자들에겐.]
···백마 탄 초인이 따로 없겠군.
[마치 자네처럼 말이야.]
얼씨구, 이놈이 지는 아닌 것처럼 말하네?
하여튼 들으면 들을수록 코르시카는 프랑스가 아니라 별도의 국가나 정체성이라는 실감이 팍팍 든다.
아니, 오히려 이 정도로 정체성이 따로 놀았는데 왜 원 역사에선 프랑스에 잔류한 거지?
편입된 지 고작 25년밖에 안 되었다며?
[바로 그 25년 사이에 태어난 코르시카 출신 카이사르 놈이 프랑스 황제가 되었잖은가.]
아하.
[그래서, 결국 어쩔 텐가?]
어쩌긴.
이럼 생도맹그나 루이지애나처럼 자치령이나 아예 외교권만 없는 자치공화국 모델로 가야지.
하다못해 보통선거제만 없었어도 혁명 타령이라도 해보겠는데 이미 30년 전에 보통선거제까지 쌩쌩하게 굴리고 있었다며.
그 파올리라는 친구의 인간 됨됨이가 어떨지는 몰라도 그럼 혁명가로서는 저쪽이 선배님이다.
대충 선거 끝나고 여유가 생기면 슬슬 이야기를 꺼내 봐야지.
나폴레옹에게 두 번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 말라고 강요할 수도 없는 거고, 내버려 두면 코르시카인들이 그럴 생각이 없어도 앞으로 두고두고 런던이라던가 런던이라던가 런던이라던가가 마수를 뻗으려 들 텐데 이대로 둘 순 없다.
[하여간 그놈의 런던이 문제군.]
누가 아니래.
안 그래도 평등파에 법통파에 미터법 도입에 신경 써야 할 일들투성이인데 이제는 웬 놈들이 코르시카를 핑계 삼아 나폴레옹까지 쥐고 흔들려 드니 아주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뭐어, 반대로 런던엔 우리가 둘도 없는 골칫거리겠지만.
벌컥.
때마침 생쥐스트가 급히 방안에 뛰어 들어왔다.
"위원장 동지, 큰일 났습니다."
그러게 이제는 위원장 아니래도.
"그래, 무슨 일인가?"
"툴루즈를 중심으로 옥시타니아 각지에서 왕정 폐지에 반대하는 폭동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아, 역시?
혹시 업적빨로 누를 수 있지 않을까 낙관했더니 역시 지방은 아직도 부르봉 왕당파가 대세구만.
그동안에는 법통파로 어떻게든 면피가 되었는데 슬슬 국민투표까지 1달 안팎으로 다가오면서 가면이 떨어지니까 다들 좀 어수선한 분위기다.
그보다 정작 그 유명한 방데는 프로방스 백작만 믿고 있는데 막상 오히려 프로방스 지방이 속한 남쪽이 어수선하다니 이것 참 아이러니한데.
[그래서 어쩔 텐가?]
진압해야지 별수 있나.
그냥 시위면 몰라도 폭동이라면-.
···아니 잠깐만.
"그것뿐인가?"
"예?"
"그들의 요구사항 말일세. 왕정 폐지에 반대하다 말고 더 없었나?"
생쥐스트는 곧장 답하지 못하고 한참을 눈을 깜빡거렸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는 듯한 반응이었다.
그야 뭐 혁명의 적이라면 당연히 죽여야 한다는 놈이니 그럴 법도 하지만.
"모든 반란에는 이유가 있는 법이라고 내 일찍이 말했잖은가."
본령도 아닌 코르시카도 자치령이나 자치공화국으로 승격시켜줘야 하지 않을까, 고민하고 있었으면서 본토에서 일어난 폭동을 무작정 진압하려 드는 건 앞뒤가 안 맞잖아.
당장 유제프 때도 큰 그림만 보다가 민간인들과의 불화를 놓치고, 에베르야 아무튼 바뵈프까지 적으로 돌려놓고서 또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 오를레앙 공작이라던가 프로방스 백작이라던가 루이 오귀스트 일가라던가 귀하신 혈통들은 어떻게든 살리려고 기를 썼으면서 폭동이 터졌다고 진압부터 생각하는 것도 자기모순이고.
이 시대에 「폭동진압」이라는 게 어떤 식인지 뻔히 알면서 말이지.
이래서야 바뵈프에게 귀하신 혈통만 싸고도는 수구반동이라고 비난당해도 할 말이 없잖아.
"우선 폭동의 배경을 더 조사해보게. 교섭을 시도해보고, 끝까지 듣지 않는다면 그때 무력을 사용하도록."
"동지, 이건 시간 낭비입니다."
"혁명의 당위성이 달린 일일세."
생쥐스트와 똑바로 눈을 마주치며 대꾸했다.
"이 세상에 그보다 중요한 일이 어디 있다는 말인가?"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반박도 없었고, 긍정도 없었다.
이날 생쥐스트는 변함없이 나의 지시에 순종하여 지시사항을 충실히 이행했다.
하지만, 그의 동공에 내 유약함을 향한 실망이 스쳐 지나가는 걸 우리는 똑똑히 목격할 수 있었다.
***
프랑스 아비뇽.
"아, 제기랄."
북이탈리아 방면군 사령관 앙드레 마세나가 욕지거리를 퍼부었다.
슬슬 국민투표 시기가 다가오는 와중 폭동이 터졌다길래 혹시 그렇지는 않을까-내심 불안에 떨면서 출동했더니 역시나.
"우리 옥시타니아인들이 대체 왜 프랑스인이라는 말입니까!"
그래, 이럴 줄 알았다.
저 하늘 높이 붉은 툴루즈 십자가를 휘두르며 폭도들을 선동하고 있는 선전가들을 먼발치에서 목격한 것만으로 마세나는 그냥 이대로 돌아서서 마르세유로 후퇴하고 싶다는 강렬한 충동에 사로잡혔다.
그야 마세나 또한 저런 식으로 따지자면 프랑스인이 아니라 사르데냐인 일 테니까.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제 태생적 모순과 트라우마를 직시하게 만드는 이런 소동에 괜히 휘말리고 싶지 않았다.
당장 그의 병사 중에서 북부식 오일어(Lenga d'oïl)가 모국어인 이가 더 많은가, 남부식 오크어(Langue d'oc)가 모국어인 이가 더 많은가 하면 단연 후자였으니까.
그런 이들에게 너희가 프랑스인이냐, 옥시타니아인이냐하면 가장 긍정적인 대답이 옥시타니아계 프랑스인이다, 일 거고 아예 옥시타니아계로서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프랑스인이라고 자부할 이는 한 손가락에 꼽을 거다.
이러니 마세나로서는 그냥 총칼로 밀어버리고 싶어도 병사들에게 핑계 삼을 만한 게 저놈들은 왕당파다! 밖에는 생각나지 않았다.
옥시타니아인에게 옥시타니아의 영광을 노래하는 시위대를 유혈진압 하라고 명령한다니, 이 세상에 그보다 확실한 자살법이 어디 있겠는가.
"그렇습니다. 우리는 물론 그동안 프랑스 왕국의 일원이었습니다. 프랑스 국왕의 백성이었고, 우리 나으리들은 왕국의 자랑스러운 기사들이었습니다! 하지만!"
때마침 연단에 선 선동가가 마세나와 병사들에게 들으라는 듯이 언성을 드높였다.
"이는 프랑스 국왕을 향한 봉건 계약이오, 충성이었지 그것이 우리가 프랑스인임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고로, 왕정이 폐지된다면 우리 옥시타니아가 프랑스의 일원으로서 잔류해야 할 의무 따윈 없습니다! 당연히 파리를 위하여 짊어져야 할 책임도 없어지겠지요!
애당초 우리가 왜 선하신 국왕 루이 17세를 권좌에서 내쫓으려 드는 역도들에게 충성해야 한다는 말입니까!"
"""옳소!!!"""
"친애하는 옥시타니아의 형제자매들이여, 기뻐하십시오! 마침내 자유의 그날이 눈앞까지 다가왔습니다! 옥시타니아의 독립을 다 함께 축하할 그날이! 프랑크 침략자들의 오랜 압제가 끝나고 진정한 라틴-갈리아의 부활이! 천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당장이라도 우리 손에 잡힐 듯 다가왔습니다!"
"""라틴-갈리아 만세! 독립 만세! 옥시타니아 만만세!!!"""
쩌렁쩌렁 울리는 함성에 마세나는 차마 대꾸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먼 곳을 바라봤다.
이를 도대체 어떻게 상부에 보고하면 좋을까.
단순한 왕당파 폭동으로?
그래, 그것도 나쁘지 않겠지.
아무튼 옥시타니아 분리주의 진영에서 왕정 폐지를 핑계 삼았고, 또 독립 이후 국체가 왕국이 될지 공화국이 될지 따로 언급하지 않았으니 왕당파로 몰아세우려면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뒤에 기다리는 건 무차별적인 학살 뿐일 거다.
아무렴 파리에 왕정 폐지를 앞두고 왕당파 폭동이 터졌다는 보고가 들어가거든 돌아올 대답이야 뻔할 뻔 자잖은가.
물론 옥시타니아에서 분리독립을 꾀하고 있다고 보고해도 결과는 별달라질 바 없을 거다.
마세나 또한 순수 프랑스인이라고 하기 어려운, 오히려 저 옥시타니아인들에 가까운 혈통과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바 참으로 난감한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결국 제가 선택한 조국과 제 핏줄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고 있는 격이었으니.
"어떻게 할까요, 대장?"
그의 부관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 또한 파리에서 흔히 쓰이는 북부식 오일어가 아닌, 남부식 오크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옥시타니아계였다.
"그, 진짜로 진압할까요? 경고사격부터 시작하면 됩니까?"
"미쳤냐."
하아-.
마세나가 땅이 꺼지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바리케이드부터 세워. 저놈들이 절대로 넘어오지 못하게 하고, 넘어오면 그때 경고사격 해라. 정 못 막겠으면 머리보다는 다리나 팔 같은 데를 조준해서 사격하라고 하고."
"네, 넷!"
"아, 그리고 혹시 시청이나 코뮌에서 나 찾으면 술 먹고 여자랑 자느라 바쁘다고 해라. 현장에서 터지는 어지간한 사건·사고는 너희들 선에서 유도리있게 대처하고."
"···그럼 파리에서 찾으면요?"
침묵.
마세나는 한참을 대꾸하지 못하고 눈을 질끈 감고 있었다.
그의 부관들 또한 내심 그 심경을 모르는 게 아니었기에 차마 대장을 보챌 생각도 못 하고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너흰 내가 시키는 대로 했다고 해."
후우-.
결국 마세나가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가 내쉬며 대꾸했다.
"너흰 아무 책임 없는 거다. 당장 진압하지 않고 시간이나 질질 끌고 있었던 것도, 저놈들 못 본 척 눈감아준 것도 전부 이 앙드레 마세나라는 개자식이 총 들고 협박하면서 강요한 일이라고 해. 정 못 빠져나가겠으면 날 왕당파라고 몰아세우던가."
"대, 대장···!"
"저번에 토스카나에서 꿍쳐온 보물들 많잖냐. 그거 다 파리에서 내려온 조사관에게 가져다 바치면 나 한 사람 목숨 건지는 것 정도는 일도 아닐 거다. 그러니까 너희는 이 대장 걱정할 시간에 너희 목숨 건질 궁리나 해."
부하들은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제가 대신하겠다며 나서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말리지도 않았다.
다만 조용히 고개를 떨구었을 뿐.
"하, 인생 진짜."
그들 사이에서는 이게 당연한 결말이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마세나는 나지막이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홀로 막사로 돌아갔다.
털썩.
자, 이제 어쩌면 좋을까.
미처 불을 댕기지도 못하고 입에 담배 하나만 꼬나문 채 마세나는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왕당파 폭동이라-.'
그래, 물론 정말로 부르봉조에 대한 충성심으로 폭동에 참여한 이들도 있을 것이다.
국민투표 자체에 반대해서, 이를 무효화 시키기 위하여 나선 이들도 없지는 않겠지.
하지만 그게 전부일까?
오히려 국민투표와 왕정 폐지에 적극적으로 찬동해서 저 자리에 있는 이들은 과연 없을까?
'···엿 같군.'
일이 단단히 꼬였다.
정말로 왕정 폐지에 반대하는 게 목적인 이들이 있는가 하면 이를 핑계 삼아 무질서와 옥시타니아 독립여론을 확산시키는 게 목적인 이들이 섞여들었다.
물론 프랑스 정부에 충성하는 혁명군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둘 다 반드시 진압해야만 하는 반역자들이고 혁명의 적이지만-.
앙드레 마세나라는 인간을 구성하는 정체성이 고작 혁명군 하나뿐이던가.
"빌어먹을, 차라리 전쟁이나 터질 것이지 이게 대체 다 뭐야."
그럼 그냥 가차없이 쓸어버렸을텐데.
또다시 욕지거리가 터져 나왔다.
미처 불을 붙이지도 못하고 담뱃잎만 잘근잘근 씹고 있자니 입맛이 썼다.
하지만 이 시가를 뱉는다고 입 안에서 쓴맛이 가실 것 같지는 않았다.
결국 이도 저도 못 하고 시간만 질질 끌면서 파리에서 그를 압송하기 위하여 찾아올 저승사자만 기다리던 찰나.
막시밀리앙 드 로베스피에르가 몸소 옥시타니아에 행차하리라는 급보가 전해졌다.
작가의 말
옥시타니아의 상징인 툴루즈 십자가와 넓은 의미에서의 옥시타니아 문화권 지도입니다.
왕정 시절만 해도 파리를 주축으로 한 북부와는 별개의 독자적인 언어와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으나, 혁명 이후 수 세기간 강경한 동화정책이 이뤄지며 오늘날에는 찾아보기 어려워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