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0화 (90/154)

반대자

[이건 좀 공교롭군.]

뭐가?

[하필이면 코르시카에 이어서 옥시타니아라니, 아무래도 시기가 묘하잖은가. 심지어 둘 다 남쪽 지방이지. 난 오히려 서쪽 브르타뉴 반도에서 가장 먼저 들고 일어날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그러니까 영국이 아니라 합스부르크나 지중해 쪽 국가들이 배후세력인 거 같다?

[어디까지나 내 생각에는 말일세. 아마 이번 크라쿠프 혁명에서 폴란드인들에게 힘을 실어준 데에 대한 경고 내지는 우리가 동쪽에 국력을 투사할 수 없도록 견제한 게 아닐까 싶네만.]

흠, 그럴듯한 이야기구만.

반대로 괜히 범켈트주의 뇌관을 건드리고 싶지 않았던 영국이 브르타뉴만 건너뛴 거라던가, 아니면 코르시카와 옥시타니아가 각각 다른 나라가 개입한 분리주의 운동일 가능성도 충분하지만.

당장은 외세의 개입이라기보다는 왕정 폐지 이후 언젠가 한 번쯤은 겪고 지나갔어야 할 진통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계속 외세의 개입이라는 전제로 생각하다 보면 덩달아 대응책도 강경해질 수밖에 없으니까.

애초에 지금 문제의 핵심은 그동안 국왕이라는 존재가 구심점 노릇을 하고 있었던 봉건적 국가연합체에 그 구심점이 허물어지면서 분리주의 운동이 힘을 얻고 있는 거지 외세의 개입이 아니잖아.

[뭐···그렇게 생각하면 또 그렇게 받아들일 수도 있겠지만 말일세.]

얼씨구, 본인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 모양이네.

하기야 원래 내셔널리즘이 끼이면 객관적인 사고가 힘들어지는 게 보통이긴 하지만.

"···각하께서 몸소 행차하실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습니다만."

척.

저게 「여기엔 도대체 뭐 하러 온 거냐」로 들린다면 기분 탓은 아니겠지.

내게 군례를 올리는 앙드레 마세나나 현지 주둔군의 반응도 썩 내게 호의적이진 않다.

하기야 수상쯤 되는 양반이 직접 행차했다는 것 자체가 뭔가 파리에서 결단을 내렸다는 거고, 경험적으로 초토화 작전이 될 가능성이 더 크니 이 지방 출신으로서 경계하는 게 당연하긴 한데.

"혹시 제가 시위 지도부와 직접 면담할 수 있겠습니까?"

"면담, 말씀이십니까?"

"표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회담이라고 고쳐도 상관은 없습니다. 지도부가 없다면 임시 대표자로도 충분하고요."

그럼 구질구질하게 설명한다고 해봤자 저쪽에 신뢰감을 불어넣을 자신도 없고.

나도 시간을 쪼개가며 급히 달려온 몸이라서 오래 머물 수 없으니 그냥 곧장 본론으로 들어가는 게 맞겠지.

"그거라면 어렵지 않을 겁니다."

내가 초토화 작전이 아니라 평화로운 해결책, 내지는 상황 파악을 위하여 급히 달려왔다는걸 알게 된 마세나의 안면근육이 그제야 조금이나마 풀어졌다.

"반나절 정도만 기다려주십시오. 그까짓 시위지도부가 없더라도 펄떡펄떡 뛰는 놈을 붙잡아 산채로 대령하겠습니다."

"어, 아니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뭐, 농담입니다. 기껏해야 돈 주고 사 올 생각 밖에 안 했습니다."

[···그, 뭐랄까. 굉장히 유쾌한 친구군.]

유쾌고 나발이고 이거 농담 맞지???

저번 전쟁 때 바르바리 해적들과 짜고 대놓고 지중해 해적질했던 양반이라서 그런지 도저히 농담처럼 들리지를 않는다.

"그러게 농담이라니깐요."

헌데 마세나라는 친구는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혼자서 낄낄대며 자리를 떠났다.

···이거 불안한데.

설마 진짜로 납치해오거나 돈 주고 사 오는 거 아니겠지.

"우린 당신 같은 반역자와 나눌 이야기 따윈 없소."

그런데 웬걸.

그로부터 정확히 반나절 뒤 마세나는 약속대로 나와 이 지역의 선전가들을 서로 마주 앉게 해주었다.

어째 구석구석 멍들어있는 게 썩 평화로운 초청은 아니었던 것 같지만.

그래도 일 하나는 똑바로 하는 친구였구나.

내 머릿속 앙드레 마세나라는 인물의 평가를 조금이나마 상향시켰다.

"그러니 어서 죽이든 살리든 마음대로 하시오. 죽음으로서나마 조종의 하해와도 같은 은혜를 갚을 수 있다면야 바라던 바지. 내 그리스도의 왕국에서 당신들의 영혼이 고통에 몸부림칠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으리다."

"뭔가 오해가 있는 모양인데."

잘난체하며 떠들고 있는 주교님과 정면으로 눈을 마주쳤다.

"전 당신들 수구반동과 이야기하려고 이 자리에 나선 게 아닙니다."

"···그게 뭔."

"옥시타니아의 앞날을 두고 이 로베스피에르와 교섭할 용기 있는 분만 앞으로 나서십쇼. 이 주교님처럼 저와 다가올 국민투표를 두고 하잘것없는 입씨름이나 하려고 오신 분들은 이만 나가주셔도 상관없습니다."

그제야 좌중이 조금이나마 동요하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우두머리 격으로 보이는 주교가 달래고 있기야 한데-어림도 없지.

이미 멋모르는 애송이들이 하나둘 불쑥불쑥 손을 들고 일어나려고 하는 게 보인다.

역시 아직 시위건 파업이건 원시적일 시기라 우리 급진당에 비해선 조직화가 덜 되었구만.

"제게 정확한 요구사항을 말씀하십시오."

본격적인 소동에 앞서 만일을 대비하여 마지막으로 한편에서 병사들과 함께 대기하고 있는 마세나를 돌아봤다.

그리고 그 마세나는 팔짱을 낀 채 흥미진진하게 이쪽을 구경 중.

오히려 완전무장 한 병사들이 긴장되는지 침을 꼴깍꼴깍 삼키고 있지, 이 자리에서 무슨 일이라도 터지면 당장에 옷을 벗건 목이 달아나건 할 현장 총책임자는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혼자 시죽시죽 웃고만 있었다.

이건 깡다구가 좋다고 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머리의 나사가 하나둘 빠졌다고 해야 하는 건지.

하기야 그렇게 치면 휴가까지 쪼개가며 마차 타고 폭동 한복판까지 달려온 나도 남 말할 처지는 아니긴 한데.

"하나, 파리와 마르세유를 양대 축으로 삼아 동등한 협력에 기초한 연방제 실시."

일단 저 칠뜨기들에게 제대로 불을 질러보자.

한창 소란스러운 대표단을 향해 검지를 하나 펼쳐 보였다.

"둘, 파리의 수위권을 인정하는 선에서 자치권 보장. 셋, 개별 주마다의 제한적인 주권을 전제로 한 합중국 재편성 안. 일단 제가 여러분께 제안할 수 있는 제안은 여기까지가 한계입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마르세유를 공동수도로 승격시켜주십시오!"

"공동수도라니! 이 사람아, 언젠가 독립할 생각을 해야지 그건 그냥 합쳐지자는 소리잖은가! 우리 옥시타니아의 자치를 보장해주시오!"

"다 틀렸어! 파리가 곧 프랑스라는 소리까지 나오는 마당에 자치고 공동수도고 다 무슨 소리인가? 우선 합중국 안으로 갈기갈기 찢어야지!"

"갈!!! 자고로 충정이란!"

그다음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애초에 혁명 초기 우리네 정치동아리보다 못한 오합지졸들이었으니 당연한 결과이긴 했지만, 서로 저만 옳다면서 언성을 높이는 마당에 각자 발언권을 마구 가로채기 시작하니 삽시간에 감정싸움으로 번진 것이다.

"이 매국노 자식이 지금 뭐라는 거야! 당연히 자치권부터 찾아와야지!"

"뭐? 매국노? 왕국을 지키려는 게 매국이라고? 이런 역도 새끼를 봤나!"

"행정독재의 안락사! 그것만이 풀뿌리 민주주의의 구원!!!"

"경비대, 당장 저들 좀 떼어놓게!"

끝내는 패싸움이 벌어지고 마세나의 경비대가 달려들면서 이날의 회담, 혹은 면담은 완전히 파장.

일단 내일까진 아직 여유가 있으니 다들 흥분을 가라앉히고 다시 만나자며 마무리 지었지만, 솔직히 이게 하루 이틀 안에 이견조율이 될만한 주제도 아니고 과연 가능할지는 모르겠다.

진짜 하룻밤 사이 해결하려면 장검의 밤부터 거하게 돌려야 할 텐데.

[···흠, 그러니까 처음부터 저들을 사분오열시키려는 목적이었던 건가?]

아니, 그건 아니고.

이제 어떤 식으로건 오늘 사건이 소문의 형태로 퍼지기 시작할 텐데 과연 옥시타니아인들이 어떤 식으로 반응할지가 보고 싶었다.

애초에 저 어중이떠중이들이 진짜로 아비뇽시의 민의나마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지조차 의문인데 쟤네랑 뭘 믿고 교섭해.

까놓고 합스부르크나 런던이 심어놓은 쁘락치가 숨어있을지도 모르는건데.

진짜로 독립 시켜줄 거 아니면 이 악물고 탄압해야 할지, 그냥저냥 지방자치 선으로 끝낼 수 있을지.

그도 아니면 자유로운 공화국들의 평의회 국가연합을 구상해야 할지 그때 가서 보고 판단해봐야지.

[미리 말해두지만, 마지막은 결단코 반대일세.]

우우, 반동 부르주아지 로베스피에르는 물러가라.

"오늘 그건 파리의 총의인겁니까?"

그날 저녁.

날 제 임시관사로 초대한 앙드레 마세나가 대뜸 질문을 던졌다.

본인은 망한 주점을 징발한 거라고 둘러댔지만···글쎄.

내부 장식도 그렇고 분위기도 그렇고 암만 봐도 원래 물장사하던 곳 같은데 이런 곳에 일국의 수상을 초대하는 건 도대체 뭐 하는 정신줄인지 잘 모르겠다.

[그러니 무법자 아니겠는가.]

아, 하기야 원래 혁명 터지기 전까진 밀수업자 하던 친구라고 했었지 참.

"아니, 내 개인의 의견일세."

"···그러니까 진짜 연차 내고서 개인 자격으로 파리에서 아비뇽까지 달려오신 거라고요?"

"그렇네만."

그래서 오늘 면담 와중에 꼬박꼬박 저와, 이 로베스피에르와 같은 식으로 단서를 달았었잖아.

물론 이렇게 오해의 소지를 없애도 내가 현직 수상인 이상 이를 곡해해서 받아들일 여지가 남게 되겠지만-그것까지 포함해서 각오한 바다.

괜히 이대로 유혈사태로 번질지도 모르는데 손 놓고 있는 것보다야 옥시타니아인들에게 교섭의 여지가 남아있다는 희망을 보여주는 게 피를 덜 보고 끝날 테니까.

그로 인해 파리의 원성을 사게 된다면야,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달게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맘마미아."

짝짝짝.

그러자 돌연 앙드레 마세나가 박수갈채를 보내기 시작했다.

···지금 놀리는 건가?

"혹시 담배 피우십니까? 때마침 향도 좋고 맛도 좋은 기아나산 시가가 있습니다만. 돈준다고 아무 데서나 구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닌데, 상선사관 시절 인연으로 슬쩍 했습죠."

"미안하네만 난 담배는 안 피워서."

"에이, 그럼 지금부터 피우십시오. 깡다구로 봐서는 줄담배 피시게 생겼는데 무슨 사내대장부가 담배 하나 안 피우고 삽니까."

푹.

마세나가 반박은 듣지 않겠다는 듯이 대뜸 내 입에 시가를 욱여넣더니 불을 댕겼다.

치익-.

"···콜록콜록!"

아니 이 미친놈아!

나 담배 안 피운다니까!

그리고 비흡연자에게 일반 궐련도 아니고 대뜸 시가부터 물려주는 게 어디 있냐!!!

트라우마 생겨서 어디 나중에라도 피우겠냐고!

"···와, 씨. 진짜 안 피웠나 보네."

헌데 오히려 마세나는 제가 더 놀라서 입을 쩍 벌렸다.

이런 빌어먹을 18세기를 봤나.

무슨 남자면 무조건 술·담배에 쩔어 살아야 하냐!

이제 겨우 우리네 술 동아리에 익숙해졌더니 이번에는 또 담배야?!

"뭐, 안 피울 거면 마십시오. 안 그래도 귀한 놈인데 한 개비라도 아낄 수 있다면야 저야 잘된 일이지요. 아, 혹시 술도 안 하십니까?"

"남들이 권한다면야 마시지. 자작은 삼가는 편일세."

"와, 진짜 이 노총각은 대체 평소에 무슨 재미로 사는 거지?"

다 들린다, 이놈아.

그리고 총각도 아니고.

[이봐!!!]

아니 왜.

뒤플레 아가씨와 약혼반지 주고받으면서 귀가 찢어지라 좋아할 때는 언제고.

또 노총각의 뜨거운 치정사 묘사해줘?

[야, 박민혁!!!]

얼씨구, 이놈이 반말도 할 줄 알았네.

"아무튼 한잔 받으십시오. 이것도 나름 상파뉴에서 직접 공수해 온 귀한 술입니다. 안 그래도 피곤하실 텐데 한잔 자시고 푹 주무시면 피로도 풀리겠지요."

"그럼 감사히 받겠네."

"소문에는 갈리아주의자시라고 들었습니다만."

짤랑.

마세나가 내게 샴페인이 가득 채워진 잔을 건네며 되물었다.

"이번 일도 갈리아주의자로서의 사명감 같은 겁니까? 갈리아 형제자매애라던가 뭐 그런?"

"글쎄."

그보다도 도대체 이 갈리아주의자라는 소문은 어디까지 퍼진 거야.

이젠 진짜 어디 가서 딴소리도 못 하겠네.

"부정은 하지 않겠네만, 그것만은 아닐세."

"오호라. 그렇다면?"

"내가 아니면 누가 나서겠는가?"

지금 원내에 즐비한 사이다패스들은 물론이고, 평범한 파리 시민 중에서도 옥시타니아의 목소리도 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텐데.

당장 21세기의 내가 옥시타니아라는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만 봐도 원 역사에서 이 논쟁의 결말이 어떻게 끝났는지야 너무나 명백하다.

고로, 나는 반대자로서 이의를 제기하겠다.

새롭게 태어날 혁명 공화국이 또 다른 파리 공화국으로 끝나게 두지 않겠다.

"와, 무슨 오페라 하는 것도 아니고 이걸 진짜 본인 입으로 말하네."

···아니 그런데 야.

네가 말 꺼내게 해놓고서 이러기 있냐.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마세나는 또 혼자 낄낄대며 샴페인을 단번에 들이켰다.

쨍.

"좋습니다."

들이키고, 텅 빈 잔을 내 잔에 부딪히더니.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유라면야 당연히 협력해드려야지요. 적어도 옆에서 구경하고 있으면 심심하지는 않을 듯하니, 계약금은 따로 받지 않겠습니다."

"···어, 고맙네?"

"별말씀을."

마세나가 연극 속 배우처럼 가볍게 무릎을 굽히며 내게 인사를 올렸다.

인사를 올리는 마세나는 이날 처음으로 웃음기 하나 찾아볼 수 없는 진지한 얼굴이었다.

***

파리의 으슥한 뒷골목.

"양보는 결단코 있을 수 없습니다!"

쾅.

바뵈프가 연단을 있는 힘껏 주먹으로 내리치며 부르짖었다.

"만일 저 압제자들이 충분히 도덕적이었다면, 저들의 양심에 기댈 수 있을 만큼 이타적이었다면 분권 또한 한가지 수였겠지요! 하지만 저들이 그러했습니까? 다른 누군가가 감시하지 않아도, 강제하지 않아도 그들의 몫을 나눠줄 만큼 선량하고 이타적이었습니까? 우린 저들을 신뢰할 수 없습니다!"

"여기 계신 바뵈프 동지의 말대로요!"

기다렸다는 듯이 에베르가 바뵈프의 발언권을 가로챘다.

어딘가 절박하고, 필사적인 목소리였다.

"오직 절대적인 권력만이! 인민의 자발적인 지지로부터 비롯된 절대적인 독재 권력만이 개개인의 이기심을 억누르고 공동체를 위한 부의 재분배를 강제할 수 있소!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이를 어떻게 다루고 또 올바르게 유지할 것인가에 대한 연구고 토의지 권력을 나눈다니 어불성설이오!"

"맞습니다! 에베르 동지께서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이번에는 반대로 바뵈프가 발언권을 가로채 갔다.

훨씬 여유롭고, 관대함마저 느껴지는 태도였다.

"모든 권력을 파리에게로! 오직 권력을 집중하는 것만이 공동체의 복리증진을 위한 유일무이한 해법입니다! 고로 우리는 조금도 양보할 수 없습니다. 하물며 양보해서도 안 됩니다! 양보를 이야기하는 수구반동들을 단호히 분쇄하고 완전한 수위권을 확보했을 때! 그때 비로소 우리는 우리 평등파의 혁명이 완성되는 순간을 목격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바뵈프 만세! 평등파 만세! 혁명 만만세!"""

'이, 촌뜨기 주제에···!'

뿌득.

에베르가 남몰래 이를 갈았다.

똑같이 연설하고, 똑같이 중앙집권을 부르짖고 있는데도 누구 한 사람 에베르를 우러러보는 이는 없었다.

그를 지지한다는 이들조차 이제와서는 「평등파의 에베르」를 지지하는 것이지, 오롯이 에베르 한 사람만을 바라봐주는 이는 극히 드물었다.

그야 에베르는 혁명의 적들을 헐뜯고 비난했을 뿐 바뵈프처럼 작금의 로베스피에르 정권을 대체할 대안을 제시하진 못했으니까.

어느덧 당연하다는 듯이 청중의 중심에 선 바뵈프가 부르짖었다.

"옥시타니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폭언이었다.

하지만, 그들 파리에서는 이것이 정론이었다.

"코르시카도, 브르타뉴도, 알자스-라인란트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직 혁명만이! 부의 재분배를 강제할 파리의 혁명정부만이 실재할 뿐입니다! 이에 역행하려는 모든 종류의 시도는 봉건적 모험주의에 불과합니다! 이들을 남김없이 무찌르고, 파괴하고, 바로잡았을 때! 우리는 하나 된 프랑스에서 진정으로 자유롭고, 평등한 인민으로서 재결합하게 될 것입니다!!!"

곧 사방에서 우레와 같은 박수와 환호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 뒤로도 에베르는 몇 차례고 반대자들을 힐난하고 바뵈프를 견제했으나, 청중들은 이를 찬조 연설로만 인지할 뿐이었다.

그들 평등파는 지난날 에베르가 꿈꿔왔던 대로 오직 절대적인 하나의 목소리만을 긍정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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