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2화 (92/154)

마지막 회기

국민투표 당일.

"제발 우리를 들여보내 주십시오!"

"당장 해산하시오! 그리고 지역구별로 지정된 투표소가 아니면 투표하실 수 없소! 그러니 이만 돌아가시오!"

"염병하네, 어차피 지방표는 받아줄 생각도 없으면서!"

"그래! 어차피 버려질 반대표라면 파리에서 투표하련다!"

"한 걸음도 물러나서는 안 됩니다! 저 파리 놈들에게 진정한 프랑스의 민의를 보여줍시다, 여러분!"

교외는 그 전전날서부터 파리로 상경하여 직접 투표권을 행사하겠다는 왕당파들과 이들을 막아선 파리 방위군+공화파 민병대의 대치로 혼란스러웠다.

푸셰의 말에 따르자면 그 규모만 어림잡아서 10만 명 이상.

에베르 등의 강경파는 이들을 반란군이라고 묘사하면서 기병대를 투입해 모조리 짓이겨버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저게 고작 10만 명이라고?]

그러게.

내 수차례에 걸친 시위 참여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이 정도면 100만 명은 과장이겠지만 못해도 20만 명은 훌쩍 넘는다.

저 많은 사람이 왕실을 위하여, 그리고 혁명정부에서 반대표를 아예 집계조차 하지 않는 부정선거를 벌일 거라 확신해서 상경했다니 새삼 파리는 무림공적이 맞구나 하는 실감이 든다.

하기야 집주인 놈도 파리 제국이라고까지 표현할 정도였으니 그동안 오죽했겠느냐마는.

그럼에도 파리에서 그럴 마음만 먹는다면 혼자서 나머지 프랑스 전역을 압도할 수 있다는 게 새삼스레 무시무시하게 다가온다.

그동안이야 파리가 든든한 우방이자 배후지였지만, 이번만큼은 다르니까.

"선하신 국왕 루이 17세 폐하 만세!"

"당장 물러서지 않는다면 발포하겠다!"

"그래, 쏴봐라! 어디 쏴봐! 이제 고작 9살 드신 국왕 폐하를 해할 바에야 날 해쳐라, 이놈들아!!!"

"···큭!"

그렇다고 저 왕당파들도 내 우방이나 지지자라고 하기 어려우니까 더더욱 문제지.

전반적으로 보면 왕당파 집회 쪽은 완전히 눈이 까뒤집혔지만 파리 방위군이나 공화파 민병대는 썩 모질게 나가지 못하는 모양새다.

그야 지금 권좌에 앉은 게 나라를 말아먹은 루이 오귀스트라면 모를까 이제 고작 9살 먹은 루이 17세를 두고 왕정 폐지를 국민투표에 부치는 것 자체가 썩 모양이 사는 구도는 아니니까.

「폭군을 폐했으면 된 거지 왜 아무 죄 없는 소년왕까지 물고 늘어지냐?」라는 게 타당한 반론이 되어버렸고 또 실제로도 그 탓에 왕당파 집회 쪽에 정당성이 부여되어버렸다.

혁명의 심장 파리에서조차 점점 국민투표일이 다가올수록 다들 머리가 식으면서 굳이 왕정 폐지까지 해야 하나? 라는 지적이 심심치 않게 나올 지경이었으니까.

뭐어, 그렇지만.

타타탕!

[이제 와서 파리에서 물러날 리가 없잖은가.]

···그래.

모양이 빠진 건 빠지는 거고, 여기까지 와서 파리가 물러날 수도 없다.

꺄아악-!

결국 몇 차례의 경고사격과 함께 뮈라가 이끄는 기병대가 난입하면서 왕당파 집회를 파리에서 물리적으로 밀어내기 시작했다.

안그래도 파리 내에서조차 동요하는 판에 저들을 소년왕을 위해 죽어간 순교자로 만들어줄 순 없을테니 현장에서 나름 조절하긴 하겠지만, 이 과정에서 몇이나 죽거나 다치고 또 혁명정부를 두려워하거나 증오하게 될까.

그야 헤아릴 수조차 없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저들을 말리거나 구할 수도 없다.

이제 와서 저들과 타협하거나 협치한다는 건 혁명을 포기한다는 것과 다르지 않으니까.

프로방스 백작이 이들의 슬픔과 실망을 잘 보듬어주기를 기대할 따름이다.

잠시 아수라장이 된 왕당파 집회를 내 눈과 귀에 담아두다가 이내 발걸음을 옮겼다.

목적지는 국회의사당.

"그럼 개회를 선언하겠습니다."

지난 아비뇽 사건과 관련하여 나의 청문회를 빙자한 인민재판장이었다.

하필이면 국민투표 당일을 청문회 당일도 잡다니, 에베르도 참 남 물 먹이기 좋아하는 친구란 말이야.

아마 내 주특기인 대중동원이나 여론몰이를 원천봉쇄하려는 수작이겠지만.

그로 인해 빚어질 권력 공백으로 인한 혼란상보다도 날 공격하는데 집중하겠다는데에서 참 뒤틀린 애증마저 느끼게 하는 친구다.

그걸 또 좋다고 동참한 원내의 리틀 에베르, 리틀 생쥐스트들도 남 말할 처지는 아니지만 말이야.

"피고인."

개회가 선언되고, 각자가 자리에 앉음과 동시에 에베르가 나섰다.

차라리 바뵈프가 있었으면 좋았으련만, 아직 지방의원이라서 빠진 게 아쉽군.

평소 언제나 남들을 비웃는 듯 실처럼 휘어진 입꼬리는 온데간데없이 어딘가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모습이었다.

"아니면 수상 각하, 혹은 위원장 동지라고 불러드릴까요? 자, 어느 쪽으로 불리길 원하십니까? 막시밀리앙 드 로베스피에르 의원님. 오늘만큼은 그쪽에서 원하는 대로 불러드리지요."

[조까, 이 개자식아.]

어허, 진정하시고요.

"그럼 동지라고 불러주십시오."

"알겠습니다. 그럼 피고."

···아니 이럴 거면 왜 물어본겨.

뭐 사방에서 키득거리고 있는 사이다패스들만 봐도 일부러 비웃으려고 이런 거 뻔히 알기야 하는데.

"더 볼 게 뭐가 있습니까? 그냥 내쫓아버립시다!"

"그래요! 발가벗겨서 내쫓아버려요!"

"아예 본인이 그렇게 좋아하는 왕당파들 옆에 눕혀주는 거 어떻습니까?"

"피고, 로베스피에르! 죄목, 혁명의 심장 파리에 맞서려 한 죄! 권력을 사유하고 독재관으로서의 직권을 남용한 죄!"

"이게 다 노총각 히스테리 때문이오! 앞으로 선거에 출마하려면 그 첫 번째 자격요건으로서 기혼자일 것을 명시하도록 합시다!"

오히려 에베르보다도 이 친구들이 그동안 쌓인 게 많아서 그런가 아주 독기를 품었구먼.

이러다가 진짜 사형소리 나오는가 아닌지 몰라.

유심히 살펴보자면 브리소나 콩도르세를 비롯한 야권 인사들은 다들 날 걱정해주거나 참담한 얼굴로 한숨을 푹푹 내쉬고 있는데 지난 보통선거제 개헌 이후 급진당에 가입했던 친구들이 꼴좋다는 듯이 이쪽을 노려보고 있다.

[뭐, 업보라고 봐야지 않겠나.]

따지고 보면 그렇기야 하지.

땅·땅·땅.

"조용."

아무튼 사이다패스들의 아무 말 대잔치를 듣고 있자니 오늘 청문회 진행 역을 맡은 당통이 나섰다.

아무리 봐도 내가 저쪽에 앉아있고 저 반드시 부패하는 친구가 여기 앉아있어야 할 것 같은데 거꾸로가 되어버리다니.

이것 참 아이러니하구만.

"이의를 제기하거나 추궁하는 건 좋소. 하지만 오늘 진행에 방해가 되는 혼잣말을 반복하거나 발언권을 무시하고 심지어는 가로채려 든다면 내 직권으로 모조리 추방하도록 하겠소."

"아니 당통 의원님, 지금 친구라고 싸고 도시는 겁니까?"

"그래, 누군 급진당 당원 아닌가? 일을 할 때는 객관적이어야지, 공적인 자리에서까지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좋소, 그렇다면."

당통이 으르렁거렸다.

"아무나 발언하게 해줄 테니 대신에 탁 트인 곳으로 자리를 옮겨서 오늘 어떤 대화가 오고 갔는지 빠짐없이 파리 시민들에게 공개합시다. 다들 여론몰이 좋아하시니 기왕에 할 거면 확실하게 하는게 낫잖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그야 당연하지.]

오늘 난 내가 혁명의 적들이 사분오열하도록 일부러 이간계를 벌인 거라고 둘러댈 작정이고, 저쪽에서도 그걸 모르지는 않을 거다.

실제로 분리주의 진영은 나의 제안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일시적으로나마 사분오열해버렸으니 이 경우 포장하기에 따라서는 오히려 월권이 아니라 업적이 될 터.

그럼 국가지도자의 개인기로 모든 난관을 해결하는 절대군주정에 길들여진 대중 여론은 「좋은 게 좋은 거지」로 끝날 수밖에 없다.

물론 이 경우 또 한 번 파리를 구한 영웅이 되는 대가로 지방분권이라는 내 구상도 망가지겠지만···.

애초에 지금 저놈들에게 중앙집권-지방분권은 덤이니까 그리 쉽게 빠져나갈 구석을 만들어주지는 않을 거다.

경우에 따라선 내부총질이나 반란표로 비출 수도 있으니 더더욱 더.

[어차피 그동안 쌓인 짜증을 풀고 총선에 앞서서 우릴 끌어내리는 게 주된 목적일 테고.]

"그럼 재개합시다."

비로소 어느 정도 원내가 조용해지자, 다시 에베르가 입을 열었다.

"피고는 휴가를 빙자하여 수상이라는 신분을 망각하고 혁명의 적들과 내통하려 했습니다. 사실입니까?"

"아뇨, 혁명을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혁명의 적들을 이간질하려는 심산이었다?"

"실제로 그렇게 되었잖습니까."

"그렇다는 건."

에베르가 회심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피고가 휴가를 빙자하여 권력을 사유하고 직권을 남용했다는 건 사실이라는 말씀이시군요?"

···제법 날카롭게 찔러왔군.

"친애하는 의원 동지 여러분!"

이를 긍정이라고 해석한 에베르가 언성을 드높이기 시작했다.

"모두 들으셨습니까? 여기 피고가 죄를 자백했습니다! 권력을 사유하였으며, 직권을 남용하였다! 그것도 절대군주조차 아닌 일개 총리가!"

쾅.

"하면 이 세상에 이보다 더한 죄가 어디 있단 말입니까? 피고 로베스피에르는 민선의원이라는 신분을 망각하고 봉건 지배자들처럼 권력을 사유하고자 하였고, 이를 위해 필요한 절차를 과감히 생략하였으며 심지어는 이를 혁명의 적들을 이롭게 하고자 남용하였습니다!"

"월권을 행사하였다는 건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여기까진 부정할 것도 없는 사실이니까.

다만.

"혁명의 적들을 이롭게 한 적은 없습니다."

"오, 이 모든 게 혁명을 위한 희생이고 봉사셨다?"

"그렇습니다."

"그럼 증명해보시오."

에베르가 조소하며 자리에 앉았다.

···햐, 진짜 남 물어뜯을 때만큼은 무서운 놈일세 그려.

여의도 굴다리에 끌려갈 여지도 안 주려고 드네.

[난처하게 되었군.]

"친애하는 의원 동지 여러분."

뭐, 그럼 도로 끌어내면 되는거지.

"이것 한 가지만 분명하게 해주셨으면 합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요?"

"또 말을 돌리시려는 거 아닙니까?"

"월권을 행사한 것과 절차를 밟지 않은 것."

찬찬히 좌중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둘 중 어느 쪽이 저의 죄입니까?"

"그거야 당연히-."

한 리틀 에베르가 코웃음을 치며 대꾸하려다가, 이내 입을 다물었다.

에베르는 나의 행동이 혁명을 위한 희생이고 봉사였다는걸 증명하라고 말했다.

이때 나의 죄가 월권이라면 권력을 사유했다는 소리가 되니 나의 행동이 희생이 아니라면 내가 혁명을 빙자해 사익을 취했음을 저쪽에서 증명해줘야 한다.

나의 죄가 절차를 생략한 것이라면 우선 이 청문회를 빙자한 인민재판부터 관두고 정상적인 징계절차를 밟아야한다.

반대로 나의 죄가 두 가지 다라면?

간단하다.

"독재가 저의 죄입니까?"

그렇다, 라면 오늘 일은 독재 권력에 반대하는 경종이 될 테니 평등파가 난처해진다.

아니다, 라면 독재가 정당하다는 소리이니 날 징계할 명분이 사라진다.

독재란 개인, 혹은 집단이나 체제가 어떠한 외부적 견제도 받지 않고 권력을 사유하는 상태니까.

독재자가 권력을 사유하고, 절차에 얽매이지 않았다는 게 죄가 될 순 없다.

벌떡.

"그건 죄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자 또 한 사람이 정면에 나섰다.

놀랍게도-혹은 그리 놀랍지 않게도 생쥐스트였다.

"독재관이 권력을 사유함이란 혁명을 위함입니다. 보편적 다수가 긍정하는 공공선을 실현하기 위함이고, 독재 권력으로서 개개인의 이기심을 억누르고 혁명적 가치를 사수하기 위함입니다. 고로 독재란 죄가 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죄가 될 필요도 없지요."

에베르가 냉소했다.

"피고의 죄는 월권입니다."

"그렇다는 건, 제가 사익을 추구했다는 말씀입니까?"

"월권이면 족하잖습니까. 구태여 사익을 추구했다, 아니다 같은 귀찮은 증명까지 필요한가요?"

"물론 필요하고 말고요."

왜냐하면.

"조금 전 독재는 죄가 아니라고 하셨잖습니까."

침묵.

"생쥐스트 의원께서는 독재관이 권력을 사유함이란 혁명을 위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제가 사익을 추구하지 않았다면 개인의 이기심을 억누르고 혁명적 가치를 도모했다고 할 수 있겠지요."

에베르는 변함없이 대꾸하지 않았다.

다만, 이마를 타고 흐르는 식은땀이 그가 자기모순에 빠졌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야 평소 평등파에서 주장하던 논리 또한 생쥐스트와 별 다를바 없었으니까.

"자, 어서 답해주십시오."

오늘 청문회에 참석한 청중들의 면면을 하나하나 살피며 목청껏 부르짖었다.

"저는 유죄입니까? 무죄입니까. 우리의 혁명이 만들어갈 새로운 혁명 공화국은 개인이, 집단이, 체제가 권력을 사유하는 것이 긍정되는 나라입니까? 그렇지 않다면 그 어떤 개인이나 집단, 심지어는 체제조차 권력을 사유할 수 없어야만 합니까."

"개수작하지 마시오!"

에베르가 내게 맞서 언성을 드높였다.

졸지에 생쥐스트의 맹활약(?) 덕택에 논점이 엉뚱한 곳으로 튀었음을 눈치챈 것이다.

"설령 어떤 변명을 대건 피고는 휴가 와중 의회나 내각의 상의 없이 월권을 행사하였소! 그것만으로도 피고는 유죄요!!!"

"아, 유죄라. 그렇다면 역시 권력을 사유하여 독단적으로 협상을 시도했다는 죄목이 되겠군요."

알겠습니다.

홍당무처럼 벌겋게 물든 에베르를 향해 빙그레 미소를 지어 보였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어서 제게 유죄를 선고해주십시오. 왕정이 폐지되고 새로운 공화국이 태어날 이 역사적인 날 권력을 사유한 독재라는 죄를 저지른 왕정의 마지막 죄인으로서 처단받는다면 바라던 바입니다."

"이, 이놈이···!"

뿌드득.

에베르는 이를 갈 뿐 차마 반박하지 못했다.

그야 이제 내가 여기서 권력을 사유하여 월권을 행사했다는 혐의로 규탄당하거나 처벌당한다면 이는 장차 새롭게 태어날 공화국은 특정 개인의 권력 사유를 단호히 반대한다는 증거로 남게 될 테니까.

독재자, 혹은 독재권력의 탄생을 옹호하는 평등파 에베르로선 차마 한 발짝 더 내디딜 수 없을 거다.

이번 일로 원외에서 대기하고 있는 바뵈프가 헐뜯기 시작하면 그때야말로 정치생명이 끝장날 판이니까.

[그러게 누가 다짜고짜 피고 타령하라고 했나?]

누가 아니래.

너 혼자만 치사하게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도망치는 거냐, 라는 비난도 차라리 처음부터 내게 반대하던 쪽에서 해야지 날 밀어내고 또 다른 독재관을 내세울 궁리를 하고 있던 저들이 할 말은 아니다.

그래, 가령-.

"저는 지난 2년간 권력을 사유하고 의회와의 협치를 거부하고 심지어는 수상으로서의 본분을 잊고 독단으로 월권을 행사하려 했습니다."

브리소와, 콩도르세와, 시에예스와, 그 밖에 그동안 내가 지켜온 무수한 야권 인사들과.

그리고-마지막으로 오늘만큼은 진행역으로서 상석에 선 당통과.

"독재야말로 저의 죄입니다."

차례로 눈을 마주친 뒤 분명하게 선언했다.

"피고, 막시밀리앙 드 로베스피에르는 독재를 자백하겠습니다. 공화의 이름으로 냉엄한 심판을 내려주시길 바랍니다."

"바라던 바입니다."

기다렸다는 듯이 브리소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동안 우리는 비상시국이라는 핑계로 비상한 조처를 내리는 걸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여 왔습니다! 이 나라의 헌법이 만들어지고, 형법을 비롯하여 온갖 규범이 만들어진 뒤에도 단지 거추장스러운 장식으로 여겼을 뿐 누구 한 사람 이를 존중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누군가에 의해 강제당하기 이전에 스스로 규칙을 준수하고 또 규칙에 따라서 처벌받아야만 했습니다! 독선을 탓하기에 앞서서 토의하고, 협치해야만 했습니다!"

"두 번 다시 이와 같은 예외가 나와서는 안 됩니다! 혁명으로 말미암아 태어날 새로운 공화국은 자유로워야만 합니다! 누구도 권력을 사유해서도, 사유하게 두어서도 안 됩니다! 우리의 혁명은 또 다른 태양왕을 위함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데엥-.

그 순간, 저 멀리에서 우렁찬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곧 투표가 마무리되었음을 알리는 종소리였다.

아직 개표조차 시작되기 전이었건만, 사방에서 기다렸다는 듯이 파리 시민들의 환호성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승리를 확신하고 있다는 점에서 오늘의 인민재판과 닮은 꼴이었으나, 그렇기에 에베르의 정치생명에 마지막 대못을 박기에 더할 나위 없는 마침표였다.

이날, 왕국 의회는 권력을 사유하고 아비뇽에서 월권을 행사한 혐의로 수상 막시밀리앙 드 로베스피에르의 탄핵소추안을 제의함과 동시에 역사에서 사라졌다.

이에 로베스피에르는 책임을 통감하며 모든 공직에서 물러남과 함께 다가올 총선거에서 불출마할 것을 선언.

미처 왕정 폐지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총선을 석 달 앞둔 정가를 초토화 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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