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가르기
파리의 으슥한 뒷골목.
"성심당이라."
언제쯤이었는지도 모를 폭동으로 폐허가 된 카페에서 보잘것없는 행색의 사내가 망가진 탁상에 걸터앉아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곧 평등파의 영수 프랑수아노엘 바뵈프였다.
"이 추악한 수구반동 놈이 또 무지한 자들을 속여서 제 잇속을 챙기려 들고 있군."
"하지만 지방의 지지세가 만만치 않다고 합니다."
"그렇겠지. 불행히도 저들은 이용당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할 테니."
스스로 노예인지조차 알지 못하는 노예의 삶이란 어찌 이리도 애달프단 말인가.
파리의 시민들은 굶주리고, 투쟁하며 구체제의 노예에 불과했음을 자각하고 끝내는 사슬을 끊어내는 데 성공했으나 아직 대다수의 프랑스 농민들은 그에 미치지 못하였다.
오히려 파리의 시민 동지들보다도 이웃한 노예주와 종교쟁이들로부터 더욱 많은 공통점이 있다고 착각하며 그들을 동정하고 또한 보호하고자 애쓰니.
참으로 혁명이란, 평등이란 오롯이 도시로부터 시작되어 농촌까지 퍼져야 할 모양이라고 바뵈프는 내심 한탄했다.
"그보다도 에베르 동지는 어디 가셨는지 혹시 아는가? 벌써 며칠째 찾고 있는데도 도통 소식이 들리지 않는군."
"그, 그것이···."
추레한 모습의 중년 사내는 한참을 답하지 못하고 우물거렸다.
"어디 말해보게."
그 눈에 서린 비겁함에서 무언가 숨기고 있음을 눈치챈 바뵈프가 독촉하자, 그제야 사내는 고개를 조아리며 대꾸했다.
"···에베르 동지께서는 자코뱅 수도원으로 가셨습니다."
"그리고?"
"그, 그다음은 저도 모릅니다! 저는 어디까지나 동지를 안내한···아! 수도사들이라면! 수도원의 수도사들이라면 혹시 알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반신론을 주장하시던 동지께서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이 수도원이었다는 말인가."
한심하군.
바뵈프는 내심 혀를 찼다.
물론 자코뱅 수도원이 가진 의미를 생각하면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단지 자코뱅 수도원에 숨어들었을 뿐이라면 이렇게 행방이 묘해졌을 리가 있는가?
이는 곧 수도사들의 도움을 받아서 지하통로나 다락방 같은 곳에 숨어들었다는 소리고, 그게 아니라면 아예 머리를 깎고 수도사 행세하고 있다는 소리다.
양쪽 모두 지난 프랑스 역사상 흔히 발견되는 도피사례였으나-오히려 그렇기에 차마 눈뜨고 봐주지 못할 추태였다.
그렇게 전지전능한 조물주를 비하하고, 교회의 필요성을 부정하던 인물이 마지막에 가서 기댄 곳이 고작해야 신의 품이라니.
"잊어버리게."
바뵈프가 단언했다.
"동무는 아무것도 보지 못한걸세. 물론 나도 아무것도 듣지 못했지. 에베르 동지께서는 그날 이후로 알 수 없는 이유로 행방불명되신걸세. 알겠나?"
"예, 옛! 바뵈프 동지!"
바짝 굳은 중년 사내는 허둥지둥 인사를 올리더니 줄행랑을 쳐버렸다.
그걸로 끝이었다.
먼 훗날에 본인이 에베르라는 사내가 혹시 재등장하더라도 아무도 믿어주지 않겠지.
그리고 믿어서도 안 된다.
자크 르네 에베르는 혁명 초기의 혼란 와중 그들 상퀼로트 계급을 대변하고 또한 위해온 업적으로만 오롯이 기억되어야 할 테니.
"막시밀리앙 드 로베스피에르."
그렇다면 이 스스로 십자가에 못 박힌 전임 독재관은 어떠한가.
바뵈프가 생각하는 로베스피에르란 상퀼로트의 배신자였다.
권력을 쟁취하기 위하여 누구보다 앞장서서 빈자들을 조직화하고, 동원하였음에도 막상 그렇게 손에 넣은 독재 권력을 가난한 자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 자신이 믿는 몽상을 실현하기 위하여 남용하였으니 역사상 최악의 사기꾼이었다.
하지만-그렇다고 그가 개인적인 부귀영화나 영달을 추구했다고 보기에도 어려웠다.
당장 그 오를레앙 공작과 그를 따르던 부패한 판관들이 혀를 내두른 것만 봐도 알 수 있잖은가.
가난한 자들을 외면하고 부르주아지를 편들었다고 하기엔 반대를 무릅쓰고서 시장개입을 강제하였고, 당장의 생존과 직결된 소비재 문제를 해결하였으며, 무엇보다 그들에게 보통 선거권을 돌려준 장본인이 바로 저 로베스피에르다.
고로 로베스피에르는 상퀼로트의 배신자였으나, 혁명의 배신자는 아니었다.
단지 그가 생각하는 혁명과 바뵈프가 생각하는 혁명이 서로 다를 뿐.
"그래, 구태여 분류하자면 혁명적 부르주아지인가."
만일 당사자가 들었다면 이를 악물고 반박할 이야기였으나, 바뵈프는 개의치 않았다.
그야 지금까지의 행보를 쭈욱 되돌아봤을 때 바뵈프가 바라보는 로베스피에르라는 인간의 한계는 혁명정신의 결핍이나 도덕적 타락상이 아니라 부르주아지라는 신분 그 자체였으니까.
적어도 로베스피에르는 부르주아지라는 신분적 한계가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노예제를 근절하기 위하여 대서양의 열강들과 담판을 지었으며,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부자들의 추잡한 거짓말을 정면으로 부정했고, 가난한 자들도 정치에 참여하여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해주었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그의 독재관 임기는 유감스럽게도 그가 부르주아지 혁명의 수호자이지 오롯이 그들 상퀼로트만의 대변자가 될 수 없음을 폭로하고야 말았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저 혁명적 부르주아지에게 의존할 게 아니라 그들의 두 다리로 오롯이 서서 평등을 외쳐야 할 차례다.
부르주아지에 의한, 부르주아지를 위한, 부르주아지의 혁명이 아니라.
오롯이 그들 무산대중에 의한, 무산대중을 위한, 무산대중의 혁명을 시작해야 할 차례였다.
"상퀼로트 혁명 만세."
바뵈프가 중얼거렸다.
"인민독재 만세."
그러자 누군가 으슥한 그림자 속에서 응답했다.
생쥐스트였다.
"오, 생쥐스트 동지."
바뵈프가 기쁘게 자리에서 일어나 생쥐스트를 반겼다.
"그래, 마침내 결심을 굳힌 건가?"
"글쎄요, 결심을 굳혔다기보다는."
생쥐스트가 쓸쓸하게 대꾸했다.
"위원장 동지께서 절 내치셨다는 게 정확하겠지요. 서로의 이상이 엇갈렸음을 깨달았으니 어찌 함께 갈 수 있겠습니까."
"저런."
바뵈프는 그를 위해 함께 한탄해주었다.
그야 바뵈프 또한 한때 로베스피에르를 그의 우상이자 영원한 아군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는 끝내 상퀼로트를 배신했고, 그와 함께 바뵈프의 동경 또한 끝났다.
요즈음 생쥐스트가 경험한 것보다 시기상 조금 앞서 있을 뿐 정확히 똑같은 수순을 겪었던 것이다.
"그를 너무 미워하지 말게."
바뵈프가 가볍게 생쥐스트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차마 동지로는 부르지는 못하고, 그렇다고 그놈이라고 욕보이지도 못한.
그들의 애증이 담긴 호칭이었다.
"그는 혁명을 배신한 게 아닐세. 그저 우리가 생각하는 혁명과 그가 생각한 혁명이 각기 달랐을 뿐이지."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만. 나도 알고 있네. 동지의 그 마음을 내가 어찌 모르겠는가? 나 또한 그와 같았거늘."
바뵈프가 단호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를 설득할 필요는 없네. 그렇다고 비난할 필요도 없지. 그는 그가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위하여 나아갔으니, 우린 우리가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위하여 나아가면 그만일세."
그래야지만 비로소 혁명일지니.
하지만 생쥐스트는 끝내 고개를 끄덕이지 못했다.
그들이 잘못된 길을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해서가 아니었다.
'독재관이 독재를 거부한다면 어찌해야 한다는 말인가?'
적어도 생쥐스트가 보기에 로베스피에르는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독재관이었다.
마치 공화국의 독재관이 되기 위하여 태어난 것만 같은, 일종의 운명적인 영감마저 느끼게 하는 청렴결백의 사나이.
하지만 그는 너무도 순결하고 자기희생적이었던 나머지 독재라는 개념조차 완강히 거부하고자 했다.
이 세상 그 누구보다 독재를 혐오했기에 독재관이 독재권력을 단죄한다는 사실상의 자결을 자행하고야 말았다.
고로, 모순이 발생해버렸다.
로베스피에르보다 못한 독재관들은 독재 권력을 사유하여 공동체가 아닌 자신의 영달을 위하여 남용할 것이고, 로베스피에르처럼 자격이 충만한 독재관들은 독재권력을 경계하고 혐오한 나머지 제 손으로 단죄하려한다.
따라서 혁명을, 공화국을 수호하는 완벽한 독재관이란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다는 결론이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독재해야 한다는 말인가?'
독재하지 않는다, 라는 선택지는 애당초 존재할 수 없었다.
누군가 독재 권력으로 강요하지 않는 한 이기적이고 추잡한 인간들은 끝없이 본연의 이기심과 방탕함을 감당하지 못하고 다른 누군가를 핍박하고 착취하게 될 터이니.
악인들의 탐욕에 희생될 힘없고 무고한 선인들에게는 언제나 저들에게 공동체를 위한 희생과 이타성을 강제할 독재 권력의 보호가 절실했다.
곧 루소가 말한 이타적이고 이지적인 인간성이 오롯이 발현될 수 있는 온실이 필요했다.
'체제인가? 당파인가? 민중 그 자신인가? 완벽한 독재관이란 존재할 수 없다면, 도대체 무엇이 혁명을 지켜내야 한다는 말인가?'
아무도 답해주지 않았다.
질문하는 것도, 답하는 것도 오롯이 생쥐스트 그 자신의 몫이었다.
그리고 그는 숨이 다하는 그 순간까지 이 괴로운 문답을 멈추지 않을 작정이었다.
***
으윽, 빌어먹을···!
[? 무슨 일 있나?]
무슨 일 있냐고?!
지금 그게 할 말이냐 이 망할 놈아!
"신랑, 막시밀리앙 드 로베스피에르 군은 신부 엘레오노르 뒤플레 양을 아내로 맞아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사랑하고 존중하며 존경하고 배려하면서 일생을 같이할 것을 맹세합니까?"
"···예!"
아악!
내 손발!
잡귀 살려!
차라리 지금 당장 날 기절 시켜줘!
아니면 잠깐 유체 이탈이라도 시켜주던가!
왜 영화나 드라마 같은데 보면 잡귀들도 개나 소나 유체 이탈하던데 왜 나만 못하냐!
잠깐, 아직 생령이라서 그런가?!
[입 닥쳐, 박민혁.]
너나 입 닥쳐, 막시밀리앙!
[거 조용히 하라는 소리 안 들리나?! 일생에 단 한 번 있는 이런 중요한 순간에 내 머릿속에서 이렇게 호들갑을 떨어대다가 사고라도 치면 어쩌자고 이러는 건가!]
글쎄, 일생에 과연 단 한 번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지.
"야, 박-!"
"네?"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하핫!!!"
오우, 아슬아슬했네.
[아니 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
미안, 미안.
이제부터라도 오글거려도 좀 참을게.
여하튼 오늘은 일생에 한 번 있을지는 몰라도 중요한 결혼식 날이니까.
"그럼 맹세의 키스를-."
웩.
[···하, 말을 말지 진짜.]
시꺼.
너도 반대입장이면 똑같이 이럴 거면서 뭘.
하여튼 집주인 놈은 슬슬 정신이 반쯤 나가서 헤벌쭉-하고 있으니 내버려 두고.
하객석을 슬쩍 살피니 역시나.
무슨 어디 왕실에서 결혼하나, 싶어질 정도로 하나같이 아주 쟁쟁한 인사들만 모였다.
원내여당 최고위원에, 원내야당 최고위원에, 법무장관에 외무장관에 전쟁장관에 왕실 인사에-심지어는 나폴레옹까지.
그리고 그 외 기타 등등.
뭐 따지고 보면 늘 보던 지긋지긋한 얼굴들 뿐이지만 총선이 코앞인데 결혼식에 이렇게 총출동한 것 자체가 대단한 거지.
물론-.
"위원장 동지! 제발 저희를 버리지 마십시오!"
"아닙니다! 이럴 리가 없습니다! 위원장 동지께서는 아무런 죄도 없으십니다! 이게 다 저 수구반동들과 배신자들의 중상모략입니다!"
"흑흑, 위원장 동지 너무 불쌍해! 꼭 총재 한번 해보셨으면 좋겠어!"
"로베스피에르 위원장 만세! 급진당 없이는 프랑스도 없다!"
···당장 저 결혼식장 창 너머에서 악을악을 쓰는 파리 시민들이 신경이 쓰여서라도 참여하지 않을 수 없었겠지만.
안 그래도 프로방스 백작이 시키지도 않았던 「왕국의 마지막 재상」이라는 타이틀까지 가져다 바치면서 요즈음 파리는 완전히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
나의 반대자들은 이를 근거로 혁명의 배신자다, 그렇게 부르봉 놈들을 싸고돌더니 역시나 왕당파였다-라고 떠들어대고 있는데 솔직히 별로 호응은 없고.
그보다는 「그럼 9살 먹은 꼬마애를 핍박했어야 했냐」라는 반응이 주류다.
애초에 저 루이 오귀스트를 끌어내린 장본인이 누구였는가 생각하면 당연한 반응이지.
결국 내가 사임한 건 의회에서 아비뇽 사건과 관련하여 인민재판이 열려서였고 이 둘이 시기가 겹친 건 에베르와 그 패거리들이 그때로 잡자고 고집을 부렸기 때문이었잖아.
저기 지방이면 모를까 사정을 뻔히 아는 파리 시민들이 속아 넘어가기엔 이건 좀 조잡한 낭설이다.
물론 반대로 그런 사정을 모르는 지방에서는 엄청난 설득력을 가진 음모론인 모양이지만-솔직히 그것까지 하나하나 반박할 생각은 없다.
원래 이런 식의 음모론은 오히려 강하게 부정할수록 더욱 폭발적인 반응과 설득력을 가지게 되는 법이니까.
그냥 교활한 프로방스 백작이 또 어리숙한 농민들을 속여먹었다고 넘어가면 되겠지.
"두 일가친척과 친지가 모인 자리에서 신랑 막시밀리앙 드 로베스피에르 군과 신부 엘레오노르 뒤플레 양은 서로 사랑하고, 보살피며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일생을 같이한다는 맹세를 하였습니다. 이로써 이 혼인이 원만하게 이루어져 두 사람이 부부가 되었음을 선언합니다."
짝짝짝!
아, 드디어 끝났네.
억지로 딴생각하고 딴짓하면서 못 본 척해주느라 죽는 줄 알았다.
그래서 우리 집주인 놈은 만족하시는감?
[엘레오노르 드 로베스피에르···후히힛! 힉!]
···틀렸어, 완전히 맛이 갔군.
또 정신 빼놓고 있는 동안 이상한 짓거리 할까 봐 슬쩍 몸을 넘겨받자니 뒤편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축하드립니다, 막시밀리앙 동지."
그리 놀랍지 않게도 나폴레옹이었다.
아직까진 로베스피에르 코인을 버릴 생각은 없나 보지?
하기야 요즈음 파리 돌아가는 꼬라지 보면 버렸어도 도로 탐날 법도 하지만.
"아, 나폴레옹 동지! 역시나 와주었군."
한동안 숨어 살게 만들어서 그런가.
얘가 살이 통통하게 올랐네.
뭐, 사실 예전에 너무 삐쩍 말랐던 거고 지금이 딱 평균 체형이긴 한데.
"그래, 동지는 혹시 뭐 좋은 소식 없는가? 마땅한 신붓감이 있으면 언제건 말하게. 주례라면야 내가 책임지고 유럽 최고의 주례사를 마련해놓았으니까."
"하하핫! 말씀만으로도 고맙습니다. 그리고, 아직은 혼인할 생각도 없고요."
"저런, 어째서인가? 지금쯤 전 유럽의 아가씨들에게서 청혼이 들어오고 있을 텐데."
흠, 나폴레옹도 우리 집주인 놈처럼 노총각이었나?
그렇지만 내 기억에 꽤 치정극이 복잡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혼자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더니 나폴레옹이 쓴웃음을 지으며 답하기를.
"글쎄요, 그냥···조금 사람을 믿는 게 무서워진 모양입니다. 금방 떨치고 일어날 테니 너무 심려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아···."
그렇구나.
얘도 사람인데 가족들 보러 갔다가 영국에 내다 팔릴 뻔했으면 그야 마음이 편할 수는 없겠지.
가족들까지 그 판이었으니 한동안 사람이 사람으로 보이질 않을거다.
하도 전략 나폴레옹이라고 하다 보니까 사람이 아니라 무슨 진짜 전략 병기쯤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숨어 살게 만들어서 살이 찐게 아니라 스트레스성 폭식이었구만.
"내가 분위기에 취해서 괜한 소리를 했군. 미안하네."
"아닙니다. 따지고 보면 다 제 업보인걸요."
하아-.
땅이 꺼지라고 한숨.
···아니, 이래 놓고서 무슨 심려 하질 말라는 거야.
모로 봐도 비상사태잖아!
전략 나폴레옹 멘탈리티가 검은색이라고!
[···으응? 무슨 일 있었나?]
아무 일도 없었으니까 새신랑은 다시 혼자 에덴동산으로 떠나시고요.
그러고 보니 요 녀석도 슬슬 휴가 끝나고 복귀할 시기였다.
휴가 보낼 때는 당연히 내가 수상 노릇 하고 있을 줄 알았더니 이럼 좀 이야기가 복잡-.
···가만.
"그럼 이제 당분간 대외활동도 그만두려는 건가?"
"젊은 놈이 벌써 늘어져서야 되겠습니까. 놀 만큼 놀았으니 이제 다시 바삐 살아야지요."
거참 단호한 대답이구만.
난 또 무기력증이라도 걸렸나 했더니 그건 아닌가 보네.
차라리 여자를 끊었으면 끊었지 이건 못 끊는다, 이거지?
"잘 됐군."
암튼 괜히 안 보이는 데서 꽁해 있는 것보단 보이는 곳에 두는 게 관리하기도 편할 테니 잘됐다.
"동지, 혹시 대변인 해볼 생각 없나?"
"···막시밀리앙 동지의 개인대변인, 말씀이시지요?"
"그래. 그래도 이제 곧 총선인데 나도 우리 당의 승리를 위해 뭔가 해야지 않겠나."
슬쩍 창 너머에서 위원장 동지를 외치는 지지자들을 돌아보았다.
설명은 그거면 족했다.
이튿날, 막시밀리앙 드 로베스피에르는 신혼생활에 집중하기 위하여 모든 공식적인 대외활동을 중단할 것이라 선언하며 또 한 번 총선을 눈앞에 둔 정가를 초토화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