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미
계몽주의자들은, 루소의 후예를 자처하는 이들은 누구나 입을 모아 말했다.
인간은 이타적이고, 이지적인 존재라고.
'헛소리.'
이 가르침을 순진하게 믿었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나폴레옹은 더는 이에 동의하지 않았다.
인간이 이타적이고 이지적이라고?
그렇다면 그가 영웅이 된 이래로 지금껏 봐온 인간들은 대체 뭐란 말인가.
일부만 보고 전체를 판단하지 말라지만 그 일부만 보인다면 오히려 이타적이고 이지적인 인간이 일부 예외 사례인 거 아닐까?
하다못해 가족들조차 그를 이용하지 못하여 안달이었는데 말이다.
만일 어머니를 올바르게 봉양하지 못했다는 마음의 빚과 자기혐오만 없었다면 나폴레옹은 이번 일로 보나파르트 일가를 저버리고도 남았으리라.
그리고 그때까지 남아있던 일말의 인류애와 인간 본성을 향한 믿음 또한 말이다.
'결국 인간은 이기적이고 야만적인 존재다.'
고로, 누군가 이타적이고 이지적인 자가 저들을 올바른 길로 이끌어주는 수밖에 없다.
당장 작금의 프랑스가 그러했으며, 지난날의 절대왕정이 그러했잖은가.
물론 나폴레옹은 그 자신 또한 그 이지적이고 이타적인 존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단지 그의 본성을 만천하에 내비칠 기회가 오지 않았을 뿐.
오늘날 전 유럽의 꽃다운 청년들이 입을 모아 말하고 있듯이 그야말로 운명이 점지한 이 시대의 주인공이오, 화려한 영웅서사시 속 영웅이라고 믿었고, 또 믿게 되었다.
아무렴 둘도 없이 각별해야 할 피로 이어진 가족들이 적국과 내통하여 그를 배신하다니.
이보다 비극적인 영웅서사시에서 주인공의 시련을 나타내기에 적절한 위기가 어디 있겠는가.
이는 필히 운명이 그를 담금질하기 위하여 설계한 서사적 장치라고 나폴레옹은 자꾸만 약해져 가는 마음을 달래고 또한 북돋아왔다.
'···그렇다면 로베스피에르 위원장은?'
그는 이 영웅서사시에서 어떤 역할을 맡은 존재인가?
나폴레옹은 선뜻 결론 내릴 수 없었다.
로베스피에르는 분명 의심할 여지 없이 이타적이고 이지적인 존재였다.
곧 나폴레옹처럼 저 추악한 인간들을 이끌고 위에 서기 위하여 운명이 점지한 인간상이었다.
동시에 그는 나폴레옹이 보잘것없던 시절부터 눈여겨봐 준 은인이었으며, 급진당이라는 기반을 마련해준 정치적 스승이었고, 오늘날 프랑스에서 촉망받는 또 다른 젊은 영웅이었다.
하지만-그렇기에 영웅서사시 일부가 되기엔 너무도 이질적인 존재였다.
적이 되기엔 너무도 선량하며, 아군이 되기엔 너무도 위대하니.
그는 옛 그리스-로마 신화처럼 다른 영웅의 서사시에 등장한 또 다른 서사시의 주인공 같은 존재였다.
'참 알기 쉬운 사람이야.'
딱히 비웃거나 비하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실제로 그러했다.
누구나 알다시피 로베스피에르는 참 개인적으로 알기엔 재미없는 인물이었다.
하루의 모든 시간을 프랑스를 위하여, 혁명을 위하여 사용하느라 개인적인 생활이라는 게 없다시피 한 인간이니.
솔직히 말하자면 나폴레옹조차 로베스피에르에게 상대가 있다고 들었을 때는 보나 마나 혁명을 위하여 정략혼을 한 거라고 지레짐작했을 지경이었다.
그게 아니라 진짜로 연애 상대였다는걸 알게 되었을 때는 얼마나 놀랐던지.
'뭐, 사람이 아니라 혁명하는 기계라고 생각했으니까.'
사실이 그렇잖은가?
나폴레옹은 제가 성급했을지언정 이 일로 실례를 범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야 평소에 보여준 모습이 그 모양이었으면 누구나 똑같이 생각할 테니까.
'그래, 저 사람도 인간이었군.'
그제야 비로소 나폴레옹은 로베스피에르를 온전히 신뢰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건 애착이나 우정과는 거리가 멀었다.
최소한 저 사람은 날 먼저 배신하지는 않겠구나.
내가 저 사람을 먼저 자극하지 않는 이상 내가 알 수 없는 이유로 불신하지는 않겠구나.
저 사람도 인간으로서 호불호가 있다면 그동안 개인적인 호감이 없지는 않았겠구나.
나를 혁명을 위해서 이용한 게 아니라 보잘것없던 시절부터 나를 신뢰해주었던 거구나-하는.
혁명하는 기계가 아닌 인간 로베스피에르의 행동 원리를 이해했다는데에서 나온 안도감이었다.
고로.
"우리 중 동지께 은혜를 입지 않은 사람이 있으면 나와보십시오!"
나폴레옹은 아무런 망설임 없이 시가지를 가득 메운 로베스피에르의 지지자들 앞에 나설 수 있었다.
"여기 계신 모든 분이 알다시피 저는 이 파리에서 나고 자란 파리지앵이 아니었습니다. 저 프랑스 남쪽 끝 코르시카에서 상경한, 아직 철없던 시절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와 큰형에게 빌붙어가며 어렵게 어렵게 간신히 장교가 된 가난뱅이 촌놈이었지요."
나폴레옹이 더욱 언성을 드높였다.
"그런 저를 눈여겨봐 주시고, 거두어주신 건 오직 위원장 동지뿐이셨습니다. 그분은 제가 가난하다고 하여 홀대하지 않으셨습니다. 제가 코르시카인 이라고 하여 얕잡아보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저의 타오르는 애국심을! 능력만을 봐주셨기에!"
쿵.
"비로소 코르시카 촌놈 나폴레오네 보나파르테는 프랑스의 영웅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지금 프랑스에는 얼마나 많은 나폴레오네가 있겠습니까? 만일 위원장 동지께서 저를 거둬주지 않으셨다면 저 또한 그들과 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옳소!!!"""
"한데 어찌하여 위원장 동지께서 아비뇽을 찾아가셨던 것이 죄라는 말입니까? 동지께서는 다만 또 다른 나폴레오네를 구원하기 위하여 스스로 낮은 곳에 임하셨던 것뿐입니다! 그분께서 언제나 그래왔듯이, 오직 혁명을 구하고 공동체를 위하여 대국적인 결단을 내리셨던 것뿐입니다!"
곧 사방에서 우레와 같은 함성이 터져 나왔다.
실상 파리의 수위권을 적폐로 규정하고 이를 훼손하자는 이야기나 다름없었음에도 누구도 그 사실을 지적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화자가 나폴레옹이니까.
지금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은 로베스피에르의 광신도들이니까.
이제 그들에게 문제의 초점은 파리의 수위권이 아니라, 자칫 잊힐 뻔했던 나폴레옹이라는 변방의 영웅을 발탁한 로베스피에르의 탁월한 심미안과 전 프랑스를 아우르고자 했던 그의 크나큰 그릇이었다.
"저는 코르시카인입니다. 그러나 프랑스인입니다!"
연단에 선 나폴레옹이 단단히 외쳤다.
"그리고 이 두 가지는 조금도 대치되지 않는다는 걸 로베스피에르 위원장께서 가르쳐주셨습니다! 오직 저만 아는 추악한 반대자들이 모든 요직을 나눠 가지려 할 때, 위원장 동지께서는 적폐들의 야합을! 더러운 과두독재를 깨부수고 이 코르시카 촌놈에게 기회를 나눠주셨습니다!
따라서, 저는 동지의 은혜를 입은 몸으로서 감히 이 자리에서 외쳐봅니다! 타고난 혈통은, 출신은 중요하지 않다고! 오직 프랑스를 위하는 애국심만 있다면, 혁명을 위하겠다는 열정만 있다면! 그는 이 프랑스의 시민이라고!"
그래, 마치 나폴레옹처럼.
"위원장 동지께서는 그 사실을 우리 모두에게 가르쳐주시기 위하여 아비뇽으로 몸소 향하셨던 것이라고 감히 단정 지어보겠습니다! 또 다른 나폴레오네를 위하여, 그리고 나폴레옹을 위하여! 특정한 가문이, 출신이, 무엇보다도 부유한 자가 요직을 독점하지 못하도록 이의를 제기하고자 하셨던 것이라고!"
"""나폴레오네 만세! 나폴레옹 만세! 로베스피에르 위원장 만만세!!!"""
"그렇습니다, 친애하는 형제자매들이여! 우리의 혁명은 실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우리의 앞에는 바로잡아야 할 적폐와 모순으로 가득합니다! 그리고 위원장 동지께서는 이미 우리에게 다음 혁명과업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망설이고 계시다는 말입니까? 자, 다들 투표소로 향합시다! 위원장 동지의 뜻이 헛되이 끝나지 않도록! 우리가 발견해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또 다른 나폴레오네들을 위하여 우리의 혁명정신을 보여줍시다!"
나폴레옹과 급진당 지지자들이 파리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놓는 데에는 그거면 족했다.
이날,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로베스피에르의 최대 수혜자이자 그의 나팔수로서 프랑스 정가에 첫발을 내디뎠다.
***
누구나 아는 부정선거로 왕정 폐지가 단행된 이래로 새로이 건국된 프랑스 제1공화국은 실질적으로 구성인원도, 권력구조도 지난 왕정과 별다른 바 없는 나라였다.
물론 이를 대체하기 위한 노력이나, 방안이 논의되지 않은 건 아니었으나 당장 총선이 코앞이다 보니 현 내각에서 이를 제멋대로 정하는 게 맞냐는 이의제기가 끝없이 이어진 탓이었다.
결과 수상이 총재로 명칭이 바뀐 것을 제하자면 프랑스 정부는 고스란히 유지.
스스로 모든 공직에서 물러난 로베스피에르를 대신해 초대 총재라는 요직에 오른 조르주 당통은 분명 총선을 앞둔 프랑스 최고의 권력자라고 할 수 있었으나-.
"···이 망할 놈이."
빠드득.
막상 당통 그 자신은 그 사실에 기뻐하지도, 권력을 마음껏 누리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총선을 눈앞에 두고 레임덕에 빠져서도, 그렇다고 공직에서 물러난 로베스피에르가 사사건건 흑막으로서 국정에 개입해서도 아니었다.
이번 경우의 문제는 그쪽이 아니라-.
"누군 뭐 처자식도 없는 노총각인 줄 아나?! 이 망할 놈은 무슨 지가 태양왕도 아니고 총선주간에 제 신혼생활을 생중계하며 염장을 지르는 거야! 아무리 말년에 장가가서 즐거워도 그렇지 무슨 신혼일지를 공공연히 찍어낸다는 말인가!"
"그렇지만 실제로 불티나게 팔리고 있잖은가?"
"그러니까 왜 그게 불티나게 팔리는 건데!!!"
···이쪽이었다.
그래 뭐, 책임을 지고 물러나니 어쩌지 해봐야 다다음 총선까진 반드시 복귀하겠다는 야욕이 뚝뚝 묻어나는 놈이 진짜로 숨만 쉬고 있지는 않을 거라고 다들 짐작했다.
당장 저 나폴레옹이 휴가에서 복귀하자마자 설쳐대는 것만 봐도 배후에 로베스피에르의 개입이나 영향력이 없을 거라고는 생각하기 어렵고.
그렇다면 차라리 저 자신을 수구적인 반대자들과 배은망덕한 배신자들에게 몰아세워진 정치적 희생양으로 포장하건, 아니면 반대로 그의 임기와 작금의 혼란상을 대비하며 그리움을 불러일으키건 하는 게 정석적인 정치 아니겠는가?
"남은 지금 총선전략 세우랴, 밀린 숙제하랴, 저 머저리들과 교섭하랴 혼이 빠질 지경인데 다들 도대체 왜 노총각의 신혼생활 같은 거에 혼이 쏙 빠져있냐는 말이야!"
당통의 처절한 절규였다.
그야 그로서는 억울해서 미치고 팔짝 뛸 노릇 일 수밖에는 없었다.
누군 로베스피에르가 그들과는 상의도 없이 책임을 통감한다며 총선을 눈앞에 두고 사임해버리는 바람에 인수인계로 며칠 밤을 지새우고 다시 동요하는 지지자들과 당원들에게 변명하느라 팔자에도 없는 혹사 중인데.
그 로베스피에르라는 놈은 전 그럴 자격도 없다면서 정치 이야기는 한마디도 안 하더니 제 사비에 카미유와 당통에게 빌린 돈을 살짝 보태서 제 신혼일지를 매일 아침 파리 시민들에게 팔아치우고 있었다.
그리고 심지어 그 신혼일지는 로베스피에르의 대중적인 인기와 십자가 서사와 맞물리면서 매일 오전마다 불티나게 매진 중.
오죽하면 가정집마다 로베스피에르 일가의 신혼일지가 하나씩 꽂혀있고 여인들이 모이면 오늘 그 집에서 어쨌네, 저쨌네 하면서 수다를 떤다는 이야기마저 나돌 지경이었다.
"뭐, 그럴 만도 하잖은가."
보다 못한 카미유가 쓴웃음을 지으며 다크서클이 짙게 내려앉은 당통을 말렸다.
그렇게도 푸짐하고 후덕한 친구가 요 몇 달 사이 얼마나 혹사당했는지 카미유와 팔 두께가 맞물릴 지경이었다.
"지금껏 이 프랑스에서 아내와의 신혼생활을 위하여 공직에서 물러난 친구가 있기나 했던가? 그야말로 전무후무한 일이니 그야 다들 열광할 수밖에."
"그러니까 그게 사기잖은가! 도대체 언놈이야, 그따위 거짓말을 퍼트린 게!"
"어허, 놈이라니."
카미유가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마담이라고 불러야지. 자네도 부르봉 왕실처럼 베르사유에서 끌려오고 싶나?"
당통은 차마 대꾸할 수 없었다.
그만큼 파리의 유부녀들이 무서웠다-라는 이유도 물론 있었지만.
작년에 조강지처 앙투아네트 당통과 넷째 아들을 낳다가 사별하고 반년도 안되어서 루이즈와 재혼한 당통은 애당초 이 문제에서 함부로 입을 놀려도 되는 인간이 아니었다.
심지어 이 루이즈 당통은 올해로 만 열여덟-혼인 당시 열일곱이었으니.
차라리 다른 혁명동지들이 열 살 연하의 아가씨를 도둑질했다며 로베스피에르를 손가락질했으면 했지, 당통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도 이번만큼은 자네보단 막시밀리앙의 손을 들어주고 싶군."
"브루투스, 너마저도···!"
"내 이름은 카미유일세."
뭐 아무튼 간에.
"솔직히 그동안 막시밀리앙, 저 친구가 평범한 사람이라기엔 좀 거리가 있는 인상이었던 것도 사실이잖은가."
카미유가 덧붙였다.
"부패할 수 없는자, 좋지. 오직 혁명만을 위하고 공동체를 위하여 봉사하고 희생하는 사내라니 이 얼마나 존경스러운가?"
"···그렇지만 인간미는 없었다, 뭐 그런 소리인가?"
"그래, 그렇지. 난 오히려 이 친구가 전략적으로 나섰다고 생각하네. 괜히 정치 타령하면서 자네와 의견 대립하는 것보다야 이런 식으로 나오는 게 우리에게도 편할 테고."
안 그런가?
카미유의 주장에 당통은 나지막이 혀를 찼다.
확실히 그의 말대로였으니까.
오히려 그동안 사생활이랄게 없었던 로베스피에르니까 이런 폭발적인 반응인거지 그냥 평범한 프랑스 정치인이었다면 부정적인 반응이었을 가능성이 컸다.
당장 루이 16세만 해도 바람 한번 안 피우고 왕비에게만 집중했다는 이유로 가정적인 남편, 이 아니라 재미없는 공처가에 고자의혹까지 들었으니까.
하지만 지지자들에게조차 이제 와 축첩은 바라지도 않으니 제발 결혼만 해달라는 소리를 들었던 로베스피에르라면?
"하기야 이제 좀 사람 같긴 하군."
"그렇지?"
루이 오귀스트로선 억울하겠으나, 결혼하고도 7년 만에 부부관계를 맺기 시작한 20대 청년과 30대에야 제 짝을 만나 속도위반으로 결혼에 골인한 노총각이 같을 수는 없는 법 아니겠는가.
무엇보다 이 속도위반이라는게 자국 지도자의 치정극을 공공연히 씹고 야설로도 발간하고 정치적 중상모략도 덧붙이고 성적인 농담을 만드는 걸 국민스포츠(?)로 둔 파리 시민들에겐 그간 국가지도자로서 직무 유기를 일삼던 노총각이 비로소 제 소임을 다한 격이었으니.
최근 파리에서 두 사람의 신혼일지가 불티나게 팔리는 게 과연 훈훈함 때문인가, 아니면 10살 연상의 저 목석같은 수도승마저 함락시킨 엘레오노르 로베스피에르의 음기(?)를 향한 경외(???) 탓인가를 생각해보면···.
일단 정신기생체가 기대했을 방향성은 절대로 아닐거라고 과감히 단언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래서 왜 사내놈이 부인 뒷바라지를 하고 있는 건가?"
당통이 투덜거렸다.
"그래, 뭐. 저 친구에겐 첫 회임이니까 각별하겠지. 저 나이 먹고서 사생아도 없이 이제 첫 임신이라는 게 프랑스 남성으로서 참 한심하다고 생각하기야 하지만, 일단 여기까진 그럴 수도 있다고 치겠네! 왜 지가 유난 떠는 걸 전 파리 시민들에게 생중계하고 있는 건가? 저놈 때문에 나까지 루이즈에게 눈총을 사고 있다는 말이네!"
"에이, 그거야 자네 부인이 아직 어리니까 뭘-."
"카미유. 자네 얼마 전에 대장부가 왜 장보기를 해야 하냐고 불평했던 걸 기억하고 있네만?"
"···커흠!"
카미유가 필사적으로 눈을 피했다.
안 그래도 부잣집에 데릴사위로 들어간 마당에 눈총이 더해지니 차마 어쩔 도리가 없었던 것이지만.
"이대로 둬서는 안 되네."
당통이 으르렁거렸다.
정치가이기 이전에, 혁명가이기 이전에 유부남으로서 절실함이 느껴지는 다짐이었다.
"하다못해 뭐 발행 빈도를 줄인다던가, 내용을 우리가 검열을 한다던가는 가능하지 않겠나? 결국 우리 돈으로 찍어내기 시작했던 거니까 그 정도는 우리가 제어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이 말이야.
저 혁명하는 기계가 인간미 뽐내는 거야 좋다고 쳐도, 우리에게 피해가 오지는 말아야 할 것 아닌가."
"뭐 맞는 말이긴 하네만."
카미유가 눈살을 찌푸렸다.
"자네는 17세 연하의 아리따운 아가씨를 부인으로 들였으면서 지금 그게 할 소리인가? 그래 놓고서 그제도 노느라 집에 들어가지 않았으면 루이즈에게 눈총 맞을 각오는 했어야지."
"·········."
당통은 답하지 않았다.
오늘부로 그의 이름은 관저에서 죽고 사는 절대로 부패하지 않는 자 당통이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