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회의
"자아, 그럼···."
무시무시한 인선이군.
총선 이후 첫 번째 회기-곧 장차 공화국이 어떤 체제를, 권력구조를, 국가관과 시민관을 가지게 될지를 정할 역사적인 회의를 이끌 진행역으로서 카미유는 새삼 마른침을 삼켰다.
총선결과 변함없이 급진당이 원내의석의 5할을 확보하였음에도 그 나머지 절반을 나누어 가진 이들의 면면을 살필 때마다 과연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이번 회기가 과연 파국에 치닫지 않고 끝날 수 있을까 하는 불안이나 긴장이 가시려야 가실 수가 없었다.
오늘 상석에 앉은 카미유를 기준으로 좌측에는 마침내 원내 입성에 성공한 바뵈프가 이끄는 평등파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우측에는 프로방스 백작이 이끄는 성심당과 콩도르세-시에예스 등을 주축으로 뭉친 친부르주아지 성향의 온건공화당이.
마지막으로 정면에는 그가 속한 급진당이 자리 잡았다.
원내가 그 여느 때보다 파편화되고 다채로이 분열된 오늘날, 지금만큼 로베스피에르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지는 순간도 없으련만-.
'···신기한데.'
이상하게도 카미유는 로베스피에르의 빈자리를 조금도 느낄 수 없었다.
아니,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그의 족적을 느낄 수 있었다.
가령, 그가 속한 급진당은 로베스피에르가 몸소 빚어낸 정당이었다.
온건공화당은 그 이름대로 급진당의 반대당파라는 의미에서 명명된 당명이었고, 성심당은 한때 로베스피에르가 자칭했던 법통파에 뿌리를 둔 당파이며 다시 평등파는 아직 정당으로서 완성되지는 못하였으나 혁명 초기 로베스피에르가 조직화 시킨 상퀼로트 계급에 기초한 당파다.
결국 오늘 이 자리에 모인 모두가 그가 설계하고 조직한 당파였으며, 이들이 한날한시에 모인 것 자체가 그의 의지였다.
"개회를 선언하겠습니다."
그러자 덩달아 카미유의 마음도 가벼워졌다.
겉으로 보기엔 어떠한 공통점도 찾아보기 어려운 그들이었으나 그 뿌리에는 로베스피에르라는 거목이 자리하고 있었으니.
비록 쉽지는 않을지라도 분명 그들이 한데 모여서 그의 기억을 되살리다 보면 길이 보이리라.
벌떡.
개회와 동시에 바뵈프가 자리에서 일어나 외쳤다.
"혁명의 수호를 위하여, 보잘것없는 약자들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하여 상설 독재관직 신설을 요구하겠소."
···길이 보이긴 개뿔이.
시작부터 파국이 어른거리는 개회사에 카미유는 잠시 먼 곳을 바라봤다.
"혹은 호민관이라도 상관없소. 우리 가난뱅이들에겐 다른 무엇보다도 사회정의와 평등을 강제할 독재 권력이 필요하오. 당신들이 이 최소한의 요구조차 보장해주려 하지 않는다면 나는 더는 당신들과 나눌 말 따윈 없소."
"그게 최소한의 요구라고?"
콩도르세 후작이 눈살을 찌푸렸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 마시오. 이 자리에서 독재를 죄악으로 규정한 지 아직 석 달밖에는 지나지 않았소. 상설 독재관이라니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그래서 그 위대한 독재관이 지난 2년간 해치운 위업과 독재관 없이 방황한 4년간."
바뵈프가 조소하며 덧붙였다.
"객관적으로 어느 쪽이 공동체의 복리증진을 위하여, 개개인의 인권과 자유를 위하여 더욱 많은 일을 해냈소? 자, 어디 당신네 입으로 직접 답해보시오."
"이 자리에 없었던 당신에게 그런 말을 할 자격은 없소."
"물론 내겐 그럴 자격 따윈 없지. 하지만 나는 무산대중을 대변하여 이 자리에 선 몸. 그러니 내가 아니라 독재 권력의 보호를 요구하는 민중에게 답하시오."
"그것참 편리한 핑계로군."
콩도르세가 코웃음 쳤다.
"한데 당신이 무산대중의 대표자시라면 왜 득표가 고작 그것뿐이신가? 우리의 선거법은 재산의 격차와는 상관없이 동등한 1표씩을 보장했을 텐데. 국민의 과반수가 중산층 이상 시민이라니 내 조국은 사실 프랑스가 아니라 에덴동산이었나 보지?"
"그래, 당신네 득표도 고작 그것뿐인 것 보니 최소한 선거로 장난치진 않았던 것 같더군."
"그야 당연하지. 우리가 당신처럼 야만적인 무법자로 보이나? 그리고 나는 이미 내 저서와 논평에서 그에 대한 답을 내놨소. 그러니 당신에게 그럴 자격이 없다면, 답하지 않겠소."
"그만."
땅·땅·땅.
카미유가 콩도르세와 바뵈프의 설전을 가로막았다.
"지금 우리가 토의를 위하여 모인 것이지 감정싸움이나 하려고 모인 건 아니잖습니까."
"글쎄, 어떠려나."
이번엔 프로방스 백작이 껄껄거리며 웃음을 터트렸다.
"우린 감정이 쌓인 게 좀 많은데."
"아니 제발."
"그래, 이것 한 가지만 묻겠네."
프로방스 백작이 좌중을 한번 쓱 훑어보았다.
"만일 우리가 로베스피에르, 그 친구를 핑계 삼지 않았다면 어떻게 할 작정이었나? 보나 마나 또 무효표로 처리할 생각이었겠지?"
"그야 당연한 소리를."
마라가 코웃음을 치며 대꾸했다.
"당신이 혁명동지요? 해방군 노릇하려다 수틀리니까 이쪽으로 갈아탄 수구반동 철새 주제에 무슨."
"그럼 그게 민주주의인가?"
"혁명적 민주주의라고 불러주시오."
"국민의 과반수가 정당하게 행사한 표를 모조리 무효로 처리하겠다고 말하는 작자들이 이 나라의 주인을 국민이라고 거짓말하다니."
프로방스 백작이 안타깝다는 듯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사회계약론이니 뭐니 해봐야 결국 전부 위선이었구만. 이럴 바에야 차라리 도시인들이 정당하게 독재할 권리를 신께서 하사하셨다고 핑계를 대는 게 훨씬 정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진작에 단두대로 보냈어야 할 놈을 살려뒀더니 못 하는 소리가 없군."
"저런, 자네들은 일사부재리 원칙도 모르는 건가? 그럼 법치조차 위선이고 새빨간 거짓말이었군. 자, 어서 날 단두대로 보내고 우리 모두를 내쫓게."
"그만."
카미유의 제지에도 아랑곳없이 프로방스 백작이 빙그레 미소 지으며 덧붙였다.
"뭣 하고 있는가? 자네들이 국민이 위임한 권력이 아니라 신께서 위임한 도시독재를 휘두르고 있음을 증명할 완벽한 기회잖은가."
"제가 그만하라고 했습니다!!!"
땅·땅·땅!
카미유가 있는 힘껏 망치를 두드렸다.
벌컥.
그러자 문이 열리면서 의회 경비대가-아니 공화국 근위대가 뛰어 들어왔다.
곧 누구나 아는 인간병기 뮈라의 등장이었다.
이 또한 로베스피에르가 발탁하고, 중용한 인재들이었다.
"···다들 그동안 하고 싶었던 말, 해묵은 원한들 많은 거 우리 모두 뻔히 알고 있습니다."
그제야 한숨 돌린 상석의 카미유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렇지만 지금처럼 무작정 감정싸움이나 하려고 오늘 이 자리에 모인 건 아니잖습니까. 토의하는 건 좋습니다. 논쟁을 하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나.
"먼저 품위를 지켜주십시오."
카미유가 으르렁거렸다.
"그렇지 않다면 고의적인 사보타주로 간주하겠습니다. 혁명을 파괴하기 위하여, 공화국에 도전하기 위하여 이 자리에 나서셨다면 지금 당장 자백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무서워라."
프로방스 백작이 이죽거렸다.
"이런 공적인 자리에서 그런 서슬 퍼런 이야기를 당당히도 하시는군. 이게 승자의 여유라는 건가?"
"마음대로 생각하십시오."
"그보다도, 그럼 사보타주가 죄라도 된다는 말입니까?"
생쥐스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바스티유 습격은 정당한 저항권 행사라고 주장했던 당파에서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요."
"물론 죄는 아니겠지."
당 대표로서 팔짱을 끼고 앉아있던 당통이 대꾸했다.
"하지만 우리도 저항권 정도야 행사할 수 있지 않겠는가."
"설마하니 시민 동지들에게 군사력을 휘두르겠다는 소리를 이렇게 당당히 늘어놓다니."
"바스티유의 병사들은 그렇다면 시민동지가 아니었다는 말인가?"
브리소가 냉소했다.
"그들은 살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서 저항했을 뿐이네. 그리고 그 결과 부득이하게 희생되었지. 우리라고 다를 이유가 있는가? 살고 싶으면 최선을 다해서 저항하는 거지."
"아, 모처럼 뜻이 일치했군."
프로방스 백작이 기쁘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뜻이 일치한 김에 내 요구사항은 간단하네."
"···아직 요구사항을 말해도 된다는 이야기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만."
"바뵈프 저 친구도 이미 개회와 동시에 요구사항을 말했잖은가? 나와 정 반대편에 있는 또 다른 불청객이 이미 제 요구사항을 말했으니 나도 불청객으로서 동등한 권리를 요구하겠네."
대답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를 제멋대로 긍정이라고 단정한 프로방스 백작이 덧붙이기를.
"지난 서력 1789년 12월 14일, 그리고 22일 회기에서 발의했던 코뮌의 정당한 권리들을 돌려주게."
"마치 누가 빼앗았다는 듯이 말하고 있군."
"당연히 빼앗았고 말고. 파리에서 후보 선정부터 운영에 의결까지 하나하나 관여하고 있는 주제에 설마 자율을 보장해주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말인가?"
시에예스의 지적에 프로방스 백작은 기가 막힌다는 듯이 반박했다.
"난 그때 자네들이 뭐라고 주장했었는지 똑똑히 기억하네. 절대왕정의 중앙집권에 맞선 개별 코뮌에 의한 자치와 지방분권이야말로 민주화를 위한 유일한 방안이라고 주장했었지, 아마? 혁명을 수호해야 한다면서 또 금방 말을 바꿨지만 말이야."
"···끄응."
"이러면 곤란하지. 이 세상에 줬다 뺏는 것보다 치사한 게 어디 있다는 말인가. 절대왕정에 반하여 직접민주주의 실현을 도모하겠다던 친구들이 지금껏 절대군주보다 더한 짓을 하고 있었으니 원."
절레절레.
"로베스피에르, 그 친구가 총선에서 이기고 인권선언문에 등장했던 보통 선거권과 이것저것을 되찾아갔으니 난 이 코뮌의 권리 하나만 되찾아가겠네. 뭐 없던 걸 내놓으라는 것도 아니고, 이미 있던 걸 부활시켜달라는데 뭐가 그리 어렵다는 말인가."
타당한 주장이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사방에서 신음이 터져 나왔다.
그야 미라보 백작 생전에 채택되었던 그 코뮌 자치제는 이름만 직접민주주의일 뿐 제한선거권에 의한 부르주아지 독재를 위하여 입안된 법안이었으니까.
그마저도 혁명가들의 기대와는 달리 파리를 제외한 대다수는 아직도 절대왕정을 지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면서 이미 로베스피에르가 집권하기도 한참 전에 무력화된 지 오래였다.
아무렴 저 코뮌들이 민의를 직접 반영한 결과가 반혁명적이라면 결국 지방의 반동적 민의에 의하여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 혁명이 파괴될 수밖에 없잖은가.
심지어는 부르주아지 과두독재라는 안전장치가 있었던 지난날과는 달리 보통 참정권을 부여한 오늘날 코뮌 자치제가 재차 효력을 발휘하기 시작한다면 저 프로방스 백작이 이끄는 성심당이 농촌 코뮌들을 싹쓸이하게 될 터.
하지만 그렇다고 이 정상화 요구를 거부한다면 아직도 혁명이 위기에 처해있다는 소리였으니.
비상한 시국의 비상한 조처에 반대한다며 로베스피에르가 물러난 지 얼마나 되었다고 그에 반대되는 사례를 내놓을 순 없었다.
신분제 사수나 왕정복고 따위를 각오하고 있던 대다수에겐 생각지도 못한 의표를 찔린 격이었다.
"전적으로 동의하오."
한데, 그때 생각지도 못했던 이가 찬성표를 들었다.
다름 아닌 평등파의 바뵈프였다.
"우리의 혁명은 의심할 여지 없이 보편적 다수의 직접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것이었소. 비록 혁명 초기엔 현실적인 난제와 일부 혁명의 배신자들 탓에 그에 미치지 못하였으나, 이제 우리의 혁명도 안정기에 접어들었으니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겠소?"
"이봐, 자네 조금 전까지 사보타주가 어쩌고저쩌고하지 않았나?"
마라가 헛웃음을 터트리며 반박했다.
"그래? 그럼 역시 혁명 와중이었던 모양이군. 알겠소. 내 혁명과업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여 투쟁하리다."
바뵈프가 샐죽 웃었다.
그 미소가 무엇을 의미할지야 구태여 고민해볼 필요조차 없었다.
참으로 뻔뻔한 대답이었으나, 급진당 또한 마키아벨리적인 투쟁론을 탓하기엔 이래저래 찔리는 구석이 많았던바.
"잠시 휴정한 뒤 재개하겠습니다."
땅·땅·땅.
결국 또다시 감정싸움이 재개되면서 보다 못한 카미유가 휴정을 선언했다.
잠시 냉수라도 마시면서 머리를 식히고 돌아오라는 완곡한 권유인 동시에 대책을 논의하기 위한 작전타임이었다.
"막시밀리앙이 그립군."
마라가 투덜거렸다.
"이제 와서 미라보, 그 호색한 놈이 발목을 잡을 줄이야."
"그렇지만 결국 언젠가는 손봐야 할 일이었잖은가."
"알아. 아니까 투정이나 부리고 있는 거지. 아니었으면 저놈들을 그냥-."
마라가 슬쩍 손끝으로 목을 그었다.
카미유는 못 본 셈 치기로 했다.
"그래서, 어쩔 셈인가? 이대로 가면 수구반동과 시뻘갱이들에게 코뮌을 내줄 판이야. 심지어 우리가 선거에서 이겼는데도 말이지."
"그럼 내주면 되는 거지 뭐가 문제인가?"
자크 루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일단 내주되 이런저런 안전장치를 추가할 생각을 해야지, 무작정 내주지 않을 궁리부터 하기 시작하면 우리가 저 온건공화당 놈들과 다를 게 뭐란 말인가."
"아니 신부님 그런 이야기가 아니잖아요."
"결국 그런 이야기지 뭘. 미리 말해두는데 난 저들이 직접민주주의를 꺼내온 이상 반대표를 던질 생각은 없네. 난 없는 셈 치거나 아니면 저걸 보완할 궁리나 해보게."
이런 옹고집 같으니라고.
피차 남 말할 처지도 아니었으면서 급진당 원내지도부는 너나 할 것 없이 일제히 한숨을 내뱉었다.
차라리 대놓고 반혁명적인 요구를 늘어놓았으면 어림도 없다며 엄포를 놓았을 텐데 하필이면 사문화된 조항을 끌어와서 직접민주주의를 주장하고 있으니 원.
이를 도대체 어찌하면 좋다는 말인가.
어떻게 보완해야-.
"자, 잠깐 옛날이야기 좀 하지."
짝.
당통이 가볍게 손뼉을 치며 이목을 사로잡았다.
"막시밀리앙, 그 친구가 있을 때는 어떻게 했었나? 온갖 허튼소리나 모험주의가 튀어나올 때 우리가 어떻게 했었지?"
"그러니까 또 독재관을 세우자고?"
"뭐, 따지고 보면 비슷하겠군. 다만, 내 제안은 그 친구가 혼자서 하던 일을 좀 쪼개보자는 말일세."
당통이 손가락을 하나하나 차례로 펼쳤다.
"그때 그 친구가 혼자서 도맡아 하던 일을 크게 쪼개보자면 회기를 주도하는 의장, 반동을 단속하는 감찰관, 행정을 담당하는 재상. 크게 이 세 가지겠군."
"···이거 절대군주 아닌가?"
"그러니까 독재관인 거지."
그리고.
"지금 저 반동과 폭도들로부터 파리의 수위권과 혁명을 지켜내는 데에 이보다 훌륭한 선례가 있는가?"
그제야 지도부는 너나 할 것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렴 이미 검증된 선례가 있는데 이제 와서 새로운 도전에 나설 필요는 없는 법.
"우선 행정권은 파리의 혁명정부에서 확보하고 있어야 하네."
마라가 기다렸다는 듯이 포문을 열었다.
"그리고 입법권과 행정권을 나눠야겠지. 그동안이야 국왕이 있었고, 섭정이 있었으니 당연히 이들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수상과 의회가 월권을 행사해야 했지만 그 두가지를 한사람이 독점하면 결국 독재관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좋아, 그럼 우선 장관회의의 총재와 국민공회의 총재를 나눠야겠군. 추가적인 의견 있나?"
"총재가 여럿이면 안 되지."
자크 루가 눈살을 찌푸렸다.
"로베스피에르 위원장이 보편적 다수를 보호할 수 있었던 건 그가 누구도 견줄 수 없는 이 나라의 최고 권력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일세. 로마 공화정의 실패를 뻔히 알고 있는 친구들이 또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행정부의 우두머리를 총재(directeur), 입법부의 우두머리를 위원장(président)으로 구분하고 총재를 최고지도자로 두되 국민공회 위원장에게 실권을 부여합시다."
그것이 로베스피에르의 임기였으니까.
"이제야 말이 좀 통하는구만."
당통의 진행에 자크 루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감찰, 에 대해선···."
돌연 침묵이 맴돌았다.
그야 이들이 지금 생각하는 감찰이란 단순히 부패나 부정을 단속하는 직권이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생각하고 있는 감찰이란 저 반동과 폭도들로부터 혁명정부를 지키는 것이었고, 이는 누구의 손에 들어가느냐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남용의 소지가 있는 절대권력이었으니.
아닌 말로 이걸 처음 손에 넣은 게 절대로 부패하지 않는 자 로베스피에르였으니 별 탈 없이 끝난 거지, 이다음도 같으리라는 법은 없었다.
결국 너나 할 것 없이 신음만 흘리던 와중.
"···어차피 직접민주주의를 할 거면 서로서로 견제하는 게 맞지 않겠나?"
카미유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코뮌끼리 감시하도록 만들자는 말인가?"
"그래. 당장 막시밀리앙, 그 친구도 부패를 단속하기 위해서 민간 탐정들의 참여를 독려했잖은가?"
그렇다면.
"코뮌들의 코뮌을 두어서 서로 기소하게 만들어보세. 지금보다 더욱 잘게 쪼개서 서로 다투게 만드는 대신 최고자문회의로서 파리를 견제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다면 저들도 반대하진 않겠지."
"말하자면 코뮌 최고평의회인 셈인가. 좋아, 알겠네."
남은 건 새로운 공화국의 이름을 정하는 것뿐.
그리고 이 자리에 모인 모두가 만족할 국명은 딱 한 가지뿐이었다.
이날, 국민공회는 프랑스 코뮌(Commune de France)의 건국을 공식적으로 선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