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문제
깨어라, 노동자의 연대♬
[어허, 씁.]
왜? 라 마르세예즈가 아니라서 불만이야?
무려 코뮌이라는 인터내쇼날 진영에서 최고로 근본 넘치는 이름이 국명으로 정해졌는데 이 정도는 해줘야지!
레닌도 이거 들으면 눈물 콧물 오줌 다 흘리면서 손바닥 발바닥으로 박수 쳐줄걸!
[그 코뮌이 그 코뮌이 아니라···하아, 됐네, 됐어. 그래. 이번엔 자네가 이겼어.]
낄낄낄!
그리고 그 정도야 당연히 나도 알고말고.
애초에 내가 아는 파리 코뮌은커녕 그 원형조차 만들어지지 않은 지금 코뮌이란 혁명 이후 만들어진 행정 구분이자 전통적인 자치공동체를 의미할 뿐이다.
그러니까 한역한다면「평의회 공화국」이 아니라 연방, 합중국, 자치주 연합 등으로 불러야겠지.
하지만 시작이 반 아니겠어?
직접민주주의나 협동조합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도 아니고 결국 이 로마 시대에서부터 이어져 온 코뮌 전통이 대혁명과 산업혁명을 맞이하여 화려한 꽃을 피운 거다.
지방분권이야 두말할 필요도 없지.
이미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 내 구상의 절반은 완성된 거다.
"무슨 생각을 혼자서 그렇게 하시나요?"
마담 롤랑이 빙그레 미소 지었다.
이 사람도 슬슬 마흔이 코앞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겉으로 봐서는 전혀 그런 느낌이 아니라서 솔직히 당황스럽네.
그렇다.
지금 이곳은 그녀의 살롱.
풀어서 설명하자면 사교회, 오늘 우리는 그녀의 초대를 받아 이 자리에 나왔다.
당연히 부부가 함께 나와야 하는 사교회다보니 만삭이 가까워져 가고 있는 엘레오노르를 위해서라도 사양하려 했는데, 춤추거나 술을 마시는 게 아니라 커피와 과자를 곁들인 가벼운 사교회라고 둘러대니 사양할 수도 없었다.
그런데 또 막상 나와보니 어울릴 급수가 되는 게 우리밖에 없더라고.
콩도르세라던가, 시에예스라던가 온건공화당 쪽 인사 중 안면이 있는 인사들이 한둘이 아닌데 그중에서도 단 한 명도 안 보인다는 건···쓰읍.
[뭐, 일부러 초대하지 않은 거 아니겠나. 그냥저냥 숫자만 채운 거겠지.]
내 생각도 그렇다.
이건 처음부터 우리와 자연스러운 만남을 가지기 위해 저격한 거라고 봐야겠지.
어차피 한 번쯤은 직접 만나봐야 하기도 했고.
아무튼 저쪽에서 영업용 미소를 먼저 걸었으니 이쪽도 맞받아쳐 줘야겠지?
"어떻게 해야 어느덧 안정기에 접어든 부인께서 서운한 마음이 들지 않도록 힘이 되어드릴 수 있을까, 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어머나."
홍조를 띄우는 엘레오노르 부인.
그리고 조금 전부터 얼굴 근육이 미동도 하지 않는 마담 롤랑.
"상냥하시네요. 우리 바깥사람은 나보다 스무 살은 더 많은 사람이 고작 몇 주 만에 옆구리가 시리다고 보챘는데."
"커흠."
롤랑 장관의 헛기침.
···이거 내가 생각하는 그거 아니지?
[그래, 설령 맞더라도 아무튼 아닐세.]
그래, 잘하자.
"아이를 가진다는 건 두 사람의 사랑만큼이나 막대한 책임감을 요하는 일이지요."
마담 롤랑이 덧붙였다.
"보아하니 로베스피에르 의원님께서는 아내분을 향한 사랑도 아이를 향한 책임감도 충분하신 것 같네요."
"하하, 의원님이라니요. 이제는 아무것도 아닌 자연인인걸요. 그냥 편하게 로베스피에르 군이라고 불러주시길."
"아뇨, 의원님이라고 부르겠습니다."
···고집쟁이시군.
강하게, 또박또박 한마디씩 귀에 꽂히도록 발음하면서도 미소가 조금도 무너지지 않는다는 게 조금 소름 끼칠 지경이다.
"그렇지 않으면, 위원장이라고 불러드릴까요?"
"짓궂으시군요."
뭐, 살롱의 여주인께서 여기까지 고집을 부리신다면야 나도 어쩔 수 없긴 한데.
"일 이야기를 하실 생각이라면 잠시 둘이서 걷건, 일어나건 하시지요."
드르륵.
아무리 안정기라지만 저번에 산파가 말하기를 오히려 지금이 뱃살이 튼다든가 하는 불상사가 가장 자주 일어나는 시기라고 했었다.
안 그래도 회임하면 호르몬 이상으로 정서가 불안정해진다는데 부인 앞에서 말다툼하고 싶진 않다.
"어머나, 괜찮으시겠어요? 임자가 있는 몸끼리 단둘이서 오붓하게 시간을 보낸다니."
"썩 정겨운 이야기가 나올 것 같지는 않으니까요. 괜히 산모나 아이에게 부담을-."
"여기서 하세요."
한데 그 엘레오노르 부인께서 끼어들었다.
언제나와 같은 미소인데 오늘따라 왜 배시시-하는 느낌이 아니지.
"···아니 그래도."
"여기서, 제가 보는 앞에서, 제가 듣는 곳에서 하세요. 아니면 따귀 맞을 줄 알아요."
[넵.]
넵.
"···푸훗."
별수 없이 털썩 주저앉으니 이번에는 마담 롤랑이 웃음을 터트렸다.
아니 또 뭔데요 쫌.
"죄송해요. 설마하니 이런 분일 줄은 상상도 못했던지라. 혹시라도 불쾌한 기분을 줄 의도는 아니었어요. 만일 그렇다면 사죄드리지요."
꾸벅.
마담 롤랑이 자리에서 일어나 치맛자락을 잡으며 우아하게 고개를 숙였다.
얼떨떨한 기분으로 이 정중한 사죄를 받아들이자니.
"자아, 그럼 로베스피에르 군?"
마담은 도로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자리에 앉아 영업 미소를 떠올렸다.
···야, 나 이 사람 무서워.
[전적으로 동감일세.]
"아니면 의원님? 어느 쪽으로 불러드리면 될까요?"
"···편하실 대로 불러주십시오."
"그렇다면 의원님이라 부를게요."
진짜 고집하나는 대단하시네!
아니 그런데 왜 하필이면 의원님(sénateur)이야?
원래 국민공회면 그냥 의원(député) 아닌가?
위원장이라던가 수상 각하라던가 동지라던가 정 아니면 변호사님이라던가 다른 칭호들 많지 않나?
[그···나도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 공화주의자로서의 고집 아니겠는가?]
공화주의자?
아, 로마 원로원 같은걸 연상한 건가?
"좋습니다."
따지고 보면 반대당파의 유력자와 시종일관 하하호호하는게 더 이상한 거지.
이렇게 한 탁상에 마주 앉은 것만으로도 엄청나게 드문 기회고, 뭐 대단하게 서로 골탕 먹이거나 한 것도 아니고 고작 호칭을 뭐로 할거냐를 두고서 다툰 정도면 솔직히 애교다.
이런 사소한 자존심 싸움조차도 없다면 애초에 반대당파고 뭐고 서로서로 다 터놓고 지내는 과두독재라는 소리지 뭐겠어.
그래서 도대체 이 사람은 뭐가 그리 급해서 개표 끝나고 며칠이나 되었다고 우릴 불렀나, 하고 기다리고 있자니 마담 롤랑이 말하기를.
"의원님께서는 여성의 사회참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시작부터 단도직입이시구먼.
괜히 당황해서 주도권을 넘겨서는 안 된다는 확신이 든다.
그렇다면 내 쪽도 당분간은 뇌내필터 없이 즉답으로 가야지.
[어이, 잠깐.]
"당연한 생득권이라고 생각합니다."
"생득권이라."
마담의 입꼬리가 살짝 요동쳤다.
"그러신 것치고는 지금껏 영 단서를 주지 않으셨던 것 같은데요."
"그야 아직 준비가 안 되었으니까요."
"아하, 대중적인 계몽 같은?"
마담의 입꼬리가 도로 굳었다.
뭐어, 무슨 생각을 했는지야 알겠지만. 그쪽 담론을 꺼낼 생각은 없다.
대중적인 인식을 고치는 정도라면 당신이 가장 필사적으로 고민해봤을 테니까.
준비도 없이 상대방의 영역에 함부로 발을 디디는 건 만용조차 못 된다.
고로 내 담론은 그쪽이 아니라.
"아뇨. 시장입니다."
"···시장이라고요?"
생각지도 못했다는 듯한 반응.
좋아, 한 꺼풀 벗겼고.
"가령 빨래를 예로 들어보지요."
슬쩍 내 정장을 꼬집어 보였다.
"우리 프랑스의 위대한 발명가 중 몇이나 이 빨래가 얼마나 고되고 오랜 시간이 걸리는지 관심이 있을까요? 다들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더 새하얗게 될까, 어떻게 해야 색깔이 빠지지 않을까 하는 고민만 하고 있을 뿐 조금 더 빠르게, 조금 더 쉽게 같은 편의성에 대해서 고민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마치 그렇게 시간을 아끼고, 기력을 아낀 가사노동자들이 무엇을 시도할지 두려워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지요."
"의원님께서는 이를 고민할 사람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는 거군요."
"예, 그렇습니다."
실제로 단순히 깨어있는 일부의 지지가 아닌 여성의 사회참여에 대중적인 설득력을 부여한 건 바로 가정용품 시장의 발전이었으니까.
세계대전이야 논외로 치고.
"물론 누군가는 집안일을 해야겠지요. 여성의 사회참여를 위해 모든 부부가 공동으로 집안일을 분담한다면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현 프랑스의 국민정서를 고려하자면 이런 건 아무런 의미도 없는 탁상공론에 불과합니다. 적어도 100년, 200년 뒤에나 간신히 시도할까 말까 한 이야기를 벌써 해봐야 대체 무슨 소용입니까?"
"꽤나 적극적이시네요."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 제1조,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나 자유롭게 살아갈 권리가 있다."
마담 롤랑과 정면으로 눈을 마주쳤다.
"모든 인간이 자유로울 수 있는 권리를 평등하게 누릴 수 있도록 돕는 게 혁명의 목표입니다. 아닙니까?"
마담은 답하지 않았다.
다과를 하나 집어 들어서-차마 입에 넣지는 못하고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을 뿐.
탁.
"그럴듯한 이야기지만."
끝내 다과를 입에 넣지 못한 마담이 입을 열었다.
"과연 의원님께서 해결책 또한 제시하실 수 있을까요?"
"간단합니다."
"···간단하다고요?"
생각지도 못했다는 듯한 반응.
"왜 아무도 편의성을 개선하려 하지 않을까요?"
뭐어, 그야 나도 미래지식을 빌리고 있는 거니까 이렇게 쉽게 쉽게 대답이 나오는 거긴 한데.
"결국 다들 이게 얼마나 큰 돈이 될지 감히 짐작도 못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돈."
"예. 가사노동에 참여하는 여성들은 대부분 전문적인 교육을 받지 못하였기에 설령 재능과 영감을 두루 갖췄어도 이 방면에서 혁신적인 발명품을 내놓을 수 없습니다. 아무런 경력도 없는 주부의 발명 활동을 위해 막대한 돈을 투자할 금융가도 없을 테고요.
반대로 가사노동에 참여하지 않는 남성 발명가들은 과정이 아니라 결과물만 보니 편의성에 대한 고려가 생략되지요. 그들에게 필요한건 오직 빨래가 끝났으며, 빨랫감이 깨끗해졌다는 결론 뿐이니까요."
하지만.
"대부분 가정에서 가계부를 작성하는 건 주부들이지요. 아닙니까?"
"하."
마담 롤랑이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봤다.
올려다보고, 도로 고개를 떨구더니.
"···하아."
땅이 꺼지라고 한숨.
그거면 족했다.
"돈, 그래요. 돈이로군요."
마담 롤랑이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은 즐거웠어요, 의원님. 모쪼록 부인과 함께 즐거운 시간 되시기를."
"저런, 벌써 돌아가시려는 겁니까?"
"예, 좀 어지러워서."
비틀거리는 걸음걸이.
비록 오늘 처음 만난 사이였으나 그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리는 뒷모습에서 마담 롤랑이 받은 정신적 충격을 짐작해볼 수 있었다.
···아니면, 혹시 화난 건가?
[흠, 확실히. 뭣도 모르는 주제에 너무 쉽게 이야기한다고 생각했을지도-.]
"당신."
엘레오노르 부인이 배시시 미소 지었다.
"정부가 필요하다면 차라리 제 또래나 연하로 골라주세요. 늙은이에게 졌다고 생각하면 여자로서 상처받으니까."
"···으, 응? 갑자기 무슨?"
"뭘 또 모르는 척이에요. 저 여자 아주 좋아 죽으려고 하더구만."
빠드득.
"무조건 저보다 연하로. 알겠죠?"
···넵.
[넵.]
홀짝.
아무도 구석에서 혼자 커피를 홀짝이던 롤랑 장관에겐 시선 한번 주지 않았다.
***
파리 조병창.
"미터법이라···."
제 손에 쥐어진 1미터 황동원기를 이모저모 살피던 전쟁위원장 라자르 카르노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확실히 이게 더 과학적이긴 한데 말이야."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그동안 시민들이 쓰던 도량형이랑 너무 달라서 잘 받아들여질지 모르겠습니다. 나쁘게 말하면 원시적이고 미개했던 거지만···그 뭐라고 해야 하나. 아무래도 시민들에겐 훨씬 친숙한 기준이었잖습니까."
"아하."
라부아지에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야 샤를마뉴 대제가 정하셨다는 피에 드르와(Pied de Roi)부터가 팔꿈치에서 장지 끝까지 잰 큐빗(cubit)의 응용품이었으니 앞으로의 혼란상이야 두말해 무엇할까.
더불어 이 피에 드르와조차 가장 대표적인 기준일 뿐, 현 프랑스엔 이를 제하고도 15만 개에 달하는 도량형이 존재하리라고 짐작되는바.
다들 손가락 마디나 팔꿈치 같은 걸로 어림 대중하다가 이제 와서 자오선을 측정해서 또 나누고 어쩌고 해서 정했다는 미터법을 꺼낸다고 과연 몇이나 기뻐할는지.
'그래, 그래도 정부 고관이 이 정도 상식은 있어야지.'
이게 뭔지도 모르면서 대뜸 인류를 구하느니 뭐라느니 요란스럽기만 했던 누군가를 내심 흉보며 라부아지에가 대꾸했다.
"뭐어, 그거야 민간의 일이지. 이미 모든 규격화가 완료된 파리 조병창에서 근심할 일은 아니잖습니까? 여차하면 파리 조병창을 기준으로 따르도록 강제하면 그만일 일이지요. 군수는 규격화가 생명이니까요."
"그거야 그렇기야 한데···."
카르노가 말꼬리를 늘어트렸다.
"이건 제 개인적인 욕심이지만, 하루빨리 이 미터법이라는 게 전 프랑스에 보급되는 걸 보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흠. 역시 로베스피에르 위원장께서 하신 말씀이 신경 쓰이시는 겁니까?"
"그것도 물론 있습니다만."
카르노가 덧붙이기를.
"장차 이 미터법이라는 게 우리 프랑스의 교육과 과학 기술 발전에 얼마나 크나큰 이점을 제공할지 생각해보십시오. 그간 논문별로, 저서별로 도량형이 조금씩 달라서 첨삭하거나 각자 요령껏 검산해야 했던 경우가 좀 많았습니까?"
"알아주시는군요!!!"
털썩.
라부아지에가 흐느끼며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마침내, 마침내!
이놈의 가치를 제대로 알아봐 주는 사람과 만났구나!
그래, 이게 정상이지!
그래도 정부 고관씩이나 되었으면 이 정도는 교양으로 알고 있어야지!
뭐 찾아갈 때마다 개인 강습 시켜줘야 하는 게 말이냐!
"괘, 괜찮으십니까?"
"네에, 괜찮습니다. 그냥 잠깐 감정이 복 받아쳐서 그만."
라부아지에가 쓱쓱 눈물을 닦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야 마음이 좀 놓이는 것 같았다.
그간 이런 무식한 아마추어들에게 이 나라를 맡겨도 되나 얼마나 혼자서 고민하고 근심했었는지 원.
"아무튼, 카르노 위원장님께서 원하시는 건 군납 업체들과의 실랑이가 아니라는 말씀이시지요?"
"예. 그거야 실랑이랄게 뭐 있겠습니까. 예나 지금이나 프랑스 군수산업의 기준점이 바로 이 파리 조병창이었는걸요."
"그렇다면 교육 문제도 아닐 거고. 앞으로 자라날 우리 프랑스의 어린아이들이 아니라 이미 자라난 학자들이나 사업자들이 미터법을 사용하기를 원하신다는 건데-."
그거야 쉽지.
생각을 정리한 라부아지에가 입을 열었다.
"미터법을 사용하지 않는, 그러니까 미터법 이전 도량형을 사용한 모든 사람들에게 돈을 내게 하면 됩니다."
"그, 벌금은 좀."
카르노가 눈살을 찌푸렸다.
"고작 미터법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무고한 시민들을 범법자로 만들어서야 되겠습니까?"
"어허, 제가 언제 벌금이라고 말했습니까?"
라부아지에가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세금입니다."
"···세, 세금?"
"예. 미터법을 사용하지 않는 모든 사업장과 학교들에게 추가 세금을 내게 하는 겁니다. 물론 이름만 미터지 대강 눈대중으로 아무렇게나 적어놓은 사람들에겐 괘씸죄를 물어서 두배, 세배로 거둬야겠지요."
뭐어, 이제 와서 또 라부아지에가 징세 청부업자 노릇을 했다가 진짜로 목이 달아나겠지만.
그가 세리로 일한 세월이 얼마인데 그렇게 익힌 짬밥이 어디 가기야 하겠는가?
카르노가 되었건 정부 고관 중 누가 되었건 미터세 거두라는 명령만 내려준다면야 목표치 1,400% 추가 달성 정도야 일도 아니었다.
"먼저 이 황동원기를 대량 생산해서 개별 코뮌에 보급합시다. 그리고 의도적으로 미터세에만 감찰기준을 좀 널널하게 잡는 거지요. 현장에서 미터법 보급이라는 사명감에 불타오를 수 있도록 말입니다."
"저어, 박사님."
"아직 덜 끝났습니다. 그간 정부에 납품하던 물건들도 규격이 엉망진창이었지요? 이제 미터원기가 나왔으니 이걸 기준으로 기준미달인 업체들에는 미터세를 두배, 세배로 가중하고 또 심각하게 미달시 반려하는 겁니다. 물론 세금은 세금대로 내면서 반려도 시켜야겠지요."
아무렴 정부에서 쓸 물건을 생산해야 할 사람들이 정부 규격에 미달하다니요.
라부아지에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거야말로 말도 안 되는 결격사유지요. 이렇게 미터법을 지키지 않았기에 불이익을 당했다는 본보기가 나오고, 소문이 퍼지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보급을 마칠 수 있을 겁니다. 겸사겸사 국고도 가득 채울 수 있을테고요."
"그러니까 박사님."
카르노가 다급하게 외쳤다.
"직원들이 듣고 있습니다!"
"···아."
그제야 라부아지에의 눈에 이쪽을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는 파리 조병창 임직원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럼 새파랗게 질린 전임 세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한가지 뿐.
"세리 놈 잡아라!"
"저 개자식이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뭐어, 미터세? 세에에에?!"
"아이고, 그게 아니라!"
라부아지에는 꽁지가 빠지라 그를 뒤쫓아 오는 옛 피해자들로부터 도망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