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1화 (101/154)

책임감

프랑스령 생도맹그.

"누벨 프랑스 총독이라···."

멋들어진 임명장에 뒤마 장군이 쓴웃음을 지었다.

"이걸 과연 출세했다고 기뻐해야할지 모르겠군."

"본국으로 돌아올 생각하지 말라는 거군요."

"그래, 아무래도 그런 것 같네. 물라토 출신 장군이 괜히 파리에서 위원장 동지를 믿고 거들먹거리는 꼴은 못 봐주겠다, 이거겠지."

하여간 솔직한 놈들 같으니라고.

입으로만 매번 만민은 평등하다고 나불거리지, 정말로 평등해야 할 때가 오면 왜 자꾸 겉으로는 아닌척하면서 은근슬쩍 내숭 떠는 놈들이 이렇게 많은 건지.

"동지에겐 미안하게 되었네."

뒤마 장군이 슬쩍 그의 부관 장바티스트 쥘 베르나도트를 돌아보았다.

"나 때문에 자네까지 당분간 고국으로 돌아가지도 못하게 생겼군."

"당치도 않습니다."

베르나도트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공화국의 반역자가 고작 고국에 돌아가지 못하는 정도로 이제 와서 무슨 투정을 부린다는 말입니까. 그날 단두대의 이슬로 명예로이 사라지기를 거부하고 공화국을 위하여 봉사할 것을 결심한 것은 오롯이 제 선택이었습니다. 장군께서 자책하실 필요 없습니다."

추호의 망설임도, 꾸밈도 없는 대답이었다.

로베스피에르 덕택에 꿈에도 그리던 장성이 될 수 있었던 뒤마와 지난날 로베스피에르 독재에 맞서 혁명을 사수하겠다며 쿠데타를 일으킨 베르나도트.

얼핏 경력만 봐서는 도대체 어떻게 이 두 사람이 의기투합하게 되었는지 의아할 정도의 조합이었으나-막상 그들 자신은 너무도 자연스레 서로를 신뢰로 가득한 시선으로 마주하고 있었다.

그야 그들은 지난날 히스파니올라와 카리브해의 노예혁명을 위하여 수없이 사선을 넘어온 전우였으니까.

오히려 이념적 급진성과 혁명을 향한 열정만큼은 물라토 출신의 뒤마가 순혈 백인인 베르나도트와 감히 견주지 못할 지경이었다.

저 투생조차 「쓸만한 흰둥이」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으니 오죽할까.

비록 유럽대륙에서는 동시기 나폴레옹이 신화를 써 내려가는 바람에 묻히긴 했으나, 최후의 순간 노예혁명군이 산토도밍고를 함락시키고 이 히스파니올라 섬의 스페인 총독에게 항복을 받아내던 순간 베르나도트는 해방 노예들에게 헹가래를 받았던 유일무이한 백인 장교였다.

"동지가 그렇게 말한다면야."

고로, 뒤마는 자랑스레 어깨를 펴고 고개를 꼿꼿이 세웠다.

그가 이를 마음의 빚으로 여기고 부관을 어렵게 여길수록 외려 그들의 전우애만 해칠 뿐일지니.

마음을 다잡은 뒤마가 발령장을 베르나도트에게 건넸다.

"일단 앞으로 1달 정도 더 여유가 있으니, 내일 날이 밝는 대로 투생을 찾아가 보면 될 것 같네."

"꽤나 여유롭군요."

"아무래도 당장 전쟁이 터지거나 하지는 않을 테니까. 슬슬 파리에서도 여유가 생긴 것 아니겠나."

타당한 설명이었다.

고개를 주억거린 베르나도트가 대꾸했다.

"그럼 차기 생도맹그 총독은 누가 오게 될까요?"

"아마 보잘것없는 사내 아니겠나. 그게 아니라면-."

뒤마는 더는 설명하지 않았다.

그걸로 족했다.

"보잘것없는 인물이기를 바라야겠군요."

유능하고 이름이 널리 알려진 인물이 왔다는 건 결국 파리에서 생도맹그를 길들이기로 작정했다는 이야기가 될 테니.

물론 반대로 생도맹그 재건과 인종 간 화합을 도모하기 위하여 이름난 인권운동가가 찾아올 수도 있겠으나-유감스럽게도 그건 그들이 아는 파리가 할 일이 아니었다.

베르나도트는 함께 노예해방을 위하여 투쟁하였던 전우들이 그런 시시하고 비참한 결말을 맞이하기를 바라진 않았다.

그 경우 파리와 야합한 투생은 동포들을 팔아치워 호의호식하는 매종노요, 아직도 섬 어딘가에 숨어서 무력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비아소와 그 잔당들이야말로 진정 해방가였음을 증명하는 격이 될 테니 더더욱 더.

"우선 내일 투생 동지를 만나 뵈면 가장 먼저 이 경고를 드려야겠습니다."

"그래. 아예 이참에 본국의 코뮌 체제를 소개해줘야 할지도 모르겠군."

"아아, 확실히. 파리의 아량에 기대는 것보다야 자강하는 게 안정적이겠지요."

일단 코뮌 자치제가 뿌리내리고 나면 본국에서 제아무리 강압적이고 탐욕스러운 총독이 건너와도 함부로 대할 수 없을 테니.

비록 유럽에 비하면 소소해도 노예 전쟁을 경험한 해방 노예 민병대와 코뮌 자치제, 그리고 농업 협동조합의 삼위일체는 분명히 이 생도맹그의 자유를 지키는 데 결정적인 힘이 되어주리라.

"그럼 남은 건 인수인계를 하면서 마저 논의한다고 치고···."

베르나도트가 슬쩍 발령장을 흘겨보았다.

"이놈의 루이지애나가 문제로군요."

"혹시 뭐 아는 것 좀 있나?"

"해안가 쪽은 축축하고 습해서 모기가 많이 사는 대신 가재가 풍부하다, 뭐 그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내륙 쪽은 아직 탐사가 전혀 안 되어서 미지수고요."

"축축하고 습하다-."

뒤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날씨도 이곳처럼 살짝 무더울테니 쌀농사가 아주 잘되겠군. 옥수수야 신내륙 어디에서나 잘 자라니까 한 번쯤 심어볼 법하고. 그리고-."

"목화와 사탕수수도 잘 자라겠지요."

침묵.

숨소리조차 내지 않는 뒤마의 모습에 뒤늦게 제 실수를 깨달은 베르나도트가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아니, 아닐세. 동지를 탓할 일이 아니잖은가."

아무렴 산업 그 자체에 죄는 없다.

설탕도, 면직물도 어느 쪽이고 사람에게 필요한 것들이고 또 그만큼 큰돈이 되는 상품이다.

다만 그 생산과정에 크나큰 결함이 있을 뿐.

베르나도트에게 따로 악의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이를 탓하는 건 너무한 처사였다.

"그래, 당연히 목화와 사탕수수도 염두에 둬야겠지. 또 가재가 많이 난다고 하니 그것도 생각해봐야 할 테고 말이야."

"···예,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그러나 뒤마가 애써 분위기를 풀려고 해도 전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그만큼 노예혁명을 직접 목격한 그들에게 있어서 노예농장이란 금기나 다름없었기에.

비록 직접적으로 이를 언급한 건 아닐지라도 이를 감히 연상케 했다는 것만으로 자책에 파묻히는 것 또한 어쩔 수 없었던바.

"잠깐 접근법을 고쳐보지."

짝.

보다 못한 뒤마가 가볍게 손뼉을 치며 주의를 환기했다.

"함께 하루빨리 조국으로 돌아갈 방법을 궁리해보자는 말이야."

"파리에 내세울 만한 공훈을 세워보자는 말씀이시군요."

"그래, 어떤 게 있겠는가? 어디 생각나는 대로 말해보게."

물론 정말로 그런 기대로 꺼낸 말은 아니었다.

그냥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주제로 화두를 바꾸고 싶었을 뿐.

한데 베르나도트는 혼자 한참을 골똘히 생각하더니 대답하기를.

"···그럼 양모 같은 건 어떻겠습니까?"

"루이지애나는 덥고 습하다고 하지 않았나? 양들이 살기엔 별로일 것 같은데."

"해안가는 그렇지요. 하지만 내륙까지 그럴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북아메리카는 거대한 대륙입니다. 저 루이지애나는 그 중앙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땅덩어리고요."

척.

베르다노트가 뒤마가 입고 있는 장교복을 가리켰다.

"만약 영국이랑 전쟁이 시작된다면 가장 먼저 무엇이 절실해지겠습니까?"

"아, 이 양모 코트를 말하는거군. 다른 건 몰라도 양모 하나만큼은 해적 놈들이 유럽 제일이니까."

"그렇습니다. 양모겠지요. 다른 것들은 어떻게 대체품이나 다른 곳이 있지만 양모만큼은 영국을 대체할만한 곳이 마땅히 없거니와 그나마도 적국들 뿐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북미의 양모 산업을 장려해봅시다."

어차피 저주받을 놈의 목화는 따로 장려하지 않아도 다들 죽자 살자 심어댈 테니까.

"옥수수도 쌀도 가축을 먹일 사료로 가공하기엔 더할 나위 없는 작물이잖습니까. 그렇다면 축축한 해안가에서는 옥수수와 쌀을 재배하고 내륙에서는 양들을 대량 사육하여 보는 것 어떨는지요."

"그러다가 내륙의 기후도 양 목축에 부적절하다는 결론이 나온다면?"

"그런다고 손해 볼 건 없을 겁니다. 아무튼 옥수수건 쌀이건 사료용이 아니라도 당장 굶주린 사람의 배를 채우기엔 부족함이 없으니까요."

제법 그럴듯한 이야기였다.

저 내륙이 광활한 평야일지, 또 다른 열대우림일지, 그도 아니면 온대 밀림일지야 두고봐야겠으나 아무튼 쌀과 옥수수를 재배해서 손해를 볼 건 없다.

아무렴 루이지애나는 장차 수십 년간 면세특권을 부여받은 경제특구.

파리에서 벌써 수익을 내라고 독촉할 리도 없거니와 당장 바야돌리드 선언이 발표된 지 얼마나 되었다고 플랜테이션 농장건설에 소홀하다며 그들을 손가락질하겠는가.

다만 한 가지 걱정되는 게 있다면.

"과연 시간에 맞출 수 있을지 모르겠군."

"흠, 확실히 시티 오브 런던에서 자국 양모 산업의 경쟁자를 키워주려 하진 않겠지요."

"물론 그것도 있네만, 그보다도 사람이 모자라잖는가."

"···아."

그제야 베르나도트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생각지도 못했다는 반응이었다.

"발상은 나쁘지 않았네.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내륙 탐험과 목축업 육성을 병행할 텐가? 남아도는 사료야 이웃 미국이나 누에바 스페인에 수출한다고 쳐도 말이네."

"끄응···."

확실히 난점이었다.

아닌 말로 작금의 평화가 10년씩 계속되지는 않을 테니.

어떻게든 길어야 5년 안에 성과를 내야만 하는 현 상황에서 통할만한 사업계획은 아니었다.

결국 시도는 좋았다며 후일을 기약하려던 와중.

"그거야 뭐. 내륙, 그러니까 북미 중부에도 원주민들이 살고 있을 것 아닙니까?"

인수인계를 위하여 찾아간 투생이 뜻밖에도 그들에게 조언을 내놨다.

"내륙의 기후야 아직 다들 짐작 정도만 하고 있을 뿐이지만 어차피 사막이어도 사람은 살 겁니다. 온통 험악한 산지뿐이라도 사람은 살겠지요. 차라리 기후가 맞지 않으면 모를까 사람은 문제가 아닐겁니다. 인간이라는 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인한 생물이니까요."

"그거야 그렇습니다만."

베르나도트가 난색을 보였다.

"그래서 과연 원주민들이 우리에게 양모를 팔려 할까요? 애초에 저들은 아직 양이 무엇인지도 모를 텐데요."

"그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기르고, 이익이 된다면 양모도 머지않아 팔겠지요."

투생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인간은 절대로 멍청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동부 연안의 원주민들은 말이나 철이 무엇인지조차 몰랐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당연하다는 듯이 다들 말을 타고 화승총을 다루고 있지요."

결국 각개격파 당했지만요.

쓸쓸한 부연 설명이었다.

"그러니 마찬가지로 양을 기르는 게 도움이 된다면 기르게 될 거라는 말입니까?"

"뭐, 실제로 어떨지는 직접 만나봐야지 확답을 드릴 수 있겠지만요. 요는 성의의 문제라는 겁니다. 지금 단기간에 내륙에서 양을 사육해줄 협력자가 절실히 필요한 건 우리지 저들이 아니잖습니까."

그렇다면.

"아쉬운 쪽에서 아쉬운 대로 열과 성의를 다하여 설득해봐야지요."

투생이 뒤마와 베르나도트를 번갈아 가며 바라보았다.

"총칼을 내세워서 누군가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걸 이젠 우리 모두 알잖습니까."

"···무슨 말인지 잘 알겠소."

뒤마가 천천히 와인잔을 들어 올렸다.

"좋소. 어디 한번 열과 성의를 다하여 설득해봅시다. 우리 모두의 무사 귀환을 위하여."

"아직 얼굴도 모르는 북미의 형제자매들을 위하여."

이어서 투생이.

"보편적 다수의 보편적 행복을 위하여."

마지막으로 베르나도트가 잔을 들어 올렸다.

그들에겐 더할 나위 없을 건배사였다.

쨍-.

곧 그들이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의 운명이 바뀌는 순간이었다.

***

응애! 응애-!

"···햐."

고놈 참 우렁차기도 하다.

우리 엄마도 이런 기분이었겠지?

피로 얼룩진 채 힘차게 울음을 터트리고 있는 갓난아이를 보고 있자니 나까지 뭐라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동과 전율이 다 느껴질 지경이다.

이러니까 부모님들이 한평생 자식들 뒷바라지하면서 사시는구나.

"축하드립니다, 왕자님이에요."

초산치고는 쉬운 편이었다고 덧붙이며 산파가 담요로 돌돌 만 왕자님을 이쪽으로-우욱씹!

[이봐! 지금 갓난아이에게 그게 할 소리인가!!!]

그게 아니라 산파!!!

지금 저 산파 피 묻은 손을 대충 애기담요에다가 쓱쓱 닦았다고!

잠깐, 저 얼룩도 핏자국은 아니지?

도대체 언제 빤 거야?

다른 집에서 애 받아주고 난 다음에 한 번 빨기는 한 거야?

그냥 말린 게 아니라?

그리고 저 탯줄 자른 가위 소독은 한 거겠지?!

[···아.]

아아악!

내 이럴 줄 알았어!

진작에 이것부터 손봤어야 했던 건데 까먹고 있었네!

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소독만큼은 꼭 손대고 만다!

프랑스의 청결을 위하여! 앞으로 태어날 갓난아이들의 위생적인 환경과 산모들의 생존을 위하여!

내 여럿 죽여서라도 이건 꼭 바로잡을 테다!

"미안해요."

가쁜 숨소리.

슬쩍 고개를 돌려보니 엘레오노르 부인이 슬프게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공주님이었어야 했는데."

"그런 말 마십시오, 부인."

애초에 부인 때문에 이러는 게 아니야!

저 망할 산파 때문이라고!

저게 지금 세균맨이지 사람이냐!

[에이잇! 알겠으니까 좀 조용히 하게! 지금 부인이 슬퍼하는 게 자네가 화를 내고 있다는 걸 눈치챘기 때문이라는 것도 모르겠나!]

···아.

그렇네. 나 때문이겠구나.

방해꾼은 얌전히 짜져있을게요.

"그저 저 자신에게 분노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몸을 되찾아간 집주인 놈이 신속하게 수습에 나섰다.

"그토록 증오하던 아버지를 어느정도 이해하게 되었으니까요."

"아···."

그제야 엘레오노르는 슬프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아버지는 이 동물의 왕국 프랑스에 걸맞은 무책임한 가장이었으니까.

변호사였던 그는 양조업자의 딸을 덜컥 혼전임신 시켰고, 혼례를 치르긴 했으나 이후 아내가 스물아홉이라는 젊은 나이에 로베스피에르의 여동생을 낳다가 사망하자 양육의 책임을 저버리고 아무런 소식도 없이 멀리 도망쳐버렸다.

그렇게 혼인 후 5개월 만에 태어난 장남이자 고작 8살에 집안의 가장이 되었던 게 바로 막시밀리앙.

당연히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재산 따윈 없었고, 어린 로베스피에르 일가는 이모와 외조부모에게 거둬져 찢어진 가난 속에서 자라났다.

내가 본의 아니게 엿보게 된 집주인 놈의 학창 시절 기억 중에는 입을 옷이 없어서 남들이 다들 나가서 놀고 있을 때 혼자 기숙사에 처박혀있었던 사례가 잊을만하면 등장했으니 말 다 했지.

막시밀리앙 드 로베스피에르가 이 프랑스에 걸맞지 않은 청렴결백의 사나이가 된 것도, 유달리 사생활이 깨끗했던 것도 분명히 이 비참했던 어린 시절과 형제자매를 버리고 떠난 무책임한 아버지를 향한 혐오의 영향이 적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입 닥쳐, 박민혁.]

아니 뭔 불쌍하다고 해줘도 난리야.

하여간 부끄러워하기는.

"괜찮아요."

응애! 응애-!

엘레오노르 부인이 갓난아이를 들고 있는 손 위로 가벼이 손을 포갰다.

"아버님이 이렇게 상냥하게 들어주셨을까요?"

"···그건."

"당신처럼 슬퍼하고 책임감을 느끼셨을까요? 글쎄요, 절대로 아닐걸요."

그러니까.

"이제 무모한 짓은 관둬요."

콕.

엘레오노르가 오른 검지로 명치를 찔렀다.

···따끔했다.

"우리 아이가 다 자라기도 전에 먼저 죽어버리는 것도 무책임하게 행방불명 되는 거나 마찬가지인 거 알고 있죠?"

"윽."

"또 당신 목숨 걸고 이상한 짓 하다가 멋대로 죽어버리면 기일 미사 때도 안 찾아갈 줄 알아요."

솔직히, 우리 둘 다 뭐라 대꾸할 말이 없었다.

나야 내 목숨도 아니니까 막 굴린 거였지만 그렇다고 이 양반도 제 목숨 아껴가며 혁명하지는 않았으니까.

양심이 있다면 그걸 정면으로 지적당하고서 뭐라 변명할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명심하겠습니다."

이번만큼은 둘이서 입을 모아 답했다.

"이젠 제 혼자만의 목숨이 아니니까요."

"옳지, 착하다."

엘레오노르가 배시시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오른손으로는 우리를.

왼손으로는 꼬마 왕자님을.

가볍게, 그러나 강하게 연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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