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2화 (102/154)

발명품

"우리 사업 이야기 좀 다시 해봅시다."

"안 그래도 슬슬 그렇게 말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마담 롤랑이 요람 속에서 옹알거리고 있는 꼬마 왕자님을 내려다보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책임질 식구가 늘어나니 또 생각이 달라지지요? 형제자매들이나 아내야 성인이니까 여차하면 혼자서도 살아갈 수 있지만 아이들은 다르니까. 조금이라도 더 나은 환경에서 길러주고 싶고, 또 거친 세상으로부터 보호할 힘을 원하게 되죠."

"···윽."

"네에, 충분히 이해하고 말고요. 저도 경험자인걸요. 부모 마음이란 어딜 가나 어쩜 이리 똑같은지."

키득키득.

"역시 당신도 사람이었나 보네요, 의원님."

···할 말이 없네.

저번에 루이즈 부인이 찾아왔을 때는 마냥 귀엽다면서 꺅꺅거렸고 나폴레옹은 어쩔 줄을 몰라 하더니 역시 애 엄마는 다른가.

뭐어, 프랑스인들의 기준에서 보면 나와 마담은 이미 애인 관계인 모양이니 상대적으로 마음을 터놓고 있는 것도 있겠지만.

"항복입니다."

슬쩍 양손을 귀 위로 들어 올려 보였다.

"당신이 생각하는 그대로의 이유가 맞습니다. 다만 일방적으로 양보를 요구할 생각은 없습니다."

"어머나, 그렇다면?"

"발명품입니다."

뭐, 사실 발명이라기보다는 그냥 코리안 트레디셔널이지만.

"발명품이라고요?"

생각지도 못했다는 듯이 마담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 발명품입니다. 저번에 우리 프랑스에는 가사노동의 편의성을 도모하는 발명가들이 없다고 했었지요?"

"그렇다면 벌써 한가지 발명품을 내놓았다는 말씀이신가요?"

"뭐어, 그렇게 거창한 건 아닙니다만."

슬쩍 요람 옆에 놓여있던 이불로 딱 갓난아이 크기의 나무 베개를 내 몸과 함께 묶었다.

그리고 이 솜이불에다가 바느질해서 연결한 끈으로 묶어주면-짠.

"일명, 포대기입니다."

두유 노우 김치? DTS?

[적당히 하게.]

뭐 어때, 입 밖으로 내뱉은 것도 아니고 내 머릿속으로 중얼거리는 건데.

[그러니까 내가 듣고 있잖은가!]

에헤이, 덕분에 적적하진 않아서 좋으면서 뭘.

"보시다시피 대단한 발명은 아니지만, 아직 걷지 못하는 갓난아이를 달래면서 동시에 다른 일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요. 무엇보다 아이에게 언제나 부모님과 연결되어있다는 안정감을 줄 수 있고요. 여기에 푹신하고 따뜻하기까지 하니 곧잘 말썽을 피우는 아이들이 쉽게 잠들어있다는 애 엄마, 아빠들만 이해할 장점까지-."

"풋."

마담 롤랑이 필사적으로 입을 가렸다.

이미 얼굴까지 시뻘겋게 물든 게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고 있다는 게 훤히 보이는 듯했다.

"푸후훗, 푸하핫···."

"···저기, 마담?"

"푸하핫! 하하핫! 깔깔깔-!"

그리고 폭소.

마담은 지금껏 본 적 없는 모습으로 끅끅대며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어떻게든 일어나려고 양손으로 요람을 붙들면서도 도저히 일어나질 못하고 후들거리는 두 다리가 지금 그녀가 얼마나 즐겁게 웃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상처받는구만.

으에엥-!

"어머나, 내 정신 좀 봐."

낯선 웃음소리에 놀란 꼬마 왕자님이 울음을 터트리기 시작하자 그제야 마담은 다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아이를 끌어안았다.

"우쭈쭈. 착하지? 미안해요. 내가 정말로 생각지도 못한 공격을 당해서 그래. 나중에 내 말 알아듣게 되면 꼭꼭 가장 먼저 이 이야기를 들려줄게."

까르륵.

"어머나, 어머나. 착하기도 하지."

빙그레 미소 짓는 꼬마 왕자님.

···아니 그런데 저놈은 저번에 집주인 놈이 견디다 못해서 나한테 바통 터치했을 때도 계속 울기만 하더니 뭐 이렇게 쉽게 웃냐.

이것이 경험자의 힘?

아니면 그냥 남녀 차별인가?

맞다, 저번에 엘레오노르 부인이 달랠 때도 잘만 방긋거렸지?

우우. 애엄마들만 좋아하는 아들놈은 반성하라.

[자네 아들도 아니잖은가.]

그래?

그런데 왜 쟤가 우는 것까지 내가 달래줘야 함?

[·········.]

"아무튼, 포대기라."

그제야 마담은 까르륵 웃는 배은망덕한 아들놈을 도로 요람에 내려놓았다.

내려놓고서, 다시 우리와 눈을 마주치더니.

"풋."

도로 홍당무처럼 물들어서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기 시작했다.

아니 뭔데요 쫌.

"···그렇게 포대기가 별로였습니까?"

"설마요. 이 자리에서 보고 듣기만 해도 얼마나 유용하고 편리할지 한눈에 알겠는걸요. 만드는데 대단한 재료가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구조가 복잡한 것도 아니니 금방 유사품들이 유행하겠네요."

"그러면 도대체 왜?"

이미 K-포대기 예찬자시면서 도대체 뭐가 그렇게 문제인데?

척.

그러자 마담이 내게 삿대질하더니.

"당신이요."

"···제가 뭔가 했습니까?"

"도저히 이 포대기라는 게 당신 머릿속에서 나왔다는 게 믿어지지를 않는다고요. 도대체가 어울리지를 않잖아요. 당장 거리로 나가서 이 막시밀리앙 드 로베스피에르가 포대기의 발명가라고 말해보세요. 다들 뭐라고 할 것 같아요?"

어···.

[뭐가 문제지?]

그러게.

"진짜 나만 이상하게 만들 거에요?"

콕콕.

마담이 황당하다는 듯이 명치를 검지로 찔렀다.

아니, 이해를 시켜주셔야지 왜 저보고 그러세요.

"그래요, 아예 그 포대기까지 두르고서 나가보시죠. 붉은 리슐리외니 리바이어던이니 뭐니 하고 거창하게 불리는 사람이 제가 보는 앞에서 이불을 둘러 가면서 필사적으로 포대기의 유용성을 설파하는 꼬락서니가 얼마나 웃길지 정말로 상상이 안 가요?"

"···솔직히, 네."

"이이익!"

이번에는 답답하다는 듯이 홍당무 같은 얼굴로 쾅쾅 가슴을 두드리는 마담.

도대체 뭐가 문제였지?

완벽한 제품 시연이었을 텐데···.

[자네가 이해하게. 마담이 유머 감각이 좀 남다르실 수도 있지.]

아, 방귀만 들어도 빵 터지는 갓난아이들처럼?

마담 롤랑이 생각보다 순수한 사람이었네.

다시 봤다.

"···아아, 정말이지."

그런데 왜 이 사람은 지가 끝까지 답답하다는 반응이지?

오히려 우리가 답답해해야 정상 아닌가?

도저히 모르겠다.

나중에 나폴레옹한테 물어봐야지.

"아무튼, 알겠으니까 그 포대기 좀 풀어요."

척.

어디선가 깃털 부채를 꺼내든 마담이 제 입가를 가렸다.

그래, 이제 좀 진정되신 모양이네.

선선히 요구사항에 따르니 그제야 마담은 한결 편하게 대화를 주도해 나갔다.

"그럼 이걸로 끝난거죠?"

"아뇨, 몇 가지 더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간단한 발상의 전환으로 등장한 게 한둘이 아니니까.

···그런데 저분은 왜 또 새파랗게 질리셨지.

"대신 여기서부터는 아직 실물까지 완성 시킨 건 아닙니다만."

"상관없어요. 기술공이라면 얼마든지 있으니까."

어, 또 평소로 돌아왔네.

"우선 첫째로, 청바지입니다."

후대에는 패션의 상징이 되어버리지만 아직은 실용성이 더욱 부각될 시대지.

"만드는 법은 간단합니다. 천막 같은 걸 만드는데 사용하는 저급하지만 질긴 천들을 사용해 바지를 만든 다음 징을 박아서 고정하는 거지요."

"듣기에는 굉장히 저가형으로 들리는데요."

"네. 이건 육체 작업에 종사하는 남편을 둔 부인들을 겨냥한 구상입니다."

세상에 내조만큼 지갑을 쉽게 열게 만드는 핑계가 또 어디 있을까?

아직 집안의 경제권을 가장이 독점하는 게 당연시되는 시대이니 특히 효과적일 거다.

아무 때나 입을 수 있고, 또 아무렇게나 다뤄도 잘 망가지지도 않으며, 쉽게 때를 타지도 않는다는 게 원래 처음 청바지의 세일즈 포인트였으니까.

"일단 먼저 광부들에게 보급해보는 게 선전효과에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나쁘지 않네요. 그리고?"

촥.

마담 롤랑이 더욱 부채를 펼쳤다.

슬슬 눈에 익어서 그런가.

변함없는 영업용 미소에도 불구하고 눈썹이나 미세한 동공의 움직임만 봐도 잔뜩 신이 났다는 게 훤히 보이는 듯했다.

"병조림입니다."

"···음, 듣기에는 썩 저희 잡지에 어울릴 것 같지는 않은데요."

"설마요. 장기 보관에 편리한 저장용기가 가사 생활에 얼마나 유용할 텐데."

아직 비닐이나 플라스틱이 없는 시대라서 한계는 있겠지만.

"이건 가정주부들만이 아니라 군납품으로도 유용하게 쓰일 수 있을 겁니다."

"야전에서 쓰기에 유리는 너무 깨지기 쉽지 않을까요?"

"그때를 대비해 아예 금속으로 두른 통조림도 있습니다. 뭐, 이 단단한 금속뚜껑을 자를 따개부터 개발해야겠지만요."

둘 다 원 역사에서도 대충 이쯤 개발되었다고 알고 있으니까 별문제는 없겠지.

그래서 이 구상을 어떻게 완성할지야 내가 아니라 기술자들이 고민해야 할 일이고.

일해라 공돌아!

"아무튼, 좋아요."

휙.

돌연 마담이 부채 사이에서 곱게 접은 선전지를 꺼내어 건넸다.

「보다 붉게(plus rouge)」라.

기합찬 이름이군.

그런데 이 상단의 모자는 네모나게 각진 거 보면 볼록 튀어나온 프리기아 모자가 아닌데.

뭐지?

[그건 추기경들이 쓰는 비레타(Biretum)라는 모자일세. 아마 리슐리외를 연상 시키려 한 거 같군.]

아, 추기경들이 쓰는 모자였어?

그런데 왜 이게 리슐리외를 연상 시킨다는 거야?

[리슐리외의 별명이 붉은 공작이었거든. 추기경으로서 언제나 붉은 수단을 입고 다녔으니 붙은 별명이었지. 그런데 지금 사람들이 우리에게 붙인 별명이 뭐였나?]

붉은 리슐리외-아하.

그래서 보다 붉게구나.

붉은 공작 리슐리외보다도 더욱 붉다=고로 로베스피에르라는 프랑스인만 알아볼 등식이었네.

그건 이제 알겠는데.

"···저기 이건?"

"우리 잡지사 사무실 주소에요."

척.

마담이 깃털 부채를 접으며 대꾸했다.

"저번에 사무소를 차릴 거라고 말했잖아요? 이제 사업장도 준비되었고 사람들도 구했으니까 슬슬 본격적인 사업에 착수해야지요."

빨라!

무슨 이야기가 나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창업이야?

사실 전생부터 빨리빨리 정신이 깃든 한국인이셨나?

이건 뭐 신속하다는 수준이 아닌데.

"앞으로 생각나는 구상이나 직접 만들어낸 발명품이 있다면 언제든지 그 주소로 연락하세요."

마담이 키득거렸다.

"아니면 직접 찾아오셔도 상관없고요. 애인 관계에 매번 약속을 잡고 만나는 것도 번거롭고."

"어···."

"우선 오늘 말씀하신 발명품들 전부 계약할게요."

그러면서 슬쩍 수표를 꺼내어서는-.

아니아니 잠깐만.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왜요? 아, 신용 때문에 그래요? 걱정하지 마요. 이래 봬도 영란은행에서 발급받은 수표니까."

"···왜 프랑스 은행이 아니라?"

"재산관리는 애국심으로 하는 게 아니니까요."

우우, 매국반동 부르주아지는 물러가라.

나 같아도 프랑스 은행이랑 영란은행 중에서 고르라고 하면 당연히 후자겠지만!

"솔직히 이런 핑계 없었어도 어차피 득남 축하선물로 주려던 거니까 그냥 넣어둬요."

거참 단호하시네.

"그럼 감사히 받겠습니다."

사실은 애인 관계 선언이 나왔던 데에 반박할 생각이었지만.

이래서야 내 쪽에서 반박하기도 어렵고 반박했다가는 제비 소리 들을 판이네.

쓰읍, 어째 갈수록 동물의 왕국에 물들어가는 기분인데···.

[그러게 내 진작에 포기하는 게 편하다고 말했잖은가.]

입 닥쳐, 막시밀리앙.

"그보다도 마담은?"

의아하다는 듯한 반응.

아니 당신이 마담이잖아-라고 딴지를 걸고 싶었지만.

"코르넬리라면 한창 산후조리 중입니다."

그래서 집안일이나 애 보기 같은 것도 기본적으로 나와 집주인이 하되 정 힘들 때는 친가-외가 식구들이 총출동해서 도와주고 있다.

내게도 익숙한 뒤플레 아저씨라던가, 내겐 낯선 집주인 놈의 남동생, 여동생이라던가.

덕분에 엘레오노르 부인께서는 요즈음 푹 숙면 중.

오히려 괜찮다고 자꾸 일어나려는 걸 도로 내가 침대에 눕히느라고 고생했었지.

"슬슬 접객에는 아무런 문제 없기야 합니다만. 혹시 안내해드릴까요? 물론 그 전에 아내와 상의부터 해봐야겠지만요."

"···아뇨, 됐어요. 수표는 여기 두고 갈게요."

아니 그럴 거면 왜 물어보신 거래요.

마담은 그 길로 아무런 말 없이 로베스피에르 저를 떠났다.

조금 전까지 즐거워하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

베르사유시.

"만세! 정의가 승리했다!"

"주여, 선하신 소년 왕을 축복하소서!"

"""국왕 폐하 만세! 성심당 만세! 승리 만만세!"""

"우와···."

이거 위험한데.

이날 베르사유 궁전 앞에 모여서 승리를 자축하는 성심당원들을 아파트에서 내려다보며 마리 테레즈는 내심 식은땀을 흘렸다.

도대체가 저들은 저기 진을 친 국가헌병은 보이지도 않는다는 말인가?

괜히 섣불리 자극해서 좋을 게 뭐가 있다고.

마리 테레즈는 슬쩍 테라스에 나가 군중들과 마주한 남동생의 뒷모습을 흘겨보았다.

"···어휴."

뒷모습만 봐도 알겠다.

보나 마나 아주 세상을 다 가진 듯 우쭐대고 있겠지.

베르사유 궁전 하나만 남기고 다른 모든 궁전은 파리의 혁명정부에 압류되었다는 사실은 까마득히 잊어버린 채 말이다.

뭐어, 물론 절대왕정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이 베르사유 궁전만큼은 어떻게든 지켜냈다는 것 자체가 저들 성심당에게는 자축할만한 위업인 건 사실인데.

'그건 작은 아빠가 잘나신 거지 네가 잘난 게 아니잖아.'

남동생이란 어쩜 이렇게 한결같이 멍청하고 미련한 존재들일까.

겁에 질려서는 국왕 따윈 하고 싶지 않다고 이불 속에 파묻혀서 덜덜 떨 때는 언제고 가는 곳마다 선하신 소년왕이라고 떠들어대는 인파들이 모이기 시작하니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우쭐대고 있었다.

뭐 공적인 자리에서는 다행히 그래도 아직 사리고 있지만 사적인 자리-가령 마리 테레즈와 단둘이 있을 때라던가-에선 툭하면 언젠가 제가 자라나면 적법한 왕좌를 되찾으러 갈 거라고 호언장담하는데.

'저 겁쟁이가 퍽이나.'

물론 아직 사춘기도 안 온 철없는 꼬맹이라서 그런 거겠지만, 마리 테레즈로선 하루하루 살 떨려서 견딜 수가 없었다.

어머님은 뻔히 편지에 뭐라고 썼는지 감시받고 있다는 거 아시면서도 아직도 외가랑 편지를 주고받고 계시지.

남동생이라는 놈은 주제도 모르고 우쭐대고 있고.

그나마 아버님께서는, 한동안 침울해져서 방에서도 나오지 않으시다가 최근에야 평소에 좋아하시던 시계 제작이나 가구 제작에 전념하시며 소소하게 시간을 보내고 계시지만···.

'···불안해.'

또 모르는 곳에서 어떤 사고를 치지 않았을 거라고 대체 누가 장담할 수 있다는 말인가.

철없던 어린 시절에야 멋모르고 마냥 아버지께서 중상모략을 당한 줄 알았지만, 자랄 만큼 자란(?) 지금은 자업자득인 면이 없지 않았다는걸 마리 테레즈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결국 그들 일가의 안위와 쾌적한 생활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또 지켜낼 수 있는 건 오직 마리 테레즈 한사람 뿐이었으니.

"또 집시 아저씨라도 찾아가야 하나···."

불현듯 머릿속에서 로베스피에르가 떠올랐으나, 이내 마리 테레즈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오히려 당분간은 더욱 자숙해야 할 때라는 동물적인 육감의 발로였다.

아무렴 무작정 성실하다고 모든 게 좋게 풀리는 게 아니라는 건 아버지께서 몸소 역전인생으로 증명하시지 않았던가.

지금은 차라리 전혀 엉뚱하고 소소한 일들을 하거나 아예 세간의 관심에서 사라져버리는 게 맞을 터.

"어디 보자-."

뭐가 있을까.

아주 생각 없어 보이진 않으면서 그렇다고 파리에서 크게 위협적으로 느끼지 않을만한 일거리가.

침대 위에서 뒹굴거리며 한참을 얼마 전 약속대로 배달받은「보다 붉게」의 초판본을 뒤적거리던 마리 테레즈는.

"니콜라 르블랑?"

불현듯, 잡지 구석에 자리한 광고에 주목하게 되었다.

원래 탄산 나트륨을 생산하던 소다 공장의 공장주이자 과학 아카데미에서 상까지 받은 대단한 과학자였다는데-이건 뭐라는 건지 잘 모르겠고.

본디 그의 후원자였던 오를레앙 공작이 처형되고 공장마저 몰수되면서 난감한 상황에 부닥쳤으니 제발 도와달라는 내용의 탄원서였다.

뭐, 앞장도 아니고 구석에나 간신히 광고가 났을 정도면 다들 별 관심 없거나 혁명정부가 무서워서 애써 모른 척하고 있는 모양이지만.

"가엾어라···."

마리 테레즈에겐 이러한 르블랑의 불행이 불과 얼마전까지 궁전이란 궁전은 모조리 압류당하여 노숙자로 전락할 뻔했던 그들 일가와 겹쳐보았다.

아무렴 이 사람이 무슨 죄를 범한 것도 아니고, 고작해야 후원자가 오를레앙 공작이었던 죄 밖에 없잖은가.

"좋아, 한번 아저씨한테 부탁해봐야지."

조금 전 지금은 자숙이 어쩌고저쩌고했던 고찰은 온데간데없었다.

마리 테레즈 또한 루이 오귀스트의 장녀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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