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투재판
와아아-!
"···미리 말씀드리겠습니다만."
월드컵을 방불케 하는 열광적인 함성을 애써 모른체한 채 롤랑 장관에게 고개를 조아렸다.
"이번 소송을 부추긴 건 제가 맞지만, 이번 공개토론회에서 장관님을 상대로 지목한 건 제 의지가 아니었습니다."
"그야 그렇겠지."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내가 하겠다고 했으니까."
"그렇-뭐요?"
"내가 하겠다고 했네. 일전에 말했잖은가. 결투는 다음 기회로 미루겠다고."
잠깐, 아니 잠깐만요.
이거 공개토론회지 결투 아니라고!
무기 반입 금지 맞지?
이 양반 아무리 봐도 총이건 단검이건 하나는 챙겨온 낌새인데!
"자네 설마 내가 그냥 해본 소리라고 생각하기라도 한 건가? 이거 막 의욕이 솟구치는데."
"···그러니까 진지하게 이길 각오로 오셨다는?"
"물론이지. 이 세상에 지려고 공개토론회에 나오는 사람이 어디 있다는 말인가."
우두둑.
롤랑 장관이 가볍게 손가락을 풀었다.
···음, 망했네.
이 사람 아무래도 지금 진심인 모양인디.
[풋, 이거 자네 오늘 총 맞을 각오해야겠구만 그래.]
이보셔요.
잊었나 본데 지금 이거 당신 몸이거든요?
[···어, 10할 잠깐만.]
이미 늦었어.
벌써 몇 년째 운명공동체였구먼 그걸 까먹냐?
절대로 나 혼자는 안 죽는다, 이 친구야.
"이미 아내도 참관하겠다고 말했네."
롤랑 장관이 슬쩍 관객석을 돌아보았다.
과연 그 말대로 상석에는 마담 롤랑이-아니 미치겠네.
무슨 관객석을 저렇게 눈에 잘 띄는 자리에, 그것도 좌우로 빈공간에 높이까지 달리해가며 만들어놨어?
이래서야 영락없이 재판관 내지는 심판관 구도다.
아주 그냥 삼각관계를 연출하려고 작정을 했구만.
물론 동물의 왕국 좋아하시는 우리 파리지앵들에게 흥행하려면 이 구도가 최고고, 또 실제로도 좌석들은 물론이고 입석들까지 깡그리 매진에 회장 바깥까지 꽉꽉 찬 게 기획 의도가 정확히 맞아떨어진 거 같기는 한데···.
"···저기."
"또 뭔가?"
"오늘 공개토론회 맞지요? 지적재산권 문제를 두고 토의하는."
"잘 알고 있으면서 왜 물어보는가?"
왜긴요.
"아갈머리를 확 뜯어버려요!"
"다시 봤습니다, 장관님! 그래, 역시 사나이 대장부라면 사랑하는 여인을 위하여 질 게 뻔한 싸움이라도 당당히 주먹을 내밀어야지요!"
"절대로 지지 마십시오, 위원장 동지! 저 사내 구실도 못하는 늙은이를 무덤으로 보내주세요!"
"에이, 재미없게 뭘 벌써 경비들이 보초를 서고 있냐? 오늘만큼은 눈치껏 알아서 빠져줬어야지!"
"유로파여, 보아라! 이것이 프랑스의 기사도 정신이다!"
아무리 봐도 다들 공개토론회가 아니라 아굴창과 강냉이가 날아다니는 검투사 투기장을 보러 온 것 같으니까 하는 말이지.
아닌 게 아니라 청중들의 환호부터가 딱 검투사 콜로세움 내지는 명예로운 기사들의 토너먼트 경기장이다.
저 중에서 도대체 과연 몇이나 지적재산권 논의라는 건설적인 주제와 천재 과학자의 비극적인 처지에 동정하여 구경하러 나온 걸까.
그리고 오늘 토론회 진짜로 무기 반입 금지된 거 맞지?
나는 살아서 나가고 싶어! 너와 함께!
"자네도 참 순진하군."
롤랑 장관이 황당하다는 듯이 날 흘겨보았다.
아니 또 뭐가 문제인데요.
"애초에 내가 나서지 않았으면 지금처럼 사람들이 모였을 것 같은가?"
"···모이기야 했겠지요?"
"물론 모이기야 했겠지. 하지만 자네가 생각하는 특허법 홍보나 지적재산권에 대한 인식개선이 이뤄질 만큼의 인기를 끌었을지는 나도 잘 모르겠군."
음, 이건 정곡이군.
솔직히 내 지지자들이나 좀 구경 나오고 말았을테니까.
그리고 역시나 이쪽의 노림수는 다들 대강 꿰뚫어 보고 있었나.
하기야 이번에는 정치에 어느 정도 소양이 있으면 누구나 알 수 있을 만큼 뻔한 직구이긴 했는데.
"고맙습-."
"고맙다는 인사는 필요 없네."
아니 그럼 도대체 어떤 장단에 맞추라고요.
"설마 이번 토론회가 자네 한 사람만의 정치적 자산이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 거 아니겠지?"
롤랑 장관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떠올렸다.
뭐, 확실히 지금 청중들의 반응으로 봐서는 이게 프랑스적인 정서로는 굉장히 바람직한 전개인가 본데···.
이상하잖아.
왜 남편이 사랑을 두고 불륜 상대랑 싸우는 건 바람직한데 또 남녀가 바람피우는 것도 당연한 거야.
둘 중 하나는 부당한 거로 받아들여져야 정상인 거 아니야?
무슨 치정살인 권장하는 겨?
[그래서 우리 프랑스에서 지금까지 결투가 그렇게 성행하는 거 아니겠나.]
진짜로 치정살인 권장이었어?!
이 동물의 왕국은 무슨 죽으면 그만이야 정신이 남녀관계에까지 뿌리박힌 거야!
"여하간, 내가 자네와 아내에게 베풀 호의는 딱 여기까지일세."
이로써 토론회의 성패와는 무관하게 홍보 하나는 확실하게 될 테니.
롤랑 장관이 제자리에서 뒤돌아섰다.
"어디 재주껏 승리를 쟁취해가시게. 나야 이기건 지건 비웃음을 사진 않겠지만, 자넨 이겨야 본전 아니겠나."
그걸로 사담은 끝.
자리로 돌아간 롤랑 장관은 팔짱을 낀 채 더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나 또한 자리로 돌아가 팔짱을 끼었고.
"···괘, 괜찮을까요?"
내 옆에 자리한 르블랑 씨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잔뜩 긴장한 모습.
하기야 이 사람은 이번 일이 이렇게까지 커질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을 테니 당연한 일이지만.
"르블랑 씨는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애당초 롤랑 장관은 실무자로서 뛰어난 거지 입담이 대단한 사람은 아니니까.
당장 청중들의 여론도 그렇고, 본인도 제 입으로 로베스피에르는 이겨야 본전이라고 인정했듯이 공개토론회 자체는 아무런 걱정 없다.
오히려 문제가 있다면.
"제가 살아서 이 자리를 나갈 수 있느냐가 문제지요."
"아···."
"뭐, 자리에서 응원해주십시오. 혹시 장관이 권총 따위를 숨기고 온 걸 발견하신다면 미리미리 말해주시고요."
"히, 힘내십시오! 우리 살아서 다시 만납시다!"
···아니 당신까지 진짜 이럴 거야.
어떻게 된 게 하나같이 토론회보단 토너먼트 구경하러 온 사람들 뿐일세그려.
땅·땅·땅.
"그럼 개회를 선언하겠습니다."
아무튼 처음 보는 진행요원(?)이 상석에 앉아 개회를 선언했으니 시작하면 되는 거겠지.
괜히 신경 쓰지 말자.
다행히도 피와 살을 요구하며 요란스럽기 그지없던 관중석은 개회와 함께 숨 막히는 정적으로 돌아섰다.
이 숨 막히는 정적이 공개토론회에 참가한 청중으로서의 예의 내지는 오늘 주제에 관한 관심과 화자들에 대한 존중에 기초한 것이었다면 더 바랄 것이 없었겠지만-.
"길게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유감스럽게도 그럴 리 없다는 걸 너도 알고 나도 안다.
그냥 우리가 말다툼하는 걸 한마디도 놓치기 싫어서 그런 거겠지.
"결국 이 르블랑 씨에게 갔어야 했을 상금과 특허비가 아까웠던 거잖습니까?"
그럼 철저히 그 기대에 부응해주는 수밖에.
최대한 거칠게, 그리고 저급하게 접근하는 것이야말로 오늘의 필승전략이다.
"그때 당시 파리를 이끌어오셨던 분이 지금 그게 할 소리입니까?"
"네. 자아비판입니다. 그때 파리의 재정 상태야 제가 가장 잘 알고 말고요. 하지만 당신도 그때부터 일하던 실무자잖습니까. 책임자로서 실무자를 책망하는 게 그렇게 잘못되었습니까?"
"좋습니다. 그럼 저도 책임을 부정하지는 않겠습니다."
롤랑 장관이 덧붙였다.
"본디 르블랑 씨에게 가야 했을 상금이 도중에 취소되었던 건 혁명정부의 부실한 재정 상황 탓이 맞습니다. 부당한 월권이었고, 정부의 신뢰 회복을 위하여 마땅히 시정되어야 했을 잘못입니다."
"순순히 책임을 인정하시니 참 보기 좋군요. 평소에도 이랬으면 더 좋았을 텐데."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혁명정부에서 르블랑 씨의 지적재산권을 침해했다는 주장에는 동의해드리기 어렵군요."
자, 드디어 오늘의 본론이 나왔군.
살짝 입가에 침을 바르고 있자니 롤랑 장관의 입에서 폭언이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애초에 제 남편의 권리조차 존중해주지 않으신 분이 무슨 자격으로 재산권 침해를 들먹이고 계신 겁니까."
···아니 이 사람이 진짜.
"나, 나왔다!"
"속이 다 시원합니다, 장관님!"
"당신 진짜 최고야!"
"와, 저 혁명하는 기계도 저런 표정을 할 수 있었어?"
"진짜로 인정한다. 오늘 토론회가 어떻게 끝나건 당신이 진정한 승리자야!"
와아아-!
그리고 사방에서 터져 나오는 함성.
···쓰읍, 당연히 예상했어야 했는데 선빵을 당하다니.
[자네 너무 긴장이 풀려있었던 거 아닌가?]
시꺼.
아니 그리고 이놈은 자기 일이면서 뭘 남의 일처럼 구경 중이야.
땅·땅·땅.
"정숙."
아무튼 함성도 조금은 가라앉았고, 슬슬 내 발언권이 돌아왔으니.
"친애하는 장관님."
나도 맞받아쳐 줘야지.
단전에 힘 빡 주고.
난 이기려면 뭐든지 할 수 있는 놈이다.
나는 사람의 감정이란 게 없는 놈이다···!
"지금 장관님께서도 프랑스인이시면서 제게서 사랑할 권리를 빼앗아 가시려는 겁니까?"
정적.
다음 순간, 객석이 완전히 초토화된 건 물론이었다.
"미쳤다, 미쳤어!"
"야야, 내가 지금 제대로 들은 거 맞지? 지금 저 혁명하는 기계 입에서 무슨 소리 나왔는지 들었냐?!"
"위원장 동지 당신은 신이야!"
"크으, 멋져부러! 막시밀리앙, 당신 진짜 최고로 멋진 사나이야!"
"그래, 절대로 기죽지 마라! 지가 도대체 언제부터 우리 프랑스에서 사랑하는 게 죄였다고!"
땅·땅·땅.
"정숙!!!"
이번만큼은 이름도 모르는 진행요원이 아무리 애를 써도 쉽게 열광이 가라앉지 않았다.
그야 누구보다 프랑스인다운 발언이 누구보다 프랑스인답지 않던 인물의 입에서 튀어나왔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동안 재미없는 붉은 리슐리외만 보아온 파리지앵들에게 있어서 이는 천지개벽의 충격이오, 그야말로 생각지도 못하게 뒤통수를 얻어맞은 격일 테니까.
[···그보다도 자네는 지금 괜찮나?]
당연히 쪽팔리지.
하지만 이게 오늘의 필승전략이고 저 관객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수준을 넘어서 내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길이잖아?
그럼 이길 수 있으면 그만이지 뭘!
따지고 보면 매번 이기려고 이보다 더한 짓거리도 태연하게 저질러왔는데!!!
[삼가 고 유교 드래곤의 명복을-.]
입 닥쳐, 막시밀리앙.
"실체가 없다고 하여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닙니다."
배에 있는 힘껏 힘을 주고 언성을 드높였다.
"가령 사랑이 그렇지요. 그것은 오롯이 우리의 정신활동에서만 존재하는 관념이지만, 우리는 그것이 실재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 소중하다는 것도, 다른 누군가에 의하여 도둑질당하거나 방해받고 싶지 않다는 것도."
"글쎄요, 그 사랑을 도둑질한 당사자께서 하실 말씀은 아닌 것 같은데요."
"도둑이라니요, 무례하기도 하셔라. 경쟁자라고 불러주시겠습니까?"
또다시 폭발적인 환호와 휘파람 소리.
"사랑이란 하나의 재산입니다."
슬슬 주도권이 완전히 넘어왔음을 자신하며 한결 여유로운 목소리로 연설을 이어 나갔다.
"우리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하고 달콤하게 바꿔주는 무엇보다 귀중한 자산이지요. 비단 사랑만이 아니라 우리의 모든 정신활동이 그렇습니다. 이들은 오직 그 자신만의 전유물이고, 이를 바깥으로 표출하거나 반대로 표출하지 않는다고 그 가치가 덜해지는 건 아닙니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르블랑 씨의 비극을 바로잡겠다는 시도가 논쟁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슬며시 객석을 돌아보았다.
"사랑이란 꼭 남녀 간의 관계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도, 조물주가 피조물을 사랑하는 마음도 똑같이 사랑이라고들 하지요."
고로.
"저는 우리 모두의 사랑이 저마다 존중받고 있듯이, 르블랑 씨의 사랑 또한 존중받을 권리를 이 자리에서 주장하겠습니다. 남녀 간의 사랑이 존귀하듯이, 피조물을 향한 창조자의 사랑 또한 존귀할 권리를 주장하겠습니다. 우리의 사랑이 상호존중으로부터 비롯되듯이, 누군가의 피조물을 다루게 되었을 적에는 먼저 창조자에게 경외를 표할 것을 요청하겠습니다."
그래, 이제야 좀 고개를 주억거리는 사람들이 나오는군.
역시 프랑스에선 괜히 공개토론회에서 법적인 근거가 어쩌고저쩌고하는 것보단 사랑 타령하는 게 직방일 거라고 생각했다.
애초에 다들 이러는 거 보려고 몰려온 사람들이기도 하고.
"혁명 이래로 우리 프랑스의 국법은 외부적인 검열, 박해, 약탈로부터 정신활동을 보호받을 권리를 보장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제 조금 더 어려운 이야기를 꺼내도 되겠지.
"고로, 누구도 우리의 정신활동을 방해할 순 없습니다! 누구도 자연스레 우러나온 사랑을 방해할 순 없듯이! 우리의 머릿속에서 만들어지고, 태어난 모든 정신활동은 신성불가침한 오롯이 그 개인만의 전유물로서 존중받을 수 있어야만 합니다!"
"""옳소!"""
"그리고 이는 절대로 시시한 재산권 문제만이 아닙니다! 형체 없는 관념 또한 법으로서 재단하거나 보호할 수 있는가? 우리의 정신활동이 빚어낸 결과 앞에서도 책임을 져야만 하는가?"
쿵.
가볍게 발을 굴렀다.
"오늘 제 대답은 그렇다, 입니다! 저는 이제 사랑이 실재함을 믿습니다. 그 사랑 앞에서 오롯이 책임을 져야 함을 믿습니다! 저의 사랑이 특별하듯이, 다른 모두의 사랑 또한 특별함을 믿습니다!"
그다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현장은 그야말로 광란의 도가니로 뒤덮였고, 열광하다 못해 폭발해버린 청중들 앞에서 무조건 항복을 선언한 진행요원들은 공개토론회를 취소하고 무조건 해산을 명령했다.
물론 이 공개토론회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로베스피에르의 완승.
당장 저 관객들을 여기까지 열광시킨 것도 결국 나였고, 롤랑 장관은 처음에야 몇 마디씩 반박했지만 결국 나중에는 말재주 부족이라는 한계에 부딪혀서 한마디도 못 하고 있었으니 당연한 결과이긴 했는데-.
쿡.
"이봐요."
···마담은 왜 또 이렇게 화가 나셨지.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영업용 미소인데도 그 기저에 살기가 서려 있다는 게 훤히 보일 지경이다.
"저한테 뭔가 할 말 없나요?"
"···죄송합니다?"
"좋아요, 잘못한 건 알고 있으니 일단 살려는 드리지요."
그렇다면 모른 척했으면 죽일 작정이었단 말인가.
무시무시하구만.
"그래서, 뭘 잘못했는지도 알겠나요?"
날 무릎 꿇린 마담이 팔짱을 끼고 이쪽을 내려다보기 시작했다.
흠, 잘못이라면 역시 그거겠지?
"창피를 준 거 아닙니까?"
"창피라고요?"
마담이 기가 찬다는 듯이 코웃음을 쳤다.
"제가 두 남자의 정열적인 고백을 받고서 부끄러워할 만큼 그릇이 작은 여자로 보였나요? 무슨 태양왕도 아니고 세레나데까지 정치적으로 이용한 건 좀 깼지만."
···어, 그게 그릇 문제야?
[적어도 우리 프랑스에서는 그렇지.]
오, 주여.
솔직히 말하면서도 낯 뜨거워서 아무튼 이기기 위한 필승전략이라고 몇 번이고 자기합리화했던 게 여기선 그냥 정열적인 고백일 뿐이었다는 말인가.
아니 그런데 그보다도.
"제가 마담에게 창피를 준 게 아니라면 도저히 짐작 가는 게 없습니다만."
"···하아, 진짜 남자가 숫기가 없어도 정도가 있지."
질렸다는 듯한 반응이었다.
툭.
마담은 한심하다는 듯이 부채로 가볍게 내 이마를 치더니.
"당신이 제게 책임을 진 적은 없잖아요."
그야 책임질 일을 한 적은 없으니까.
아마 앞으로도 없을거고.
"아무리 지고지순해도 그렇지 어떻게 제게 세레나데를 하는 와중에 다른 여자 이야기를 할 수가 있죠?"
질렸다는 듯한 반응.
여전히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 수 없어서 고개를 갸웃거리니 아찔하다는 듯이 마담이 눈을 질끈 감았다.
아니 도대체 뭔데요.
"뭐, 그래도 나쁘지 않은 세레나데였어요."
착.
마담이 깃털 부채를 접으며 덧붙였다.
"하지만 다음번에는 용서 안 해줄 거예요."
무시무시한 경고였다.
그 한마디를 끝으로 마담은 어딘가 개운한 모습의 장관과 함께 우아하게 자택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이튿날, 르블랑 씨는 모 잡지와의 인터뷰 와중 「최고의 변호사를 소개해준 공주마마께 감사한다」라는 발언으로 파리지앵들을 완전히 폭발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