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분위기
"호외요! 호외!"
"거 새치기 좀 하지 맙시다!"
"염병, 지금 새치기 안 하게 생겼어?! 다 비켜봐!"
"으하핫! 이게 진짜 혁명이지, 혁명! 연애혁명 만세!"
"연애혁명이라니! 입은 바라도 말은 삐뚤어지게 해야지! 불륜혁명 만세!"
"···참나."
아침부터 조간신문을 구하기 위하여 패싸움을 벌이는 군중을 멀리서 흘겨보며 구두 직인 요한은 나지막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알자스 지방에서 나고 자라 상경한 그와 그의 일가에겐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작태였다.
그래, 그 인간미 없는 혁명하는 기계가 늦바람이 났다니 그것참 놀라운 소식이라고 생각하긴 했다.
내심 실망하기도 했고, 반대로 친근감을 느끼기도 했으며, 무엇보다도 흥미진진하다고 생각했다.
아무렴 그 인간미 없던 독재관이 거창하게 결혼식을 올린 지 몇 달이나 되었다고 그 유명한-심지어 반대 당파에 위치한 마담 롤랑과 바람이 났다니 이만한 세기의 사건이 또 어디 있겠는가?
부인이 사람 만들어준 거라는 둥, 그간 만년 동정이라서 색을 몰랐을 뿐 누구보다 굶주려있었던 거라는 둥, 이게 다 마담 롤랑의 신기에 달한 색기 덕분이라는 둥.
그야말로 오만가지 낭설과 찌라시들이 한동안 요한 일가의 저녁 식탁을 풍족하게 만들어주기도 했었다.
하지만.
'공주는 좀 다르지 않나···?'
아니 혁명이라면서.
그렇게 이 악물고 구체제를 타파하겠다던 파리에서 이래도 되나?
물론 그의 알자스계 감성이 보편적인 파리지앵과는 다소 엇나가고 있긴 하지만 그가 생각하기에는 뭔가 정치적인 스캔들이 되어야 정상일 것 같은데-.
"당연히 공주님이 꼬신 거지! 그런 재미없는 노총각이 꼬시긴 무슨!"
"거 위원장 동지를 너무 무시하는 거 아닌가? 당연히 넘쳐흐르는 양기와 열정으로 저 향수 냄새나 풍기는 귀족 나리들을 수컷으로써 패배시킨 거지!"
"그래! 밑바닥에서 기어올라 절대권력을 취하고 명예로이 권력에서 내려온 뒤에는 패배자의 여식을 취한다! 이 얼마나 프랑스 기사다운 수컷 내 풀풀 풍기는 입신양명 서사란 말인가!"
"어허, 자네 천년 카페왕조의 우월한 생명력 전통을 잊은 게인가? 도중에 서자 한 명 없이 적장자만 줄창 생산하는 게 어디 보통 일인 줄 알아!"
···전혀 그런 낌새가 없었다.
물론 바스티유 습격 이래로 5년이라는 세월이 흐르고, 전쟁에서 승리하고 외교무대에서도 승리하고 성공적으로 총선을 치르는 등 여러모로 사람들이 여유로워져서도 있겠지만-.
"저도 인간적인 매력으로서는 위원장 동지일 거라고 생각하지만 공주님께서 꼬셨다에 걸겠어요!"
"? 아니 당신은 또 왜?"
"그게 이야기로서 훨씬 낭만적이니까!!!"
이게 과연 그것만으로 설명될 수 있는 현상인지 요한으로서는 솔직히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하다못해 남자들만, 여자들만 광분하고 있으면 모를까.
남녀노소 구분 없이 그저 길거리를 오가다가 우연히 말을 트게 되면 개나 소나 붉은 리슐리외의 치정극에 대해서만 떠들어대고 있으니 원.
'하여간 파리지앵들이란.'
결국 제아무리 고민하고 또 고민해도 알자스계인 요한은 절대로 이해할 수 없을 터.
그럼 돈도 안 되는 고민해봐야 무슨 소용인가.
대대손손 구두를 만져온 그들 구두장이 슈마허(Schumache) 가문에게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저런 시시한 치정극 따위가 아니라.
딸랑-.
"실례합니다. 여기 보다 붉게에서 나온 구두집 맞죠?"
"바로 찾아오셨습니다, 고갱님!"
저 위원장 동지 덕분에 요즈음 구두가 그야말로 불티나게 팔려나가고 있다는 사실이었는데.
물론 보다 붉게에 구두집의 광고가 올라갔기 때문이었지만, 요한은 비단 그것만이 아니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아무렴 유명한 잡지에 광고가 올라갔다고 무조건 물건이 불티나게 팔린다면 이 세상에 망하는 사업장이 어디 있겠는가?
이는 첫째로 저 위원장이 축제 분위기를 일으키면서 사람들을 들뜨게 만들어준 덕분이었고, 둘째로 사람들이 지갑을 열 수밖에 없는 분위기를 만들어준 덕분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하이힐(talons hauts) 찾으신 거 맞으시죠?"
"네. 가죽으로 된 빨간색-아, 여기 있네! 감사합니다!"
이 새빨간 하이힐.
색을 칠하는 정도를 빼면 그리 만들기 어렵지 않으면서도 매끄러진 유선형으로 우아하고, 미래적이며-무엇보다도 그간 흔히 팔리던 하이힐과는 달리 늘씬하고 얇아서 재료를 혁신적으로 아낄 수 있다는 경제성까지.
그간 상류층 여성만의 전유물이었던 하이힐을 대중화 시키면서도 투박하지 않고, 오히려 더욱 세련된 이 빨간 하이힐은 보다 붉게에 광고가 처음 올라간 이래로 단 하루도 가만히 진열되어 있었던 적이 없었다.
보다 붉게의 공모전에서 본 빨간 하이힐을 가장 처음 완성하여 납품하는 데 성공한 그날을 기점으로 요한의 삶이 완전히 바뀔 정도.
그저 만들어서 내놓으면 팔리고, 다시 또 새로 만들어서 진열시켜놓으면 웃돈을 주고서라도 사 가던 것이다.
'도대체 이 많은 끼를 내보이지 못해서 그동안 답답해서 어떻게 살았나 몰라.'
무슨 혁명가가 패션에까지 재주가 있는 거지 원.
그 덕을 본 슈마허 일가로선 흉볼 수도 없겠지만, 요한으로선 내심 깬다는 감상이 가시지를 않았다.
"그래서, 얼마죠?"
"원래 10프랑인데, 오늘 첫 손님이시니 7프랑만 받겠습니다!"
"네? 저기 앞집은 5프랑이라던데."
"그럴 리가요···?"
이 빨간 하이힐은 그들 구두집이 보다 붉게와 독점계약-독점광고한 상품이었는데?
"예, 여기요."
하지만 손님이 직접 신고 온 하이힐은 의심할 여지 없이 빨간 하이힐이 많았다.
단, 그들 구두공장에서 만들어낸 게 아니었을 뿐.
아무렴 그 빨간 하이힐에는 그들 슈마허 일가의 직인이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모든 면에서 똑같았으나 그것 한가지만 달랐다.
'이 승냥이 같은 놈들이···!'
뿌득.
벌써 가짜가 판을 치고 있다는 말인가.
하기야 돈이 되는 사업에 승냥이들이 달려드는 것도 당연한 거지만.
"손님."
요한이 애써 동요를 감추며 고객에게 고개를 조아렸다.
"혹시 괜찮으시다면 이 구두, 어디에서 사셨는지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어, 설마 신고하려고요?"
"네. 감히 제 사랑을 도둑질했으니 당연히 벌을 받아야지요."
아무렴 당장 며칠 전 로베스피에르의 주장이 그거였잖은가?
불륜이 존중받아야 하듯이 창조자가 피조물을 사랑하는 마음 또한 존중받아야 한다고.
"어머, 지금 위원장 동지 흉내 내는 거예요?"
이를 유쾌한 농담이라고 생각했는지 손님은 키득거리며 선선히 해당 업소의 주소를 가르쳐줬고-.
"뭐, 뭐야! 난 아무것도 안 했어!"
"아무것도 안 하긴! 너 어디 두고 보자! 공개토론회 끝난 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걸로 장난질을 쳐?!"
그렇게 이 가짜 명인의 운명 또한 정해졌다.
아무렴 그 로베스피에르가 공개소송을 벌여놨는데 한 번씩 감찰위원회에 신세를 진 판관들이 예전처럼 훈방해줄 리가 있는가?
예로부터 예시를 만드는 게 어려운 거지, 일단 유명한 선례가 만들어지면 개나 소나 그 선례를 쫓는 법이었는데.
'···진짜 우리도 기계를 들여와야 하나.'
하지만 지금처럼 빨간 하이힐이 유행하다 보면 가짜 명인 소동이 이걸로 끝날 리도 없는바.
뒤늦게 요한은 사업확장의 필요성을 실감했다.
어차피 가짜가 판을 칠 바에야 저런 자잘한 사업장들은 감히 따라갈 수 없는 공장식 기계생산법으로 밀어버리려는 구상을 품게 된 것이다.
물론 이 유행이 이대로 사그라든다면 그 탓에 역풍을 당할 수도 있겠지만, 요한에겐 이 열풍이 이대로 끝나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있었다.
'좋아, 사장님께 한번 건의해보자.'
아무렴 지금 파리를 돌아보라.
어디를 가건 온통 축제 분위기요, 사방에서 여성잡지나 패션잡지가 등장하면서 끊임없이 유행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
이에 따라 비단 그들만이 아니라 사업장들은 갈수록 지난날 아시냐 소동 당시 소개된 공장식 생산법을 통한 대량생산으로 수요를 맞추고 있었고, 그럴수록 가격경쟁이 심화하면서 본디 상류층의 전유물이었던 것들이 점차 하부로 내려오고 있었다.
그렇다면 언젠가는 저 상퀼로트들을 저격하는 최저가 상품들까지 유행할 날이 오지 않겠는가?
그야말로 이 유행을 따라오지 않는 놈이 머저리가 되는 세상 말이다.
"앙리 4세는 모든 프랑스인이 닭고기를 먹을 수 있게 해주었고, 위원장 동지께서는 모든 프랑스인이 바지를 입게 해주셨으니! 모두 청바지 사 가십시오! 질기고, 값싸고, 아무 때나 입을 수 있는 상퀼로트의 청바지요!"
"···아."
때마침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몇 년 전 그들 구두집에서 새로 구두공장을 세우면서 내쫓았던 수습도제 로랑이었다.
분명 얼마 전에 의류공장에 취직했다는 소문을 듣기야 했지만-.
'그래도 잘 지내고 있는 모양이니 다행이야.'
"청바지 사세요! 티셔츠도 팔아요!!!"
슬쩍 로랑의 행색만 확인한 요한은 조용히 뒤돌아섰다.
사장 부인과 정을 통한 덕분에 살아남았던 그가 이제 와 로랑에게 만나서 해줄 수 있는 말은 달리 아무것도 없었으니.
사방에서 석탄 매연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의 고향, 알자스에서 건너온 정겨운 석탄이었다.
***
"우선 이것 한 가지만 확인할게요."
배시시 웃는 엘레오노르 부인.
하지만 오늘만큼은 저 미소에서 살기가 엿보이고 있는 건 과연 기분 탓일까.
[입 닥쳐, 박민혁.]
넵.
이번만큼은 진짜로 제 죄를 제가 알겠습니다.
그러니까 오늘만큼은 집주인 놈이 아니라 사고를 친 내가 무릎 꿇고 있잖아.
얌전히 무릎 꿇고 대기하고 있으니 부인 왈.
"육체관계는 없었던 것 맞죠?"
"네."
"정말이지요?"
"누구 앞에서 거짓을 고하겠습니까."
차라리 정치판에선 거짓말을 했어도 부인에게 거짓말을 했던 적은 없다.
내가 되었건 집주인 놈이 되었건.
"그럼 됐어요."
그러자 의기양양하게 어깨를 펴는 엘레오노르 부인.
···아니, 진짜로 이걸로 됐다고?
"설마 용서해주시는 겁니까?"
"물론이죠. 그렇다면 저는 무려 마담 롤랑과 연하의 공주님을 동시에 따돌린 몸이라고요. 이게 프랑스 여인으로서 얼마나 대단한 훈장인지 뻔히 아실 거면서."
오, 주여.
[자네가 참게, 유교 드래곤.]
아니, 못 참겠어요!
이젠 진짜 못 참아!
무슨 불륜이랑 치정살인이 동시에 당연시되는 나라가 다 있냐!
심지어는 공개적으로 불륜에 사랑 고백까지 했지만, 육체관계는 없었으면 여성으로서 정실부인의 승리야?!
"···그리고 플라토닉적인 관계도 없는 것 맞죠?"
한껏 우쭐거리던 엘레오노르 부인이 불안하다는 듯이 덧붙였다.
흠, 그런데 플라토닉이면 정신적인 교감으로 나누는 사랑을 말하는 거지?
이건 앞에서 육체관계가 없었다고 좋아한 것과 모순된 거 같은데···?
[···지금 같은 상황에서 플라토닉이라는 단어가 나왔다면 그건 은어일세.]
은어?
[왜, 그 있잖은가. 고대 그리스인들이 좋아하던 미소년들과의-.]
"절대로 없습니다."
공자님 맙소사 제기랄.
"다행이네요."
휴우-.
재차 안도의 한숨.
콕.
한껏 득의양양해진 부인은 전에 본 적 없는 우쭐거리는 얼굴과 함께 명치를 검지로 가볍게 찔렀다.
"공주님을 꼬셨으면 저한테 가장 먼저 이야기하셨어야죠."
"그, 그동안 그런 관계라고는 전혀 생각을 안 해서-."
"당신도 프랑스 남자면서 그걸 몰랐다고요?"
그야 프랑스 남자가 아니니까!
제발 날 여기서 내보내 줘!
유교 드래곤 살려!
"앞으로 자랑거리가 생기면 부인에게 가장 먼저 알릴 것."
척.
엘레오노르 부인이 검지를 펼치며 단호하게 선언했다.
"그리고 몰랐다거나 의도하지 않았다거나 같은 뻔한 변명하지 않을 것. 아시겠죠?"
"···네."
정신이 아득해진다.
도저히 한국인 감성으로는 무슨 이야기인지 따라가지를 못하겠어.
아니 그보다도 잠깐.
[또 뭔가?]
지금 맥락상 내가 공주님 꼬신 게 자랑거리라고 하신 거야?
그것도 부인께서?
[·········.]
어허헝!
나 진짜 이 나라에서 못 살겠어요!
오, 주여! 주여! 주여!!!
응애애-!
"어머나, 괜히 큰소리 냈나 봐."
허둥지둥 안방으로 달려가시는 부인.
그럼 도우러 가야 하지 않을까, 라는 게 보편적 한국인 감성이겠지만 저번에 그랬더니 적당히 하라고 오히려 부인께 꾸중을 들었다.
단순히 가정적인 걸 넘어서 여성적이라는 소리가 나오면 흉보일 거라나, 뭐라나.
그때는 그냥 부인도 시대적 한계상 보수적이라 그런가보다-했는데.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까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그냥 이 나라는 문화적으로 남자는 무조건 남성성을 과시해야 하고 여자는 여성성을 과시해야 하는 거였구나.
불륜 상대가 얼마나 대단한가, 그리고 많은가가 본인의 남성성과 여성성을 증명하는 지표고, 다시 그 불륜 상대와 사랑을 두고 경쟁하는 것도 각자의 남성성과 여성성을 겨루고 증명하는 의식이었어.
루이 16세는 그걸 못해서 공개적으로 무시당한 거였고.
[그래, 이제 자네도 좀 프랑스인다워졌군.]
다워지고 싶지 않았어!
유교 드래곤아. 일어서라, 일어서!
상대는 애비를 죽인 동물의 왕국이야!
똑똑똑.
"네, 나갑니다-."
아무튼 이제 부인도 우리 꼬마 왕자님을 달래러 가셨겠다 슬슬 일어나도 되겠지?
무릎을 털고 자리에서 일어나 거실문을 벌컥 열었더니.
빡-!
"컥?!"
난데없이 주먹이 날아들었다.
안이씹 뭔데 또.
"이 사달을 내놓고서 지금 그런 표정이 나오나?"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한 반응.
가만히 기억을 되짚어보니 익숙한 목소리다.
그래-.
"···프로방스 백작?"
못 보는 사이 살이 통통하게 올라서 바로 몰라봤네.
아니 그런데 이 사람은 못 보는 사이에 왜 이렇게 살이 뒤룩뒤룩 찐 거야.
이제 한 숨 돌렸다고 마음이 놓인건가?
"덧붙여서 나는 오늘 어디까지나 사적이라네."
프로방스 백작이 빙그레 미소 지었다.
"내가 애 아빠는 아니라도 작은 아빠이니 이 정도는 할 자격이 있겠지. 안 그런가?"
"넵."
까놓고 총 안 맞은 게 다행이지.
···아니 잠깐, 생각해보니 오늘 내가 부인한테도 안 맞았는데 왜 이 양반한테 맞아야 해?
애 아빠도 얌전히 있는데 좀 열받네?
[오, 프랑스적인 사고방식.]
10할!
내 머리에서 당장 나가라 이 음란 마귀야!
"우선 이것 한 가지만 확인하겠네."
프로방스 백작이 시종들이 꺼내준 손수건-이라기보다는 수건에 가까운 천으로 땀을 닦으며 입을 열었다.
살이 통통하게 올라서 그런가, 별로 날이 덥지도 않은데도 손수건조차 이미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물론 플라토닉한 관계겠지?"
"어···."
···이번엔 은어 아닌 거 맞지?
[이번엔 자네가 생각하는 그 뜻이 맞을걸세.]
"물론이지요."
"···중간에 공백이 신경 쓰이긴 하지만, 일단 넘어가겠네."
프로방스 백작이 미심쩍다는 듯이 미간에 주름을 잡았다.
"그래서, 이번 일은 어떻게 책임질 텐가? 자네한테야 자랑거리일지 몰라도 이번 스캔들은 그 아이에겐 심각한 결격사유야. 설마 사춘기의 잘못된 선택 탓에 수녀원에서 평생 갇혀 살게 둘 셈은 아니겠지?"
아니 이 양반도 내가 공주 꼬신 게 자랑거리라고 하네!
이놈의 동물의 왕국 진짜!
"그냥 조용해질 때까지 기다리는 건-."
"마리 형수님이 조용히 기다리다가 매장당하셨지 아마."
그렇지요-.
아니, 오히려 잘된 건가?
파리 너머까지 황색언론을 퍼트리려면 성심당의 도움이 절실했으니까.
그래.
"그렇다면 아예 말도 안 되는 낭설이 실린 신문들을 찍어보시는 것 어떻습니까?"
"말도 안 되는 낭설?"
프로방스 백작이 미간에 주름을 잡았다.
"···나쁘지는 않겠군. 원래 그게 전통적인 방법이기야 했지. 하지만 그것뿐인가?"
"아예 흥미본위의 찌라시를 찍어내십시오. 만화라던가, 스포츠면이라던가, 연예면이라던가. 그간 파리에서 유행한 찌라시들의 결정체 같은 흉물을 만들어낸 다음-."
약간의 손짓.
그것만으로도 모든 것을 이해한 프로방스 백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허락한 거로 알겠네."
···아니 그런데 이 양반이 진짜.
애초에 나랑 똑같은 생각 하고 있었던 거던 거잖아!
뭐, 나처럼 본격적인 황색언론은 아니었겠지만!
"안심하게나. 아무도 믿지 않을 찌라시들로 찍어낼 테니까. 자네의 명예는 무사할걸세."
"···보다 구체적으로는?"
"천하의 둘도 없는 난봉꾼으로 만들어주지."
야이 개쉨···!
"그럼 저 아이가 평생 수녀원에 갇혀 살게 만들 셈인가?"
능글맞은 질문.
더 나은 대안을 제시할 수 없었던 나는 침묵을 지켰다.
그리고, 막시밀리앙 드 로베스피에르는 절대로 부패할 수 없는 바람둥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