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7화 (107/154)

진정한 사랑

"어머나, 어머나."

남사스러워라.

마리 로즈 드 보아르네는 그녀의 안방에서 언제나처럼 보다 붉게를 읽던 와중 낯 뜨거워 손부채질하며 얼굴을 식혔다.

도대체가 이 전임 독재관은 부끄러움이나 쑥스러움이란 감정조차 없다는 말인가?

부인이나 애인끼리 사적으로 주고받는 연애편지도 아니고 요즈음 파리에서 없어서 못 구한다는 여성지에 이렇게 낯 뜨거운 세레나데를 늘어놓다니.

왜 전날 밤 아직 발행되지도 않았던 잡지를 제 연줄로 몰래몰래 훔쳐본 마담들이 소녀처럼 꺅꺅 비명을 지르면서 앞으로 전 무조건 비누로 씻고 다닐 거라고, 비누 향과 한 몸이 될 것이라 선언했는지 알 것만 같았다.

"하필이면 또 우유 향일 건 뭐래."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더 고혹적이었다.

만일 흔해빠진 장미나 딸기, 포도 같은 달콤한 향이었다면 다들 한 번쯤 관심을 가지는 척만 하고 말았으리라.

그렇지만 니콜라 르블랑의 비누공장이 가장 먼저 선택한 향은 다름 아닌 우유.

사용하기 위해선 먼저 온몸에 발라야 하고, 그전에 있었던 모든 냄새를 덧칠해버리며, 그러면서도 여느 향수처럼 지독하지 않고 은은하게 깃들어 다가가서 숨결이 닿을 듯 가까운 곳에서 맡아야만 하는 비누의 냄새가.

하필이면 우유 향이었다.

마리 로즈는 옛 왕가의 공주가 사교회에서 누구보다 먼저 저 우유 비누를 사용하고 또한 이를 다른 마담들에게 권유했던 것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저 전임 독재관은 오늘 잡지에 공개적으로 이 우유 비누를 예찬하는 후기 글을 써냈다.

그렇다면 전임 독재관이 그 우유 향을 맡기 위해선 우선-.

"어머나, 어머나 세상에! 어머나, 어머나!"

마리 로즈는 잡지를 미처 손에서 놓지도 못한 채 저도 모르게 소녀처럼 꺅꺅대며 소파 위에서 마구 발을 뒹굴었다.

물론 독재관이 개인적으로 사용했거나 부인이 사용하여 후기를 남긴 것일 수도 있겠지만, 마리 로즈의 닳고 닳은 사교회 뇌세포는 이 낡아 빠진 선택지를 단호히 잘라냈다.

그래서 그게 얼마나 현실성이 있는가, 어느 쪽이 객관적으로 더 가능성이 높은가 하는 논리적인 탐구는 무의미했다.

이편이 이야기가 재미있다.

마침 저 르블랑을 로베스피에르에게 소개해준 게 마리 테레즈 공주라고 했으니 훨씬 더 이야기가 흥미진진해진다.

왜 하필이면 르블랑이 유리가 아닌 비누를 골랐을까에서부터 누가 가장 먼저 그 비누를 사용했을까, 비누의 향은 누가 골라줬을까, 그 우유 향은 본래 누구의 젖 내음이었을까, 까지.

무엇 하나 사교회의 망상을 폭주시키지 않는 요소가 없었다.

그간 내심 비누를 귀찮고, 투박하며, 빨래할 때나 자주 쓰이는 공업 용품쯤으로 여기던 마담들의 인식을 한 방에 색기의 상징으로 덮어씌울 만큼.

"진짜 미쳤나 봐···!"

한참을 제자리에서 발을 동동 구르던 마리 로즈는 무심코 흔들의자를 돌아보았다.

늘 그곳에서 퉁명스러운 얼굴로 앉아있던 남편을 찾은 것이다.

하지만 알렉상드르는 거기에 없었다.

이미 법원은 그들 부부의 별거를 인정해버렸으니까.

처자식을 두고 내연녀를 끼고 사는 것도 모자라 사창가를 매일같이 전전하며 그들 프랑스적인 관점에서도 기준미달의 남편이었던 알렉상드르와 별거하게 된 것은 그녀의 인생에 있어서 더할 나위 없는 축복이었을진대.

"···아."

오늘따라 왜 이렇게 쓸쓸하게만 느껴지는지.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날아갈 것만 같았던 흥분이, 망상이 한순간에 착 가라앉는 걸 느끼며 마리 로즈는 천천히 잡지를 손에서 내려놓았다.

"부러워라."

그는 지금껏 단 한 번이라도 그녀의 향수를 맞췄던가?

장인의 이름이야 모른다고 쳐도, 무슨 향인지라도 알아봐 주었던가?

아니, 그렇지 않았다.

새삼스레 마리 로즈는 왜 저 난쟁이 난봉꾼이 그리 인기를 끌고 있는지 알 것만 같았다.

이 프랑스의 자칭 로맨티스트들 중 정말로 로맨틱한, 상대에게 모든 것을 다 바칠듯한 사랑을 하는 이는 극히 한 줌에 불과하다.

개중 대다수는 제 아찔한 일탈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육체적 쾌락을 위하여 사랑을 가장하거나 심지어는 금전이나 권력, 폭력을 이용한 약탈애를 자신만의 사랑법이라며 정당화하거나 이 과정에서 관계없는 타인을 휘말리게 하는 이들도 흔해 빠졌다.

당장 마리 로즈부터가 몰락한 집안을 부양하기 위하여 고모님의 정부가 고른 막내아들에게 내다 팔리듯 결혼한 경우였으니 더 말해 뭐할까.

뭐, 남편도 원해서 친부의 불륜 상대의 조카딸과 결혼한 건 아니었으니 피차 못 볼 꼴을 당한 격이었지만.

"좋.겠.다아아···."

풀썩.

그래도 생각하면 할수록 샘이 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녀는 생전 태어나서 남자들이라곤 온통 명예로운 프랑스 기사를 가장한 한량과 폭력배와 사기꾼들밖에는 보지 못했는데.

도대체 저들은 무슨 복을 타고 태어났길래 저렇게 상냥하고 친절한 애인을 구했다는 말인가.

처음에는 독재관의 신혼일지에서 드러난 가정적인 면모를 여성적이라며 흉보던 마담들이 어느 순간부터인가 질투와 저주를 담아서 온갖 트집을 잡던 걸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 마리 로즈였다.

결국 그들도 부러웠던 것이다.

처녀 적에야 자유연애가 낭만일지 몰라도 나이를 먹고 주름살이 늘어갈수록 집에 들어오지도 않고 매일 같이 제 사회적 지위를 이용해 영계를 꼬드기고 다니는 남편 놈이 자꾸만 눈에 밟힐 수밖에 없으니.

젊어서도, 나이를 먹어서도 비단 춤사위만이 아니라 힘들고 고된 집안일과 자녀교육까지 함께해줄 인생의 동반자가 새삼 부럽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똑똑똑.

때마침 누군가 안방 문을 노크하더니 안으로 들어왔다.

철컥.

"어머니, 슬슬 채비하셔야 할 때입니다."

그녀의 13살 먹은 장남 외젠이었다.

조금 전 마리 로즈의 기대에 더할 나위 없이 완벽히 부합하는 상냥하고 올곧은 사나이였으나, 하필이면 그녀의 혈육이었으니.

"아니면, 오늘은 사정이 있어서 불참하겠다 전할까요?"

"···아니, 그럴 필요 없단다. 그냥 조금 어지러웠을 뿐이니까."

어쩜 이렇게 난 남자 복이 없는지.

마리 로즈는 남몰래 한숨을 내쉬며 외젠이 꺼내준 옷들을 하나둘씩 걸치기 시작했다.

붉은 하이힐, 붉은 원피스, 새빨간 루비 목걸이와 보석관까지.

무엇 하나 마담 롤랑과 로베스피에르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그 사실에 새삼 우울해지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어울리는 한 쌍이라는 생각이 얼핏 머리를 스쳤다.

두 사람 모두 타고난 색기보다는 빛나는 지성과 화술과 인품으로 상대를 녹이는 부류였으니.

우유 비누가 공주와의 에로스를 연상케 한다면 오늘날 사교회를 강타한 이 붉은 옷감들은 마담 롤랑과의 오붓한 플라토닉을 연상케 했다.

"하아···."

또다시 땅이 꺼지라고 한숨.

"···어머니?"

곁에 선 외젠의 걱정 섞인 호출조차 듣지 못한 채 마리 로즈는 축 처진 모습으로 사교회로 향했다.

그야 안 그래도 천불이 끓던 마당에 이미 별거 중인 남편이 현역 장성이라는 이유로 불려간 사교회에 의욕이랄게 생길 리가 없었다.

물론 일단 파티장에 들어서면 아는 얼굴들이야 많겠지만, 이 경우에는 오히려 아는 사람이 많아서 독이 되는 대표적인 자리였으니.

"다들 그거 보셨어요? 어머나, 어머나 세상에 정말!"

"진짜 세상이 바뀌었다는 게 확 실감이 나더라니깐요?"

"어머나, 보아르네 부인! 오늘은 혼자 오셨네요?"

"쉿, 얘가 진짜! 흠흠! 즐거운 시간 되시길!"

"아하하···."

그리고 역시나.

노골적으로 비꼬건, 아니면 정말로 신경이 쓰여서 함부로 말을 걸지 못하건 제가 어울릴 자리가 아니라는 것만 순식간에 확인한 마리 로즈는 어색하게 웃으며 구석으로 물러났다.

그것이 주최자를 향한 예의가 아니라는 걸 뻔히 알고 있었음에도 오늘만큼은 누구와도 춤추고 싶지 않았다.

술잔을 주고받고 싶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도 않았다.

"···어휴."

결국 땅이 꺼지라고 한숨뿐.

지긋지긋하던 남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면 모든 게 바뀔 줄 알았는데 왜 내 인생은 아직도 이 모양일까.

몇 번이고 속으로 되놰보지만 대답은 뻔했다.

진정한 사랑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용하거나, 깔아뭉개거나, 색욕을 채우는 게 아니라 정말로 그녀만을 봐줄 누군가.

'그런데 그런 좋은 사람이 왜 애 엄마랑 사귀려 하겠어.'

그러니 언제나처럼 신세 한탄만 반복될 뿐.

끝내 이 어색한 분위기를 견디다 못한 마리 로즈는 일찌감치 사교 회장을 떠나려 결심했고.

"···응?"

불현듯,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누군가를 발견했다.

그녀도 잘 아는 인물이었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이 사교 회장에서 가장 유명한 총각이자 오히려 그렇기에 누구도 함부로 다가갈 수 없는 존재였을 터인데.

"어머나."

홍당무처럼 붉게 물든 채 동공까지 풀려있었다.

혹시 그녀가 착각한 건 아닌가, 싶었지만 여성으로서의 직감이 속삭여오고 있었다.

저 남자는 너와 사랑에 빠진 거라고.

네가 착각했다고 생각한다면 그거야말로 너의 착각이라고.

'귀엽네.'

원한다면 얼마든지 약탈할 수 있을 텐데.

권력이 되었건, 폭력이 되었건 무엇 하나 보아르네 일가가 그의 상대가 될 리가 없는데.

나폴레옹은 그저 어쩔 줄 몰라 하며 멀리서 그녀를 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다시 보니 꽤 매력적인 것 같기도 하고···.'

요즈음 사교회에 자주 불려 다녀서 그런가?

언젠가 멀리서 보았을 때와 비교하면 비쩍 말라 볼품없었던 해골이 살집이 붙으면서 윤기가 돌고 얼굴에서는 후광이 비치는 듯했다.

또각.

"뭘 그렇게 뚫어지게 쳐다보시는 거예요?"

그럼 귀가는 조금 미뤄도 상관없겠지.

주최자와의 예의를 지키기로 한 마리 로즈가 젊은 영웅에게 다가갔다.

"···네?"

얼빠진 반응.

"음, 저. 그게-."

"됐어요. 설마 제가 몰라서 묻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던 건 아니죠?"

"어···네."

너무나 전형적이라서 오히려 웃음이 나올 만큼 첫사랑에 빠진 청년다운 반응에 마리 로즈는 저도 모르게 까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전 유럽의 처녀들을 애달프게 한 젊은 영웅께서 여성 경험만큼은 일천하셨다는 말인가?

그의 은인 로베스피에르처럼?

그도 아니면, 그만큼 그녀와 강렬한 사랑에 빠진 것인가?

'···너무 우쭐대지 말자, 마리.'

아무렴 지금껏 저 프랑스 제일의 풍운아를 거쳐 간 여인 중에 그녀보다 볼품없는 여인이 몇이나 될까.

당장 저 나폴레옹에게 구애한 집안이 몇이고 또 침실이나 욕실에 숨어들려고 한 처녀가 몇일 텐데.

"아무튼, 만나 뵙게 되어서 반가워요."

"아, 저는-."

"말씀하시지 않아도 알아요. 보나파르트 경이죠? 우리 코뮌의 젊은 영웅."

마리 로즈는 치맛자락을 가벼이 들어 올리며 그에게 정식으로 인사를 올렸다.

단.

"저는 조제핀 드 보아르네. 조제핀이라고 편히 불러주시길."

"···조제핀."

남편이 아닌 정부에게 대는 이름으로.

그야 구분을 두는 게 훨씬 짜릿하니까.

***

"야 이 미친놈아."

덥석.

카미유가 내 멱살을 붙들고 외쳤다.

"저, 잠깐 이것 좀 놓고 진정-."

"진정? 진저어엉?! 야 이 미친놈아, 네가 이러고도 진정소리가 나와? 늦바람이 무섭다는 것도 정도껏이지!"

네네.

또 제가 죽일 놈입니다.

네엡.

[오, 프랑스적 사고방식.]

입 닥쳐, 막시밀리앙!

나도 슬슬 그런 거 아닐까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으니까!

"도대체 몇 명이야? 에로스가 몇이고 플라토닉이 몇인데? 제수씨한테 다 털어놓긴 한 거겠지?!"

"워, 워. 카미유, 이만 진정하게."

날 구해준 건 뜻밖에도 당통이었다.

카미유가 내 멱살을 붙들고 당통이 날 풀어주다니, 이거 이색적인데.

"하지만!"

"세 명이면 어떻고, 열 명이면 어떠며, 백 명이면 뭐 어떻다는 말인가. 자고로 태양왕 이래로 색을 밝힘이란 곧 영웅으로서의 자질을 보임과 동의어였거늘."

구해주기는 개뿔이!

그래, 생각해보니까 원래 이 녀석이 진짜 난봉꾼이었지?

어째 순순히 구해준다고 했다 제기랄!

"하지만 공주님은 다르지 않겠나."

당통이 이쪽을 돌아봤다.

"우선 어쩌다가 꽃다운 공주님의 젖 내음을 맡게 되었는지 좀 자세히 설명해줬으면 하는데."

어휘 저급한 거 보소!

"내 공주님의 비누 냄새라고는 한 글자도 적지 않았네만."

"아하, 그러니까 제수씨의 비누 냄새다?"

"그래."

"이 자식 이거 안 되겠군."

당통이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뭔데요 또.

"마라, 아무래도 자네가 나서야겠네. 바른대로 불었으면 금방 끝났을 일은 이놈이 수줍어서 그런지 또 바른대로 불지를 않는구먼."

"미안해, 막시밀리앙. 오늘 나는 어디까지나 사적이야."

"잠깐잠깐잠깐!!!"

하다못해 공적이라고 해라!

공주와 붙어먹은 혁명의 배신자니까 벌주는 거라고!

이건 그냥 남의 있지도 않은 연애사가 궁금하니까 옛날처럼 두들겨 패버리겠다는 소리잖아!

"알았네! 알았어! 바른대로 불면 될 것 아닌가!"

"이 친구가 진작에 그랬어야지."

"하여간에 숫기가 부족하다니까."

"쯧쯧, 도대체 이놈은 언제쯤 사람이 될꼬."

차례로 당통, 카미유, 마라였다.

하여간 이럴 때만 죽이 척척 맞아서는.

여하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내 사정들을 듣더니-.

"···재미없어."

그럼 묻지를 말던가!

"결국 또 혁명하는 기계가 기계 노릇했다, 뭐 그런 이야기잖은가."

"무슨 제 치정극을 정치로 써먹는 놈이 다 있는 거지."

"뭐, 그런데 이렇게라도 안 했으면 다들 비누는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것 같긴 해."

오, 과연 마라.

그래도 우리 중에서 유일하게 과학 방면으로 탁월한 친구 답구만.

다른 놈들은 영 이상한 곳에만 꽂혀있는데 말이야.

[뭘 멋대로 우릴 자네 수준으로 끌어내리려 드는 건가?]

에이, 탄산···뭐시기 좀 몰랐다고 되게 뭐라고 그러네.

[어휴.]

아무튼 그건 대충 넘어가고.

"그래서 그 공주님은 뭐가 좋다고 그러는 건가?"

이해가 안 된다는 듯한 당통의 반응.

뭐 그거야 나도 짐작조차 안 가긴 하는데.

"몰라. 나보고 루이 오귀스트 같다고 하던데."

"···지금 뭐라고?"

"루이 오귀스트 같다고 했-."

"마라."

"알겠네."

뽀각.

마라가 냅다 내 발을 밟았다.

끄아악!!!

"이게 도대체 뭐 하는 짓인가!"

"그럼 면전에서 루이 오귀스트 같다는 소리를 들어놓고서도 지금 그런 반응이 나오나?"

"설마 뭐 공주님 따귀라도 때려줬어야 했다는 소리야?!"

"···자네 진짜 안 되겠군."

카미유가 황당하다는 듯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뭔데요 또!

"그건 아가씨들의 은유일세, 은유."

"은유?"

"루이 오귀스트가 왜 고자 소리를 들었는지 자네도 알 텐데."

어···.

"이 친구 진짜로 못 알아들었나 본데."

"미치겠군. 이거 마담도 똑같은 상황인 거 아닌가?"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보나 마나 아니겠나."

아니, 대체 뭔데!

말을 하라고 이 동물의 왕국들아!

집주인 놈아, 넌 알겠냐?

[···모르겠는데.]

그렇겠지!

서른 넘게 독수공방한 노총각 홀아비한테 뭘 기대하냐!

그러니까 제발 모태솔로도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설명하라고!

"좋아, 그래서."

마라가 땅이 꺼지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본인은 뭐 여심에 얼마나 밝다고!

"비누를 보급하는 데 성공했군. 그래서 끝인가?"

"아니, 여성용 비누를 보급했으니 이제 남성용 비누도 보급해야지."

"아하."

마라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좋아, 알겠네. 그럼 우리도 보건국 혹은 위생위원회를 설치해서 도와야겠군. 그래야 이 프랑스의 더러움이 말끔히 씻겨나갈 테니까."

···오?

역시 본인이 피부병에 시달려봐서 그런가.

생각지도 못한 후원자가 나왔네.

"그래서 구체적인 방안은?"

"그거야-."

···이 친구들한테 말하기 좀 그런데.

하지만 잠시 망설였다고 또 금세 흉흉해지는 게 이러나저러나 죽는 건 똑같다는 생각에.

"···남성용 비누는 다른 향을 집어넣고, 마담이 그 향이 탁월하다고 광고글을 써주는 거지."

물론 그걸 사용할 첫 빠따는 나다.

"""·········."""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왜 여성용 비누의 첫 사용자였던 공주님이 아니라 마담이 추천서를 써줘야 하는가, 를 의문시하는 놈도 단 한 명도 없었다.

"인정하겠네."

턱.

당통이 환히 웃는 얼굴로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자네가 최고야."

입 닥쳐, 짱구.민혁타락

털썩.

"이 은혜는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또다시 르블랑 씨가 내게 엎드려 절을 올렸다.

날 처음 찾아오고 고작 몇 달 사이 피부에 윤기가 돌고 옷감이 갈수록 좋아져 가는 것이 이 양반의 경제적 성공을 대강이나마 짐작하게 해주고 있었다.

하기야 누구도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비누가 한순간에 패션과 에로스의 상징이 되면서 불티나게 팔려나간다는 표현조차 모자를 활황이 계속되고 있으니 그럴 법도 하지만.

아닌 게 아니라 한동안 우리 집에 이 향 비누 때문에 향수가 안 팔린다고 좀 자중해달라는 탄원서까지 날아왔을 지경이었다.

뭐, 애당초 안 씻고 적당히 향수 뿌리는 거로 퉁치던 양반들이 매일 같이 향 비누로 박박 씻어대기 시작하니까 향수 수요가 줄어든 걸 두고 나한테 뭐라고 하는 게 참 웃기긴 했는데.

결과적으로는 마담의 제안대로 비누는 비누대로 쓰고, 향수는 향수대로 동시에 뿌리는 걸로 해결(?)을 보았으니 참으로 경사로세, 경사야.

[그리고 우리는 삼 다리로도 모자라 여성잡지에 공개적으로 정부와의 에로스를 늘어놓는 천하의 둘도 없는 난봉꾼이 되었고.]

입 닥쳐, 막시밀리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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