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고치기
"시시한 발상이로군."
내 설명을 참을성 있게 끝까지 들어준 퀴뇨 씨의 신랄한 한 줄 평이었다.
"정해진 철로 위만 달린다면 당연히 손잡이도 필요 없을 테고, 삼륜을 고집할 필요도 없을 테고, 후진은 물론이고 중간중간 돌부리에 걸릴 걱정을 할 필요조차 없이 그저 전진만 가능한 기계를 만들라. 뭐 이런 소리잖은가?"
"글쎄, 그게 말씀하신 것처럼 쉽지는 않을 텐데요."
"지금 내 의견에 이의를 제기하겠다는 건가?"
퀴뇨 씨가 으르렁거렸다.
그야 나는 미래지식을 아니까 하는 소리지만 퀴뇨 씨가 듣기에는 멋모르는 애송이가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는 걸로 보일 테지만-.
"아니 그럼 후원자가 그런 소리도 못 해요? 아저씨가 뭐 험한 소리를 한 것도 아니고!"
"저, 공주님. 그게 아니라-."
"상호존중! 일단 따라오신 이상 서로 예의를 지킵시다! 아시겠죠?"
"···네."
역시 이렇게 되나.
괜찮다고 내가 그렇게 뜯어말려도 또 제가 안 보는 곳에서 주먹질할지도 모른다며 곧 죽어도 따라오신 덕을 톡톡히 보네.
슬쩍 의기양양하게 이쪽을 돌아보시는 마리 테레즈 탓에 오늘도 퀴뇨 씨는 하루가 다르게 폭살 늙어가고 있지만!
[하, 루이 오귀스트가 이렇게 절절매는 걸 봤어야 했는데···.]
그러니까 그건 나중에 당사자랑 면담하실 때 하시고요.
"···좋아, 그렇다면 우선."
여하튼 마리 테레즈 덕분에, 혹은 탓에 한결 마음을 가라앉힌 퀴뇨 씨가 입을 열었다.
"기술자로서 자네의 구상에서 보이는 몇 가지 흠결을 지적해보겠네."
"그런 거라면야 얼마든지요."
"우선 첫 번째로, 회전은 어떻게 할 작정인가? 제아무리 곧게, 일직선으로 철로를 깐다고 해도 결국 중간에 한번은 빙 돌아가야 할 구간이 나올 텐데. 그럼 차량이 튕겨 나오거나 하지 않겠나?"
이거야 쉽지.
답지를 보고 있는 그대로 베끼면 그만이니까.
"차량을 여러 개 일직선으로 연결하여서 완만한 곡선을 그리면서 선회하면 될 겁니다."
"흠, 그러니까 차량 하나를 길쭉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관절을 만들겠다?"
"네. 알기 쉽게 비유하자면 지네를 연상하시면 될 겁니다."
""·········.""
침묵.
마리 테레즈도, 퀴뇨 씨도 질색한 얼굴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뭐지?
"···무슨 원리인지는 알겠는데 왜 하필이면 지네인가?"
"그러니까 지금 증기 지네를 만드시겠다는 거예요?"
"의미만 통하면 되는 거 아닙니까? 괜히 설명이 길어지는 것보다야 훨씬 낫지요."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불평불만 한번 많으시군.]
누가 아니래.
"좋아, 그럼 그 망할 지네는 이만 넘어가고."
퀴뇨 씨가 애써 고개를 가로저으며 지네를 떨쳐냈다.
"두 번째로, 철로의 부담은 어쩔 텐가?"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자네가 말하는 대로 오직 차량을 실어 나르기 위한 기계를 만든다면 다른 무엇보다도 출력을 우선해야 할거고, 그러다 보면 기계가 무거워질 수밖에 없네. 좁디좁은 파리의 골목길을 쏘다닐 필요도 없으니 부피나 너비의 제약도 없다시피 할 테고, 무엇보다 광석이나 석탄이라는 게 좀 무겁던가."
그렇다면.
"어지간한 재질로는 철로가 이 증기기관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으스러지거나 휘어지겠지. 아닌가?"
어···.
"강철로 만든다면-."
"말도 안 되는 소리. 그 비싼 강철을 탄광에서 공장까지 깔겠다고? 차라리 베르사유 궁전을 한 번 더 짓지, 그러나."
···끙, 하기야 강철의 대량생산이 가능해진 건 산업혁명이 시작되고도 한참 뒤라고 했던가.
이번만큼은 코웃음 치는 퀴뇨 씨에게 반박할 말이 없다.
뭔가 방법이 없-.
"뭐, 농담일세. 연철로 만들면 되겠군."
이보셔요!
"지금 절 시험하신 겁니까?!"
"시험? 이보게. 연철은 값싼 줄 아나? 강철보다야 싸다지만 이놈도 흔히 쓰이는 주철과 비교될 만큼 호락호락한 놈은 아니야."
퀴뇨 씨가 한심하다는 듯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만들 수 있냐고 묻거든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답해주지. 하지만 분명히 단언하건대 이건 그냥 부자들의 장난감일세. 도저히 상업적인 용도로 써먹을 수 있을 만한 게 아니야. 자네가 정말로 석탄공급을 원활히 하기 위한 해결책을 고민하고 있다면 차라리 주철 철로 부설에 집중하게."
이런 장난감 말고.
신랄한 촌평이었다.
사실상 관두라는 말을 조금 우회적으로 돌려 말한 거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좋습니다. 그럼 그 부자들의 장난감을 만들어주십시오."
"···뭐?"
"부자들의 장난감 말입니다. 그런 사치스러운 괴물 딱지를 가지고 노는 즐거움을 시민 동지들과 함께 공유한다면 그 또한 혁명이 세상을 바꾸었다는 증거가 될 테지요."
내가 비록 정확한 개발시기를 알지는 못해도 이 증기기관차라는 놈이 앞으로 10년에서 20년 사이에 영국에서 발명될 것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
그리고 다시 본격적인 상용화까지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도.
그럼 부자들의 사치스러운 장난감이라도 만들 수 있다면 그게 어디야.
"필요한 것이 있다면 무엇이건 제공해드리겠습니다. 일전에 법원에서 압수해간 증기자동차도 돌려받으실 수 있도록 힘써보지요."
"이봐, 잠깐만."
퀴뇨 씨가 미간에 주름을 잡았다.
"지금 내 말이 이해가 안 가나? 그래, 자네 한사람쯤이야 타고 다닐 수도 있겠지. 조금 더 노력하면 일가족까지는 태울 수 있을걸세."
"그럼 된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시민 동지고 뭐고 진짜 운행 한 번에 소가족 하나만 간신히 태울 수 있을 거라는 말이야!"
쾅.
"또 석탄은 값싼 줄 아나? 그 무지막지한 기관차에 여객 차량까지 끌 출력을 끌어내려면 얼마나 많은 석탄을 태워야 할지 짐작이나 가는가? 도대체 이 프랑스의 농노들이 무슨 수로 그런 사치스러운 장난감을 가지고 논다는 말인가!"
"저···."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마리 테레즈가 조용히 손을 들어 올렸다.
"꼭 타면서 즐길 필요 있나요? 그냥 구경하는 재미도 상당할 것 같은데."
"저기 공주님, 그런 문제가 아니라-."
"제가 타고 다닐게요."
척.
마리 테레즈가 엄지로 절 가리켰다.
"원래 시민들에게 구경거리를 제공하는 것도 왕족의 책임이고 의무였잖아요. 아닌가요? 베르사유에서 파리까지라면 그렇게 멀지도 않으니까 되게 간단할 것 같은데."
"···마마."
돌연 퀴뇨 씨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왕당파로서 무려 왕실이 타게 될 차량을 제작하게 되었다는 영광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폭도들의 성원에도 기죽지 않고 당당히 살아가는 모습이 감격스러웠던 걸까.
여하튼 한창 분위기 좋을 때 딴지 걸고 싶진 않지만-.
"그건 좀 위험할 것 같은데요."
혁명이 왜 터졌는데 옛 왕실 인사가 비싼 연철 철로에 심지어는 증기기관차를 타고 다닌다고?
어휴, 막 듣기만 해도 단두대가 눈앞에 어른거리는데.
"차라리 시민들에게 선보이는 건 다음 기회로 미루지요. 우선 시험 제작과 운행까지만 끝마쳐놓고, 먼 훗날 주철 철로가 보편화되고 어느 정도 시기가 무르익은 다음에 본격적인 상용화를 시도해봅시다. 왕실을 향한 분노가 가라앉은 지 얼마나 되었다고-."
"그럼 아저씨가 저에게 선물해주세요."
·········.
[풋.]
입 닥쳐, 막시밀리앙.
"왜요? 아저씨는 여기 계시는 퀴뇨 씨의 후원자고, 지금 이 나라에서 제일가는 권력자잖아요? 그 시제품을 가장 먼저 제게 선물했다고 하면 다들 사치스럽다기보다는 낭만적이라고 생각해줄 것 같은데."
"···오, 주여."
퀴뇨 씨가 조용히 성호를 그었다.
그 마음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나도 지금 똑같은 기분이니까!
"아니면 왜요? 저한테 주기 아까워서 그래요? 홍보라면 기깔나게 해줄 자신 있는데. 그 위대하신 조부 시절부터 툭하면 사람들 앞에 나서서 노래도 부르고 연극도 하고 춤도 추고 하는 게 우리 왕실의 가족력이었걸랑요?"
"···그, 저기."
"아, 아바마마 빼고요."
그러시겠죠!
다 좋은데 말이야!
"지금 제가 사비가 아니라 회사 공금으로 후원하고 있는 터라···."
"그게 뭐 어때서요? 아저씨 회사잖아요?"
"···최고 경영주는 마담 롤랑이십니다."
정적.
"흐응-."
조금 전까지 들떠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무표정한 마리 테레즈가 실눈을 가늘게 뜨더니.
"그럼 투자할게요."
"···네?"
"제 우유 비누 팔아서 번 주식이랑 돈, 여기다가 투자하겠다고요."
이게 무슨 소리일까, 는 고민해볼 필요도 없었다.
마담 명의로 제가 가질 선물을 만드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고로 르블랑 그룹을 끌어들일 거고, 오늘날 시장을 강타하고 있는 두 신흥강자가 공동투자 한 증기기관차 개발사업이라면 삽시간에 파리 금융가의 관심을 끌어모으게 될 터.
그렇다면 이 경우 자연히 대내외적으로 부각될 건-.
"물론 아저씨께서 또 광고글 써주실 거죠?"
마리 테레즈가 빙그레 웃었다.
나는 차마 대꾸할 수 없었다.
다만, 퀴뇨 씨와 나란히 성호를 그을 뿐.
***
누에바 그라나다 부왕령.
"내 길게 말하지는 않으리다."
미국 독립전쟁의 영웅 프란시스코 데 미란다가 이날 밀회에 참여한 참가자들의 면면을 돌아보며 무겁게 입을 열었다.
"더는 고도이가 멋대로 설치도록 둬서는 안 되오."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도대체 노예무역 없이 무슨 수로 플랜테이션을 유지하라는 말입니까?"
"사람도 먹고살기 바쁜 마당에 가축만도 못한 노예들을 살찌우려 들고 있으니, 어휴!"
"도대체가 고도이는 어느 나라의 재상입니까? 뭐 조상 중에 프랑스인이나 검둥이라도 있는 모양이지요?"
"이대로 가다간 온 나라가 검둥이와 인디오들 소굴이 되어버릴 겁니다! 위대한 탐험가 콜럼버스의 대륙이 또다시 야만과 이교도의 대륙으로 전락할 거라고요!"
그야말로 폭발적인 호응이라는 표현조차 부족한 분노의 도가니였다.
그리고 그만큼 요즈음 고도이 내각의 친불정책이 불러일으킨 분노가 엄청났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물론 노예제가 부도덕한 제도라는 건 그들 또한 모르지 않았다.
공공연히 노예제 옹호를 들먹이는 게 부끄러운 일이라는 것도 말이다.
하지만 외세의 강요를 못 이겨서 노예제 폐지를 단행했다면.
자국인 노예주들보다도 이웃 프랑스의 의사를 우선했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않겠는가?
이미 루이지애나 굴욕외교와 히스파니올라에서의 패배만으로도 사방에서 분노가 들끓고 있던 마당에 그들을 달랠 생각은 안 하고 거듭하여 식민지 개혁이라는 이름의 도발적인 정책만 늘어놓고 있으니 이들로선 분노가 사그라들려야 사그라들 수가 없었다.
아니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나라를 개혁할 돈이 없으면 사치를 줄이던가 아니면 개혁을 미루던가 해야 할 것 아닌가?
사치는 사치대로 계속하면서 본국은 아무것도 부담하지 않고 계속 그들 식민지인과 식민지 정부에만 모든 부담을 떠넘기는 건 도대체 뭐 하자는 건지 원.
그마저도 저 개혁들이란 게 고도이가 직접 생각해내고 또 입안한 게 아니오, 프랑스 공사라는 놈이 곁에서 끊임없이 미주알고주알 참견한 결과물이라는 걸 뻔히 알고 있는 스페인인들로서는 속이 부글부글 끓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의 대의는 여느 때보다도 선명하며, 우리의 투지는 정오의 찬란한 태양보다도 열렬히 타오르고 있소."
좌중의 흥분이 어느 정도 가라앉기를 기다린 미란다가 재차 입을 열었다.
"우리의 요구사항은 간단하오. 국왕 폐하의 충성스러운 신민으로서 이 위대한 나라를 프랑스에 팔아치운 매국노 고도이와 간신모리배들을 내치기를 요구하는 것. 그리하여 우리 위대한 에스파냐 제국이 다시 한번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돌아가는 것!"
쿵!
"그렇다면 우리에게 맞서려는 저들은 무엇이겠소? 간신모리배 고도이의 앞잡이요, 프랑스에 나라를 팔아치우려는 매국노들의 군세 아니겠소! 우리야말로 정의요, 관군일지니!"
벌떡.
미란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외쳤다.
"크리오요 형제자매들이여, 모두 일어나시오! 우리의 정당한 생존권을 위하여! 우리의 자유와 국왕 폐하를 위하여! 그리스도와 성모의 이름으로 의롭게 궐기합시다!"
"""주여, 선하신 국왕 카를로스 4세를 도우소서!"""
우렁찬 만세 소리.
그리고 더할 나위 없이 위선적인 구호였다.
아무렴 나태왕 카를로스 4세가 대체 무슨 얼어 죽을 선하신 국왕이란 말인가?
하다못해 스페인 식민제국을 위함이라는 대의조차 허깨비요, 누구도 믿지 않을 뻔한 거짓말에 불과했다.
그야 프란시스코 미란다는 라틴 아메리카 독립을 위하여 후원자를 구하기 위해 유럽을 여행하던 대표적인 독립파 인사였으니까.
결국 이들은 선하신 국왕 카를로스 4세를 위해서가 아니라, 스페인 식민제국을 위해서는 더더욱 아니라.
노예무역 중단과 마드리드로부터의 노예해방압력에 격분하여 간신모리배 축출을 핑계 삼아 런던과 결탁한 크리오요 노예 농장주들일 뿐이었다.
공개적으로 노예 문제를 핑계로 삼기엔 낯부끄럽고 다만 지도부가 엉망진창일 뿐 변함없이 막강한 본국에서 건너올 진압군이 두려우니까 국왕을 위하여, 조국을 위하여라는 핑계를 댔던 것이다.
'···이 역겨운 강간마들 같으니라고.'
물론 프란시스코 미란다 또한 이를 모르진 않았다.
그야 이러니저러니 해도 제가 나고 자란 고향일진대 어찌 그 생리를 모를까.
당장 크리오요 노예 농장주들이 여기까지 격분한 직접적인 계기도 증세가 아니라 마드리드에서 혼외처와 혼혈 문제를 건드리려 했기 때문이라는 것만 생각해도 낯이 뜨거워졌다.
장차 저들에게도 참정권과 부분적인 상속권을 인정해주겠다는 마드리드의 개혁안이 「감히 즐거움의 부산물들이 우리와 맞먹으려 든다」라는 공분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그렇게 유색인종과의 교접은 곧 수간이라고 멸시하는 작자들이 오늘날 이 땅의 순수 백인은 한 줌이고 대다수가 메스티소, 물라토인 이유를 과연 정말로 몰라서 그러는 걸까?
아니, 모를리가 없었다.
결국 모든 건 위선이오, 언제나 강한 부정은 곧 강한 긍정이듯 제 추잡함을 가리기 위한 뻔한 거짓말에 불과했다.
그래, 오늘 이 자리가 온통 위선과 거짓으로 가득 찼듯이.
'···아니, 그렇지 않다.'
최소한 동포들의 자유와 조국의 독립을 꿈꾸는 그의 대의만큼은 진심이니까.
하필이면 그를 지지해주는 유일무이한 지지층이 저 크리오요 노예농장주들이었을 뿐.
그도 그럴 게 이 땅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인디오나 혼혈들은 왕당파였다.
저들의 횡포로부터 유색인종들의 권리를 보호하고 인디오들이 전통문화를 보존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자치를 허락해준 게 카를로스 4세 이전 보르본조의 계몽 군주들이었다 보니 자연스레 왕당파가 되어버렸던 것이다.
물론 정반대로 크리오요에게 보르본조의 계몽군주란 그들의 특권을 박탈하여 인디오들을 마음껏 침략할 수도 없게 꽁꽁 묶어두고 요직에 오를 수도 없도록 제한을 둔 폭군들이었고.
결과 대서양을 건너온 옛 침략자들의 후예는 조상이 건너온 모국을 등지고 저주하는 반면 그 침략자들에 의해 고초를 당한 피침략자들의 후예는 진심으로 왕실을 흠모하건 최소한 크리오요에 비하면 차악이라고 여기고 있으니.
미란다 같은 독립혁명가들은 선택의 여지 없이 왕당파-달리 말하여 유색인종들을 탄압하고 크리오요 노예 농장주들에게 알랑방귀를 뀌어야 하는 이율배반을 감내해야만 했다.
혹은, 처음부터 백인 노예 농장주들만을 위한 백인우월주의 지주공화국 건국을 꿈꾸고 있거나.
'차라리 파리에서 보르본 왕실과 화친하지 않았더라면 다른 길이 있었으련만···.'
그들의 길은 이미 엇갈려버린 것을 이제 와 탓한들 무엇하리.
결국 미란다는 런던과 반고도이 진영의 지지를 등에 업은 채 붉은 깃발을 하늘 높이 들어 올렸다.
학살자, 약탈자, 강간마들의 깃발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