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2화 (112/154)

해적다움

런던 총리관저. 

탁상 위의 펼쳐진 대서양을 중심으로 한 반쪽짜리 세계지도 위. 

"우선 하나." 

지익. 

윌리엄 피트는 스페인령 라틴 아메리카와 스페인, 그리고 이탈리아 반도를 하나의 거대한 선으로 이었다. 

"코르시카···를 놓친 건 다소 아쉽긴 한데. 그래도 파올리가 힘을 기르고 있으니 아직 여지는 남아있고." 

직. 

다시 코르시카 위로 △자를. 

"바르바리는 어떻게 나올지 모르겠군. 워낙에 변덕스러운 놈들이니." 

마지막으로 마그레브 지역 위로 X표를 새겨넣었다. 

그러자 세계지도 위로 더럽혀지지 않은 곳은 딱 한 곳만이 남았다. 

그의 조국 그레이트 브리튼. 

그리고 도버 해협 너머로 마주 보고 있는 악의 총본산. 

"파리." 

저 끔찍한 오각형은 밤마다 피트의 악몽처럼 등장하고 있었다. 

유럽 전체 인구의 5분지 1에 달하는 인구 대국 프랑스. 

그 터무니없는 체급으로 잊을 만하면 전 유럽을 상대로 전쟁을 걸었던 저 대륙의 폭군이 하필이면 이 혁명이라는 열병의 총본산이라는 사실이 얼마나 끔찍하던지. 

다행히도 지난날과는 달리 교섭이라는 게 가능했기에 아직 대륙 경제가 파탄에 이르지는 않았으나, 이 경우에는 오히려 외교라는 게 가능한 상대였기에 런던이 더욱 앓는 소리를 내게 하는 감도 없지 않았다. 

그냥 프랑스와 스페인을 제외한 모든 대륙 국가들로 포위망을 짜면 그만이었던 지난날과는 달리 함부로 선공을 거는 것조차 주저하게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어디 그 좋아하던 혁명 맛 좀 보라지." 

고로, 런던은 생각을 고치기로 했다. 

프랑스를 직접 공략하기 어렵다면 스페인을 공략하면 된다고. 

물론 7년 전쟁 당시 몇 번이고 영국 식민지군을 물 먹이며 해가 지지 않는 나라가 아직 건재함을 입증한 스페인군의 위용을 떠올리면 이 또한 썩 좋은 우회법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웠으나-. 

천만다행히도 지난날 바야돌리드 회담 당시 스페인은 자격 미달의 국왕과 왕비와 총리 탓에 사실상 뇌사상태에 빠졌음을 런던에 자백한바. 

저 혁명 프랑스의 약점을 찾아 광야를 헤매던 윌리엄 피트 내각에 안도와 기쁨을 동시에 안겨다 주었다. 

결과 런던은 마침내 저들에게 혁명과 외교 중 하나를 포기하도록 강요할 대전략을 설계해냈으니. 

이를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았다. 

1.현 고도이 내각의 친불정책에 반감을 품은 애국주의자, 왕실의 절대왕권 추구에 반감을 품은 스페인 가톨릭 교회, 그리고 카스티야 주도의 중앙집권 정책에 반감을 품은 아라곤, 마지막으로 식민지 크리오요들을 반 고도이 진영이라는 큰 틀로 묶어낸다. 

2.이는 필연적으로 혁명에 맞선 반동 세력의 준동으로 선전될 것이며, 자격 미달의 고도이 내각은 영국을 등에 업은 반대진영의 총공세에 맞서 정권을 지키기 위하여 파리의 전면 개입을 청하게 될 거다. 

3.이때 런던이 개입하여 최근 프랑스에서 공들이고 있는 이탈리아 코뮌운동을 동시다발적으로 격발시킨다. 

4.이럼 이웃 교황령과 나폴리 왕국까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되니 친혁명노선을 표방하고 있는 스페인은 이탈리아 반도에서는 반혁명 노선을 표방하게 되며, 현 고도이 내각엔 이 상호모순을 동시에 성립시킬 역량이 전무하다. 

5.고도이 내각의 후원자 프랑스가 이베리아 반도와 이탈리아 반도에서 각기 다른 태도를 보이면 혁명의 순수성을 의심받게 될 것이고, 반대로 혁명을 고집한다면 고도이 내각은 제 손으로 수 세기간 동군연합이었던 나폴리 왕국의 파멸을 초래하게 되니 반불파와 친불파 간의 내전은 스페인과 프랑스의 전면전으로 급속히 화하게 된다. 

6.그리고 프랑스가 어느 쪽을 택하건 영국은 국력 소모를 최소화하면서 적들을 고립시킬 여유와 안정을 가질 수 있다. 

"합스부르크에게는 미안하게 되었지만···." 

꼬우면 누가 런던에 아쉬운 소리 하라고 했는가. 

어차피 런던이 손을 쓰지 않는다고 신성로마제국령 이탈리아가 언제까지 혁명의 광증으로부터 안전하지는 않을 텐데. 

오히려 상수나 다름없는 이탈리아 반도에서의 대폭발을 프랑스를 지옥으로 끌고 갈 개미 덫으로 말끔히 고쳐주었으니 런던은 빈에게 야유가 아니라 감사를 받아서 마땅했다.

"자, 여기까진 완벽한데···." 

피트의 눈이 동쪽으로 향했다. 

러시아, 폴란드-리투아니아. 

그리고 오스만 튀르크. 

아직 영국의 손때가 전혀 묻지 않은, 완벽한 미지수의 영역. 

"저 타타르 놈들은 뭔 다 망해가는 나라 하나 못 밀고 아직도 빌빌거리고 있는 거야?" 

물론, 여기서 타타르란 피부 허연 스기타이-곧 루스 카간국을 의미했다. 

금방 끝난다고, 폴란드 놈들쯤 한주먹거리도 아니라고 호언장담한 게 벌써 몇 년째인데 아직도 바르샤바가 함락되었다는 소리가 들려오지 않고 있었다. 

되려 공허한 승전 선언만 몇 번이고 반복되면서 「러시아의 승전」이라는 비꼼 섞인 은어가 만들어질 지경이었다. 

'정말로 혁명정신이 육전에서의 필승요소인가?' 

오죽하면 천하의 윌리엄 피트조차 이런 고민을 하게 되었을까. 

아무리 폴란드인들이 필사적이라도 그렇지 체급 차이가 얼마인데 다 망해가던 옛 위성국 하나 못 밀고 있으니 원. 

"이러다가 또 저 튀르크인들이 폴란드를 돕겠다고 나서면 곤란해지는데···." 

피트가 팔짱을 끼며 투덜거렸다. 

아닌 게 아니라 오늘날 런던에서 고도이 내각이 그들이 생각했던 것보다는 훨씬 유능했다, 만큼이나 위험시하고 있는 게 오스만 튀르크의 전면 개입 가능성이었다. 

불과 몇 년 전 오스트리아-러시아 연합군을 상대로 휴전조약을 체결했던 오스만 튀르크이니만큼 다시 휴전 만료를 선언하고 전쟁을 재개하는 것 또한 국제법상 그리고 국익상 불가능한 가정은 아니었다. 

물론 런던에서도 이에 대비해 이집트의 맘루크들을 후원하며 열심히 발을 잡아두고 있기야 하지만, 현 술탄 셀림 3세는 몸소 개혁위원회를 설치하고 서구화 정책을 추구하며 예니체리들과 대립각을 세우는 개혁군주였으니. 

프랑스와 오스만 튀르크의 수 세기에 걸친 혈맹관계를 뻔히 기억하고 있는 런던으로선 내심 혹시 저 셀림 3세 또한 친혁명인사가 아닐까, 하는 의혹을 버릴 수가 없었다. 

'다시 프로이센을 움직여봐야 하나?' 

오스트리아야 조만간 이탈리아로 정신이 없어지겠지만 프로이센은 오히려 여유가 남아돌게 될 테니 이들을 움직여서 폴란드를 압박한다면 종이호랑이 러시아도 바르샤바를 함락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이 경우 저 프로이센의 얌체 같은 뚱보가 반불 포위망에서 완전히 이탈할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만 했으니. 

적당한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러시아-폴란드 전쟁은 오늘날 런던의 난제가 되고야 말았다. 

"결국 내년까지는 저 저주받을 전쟁이 끝나길 기도하는 수밖에 없겠군." 

저 리바이어던도 내년 총선에는 정치 일선에 복귀하게 될 테니. 

아무렴 차라리 사자가 고기를 끊지, 독재관 노릇까지 해본 작자가 무슨 수로 권력을 끊겠는가. 

고로, 내년까지가 런던의 고비였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뇌세포가 돌아오기 전에 저 우둔한 폭군을 개미 덫에 빠트려서 옴짝달싹할 수 없이 만들어야만 했다. 

*** 

프랑스 은행. 

"어떤 이야기인지는 잘 알겠습니다." 

쾅. 

알렉산더 해밀턴이 내 증기기관차 사업안에 반려 도장을 찍어서 돌려주었다. 

"하지만 원금 회수를 위하여 너무도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할뿐더러, 아예 묻어버리기엔 너무나 막대한 액수를 필요로 하는 것 같군요." 

무엇보다 내년 이맘때면 다시 정계에 복귀하실 걸 거잖습니까. 

해밀턴이 덧붙였다. 

"고로, 본점에선 설령 로베스피에르 씨더라도-아니 오히려 로베스피에르 씨기에 더더욱 이번 사업이 부적절하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듣던 대로 단호하시군요." 

"보다시피 외부인인지라. 평소 흠모하던 부패할 수 없는 자를 만나 뵙게 되어서 대단히 영광입니다만, 돈 문제에 사적인 감정을 끼워 넣을 수야 없는 법이지요." 

그럼 좋은 하루 되십시오. 

가벼이 목례를 건넨 해밀턴이 이내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먼 곳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것이 다음 차례가 기다리고 있음을 전하는 무언의 압박이라는 건 두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과연 전임 독재관이라는 위명 따위에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10달러 지폐에서 보던 알렉산더 해밀턴 그 자체라 인상적이긴 한데-. 

"흠, 제 최신별명은 절대로 부패할 수 없는 상간남 아니었습니까?" 

"···커흠!" 

에이, 왜 이러시나. 

깐부끼리는 네것 내것 없는 법인데. 

과연 퓨리턴 피닉스답게 아직 여기까진 내성이 없었는지 홍당무처럼 붉어진 해밀턴이 마구 헛기침을 해대기 시작했다. 

[이젠 하다 하다 스스로 상간남이라 자칭하다니 뻔뻔하기도 하시지.] 

뭐 어때. 

사서에 기록될 절대로 부패할 수 없는 상간남의 주인공은 박민혁이 아닌데. 

[···아뿔싸.] 

내가 저번에 늦었다고 말했었지? 

운명이니 이만 포기하고 받아들이셔. 

"그럼 이건 어떻습니까." 

아무튼, 저쪽에서도 슬슬 들을 채비가 된 듯하니 이야기를 꺼내 보자. 

"전시징발과 군사적인 운용을 전제로 한 안보 사업으로 다시 신청하겠습니다." 

"···이 서류에 증기기관차 개발은 여객과 화물 운송을 목표로 한 물류사업이라고 분명히 기록되어있습니다만." 

"아, 물론 평시 운용이야 그렇겠지요." 

단. 

"전시엔 조금 더 색다른 화물들을 운송하게 될 뿐." 

그제야 해밀턴의 눈이 진지해졌다. 

그도 독립전쟁에서 닳고 닳은 군인이니 이게 무슨 의미인지 단박에 눈치챈 거다. 

"니콜라 퀴뇨 씨께서 처음 증기자동차를 개발하실 때." 

그럼 이 기회를 그냥 흘려보낼 수야 없지. 

"이 발명을 후원한 전임 후원자는 현역 장성들이었고, 시제품을 가장 먼저 건네받게 될 납품처는 군부였습니다." 

"그러니까 증기기관차는 그때의 연장선이다, 라고 주장하고 싶으신 겁니까?" 

"주장이고 자시고 그게 사실이잖습니까? 당초 증기자동차의 개발목적은 대포를 끌고 다니는 것이었습니다. 구하기 어렵고, 쉽게 다치거나 지치는 짐말들을 대신해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대포를 실어 나를 기구가 필요했기에 포상금을 걸어가며 퀴뇨 씨의 발명을 후원하셨던 거지요." 

그러나 이 위대한 발명은 역사상 최초의 교통사고와 함께 비극으로 마무리되었다. 

아니, 마무리되는 듯했다. 

"전 퀴뇨 씨가 한낱 실패자로 기록되게 두지 않을 겁니다." 

전임 독재관 로베스피에르가 패션사업과 증기기관차 개발을 주도한 세기의 천재이기까지 했다, 보단 젊은 시절의 실패에도 좌절하지 않고서 이날 이때까지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며 자신이 옳았음을 증명하기 위해 노력한 늙은 발명가의 이야기가 훨씬 낭만적이잖아? 

퀴뇨 기관은 장차 대포를 끌게 될 거다. 

그의 머리가 아직 검고 피부에 윤기가 가득하던 시절, 국왕과 파리지앵이 보는 앞에서 첫 시연을 보였을 때처럼. 

그가 특별채용이라는 꿈에 부풀어서 후원자들과 현역 장성들이 보는 앞에서 호언장담했던 것처럼. 

위풍당당하게 프랑스군의 대포를 끌고 힘차게 달릴 거다. 

그리하여 니콜라 퀴뇨는 30년이라는 세월을 뛰어넘어서 마침내 승리자이자 성공한 발명가로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그편이 저는 물론이고 퀴뇨 씨와 모든 시민 동지들에게 즐거울 테니까요. 겸사겸사 광대 노릇도 하고요. 아무튼 이걸로 이야기 서사가 딱딱 완성되잖습니까?" 

"의외로군요." 

해밀턴이 쓴웃음을 지었다. 

"소문으로 듣기에는 위원장께서 완전히 색에 미쳐서 이성을 놓으신 것 같았는데 그렇진 않았던 모양입니다." 

"···크흠." 

[호, 딱 정곡을 찌르는 걸 보니 저 친구 독설가의 재능이 있나 본데.] 

입 닥쳐, 막시밀리앙! 

그게 아니라는 거 뻔히 알면서! 

"뭐, 아무튼 안보를 핑계로 삼으신다면야 저도 더는 반대하지는 않겠습니다." 

해밀턴이 양손을 귓불 위로 들어 올리며 항복을 선언했다. 

"언젠가 떠나갈 외부인이 프랑스의 안보 문제에 대하여 왈가왈부할 수야 없는 법이니까요. 다만, 저는 반대했다는 것만 기억해주십시오." 

"···돌아가실 수 있는 거 맞습니까? 제가 듣기로는 파리 사교회에서 정부를 몇 분 더 만드셨다고-." 

"크흠." 

필사적인 헛기침. 

정곡이구만. 

[역시 경험자다워. 아주 날카로운 지적이었네.] 

시꺼. 

"그럼 기왕 반대하신 김에 몇 가지 고견을 여쭙겠습니다." 

뭐 흔한 은행가도 아니고 10달러 지폐의 주인공 알렉산더 해밀턴이잖아? 

과연 본인 말대로 돌아갈 수 있을지, 이대로 정착하게 될지야 몰라도 이런 좋은 기회가 왔는데 그냥 날려버리기엔 아쉽지. 

"말씀해보십시오." 

"구체적으로는 어떤 부분을 어떻게 고쳤어야 해밀턴 씨의 승낙이 나왔을까요?" 

"우선 단기간 내에 원금을 회수할 방법이 전무하고, 사업계획에 따르자면 개발까지 지나치게 오랜 시간과 많은 투자자본을 필요로 하며, 그렇게 완성된 결과물이 기대에 부응한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신랄하구만. 

하지만 뼈아픈 정답이다. 

"마지막 세 번째야 여느 신기술 개발사업이나 다 마찬가지이니 그냥 넘어간다고 쳐도, 앞서 두 가지는 반드시 보완이 필요합니다. 제아무리 파리지앵들이 치정극과 낭만을 좇는다고 한들 돈 문제가 엮이면 이야기가 달라지니까요." 

"그럼···." 

어디 보자. 

원시적인 증기자동차나 증기기관차로 할만한 게-. 

"광고 사업은 어떻습니까?" 

"···광고, 말씀이십니까?" 

"예에. 차량에 거대한 광고판을 달아서 신상품이나 정당을 선전하는 겁니다. 아예 연주자들을 태워서 신나는 음악을 곁들이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겠지요. 비록 파리에서 베르사유까지 정해진 구간 밖에 오갈 수 없다지만 언제나 사람이 붐비는 번화가를 지나치는 노선이니 한 번쯤 시도해볼 법하다고 생각합니다만." 

어차피 퀴뇨 씨부터가 부자들의 장난감이라고 했으니까 괜히 벌써 화물들을 본격적으로 실어 나를 궁리보단 이편이 훨씬 빠르고 직접적일 거다. 

아직 광고 사업이 그렇게 발달한 시대도 아니고, 일단 개통되면 내가 공주님에게 선물해줬다는 이야기 서사 때문이건 시끄러워서건 언제나 사람들의 이목을 끌게 될 테니 거기에 광고판을 달 수 있다면 꽤 매력적인 제안일 터. 

아니면 기왕에 정치적으로 활용하기로 작정한 김에 아예 사적으로 하고 싶은 말이나 탄원서 같은 것들까지 광고판에 달도록 하는 것도 한가지 방안이겠다. 

"나쁘지 않군요. 또?" 

그런데 또?! 

아니 광고면 됐지 뭘 더 어쩌라는 거야! 

[그야 들어가는 비용과 시간이 얼마인데 이 정도는 해야지.] 

입 닥쳐 막시밀리앙. 

넌 대체 누구 편이야? 

"그럼-." 

아씨, 또 뭐가 있을까. 

뭐가 있-. 

"왜 자꾸 증기자동차는 놀려두려고 하십니까?" 

해밀턴이 장난스레 덧붙였다. 

"제가 보기에는 아무리 실패한 발명품이라도 이미 실물까지 있는 증기자동차가 훨씬 수익성이 있어 보이는데 말이지요." 

"···그러니까 증기자동차와 증기기관차 개발을 병행하라고요?" 

"병행이 아닙니다. 일원화지요." 

확신이 담긴 조언이었다. 

"애초에 퀴뇨 씨의 기술력은 무엇을 제작하기 위한 기반입니까?" 

"그야···증기자동차지요?" 

"그렇습니다. 증기자동차지요. 증기기관차는 이 퀴뇨기관에 기반한 응용이고, 본 목적은 증기자동차입니다." 

그렇다면. 

"우선 증기자동차부터 제작하십시오. 그래야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개량이 이루어질 것 아닙니까. 아직 존재하지도 않는 증기기관차를 응용할 방법은 그렇게 다양하게 생각해내신 분이 왜 증기자동차는 거들떠보지도 않으십니까?" 

확실히 그 말대로였다. 

단지 증기기관차에 비하면 증기자동차는 그리 기억에 선명하게 남는 발명품이 아니라서 후순위로 미루고 있었을 뿐. 

합리적으로 생각해보면 아예 새로 만들어야 하는 증기기관차보다 훨씬 빠르게 양산할 수 있을 테고, 퀴뇨 씨의 서사를 완성하기에도 증기자동차가 더 적절하겠지. 

하지만-. 

"시민들이 불안해하지 않을까요?" 

아직 선을 보이지도 않은 증기기관차라면 모를까, 증기자동차는 역사상 최초의 교통사고를 일으켜 버린 이래로 공포의 대상이 되어버린 지 오래인데. 

"틀에서 좀 벗어나십시오." 

해밀턴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꾸하길. 

"왜 적국의 특허권에 연연하십니까?" 

"···예?" 

"제임스 와트의 기술력 말입니다. 영국인들이야 앞으로 특허권이 만료될 때까지 아직 더 기다려야 하지만 프랑스는 신경 쓸 필요 없잖습니까. 벌써 20년 전에 양산이 시작된 제품이니 구하기도 쉽고요. 

정식으로 볼턴 & 와트 사와 계약을 하건, 제품만 사 온 다음 복제를 하건, 아니면 아예 당신의 권력으로 기술을 훔쳐 오건 한 다음 퀴뇨 씨의 기술력과 조합해 단점을 보완한 신형을 개발했다고 선전하십시오." 

그럼 아무도 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겁니다. 

누구보다 앵글로 색슨다운 해결책에 우리는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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