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의 적기
우리가 마르세유에 도착하여 차지한 숙소는 텅 빈 관사였다.
혁명 전까지는 나름 이 지역에서 잘나가는 귀족이 가진 별장이었다는 모양인데, 이게 도대체 어딜 봐서 별장이냐-라는 게 내 솔직한 감상이었다.
당장 3인 가족에 보모까지 4명이 짐을 풀었는데도 빈방이 수두룩한 판이니 그 사치와 낭비야 두말해 뭐할까.
물론 여행 숙소야 화려하면 화려할수록 좋은 법이고, 또 마님과 막시밀리앙 2세도 기뻐했지만, 내심 잠시나마 잊을 뻔하였던 혁명정신을 무럭무럭 배양하며 분을 삭이고 있던 찰나.
"파리에서 답신이 돌아왔네."
마침내 내 대립교황 프로젝트의 답신이 돌아왔다.
때마침 부하들에게 일거리를 떠넘기고 땡땡이를 치러 나온 마세나가 흥미진진하다는 듯이 되물었다.
"뭐라고 합니까?"
"지랄하지 말라더군."
정확하게는 네가 아직도 독재관인 줄 아는 거냐, 하다못해 총선 끝나고 하던가 아직 파리에서 결론이 나오기도 전에 모든 공직에서 내려왔다는 자연인이 급발진해서 외교 문제 좀 터트리고 다니지 말라고 한 거지만.
결국 그게 그거지 뭐.
대립교황을 세우자는 내 의견 자체는 진지하게 받아들여졌을 수도 있겠지만 그게 실제로 실행에 옮겨질 즈음이면 여기선 한창 사후 수습 중일 가능성이 크고.
쯧쯧, 하여간 다들 혁명정신이 빠져서는.
거 혁명이 중요하지, 정치가 그리 대수냐!
[···지금 그게 여의도 꿈나무 박민혁이 할 소리가 맞나?]
여의도 꿈나무 박민혁은 죽었소, 동무.
유교 드래곤과 함께 심정지했지.
혁명 하나 완성 시켰다고 정착하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새로운 혁명지를 찾아 정처 없이 헤맨다!
마 이게 체 게바라 정신이다, 이마리야!
"흠, 그럼 이제 위원장님께서도 파리의 눈밖에 난 겁니까? 손과 발이 꽁꽁 묶였을 테니 아쉽게 되었군요."
이놈이 어째 전혀 아쉬워하는 말본새가 아닌데.
이죽거리는 눈매도 그렇고 놀리는 듯한 눈치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네."
척.
마세나가 보는 앞에서 정부 인장과 국민공회 위원장의 인장이 나란히 새겨진 임명장을 휘둘러 보였다.
곧 주제노바 프랑스 전권대사로 임명함을 나타내는 증서였고, 이 시대의 대사 직급은 정말로 평화협정이나 정상 회담급 사안이 아니고서야 쉽게 나오지 않는다는 걸 떠올려보면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간단했다.
이건 장차 내게 이탈리아 방면에서 일어날 크고 작은 사건들에 대해 사후 보고할 특권을 부여함을 알리는 혁명 면허였다.
[그리고 이번 총선까지는 대권 노리지 말라는 견제구지.]
뭐, 이정도야 예상했잖아?
당통 그놈이 견제구 날려오던 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전권대사로 임명해주는 대신에 이번 대권까지는 양보해달라-정도면 그럭저럭 양호한 거래다.
진짜로 말도 안 되는 한직도 아니고 한창 혁명 와중인 이탈리아에 현장 재량권까지 약속하면서 꽂아줬으면 오히려 감사할 일이지.
결과적으로 이탈리아 혁명이 대성공으로 마무리되면 이 또한 우리의 정치 이력에 또 다른 전설로서 기록될 테니까.
아직 마흔도 안된 젊다 못해 새파란 나이에 벌써 대권에 연연할 필요도 없고, 대중의 열광적인 지지와 관심만 남아있다 언제건 되찾아갈 수 있는 자리에 미련 가질 생각 따윈 없다.
[마치 맡아놓은 자리처럼 이야기하는군.]
하지만 그게 팩트죠?
권력의 본질은 그 사람에게 그런 힘이 있다고 믿도록 만드는 거고, 우리 같은 혁명가들에게 있어서 그 힘은 얼마나 혁명에 이바지했으며 또 그 공로를 대중적으로 인정받고 있는가로 정해지는 법이다.
지금 나더러 잠깐 머리 식히고 있으라고 해외로 돌리는 거라면 너희 실수한 거야, 임마들아.
"보다시피 파리에서는 내가 마르세유에 와있는 걸 아주 기꺼워하는 모양이야. 물론 그전에 내 혁명 활동을 도와줄 아주 든든한 경호 대장을 구해야 할 테지만, 그래도 전권대사 정도면 슬슬 체스판에 올라왔다고 자부할 수 있지 않겠나?"
"오, 주여."
이놈이 위원장 동지 축하드립니다가 아니라 무슨 귀신이라도 목격한 것처럼 성호를 긋네?
너 이거 기억해뒀다.
나중에 후회하게 해주마.
"왜 그러는가? 설마하니 이탈리아어 한마디 할 줄 모르는 날 이대로 방생할 생각은 아닐 거라고 믿겠네. 사나이 중의 사나이, 앙드레 마세나가 그리 매정한 사람이었을 리가 있나."
"아니···아닙니다. 확실히 제가 보고 있는 곳에서 사고를 치고 계시는 게 차라리 마음이나마 편하겠네요."
마세나가 땅이 꺼지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어허, 이놈이 그래도.
"그래서, 이제 뭐부터 시작하시렵니까? 진짜로 대립교황부터 세우시려고요?"
"뭐어, 물론 언젠가 세우기야 하겠네만."
이미 파리에서 한번 쪼인트 까인 마당에 대립교황 프로젝트를 진행하려면 조금 더 은근하게, 난 어디까지나 대세에 휘말린 것처럼 변명할 수 있는 판을 짜야지 무턱대고 들이박는 건 썩 현명한 처신이라고 하기 어렵다.
파리에서 지적했듯이 지금 나는 독재관이 아니라 엄연히 프랑스 정부를 대표해서 파견 나온 전권대사니까.
그리고 기왕에 성심당까지 만들어놨는데 이대로 놀려두는 것도 아쉽잖아?
프랑스식 기독교-농촌 사회주의가 이 이탈리아에선 얼마나 호응이 좋을지야 두고봐야겠지만, 현시점에선 은근한 여론조성으로 가톨릭 교회 내 개혁파와 보수파의 대결로 연출하는 게 가장 이상적이다.
그러니까 여기선 우선 상식적으로 가서.
"이 전권대사 임명장을 들고 그 자칭 제노바의 로베스피에르라는 친구를 만나러 가봐야지."
그냥 맨몸으로 찾아갔어도 내 이름값이 있으니 저쪽에서도 아예 박대하지는 않았겠지만, 자연인 신분으로 찾아가는 것과 코뮌 정부에서 보낸 전권대사로서 만나는 게 같을 수는 없다.
전자라면 적당히 존중해주는 시늉만 하면서 은근히 인질로 잡거나 아니면 아예 내 이름값만 날름 삼키고 버리려들 수도 있겠지만, 일국의 전권대사에게 그랬다간 외교 참사다.
무엇보다 전임 독재관이 전권대사 직함을 달고 제노바로 달려왔다는 것 자체가 제노바 시민들에게나 저 장 카를로라는 친구에게나 파리로부터 날아온 무언의 메시지로 받아들여질 테니까.
이 메시지에 솔직하게 기뻐할지, 두려워할지, 거북해할지, 질색할지, 우쭐할지만 봐도 장차 이탈리아 혁명의 싹수를 가늠해볼 수 있을 거다.
그래서 싹수가 너무 노랗다면 아예 그 장 카를로라는 놈을 허수아비로 만들거나 멋모르는 애송이 혁명가로 갈아치우면 될 테고, 적당히 상부상조할 수 있을 듯 보이면 당장은 이용해봐야지.
"애당초 지금껏 그 친구가 어떤 사람인지 말만 들었지 막상 내 눈으로 보고 판단한 적은 없잖은가. 당장 내일 신성동맹에서 우리 프랑스의 형제공화국을 침략할지도 모르는 판에 명분을 놓치지 않으려면 서둘러야지."
"···명분이라."
마세나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렇다면 마차보단 배를 타고 돌아가시는 게 나을 겁니다. 훨씬 빠르고, 사르데냐령 니스를 지나치는 도중에 괜한 시비가 붙을 수도 있으니까요."
"마차에서 내려 짐을 풀어놓은 지 며칠이나 되었다고 또 배를 타야 할 테니 바가지 좀 긁히게 생겼군."
[그거야 내가 들어줄 테니 걱정하지 말게.]
오, 웬일이래.
"그렇지만도 않을 겁니다. 지중해는 언제나 아름답지만, 특히 늦은 봄의 지중해는 잔잔하고, 따스하며, 청량하니까요."
"그런가?"
"예에. 오히려 마르세유까지 와놓고서 지중해로 나와보지도 않고 그냥 돌아가는 게 진짜 바보짓이지요. 마담께서도 막상 배에 오르신다면 눈 녹듯이 마음이 녹아 아름다운 지중해를 즐기게 되실 겁니다."
마세나가 자신만만하게 덧붙였다.
흠, 토박이가 그렇게까지 자신한다면야 믿는 수밖에.
하지만 그보다도.
"지금 자네야말로 뭔가 고약한 음모를 떠올린 악당의 낯짝이네만."
"저런, 들켰습니까?"
"그것도 아주 탐욕으로 똘똘 뭉친 못된 해적 같군."
"···혹시 초능력자십니까?"
"이 세상에 그런 오컬트가 있을 리가 있나."
[뭐, 초능력자는 아니고 영능력자이긴 하지.]
···정신 기생체도 영능력자로 쳐주나?
아무튼.
"어서 무슨 꿍꿍이인지 좀 설명해보게. 생각나는 대로 전부 다."
저번에 나도 대립교황 프로젝트를 가감 없이 설명해줬잖아?
공범으로서 이정도는 설명받을 자격이 있다고 보는데.
그러자 마세나가 영락없는 악당의 낯짝으로 털어놓기를.
"실은-."
***
제노바 공화국.
"···하늘도 무심하시지."
제노바 국민공회 위원장 장 카를로 브리뇰레가 눈살을 찌푸렸다.
"하필이면 로베스피에르란 말인가? 그것도 전권대사 자격이라고?"
"틀림없습니다."
오랜 세월 그의 가문에서 일해온 무역상이 깊이 고개를 조아렸다.
"며칠 전 마르세유 항에서 제노바로 향하는 선박에 오르는 로베스피에르 일가를 목격하였다고 답한 이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하필이면 지금 같은 시국에, 당장 언제 침공이 시작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형국에 공화국으로 향하고 있다면-."
"···전권대사가 틀림없겠군."
물론 그게 이름만 달리한 식민지 총독일 거라는 건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설령 국제법상으로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도 오늘날 제노바와 프랑스 사이에는 그와 같은 폭거를 가능하게 만들고도 남을 압도적인 국력 차가 있었으니까.
짤랑.
"수고했네."
카를로가 한 줌의 금화를 건넸다.
대항해시대가 도래하고 해양 공화국들의 시대가 저문 뒤로는 이탈리아 너머에서는 더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 옛 화폐 두캇(Ducato)이었다.
"앞으로도 쓸만한 정보가 들어온다면 언제건 나를 찾아오게. 우리 집안의 시종들에게도 자네가 찾아왔다고 하면 곧장 응접실로 안내하도록 전해둘 테니."
"아이고, 그거야 여부가 있겠습니까.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나으리."
무역상은 희희낙락하며 도망치듯 자리를 떠났다.
혹시나 카를로의 마음이 변하지는 않을까 두려워한 것이리라.
뭐, 어차피 그렇게 불안에 떨지 않아도 저 돈은 알아서 다시 브리뇰레 가문에 환수되도록 설계되어있었지만.
"···하필이면 로베스피에르라니."
하지만 막상 카를로의 주름은 한시도 펴질 줄을 몰랐다.
그야 제노바 공화국의 도제를 몇 번씩이고 배출한 그들 일가에게 그까짓 금화 몇 푼 즈음이 무슨 대수겠는가.
이미 지금 당장 자산을 탕진해도 그동안 정성껏 설계해온 시스템과 인맥을 통해 얼마든지 재기할 수 있을 진정한 부자들에게 중요한 건 금 따위가 아니었다.
그들이 설계해온 이 모형 정원 그 자체지.
다시 말해 이 제노바 공화국이라는 나라야말로 그들 공화귀족의 제일가는 안전자산이자 주식회사였다.
당장 아버지께서 외세에 국권을 내다 팔려 한 공화국의 배신자라는 오명을 뒤집어쓰면서까지 카를로를 부추겼던 것도 이를 지키기 위함이었으며, 다시 카를로가 패륜아라는 오명을 뒤집어쓰면서까지 저 폭도들을 위하는 척 앞장서고 있는 것도 이를 지키기 위함이었다.
오직 이 제노바 공화국을 지키겠다는 일념 하나로 여기까지 왔건만.
하필이면 다른 사람도 아니고 로베스피에르가 직접 제노바로 향하고 있다니.
'아니, 벌써 좌절하기는 이르다.'
물론 저 멋모르는 폭도들의 우상이 이 땅에 도래하는 순간 삽시간에 모든 이목을 쓸어가게 될 것이다.
카를로야 그동안 친 혁명파임을 암시한 적도 없고, 오히려 아버지께서 아직 살아계시던 시절 공화국의 안정을 위한 검열과 단속강화를 지지하기까지 했으니 더더욱 저 폭도들은 프랑스의 힘을 빌려 브리뇰레 가문을 실각시키길 원하겠지.
하지만 저 로베스피에르까지 그걸 원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 아닌가.
신성동맹에서는 그를 피에 미친 학살자이자 혼란과 파괴를 퍼트리는 적 기사라고 흉보았으나 막상 로베스피에르가 정적이나 반대 세력을 마구잡이로 학살한 전적은 전무했다.
그가 처형한 오를레앙 공작 또한 따지고 보면 쿠데타로 인한 정당한 단죄였지, 사법살인이나 숙청이라고 부를만한 사건은 아니었다.
고로, 세간의 중상모략과 편견들을 모두 떼어내고 객관적인 관점에서 평가한 로베스피에르란 인물은 어디까지나 온건파다.
저 폭도 중에선 그나마 현실감각도 있고, 그들 같은 구체제와 타협할 여지도 얼마든지 남겨둔.
'그렇다면 쓸모를 증명하면 될 거 아닌가. 우리 가문이 제노바의, 나아가 이탈리아에 혁명을 퍼트리기 위해선 필요불가결하다. 혹은 손을 잡는 편이 적대하는 것보단 훨씬 유용하다. 그래, 딱 그 정도만 전할 수 있으면 족하다.'
그렇다면 지난날 프랑스에서 그러했듯이 그들 브리뇰레 가문과도 공존하거나, 최소한 이용하려 들 테니까.
어차피 당장 누구에게 국권을 팔아야 하냐를 논의하던 처지에 그 이상을 바랄 생각도 없거니와, 바랄 처지도 아니었다.
자고로 약소국의 외교란 언제나 강대국들의 비위를 최대한 맞추면서 자국이 원하는 극히 일부라도 양보받을 수 있도록 잔머리를 쥐어짜 내는 고된 작업이었으니.
"너희는 공화국의 귀빈을 맞이할 수 있도록 늘 바다를 주시하고 있거라. 혹 확실치 않더라도 언제건 내 서재로 들어올 수 있도록 허하노라."
"명 받들겠사옵니다."
하여 각오를 다지고 한바탕 태풍이 몰아칠 것을 기다리며 귀빈을 맞이할 만반의 채비를 갖추기를 며칠이 지났을까.
벌컥.
"각하! 각하! 배가···!"
아직 해가 떠오르지도 않은 이른 새벽.
마침내 파리의 총독이 나타났다는 급보와 함께 깨어난 카를로는 땅이 꺼지라고 한숨을 내쉬어야만 했다.
차라리 저게 사르데냐 왕국의 침략선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었으니 그 막막함이야 두말해 뭐할까.
"안내하게."
하지만 그렇다고 이제 와서 도망치거나 내쫓아버릴 수도 없는바.
카를로는 여느 때처럼 뻔뻔스러운 미소를 만면 가득히 떠올리며 국민공회 위원장-.
아니, 공화국의 도제로서 그에 걸맞는 화려한 복식을 갖추고 응접에 나섰다.
"붉은 리슐리외 만세! 붉은 독재관 만만세!"
"코뮌의 인민무력으로 저 엿 같은 공화귀족 놈 좀 치워주십시오!"
"이렇게 엎드려 빌겠습니다! 우리 코뮌의 독재관이 되어주십시오! 이탈리아의 인민들에게도 위원장 동지의 탁월한 지도력이 필요합니다!"
"에우로파는 코뮌의 적기 아래 하나다!"
"제발! 제발 나폴레오네! 제발 나폴레오네 좀 보내주세요!"
그리 놀랍지 않게도 이날 항구에는 새벽부터 적기와 삼색기를 휘두르는 계몽주의 폭도들로 가득했다.
도대체 어디에서 정보가 새어 나갔는지야 이제 와서 고민해보는 것도 무의미했다.
설령 카를로가 그리 생각하지 않더라도 이제 이 나라는 저 폭도들의 공화국이었고, 저들이야말로 이 나라의 주인이었으니.
'오, 주여.'
그 우민이라는 두 글자를 고스란히 형상화한 듯한 숨 막히는 광경에 카를로는 저도 모르게 성호를 그었다.
대관절 저런 우민들과 무슨 공화정치를 논하라는 건지.
이제라도 저 폭도들을 내쫓는 게 낫지 않을까, 혁명의 적이라는 미명 아래 잡아 가두었던 공화귀족 동포들을 옥에서 풀어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충동이 뇌리를 스치던 찰나.
"어···?"
망원경으로 돛대를 살피던 구경꾼이 의아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저건 뭐지?"
"왜? 뭔데, 무슨 일 났어?"
"아니, 깃발이 저게 맞나 싶어서···."
"깃발?"
깃발이 뭐가 어쨌다고.
멀리서 보기에는 그저 붉은 점밖에는 보이지 않는데.
"어, 어?"
"저거···!"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한 사람이 그러는 건 그놈이 깃발조차 못 알아볼 만큼 무식하다던가, 잘못 봤다던가 등 여러 가지 가능성이 있지만 망원경으로 수평선을 살피던 이들이 짠 듯이 하나둘 탄성이나 비명을 터트리는 건 정말로 깃발이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
"그 망원경 좀 이리 줘보게."
결국 보다 못한 카를로가 구경꾼으로부터 빼앗은 망원경으로 로베스피에르가 탔을 여객선을 살폈고.
"이, 이놈이···?!"
그 붉은 기의 정체를 목격한 즉시 저도 모르게 비명을 내지를 수밖에 없었다.
『S.P.Q.R.』
로마 원로원과 인민들(Senātus Populusque Rōmānus).
제노바항이 통일론자들의 절규와도 같은 함성으로 가득 차기까지는 불과 1분도 필요하지 않았다.